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라미레스 쟁탈전(2)
***
“이게······ 만들어 지긴 하네.”
코미어는 눈앞에 있는 짙은 남색 계열의 ‘로봇’을 보며 나직이 탄성을 내뱉었다.
주걱턱의 요청을 받아 제작에 착수한 지 어언 열흘 째.
마침내 그가 의뢰한 ‘이능장갑기병’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물론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녀석이었다.
작업 도중 발견된 결함은 셀 수도 없을 정도였고, 뼈대와 몸체에 쓰인 금속 자체를 처음 사용해본 것이었기에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전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더욱이 코어가 되는 에너지 원자로는 신형금속과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찾다, 찾다 못해······ 진짜 못 찾았다. 심지어 마지막 실험에서까지, 원자로에서 에너지가 융합될 때마다 몸체를 구성하고 있던 금속들의 일부가 변이되는 현상이 발생할 정도였으니.
솔직히 운행 중 폭발해 버린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나 할까?
애당초 이토록 단기간에 이렇게까지 특이하고 복잡한 걸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내가 탈 거 아니니까.’
코미어는 뿌듯함에 미소를 지었다.
주걱턱 녀석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충족시킨 것만 해도, 스스로가 대견해질 정도였으니.
실제로 코미어는 지난 열흘 간 업그레이드 된 자신의 능력이, 과거 몇 년에 걸쳐 성장한 것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이번 작업을 통해 경험하고 얻은 게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눈앞의 로봇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괴물’ 그 자체였다.
주입된 이능이라곤 내재적 특성인 ‘견고’와 발동 능력인 ‘증폭’, 단 두 가지뿐이었지만, 이건 이전에 자신이 제작한 그 어떤 것들을 대더라도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녀석이었다. 예상수치이긴 하나, 탑승자의 전투력을 최소 열 배 이상 올려주는 것이었으니.
솔직히 이런 게 만들어져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해선······.’
실제로 제작을 한 건 자신이었지만, 이걸 구상한 건 주걱턱 바로 그 녀석이었다.
그래, 문제가 있는 건 그쪽이다. 그 녀석이 미친놈이지.
혹은······ 천재이거나.
그즈음,
“미친놈, 미친놈이라······.”
순간적으로 픽 웃음이 나왔다.
예전엔 저와 같은 말을 밥 먹듯이 들었던 때가 있었는데.
문득, 머릿속으로 어떠한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앞으로도 뭔가 더 대단한 걸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꽤나······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러나 이내,
‘흠흠, 큰일 날 뻔.’
코미어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허튼 생각이었다, 허튼 생각.
지난 열흘간의 작업은 기존의 ‘이능설계’ 패턴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본래 바탕이 되는 자재를 정제해 기본이 될 특성 하나를 뽑아내고, 차례차례 뼈대를 구축하고 살을 붙이면서 쓰임에 맡게 특성들을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게 정석이라면, 주걱턱의 요구는 단 하나의 ‘핵심이능’만을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내라는 쪽에 가까웠다. 그것도 다뤄본 적도 없는 신형금속들과 말도 안 되는 도면을 한 가득 던져주면서.
매일 매일이 짜증과 의심, 분노, 그리고 경악의 반복이었다고나 할까.
그 녀석과 작업을 더 했다간, 제 명에 못살 게 분명했다. 심지어는 노망난 늙은이와의 지옥 같던 과거가 생각날 정도였으니.
“······후.”
솔직히 그런 걸 다 떠나서, 기본적으로 아직 주걱턱 그 녀석을 믿을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대체 자신을 어떻게 안 것인지, ‘적’들과는 무슨 관계인지, 또 이 도시에서 대체 뭔 짓을 하려고 하는 건지······ 그에 대해 아는 게 일절 없었으니.
매번 주걱턱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돌아오는 건, 지끈지끈한 두통뿐이었다. 도무지 정체를 짐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여 코미어는 늘 주걱턱은 작업 의뢰자의 하나일 뿐이고, 현재의 작업은 그저 라미레스를 얻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걸 상기시키려 노력했다.
“라미레스······.”
사실 이미 거진 손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재는 주걱턱이 소유하고 있긴 하나, 며칠만 가지고 있다 금방 가져다준다고 했으니.
그게 딱히 거짓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작업을 하는 내내, 녀석은 자신에게 라미레스를 맡겨 놓은 채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거짓이라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애초에 보험을 들어 놓은 게 있었으니.
사실 코미어가 당장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던 이유는, 단순히 라미레스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단 주걱턱이 눈앞의 ‘괴물’을 탑승했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가 외려 더 궁금했다.
