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라미레스 쟁탈전(1)
***
“흐음.”
나는 다시 한 번 찬찬히 홀로그램 속 메시지를 확인했다.
[작가로부터 캐릭터 돌발행동 제안이 도착했습니다]-카포네를 잡아라!
-눈앞에 보이는 중년의 사내를 처치하고, 그의 조직을 흡수하시오.
마치 돌발 퀘스트 마냥 갑작스레 날아든 이것은 여러 함의를 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작가의 연대······ 아니, ‘조력’ 요청.
처음엔 이 내용이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내게 무척이나 좋은 조건이었으니까.
실제로 ‘그 강한 카포네’를 상대할 필요도 없이, 그가 일궈놓은 조직과(물론 그 규모가 상당히 줄긴 했지만) 이 도시의 저변을 손쉽게 삼키고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별 리스크도 없이.
지금 눈앞에 있는 ‘카포네2’와 그 부하들을 뭐, 리스크라 칭하긴 좀 그러니까.
“갑자기 말이 없어진 이유가 뭐지? 네 정체는 뭐냐고 물었다, 이 주걱턱 녀석아. 얼른 말하지 않으면 매운 맛을 보게 될 거다!”
“······.”
매운맛이라니.
약간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원작에서의 카포네는 그래도 멋이라는 게 있는 캐릭터였는데. 저런 대사부터가 하급인, 삼류 악당이 아니라.
나는 녀석을 슥 훑어봤다.
고유능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있다한들 절대로 카포네의 그것은 아닐 게 분명했다.
“잠깐만, 기다려봐. 생각 좀 해보게.”
“뭐, 뭣?”
“1분만.”
나는 그러곤 메시지 하단에 뜬 문구를 쳐다봤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카포네를 쓰러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내가 딱 바라던 전개이긴 했다. 개연성에도 별 문제될 게 없고.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 따라오기까지.
다만,
‘······머리 좀 쓰셨네.’
그건 그냥 겉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처음엔 의외의 제안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보니 전혀 의외가 아니었다.
이건 어찌 보면 작가의 입장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걸 선심 쓰듯 주는 척 하면서, 동시에 내게 특정한 행동을 강요하는 것.
어째선지 그 순간 작가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카포네의 것을 그대로 취할 수 있게 해줄 테니, 너도 몇 가지 행동만 좀 수행해주겠니? 물론, 보상도 좀 얹어 줄게. 우리 윈-윈 하자.
“윈-윈이라······.”
그러나 사실 이게 윈-윈처럼 보이지만, 둘의 입장이 완전히 같은 건 아니었다.
내가 이를 수락했을 때 이득을 보는 건 맞다. 하지만 나의 경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손해가 생기진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경우는 이와 조금 다르다. 내가 이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제 앞으로의 전개는 엄청나게 꼬일 수밖에 없다.
‘아니지, 이미 꼬인 건가?’
지금 당장 앞에 있는 녀석이 바로 그 증거였다. 이미 본래의 카포네를 등장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곤, 훨씬 더 약하고 저급한 카포네 MK.2를 출격시킨 게 아닌가.
내가 이를 거절하는 순간, 그때부터 작가의 고생길이 펼쳐지는 것이다. 저 녀석으론 본래 카포네의 역할을 모두 마크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즉, 작가 쪽이 훨씬 급하다는 것.
‘어디 이거, 애 좀 태워봐?’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아, 아니! 뭐야, 저 녀석! 설마 도망치려는 거냐!?”
카포네2가 분노해 소리쳤다.
“어, 맞아. 지브란테의 지배자 카포네가 정말 나타나다니······ 무섭네. 부하들 숫자도 많고. 사칭범은 이만 도망칠게.”
“뭐, 뭣!?”
“바이바이.”
나는 그러곤 곧바로 뒤돌아 뛰었다.
멀찍이서 나를 욕하는 카포네2의 음성이 메아리치듯 들려왔지만, 싹 무시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대충 따돌렸다는 생각이 들 즈음, 나는 도깨비 은막을 몸에 두르곤 높은 지대로 올라갔다. 녀석들의 행동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되려나.’
사실 작가와 무슨 기싸움을 벌여보겠단 생각은 아니었다.
골려줄까 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호기심 쪽이 더 컸다.
녀석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싶어서.
실제로 저들만큼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반영된 캐릭터도 몇 없다. 저들은 그야말로 내게 ‘제압당하기 위해 생성된 캐릭터’들이 아닌가.
하여, 궁금했던 것이다. 만약 저들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시,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까 하고.
헌데,
‘뭐야······ 왜 저러고 가만히만 있어?’
