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라미레스 쟁탈전(8)
***
“좋아요.”
고작해야 30초나 되었을까.
생각보다 대답은 빠르게 나왔다.
위기상황임을 인지하고, 현재의 처지를 상기시킨 후, 곧바로 결단을 내린다면······ 글쎄, 저 정도의 시간이 나오는 걸까.
시원시원한 대답의 출처는 다름 아닌, 시아나였다.
얀은 어째선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주걱턱 모험단의 연대 제안, 받아들일게요.”
“결정이 빠른데?”
“빠를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
“······무르는 건 안 돼. 알지?”
“그럼요.”
나는 그러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아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면서도, 또한 위태롭게.
그 반짝거리는 두 눈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아주 잠시간 심장이 죄어드는 느낌이었다.
······.
흐음.
누구보다 소년만화의 캐릭터성에 빠삭한 까닭에, 나는 현재 그녀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절망, 좌절, 두려움, 고통, 실의······ 그리고 무력함.
이 ‘보물 라미레스 쟁탈전’은 사실, 누구보다 시아나에게 가장 힘이 들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다.
이유야 별 게 없다. 본인의 미약함이, 아니 ‘쓸모없음’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간이니.
스스로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품게 되고, 모험단 내에서의 본인 역할에 대해 고뇌하게 되며, 끝내 비관하게 되는······ 그런 에피소드랄까.
아마 쓰러진 레오나 부상을 입은 얀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워하는 게 실은 그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론, 이런 시련을 겪어야만 캐릭터가 성장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시아는 이번 에피소드를 계기로, 따로 본인의 무력을 상승시킬 방안을 찾게 되니.
역경과 고난이 없으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게 소년만화 속 클리셰······ 아니, 인생 전반에 통용되는 진리가 아닌가.
그리고 어쩌면······.
‘이미 성장했을지도 모르지.’
나는 그녀를 보며 약간 감동하기까지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눈 돌리지 않은 채, 목표를 직시할 수 있는 강인함.
위태로우나 그럼에도 끝내 쓰러지지 않은 채, 도리어 나아갈 길을 살피는 현명함.
단장의 부재 속에서도 방향감을 잃지 않고, 지체 없이 움직이는 저 결단력까지.
위기의 순간, 더욱 빛나는 캐릭터의 격이랄까.
“······.”
그즈음 나는 가슴 속 일렁거림을 조용히 갈무리했다.
나는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보며 즐거워 할 독자가 아니다. 나 또한 이야기의 일환이며, 내게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캐릭터의 성장에 순수하게 감동하고 좋아하고 감탄할 주제가 못 된다.
‘······아주 조금만 기꺼워하는 걸로.’
이윽고,
“흠흠. 좋아. 그럼 결정된 거야.”
나는 혼자만의 상념을 마무리했다.
그때였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어요.”
“조건?”
그녀가 다소 뜬금없는 소릴 꺼냈다.
“황당하단 생각이 들 거라는 거 잘 알아요. 연대요청에 고마워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먼저 조건을 언급하는 꼴이니. 하지만······ 그럼에도 조건을 내걸 수밖에 없어요. 맡은 바 역할을 다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조건이 뭔데?”
“간단해요. 레오를 치료해 주세요. 그리고 얀도. 또 당신을 만나러 떠난 키리코 씨도 데려와 주세요. 그가 혹 부상을 당했다면 치료까지 해주시고요. 나로선······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시아나는 그러곤 잠시간 고개를 떨궜다.
스스로 실의에 빠지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쓰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내,
“만약 그렇게만 해준다면······ 우리 레오 모험단도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게 조건이에요. 해주시겠어요?”
다시금 눈을 빛내며 말을 끝맺었다.
역시나, 아주 똑 부러지는 여자였다.
“난 또. 뭐 대단한 거 말하는 줄 알았네. 그 정돈 당연히 해주려고 했어. 다른 건?”
