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도로시(2)
***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다른 이들의 ‘관심을 사는 것에 환장하는 종족’의 일원으로서, 스스로도 조금쯤 덜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남의 관심을 마다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어릴 적 또래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점잖은 말투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게, 지금은 굳어져 습관이 될 정도였으니.
즉, 누구 못지않게 관심을 갈구하는 성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생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발현에 실로 당혹스러움을 겪고 있었다.
창피함.
부담스러움.
또한 그로 말미암은 불안감과 초조함.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회피 욕구.
때마침,
“저 일행······ 어디서 온 거지?”
“어쩜, 저런 마차는 처음이야······.”
“어떤 마녀일까? 얼굴이라도 한 번 봤으면······.”
“저 앞에 있는 미소년은 시종이겠지? 노예일까?”
자신을 곤혹스럽게 하는 소리들이 또 한 번 들려왔다.
화끈-.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애써 듣지 못한 척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들리지 않느냐.”
창 뒤쪽에서 앳된 음성이 들려왔다.
“화답해야지?”
“어떤······ 그러니까 제가 어떤 식으로 화답을······.”
“손이라도 흔들어 주거라.”
“아······ 옙.”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그러고 묵묵히 손을 흔드는 와중에도, 스스로의 내면을 관조했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처럼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한 걸까.
이 정도 수에게 관심을 받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질 않는가.
물론, 떠오르는 이유야 몇 가지 있었다.
창문 뒤로 숨은 실제 원인제공자 대신, 홀로 이 수많은 호기심과 의혹, 동경어린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또한 그것이 자신이 직접 꾸며낸 모습이 아닌, 다른 이의 강압에 의해 억지로 취하게 된 모습이었기 때문에.
‘아냐.’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와 같은 것들은 현상일 뿐, 본질이 아니었다.
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째서 이토록 괴로울 수밖에 없는지.
바로, 부적응.
자신은 지금 ‘마녀 흉내’라는 명목 하에 진행된, 이 ‘밑도 끝도 없는 컨셉’을 소화하는 것에 있어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뒤에 앉아 있는, ‘컨셉을 추구하다 못해 그 자체가 되어버린’ 마법공주에게 심신이 시달린 탓이기도 했다.
‘······오만했어.’
좋다고, 함께 하겠다고 나선 게 실수였다.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그제까지 자신이 역할극을 좋아하고, 또 잘해내는 편이라며 자신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차원이 달랐다.
그냥 괴물이었다.
“후······.”
침착하자. 마음을 가라앉히자.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수밖에 없질 않는가.
그러고 스스로를 다잡고 있을 무렵이었다.
“치누아 비스트로겐.”
그녀의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
“······.”
“고개를 들고 어깨를 피거라. 마법공주를 모시는 시종의 자세로 적합하지가 않구나. 가문에 어울리는 행동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비엔슈타인입니다. 비스트로겐이 아니라.”
어이가 없었다. 본인이 지어놓고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시종에게도 걸맞은 이름이 있어야 한다며 온갖 난리를 친 당사자가 아니던가.
심지어 ‘치누’ 따로, ‘아비’ 따로 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들은 척도 않은 채 멋대로 지어버린 주제에.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자잘한 것은 넘어가도록 하거라. 건방지게 공주의 말에 토를 달다니. 노예가 되고 싶은 게야?”
“······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슬슬 마차의 방향을 돌리도록 해. 중앙광장으로 가. 여긴 환영인파가 적은 듯 보이니까.”
“······.”
이 또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앞쪽에 타고 있긴 하나, 현재 자신이 마부역할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니, 애당초 지금 타고 있는 이게 마차도 아니었다.
고출력 에너지 핵을 동력으로 쓰는 기계식 자동화 이동수단. 일명 ‘자동차’라 불리는 것.
마차로 쓰겠답시고 공주가 본인의 마법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지브란테의 창고에서 챙겨온 강철로 된 사륜전차였다. 톡톡 튀는 맛이 있어, 마차로 쓰기에 딱 좋겠다고.
“근데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더 좋지!”
“······.”
게다가 가장 황당했던 건, 지금 이것의 조종을 공주 본인이 ‘컨트롤러’라 불리는 것으로 직접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자신은 그냥 여기 앉아만 있는 상태이고, 저 지시사항 또한 그저 컨셉에 불과하다는 것.
“대답은?”
“아, 예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손을 들어 방향을 트는 시늉을 하고 있자니, 뭐랄까······ 점차 생각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바로 그때였다.
‘······잠깐.’
문득, 잊고 있던 경각심이라는 게 떠올랐다.