한참을 기다려도, 녀석들은 제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뭔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그나마 취한 행동이라곤, 서너 명이 나를 뒤따라 움직인 것과 그 중 하나가 재차 공장지대로 안으로 들어간 정도에 불과했다.
“희한하네.”
이는 내게도 꽤나 당혹스런 일이었다.
이제까지 경험한 바로, 작가는 일단 캐릭터를 생성한 다음엔 직접적으로 그 캐릭터를 조종하거나 하진 못한다. 하여 해당 캐릭터를 본인이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이려 할 땐, 새로운 캐릭터를 붙여 바람을 넣거나 소식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해야만 한다.
즉, 지금 녀석들이 보이는 모습은 캐릭터 생성 당시의 목적과 필수지침이 반영된 행태라는 것이다.
헌데······ 아무리 대충 만들었기로서니, 캐릭터들이 같은 행동만 반복할 수가 있나?
‘말이 돼?’
이는 곧, 저 녀석들은 ‘이곳에서 내게 제압당하는 것’ 외엔 아무런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뜻과 같았다.
황당했다.
아무렴, 저런 일차원적이고 맹목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장난감도 아니고?
저것들은 캐릭터라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저건 그냥 아무런 의도가 섞이지 않은 ‘배경’만도 못한 녀석들이 아닌가.
바로 그때였다.
띠링-.
갑작스레 메시지 하나가 전송되었다.
그리고 이는,
그제까지의 황당함을 순식간에 잊게 만들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보상]-수락 시, 현재 장면이 부록형식으로 챕터 내 첨부될 예정입니다.
-작가호감도 100 → 120 상승
-캐릭터 포인트 100,000p → 120,000p 지급
-연계행동 추가 성공 시, 각기 100,000p → 120,000p 지급
-모두 성공 시, 캐릭터의 격 100 → 110 증가
“허······ 허허.”
실로 당황스러웠다.
이 정도라고?
작가가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곧장 보상안을 수정해 보낼 줄이야.
‘딜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사실 이전에도 보상이 구리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충분히 혹할 만한 제안이었다. 심지어 실패 페널티조차 없었으니.
그런데 이렇게 나온다는 건······.
“흐음.”
그즈음 나는 다시금 이 제안에 대해 생각해봤다. 철저하게 작가의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곰곰이 짚어보니, 확실히 내가 카포네의 역할을 해주는 것만큼 작가에게 좋은 상황은 없었다.
일단 캐릭터 분량 분배에 대한 부담이 덜해지고, 선행플롯을 수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엄청난 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헛짓거리를 못하도록 묶어둘 수 있다는 점.
간단하다. 아무리 나라도 그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엔 또 다른 일을 벌이진 못할 게 아닌가.
즉, 일석삼조의 효과였다.
‘간절할 이유가 있긴 하네.’
이를 알고 보니, 또 이제 반골 같은 마음이 치켜들었다.
그럼 이 제안을 확 거절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일단 하나 확실한 건, 작가를 굉장히 빡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 매력적이긴 하네.’
작가로선 꼬여버린 전개를 감당하기가 무척이나 힘들 것이다. 그거 다 수습하려다 머리가 터질지도.
다만 명심해야 하는 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전개가 비틀리는 것이 내게 결코 유리한 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늘 이걸 상기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보다 중점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 ‘작가를 화나게 하는 것’외에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현재 내 머릿속엔 다가오는 챕터에서 활약하기 위한 몇 가지 구성이 들어 있었다.
그럼 만약 내가 계획한 상황이 모두 이뤄진다고 가정했을 때, 저 보상만큼의 이득을 취할 수 있느냐.
사실 그건 아니었다.
당장 작가가 제시한 보상의 수준이 어마어마했으니까. 챕터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보상, 그 이상이었다.
즉, 내가 아무리 최고의 결과를 얻어낸다 해도 저 만큼의 이득을 취할 순 없다는 것. 그러니 작가도 이를 알고 저와 같은 제안을 한 것이겠지.
하지만,
“문제는 함정이 있느냐 하는 건데······.”
그래서 더 경계가 되긴 했다. 아무렴 급하고 간절하다한들, 내게 이런 제안을 선뜻 할 양반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몇 가지를 더 짚어야 했다.
실제로 작가가 제시한 보상을 모두 획득할 수가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짊어져야 할 리스크는 얼마나 될 것인지 하는 것.
작가가 수행하라고 내건 카포네의 역할은 다음의 세 가지였다.
1. 보물 라미레스를 걸고, 승자독식 쟁탈전 선언하기
2. 공장지대 안으로 모험단 유인하기
3. 레오 모험단의 키리코와 대적하기
1, 2번은 사실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승자독식 선언? 본래부터 하려고 했던 것이다. 외려, 원작에서 카포네가 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느낌 있게 연출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고.
