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8
048화. 독 중의 독 (4)
쩌어어엉-
하얗게 불타는 대검과 음울하게 맺혀있는 마기가 부딪히자 생기는 파문에 이를 중심으로 거센 바람이 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방.
무식하게 생긴 대검과 시카리우스의 다리가 허공에서 부딪힐 때마다, 사방으로 불티가 튀어 허공에 흩날리다가 종국에는 학교를 먹어 치우는 화마(火魔)에 손길을 보탰다.
“그런데 우리 자기, 처음에 만났을 때 왜 그렇게 화를 낸 거야?”
“….”
콰강! 쩌정!
다리로 거친 공세를 뿌리는 시카리우스는 자유로운 상반신의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면서 입을 열었다.
입술을 내밀며 새초롬한 척하는 열 받는 표정은 덤이었다.
“혹시 우리가 인간을 가두고 기르는 것 때문에?”
민준은 대답 대신 반 바퀴 회전하며 놈의 옆구리를 점했으나, 여덟 개의 다리는 사각이 없었기에 쉬이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등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옆에서 쏟아지는 검을 쉬이 쳐냈고, 이어지는 공격 또한 그러했다.
“인간은 고기를 얻기 위해 돼지를, 소를, 닭을 좁은 축사에 가둬놓고 기르잖아. 우린 ‘인간의 시간’을 원해. 그래서 길렀을 뿐인데, 그게 잘못된 거야?”
그러한 거친 공방 중에도 시카리우스의 입은 쉬질 않았으나, 민준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첫째는 놈에게서 뿜어나오는 독을 최소한으로 마시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놈의 간악한 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럼에도 시카리우스는 계속해서 혀를 놀려댔고.
전투 중에 귀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민준은 그 개소리를 계속 들으며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면 인간들끼리 서로 죽이게 만들어서 화난 거야? 그렇다면 투견은? 투계(鬪鷄)는? 오직 쾌락만을 위해 소를 죽이는 투우는?”
“….”
놈의 말은 자꾸 자신의 머릿속에 잡생각이 들게 했다.
“자기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잖아, 맞지?”
“….”
사실 놈이 틀린 말을 하진 않았다.
다른 동물은 몰라도 인간이라는 종은 저들에게 별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상아를 위해 코끼리를 사냥하고, 기름을 위해 고래잡이를 하고, 가죽을 위해 악어를 잡는 인간들은, 생존시간을 위해 인간을 사냥하는 놈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으니까.
‘X발, 닥쳐. 나보고 어쩌라고.’
민준은 자꾸 잡소리를 내는 마음속 자신에게 대꾸하며 더욱 강하게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놈의 말이 맞다면.
이 사태가, 그날 하늘을 가득 메운 외눈이 말했던 것처럼 인간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벌일까?
다 저지른 만큼 받는다는 인과응보, 자업자득의 결과일까?
‘그러면…. 그러면 뭐가 달라지냐? 내가 인간의 대표자야? 왜 나한테 지랄이야.’
구세주라는 양반이 말하는 ‘그분’조차 노할 정도라고 했다. 그 양반의 직함을 없애버릴 정도로.
그렇다면 인간은 이미 구함 받을 가치를 잃어버린 것 아닐까?
‘인간이고 나발이고. 왜 다른 놈이 지은 죄를 나와 내 사람들이 속죄해야 하냐고. 그리고 X발 그만 닥치라고 했지.’
왜? 나는 왜 이렇게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고 있는 걸까. 포기하면 모든 것이 편해질 텐데.
쿠궁! 콰아앙!
““….””
어느 순간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둘의 격돌은 점점 거세졌고, 그만큼 민준의 동작도 커져갔다.
그리고.
시카리우스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잡았다.”
푸욱-
시카리우스의 손에서 렌스(Lance)처럼 뻗어 나온 마기가 복부에 바람구멍을 냈고.
검을 놓친 민준은 꼬치구이가 되어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신세가 됐다.
“흐음- 자기, 생각이 많아 보이네? 내 말에 좀 찔렸나 봐?”
“…입 냄새가 지독한데. 좀 닥치지?”
