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정보길드
***
다음날 아침.
나는 날이 밝자마자 ‘얼간이 녀석들’로 향했다.
물론, 이 문 닫힌 주점을 와장창 뒤집어엎으며 꼬맹이를 내놔라 소리칠 생각은 없었다. 실제로 나는 이곳에서 그 꼬맹이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니.
짐작컨대, 이곳은 그 꼬맹이와 하등 상관이 없는 장소일 것이다. 녀석의 근거지도 아니고, 친분이 두터운 이들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외려 본인과 아무런 상관도 없기에 이곳을 약속장소로 잡지 않았을까.
내 생각에, 이 주점은 약간 범죄자들의 커뮤니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인 듯했다. 이곳의 위치나 모인 면면들로 봤을 때 딱 그러했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느 어두컴컴한 골목 내 위치한 주점, 그리고 그곳으로 모여드는 거친 눈빛의 사내들.
이는 곧, 개인 신상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 일부러 여길 약속 장소로 정했다는 뜻이었다. 빅시티 내의 범죄자들이라면 모두 이곳을 통한다 생각했을 테니.
다만, 그 꼬맹이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어디보자······ 정문에서 왼쪽이었던가?”
나는 굳게 걸어 잠긴 주점의 입구를 지나, 그 좌측에 있는 건물로 갔다.
곧이어,
“오케이.”
찾고 있던 게 눈에 들어왔다.
짙은 녹색으로 칠해진 문고리가 달린 자그마한 샛문.
나는 얼른 그리로 갔다.
그러곤,
톡. 톡. 톡-.
문고리를 잡고 세 번 들었다 놨다.
잠시 후,
“······누구?”
샛문 너머에서 웬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정보 좀 사러 왔는데.”
“······길드원 표식은?”
“없어.”
“그럼 비싸.”
“어차피 바가지인 주제에.”
“처음 보는 얼굴인데 못하는 말이 없군. 그래서 원하는 정보가 뭐야?”
“노란 악마.”
“······기다려.”
기다리란 말은 접수되었다는 말과 동일하다.
됐다. 약간 긴가민가하긴 했는데 성공이었다.
정보길드.
세계 전역에 퍼져 있으며, 돈만 주면 어떤 정보라도 구해다 준다는 설정의 비밀집단.
꼬맹이가 모르고 있던 한 가지. 그건 바로 본인의 신상을 숨길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이곳이 실은 정보길드의 근거지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어젯밤 ‘얼간이 녀석들’ 주점 간판을 보곤 깜짝 놀랐었다. 정확히는, 간판 왼편 구석에 있는 녹색의 물음표 문양을 보고.
이는 정보길드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반경 10m이내 접선장소가 있다는 걸 뜻했다. 물음표가 똑바르다면 좌측에, 뒤집혀 있으면 우측에 있다는 설정이다.
이들에게 의뢰하는 방법은 간단한데, 녹색 문고리가 달린 샛문을 찾은 뒤 세 번 노크하면 된다.
그럼 잠시 후,
“큼큼. 거기 있냐?”
이처럼 샛문 너머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말해.”
이어, 늙수그레한 음성이 꺼낸 말은 꽤나 놀라운 것이었다.
“노란악마는 2급 정보다.”
“······뭐?”
“2급이라고. 지불능력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은데.”
“얼씨구, 그 꼬맹이가?”
“노란 악마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나 보군. 하지만 그렇다고 정보료가 낮아지지는 않아. 가격을 깎아볼 생각이라면 그냥 그대로 꺼지는 게 좋을 거야.”
“허······.”
솔직히 무척 당황스러웠다.
2급은 꽤나 고급 정보에 속했다. 정보길드의 분류등급이 5급부터 특급까지 존재했으니. 한 도시의 시장급 인물의 신상이 아마 이 등급에 속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만화의 초반부가 아닌가. 내가 알기로 메인 스토리에서도 2급 이상의 정보가 출현하는 건 최소 두 자리 수 챕터는 넘어가야 했다.
황당함이 들 지경이었다. 그 꼬맹이가 그렇게나 비밀스런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고?
때마침 늙수그레한 음성이 채근해왔다.
“돈 없으면 꺼지라고.”
“······돈은 있어.”
“보여줘 봐.”
“속고만 살았나.”
돈이 있다는 건 거짓이 아니었다.
실은 어젯밤, 꼬맹이를 만나러 가기 전 금덩이와 돈다발 몇 개를 따로 꿍쳐뒀었던 것이다.
올곧이 반을 떼어주는 게 아까웠다기보다는, 꼬맹이가 가진 특수능력의 정밀함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게 컸다. 걸리면 도로 넣으면 될 일이고, 안 걸리면 그냥 땡이고. 설마하니 시전자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데 저주가 발동될까 싶었던 것이다.
녀석이 느닷없이 자루를 바꾸겠다고 말했을 때 별 말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 이 때문이었다. 걸린 줄 알았으니까.
그때 괜히 움츠러든 채 전전긍긍해 있었다는 사실이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가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대범하게 빼돌려 놓는 건데.
“······후.”
아냐.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잡아 족쳐 다시 토해내게 만들면 그만이다.
