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61
061화. 틈 안의 궁전 (1)
작열하는 태양이 떠 있는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관문에서 무언가 콱! 하고 뱉어지듯 튀어나왔다.
“픗…. 퉤! 퉤!”
모래 언덕에 내동댕이쳐진 무언가.
민준이 입안 가득 들어온 모래를 뱉어냈다.
울렁이듯 변하는 시계(視界) 끝이 보이지 않는 황금빛 물결.
무사히 관문 안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민준이 곧장 [키클롭스의 눈]을 착용했다.
“여긴?”
아이템을 착용하고 나니, 조금 더 주변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온통 모래뿐인 황금빛 사막.
어딜 봐도 거미나 사도들의 흔적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전에 들어갔던 틈과는 너무 느낌이 다른데….”
송파경찰서에 있던 틈은 거대한 협곡으로 되어있어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여긴 망망대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
민준은 막막한 기분이 들었으나, 아는 게 없으니 우선 무작정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발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고 있긴 했지만,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일단은 몸으로 때워볼 생각이었다.
* * *
‘뭔가 이상하다.’
처음 관문에 진입하고 걸었던 것만 벌써 몇 시간은 걸은 것 같은데, 타는듯한 갈증과 땀만 비 오듯 쏟아질 뿐.
하늘을 보니 태양의 위치가 그대로였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표류하게 된 민준이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놈의 환술에 빠진 건가? 아닌데…. 아이템을 착용해서 괜찮을 텐데…?!’
아니다.
근처가 죄다 황금빛 모래에, 내리쬐는 햇살에서 오는 아지랑이로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아주 약간, 묘하게 눈앞이 일렁이는 듯한 느낌이 들긴 했다.
한번 그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니, 감각은 점점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이내,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 거미들과의 전투 때부터 계속 느껴졌던, 간질거리는 무언가가 감각에 걸려들었다.
‘시간의 흐름’이라고 불리는 걸 인지하게 되는 감각.
광활한 사막에 물결에서 물결무늬의 무언가가 보였다.
[사용자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인지합니다.] [‘시간인지’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95/100)]지금까지 ‘시간인지’로 이상함을 느낀 순간에는 항상 그 흐름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더욱이, 지금은 명백히 내가 어떤 함정에 빠졌으리라 예상되는 상황.
한 방향으로 흐르는 거대한 물결 한가운데 암초가 솟아있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무언갈 찾아내야만 했다.
민준은 두 눈을 감고 정신을 곤두세웠다.
자신이 이걸 왜 하고 있는 건지, 하면 어떤 효과는 있는 건지 잘 알지 못했지만, 그저 눈을 감고 이렇게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는 강력한 기시감을 따랐다.
사실 민준은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민준은 당면한 문제를 온전히 개인의 힘으로 맞서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었다.
혼자 문제를 해결할 때, 감정적인 모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냉정히 현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배제한 채 제 이성만을 믿어야 한다.
덕분에 민준은 명상으로 억울한 마음, 서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익숙했고.
지금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해야 한다고 느꼈고, 해낼 수 있는 일을 마주한 것일 뿐이다.
‘….’
시각을 제외함으로써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촉각, 후각, 청각을 의도적으로 하나씩 지워내기 시작했다.
내리쬐는 태양으로 인해 따끔거리는 피부도, 후끈거리는 건조한 공기의 냄새도, 몰아치는 모래바람에서 들리는 소리도 모두 잊고 천천히 심상 속으로 침잠했다.
심상 속에는 푸른 하늘을 거울처럼 비추는 커다란 호수가 놓여있었다.
‘….’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그 맑은 호수를 한참 동안, 민준은 바라보았다.
‘…?!’
다만 문득.
눈을 비비고, 다시금 호수를 바라봤을 때.
고요한 그곳에는, 빛을 뿜어내는 요정 같은 무언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호수 한가운데로 날아가 검지로 수면을 톡 하고 건드렸고.
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동심원 모양의 물결은 조금씩 그 원의 경계를 호수 외곽으로 넓혀갔다.
* * *
“찾았다.”
호수의 한쪽.
깔끔한 원형의 파문을 일그러뜨리던 무언가.
민준은 그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심상에서 보이는 이것이, 눈을 떴을 때도 제 앞에 있으리란 걸.