그건 확실히, 상상만으로도 제법 짜릿한 광경이었으니까.
“언제쯤 시작하려나······.”
바로 그때였다.
펑-.
밖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서둘러 창고를 나가 보니, 한줄기 붉은 레이저가 하늘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신호였다. 전투의 서막을 알리는 붉은 신호.
주걱턱이 말했던, 그 쟁탈전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오케이.”
그렇다는 건, 자신 또한 슬슬 준비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코미어는 서둘러 창고로 돌아온 뒤, ‘괴물’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기 시작했다.
*
키리코에게로 한 발자국 걸음을 내딛었을 때였다.
띠링-.
[모험왕 연재가 재개되었습니다] [챕터29 – 보물 라미레스 쟁탈전(2)] [진행 중인 챕터의 권역에 속해 있습니다] [히로는 이번 챕터의 캐릭터 평가 대상입니다]내 앞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가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는 새로운 챕터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였고, 또 하나는······.
“움직이지 마라.”
나는 그러곤 난데없이 나타나 내 앞을 막아선 녀석을 쳐다봤다.
라미레스의 위치가 드러나자마자 스르르 모습을 드러낸, 허여멀건 얼굴의 남자.
생각보다 이른 출연이었다.
마도병기 지무스.
그로니얀과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보자마자 충격에 이를 정도의 강함이 느껴지진 않았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녀석을 가볍게 본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이 녀석은 무투파가 아닌데다, 그 힘의 원천이 신체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으니.
게다가 나는 이 녀석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괜히 ‘병기’라 이름 붙은 녀석이 아니다.
그의 뒤편에는 ‘지팡이’를 든 부하 셋이 공중에 유유히 떠 있었다.
‘쩝······ 빠르네.’
갑작스레 등장한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슈우웅-.
웬 굉음과 함께, 저 멀리서 무언가가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마도병기 지무스와 마찬가지로, 눈에 익은 녀석이었다.
사이보그 겔롭.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쟁탈전의 주축이 될 두 강자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흐음.’
실은 이 둘이 조금만 더 늦게 나타나길 바랐던 것이다. 지금이라면 얼렁뚱땅 키리코를 눌러둘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원작에서 키리코와 카포네의 싸움은 사실 쟁탈전 초반부부터 일어나는 게 아니다. 실제로는 제법 시간이 지나고, 어중이떠중이들이 죄다 걸러진 후반부 즈음에 들어서야 시작된다.
이는 전형적인 소년만화의 성장 클리셰를 따르는 것으로, 카포네란 최종관문을 만나기 전 키리코에게 몇 차례의 크고 작은 난관을 거치는 빌드업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곧바로 각성하는 건 개연성의 오류에 가까우니.
하여, 내 소개도 생략한 채 얼른 가서 좀 밟아두려 했던 건데······.
‘쩝, 아쉽네.’
곧바로 등장한 저 녀석들에 의해 꼼수는 통하지 않을 듯했다.
나는 키리코에게로 향하던 걸음을 멈춘 뒤, 다시금 뒤로 물러났다.
그러곤 내 앞을 막아선 지무스에게 물었다.
“넌 뭐지?”
물론 몰라서 물은 건 아니었다.
이와 같은 과정은 캐릭터 소개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독자들은 위한 일종의 배려였다.
“나는 지무스다. 노스랜드에서 왔지. 네 놈이 거울을 운반했다는 소문의 그 녀석인 모양이군. 듣던 대로 턱이 희한한 녀석인 걸.”
황당한 놈이었다.
“뭔데 초면에 외모평가야. 허여멀겋기만 한 녀석이. 그리고 그게 다야?”
“다라니?”
“너의 관한 건 그게 다냐고.”
내가 원한 것은 보다 디테일한 녀석의 정보였다. ‘마도병기’라는 별명과 노스랜드에서 뭐하다 온 것인지, 또는 본인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한 어필 같은 거.
아니, 그런 게 좀 있어야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지 않겠냐고.
그러자 지무스가 피식 웃더니,
“나에 대한 정보를 내 놓아라? 웃기는 녀석이군. 그렇다면 너는 너에 대해 다 밝힐 수 있나? 너는 뭐하는 인간이지?”
고맙게도 내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질문을 던져주었다.
“후후······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깜빡했군.”
이어 나는 헛기침을 해 목청을 틔운 후, 큰 소리로 외쳤다.