나는 곧바로 가진 돈의 일부를 꺼내 슬쩍 보여줬다.
“차고 넘치지?”
“100만 골드라······ 정보의 양이 많진 않으니 얼추 가격은 맞겠군. 건네.”
“정보부터.”
“어린놈이 흥정은.”
“얼굴 까보던가. 지금 그거 네 목소리 맞아?”
그러자 늙수그레한 음성이 한 차례 껄껄거리더니, 다시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양하지. 그럼 먼저 반만 넘겨. 정보의 반을 줄 테니까. 이후 다시 반반 교환이다.”
“반이라······.”
더 뻗대도 소용없을 듯했다.
내가 50만 골드를 건네자, 늙수그레한 음성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노란 악마. 10살 전후로 추정. 이곳 빅 시티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1년 전쯤. 종종 함께 행동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어느 조직의 일원으로 판단됨. 다만 이 조직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건 없음.”
“조직이라······ 어쩐지.”
그제야 뭔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암만 만화 속 세상이라지만, 꼬맹이 혼자서 금고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CCTV를 조작하고, 폭발물을 설치해 터뜨리는 등의 행동을 했다기엔······ 솔직히 좀 말이 안 되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꼬맹이가 가진 특수능력들 또한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저주, 가죽주머니, 자루를 들어 올릴 때의 그 힘······ 별도의 공급책이 없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노란 악마의 주요 출몰 장소로는 이곳 ‘얼간이 녀석들’과 은행, 금은방, 특수물약 상점 등이며, 가면을 쓰고 돌아다닐 때가 많음.”
이를 끝으로 늙수그레한 음성은 입을 다물었다.
“뭐야, 끝이야?”
“끝이다. 물론 아직 반이 남긴 했지. 들으려면 돈을 내.”
“고작 이 따위가 50만 골드짜리 정보라고?
“말했잖아. 정보의 양이 많진 않다고.”
“허······.”
“더 들을 거야 말 거야.”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 녀석이 지금껏 떠든 내용도 딱히 가치가 있다고 보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남은 정보 중에 그 녀석의 현재 위치가 있나? 아니면 실거주지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는데, 늙수그레한 음성은 선뜻 대답해주었다.
“없다. 알아내려면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시간과 돈이 들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직접 의뢰는 굉장히 비싸다 .네 주제에 감당하기 힘들 걸.”
“······짜증나네.”
그때였다.
“다만, 남은 정보 중에 그걸 유추해볼 수 있을 만한 게 있긴 있다.”
“그게 뭔데?”
“돈을 내. 그럼 알려주지.”
“······.”
별 수 없을 듯했다. 대안이 없으니.
내가 돈을 건네자, 늙수그레한 음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운이 좋군. 남은 정보는 하나뿐이지만 이게 99만 골드짜리였거든. 노란 악마가 속한 조직의 인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가 세 곳 있다. 마침 그중 한 곳에서 오늘 새벽, 노란 악마가 목격되었다더군.”
“엇! 정말로?”
과연 99만 골드짜리라 할 만한 정보였다.
“그게 어디지?”
조바심이 나 얼른 물었다.
그런데 이어진 대답이 황당했다.
“지불된 금액에 대한 정보는 여기까지. 정확한 위치를 알고 싶다면 돈을 추가로 내.”
“아니, 알려준 게 없잖아?”
“녀석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는 암시 또한 정보다. 돈이 없으면 관두고.”
“······.”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쓰벌! 얼만데!”
*
「기묘한 모험을 앞둔 이들을 위한 카페테리아」
나는 정면의 다 무너져가는 허름한 건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곳 지하에 위치한 이 요상한 이름의 카페가 바로, 무려 50만 골드를 추가로 지불하고 얻은 정보였다.
저기 꼬맹이와 그 뒷배가 있다.
“다 뒤졌다 진짜.”
나는 정보길드에서 웃돈을 주고 구입한 [이얍, 세져라! 강한 힘 물약]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특수물약 상점엔 차마 다시 갈 수가 없었다. 물품을 구매한 것만으로 은행에 경고 연락을 돌린 놈들이 아닌가. 투명인간에게 은행이 털렸다는 소리를 듣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아마 내 몽타주가 곳곳에 걸려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2배 가격으로 구매하게 된 지속시간 30분짜리 파워업 물약.
솔직히 아까워 죽을 것 같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거라도 있어야 그나마 좀 부담을 덜 수 있을 테니.
물론, 무려 ‘첫 챕터의 등장인물’인 내가 한낱 배경에 불과한 녀석들에게 겁먹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대해야 할 적이 다수인데 반해 나는 혼자고, 또 녀석들의 실력도 잘 모르는데다, 어차피 도둑맞았던 ‘내 것’을 다시 챙겨가려면 힘이 좀 강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전신으로 이질적인 기운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오······ 근육 빵빵!”
나는 상승된 힘을 확인해볼 겸, 마침 옆 길가에 나 있던 커다란 나무로 다가갔다.
안아보니 간신히 손끝이 닿을락 말락할 두께였다.
‘되려나?’
