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해답은 동화책 속에
***
“어떻게 된 거야?”
탑을 빠져 나오고서도 한참 뒤, 하카와 도로시가 기다리고 있는 거처에 막 다다랐을 즈음에야 나는 궁금해 하던 걸 물었다.
“너 뭐야 그거.”
“뭣?”
“그거 뭐냐고.”
그러자 코코아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너야말로 그 말투가 무엇이냐, 주걱턱, 예를 갖추지 못하겠느냐. 이 몸을 구하러 달려온 심성이 갸륵해 한 번은 봐주도록 하겠지만, 계속 이렇게 무엄하게 나올 시엔······.”
“아, 됐고. 그거 뭐냐고.”
“······무엇을 말이더냐.”
“뭐긴. 너 입고 있는 그거.”
그러고 나는 코코아가 입고 있던 코미어의 풀셋 전투 장비를 가리켰다.
코코아는 약간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이거······ 내 건데?”
“그러니까 어디서 난 거냐고.”
“어허, 감히 마법공주의 물품에 눈독을 들이다니. 네 놈, 경을 쳐야 정신 차리겠니?”
“참나, 누가 뺏어 간데? 그리고 그거 원래 누구 건지 알거든?”
“······진짜 안 뺏을 거지?”
이어 코코아는 다른 녀석들더러 가만 기다리라 말한 뒤, 근처 한적한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아무에게나 들려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체 무슨 일인데?”
이윽고 코코아가 들려준 말은, 꽤나 놀라운 것이었다.
코코아는 내가 기절한 그날 새벽, 이를 코미어에게서 직접 건네받았다고 했다.
지브란테를 떠나기 전 장비와 물품들을 몇 가지 챙길 겸 쟝의 창고를 방문했었는데, 어째선지 거기에 그가 있었다고.
“······녀석이 그때 거기 있었다고?”
“응.”
“라미레스는 어쩌고? 그때 들고 있었어?”
“아니, 없었어.”
“······그래?”
다소 의아한 말이었다.
물론 원작에서도 코미어가 그리 오랫동안 라미레스를 소유하고 있는 편은 아니다. 에너지를 충전하려 잠깐 장비의 가동을 멈춘 사이, 주위에 잠복해 있던 다른 녀석들에게 어이없게 이를 빼앗기는 전개였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지고 도망친 그날 곧바로 빼앗길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루카스를 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다른 녀석들이 쉽사리 접근하지도 못했을 텐데.
그에 대한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 거울엔 딱히 흥미가 없는 것 같더라고. 어디 대충 던져놨다고 했었어. 주걱턱의 말을 듣고 술래잡기를 시작하긴 했는데······ 날파리들이 너무 귀찮게 따라 붙어서 도무지 안 되겠다고.”
“······아하.”
하긴. 그러고 보면, 이미 내가 부탁할 당시부터 이미 라미레스엔 흥미를 많이 잃어있던 상태였으니.
그건 그렇고.
나는 다시금 코코아를 재차 바라봤다.
“그나저나 지금 입고 있는 건 어떻게 해서 얻은 건데?”
처음 봤을 땐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코미어의 전투장비 풀셋이라니.
물론 이번에야 ‘이능장갑기병’에게 밀려 제대로 소개조차 되지 못했다곤 하나, 원작에서만 하더라도 무려 저 노스랜드의 강자들, 지무스와 겔롭을 단번에 서열 정리시킨 엄청난 물건이었다.
심지어 커뮤니티에서 장난삼아 실시한 ‘현실에서 가지고 싶은 아티팩트 및 무기 순위’에서 ‘코미어 세트’란 이름으로 당당히 순위권에 들 정도였으니.
게다가 코미어가 일전에 말하길, ‘이능장갑기병’을 개발하는 중에 얻은 기술적 성과들이 제법 있어, 따로 본인의 전투장비에 적용을 시켜봤다고도 말했었다.
즉, 들어간 기술도 기술인데다, 꽤나 애착을 가지고 개발한 물건이라는 것.
코코아가 무엇을 대가로 제시했는지는 모르나, 쉬이 거래가 성사될 만한 물건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헌데,
“그냥 달라고 했어.”
곧이어 나온 코코아의 대답은 내 상상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냥?”
“응, 그냥.”
“달라고 하니 줬다고?”
“응.”
“······.”
뭔가 상식의 선에서 한참 비껴나 있는 느낌이었다.
그걸 그냥 달라고 한 것도 황당한데, 실제로 그냥 주기까지 했다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아니 그보다, 너는 그걸 왜 달라고 했는데?”
그러고 묻자,
“음, 그건 그냥······ 사실 이걸 달라고 한 건 아니었어.”
코코아가 또 다시 희한한 말을 꺼냈다.
“그럼?”
“다른 거.”
“다른 거? 뭐? 어떤 거?”
“그냥······ 더 좋은 거.”
“그게 뭔데.”
“그냥······ 그거. 주걱턱이 그 덩치랑 싸울 때 탔던 로봇.”