“고마워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고맙긴. 우리도 너희가 저쪽 편에 붙으면 곤란한 건 마찬가지거든. 사실 녀석들의 주된 적으로 꼽힌 게 나라서 말이지. 오히려 함께 싸워줘서 내가 더 고맙다고.”
“······그럼 다행이고요.”
“그래, 그럼 말 나온 김에 바로 시작하지 뭐.”
그러곤 나는 곧장 키리코의 고유능력을 발동시켰다.
[작열하는 여섯 탄환]이어 내 허리춤에 빛을 머금은 두 자루의 은색 리볼버가 생겨났다.
나는 이들을 빼든 뒤, 동시에 약실을 회전시켰다.
촤르륵-.
탁!
준비된 탄은 당연지사 ‘치유’였다.
나는 곧바로 두 리볼버의 총구를 레오에게 겨눴다.
여태 레오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물론 작가의 ‘불순한 의도’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원작에 비해 보다 과도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고나 할까.
다만 기본적으로는, 시아나의 말마따나 물리적으로 치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따져봤을 때 아마도 작가가 노린 건 돌아온 키리코에 의한 치유겠지만······ 이 정도는 내가 해줘야지.
그러고 막 탄환을 발사하려는데,
“아, 안 돼!”
갑작스레 얀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막아서는 것이었다.
“응?”
“뭐, 뭐하는 거예요! 레, 레오를 해치려거든 나부터······.”
“얘 지금 뭐라는 거야?”
그때 마침,
“얀, 그런 게 아니니 진정해요.”
시아나가 가만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보아하니, 이제껏 정신을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참나.”
하긴 뭐, 피로하긴 했을 것이다. 심지어 킹도 불러내지 못한 채 몰려드는 적들을 막아서고 있었을 테니.
“주걱턱 씨가 우리 능력을 흉내 낼 줄 안다는 거는 다 아는 사실이니까요. 키리코 씨의 고유능력을 흉내 낸 거겠죠.”
“맞아, 당장 치료를 위해 쓸 만한 능력이 이것뿐이라. 모양새는 희한해도 효과는 나쁘지 않을 거야. 본 주인이 쓰는 것보다도 말이지.”
물론, 녀석이 각성에 성공한 상태라면 얘기는 약간 달라지겠지만.
이어,
타탕탕탕!
타탕탕탕!
나는 속사로 치유X치유 탄을 다발로 갈겼다.
순간적으로 힘이 쏙 빠질 정도였다.
“휘유······.”
이거 맞고도 정신 못 차리면 뭐, 개연성의 오류라 봐야지.
나는 잠시간 숨을 고른 뒤, 고개를 돌렸다.
이제 다음으로,
“얀, 딱 대.”
“예? 아, 그······ 넵.”
탕탕탕!
탕탕-!
얀에게도 나의 은혜로운 탄환을 갈겨줬다.
이어,
“모, 몸에 힘이! 고, 고맙습니다, 주걱턱 씨······.”
“그래, 알았어. 좀 쉬고 있어.”
나는 서둘러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들의 감사인사를 음미하는 것보다도 내겐 더욱 시급한 일이 남아 있었으니.
“후······ 어디 보자.”
나는 먼저 현 상황부터 정리했다.
일단 그로니얀의 편으로 반이 넘어갔다.
인원수로만 따지자면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미 네임드들이 많이 넘어간 상황이 아니던가. 반이라고 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 이제 나머지 반을 우리 쪽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건데······.
이게 약간 답이 없었다. 방법의 문제라기보다는 시간의 문제랄까. 언제 다 접촉해서 언제 다 설득하고 있냐고.
“흐음······.”
그러고 잠시간 고민하던 중,
‘아냐, 가만.’
머리를 ‘땡’ 하고 울리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대규모 전면전이 정말로 벌어질까?
이는 한 번 따져봐야 할 문제였다.