중앙광장이라는 건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장소다. 더군다나 세 개의 탑과 굉장히 밀접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정말······ 이런 식으로 행동해도 문제가 없는 걸까?
결국,
“근데 저······ 블란쳇 공주님?”
“왜 그러느냐.”
“뭐 하나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거라.”
치누아 비엔슈타인는 미뤄뒀던 문제 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중앙광장으로 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바보 같으니. 말하지 않았느냐, 환영인파가 부족한 듯 보인다고.”
“역시 시선을 더 끌겠단 말씀이시군요. 허나 이대로 계속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행위는······ 약간 위험부담이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주위에 있는 이들이 저희를 적대하고 있지는 않으나, 언제까지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지는 모를 일입니다. 더군다나 이들은 하위계층의 마녀들이 아닙니까? 상위계층의 마녀들은 저희를 보고 경계심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어째서?”
“그야······.”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한 차례 침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에서 탁 걸린 듯, 말이 잘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공주님의 아리따운······ 자태와 이 화려한 마차를 보고 본인들의 위치가 위험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요.”
“흐음······그건 그럴 수 있겠구나.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굳이 저희가 상위계층의 마녀들과 척을 질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주걱턱 형님의 자격요건에 부합할 만큼 강한 마녀라면 분명 그쪽일 텐데······ 굳이 경계심을 심어주는 건······.”
그때였다.
“호홍, 호호홍.”
느닷없이 마법공주가 코웃음을 쳤다.
“주걱턱 용사의 두 번째 목표는 사실 신경 쓸 것도 없는 것이니라. 애초에 의미 자체가 없으니까.”
“예? 의미가 없다니요?”
“모험단에 호의적이고, 심성이 고우며, 젊고 아리따운 마녀를 찾는 것 아니었느냐. 물론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자질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강력한 힘을 겸비한 것일 테고.”
“그렇지요.”
“그걸 왜 이곳에서 찾는단 말이냐.”
“예? 그야······.”
“여기 이 마법공주가 있는데.”
“······.”
그 순간,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끝내 경악하고야 말았다.
······와.
컨셉에 심취한 나머지, 이곳에 온 목적자체를 망각한 꼴이 아닌가.
다만,
“······흠, 흠흠. 그, 그렇군요.”
이를 곧바로 지적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말마따나 이미 컨셉에 먹혀버린 마법공주에게 이를 언급했다가, 어떤 사달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었으니.
일단은 논리적으로 접근해야 했다.
“공주님 물론 맞는 말씀이십니다. 허나······.”
“고로, 우린 함께할 마녀를 찾는 것 따윈 잊어버리면 된다 이 말이야. 대신,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그러려면 최대한 많은 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 현재의 네 얼굴을 널리 알려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 마녀가 볼 수 있도록.”
“공주님, 허나······.”
“시종 주제에 잔말이 많구나. 노예로 강등당하고 싶으냐?”
“······.”
아, 논리 이런 거 없는 상대였지.
“어허 대답이 없구나. 네로, 이 건방진 녀석에게 꿀밤 한 대만 먹이거라.”
곧이어,
드르륵-.
앞좌석과 뒷좌석을 나누고 있던 중간 창이 열리더니, 고양이의 앞발이 슬그머니 튀어나왔다.
이어,
퍽-.
퍽퍽-.
자신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
아프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 고양이와 비둘기보다도 못한 신세라니.
“말을 듣지 않으면, 다음엔 구구의 똥 세례를 맞게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
“그럼 출발하도록 하거라.”
이어, 다시금 의미 없는 마부 행세에 돌입하려 할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흥······!”
“저기 나대는 것 좀 봐.”
“어디서 족보도 없는 것들이 와가지곤······.”
“누군 말 없는 마차를 못 끌어서 안 끄는 줄 아나.”
웬 음성들이 들려왔다.
높은 음역대의 목소리와 깔보는 듯한 말투, 듣기 싫은 콧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예닐곱 명의 마녀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고깔모자가 아닌 서클릿을 머리에 차고, 후줄근한 망토 대신 고급 원단의 로브를 두르고 있었는데, 치장한 장신구들이 제법 값비싸 보이는 게 제법 계층이 높은 마녀들 같았다.
“머, 멈췄는데?”
“들었나봐.”
“흥, 들으라지. 뭐 어쩔 건데?”
“꼭 뭣도 없는 것들이 저러고 돌아다닌다니까?”
대충 들리는 바론 그들은 누군가의 흉을 보고 있는 듯했는데, 당황스럽게도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자신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자각했다.
이거 큰일 났다.
때마침,
“멈춰.”
서릿발 같은 마법공주의 음성이 차 안에서 흘러나왔다.