민준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민준의 앞에는, 사진으로만 보던 타지마할과 비슷하게 생긴 하얀색 궁전이 놓여있었다.
띠링!
[인스턴스 던전: 프라우스의 궁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외계(外界)의 시간은 현계(顯界)보다 3배 빠르게 흐릅니다.] [‘시간 수호’ 아이템을 구매하는 걸 권장합니다.]민준은 시스템 알림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프라우스의 환술을 파훼하고 진짜 놈의 구역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럼 이 안경은 효과가 없는 거 아닌가?’
이 안경은 궁전을 찾아내지 못했고, 놈의 환술을 파훼한 건 순전히 제 능력이었다.
그는 그런 생각으로 [키클롭스의 눈]을 벗었고.
그 즉시, 온 세상이 고장 난 모니터 화면처럼 일렁이는 걸 보고는 이를 황급히 안경을 다시 썼다.
그로서 깨달았다.
‘나도 안경도 완전하진 않구나.’
정확히 말하면 이 안경은 프라우스의 환술을 일부 막아주는 정도에서 한계를 맞이한 것이고.
이 안경에 영향을 받아, 민준은 새로운 능력을 개화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민준은 과거 시스템의 권유에 사두었던 [흰 토끼의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송파서의 틈에 들어갈 때 사용했던 것으로 아직 사용 가능 기간이 제법 남은 아이템이었다.
째각. 째각.
역시 이계에 들어오자, 현세에서는 움직이지 않던 초침이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했다.
민준은 이를 품 안에 넣고는 궁전의 거대한 대문으로 걸어가 마주 섰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시카리우스 때와 같은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서브 퀘스트 – 레이드]
난이도: C- (B-)
클리어 조건: 아틀낙의 둘째 딸이자, 어미에게 일루전(illusion) 능력을 물려받은 ‘프라우스’와 마주했습니다.
여러 사람과 힘을 모아 그녀를 레이드 하세요.
(권장 사항) 골드등급 1/6명
보상: 업보+1.0, 3,000시간, ‘프라우스의 보석’,
거절 혹은 실패 시: 없음」
“이놈의 X같은 레이드 퀘스트.”
애초에 같이 올 수 있는 조건이라도 알려는 주고, 퀘스트를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안경이 없으면 몸도 가누기 힘든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싸우라고….’
민준은 그렇게 툴툴거리며 흰색 대리석으로 지어진 거대한 대문을 있는 힘껏 열었다.
이미 저러리란 걸 알고, 각오한 채로 온 것이었으니.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레이드는 속행해야 했다.
끼이이익-
대문을 열고 들어온 궁전에는 천장이 꽤나 높은 공동(空同)이 한가운데 있었고. 그 아래 길게 깔려있는 붉은 융단 좌우로 눈이 풀린 마인들이 시종처럼 도열 해 있었다.
바로 그 붉은 융단의 끝자락, 소실점(消失點) 한가운데에 총천연색의 보석으로 치장이 되어있는 왕좌에.
[아틀낙의 둘째 딸 ‘프라우스’와 조우했습니다.]반인반수(半人半獸)의 흰색 거미가 늘어지듯 앉아있었다.
* * *
민준은 마인을 만나면 진동하는 샷건을 내리누른 채로 폭신한 느낌을 내는 융단을 즈려 밟으며 왕좌를 향해 걸어갔다.
프라우스는 알비노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온통 새하얬으나, 오로지 눈동자만큼은 붉은 루비처럼 빛을 내뿜고 있었고.
체격은 대형 트럭만 한 첫째, 셋째와 다르게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깡마른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일반 거미처럼 작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관문의 주인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모자람이 있어 보이는 외형이었다.
‘저놈이 프라우스……. 딱 봐도 육체파는 아니네.’
프라우스와의 거리가 약 10m 정도로 가까워질 때까지 걸어온 민준이었다.
““….””
왜인지 모르게, 침묵을 고수하는 프라우스와.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전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 민준의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너…. 환술에 안 걸리는구나? 귀찮게.”
그러다, 프라우스가 느릿한 읊조림으로 침묵을 깨고 나섰다.
“다시 내보내 줄 테니까, 그냥 되돌아가지 않겠니?”
“아무런 대가 없이, 인간 모두를 가락시장 밖으로 보내줄 수 있나?”
