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라미레스 쟁탈전(7)
***
출렁-.
나는 퍼뜩 앞으로 나아가려다 말고,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이물감에 멈칫했다.
“음?”
이어 자연스레 밑을 내려다 본 나는, 아주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어, 엇!
그 뭐랄까······ 제법 괜찮은 풍경이 펼쳐졌다고나 할까.
흠흠.
당장 수행해야 할 일에 집중한 나머지, ‘전혀 익숙지 않은 신체를 경험하는 것’에서 발생할 ‘위화감’의 존재를 전혀 상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여,
“크흠, 흠흠······.”
나는 본의 아니게 잠시간 얼굴을 붉히고 있어야 했다.
이 여자 제법이네, 제법······.
물론 익히 알고 있는 바이긴 했다.
모험왕 내 여자 캐릭터의 외형은 작가 특유의 뚝심이 관철된 분야가 아니던가.
버진시티에 출연했던 최초의 여성캐릭터 ‘마담 로즈메리따’를 시작으로, 여성 캐릭터의 신체적 스펙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음흉한 취향이 십분 반영된 모습이었다.
자그마한 얼굴 아래로 앞섬이 터질 듯 빵빵한 가슴에, 개미마냥 잘록한 허리, 그리고 황당하리만치 긴 롱다리까지.
그야말로 만화 캐릭터다운, 상당히 비현실적인 체형이랄까.
그러니까 그게 지금······ 내 현재였다.
물론 이전까진 별 대수롭지 않게 보던 게 사실이었다. 아니, 아예 의식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하는 게 조금 더 적확한 표현이겠지.
헌데 직접 그 몸이 되니, 이게 좀······ 느낌이 또 달랐다.
느낌이 이게 그······.
순간,
찰싹!
이성의 부름을 받은 두 손바닥이 내 뺨을 후려갈겼다.
‘이런 씨······ 정신 차려, 정신!’
나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이건 소년만화다.
만화 캐릭터일 뿐이라고.
이건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지금 내가 이럴 때냐. 정신 차리자.
차리라고 쫌!
곧이어,
“······오케이.”
나는 내면의 번뇌를 잠재우곤, 다시금 눈앞의 목표물을 확인했다.
라미레스.
물론 저걸 가져오는 것 자체는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애당초 드론의 컨트롤러가 내 손에 있었으니.
그냥 전원스위치만 내리면 된다. 그럼 그냥 알아서 땅으로 픽 떨어질 테니까.
그때 뛰어올라 잡으면 끝이다. 뭐, 약간의 연출은 곁들여야겠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다음 계획이 없었다.
실제 원작에서는 타냐가 라미레스를 훔친 뒤, 쫓기고 쫓기다 레오의 보호 아래로 들어간다. 하지만 내가 이를 그대로 행하기엔 문제가 좀 있었다.
일단, 얼마 가지 않아 들킬 거라는 것.
짐작건대 타냐란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전에, 여성의 자연스런 행동이나 습관 등을 흉내 내지 못해 걸리게 되지 않을까. 멍청한 레오나 순박한 얀은 몰라도, 시아나란 뛰어난 해독가의 눈을 피할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냐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리스크 있는 행위였다.
자칫, 그녀의 ‘존재가치’를 빼앗아 버릴지도 모르니.
더군다나 ‘라미레스 탈취’는 적어도 원작 내에선 이야기 전개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이로 인해 타냐와 레오가 다시 한 번 인연을 맺게 되고, 타냐가 레오 모험단의 일원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근데 이걸 내가 대신한다?
‘······위험해.’
사실 시선을 끌기 위해 한다고는 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이건 그만큼 위험한 행동이었으니.
하여, 실제로 나는 이를 누구에게도 알릴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당장은 독자들에게조차.
물론 타냐로 둔갑한 내 모습이 독자들에게 엄청난 이슈가 될 수 있다곤 생각했다. 어쩌면 또 한 번 인기몰이를 하게 될지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타냐의 지위를 지키는 것이었다. 이 이상 원작의 전개가 뒤틀리는 건 나로서도 사양이었으니까.
