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7
057화. 전초전 (2)
남자 마인의 머리통 반이 날아가자, 여자 마인의 몸에서 불길이 일 듯 마기가 타올랐다.
“이, X발 X끼가아!!”
“….”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고….
처음엔 세뇌라도 당한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으나.
마인이 되어 프라우스를 공격하려는 우리를 거미들과 막아선 건, 분명 녀석들이 제 의지로 프라우스의 명령을 따랐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그냥, 녀석들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것. 내가 알아야 하는 건 오직 그것뿐이었다.
우드득-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등에서 뼈처럼 생긴 거미 다리 네 개가 불쑥 솟아났다.
두 팔은 멀쩡했지만…. 이미 칼날처럼 변해버린 다리에 그것들까지 더해지자, 이제 여자는 진짜 거미들과 다름없어 보였다.
“이제 마인이 아니라, 마수라고 불러도 되겠군.”
“이익! 넌, 너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여버릴 거야!!”
서로 간합을 재던 그녀와 내가 동시에 바닥을 박찼다.
그녀의 긴 다리가 허공에서 완벽한 반달을 그리듯 내리그어졌고, 나 또한 성력을 머금은 단검을 역수로 휘둘렀다.
콰앙-
두 날붙이가 부딪히자 둔중한 소리와 함께 공기가 진동했다.
그녀는 그 반탄력을 이용해 몸을 튕기며, 다시 한번 시퍼렇게 날 선 칼날 다리를 휘둘렀고.
이번에는 등에서 뻗어 나온 거미 다리도 같이 쇄도해 왔다.
“흐읍!”
쏟아지는 공격이 주는 압박감이 더 거세졌다.
인간의 모습을 버리면 버릴수록 더 강해지는 건지 정확히 파악하기란 어려웠지만.
덕분에 나도 생존시간을 아끼느라 여태 사용하지 않던 스킬을 꺼내 들어야만 했다.
바닥에서 원 모양의 흐릿한 빛이 새어 나왔고, 곧장 빛이 그녀를 옭아매듯 온몸을 휘감았다.
‘이제 조금 할만하네.’
내 날붙이는 단검 하난데, 사방에서 다리를 휘둘러대니 여간 까다로웠던 게 아니었다.
저 여자는 느려졌고, 자신은 빨라져 그걸 커버할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녀석과 맞붙었다면, 아마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하다가 패배했을 거다.
‘이럴 거면, 진작 스킬을 쓸 걸 그랬나 싶긴 한데….’
다시 생각해보니, 남자 마인이 있는 상황에서는 이렇게 극적인 효과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나는 쏟아지는 그녀의 공격을 견갑으로 빗겨내면서 주먹을 내질렀다.
쿵-
성력을 머금은 주먹은 유성이 떨어지듯 꼬리를 달고 그녀의 어깨에 꽂히자.
포탄이 터지는 굉음과 함께 그녀의 팔이 허공으로 나뒹굴었고, 나는 곧장 주먹을 펼쳐 등에서 뻗어 나온 거미 다리를 말아 쥐었다.
“으아악!”
그녀의 비명과 함께 거미 다리 하나가 뽑혀 나왔다.
“X발! 더는 변하기 싫다고!”
여자 마인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손목에서 거미줄을 쏘아내 내 움직임을 묶고 뒤로 물러났다.
“우리가 프라우스를 잡는 동안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우린 여기서 네가 도망친다고 해도 더는 너를 쫓지 않을 거다.”
최대한 빠르게 프라우스에게 당도해야 하는 상황에, 여기서 마인들과 싸우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손해였다.
나중에 다시 싸우는 일이 있더라도 당장 전투를 끝내고 프라우스에게 갈 수 있다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건넨 제안이었다.
“X발, 그냥 가면 우린 뒈져.”
“그럼 어쩔 수 없지.”
“개X끼. 너는 우리보다 더한 개X끼야.”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으면 어쩌라는 건지.
‘그럴 거면 마인이 되지나 말던가.’
인간의 반대편에 선 주제에 억울하다는 양 입을 놀리는 여자를 향해 짜증이 치솟았다.
‘뭐가 됐든, 이젠 더 놀아줄 시간이 없어.’
그녀가 뭐라 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다시금 공격을 이어가려는 찰나.
우드득- 우드드득-
그녀의 뒤에서 누워있던 남자 마인의 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
아니 뼈가 재구축 되는 소리?
뭐가 됐든 저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건 확실했다.
곧장 나는 남자를 향해 돌진했고.
푸욱-
“으으으, 안돼 기남아… 더는….”
내 공격을 남자 대신 몸으로 막아낸 여자가,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기남이라고 부른 남자 마인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뭐지?’