공장지대로 모험단 유인하기?
바라던 바였다. 이미 지형을 훤히 꾀고 있고, 활용할 자원이 많은 장소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문제는 이제 세 번째 항목이었다.
키리코와의 전투.
여기에 함정이 좀 숨어 있지 않을까.
물론 패배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아직 키리코는 그 정도의 강자가 아니니까.
또한 레오 모험단의 녀석들은 모두 파워밸런스 조정 대상으로, 나와 함께 힘이 격감된 상태이기도 했다.
현재의 강함만 따지자면 내가 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원작의 전개를 생각했을 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원작에서 녀석은 한 차례 각성을 한 뒤, ‘그 강한 카포네’를 끝내 무찌른다. 내가 나보다 강하다고 생각한 본래의 카포네를 말이다.
물론 현재의 나 또한 코미어의 장비를 보유한 상태이기에, 그 카포네에게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혹시 모른다는 것.
게다가 애당초 원작의 전개 자체가 키리코의 승리지 않는가.
이는 곧, 내가 우세를 점할 때마다 선행플롯의 제재가 들어올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벌써부터 포인트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
게다가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럼 내가 이번 쟁탈전에서 키리코만 상대하면 되느냐?
그게 아닐 것 같단 말이지.
그로니얀.
처음부터 라미레스가 아닌 나를 노리고 온 인간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칼 자이드와 더불어, 현재 가장 강하다고 느껴지는 녀석이.
키리코에 이어 그로니얀과도 전투를 치러야 한다?
“흠······ 쉽지 않겠는데.”
이건 확실히 리스크가 있었다.
다시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걸 내가 받아들이는 게 맞을까.
코미어에게서 장비를 얻을 수 있긴 하나, 여기에도 걸리는 부분이 조금 있었다. 실제로 ‘그것’의 성능이 보장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코미어에게 주문한 건 ‘장갑기병’으로, 사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연출욕심에 억지로 제작을 추진한 장비였다. 본래 장갑기병은 노스랜드 에피소드에 가서야 나오는 것이지, 이번에 등장하는 게 아니니까.
그냥 지금 코미어가 편히 제작할 수 있는 걸 받았더라면 훨씬 마음이 편했을 텐데······ 약간 후회가 될 정도였다.
‘어쩐다······.’
바로 그때,
띠링-.
[작가로부터 보상에 대한 수정안이 도착했습니다]고민을 잊게 해줄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보상]-수락 시, 현재 장면이 부록형식으로 챕터 내 첨부될 예정입니다.
-작가호감도 120 → 140 상승
-캐릭터 포인트 120,000p → 140,000p 지급
-연계행동 추가 성공 시, 각기 120,000p → 140,000p 지급
-모두 성공 시, 캐릭터의 격 110 → 130 증가
“······허, 허허”
순간, 나도 모르게 씩 입가가 올라갔다.
고민은 어느새 해결이 되어 있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못 먹어도 고.
그런데 바로 그때,
‘어? 잠깐, 잠깐만······.’
놀랍게도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이거 한 번만 더 튕겨 봐? 혹시 되나?’
⦙
하루 뒤.
기어이 또 한 번의 수정안을 받아낸 후,
‘여기서 더 버팅기면 진짜 큰일 나겠지?’
나는 작가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작가와의 기묘한 연대가 시작되었다.
*
“저, 저기! 보인다!”
마침내 도착했다.
지브란테.
키리코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저 멀리 보이는 공장의 굴뚝을 쳐다봤다.
열흘.
긴 시간이었다.
또 당황스럽고도, 불편한 시간이었다.
키리코는 뒤돌아 선 채, 줄지어 따라오고 있는 수많은 인파를 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은 보물을 노리는 이들이, 그것도 단순히 모험단만 있는 게 아닌 도적단, 암살단 따위가 섞여 있는 이 거대한 무리가, 무려 열흘간이나 단 한 번의 충돌도 없이 동행해 걸을 수가 있다니.
클론시티에서부터 시작된 이 기묘한 동행이 여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어느 특정한 한 무리 때문이었다.
도깨비들.
이제 더는 주걱턱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녀석들.
“에이, 싸움은 가서 하자고, 가서.”
“보물도 없는데 여기서 뭣들 하려고.”
“사이좋게 가, 사이좋게.”
“꼭 뭣도 없는 놈들이 성질부터 부리려 한다니까? 안 그래?”
“다른 길로 가도 돼. 근데 이 길이 가장 빠를 걸?”
