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0
090화. 새로운 보금자리 (4)
[후광(後光) Max] : ‘대리자’가 사용할 수 있는 권능 중 하나.구세주가 지닌 권위의 편린을 한시적으로 빌려온다.
‘…꿈에서 봤던 그 꼬마의 권위를 빌려온다?’
파편이긴 하지만, 무려 신의 권위를 빌려온다는 권능 스킬.
설명만 놓고 봤을 때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었으나, 이전에 얻었던 [정화(淨化)] 스킬의 효능을 생각하면 그것보다 절대 떨어지는 급은 아닐 터였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온다는 말이 바로 이 경우일까?
보상을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었는데, 얼떨결에 큰 선물을 받아버렸다.
민준은 세영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세영 씨, 감사합니다!”
“네? 갑자기 뭐가 감사-”
“아무튼 감사합니다! 건호야 우린 가볼 테니까, 이야기 잘 나누고 이따가 데리러 올게.”
그럴 리는 없지만, 민준은 혹시나 시스템이 보상을 번복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급하게 작별 인사하고는 병실을 뛰쳐나왔다.
병실에 덩그러니 남은 그들은 벙찐 표정으로 그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대장이 왜 저러지?”
“글쎄요? 세영 씨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기뻤나?”
끄덕끄덕.
그렇게 누군가의 오해를 시작으로, 이내 봉황의 깊은 뜻을 알아챘다는 듯 나머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민준 씨…….”
“역시 대장…….”
물론 그가 왜 그런지 알 수 없던 동료들은 이상한 오해를 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 * *
김건호와 이세영은 남아서 해후를 나누게 두고 나머지는 병실을 나섰다.
그렇게 복도를 따라 이세영이 일러준 호실을 찾아가는 도중 옆에서 들리는 번잡한 소리에 민준이 정진호를 힐끗 바라봤다.
그는 창백한 안색으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민준은 그런 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뭘 그리 긴장하십니까. 오히려 무사히 동료들을 만나게 됐으니 즐거워해야 하는 순간 아닙니까?”
“…제가 모자라서 쓸데없는 고생을 한 친구들이지 않습니까. 혹시 깨어나서 저를 원망하진 않을지 걱정이 되는군요.”
“그게 어떻게 팀장님 탓입니까. 아까 세영 씨가 말했듯이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그저 이런 세상이 됐을 뿐이죠.”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대장.”
정진호는 민준의 격려에 침울한 기색을 거두고, 누가 봐도 어색한 억지 미소를 지었다.
물론 다른 이들이 보기엔 정진호가 긴장했음이 너무 뻔히 보였지만, 제 걱정으로 인해 동료들에게까지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그의 의지를 생각해 티를 내진 않았다.
“뭐 사실 누구의 탓이든 다 어떻습니까. 대장 덕분에 그놈들이 무사히 깨어나면, 그때 예전보다 더 잘해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계속해서 걸은 끝에 드디어 민준이 구한 그들이 머문다는 병실이 저 앞에 보였다.
그곳에는 그들의 간병인처럼 보이는 한 할머니가 병실 문을 나서고 있었는데.
다가오는 민준을 알아보고는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엇, 그때 우리를 구해준 양반들…?”
“안녕하십니까. 혹시 안에 그때 제가 구했던 분들 계시나요?”
“…응? 응 있지. 그런데 말이야…….”
병실 문에 나 있는 창 너머로 내부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안색이 나빠지자, 마음이 급해진 정진호가 문을 박차고 병실 안으로 황급히 들어섰다.
그리고 병실에 누워있는 둘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황급히 다가갔다.
“주안아, 하율아! 너희였구나! 그런데…….”
그렇게 그들과 가까워지던 정진호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면서 굳은 표정으로 그들의 전신을 여러 번 훑었다.
“손이랑 발이…….”
침대에 누워있는 그들의 손과 발이 흑사병 혹은 동상에라도 걸린 것처럼 거멓게 물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통 이런 경우에는 피부가 괴사했음을 뜻했기에, 정진호는 황급히 그들의 팔과 다리를 걷으면서 진행상태를 확인했다.
여성은 손과 발끝에서부터 팔꿈치와 무릎까지, 남성은 팔다리 전체가 시꺼멓게 물들어있었다.
“아니 이게….”
그가 그들의 상태를 살피고 말을 잊지 못하자, 민준 일행 뒤에 서서 이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20년 동안 간병인 생활을 했지만, 저런 증상은 처음 보네그려. 의사 선생님들도 독으로 인한 증상이겠거니 추측만 했을 뿐이지, 확실한 병명을 알진 못하시더라고.”
노파의 말에 옛 팀원들의 손을 부여잡은 정진호가 민준을 바라보며 눈으로 말했다.
자신을 깨워줬던 것처럼 서둘러 이들을 구해달라고.
민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그들에게 다가가, 품에서 낙죽장도를 꺼냈다.
슥-
예리한 칼날이 민준의 손아귀를 미끄러지듯 지나가자, 생각보다 많은 양의 핏물이 흘러내렸고.
이는 두 환자의 허옇게 마른 입술을 짙은 립을 바른 듯 붉게 물들였다.
과거 정진호, 김건호, 소희를 깨웠을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의 피. 이는 환자의 상태를 감안한 민준의 조치였다.
“…이제 괜찮겠지, 대장?”
“글쎄요……. 제가 팀장님과 소희 씨를 치료했을 때도 스킬을 믿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다만, 시카리우스의 독에 중독된 시간이 길었던 만큼 깨어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볼 따름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을 위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초조한 마음을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병실 내부를 깊이 물들이던 아침 햇살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물러가, 창가로 후퇴했음에도 그들은 눈을 뜨지 못했고….
