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63
063화. 틈 안의 궁전 (3)
주변 마인들이 거머리처럼 나 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지만, 내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다시 한번 이어지는 스프린트에, 단망경의 배율을 한 번에 높이듯 놈의 모습이 내 눈에 가득 담겼고.
파앙-!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대검이 직선으로 찔러 들어갔다.
동시에 터지는 마인들의 파육음만이 놈의 궁전에 울려 퍼졌다.
아까는 마인들이 내 시야를 가리고, 안경을 빼앗기 위해 몸을 던졌다면, 지금은 조금이라도 프라우스가 도주할 시간을 벌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던져댔다.
‘날파리 같은 놈들.’
그 행동이 완전 무의미하진 않았는지 대검이 쏘아지는 곳에 빽빽이 들어찬 녀석들로 인해 검로가 틀어졌고, 정확히 프라우스의 심장을 겨냥했던 검 끝은 놈의 앞다리 두 개를 자르고 지나갔다.
일당백 칭호의 효과로 인해 내 능력치가 말도 안 되게 높아진 것은 맞지만, 놈들이 써대는 마력이 물리력에 상당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던 탓이다.
‘프라우스, 네가 어떻게 하든, 오늘 너는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
물론, 이제는 마인들도 제법 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마력이든 뭐든 능력치가 이만큼 차이가 나는 이상 놈들을 죽이는 게 어렵지는 않았으나.
어디까지나 내 최우선 목표는 프라우스의 사살. 이 이상 방해를 받을 순 없었다.
여력을 남겨두려는 생각을 지우고.
자꾸만 걸리적거리는 마인들을 떨쳐내기 위해, 관문 진입 시 쓰고 남은 성력 찌그러기를 그러모아 대검이 주입했다.
스으윽-
묵빛 일색인 대검에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열심히 대문을 향해 기어가는 프라우스의 앞까지 길을 막고 있던 마인들의 목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휘리릭- 쾅!
유려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묵색 철괴가 프라우스의 눈앞에 꽂히며 그녀의 걸음을 막아섰다.
프라우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동안에도, 나는 그런 그녀와의 거리를 한 걸음씩 줄여나갔다.
“아까 날 놀리던 그 당당함은 어디 갔지?”
“오…. 오지 마라.”
“환상 속에서는 같이 아틀낙한테 가자면서? 안 그래도 그놈한테 볼일이 있었는데, 잘됐네. 같이 가자고.”
“살려주는 것이냐?”
“아니? 내 몸에 흡수되면 얼마 뒤에 아틀낙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이…. 이놈! 어머니께서 널 가만두지 않으실 거다.”
누가 보면, 마지막 동귀어진의 수라도 준비한 듯한 대사를 뱉는 프라우스였으나.
정작 그녀의 몸은 대검을 지나쳐, 쉼 없이 관문 밖을 향하고 있었다.
다리 두 개가 잘렸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날랜 움직임.
마인들이 계속 나를 방해했다면, 놓칠 수도 있었겠다 싶은 속도였다.
‘우선 한 대.’
놈의 뒤통수를 붙잡은 채 곧장 이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짓뭉개진 놈의 얼굴에서 피가 튀어 올라 내 얼굴을 적셨다.
하지만, 부족하다. 이 정도론 분이 풀리지 않는다.
곧장 놈의 위로 올라간 나는, 마운트 자세로 올라가 기계처럼 주먹을 휘둘렀다.
놓치지 않는다. 살려두지도 않는다. 다만, 곱게 죽이지도 않을 거다.
퍽. 퍽. 퍽. 퍽.
다른 놈들보다 조금 왜소해 보인다고는 하나, 놈의 내구성이 그리 약할 리는 없다.
그저 정신없이 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내 기억, 내 불안 그리고 내 추악함을 엿본 대가는 그리 가볍지 않았다.
“헉…. 헉….”
그렇게 한참을, 숨이 찰 정도로 주먹을 휘두르고 나서야 조금씩 놈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코가 내려앉고 광대가 함몰되었으며 이도 몇 개 빠져있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나는 이만 이 구차한 생명을 마무리하기 위해, 한 손에 놈의 머리카락을 쥐고 대검이 떨어진 곳으로 질질 끌고 갔다.