나는 나무기둥을 꽉 끌어안은 채 그대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쑤욱-.
그다지 힘을 쓰지도 않았는데 나무가 그대로 뿌리 채 뽑혔다.
“좋아.”
이 정도면 저 멋모르고 날뛰는 조직 하나 정리하는 덴 충분하리라.
저 듣보 조직 접수하고, 원래 내 돈에다 저것들 금고까지 탈탈 털어서 정보길드 도둑놈들에게 퍼준 돈 수백 배로 되찾는다.
나는 오늘의 목표를 되새긴 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막 입구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웬 남자 둘이 나를 막아섰다.
“정지.”
“오늘 가게 영업 안합니다.”
근데 느낌이 약간 묘했다. 건들거리는 게 아니라, 꽤나 절도 있게 나를 막아서는 것이었다. 심지어 존댓말까지.
‘어······ 잠깐만.’
순간 싸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이 세계에서는 건들거리는 놈일수록 웬만하면 더 약하기 때문이다. 달리 클리셰 범벅의 소년만화겠는가.
흐음.
‘에이, 그래도 내가 더 세겠지.’
나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건 너네 사정이고.”
그러자 둘의 반응이 갈렸다.
“······뭐냐 이건. 죽고 싶냐?”
“됐어, 가라. 봐주는 건 한 번뿐이야. 두 번은 없다.”
말리는 놈이 더 강한 놈이다.
나는 판단이 선 즉시, 약한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날아드는 내 주먹에 반응하지 못했다.
퍼-억.
역시나 그리 강한 놈은 아니었다. 내게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강타당한 녀석이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나는 나머지 녀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반응 좀 볼까?
“보내줄 테니까 그냥 갈래? 한 번은 봐줄게.”
이 녀석의 강함 또한 클리셰에 따라 간단히 구분이 가능하다. 도발에 흥분하고 달려들면 약한 놈,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면 강한 놈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실수했어. 살아남지 못할 거다.”
녀석은 다만 신중히 눈을 빛낼 뿐이었다.
흐음.
마냥 쉬운 상대는 아닌 듯했다.
나는 긴장감을 유지한 채 녀석을 노려봤다.
녀석 또한 내 힘을 의식한 듯,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먼저 틈을 보인 건 녀석이었다.
대치가 길어지자 한순간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일행을 부를까 말까 고민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녀석의 명치에다 주먹을 꽂았다.
이어,
“크, 크헉······.”
외마디 비명과 함께 녀석이 허물어졌다.
“후······.”
결과적으로 싱겁게 끝나긴 했지만, 나는 내가 운이 좋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이 한눈을 팔지 않았더라면 쓰러지는 건 아마 내 쪽이었을 테니.
나는 따끔한 통증이 느껴지는 허벅지로 눈길을 돌렸다.
거기 자그마한 단도가 박혀 있었다.
“끙······.”
칼을 빼내니 피가 주르륵 새어나왔다. 만화 속 세상이란 걸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아찔함이 일 정도였다.
‘입구부터 이 정도라니······.’
소년만화의 아주 간단한 공식 하나. 어느 관문이든 입구를 지키는 건 가장 약한 놈들이다.
즉, 아래에 있는 놈들은 더 강할 거라는 뜻이었다.
그냥 다 때려 부수고 내 돈을 찾아올 생각이었으나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몰래 잠입해 들어가는 것으로.
“여기서 쓸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품속에서 투명화 물약을 꺼내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금덩어리 하나와 통으로 교환해온 것이었다. 아깝긴 해도 별 수 없었다.
이어 물약을 마시려던 그때, 갑작스레 머리를 스치는 물음이 하나 있었다.
잠깐, 그럼 잠입한 다음은?
“······.”
나는 급히 한 발자국 물러났다.
이미 조직 전체를 손봐주겠단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생각보다 수십 배는 더 위험해 보이는 녀석들이었으니.
결국 목표는 돈이라는 건데······ 당장 돈 자루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찾았다한들 그 많은 걸 소리 없이 가져나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어쩐다.
물약의 지속시간은 30분.
여유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자루를 몇 개나 챙겨 나올 수 있을까. 무엇부터 챙겨야 할까. 현재 저 안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게 무엇일까.
때마침,
“······아!”
딱 떠오르는 하나가 있었다.
꼬맹이.
나는 이마를 탁 쳤다. 제일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니.
녀석이라면 내 돈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기가 계속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어차피 녀석의 가죽주머니만 있다면 돈을 운반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냥 고 녀석 하나만 들고 뛰면 되니까. 설사 돈을 챙기지 못했더라도, 그 꼬맹이만 있으면 후에 언제든 기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케이.”
일단 꼬맹이부터 납치하는 걸로.
타깃을 확정한 나는 곧바로 투명화 물약을 들이켰다.
그러곤,
“습격이다! 잡아!”
건물 지하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이윽고,
“뭐야!”
“무슨 일이야?”
아래 쪽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뛰쳐나왔다.
“어? 저기!”
“공격당했나 본데?”
“이봐, 괜찮아?”
이어 녀석들이 쓰러진 두 조직원을 향해 몰려든 사이, 나는 슬그머니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