곧이어,
끼이익-.
덜컹-.
차문을 열고 그녀가 나왔다.
“뭐라고?”
움찔.
마법공주를 본 그녀들의 몸이 일순간 움찔거렸다.
그도 그럴 게, 일단 외형을 본 순간 압도당했을 테니까.
금으로 된 왕관에, 순백의 드레스까지.
대체 어디서 난 건지, 마법공주는 이미 컨셉에 들어맞는 의상을 완벽히 갖춘 상태였다.
고작해야 반짝이는 서클릿과 로브 정도론 대적하기가 힘들다고나 할까.
곧이어,
“다시 한 번 말해보시지.”
마법공주가 그들을 향해 한 발 더 다가갔다.
이에, 그녀들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되레 소리를 높였다.
“누, 누가 못할 줄 알고?”
“당신은 대체 누구죠?”
“대체 어디서 왔길래 이리도 나대는······.”
그러자,
“건방진 것들 같으니라고······ 감히 이 마법공주에게 뭐?”
공주가 품에서 대뜸 지팡이 하나를 빼들곤 으르렁거렸다.
“계속 지껄여 봐.”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 무렵,
‘······내가 움직여야 돼.’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충돌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당장엔 저들이 주춤거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순전히 ‘외형’ 때문이었다. 이곳의 서열문화에 익숙한 마녀들이 마법공주의 자동차와 드레스를 보고 얼지 않았다면, 지금 이처럼 대치가 길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브란테에서 입수한 저 지팡이로 마녀들에게 맞선다?
글쎄. 얼마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혹은 압도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한들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만약 저 마녀들이 또 다른 패거리를 끌고 온다면, 그땐 정말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테니.
그러나 당장 문제는, 저 컨셉에 잡아먹힌 공주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 거라는 것.
고로, 자신이 말려야 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신분이 마음에 걸렸다.
‘시종이 끼어들면 양쪽에서 분노할 텐데······.’
하여, 그러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탑의 마녀들이다!”
“얼음여왕의 직속 부하들이야!”
“물러나!”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응?”
느닷없이 새로운 무리가 등장한 것이었다.
곧이어,
“죄송하지만, 잠시들 물러나 주시죠.”
그들 중 하나가 시비를 건 마녀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 네네······.”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는 그저······.”
그들이 쏜살같이 뒤로 빠졌다. 얼굴엔 겁먹은 기색이 그득했다.
그즈음엔 마법공주 또한 상황의 변동을 알아차린 듯,
“······뭐야?”
다소 뚱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가라앉았나?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이때다 싶어 공주의 곁에 찰싹 달라붙었다.
“진정하시지요. 저들을 교육시키는 건 문제될 게 없으나, 도시의 지배층과의 충돌은 염려해야 하는 지점입니다. 저희는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이지, 이들과 적대하러 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
“마침 사자가 온 듯하니, 제가 맞이하겠습니다.”
그러곤 앞으로 나서니, 마침 저쪽에서도 말을 걸어왔다.
“서쪽 얼음여왕의 탑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어디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저희는······.”
그때였다.
“건방지구나, 치누아 비트겐타코스. 나오거라.”
그러곤 공주가 자신을 밀어내더니,
“내 이름은 코코아 블란쳇. 사우스랜드의 오두막을 타고 이곳으로 건너왔지.”
본인이 대뜸 앞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어디로 출입하셨는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물은 건 그게 아니라, 당신의 출신이 어디냐는······.”
“너 또한 건방지구나.”
“······네?”
“너 따위가 뭐라고 내가 출신을 밝혀야 한다는 거지?”
“······.”
“대화를 하려면 격이 맞아야하지 않을까?”
······.
결국 이렇게 되다니.
치누아 비엔슈타인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제 끝이다. 저 폭주하는 컨셉괴물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주걱턱 형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했다.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하여, 차 안에 있던 구구에게 당장 이를 전달하려 할 때였다.
그때,
“마침 잘됐네요.”
상대의 입에서 뜬금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음여왕께서 탑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응?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이어, 대단히 평온해진 공주의 음성이 귓가로 들려왔던 것이다.
“좋아, 기다리고 있었지. 안내하거라.”
*
간단한 인적사항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이름 : 도로시
나이 : 17세
직업 : 초급 마법학교 졸업반(5년째)
장래 희망 : 대마녀
“틀린 거 없지?”
“······네.”
“열일곱이라······.”
하여간에 희한하기 짝이 없는 설정이었다.
쭈글쭈글한 마녀 할망구를 그려놓고선 꽃다운 17세 소녀라 우기려 들다니.
