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2
052화. 최선의 선택 (1)
이로써 모든 사람이 모였다.
단우와 그의 여동생 서우. 소희와 그의 아버지 정진호. 그리고 정진호 팀장의 막내 건호까지.
처음으로 모두 모여 인사를 하게 된 우리는,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다 구했으니 이제 돌아가는 건가? 그렇다면, 가락시장역으로 탈출하면 된다. 나 거기로 이곳에서 도망쳤다.”
“아…. 그게 형이었구나?”
“…?”
“형이 그곳으로 도망치고 나서, 거미들이 근처 역을 죄다 부숴놨어. 이제 거기로 못 가.”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저 자식 말 믿을 게 못 된다고 제가 말씀드렸죠?”
하나 남은 탈출로가 막혔다는 소식에 김건우는 절망했고, 소희는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이 옆에서 그를 비웃었다.
정진호가 있어서 그런지 소희의 모습이 평소보다 활기차 보인다. 민준은 그녀의 긍정적인 변화에 속으로 웃으면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입에 올렸다.
“단우 말이 맞아. 이제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미로원을 붕괴시키는 방법, 그것뿐이야.”
“대장, 제가 반대하려는 건 아니지만, 관문을 폐쇄하려면 그 주인을 죽여야 할 텐데요.”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존대뿐만이 아니라 자꾸 대장이라고 부르자 골이 아파오는 민준이었으나, 이미 ‘조장’으로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상태였기에 꾹 참으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시카리우스를 상대해본 결과, 저희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시카리우스를 상대했다는 건, 설마….”
“아, 소방관 아저씨는 모르시죠? 저 아저씨가 시카리우스를 죽여서 다들 멀쩡하게 깨어날 수 있던 거예요. 모두 재생지은(再生之恩)을 입은 거죠.”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말을 내뱉지만, 자신의 은인이었던 정진호에게만은 존댓말을 쓰는 송단우였다.
“대장이 그 지독한 독거미를 혼자? 소희가 한 말이 그럼… 다 사실이었군요.”
“대장, 강하다.”
“…하하, 아닙니다. 어떻게 살려고 하다 보니 운이 따랐네요. 여하튼 하나는 닫았으니, 앞으로 두 개만 닫으면 여기서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다음 관문은 어디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정진호의 물음에 민준은 곧장 답을 했다.
“시스템이 말하길 시카리우스가 셋째 딸이라고 하더군요. 그럼, 다음은 둘째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레기나는 잡혀있는 사람들의 소재와 구출방법을 특정하기 전까지는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것 같아서.”
“아저씨, 프라우스를 잡으려고? 걔는 어떤 놈인지 아예 정보가 없는데…. 이 미로원의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환술을 쓴다는 것밖에 몰라. 놈은 관문 밖으로 나온 적이 없거든.”
“맞습니다, 대장. 제가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가락시장을 이 잡듯이 돌아다녔었는데, 레기나랑 시카리우스는 봤어도 프라우스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번에야말로 호랑이를 잡으러 굴에 들어가면 되겠네요.”
짝!
여럿의 걱정에도 민준은 손뼉을 치고는 후련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선, 굴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분들 훈련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 * *
훈련을 위한 사냥이 몇 주간 지속되자, 일행은 주먹구구식의 우당탕탕 사냥방식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는 체계적인 무리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석(魔石)’이 있었다.
‘캠프 상황실에서 말한 생산력이라는 게 마석을 생산한다는 것일 줄이야.’
‘틈’이 오래되어 ‘관문’이 되면 그 주위의 환경이 변하게 된다.
우리는 그걸 ‘외계화(外界化)’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부분적으로 외계화가 진행되어 사람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는 있지만, 주변에 외계의 요소가 군데군데 눈에 보이는 곳은 반계(半界)라고 불렀다.
즉, ‘틈’ 단계에서 바로 거점 캠프가 된 송파 거점 캠프와는 다르게.
관문이 공략되어 거점 캠프가 된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정화는 되었지만.
여전히 외계의 요소가 일부 살아있는 반계의 환경이었으므로, 마석을 생산하는 나무 따위가 함께 캠프의 소유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그간 우리가 ‘가락 거점 캠프’인 가락성당에서 생활하며 알게 되었던 사항이고.
동시에, 어느 순간부터는 미로원을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알게 된 정보다.
‘마석의 독점.’
이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가.
이곳에 성력을 각성한 생존자가 달리 더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마석이란 건 애초에 괴물과의 전투를 꺼리는 생존자들에게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를 구하기 위해 다른 생존자들은 거미들을 피해 가락시장을 피해 골목골목을 헤매야만 했고. 서로 칼부림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비교적 안전한 보금자리로서의 역할만 생각해봐도 상당한 가치가 있는 거점 캠프에서, 마석까지 리스폰되고 있으니.
다른 생존자들이 얼마나 우리를 부러워했을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우리를 동경했고, 시샘했으며, 감시했다.
물론, 그렇다고 프라우스, 레기나 그리고…. 아틀낙과의 전투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우리 역시. 생존시간과 성력 경험치를 주는 마석을 양보할 수는 없는 노릇.
호시탐탐 캠프를 노리는 생존자들의 염탐과 구걸을 위해 캠프 바깥을 기웃대는 생존자들은 현재 최고의 골칫거리였다.
‘처음부터 생존시간은 아예 나눠주지 말 걸 그랬네.’
몇 번은 마석을 적선해줬었고, 몇 번은 생존시간을 나눠줬었다.