“크흠, 내 이름은 히로. 모험가 자격시험 1위에 빛나는 주걱턱 모험단의 단장이자, 이스트랜드 두골제국의 대장군이며······ 지금은 지브란테의 지배자이자 밀수왕인 주걱턱이다! 저 라미레스만 내 것이 아냐. 이 도시 모든 게 다 내 것이지.”
그러고 씩 웃어보이자,
“저 녀석······ 뭐라고?”
“미, 밀수왕?”
“그건······ 카포네의 별명 아닌가?”
“그러고 보니 저 중절모······ 카포네를 상징하는 거야!”
“설마 저 녀석! 카포네를 처치해 버리고 그 조직을 삼킨 건가!?”
곳곳에서 아주 적절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놀람과 경악, 불신의 소리들.
이에 더해, 카포네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악명 등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노스래드의 밀수품을 관장하는 마피아라는 둥, 부리는 부하만 수천에 달한다는 둥, 정부와도 끈이 닿아 있다는 둥.
물론, 사실 다 주문 제작된 리액션이었다.
저렇게 곧장 반응이 맞춰 나올 리가 없지 않는가. 그것도 엄청난 허풍이 가미된 채로.
실은 조금 전, 그림자로 접선한 하카에게 일러두었던 것이다.
부하들 시켜서 슬쩍 반응 좀 내달라고.
대충 몇 마디하고 말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연기들이 좋았다.
그리고 이는,
“호오······ 제법 이름이 있는 녀석이었나. 웬 멍청이가 운 좋게 거울을 얻었다는 소문은 거짓이었나 보군.”
“······.”
“하지만 그까짓 허명이 내게도 통할 거란 생각은 하지 말도록. 내가 바로 노스랜드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는 마도공학계의 다섯 간부 중 하나, 마도병기 지무스니까.”
제법 만족스런 결과를 가져왔다.
마도공학계의 다섯 간부.
물론 이 배경이 뭘 뜻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는 건 훗날의 일이지만, 어쨌거나 독자들 또한 어느 정도는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뭔가 이 녀석도 한 수는 있는 캐릭터구나 하고.
“알아들었다면, 라미레스는 내가 가져가겠다.”
“뭔 소리야, 여기가 노스랜드야?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알아 듣냐고. 마도공학계? 그게 뭔데?”
“······무지는 죄와 다름없지. 그저 업보로 받아들이도록.”
“황당한 놈이네. 그리고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저 거울은 여기 있는 모두를 쓰러뜨린 녀석만이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먼저 가진 다음 다 죽여주지. 그럼 똑같지 않나?”
“허······.”
패기 하난 살아있는 녀석이었다.
“음······ 그래, 그럼. 해봐.”
나는 그러곤 순순히 비켜줬다.
방해하지 않겠단 제스처를 곁들인 채였다.
“호오······ 방해는 않겠다?”
지무스는 그런 나를 슥 쳐다보더니, 이어 주변을 한 차례 훑었다.
모두가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지무스 또한 본인이 시범대에 오른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곧이어,
“가져와라.”
“옙.”
지무스의 명령을 들은 그의 부하 중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윽고, 부하의 손이 막 라미레스가 부착된 드론에 닿으려 할 때였다.
순간,
팟-.
드론에서 웬 순백의 빛이 폭사하듯 뿜어져 나왔다.
“억!”
녀석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긴 했으나, 딱히 타격을 입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저 당황한 채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필 뿐이었다.
그때였다.
“저기 봐!”
“허공에!”
사람들이 가리킨 건 지무스의 부하가 뛰어오른 허공의 반대편이었다.
거기, 마치 홀로그램 마냥 드론이 쏘아낸 또 다른 빛의 잔상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잔상 속엔 하나의 명확한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바로 조금 전 튀어 올랐던 지무스 부하가 들고 있던 ‘지팡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지팡이가 의미하는 바를 곧장 알아차리진 못한 듯 보였다. 그저 ‘저게 뭐지?’, ‘웬 지팡이?’와 같은 말들만 반복한 채 웅성거리고 있었으니.
다만, 지무스 쪽 인원들은 저 광경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히 알아차린 듯했다. 본래도 허여멀겋던 얼굴들이 티나게 창백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제 알겠지?”
“······꽤나 얕은 수를 써놨군.”
나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씩 웃으며 소리쳤다.
“자, 다들 보이지? 저 지팡이가 바로 방금 뛰어오른 녀석의 약점이야. 다들 기억해 두라고. 혹시나 저 녀석과 싸울 일이 생긴다? 그냥 지팡이만 뺏거나 부수면 돼. 그럼 저 녀석은 끝이니까.”