작가도 아마 이 지점에서 현타가 온 게 아니었을까.
아무리 만화라지만 자신이 너무 역한 설정을 짠 게 아닌가 하고.
그러다 문득, 자괴감에 빠져선 데모라 에피소드 전체를 날려버린 것이다.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야.’
나는 그즈음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도로시에게서 눈을 돌렸다.
약간······ 힘들었다.
때마침, 도로시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아저씨라고 하지 마. 기분 이상하니까.”
“네?”
“그냥 하지 마. 주걱턱이라고 불러.”
“아······ 네. 어째서 저를 도와주신 건지······ 밥도 주고, 또 잘 곳도 마련해주고······.”
“내가 한 거 아냐. 알잖아? 나는 몸종일 뿐이야. 모든 건 저기 계신 하카네 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라고. 고맙다는 인사는 저분에게 해.”
“그, 그건 알지만······ 제가 직접 말하기엔······.”
나는 그 뒤에 생략된 말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너무 고귀하신 분이니까.
확실히 이 도시는 위계질서가 꽉 잡혀 있는 듯했다. 본 적도 없는,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마녀에게조차 저와 같은 계층의식을 느끼는 걸 보면.
더욱이 마녀인 이 녀석이 남자인 내게 존대를 하는 것도, 본인의 서열이 나보다도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최하층의 몸종보다도 못한, 마법을 쓰지 못하는 마녀이기 때문에.
정말이지 ‘주인공’에 딱 들어맞는 캐릭터 특징이었다.
“왜, 그냥 말하면 되지. 들으셨죠? 얘가 고맙다고 하네요.”
하카는 그저 고개만 까딱거릴 뿐이었다.
나는 다시금 도로시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 제대로 된 질의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졸업반만 5년째라는 건······ 본래는 13세 즈음에 졸업을 한다는 거야? 그 마법학교를?”
“······네. 초급이니까요.”
“5년 동안 못하고 있는 이유는?”
“······굳이 다 말해야 하나요?”
“다 알아야 돼. 너를 도우려면.”
“근데 어째서 저를 돕는······.”
“아니, 아까도 말했잖아. 나도 몰라. 그냥 그러고 싶대. 그게 궁금하면 직접 물으라니까?”
그러고 하카를 가리키니, 도로시가 슥 입을 다물었다.
“성적이 안 돼서요.”
“공부를 못해?”
“······이론은 늘 만점이에요. 초급뿐만 아니라, 고급까지도 다 꿰고 있으니까.”
호오.
중요한 포인트였다. 이론에 대해선 빠삭하다.
“근데 실기가 안 된다?”
“네. 제가 마법을 잘······.”
“잘 못쓴다?”
“아뇨······.”
“그럼?”
도로시는 이에 잠시간 머뭇거리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아예······ 못 써요.”
“어째서?”
“저도 알고 싶어요. 왜 못 쓰는지.”
“흐음······ 마법을 못 쓰는 마녀라.”
내 혼잣말에, 도로시가 자조했다.
“웃기죠, 그래서 다들 저를 머저리라고 해요. 마녀라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죠. 심지어 노예들조차도.”
나는 하나하나 다 체크했다.
주변의 놀림.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현재의 처지.
어찌 보면 동화 주인공의 필수요건과도 같은 고난이었다.
그때였다.
“헌데 어째서 그 오랜 기간 마법을 포기하지 않는 거죠?”
갑작스레 하카가 입을 열었다.
“네, 네?”
“그냥 포기하고 돌아섰다면, 그렇게까지 조롱당하지 않았을 텐데.”
호오.
저렇게나 중요한 질문을.
역시 센스가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 그 정도면 안 된다는 걸 알 텐데 굳이 꾸역꾸역 학교를 나갔던 이유는?”
“그, 그건······.”
도로시는 하카가 직접 질문을 했다는 것에 당황해 멈칫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이내,
“······기억이 있어서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억?”
“마법을 썼던 기억이요.”
“그래?”
체크 포인트였다.
과거엔 마법을 쓸 수 있었다.
“다들 비웃을 거예요. 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알면.”
“언제 썼었는데?”
“아주 어릴 적이요. 거의 갓난아기나 다름없었을 때.”
“흐음······ 그 정도면 굉장한 재능 아냐?”
이에,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죠. 놀릴 게 뻔하니까요. 꿈을 꿨냐느니, 결국 기억을 조작하는 지경까지 갔냐느니.”
도로시가 서글프게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로 그럴지도 몰라요. 저도 늘 의심하니까. 혹시 꿈은 아니었을까, 내가 환상을 기억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하지만?”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 제 몸을 채워오던 무한한 마나가요.”