애당초 그로니얀이 세력을 늘리려 썼던 방법이 우두머리끼리의 일대일 승부가 아니던가. 다른 구역을 침공한다고 해서 그게 달라질까?
또한 기본적으로 이 모험왕 작가 자체가 그런 대규모 전면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전에 한 번은 작가 인터뷰에서 본인이 그 이유에 대해 직접 밝힌 적이 있는데,
장면 연출이 어렵고,
캐릭터의 개성이 잘 드러나지도 않을뿐더러,
그냥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라고.
아마 이번에도 같지 않을까?
그렇다는 건, 예상컨대 ‘강자’들의 대결로 구도가 좁혀질 거라는 뜻이었다.
저쪽 편의 ‘진짜 강자’들이야 셋뿐이었다.
그로니얀을 필두로 지무스, 그리고 겔롭.
그 외 중간보스 급 네임드들이 있긴 하지만, 일단은 제쳐두기로 하고.
셋 정도면 우리도 충분히 수를 맞출 수가 있었다.
나, 레오, 그리고 키리코.
물론, 결전의 시간까지 준비가 완료된다는 가정 하에 말이지만.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칼 자이드.
문제는 이 녀석이었다.
‘······절대 우리 편은 안 해줄 것 같은데.’
솔직히 낙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었다.
내가 겔롭인 척 하며 부딪치지만 않았어도 또 모르겠으나, 지금은 글쎄······.
물론 어느 쪽으로도 확신할 순 없었다. 곧 죽어도 1인 모험단을 유지하는 녀석이 아니던가. 우리뿐 아니라, 저쪽으로도 붙지 않을지도.
다만, 불길한 예감이 좀 든다는 것.
‘그로니얀과 칼 자이드를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라······.’
설사 코미어에게 협력을 요청한다 해도 쉽진 않을 듯했다.
각오는 해두는 수밖에.
“······몰라.”
하지만 당장 이를 걱정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코코아!”
당장 해야 할 게 산더미였으니.
“코코아! 어디 있어? 가자!”
그때였다.
“······어디를 가겠다는 거죠?”
이를 듣고 나타난 건 코코아가 아닌, 시아나였다.
그녀는 웬일인지 다소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말은 안했지만, 내게 꽤나 의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떠난다고 하니, 대번에 저렇게 안색이 어두워지는 걸 보면.
“키리코 데려오라며?”
“아······.”
“걱정 마. 금방 올 테니까.”
“······그래요.”
이어, 나는 그즈음 눈을 부비며 느릿느릿 걸어오던 코코아를 들쳐 엎은 뒤,
“응? 뭐 하는 거야?”
“꽉 잡아. 달린다.”
산 아래로 질주했다.
*
어라? 이쪽은?
하카는 잠시간 의문에 빠졌다. 본대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걱턱 씨의 근거지는 북쪽이다.
그리고 단주의 아들이 속한 레오 모험단의 근거지는 동쪽이고.
헌데 웬걸, 본대는 그 외의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남쪽.
하카는 그곳에 버티고 있는 이의 얼굴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사자갈기 같은 회색 머리칼을 지닌 매서운 인상의 사내.
“······칼 자이드.”
하카는 나직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로니얀이 바로 그 칼 자이드를 먼저 찾아갈 줄이야.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는데?’
웨스트랜드 내 유일무이한 1인 모험단.
그럼에도 가장 강력한 모험단으로 거론되는, 회색사자 칼 자이드.
실제로 주걱턱이 이스트랜드에 가 있는 동안 하카가 가장 주시하던 이가 바로 그였다.
딱히 별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가장 눈에 띄었기 때문에.
솔직히 주걱턱 씨가 어째서 레오 모험단을 지켜보라고 했는지가 의아했을 정도였다.
단연 돋보이는 건 다름 아닌 그였으니.
그렇게나 강하고, 홀로 고고한 인간.