이어 지무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말했잖아. 여기 있는 이들을 다 쓰러뜨린 다음에 가져가라고. 그 전에는 피 볼 가능성이 높다니까? 아니면 뭐······ 이미 본 건가? 너희 그 마도공학계? 혹시 그쪽은 다 지팡이가 약점인 건가?”
“······.”
실은 코미어를 시켜 일찍부터 이미지 영사장치를 만들어뒀던 것이다. 라미레스에 비친 것을 그대로 허공에 쏘아내기 위해.
실제로 이건 원작에서 카포네가 행한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녀석은 이걸 접근방지의 용도로 활용했다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약점을 알아낼 요량으로 영사 빔을 만든 것이었지만.
그즈음 모두의 눈에 한층 짙은 긴장감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대충 눈치보다 라미레스만 가지고 튀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리스크가 크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아마 이곳에 있는 대부분이 그제야 처음으로, 라미레스를 훔치는 게 아닌 싸워 얻어야 할 전리품으로 인식하게 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모두의 침묵과 긴장감을 이끌어냈다.
이제 두 번째 단계를 진행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즈음 나는 헛기침으로 모두의 주목을 모았다.
“큼큼······ 자자, 너무 긴장들 하지 말라고. 지금 여기 보이는 녀석들을 다 없애야 할 적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옴짝달싹 못하는 거 아냐. 그럴 필요 없어.”
그러자 다들 말없이 내게 의문에 찬 시선을 보내왔다.
“그러면 다들 눈치만 보지 정작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니까? 그래서 별 거 아니긴 한데······ 약간 규칙을 좀 만들어볼까 하거든? 다들 옆 사람 눈치 보느라 지지부진 하는 것보다야 이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러곤 나는 품속에서 세 개의 자그마한 구체를 꺼냈다.
별 건 아니었다. 그냥 약간의 자체 에너지가 내장된 발사체와 같은 것이었다.
“자, 지금부터 이것들을 구역을 나눠 던질 거거든? 이게 바로 자격이야. 보물의 소유권을 주장할 자격. 기한은 이틀 후 정오까지. 그때 이걸 들고 있는 녀석만이 라미레스을 놓고 싸울 수 있는 거야.”
내 의도는 별 게 아니었다. 구역을 나누고, 여기 있는 이들을 퍼뜨려 놓는 것.
또한 강자들끼리 서로 짝을 맞춰 상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
그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이 쟁탈전을 간결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는 별개의 이유가 하나 더 있기도 했지만.
그때였다.
“그 규칙을 어떻게 믿지?”
지무스가 질문을 던져왔다.
“어차피 지금 라미레스는 네가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가 멀리 떨어진 사이, 네가 도망이라도 가면?”
“답답한 소리하네. 아까 내 소개 못 들었어? 나는 이곳의 지배자야, 내가 가긴 어딜 가? 그리고 걱정 말라고, 라미레스는 여기 허공에 계속 뛰어둘 테니까.”
“······.”
“규칙을 정한 건 이 사달을 빨리 좀 끝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어중이떠중이들은 빨리 좀 정리하고, 진짜 주인이 될 녀석들만 남아 한판 붙어보자는 거지.”
이후엔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이어,
“자, 던진다.”
나는 각기 동, 서, 남쪽을 향해 구체들을 던졌다.
그러나 당장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다들 여전히 상황을 살피는 듯했다.
“분명히 말했어. 기한은 이틀 후 정오야. 구체를 가지고 공장지대로 오면 돼. 이틀 후 거기 모인 네 명 중 하나가 라미레스를 가지게 될 거다.”
그때 누군가가 물었다.
“네 명?”
“아, 지금 나도 하나 가지고 있어. 뭐, 내가 만만하다 싶으면 내 걸 노리면 돼.”
나는 품속에서 구체 하나를 꺼내 보인 뒤, 흔들어주었다.
이어,
“아, 키리코! 넌 나한테 와라.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너 하나만 와. 멍청한 번개쟁이 네 친구까지 데려오진 말고.”
그렇게 소리치곤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물론, 신경은 온통 등 뒤에 둔 채였다.
이제 어떻게 될까.
이윽고,
스스슥-.
지무스와 부하들이 동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칼 자이드가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좋아!’
이어 많은 모험단들이 천천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가 방향을 지정한 채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당장은 달려 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곧이어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사이보그 겔롭이 떠났고,
“레오, 어디서든 무조건 하나는 가져와라.”