흰 대리석 바닥 위에 놈의 파란 피가 길게 그어졌다.
이미 겁을 집어먹은 소수의 마인들은 프라우스를 구하는 것을 포기한 채로 주변에 둘러서서 일방적인 구타를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놈을 내동댕이치고 등을 지그시 밟았다.
그새 정신을 차린 프라우스가 벗어나기 위해 바둥거렸지만, 애초에 육체파가 아닌 놈이었고 나와의 능력치 차이가 워낙 큰 탓에 그 발악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나는 대검을 두 손으로 들고 죄인을 처형하듯, 놈의 목을 쳤다.
프스스스슷-
목이 달아난 반인반수의 백색 거미가 파란 피를 분수처럼 뿜어냈다.
그렇게 무기력해진 놈의 가슴에 성력을 실은 주먹을 꽂은 후에 핵을 부숴버렸다.
[‘관문의 핵’을 흡수합니다.] [성력 레벨이 대폭 상승합니다.] [프라우스를 제거해 ‘아틀낙의 미로원’의 두 번째 관문을 폐쇄했습니다.] [‘서브 퀘스트 – 레이드’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업보 +1.0’, ‘3,000시간’, 스킬 ‘프라우스의 눈알’을 획득합니다.]주변을 둘러봤다.
이를 지켜보던 마인들이 뒷걸음질 쳤다.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대검을 돌리며 그들에게 한 발짝 걸어갔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 * *
방검복 안에 입은 티셔츠가 땀과 피에 젖어 온몸에 늘어 붙었다.
명 씨 형제의 첫째, 명 팀장은 씻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아니,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샤워를 통해 보상받고 싶었다.
‘결국, 그 괴물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든 팀원이 살아남았다. 몇 명은 다리와 팔이 없는 불구가 되었지만, 큰 출혈을 감소하고 중급 레드포션만 구매할 수 있다면 다시 솟아날 신체였다.
“퉷-”
명 팀장이 입안에 들어와 혀 위를 굴러다니는 거미의 육편을 뱉어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고사(枯死)할 것 같았기에, 사실 반쯤 도박한다는 심정으로 시도한 일이었다.
그런데, 천운이 따랐는지 결과적으로 일은 잘 해결되었고, 이제 자신들의 명줄이 조금 더 길어질 것 같았다.
‘저 청년은 정말…….’
수백에 달하는 거미 떼에 맞서 선봉에 선 것도 저 청년이었고.
프라우스를 죽이고 관문을 닫은 것도 저 청년이었으며.
그곳에서 무사히 탈출해 가까스로 버티던 팀원들을 구해낸 것도 저 청년이었다.
위험하지 않은 전장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저 사람이 있는 곳은 그야말로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곳이었다.
그는 정말, 옛이야기 속 영웅과 닮아 있었다.
‘언뜻 머리에 후광이 비치는 것 같기도 하고…. 허, 참. 내가 뭐라는 거야.’
명 팀장은 터무니없는 생각을 지워버리며 팀원들을 살피고자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의 살아남은 모든 이가 숫제 첫사랑에라도 빠진 것처럼 그 청년만을 응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정작 본인은 뭐에 미친 듯이 도망치는 거미들을 사냥하며 날뛰는 중이었는데 말이다.
‘그래, 급한 불은 껐으니까. 조금 쉬면서 치료해도 되겠지.’
그렇게 명 팀장 본인도 다시 민준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명 팀장을 중심으로 슬그머니 그의 동생들이 모여들었다.
“형님, 이번에는 진짜 요단강에서 반신욕하고 온 거 같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다. 마지막에 박 씨 아저씨랑 은행원 처자의 팔다리가 날아갔을 때는 진짜로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
“그래, 저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진짜 죽었겠지.”
명 팀장은 두 동생의 호들갑에 턱짓으로 민준과 그 일행을 가리켰다.
도대체 어떻게 들고 휘두르는지 모를 거대한 쇳덩어리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야차 같은 모습은 같은 편도 모골이 송연해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저 사람, 같은 인간 맞겠죠? 혹시 사도들처럼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존재라던지…….”