제아무리 검은 그림자의 단주라 해도 칼 자이드를 쉬이 거꾸러뜨릴 수 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정말 둘이 한꺼번에 끝장나는 거 아냐?’
하카는 주걱턱에게 연락을 취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아냐, 좀 더 확실해지면.’
잡았던 송수신기를 다시금 놓았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거리를 두고 천천히 압박을 가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놀랍게도 그로니얀은 곧장 칼 자이드에게 접근했다.
게다가 칼 자이드 또한 전혀 피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외려 어디서 났는지, 여유롭게 차까지 음미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카는 앞쪽에 있던 간부의 그림자 속에 스며든 채, 둘의 대담을 지켜봤다.
“오랜만에 보는군. 클론시티 이후 처음인가?”
“······무슨 용건이지?”
“혼자 다녀서 그런가? 소식이 어두운 모양이군.”
이에 칼 자이드가 피식 웃더니, 주위를 슬쩍 훑었다.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꽤 많군.”
“어쩌다 보니.”
“나를 공격할 셈인가?”
“경우에 따라선?”
“훗······ 양들이 모여 봤자 양일뿐. 사자를 위협할 순 없다.”
그러자,
“눈썰미가 형편없군. 지금 네 앞에 있는 이가 양으로 보이는가?”
그로니얀이 처음으로 성을 냈다.
순간,
우우웅-.
공기가 진동을 했다.
어마어마한 거력이었다.
“······들개 정도는 되는가보군.”
자, 이제 어떻게 될까.
하카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제껏 그로니얀은 1대1 승부를 통해 모두를 무릎 꿇렸다.
단 한 번 사이보그와의 대전만이 확실한 승부가 나지 않은 채 끝났지만, 그 또한 반쯤은 승복한 상태였다. 그렇지 않다면 그로니얀의 뒤를 저렇듯 졸졸 따라다닐 이유가 없으니.
아마 칼 자이드에게도 비슷한 제안을 하지 않을까. 일대일로 대결해 지는 자가 이기는 자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으로.
헌데,
“제안할 게 하나 있는데.”
“제안?”
그로니얀의 입에서 나온 건,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동맹을 맺는 게 어떨까 싶어서 말이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공동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응?
당혹스러웠다.
놀랍게도, 저 그로니얀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것은,
“······상대는?”
칼 자이드가 이를 단칼에 거절하는 게 아닌, 조건을 물었다는 것이다.
“말해 뭣하겠나. 그 녀석, 주걱턱이지. 감정이 좋지 못하다고 들었는데?”
“흠······ 그럴 것 같더라니.”
······.
뭔가 잘못됐다.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지만, 하카는 그 순간 곧장 몸을 뺐다.
가만히 듣고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까.
한시바삐 빨리 알려야 했다.
그로니얀과 칼 자이드가 손을 잡았다.
*
“어디? 이쪽?”
“응.”
“여기 있다고? 흔적이 없는데?”
“아직 이런 것도 못 봐?”
“······.”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파워밸런스 조정 이후, 내 길눈이 전에 비해 더 떨어진 게 사실이었으니까.
즉, 코코아의 눈에 나는 발전을 멈춘 덜떨어진 녀석으로 보일지도.
그때였다.
탕탕-!
타탕탕탕!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총성이 들려왔다.
“오케이, 갔다 온다.”
“뭐? 잠깐!”
나는 목 위에 태우고 있던 코코아를 내려놓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곧장 달렸다.
곧이어,
“귀찮게 굴지 말고, 이제 뒤져라.”
웬 덩치 하나를 죽어라 밟고 있는 한 빨강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그간 고생을 제법 했는지 몸 곳곳을 피로 물든 붕대로 감고 있었으며, 두 눈에선 살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녀석의 뒤쪽엔 웬 인간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아마 녀석에게 덤비다 골로 간 이들인 듯했다.
‘휘유······ 살벌한데?’
저거(?)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물론 다 내 업보겠지만.