고로, 내가 할 일은 라미레스를 훔쳐다 얼른 타냐에게 넘기는 일이었다.
전개가 요상하게 돌아가고는 있었으나, 어쨌든 타냐의 캐릭터성이 변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 또한 현재 라미레스를 어떻게 해볼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즉, 주면 받을 거라는 것.
문제는 아직 그녀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찌된 게 여태 코코아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도시가 꽤 넓다고는 하나, 코코아가 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대체 어디서 뭐하고 있냐고······.’
하지만 더는 지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재차 마음을 먹었다.
‘몰라. 일단 가져오고 생각하자.’
당장의 계획이야 별 게 없었다.
라미레스를 탈취하자마자, 도깨비 은막으로 몸을 가린다.
이어 다른 모습을 둔갑한 뒤, 이곳을 벗어난다.
앞으로의 일은 그때 다시 생각하는 걸로.
삑삑-.
나는 일단 드론의 이미지 확대 기능부터 멈췄다. 다음으로, 접근금지 경고기능을 켰다. 이는 일정 거리 내에 대상이 접근하면 경고음이 울리는 기능이었다.
이번 작업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잡히진 않되, 최대한 ‘눈길을 끄는 것’이었다. 그래야 그로니얀과 겔롭의 전투에 정신이 팔려 있을 사람들의, 또한 독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지 않겠는가.
이어,
“타핫!”
나는 곧장 양팔에 달린 장비를 가동시켰다.
왼팔에 부착된 에너지 포론 출력을 조정하여 몸을 띄우는 데 사용하고, 오른쪽에 달린 에너지 포로는 이제······.
펑!
펑!
퍼퍼펑-.!
폭죽마냥 주변을 몇 차례 갈겼다.
물론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용도였다.
잠시 후, 공중으로 솟구친 내가 드론까지 10m가량만을 앞뒀을 즈음이었다.
삐용-!
삐용-!
드론이 경고음을 발산했다.
나는 그즈음 주위를 슬쩍 둘러봤다.
공장과 폐건물들에 가려 제대로 확인이 된 건 아니었으나, 대충 어느 정도 눈치들은 챈 듯했다. 어디선가 자꾸만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 봐라, 뭐 하냐, 도둑이다, 죽여라 등등······.
“오케이.”
어그로는 충분히 끈 듯했다.
이제 가서 가져오기만 하면 된······.
바로 그때였다.
“멈춰! 이 도깨비 자식아!”
갑작스레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엄청나게 가까운 곳에서.
‘뭐야, 벌써? 누가 대기하고 있었나?’
나는 급히 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봤다.
이어,
“거기서 떨어져!”
가히 빛과 같은 속도로 내게 접근한 ‘그것’을 보곤 경악했다.
······위험!
나는 급히 에너지 포를 반대편으로 사출해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곧장 습격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황당했다. 아는 녀석이었다.
“피해? 역시 평범한 도깨비는 아닌 모양이네. 대체 넌 뭐하는 놈인데 타냐를 흉내······”
“구구?”
놀랍게도 구구였다.
“내가 순찰 중이지 않았다면 깜빡 넘어가······ 엉?”
“너 뭐 하냐 여기서.”
저 멍청한 양아치 비둘기는 내가 본인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란 듯한 기색이었다.
“뭐, 뭐······ 타, 타냐?”
“타냐는 무슨.”
“그, 그렇지! 타냐가 나보다 먼저 여기 있을 리가······ 아니, 근데 그럼 넌 뭐······.”
나는 전혀 감도 잡지 못하는 녀석을 위해, 친절히 하나하나 힌트를 알려줬다.
“너 이름 알고, 당연히 타냐를 알고 있으니 그 모습을 흉내 낸 사람. 아직도 모르겠냐? 너 새장에서 풀어준 사람인데.”