“나한테는 항상 독이 뿜어져 나오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어? 어때, 내 독이 자기의 몸 구석구석을 훑는 느낌이 느껴져?”
“글쎄, 나는 잘 모르… 쿨럭! 겠는데 말이지.”
민준이 각혈하면서도 말을 잇자, 시카리우스가 다정한 연인에게 하는 것처럼 민준의 얼굴에 묻은 피를 손수 닦아주었다.
“그래? 가끔 면역력이 높은 인간이 있긴 하더라고. 그런데 자기 있지, 면역력이랑 상관없이 독이 잘 먹히는 한 부위가 있거든? 그게 어디인 줄 알아?”
“….”
“숨을 들이마시는 폐? 해독기능이 있는 간? 혹은 가장 먼저 닿는 피부? 다 아니야….”
그녀는 거꾸로 매달린 민준의 목을 붙잡아 얼굴을 마주하고, 혀로 윗입술을 핥았다.
“여기.”
시카리우스의 검지는 민준의 가슴께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를 봐.”
시카리우스의 검지가 향하는 곳을 바라보자.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이를 쫓고 있는 거미들이 보였다.
“자기의 의도대로 저 인간 중 몇몇은 이곳에서 도망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돌아온다는 것에 내 핵을 걸 수 있어. 왜? 내가 놈들의 마음에 독을 심어놨거든. 굴종이라는 독을 말이야.”
“나, 는 너한테 굴… 종 따위 하진 않았는데?”
“독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 시기, 질투, 교만…. 뭐 그런 것들. 자기에게는 의심과 혼란이겠고.”
“그래서 네가 심은 독 때문에 내가 혼자 나자빠졌다?”
“아니야?”
“흐흐…. 인간들 중에도 가끔 이상한 착각에 빠져 사는 것들이 있더라고.”
“…?”
“얼마나 빠르던지, 이제야 잡았네.”
철컥.
민준은 어느새 들려있는 샷건의 차가운 총구를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 대고는 말을 이었다.
“잡소리는 이제 끝나셨어?”
* * *
철컥.
시카리우스가 뭔가를 말하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곧 죽을 괴물의 유언을 들어줄 만큼 내가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오직 성력을 잔뜩 때려 박은 샷건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 생각했고.
그렇게 행했다.
‘….’
놈을 처치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오지 않았다.
위기상황에서 더미 반지를 활용해 내가 역습을 가했던 지난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괴물이라고 해서 그 비슷한 능력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자만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상반신의 절반이 사라졌음에도, 스러지는 놈의 동체를 끝까지 응시했다.
‘저건가?’
놈의 심장이 있을 자리에 박힌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보석 하나가, 놈의 몸을 빠르게 재구축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였나? 아니 이렇게?’
놈이 썼던 방법을 어설프게나마 모방한다. 독을 막아내는 둑으로 쓰고 남은 성력 찌끄러기를 그러모아 손으로 뽑아냈고.
콰드득-
칼날이라 하기엔 조금 볼품없는 성력이 놈의 무지갯빛 보석의 한 가운데를 꿰뚫었다.
반절이나 날아간 몸을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있던 동력원이 제 기능을 잃어버리자, 그제서야 시카리우스의 거대한 몸이 재가 바람에 흩날리듯 허무하게 사라졌다.
띠링!
[‘관문의 핵’을 흡수합니다.] [성력 레벨이 대폭 상승합니다.] [‘메인 퀘스트 – 승급’을 완료했습니다.].
.
.
[시스템이 간섭을 확인합니다.] [‘외신의 별’ 권역 내에서는 플래티넘 등급으로 승급할 수 없습니다.]쿵.
바닥에 떨어진 나는 메시지창이 뭐라고 지껄이건 추하게 몸을 쭈그린 채, 갑옷에 달린 천 조각을 찢어 바람구멍 나버린 배에 구겨 넣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레드포션을 사려고 서둘러 스페이스 마켓을 열어봤지만.
배에 뚫린 구멍에서 쏟아지는 피 때문인지, 성력이 바닥나 막지 못하게 된 독 때문인지, 정신이 아득해진 탓에 시야가 흐려져 스페이스 마켓을 열었음에도 내가 찾고자 하는 물건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죽기 싫다.