초조함이 극에 달한 정진호는 어느새 일어나, 입술을 물어뜯으며 병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민준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정 팀장님, 소희 씨, 건호에게 먹였을 때는 제대로 작동했었는데…. 뭐가 문제지?’
아무래도 민준이 우려했던 데로 너무 오래 중독되어있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진작에 깨어날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들에게선 여전히 별다른 변화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 팀장님 때와 다른 점이라고 저 검게 변한 피부가 전부인데……. 혹시 [정화(淨化)] 스킬로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답답한 마음에 민준은 다른 방안을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고, 이를 확인하자고 자리에서 일어나 환자 중 하나인 하율이라고 불린 여성의 손을 붙잡았다.
그 순간.
띠링!
‘…?!’
정화 스킬이 먹히는지 살펴보려 했을 뿐인데, 느닷없이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고 무슨 흡입력이라도 발생한 듯 민준의 손과 하율의 손이 찰싹 달라붙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생각이 든 민준이 뒤늦게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아무리 힘을 줘봐도 맞잡은 두 손은 하나의 신체가 되어버린 것처럼 딱 붙어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뭐야 이거?!’
“민준 씨?!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대장 괜찮아?”
민준의 이상한 낌새를 느낀 정진호와 소희가 다가왔지만, 그는 이들의 물음에 대응해 줄 정도로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그렇게 당황하는 사이 다시금 시스템 메시지가 이어지고.
[‘시카리우스의 피’가 독을 흡수합니다.] [흡수율: 1%] [흡수율: 3%].
.
.
어떻게 손쓸 새도 없이 흡수율이 올라감에 따라, 전염되듯 민준의 손톱이 검게 물들기 시작하면서 점점 범위를 넓혀나갔다.
그리고 이는 불로 지지는 듯한 작통(灼痛)을 야기했다.
“…으으으.”
민준의 잇새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오자,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정진호와 소희가 민준의 팔에 달라붙었다.
“젠장! 소희야, 잡아!”
“으으…! 안 떨어져요!!”
빠드드득-
분명 셋의 근력 레벨은 장성한 나무조차 뿌리째 뽑을 수 있을 거력을 품고 있었음에도 민준과 하율이라는 여성과 맞잡은 손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야. 이건 분명 시스템적인 상호작용이 있는 거다.’
민준은 머리를 새하얗게 만드는 고통에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기에 이를 통제할 순 없더라도,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다음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마주 닿은 피부를 통해 저들을 침식했던 독이 옮겨타고 있다. 그러면 우선…….’
“정 팀장님, 소희 씨! 제 몸에서 손 떼세요!”
“하지만 민준 씨가…….”
“빨리!”
민준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우물쭈물하던 소희와 정진호가 그의 몸에서 손을 뗐다.
정진호가 저들의 피부를 처음 만졌을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혹시 몰랐다.
자신이 트리거가 되면서 다른 이에게도 퍼질 수도 있는 노릇.
작은 확률이라도 있다면 확실히 배제해야 했다.
게다가 자신에게는 독에 대한 내성을 올려주는 [시카리우스의 피]가 있지만, 저들은 그런 능력이 전무 했으니 피해를 받아도 그건 온전히 자신만 받아야 했다.
‘괜히 일이 커지면 처리하기가 더 힘들어져.’
이건 희생이라 감성적인 행동도 아니고. 순전히 전체적인 손익을 따진 논리적 사고에서 나온 결과다.
역시나 그의 손끝을 검게 물들인 독은 손바닥을 시작으로 손목과 팔꿈치를 거쳐 점차 그의 몸 중심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그에 반비례해서 여성의 검은 피부 면적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이 독은 시카리우스의 독이다.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까지 가도 [시카리우스의 피]를 지닌 내가 죽진 않을 거야. 그렇다면….’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이를 꽉 문 민준은 왼손을 뻗어 옆에 누워있는 사내의 손마저 붙잡았다.
“…크윽.”
그러자 그의 팔과 다리에 색칠됐던 검은색도 민준의 몸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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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율: 39%] [흡수율: 40%] [흡수량이 곱절로 상승함에 따라 흡수하는 속도도 상승합니다!] [흡수율: 47%] [흡수율: 55%] [흡수율: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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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
흡수율이 늘어나서 그런지 고통도 이와 함께 두 배로 늘어나자 민준의 잇새에서 다시 참을 수 없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차라리 기절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흡수율이 높아질수록 정신은 점점 또렷해져 갈 뿐이었다.
“젠장, 갑자기 이게….”
“민준 씨! 절대로 정신을 잃으면 안 돼요!”
소희와 정진호도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면서도, 직감적으로 민준이 그들을 치료하고 있음을 알았기에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그렇게 흡수율은 급격히 치솟았고, 독이 민준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게 물들였을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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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율: 97%] [흡수율: 100%]띠링!
[시카리우스의 독을 온전히 흡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띠링!!
[독과 약은 불가분의 관계. 시카리우스의 독을 흡수함으로써 그녀의 피가 온전해집니다!] [스킬 ‘시카리우스의 피’가 ‘시카리우스의 정(精)’로 생장합니다!!]마지막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민준의 온몸을 검게 물들인 독이 피부밑으로 스며들 듯 서서히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몸을 태울듯한 고통도 언제 그를 괴롭혔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후….”
민준이 깊은숨을 내쉬며 감았던 눈을 지그시 떴다.
그러자 자신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정진호와 소희의 얼굴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