“글쎄다. 나도 아니라고 생각은 하는데…. 지금 당장은 저 청년이 우리의 적은 아니라는 사실 하나는 확실하니까, 그것만으로 다행이지.”
명 팀장은 셋째의 말에 대꾸하면서 이번 전투에서 줄곧 생각하던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애들아, 내가 싸우면서도 계속 생각해봤는데 말이다. 이번에 우리가 얻기로 했던 마석 지분 30% 포기하는 게 어떻냐.”
“…예?! 그럼 저희가 목숨 걸고 싸운 이유가 없지 않아요? 그리고 팀원들은요? 받아들이겠데요?”
“팀원들은 내가 설득할게. 내 생각을 말하면 다들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
명 팀장의 말에 명 선생이 안경을 치켜세우며 그의 의중을 떠봤다.
“형님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러실 분은 아니고. 뭣 때문에 그러십니…?! 혹시, 마석을 포기하고…….”
“그래, 그걸 포기하는 대가로 저 청년 밑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형님! 그래도 저희가 받을 마석을 포기하는 건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결국, 저렇게 강해지는 것도 마석이 있어야 하는 건데. 정작 마석을 포기해버리면, 저희는 뭘로 성장해야 합니까.”
명 선생은 자신의 형이 낸 의견에 반론을 펼치며 따져 물었으나, 명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우리 조금 더 멀리 보자꾸나. 애초에 우리가 왜 마석을 얻으려고 했지?”
“그거야 그게 생존과-”
“그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지. 나는 마석을 얻는 것보다 저 사람 아래에 들어가는 게 생존에 더욱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형님. 이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건 잘 아시잖습니까. 당장은 휘하에 받아주는 척하다가 나중에 급해지면 저희를 버림말로 써먹을지 어떻게 압니까. 성과는 없고, 위험하기만 한 곳에 저희를 밀어 넣으면…. 그때 가서는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남호야. 하나는 보고 둘은 못 보는구나. 저 청년은 팀원들과 우리 팀원들이 비교해봐라.”
명 팀장의 말에 명 선생이 뒤돌아 그들을 바라봤다.
자신의 팀원들 중 죽은 사람은 없지만, 팔다리 날아가거나 혹은 중상을 입은 사람이 꽤 많았다.
그에 반해 자신의 옛 학생이었던 송단우를 시작으로 청년 팀원들의 모습은 꾀죄죄하고 지쳐 보였으나, 다들 큰 상처 없이 비교적 멀쩡해 보였다.
그 모습을 같이 돌아본 명 팀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멀쩡하지? 이유가 뭐 같으냐.”
“….”
“저기 보이는 내 옛 직장의 대표, 전남철 이사는 분명 우리랑 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 나이 때의 중년 직장인처럼 배불뚝이에 운동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얼마 전에 잠실여고에서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어. 아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능력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을 거다.”
“…민준 씨가 도와줬다는 겁니까?”
“아마도, 생존 시간을 좀 챙겨준 건지. 마석을 준 건지. 아니면 주변 팀원들이 저 사람을 도우며 전투를 이어간 건지는 몰라도. 저 일행은 자기밖에 모르는 독불장군들이 아니야. 주변 사람을 아끼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
“많이 배운 너와 다르게, 내가 한평생 손에 기름때만 묻히며 살았지만, 한 가지만은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지레 겁먹고 남을 밀어내지 마. 결국,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면 오래 버틸 수 없는 세상이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둘의 대화가 어느 정도 끝난 것 같아 보이자, 셋째인 명 주임는 자신이 나설 차례임을 깨달았다.
어렸을 적부터 큰형과 둘째 형의 말싸움은 잦았고, 이를 유하게 만드는 일은 항상 자신의 역할이었기에.
“어째 두 형님은 어렸을 때랑 이렇게 변한 게 하나도 없으실까, 크크. 일단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승리의 기쁨을 즐기면 안 될까요? 저는 내일 일이 어떻고 저쩌고 다 모르겠고, 당장 지금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막내의 넉살에 두 형이 피식 웃더니, 서로 어깨를 감싸 안고 자신들의 팀원들을 향해 걸어갔다.
우선 오늘은 살아남았다.
셋에겐 그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