개 같이 변해버린 세상에서라도 악착같이 살고 싶었다.
“X됐네…. 앞이 안 보이는데.”
이런 상태가 될 줄 알았으면 ‘역발산기개세’라도 사용할 걸 그랬다. 결국, 사도 놈들에게 무기력하게 노출되는 건 똑같은데 말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정신없이 귓가를 울려대는 메시지창의 알림이 기꺼웠다.
아직까지는 내가 살아있는 모양이니까.
[시카리우스를 제거해 ‘아틀낙의 미로원’의 세 번째 관문을 폐쇄했습니다.] [‘서브 퀘스트 – 레이드’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업보 +1.0’, ‘3,000시간’, 스킬 ‘시카리우스의 피’를 획득합니다.] [항독소를 생성합니다. 생성시간 (02:59:59)] [최초로 레이드 솔로 플레이에 성공하셨습니다!] [칭호와 추가 보상을…….]타닥타닥 건물이 불에 타오르는 소리, 도망치는 사람들이 지리는 비명과 거미들의 괴음.
이제는 시끄럽게 울리던 시스템의 알림까지. 정신없이 들려오던 소리가 점차 멀어진다.
메시지창의 알람이 물이라도 먹은 듯 먹먹하게 들려오는 걸 마지막으로.
눈도, 귀도 막힌 세상에서 나는 혼자만의 세계로 조금씩 빠져들었다.
* * *
착각했다.
1년짜리 시한부 인생에서, 괴물을 죽이며 승승장구하다 구세주도 만나봤으니.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도 된 줄 알았다.
아니,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인공의 친한 친구 정도까지는 된 줄 알았다. 여태껏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으니까.
하고 자 마음먹은 것은 이뤄냈고, 마음먹지 않은 것조차 손에 쥐게 됐다. 물론 단순한 행운이 아닌, 나의 노력과 소망, 그리고 상황이 절묘하게 맞물려 이뤄낸 하나의 기적이겠지만.
그러나 그 기적이 반복되자, 나는 이를 당연시 여기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나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법을 잊고 안일한 태도로 세상을 대했으며, 괴물들을 은연중에 무시했다.
과거에 그랬기에 현재에도 같을 거라 섣불리 판단했다. 상황은 언제도 바뀔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시스템의 권고를 무시하고 나 혼자 놈에게 덤볐다가 이 꼴이 났지.’
시스템은 괜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몇 번이고 시스템 메시지 통해 도움을 받았음에도 이를 등한시 한 것이다.
‘그 퀘스트 창이 떴을 때, 곧바로 튀었어야 했는데…….’
뒤늦게 울린 퀘스트에서 골드 등급 생존자 여섯 명을 모아서 ‘레이드’를 하라고 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딱딱딱딱.
자의에서 벗어난 턱 근육이 쉴새 없이 움직이며 이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체온이 내려가는 중인가?
사실 아까부터 손과 발끝에서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나… 진짜 죽는 건가? 시한부에서 벗어났다고 좋아했던 게 얼마 전이었는데…….
후회해봤자 이미 늦은 일이었으나, 이제 죽음을 앞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밖에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성력 레벨 올리는 방법을 알았으면, 퀘스트의 안내에 따라 순순히 10레벨까지는 올릴….
그랬다면 놈의 독으…… 터 자유로울 수도 있었….
그랬… 면 놈의 다리를 다 부러뜨…….
다 벌어… 고 후회…… 뭐해. 후회? 내가 왜 후회를 했… 어? 여긴…….
흐리던 시야의 주변시(周邊視)로 어둠이 침범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점점 몽롱해졌다.
‘이렇게 죽는 건가? 죽는 것도 뭐 별거-’
“아저□, 정신 □려!”
누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명확히 들리지 않았다. 다 귀찮다.
잠이 쏟아졌다.
한숨 푹 자고 싶었다.
찰싹. 찰싹.
“야! □ □끼야! 눈 감□ 말라□까!!”
누가 자꾸 단잠을 깨웠다.
깨우지 마. 나….
잘 거…….
….
..
.
그렇게 눈앞이 암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