물론 저 따위 말들에 억제력이 있었던 건 아니다.
도깨비들은 매번 일일이 나서며 사람과 사람, 그리고 집단끼리의 전투를 막아섰다.
가령, 녀석들은 어느 두 집단끼리 충돌이 일어날 것 같으면 그 즉시 해당 집단의 인원들로 둔갑한 뒤 싸움판에 끼어들었는데, 이로 인해 어느 쪽도 쉽사리 먼저 공격을 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형국이었다. 당장 피아식별이 안 되는데, 누구를 공격할 것인가.
하여, 매번 모든 싸움이 시작도 하기 전에 도깨비들에 의해 꺼지곤 했던 것이다.
저들이 어째서 싸움을 중재하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주걱턱이 모종의 지시를 내린 게 틀림없긴 한데, 당최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었으니.
실은 키리코 또한 지브란테에 도착하기 전, 이 욕심만 많은 얼뜨기들의 수를 좀 줄여놓을 생각이었다.
헌데 이 도깨비들의 방해가 거세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녀석들은 이 방해과정을 즐기는 듯 보이기까지 했는데, 특히나 악질인 녀석들은 일부러 먼저 이간질을 시켜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후, 싸움이 막 시작될 즈음에 나타나 방해를 하기도 했다.
‘진짜 뭐하는 놈들인지······.’
하여간에 이해도 안 되고, 할 생각도 없는 족속들이었다.
레오는 뭐, 그래도 어느 정도 어울리는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그것도 안녕이지.’
이 불편한 동행도 이젠 끝이었다.
말마따나, 지브란테에 도착했으니까.
이제 이 녀석들이 어떻게 나올까.
그런 기대감을 가진 채, 도깨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때마침,
“흠흠······.”
그 중 한 녀석이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이곳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름다운 동행이었어요. 저희 도깨비들도 지난 열흘간이 무척 즐거웠답니다. 다들 즐거우셨나요?”
······.
“네, 잘 알겠고요. 그럼 무운들을 빌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싸우건 말건 알아서들 하세요, 이 건방지고 폭력적인 인간들아. 그럼, 이만들 실례!”
이어,
슉-.
슉-.
순간적으로 도깨비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이에,
“뭐, 뭐야?”
“다 어디 갔어!?”
“이 녀석들 그거 아냐? 그냥 안 보이게 하는 능력?”
삽시간에 소란이 일었다.
도깨비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 때문도 있겠지만, 갑작스레 주변이 모두 적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레오, 일단 물러나고 있자.”
“응? 왜?”
“왜긴······ 지금 상황 안 보이······.”
그때였다.
“저, 저기! 저기 좀 봐!”
누군가의 외침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키리코는 그쪽을 향해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
거기, 공장지대로 들어가는 진입로 부근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검은 정장 차림의 복고풍 중절모를 쓴 사내. 희한하게도, 턱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남자였다.
바로 주걱턱 녀석이었다.
“주, 주걱턱이다!”
“저기 녀석이 있어!”
“이 자식! 보물은 어디 있냐!”
그 순간, 주걱턱이 가만 오른팔을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헌데 그 팔의 생김새가 조금 이상했다.
‘뭐야······ 기계?’
기계였다. 녀석이 팔에다가 희한한 기계를 부착하고 있었다.
다만, 그에 대한 의문을 풀 시간은 없었다.
때마침 주걱턱의 입이 움직였던 것이다.
“자, 오느라 수고들 했어. 그럼 지금부터······ 쟁탈전 시작!”
그리고 그 순간,
퍼펑-!
하늘을 향해 뻗은 주걱턱의 손에서 붉은색의 레이저가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그즈음,
“저, 저기 봐!”
“위다! 하늘이야!”
“보물이다!”
‘무언가’가 그 붉은 색 에너지 기둥을 가르며 하늘에 나타났다.
강철로 된 날개를 단 기묘한 기계였는데, 그것의 정면에 웬 거울 하나가 함께 매여 있었다.
라미레스.
물론 가짜이거나 속임수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저게 바로 그 보물인 듯했다.
그때,
“자, 위에 보이지? 저걸 가져가려면 간단해. 여기 있는 모두를 쓰러뜨리면 돼. 그러면 자연스레 보물을 가질 수 있을 거야. 그럼 각자들 알아서 상대 정하고 싸우기 시작하라고.”
주걱턱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곤 녀석은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상대는 이제······ 아, 저기 있네. 키리코.”
헌데 그 발걸음이 향한 곳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있는 곳이었다.
키리코는 두 눈을 끔벅거렸다.
주걱턱이 성큼성큼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