그제야,
“뭐. 뭐야! 서, 설마······ 주걱턱?”
구구가 놀라 소리쳤다.
“그래, 임마. 너 어디 있었던 거야?”
“그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타냐 행세는 왜 하는 건데? 그것도 엄청······ 감쪽같이.”
“아, 이거? 그냥······ 관심 좀 끌어볼까 해서.”
“뭐? 왜”
“너는 왜 여기 있는 건데? 왜 지키려고 하는 거야 이걸?”
그러자,
“어······ 그게, 타냐가 이걸 좀······.”
“감시하고 있으래? 누가 훔쳐가나 안 훔쳐가나?”
“그냥······ 뭐.”
이 녀석 이거, 그간 타냐에게 쭉 붙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부탁을 받고, 이걸 훔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던가.
역시나 타냐 또한 호시탐탐 이걸 노리고 있었던 듯했다. 어쩌면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조만간 타냐가 움직였을지도.
하지만 나는 내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게 언제가 됐든, 지금보다는 늦으니까.
이미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걱정 마. 나도 이거 타냐 줄려고 하는 거니까?”
그러자,
“정말? 이 자식! 그래, 난 믿고 있었다고! 넌 좋은 놈이야!”
구구가 뛸 듯이 기뻐했다.
짜식, 오버는.
이어,
“됐고, 일단 가자. 타냐 어디 있는지는 알지?”
“그럼, 저기 왼쪽 건물을 중심으로 돌면······.”
나는 얼른 라미레스를 챙긴 채 밑으로 하강했다. 벌써부터 쫓아오는 녀석들이 생긴 듯했다.
“됐고, 일로 와. 내 어깨에 타.”
그러곤 예전과 같이 구구를 어깨 위에 올린 채, 도깨비 은막을 뒤집어썼다.
“가자.”
*
구구가 안내한 웬 허름한 폐공장 잎에서, 나는 또 한 번 아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번엔 둘이었다.
“형님!”
“주걱턱!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 너희 왜 아직 여기 있냐?”
내 말에서 질책의 뜻을 읽은 이는 둘 중 하나에 불과했다.
“아직? 우리 어디 갔어야 돼?”
“누가 길을 흐트러뜨리는 듯싶더군요.”
“······길을?”
길을 흐트러뜨린다는 건 길잡이들을 견제하는 행위로, 작가가 엄연히 ‘전문분야’로까지 소개한 능력이었다.
다만 이 개념이 정식으로 소개된 것은 이야기 중반부가 훨씬 지난 다음이라, 벌써부터 이걸 할 줄 아는 녀석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그게 타냐일 줄은.
“아, 그건 아마도 그 고양이 녀석이 한 짓일 거야. 열심히 땅을 덮고, 묻고 하더라고.”
“고양이? 아······.”
네로를 말하는 듯했다.
“그 녀석도 타냐와 함께 있냐?”
“어어. 실은 그 녀석이 먼저였어. 아, 다 왔다.”
마침 구구가 목적지로의 도착을 알렸다.
우리는 곧장 폐공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익-.
타냐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우리를 보곤 무척이나 놀란 얼굴이었다.
“구구! 지금 무슨······.”
그녀의 물음에 대답한 건 코코아였다.
“안녕, 타냐. 오랜만이야. 여기 코코아비가 왔어. 그리고 이쪽은 치누아비야.”
“반갑습니다, 타냐.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길잡이시라구요? 저는 주걱턱 모험단의 치누아비라고 합니다.”
“······뭐, 뭐?”
“통성명은 무슨.”
나는 둘을 물린 뒤, 곧바로 타냐에게 다가갔다.
“할 말이 있는데.”
그러자,
“이, 이이······ 빌어먹을 주걱턱 자식!”
타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라미레스 가져간 거는 미안.”
“보상해! 아니, 내놔!”
마침 이야기가 빠를 듯했다.