“키리코, 너도 저 주걱턱 녀석 혼쭐을 내버리고 구체를 가져와!”
“그냥 덤비지 말고 있으세요, 멍텅구리 키리코 씨. 구체는 우리가 알아서 가져갈 테니. 그리고 주걱턱이 뭐라고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요. 알겠죠?”
“키, 키리코 씨······ 그냥 같이 가시는 게······.”
레오 모험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중 키리코만이 유일하게 나를 따라왔다.
됐다.
여기까진 성공이었다.
다만, 하나의 변수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로니얀.
유일하게 강자들 중 그만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사실 저자의 움직임이 가장 변수였다.
원작대로라면, 레오와 지무스가 붙고 칼 자이드와 겔롭이 붙을 것이다. 당장은 코미어가 출진하지 않을 테니, 그로니얀은 남은 한 쪽으로 가면 된다. 그럼 자기 혼자 편하게 구체를 차지할 수 있다.
사실 영역을 네 개로 나눈 것도 바로 저 녀석 때문이었다. 세 개로 나눌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될 경우 저 녀석이 무조건적으로 내게 올까봐서.
솔직히 저 녀석을 키리코와 동시에 상대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가라, 그냥 다른 데 가.’
물론 티는 전혀 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아주 태연한 척 걸었다.
가라······ 가!
바로 그때,
“······휴.”
녀석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동쪽. 어떠한 강자도 가지 않은 방향이었다.
딱 맞게 나눠졌다.
여기까진 계획대로였다.
“지금부터가 문제네······.”
*
공장지대.
쟝의 창고 앞.
“주걱턱! 늦었잖아!”
“한참을 기다렸다고!”
“무슨 말을 그러고 하고 있었던 거야!”
도깨비들은 이미 먼저 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따라 이곳까지 온 녀석들은 모두 일흔 셋.
엄청나게 많은 수였다.
고마운 걸 넘어, 신기하기까지 한 숫자였다.
나는 곧바로 녀석들을 구분 짓기 시작했다.
“자, 잘 들어. 자기가 장난꾸러기 신, 또는 거짓말쟁이 신을 받았다. 이쪽.”
그러곤 내 왼쪽 편을 가리켰다.
이어,
“허풍선이, 변덕쟁이는 가운데. 그리고 훼방꾼 신을 받은 녀석들은 내 오른쪽으로 서.”
나머지 녀석들 또한 정돈시켰다.
물론, 한 번 만에 끝날 리는 없었다.
“진짜 장난꾸러기들이랑 거짓말쟁이들, 헛짓거리 하지 말고 제대로 다시 서. 치누아비, 구분 좀 해줘. 제대로 안 선 녀석들한테는 장난감 없다.”
그러자 오른쪽 훼방꾼 라인에 있던 녀석들 대부분이 우르르 이동했다.
참나.
이어, 나는 도깨비들에게 준비해뒀던 ‘장비’들을 지급했다.
“아니, 이게 뭐야 주걱턱!”
“이 자식아, 이걸로 뭘 하려고!”
“당장 총을 내놔, 이 자식아!”
니들에게 퍽이나 주겠다.
“됐고, 잠깐 기다리고 있으라고.”
이어 나는 치누아비에게 도깨비들을 맡긴 뒤, 홀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부터가 핵심이었다.
홀로 된 나는 집중한 채, ‘그’를 불렀다.
‘거기 있습니까?’
‘저기요?’
‘듣고 있습니까?’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뭐냐?
잠시 후, 훼방꾼 신에게서 응답이 들려왔다.
‘천 명 이상의 인원, 그리고 그들 모두가 공통된 규칙 아래 움직이는 것. 요구하신 상황조건은 모두 충족했습니다. 알고 있으시죠?’
-뻔뻔한 녀석 같으니라고. 자기가 규칙을 만들어 놓고선, 뭐? 조건을 완성했다고?
‘문제될 게 있습니까?’
훼방꾼 신이 요구한 ‘특정상황에 대해서 주기적으로 훼방을 놓아야 한다’는 구체적 조건이 바로 저 두 가지였다.
숫자와 규칙.
-흠, 그래서 뭐?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죠.’
그리고 그 조건에 부합되는 상황에서 내 행위의 목적이 분명할 시,
-부탁이라······ 훼방의 목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거야. 알지?
‘그럼요.’
-말해 봐.
나는 훼방꾼 신에게 능력이든, 무기든, 뭐든······ 한 가지를 요구할 수 있다.
“저 둔갑술 좀 쓸 수 있게 해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