휘이익-!
나는 그제까지도 발길질에 여념이 없던 빨강머리를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곤,
“여, 기운 넘치는데? 잘 지냈어? 얼굴 좋아 보이네.”
살가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주걱턱?”
빨강머리가 하던 행동을 멈추곤 가만 내 쪽을 돌아봤다.
이어,
“주걱턱······ 주걱턱······ 이 주걱턱 빌어먹을 놈이!”
녀석이 이를 갈며 뚜벅뚜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딱 봐도 분노의 오라가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하하······ 화가 좀 많이 났나보네.”
나는 약간은 복잡한 심정으로 녀석을 지켜봤다.
이제 어쩐다.
사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도 계속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녀석을 ‘어떤 상태로’ 데려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1. 그냥 그대로 데려간다.
2. 각성 시킨 후 데려간다.
나는 키리코가 아직 각성에 이르지 못했을 거라 단정하고 있었다. 이유야 간단한데, 내가 아직 녀석과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 각성에 이르는 경우는 없다. 여러 난관을 거쳐, 최종관문을 돌파해야만 ‘성장요건’이라는 게 성립되는 법이다.
원작에선 카포네가 키리코의 각성을 위한 최종관문이 되었듯이, 여기선 내가 그 역할을 했어야 했다.
근데 뭐, 아직 안 했으니까.
1안, 2안 두 가지 다 장단이 있었다.
각성이 된 상태로 팀에 합류한다면, 앞으로의 전투가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승리 가능성도 높아지고, 사기도 오르고. 마음 졸일 필요도 없고.
또 내가 녀석을 각성시키는 게 원작의 전개를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다만 문제는, 일단 녀석을 각성시킨다는 것 자체에 위험요소가 크다는 점이었다.
저 머리끝까지 화가 난 녀석과 싸우다 자칫 누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 이는 그대로 팀의 전력소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불안요소가 하나 있었다.
바로, 우리가 싸운다고 했을 때 과연 메인 시점이 넘어오느냐 하는 것.
만약 안 넘어온다? 그것만큼 손해인 경우가 없다.
부상은 부상대로 입는데다, 심지어 나와 싸웠음에도 키리코가 각성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독자들이 보지 않으면 주인공의 각성이나 진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거의 공식과도 같은 불문율이다.
하여,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 순 없지.’
나는 1안을 택하기로 했다.
그냥 데려가는 걸로. 그래서 곧장 전투에 투입시키는 걸로.
어차피 나를 대신해 이 녀석을 각성시킬 녀석이야 그로니얀 쪽에 많으니까.
물론 이 또한 위험부담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녀석이 누구를 상대하느냐에 따라 각성은커녕, 뭔가 해보지도 못하고 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독자들이 못 볼 거란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니 뭐.’
오케이.
그렇게 막 결정을 내렸을 무렵이었다.
때마침,
“주걱턱!!”
키리코가 내 앞에 섰다.
온 몸에 가득 피를 묻힌 채, 쌍심지를 세운 모습이 아주 그냥······ 조폭이 따로 없었다.
“어······ 안녕?”
일단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내보인 채 웃었다.
어쨌거나 거국적으로 협력을 해야 될 사이가 아닌가.
실제로 몇 대 맞아줄 생각까지 있었다.
헌데,
‘근데 저건······ 맞으면 죽을 것 같은데.’
대뜸 녀석이 총구를 겨누는 게 아닌가.
게다가 모여드는 힘의 크기로 보건대, 각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잖은 성취가 있었던 모양이다.
등 뒤로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긴 말은 필요 없겠지. 덕분에······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
어쩔 수 없을 듯했다.
나는 일단 대화의 가능성은 접어둔 채, 리볼버부터 빼들었다.
저러고 살상용 탄을 들이대는 데 그냥 맞아줄 순 없으니.
일단은 제압하는 수밖에.
“그럼······ 얼마나 세졌는지 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