“알았어, 자.”
나는 그러곤 라미레스를 내밀었다.
“······어?”
“미안해서 가져왔어.”
“어어······?”
타냐는 눈앞에 있는 라미레스를 잠시간 멍하니 바라만 봤다.
넋이라도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결국 나는 이를 직접 타냐의 손에 쥐어줘야 했다.
“됐지?”
“······.”
“근데 그거 알아?”
“······어?”
“너 이거 가지면 엄청 위험해진다는 거.”
그제야,
“······아아, 그렇지. 그렇겠지.”
조금쯤 정신을 차린 듯, 진지해진 얼굴로 타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받을 거지?”
나는 예의 삼아 물었다. 물론 싫다 해도 돌려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준다하면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물론. 하지만 네가 어째서 이걸 내가 주려고 하는지는 아직 말 안했어. 설마 정말 그냥 미안해서 그렇단 건 아니겠지?”
타냐가 대뜸 질문을 던져왔다.
“아, 이유?”
당연한 말이지만, ‘그로니얀에게 쏠린 이목을 돌리기 위해서’ 라든가 ‘원작의 네가 그러고 훔쳐버리니까’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하여,
“부탁할 게 좀 있어서. 그냥은 들어줄 것 같지 않으니 뭐, 선물을 챙기는 수밖에.”
이럴 줄 알고 따로 꾸며낸 게 하나 있었다.
“부탁?”
“내가 자그마한 상자 하나를 가진 게 있는데······ 내용물이 뭔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말이지. 네 고유능력이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
어째 반응이 뚱했다.
본인이 그걸 왜 해줘야 하는 표정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좀 흥미를 돋궈줬다.
“도깨비 우두머리한테 받은 거거든. 어떤 자그마한 함(函)인데, 전대 모험왕의 유물이 들어있다고 그러더라고.”
“저, 전대 모험왕의 유물!?”
“어때, 관심이 좀 생겨? 능력 발휘 좀 해볼래?”
실제로 이 ‘전대 모험왕의 유물’은 타냐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원작에서도 고유능력 [대도의 안목]을 통해 함 속에 들은 내용물의 정체를 유추하고, 이를 꺼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즈음,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샅샅이 뒤져!”
“여기에도 흔적이 있어!”
바깥에서 웬 고함소리들이 들려왔다.
각 모험단의 길잡이들이 라미레스의 위치를 추적해 온 모양이었다.
나는 곧바로 타냐를 돌아봤다.
“일단 그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몸부터 피신해야겠지?”
“······나 혼자 도망칠 수 있어.”
“역부족이지.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럼 어쩌라고······ 설마 너한테 붙으라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서로 불편하지 그건.”
“······그럼?”
“너 친한 녀석 따로 있지 않아? 잠시만 보호해달라고 하면······ 아마 거절하지 않을 텐데.”
곧이어 내 말뜻을 알아차린 듯,
“······레오?”
타냐가 하나의 이름을 꺼냈다.
“맞아. 그 녀석에게 잠시 몸 좀 의탁하고 있으라고. 내가 곧 찾아갈 테니.”
“근데 그건······ 내가 아무 말도 없이 떠났었는데······.”
표정을 보니, 대충 넘어온 듯했다.
“그런 걸 신경 쓸 녀석은 아니지. 너도 알 텐데.”
“······그런가.”
그때였다.
삐삐-.
송수신기가 울렸다.
하카의 연락이었다.
“어떻게 됐어? 전투는 끝났어?”
-전투요? 아, 검은 그림단 단주와 사이보그 말입니까? 그건 중단되었습니다.
“그래?”
이유야 뭐, 쉽게 짐작이 됐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약간 큰일 난 것 같은데요?
“움직였다니?”
-그로니얀이 당신을 주적으로 지목했습니다. 약속을 어겼다면서요.
“그래? 희한하네, 다들 봤을 텐데. 내가 훔친 게 아니라는 걸.”