하지만. 한번 누군가 구걸을 통해 마석을 얻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캠프 앞은 사도와 맞서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을 구걸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해졌고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 벌어졌었다.
참다 참다 나선 민준이 몇 번이고 힘으로 윽박지르고 난 뒤에야 일행은 성장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 와서는 나와 일행의 무력 수준을 수차례 확인한 생존자들이 이곳 가락 거점 캠프를 포기한 듯 보이긴 했지만.
‘저번에 했던 무력시위의 효과가 이번엔 얼마나 이어질지….’
다음에는 정말 사도라도 한 마리 구해서 입구에 놔둬야겠다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여느 날처럼 ‘외출’에 대비하고자 각자 장비를 점검하는 와중에,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내게 쪼르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저씨, 곰 아저씨가 그러던데 우리 오늘 마트가?”
서우는 나와 김건호, 정진호 아저씨 셋 전부를 ‘아저씨’라고 부르다가 헷갈렸던지, 김건호는 곰 아저씨, 정진호는 소방관 아저씨, 나는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왜 나만 그냥 아저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연스레 지어지는 미소와 함께 서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쓰다듬는 손길을 따라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 마치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보는 듯헀다.
“응, 오늘은 식량을 찾으러 가야 하거든. 서우도 오늘 잘할 수 있지?”
“응! 맨날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
“다행이네. 그 대신 밖에 나가면 곰 아저씨랑 딱 붙어 다녀야 해, 알았지?”
“당연하지!”
서우는 그렇게 삐악대더니 종종걸음으로 김건호에게 달려가 큼직한 다리에 확-하고 매달렸고.
나는 손뼉을 쳐 분주하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 아시다시피 오늘은 마트로 갑니다. 가는 길에 놈들을 만난다면 사냥은 하되, 오늘의 목적이 식량 보급이니만큼 사냥은 조금 쉬엄쉬엄하려고 합니다. 그럼… 슬슬 출발해볼까요?”
내가 말을 마치자 일행은 정리를 마치고 각자의 장비와 식량을 챙길 가방을 들쳐멨다.
* * *
콰드드득!
대검이 허공을 가르자, 파란색 체액이 사방으로 튀면서 거미의 다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자,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이상한데….’
평소에도 전투가 수월하진 않았다. 하루하루가 삶을 이어가기 위한 투쟁이었고, 처절한 싸움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오늘 겪고 있는 놈들은 확실히 뭔가가 좀 달랐다.
미세하지만 더 빠르고 단단했으며 훨씬 공격적이었다.
물론, 녀석들은 게임에 나오는 몬스터 따위가 아니고. 우리가 점점 강해지는 것처럼 놈들 또한 지구에 적응하며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놈들보다 한 발짝 계속 앞서기 위해서 지금처럼 발버둥 치고 있는 거고.’
그런데 이놈들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강해진 것이 아니라, 싸우는 방법을 자체가 달라졌다.
‘마치 이놈들을 조종하는 머리가 있는 것 같은…….’
그렇게, 한층 강해진 거미 무리에게 민준이 온 신경을 쏟던 중이었다.
“어?! 어어!!”
“서우야!”
순간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거대한 거미가 후위에 있던 서우와 건호의 머리 위로 달려들어 긴 다리를 펼치며 거미줄로 된 그물을 던졌다. 한치도 빠져나갈 틈이 없는 촘촘한 그물.
이에, 당황한 건호가 허둥지둥하다 반사적으로 도끼를 휘둘러보긴 했지만.
넓게 퍼져 날아오는 거미줄은 생각 이상으로 질기고 끈적였다.
지금껏 거미들이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던 형태의 공격에 당황한 서우가 능력을 꺼내 들려 했고, 소희가 황급히 이를 말렸다.
“불-”
“서우야, 안 돼!”
거미줄에 붙들린 상황에서, 거미줄을 태우려 했다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에.
결국, 함정에 붙들리더라도 어린 서우보다는 탱커 역할을 맡고 있는 자신이 붙들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소희가, 본인의 반경 20m 이내에 있는 아군과 제 위치를 바꾸는 스킬. [긴급 구조]를 사용했다.
이는 민준과 그간 성장한 일행이 자신을 구해주리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
“제가 가볼 테니, 두 사람은 여기서 조금만 버텨주세요.”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민준은 곧장 공중으로 뛰어올라 그물을 던진 거미를 향해 돌진했다.
일격에 거대 거미의 긴 다리가 수수깡이 부러지듯 부러졌고, 이격에 소희와 건호를 묶은 거미줄이 잘려나갔다.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긴 했으나, 이 정도면 무사히 해결된 거라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흰색 구체가 민준을 강타해, 그대로 건물의 잔해 속으로 처박아 버렸다.
“아저씨!”
“대장!”
당황한 동료들은 당장이라도 민준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돌연 민준을 날려버리고서 나타난 거미.
거미줄로 겹겹이 둘러 만들어진 막대한 질량의 철퇴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거대 거미가 그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민준 씨는 걱정하지 말고 다들 집중해요!”
민준이 사라지자 지휘권을 넘겨받은 소희가 흔들리지 않고 일행을 다독였다. 그리고는 힘겹지만 [수호 방패] 스킬을 사용해 철퇴로부터 팀원들 지켜냈다.
소희는 민준을 믿었다.
그는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끝내 돌아와 괴물들을 잡아냈던 남자였으니까.
자신이 할 일은 민준이 돌아올 때까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