“…아니, 너만.”
그러면 그렇지.
고민할 가치도 없는 흔들기다.
나는 대답 대신 대검을 꺼내들었고.
“….”
“…쯧. 그럴 줄 알았다.”
프라우스의 손짓에 도열 해 있던 마인들이 붉게 물든 눈으로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스무 명은 족히 돼 보이는 놈들은 아틀낙의 마인처럼 칼날 다리 같은 걸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탄탄한 근육질에 날카로운 손톱을 지니고 있었다.
창작물 속 구울을 닮았달까?
주인을 닮아서인지 하얀 피부에 붉게 물든 눈까지 완전 판박이였다.
‘좀 많은데?’
예상보다 대기하고 있는 마인의 수가 많아서 솔직히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시카리우스 때와 다르게 나도 이번엔 그냥 온 건 아니라서.’
나는 손목에 있는 여분의 생존시간을 봤다.
3162.
스킬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었다.
[정화] 스킬로 13,000시간을 소모했다고 해도, 아틀낙의 마인 둘을 죽이고 얻은 게 14,971시간이었고, 프라우스의 마인 하나를 죽이고 6,118시간을 얻었으니.‘계약서’ 스킬과 이런저런 포션 종류의 소비 아이템을 산 것까지 감안하더라도.
지금, 나는 관문을 돌파하면서 성지효과로 얻은 시간을 더해 약 27,000시간 정도는 들고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남은 시간이 3162시간 정도밖에 없다는 말은…. 곧, 내가 그 많은 시간을 모두 능력치에 때려 박았다는 말이었다.
‘성력 빼고는, 이제 다 35레벨이다.’
힘도, 체력도, 속도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단순히 발을 구른 것만으로 대리석 바닥에 균열이 갔다.
그렇게 제자리에서 몇 번인가 통통 튀어 오르던 민준은, 어느샌가 마인 놈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프라우스가 앉아있는 왕좌 앞에서 나타났고.
콰아앙!
무식한 대검이 여러 보석으로 치장된 빈 왕좌를 박살 내버렸다.
‘제법 빠른데?’
민준의 앞에 부서진 것은 왕좌 하나뿐, 프라우스는 진작에 내빼고 자리에 없었다.
근육 하나 없이 삐쩍 말랐길래, 몸은 못 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민첩했다.
‘아니, 오히려 왜소한 몸이라 민첩한 건가…? 아니면, 환술?’
뭐, 무슨 수를 쓴 건지. 지금으로선 명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지만…. 그게 뭐가 됐든,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당백(一當百) 칭호의 효과로 홀로 레이드를 시작한 내 능력치는 50대 초반.
얼마 전 시카리우스와 싸웠던 당시와 비교하면 기본 능력치의 레벨 자체가 2배 이상 증가한 상황이었다.
‘모든 조건은 완벽해. 내가 방심하지만 않으면 된다.’
““죽어라!!””
지척까지 다가온 마인 넷이 달려들고 있었지만, 별다른 긴장감은 없었다.
주의해야 할 것은 프라우스 본체뿐.
눈으로 보았을 때는 좌우에서 짓쳐 들고 있는 놈들의 흐름이 내 상단과 하단에서 느껴지자, 대검을 든 손은 곧장 세로로 붉은 선을 만들어냈다.
마인들의 몸이 조각난 채로 허공을 비산했다.
민준은, 이제 그런 모습에도 가슴이 쓰라리지 않았다.
후회는, 괴물들을 모두 죽여버린 뒤에나 할 생각이었으니까….
“어, 어떻게. 내 환술을-”
놈의 특기는 막혔고.
기본 체급 차이는 이제 내 쪽이 압도적이다.
프라우스가 당황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너는 몰라도 돼.”
거미들은 교활하다는 걸 민준은 잊지 않았다.
민준은 일당백 칭호 효과를 받기 위해 프라우스만을 남겨놓고, 주변 마인부터 도륙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죽어주기라도 하는 듯 사냥은 순조로웠고, 위기라고 할만한 순간은 없었다.
단지.
마인들은 죽을 때, 쉽게 죽어주지 않았고.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육편과 피가 튀어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정도가 끝이었다.
“잡았다~”
방금 마인이 죽으며, 키클롭스의 눈에 핏물이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