나는 그러곤 타냐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이에,
“······응?”
타냐가 의문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봤다.
-라미레스가 반응하지 않았으니까요. 정확히는 라미레스를 달고 있던 그 장비겠지만. 일단 같은 편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전에 당신이 그 빨강머리 여자와 함께 움직이던 걸 본 이들이 꽤 있으니까요.
“흠······ 그래?”
-주적은 당신이라지만, 아마 공격대상은 여기 있는 인원들 외의 모두가 될 것 같습니다. 협력하는 자들 외엔 모두 제거하라. 지시사항이 제법 살벌하네요.
“······일단 알겠어.”
나는 연락을 끊은 뒤,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예상보다 녀석들의 움직임이 빨랐다. 이미 다른 구역을 ‘침공’할 준비는 끝마친 지 오래였던 모양이다.
그럼 나도 계획을 바꾸는 수밖에.
“들었지? 지금 서쪽에 있는 그로니얀이라는 놈이 그쪽 일대의 인원들을 모두 규합한 채 온다고 하네. 알지? 누군지.”
이에 타냐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좀 서두를까?”
사실 그 말은 필요 없었다.
타냐는 언제 고민했었냐는 듯, 이미 채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레오에게 가 있으면 돼? 네가 시간을 끌어주는 건가?”
“······아니. 본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계획이 변경됐어.”
그러곤 나 또한 곧바로 몸을 돌렸다.
“같이 가자고. 나도 녀석들에게 전할 말이 있으니까.”
*
30분 뒤.
지브란테 공장지대 밖, 어느 산속 동굴.
“근데 이러면······ 보호를 받는 게 아니라, 보호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타냐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레오를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흠······.”
사실 이는 나 또한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여태 레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을 줄이야.
아무리 타격을 입었다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정신을 차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건······ 뭔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지친 듯 동굴 한 면에 기대 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던 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충 들어보니, 얀은 아직 킹을 소환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또한 대단히 희한한 상황이었다.
상황도 그렇고, 시기도 그렇고. 각성을 해도 진즉에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레오의 늦은 회복, 얀의 늦은 각성.
이걸 종합해보니, 결론이 하나 나왔다.
이 녀석들은 보다 ‘적합한 때’를 기다리고 있다.
각성하기에 좀 더 알맞은 시기를.
물론 그것이 이들의 자유의지는 아닐 것이다. 아마 작가에 의해 ‘의도된 전개’의 일부겠지.
이쯤 되니 그제야 얼추 예상이 되었다. 앞으로의 전개와 작가의 의도가.
각성을 위해 때를 기다리는 주인공 일행.
때마침 등장한 ‘그로니얀’이라는 강대한 적.
심지어 개인이 아닌, 연합군의 형태.
‘오히려 좋아.’
어쩌면······ 작가가 원하는 바와 내가 원하는 바가 어느 한 지점에서 일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잠깐 얘기 좀 할까?”
나는 레오 일행을 모두 불러 모았다.
모두라곤 해도, 당장은 얀과 시아나 뿐이었지만.
이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해줬다.
그로니얀이라는 강력한 적이 여기 있는 모두를 제거하려 한다고.
이미 다수의 강자들이 그의 밑에 들어간 상태라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나는 그러고 묻는 시아나에게 간단히 대답했다.
“우리 공동전선을 좀 펼쳐 보는 게 어때?”
“······공동전선?”
사실 이 같은 상황을 오래 전부터 꿈꿔오긴 했다.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개인적으로 맞붙기엔 적이 좀 많은 것 같아서. 사실 이미 개인전 단계는 지나갔어, 이제 이거 팀 전이라고.”
“팀 전······.”
본래 라이벌 이라는 게, 서로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는 법이 아니던가.
나는 씩 웃으며 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간단해. 나랑 편먹자고.”
레오 모험단과 주걱턱 모험단.
바야흐로 두 모험단의 첫 번째 연대를 시작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