그 순간,
‘역시······.’
나는 눈을 빛냈다.
무한한 마나. 캐릭터의 잠재력을 암시하는 단어였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거력을.
그때였다.
“이론에 대해선 잘 안다고 했죠?”
하카가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네!? 네, 네······ 아니, 마녀님께 비해서는 절대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 어느 정도는······.”
“혹시 무언가에 의해 마력이 봉인되었을 때 이를 회복하는 방법이 있나요? 이론에 능하다면 그런 것에 대한 지식이 좀 있을 텐데.”
“아······.”
도로시는 금세 다시 침울해졌다.
“다 알아봤지만 저와 같은 현상은 본 적이 없어서······.”
“흐음. 그럼 방법도 없는데 그러고 미련하게 학교만 나가고 있었던 거야?”
“아뇨, 그렇다기보다는······.”
이어 도로시가 꺼낸 말은,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었다.
“하늘마녀님의 ‘갈망의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고 싶어서······.”
“갈망의 거울?”
“네. 본인이 진심으로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그걸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인데······ 혹시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흐음.
왠지 라미레스의 유사품 느낌이 났다.
원작에서 라미레스가 허무하게 깨지고 말았으니, 비슷한 걸 하나 더 준비해 둔 게 아니었을까.
물론, 이 또한 결국 등장하지는 못했지만.
“근데 하늘마녀에게 그 거울이 있다는 것과 학교에 계속 나가는 것이 무슨 상관인 거지?”
“졸업식 때 가장 뛰어난 성적을 보인 학생에게 천공의 섬 방문기회가 주어지거든요. 또 하늘마녀님과 독대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고. 그때 부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졸업식.
사건의 키워드였다.
“오······ 그래? 졸업식이 언젠데?”
“아직 멀었어요.”
도로시가 말한 시기는 무려 3개월 뒤였다.
“3개월이나 남았다고?”
잠시간 의아해하던 나는 이내,
‘아아······ 그렇지.’
금방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간단했다. 졸업식은 본래 레오 일행을 위해 준비된 사건일 테니까.
즉, 본래대로라면 3개월 뒤 레오 일행이 이곳 데모라를 들르게 될 전개였다는 것.
생각해 보니 얼추 시간이 맞았다. 사우스랜드에서의 신수 에피소드가 끝나는 때가 아마 그쯤일 테니까.
흐음.
이쯤 되니, 본래 어떤 식으로 흐름이 짜였던 건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본래 도로시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채 태어났으나, 악독한 마녀에게 그것을 빼앗겼을 것이다. 어쩌면 외모와 함께.
그러니까 그 힘을 되찾아오는 전개인 것이다.
“오케이, 대충 알겠네.”
“네? 어떤 걸······.”
“우리가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 알겠다고.”
물론, 3개월 뒤까지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굳이 졸업식이 아니더라도 뭐, 사건이야 직접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하나만 더 물을게.”
“네? 아, 네.”
“이 도시에서 제일 예쁜 마녀가 누구야?”
“······네?”
“제일 예쁜 게 누구냐고.”
도로시는 잠시간 고민하는 듯싶더니,
“아무래도 세 탑의 여왕님들이······.”
몇 명을 거론했다.
“세 명씩이나 돼?”
“그리고 하늘마녀님도······.”
“너무 많아. 하나만 딱.”
그러자,
“그럼 역시 하늘마녀님이······.”
곧바로 하나를 꼽았다.
“으흠······ 그래?”
뭐, 짐작하던 바였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최상위 계급이라 할 수 있는 천공의 섬의 지배자.
더군다나 사건의 계기가 되는 ‘갈망의 거울’의 주인.
심지어 가장 아름다운 마녀.
바로 그녀가 도로시의 힘과 외모를 빼앗은 원흉이라는 것.
간단한 클리셰였다.
정리는 끝났다.
하늘마녀에게서 도로시의 힘을 되찾아온 뒤, 그녀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간다.
‘간단하네.’
바로 그때였다.
우르르-.
콰과광-!
콰광-!
난데없이 주의를 빼앗는 어마어마한 굉음이 멀리 저편에서 들려왔다.
“뭐, 뭐야?”
하카와 나는 즉시 방의 창문을 통해 굉음의 정체를 확인했다.
“허······.”
“놀랍군요.”
“무,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나는 놀라 당황해 하는 도로시를 진정시켰다.
“별 일 아니야.”
사실 별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즈음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사건······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려나?’
어쩌면 귀찮게 일을 계획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세 개의 탑 중 하나.
서쪽 얼음여왕의 탑 상층부가 폭파되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