남자의 가슴에서 사그라져가던 검은빛이 심장 박동하듯 요동치더니 크기를 불려갔다.
‘단검으로는 부족하다.’
피해를 감수하고 몸으로 남자 마인을 지키기 시작한 여자를 뚫기 위해서는 좀 더 커다란, 단검보다 더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가 필요했다.
쎄한 낌새를 느낀 나는 서둘러 나의 대검을 찾았고, 저 멀리 바닥에 나뒹구는 검을 발견하곤 곧장 뛰어갔다.
그드득- 까드득-
그 사이에도 소리는 계속됐고.
남자 마인의 등이 척추를 따라 세로로 갈라지며, 그 틈에서 거대한 다리가 하나둘씩 좁은 몸을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대검을 찾은 내가 다시 그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여덟 개의 다리가 모두 빠져나와 바닥을 지탱하고는 그 몸을 허공으로 들어 올린 뒤였다.
“…젠장.”
우득- 우드득-
그렇게 남자 마인의 변태는 순식간에 진행됐고, 그의 몸을 뒤집어 까고 나온 육중한 몸통은 이내 거대한 거미와 같이 변모했다.
크기만으로는 시카리우스를 훨씬 상회했다. 체고만 해도 약 6m 정도는 되어 보였으니까….
저 정도면 몸뚱이 자체가 이능에 가까웠다.
저 작은 몸에서 저런 큰 몸체가 튀어나온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런 물리법칙 따위를 재고 있을 사람은 없다.
사실 나부터가 일반적인 상신 선에선 이해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하고 있는 판에, 인간을 버리고 괴물로부터 힘을 내려받은 저들이 특별한 힘을 지니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죽은 줄 알았던 남자로부터 삐져나온 저게 얼마나 강하냐는 건데.’
한눈에 봐도 단단해 보이는 보랏빛 외골격과 이곳저곳에 듬성듬성 나 있는 날카로운 돌기들.
사람 크기만 한 엄니에서 흘러내리는 침인지 독인지 모를 검은색 액체.
어느새 여자 마인의 배를 관통한 놈의 더듬이 다리.
역시 근원을 알 수 없는 괴물답게 생김새 또한 괴랄하기 그지없었다.
‘….’
거미 괴수가 더듬이 다리를 들어 올려, 검붉은 빛깔을 지닌 여덟 개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여자는 지독히도 매서운 공격을 이어갔던 아까와는 완전 다른 사람인 것 마냥, 배를 뚫리고도 서럽게 울기만 했다.
“흑흑… 기남아, 결국-”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와그작- 우드득-
그녀는 말도 다 마치지 못한 채, 놈의 먹이가 되어버렸고, 그녀의 검은빛 또한 놈의 커다란 검은빛에 먹혀버렸다.
“이런 젠장….”
나는 죽어버린 그녀를 대신해서 욕을 내뱉으며 대검을 말아쥐었다.
소중한 사람이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되어버렸으며, 그 사람에게 먹혀버린 여자도 참 기구한 인생이라 볼 수 있겠으나.
거의 다 죽여놨더니, 갑자기 더 강한 놈이 튀어나온… 내 상황도 안쓰럽긴 매한가지였다.
순간 놈의 다리 하나가 흐릿해지면서 주변으로 보이는 파동의 진폭이 커졌다.
쩌어엉-!
번개처럼 쏘아진 놈의 다리와 내 대검이 부딪힘으로써 일어난 경파가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 눈앞에 어떤 장면이 번쩍하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시작은 어떤 여성과 남성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검을 부딪치자, 이번에는 두 사람이 어딘가 갇혀있는 모습이 보였다.
“…네 사연 따위 알고 싶지 않다고!”
[무구의 주인이었던 자의 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빌려옵니다.] [제한시간 00:00:05]성력을 그러모은 대검이 흐릿해지자.
콰아아아앙-!!
포장된 도로가 반원 모양으로 움푹 파이며 놈이 그 속에 처박혔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남녀가 겪어왔던 일은 계속 나타났다.
시체 더미 한가운데 서 있는 남녀의 모습이다.
“젠장, ‘너희가 불쌍하니까 내가 죽어줘야 한다.’ 그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씹어먹듯 말을 내뱉으며 허공에 있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놈의 반격을 응시했다.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온전히 지금, 이 전투에 집중해야 했다.
사각에서 쇄도해 오는 네 개의 다리에는 음울해 보이는 어두운색의 마력이 가득 실려있었다.
‘저건 못 막는다.’
나는 놈의 공격을 쳐낼 생각은 집어넣고, 대검의 손잡이 끝을 발등으로 걷어차면서 그 반동으로 뒤로 물러났다.
거대한 체구를 가졌으면서도 상당히 민첩한 놈은, 내가 멀어져 감에도 마인일 때와 동일하게 칼날같이 날카로운 다리를 사용해 공격해왔다.
쾅! 쾅! 쾅!
‘놈의 숨통을 끊어버릴 큰 한방이 필요해.’
기본적인 체급에서 차이가 난다.
저 덩치, 저 힘이면 정타가 아니어도 위험할 테니.
싸움이 오래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불리한 건 나였다.
단번에, 놈을 무력화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스프링처럼 쏘아지는 놈의 칼날 다리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놈의 몸통 밑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어느새 내 손에는 샷건이 들려있었고, 이어지는 ‘사격과 장전’의 연속 동작은 야들야들한 놈의 아랫배에 따끔한 쇠 구슬을 연달아 박아주었다.
‘끄읍!!!’
놈의 배에서 폭포처럼 파란 진액이 흘러내려 내 몸을 적시자, 부시식-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와 탄내가 났다.
피부가 녹아, 타들어 가는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이 독이 시카리우스의 독보다는 약할 거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은 허상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은 허상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은 허상이다.’
결국, 내가 몸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미끄러지듯 놈의 뒤로 빠져나온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은 채 아랫배가 만신창이가 된 놈을 바라보았다.
몸뚱이는 더 강력해졌다지만, 이성을 잃어버린 탓일까.
녀석은 제 몸을 돌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향해 뻔히 보이는 공격만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아까보다 느려진 칼날 다리의 옆면을 주먹으로 쳐내자, 또 한번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 번쩍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두 남녀를 포함한 십여 명의 사람들이 손목을 거미줄로 묶인 채 가락시장으로 끌려가는 장면.
이 세계가 지금 어떤 상황을 맞이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슬퍼?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짙은 슬픔이 순간 내 눈가를 움찔거리게 만들었으나.
이건 내 감정의 아니다.
시간의 파동을 통해 느끼는 내 감각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현재의 내 것이 아님을 곧바로 일깨워주었다.
아마 교묘하게 전이된 놈의 감정이겠지.
“…젠장, 연민을 호소할 거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했어야지.”
계속 그 장면들은 나한테 보여줘서 어쩌라는 건지 짜증이 났다.
누구에게 짜증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세상이, 괴물이. 그리고 내가 싫어 짜증이 치밀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들을 구원할 수 있는 [정화] 스킬을 지닌 장본인이니까.
‘제기랄….’
내가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놈이 아니기도 했고, 정화 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소모 값이 다시 모이지도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양심이란 놈은 그렇게 이성처럼 딱딱 떨어지는 녀석이 아닌가 보다.
이리도 아픈 걸 보니.
쿵… 쿵… 쿵.
녀석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는 게 보였다.
애초에 죽었다고 생각한 몸에서 삐져나온 녀석.
여자를 먹으며 힘은 더 강해졌다지만, 제 배에 구멍이 난 상태에서도 방어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공격만 이어가고 있으니 죽어가는 것일 테지.
내가 놈에게 줄 수 있는 건, 그저 안식밖에 없었다.
“….”
짓쳐 드는 놈의 다리를 피한 다음에 그걸 받침대 삼아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놈의 머리에 박혀있는 검 손잡이를 잡은 후 중력과 함께 강하게 내려긋자, 대검은 놈의 외골격이 부수면서 여덟 개의 눈을 반으로 갈랐고.
후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반으로 갈라진 놈의 머리에서 내장이 쏟아져 내렸다.
“후우….”
나는 대검에 묻은 파란 진액을 털어내고 슬링에 매달았다.
전투 종료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마인(魔人) 최기남을 죽이고 14,971시간을 흡수합니다.] [아틀낙이 자신의 마인이 사망했음을 인지합니다. 그녀가 감탄합니다.]‘아틀낙? 프라우스 쪽 애들이 아니었다는 건가?’
프라우스의 관문으로 가는 길에 만났기에 당연히 그녀의 수하인 줄로만 알았는데, 무려 이곳 성주(星主)가 직접 선별한 마인이었다.
‘왜 이놈들이 여기에 있는 거지?’
추측 가는 점이야 많았지만, 나는 이어지는 생각의 끈을 끊어버렸다.
‘어차피 다 죽여야 할 놈들이다.’
방금 그렇게 정했다.
처음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꼭 녀석들을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번 전투로 확실히 정했다.
아틀낙을 죽인다.
괴물들과 우리는 절대 공존할 수 없다.
– 콰강! 콰앙!
저 멀리 폭발음이 들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