“내가 덩치랑 싸울 때 탔던 로봇? 그게 뭔······ 아.”
그 순간, 나는 코코아를 다시금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뭐랄까······ 너무 대단해서.
루카스였다. 코코아가 코미어에게 대뜸 내놓으라고 요구했던 건 다름 아닌 루카스였다.
코미어와 내가 합작하여 만들어낸 괴물, 이능장갑기병.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그런 걸······ 그냥 달라고 할 수가 있는 건가?
심지어 막 대단한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닌데?
그게 한 명의 사람이 가진 뻔뻔함으로 실행에 옮기는 게 가능한 일인가?
흐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분명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는 타당했던 것이기에, 코미어 또한 대신 다른 걸 내주는 선택을 한 것이리라.
이에 나는 내 논리회로의 가동을 잠시간 중단한 채, 코코아에게 재차 물었다.
“왜 그게 필요했던 건데? 그리고 대체 뭐라고 했길래 전투 장비 풀셋을 내준 거야?”
그러자,
“······바보.”
코코아가 느닷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황당한 반응이었다.
“엉? 뭐야, 뭔데?”
“별 말 안했어. 그냥······.”
이어 코코아의 입에서 나온 건, 대답을 재촉했던 나 스스로를 꽤나 무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키고 싶다고, 주걱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저렇게 혼자 싸우게 두고 싶지 않다고.
“······.”
“그렇게 말하니까 그냥 줬어. 주걱턱은 본인에게도 필요한 인물이니, 위험에 빠뜨려선 안 된다고 하면서.”
“······쿨한 녀석이네.”
“근데 로봇은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 자기도 주걱턱이랑 약속한 게 있으니까. 그래서 그냥······ 이거라도 걸치라고 준 거야. 쓸 만할 거라면서.”
“······그랬냐.”
뭐랄까, 웃긴 녀석들이었다.
나도 없는 데서 저들끼리 드라마 한 편 찍고 있었다니.
“땡 잡았네?”
“사실 그땐 엄청 좀생이라고 생각했었어.”
“······응?”
“이왕 줄 거면 그냥 그거 주지.”
“······.”
인성······.
“그래도 써보니 나쁘지 않더라고.”
“······그거 좋은 거야. 고마워 해.”
“지금은 그러고 있어.”
어쨌거나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녀석을 바라봤다.
그즈음 내가 할 말이야 딱히 별 게 없었다.
“잘했다.”
“······뭘.”
이어, 막 돌아가려 할 때였다.
“아참.”
문득, 계속 궁금했던 게 하나 떠올랐다.
“근데 어땠냐?”
“응? 뭐가?”
“마녀들. 보니까 다 때려눕혔던데? 그 얼음여왕이라는 마녀도 도망갔다면서?”
“응. 근데 그 여자는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달려들지 않았어. 힘도 대부분 아끼는 듯했고. 전투를 한다기보다는 내 기술을 보려고 했던 것 같아.”
“그래? 그래서 딱히 어려움은 없었다?”
“응.”
흐음.
솔직히 이 또한 의외이긴 했다.
물론 코미어의 전투장비가 엄청나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들어보니 얼음여왕인가 뭔가는 제대로 힘을 낸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제법 놀라운 결과였던 것이다. 마녀들이 이렇게나 쉽게 제압이 될 줄이야.
물론 이들을 미래의 그 ‘강력하기 짝이 없는 전투종족’과 같다고 보기엔 좀 어려웠다. 아직은 마녀뿐만 아니라 이곳 자체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세계인데다, 이런저런 설정들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마녀가 쉬웠다라······.’
실제로 나는 ‘약한 마녀’를 볼 기회 자체가 없었다. 애당초 내가 원작에서 본 마녀들은 죄다 킹스로드를 건넌 이후에야 나오는 캐릭터들이었으니까.
어쩌면 이게 본래의 설정일지도 모른다. 외려 계층 간 격차를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일부로 힘의 크기 자체를 양극화 시킨 경우일지도 모르니.
약한 마녀는 약하고, 강한 마녀는 가히 지옥 같고.
물론,
‘겪어 봐야 알겠지.’
짐작만으로 답이 나오는 사안은 아니었다.
직접 부딪쳐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올 것이다.
“일단 알겠어. 돌아가자.”
그러고 막 뒤돌아 가려할 때였다.
“주걱턱!”
코코아가 대뜸 소리쳤다.
“나 이제 다시 마법공주야.”
“뭐?”
“다시 공주라고.”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이어 나는 씩 웃으며, 코코아를 에스코트했다.
“알겠습니다, 공주님. 가시죠.”
잠시 후.
“여기야.”
우리는 하카와 도로시가 기다리고 있는 거처에 도착했다.
끼이익-.
문을 열자마자,
“오, 오셨군요!”
아직은 내게도 낯선, 늙고 추악한 얼굴이 우리를 맞이했다.
도로시였다.
“그래. 별 일 없었고? 하카네 님은?”
“곧 나오실······.”
그때였다.
“응?”
“······응?”
코코아와 도로시가 순간 마주쳤다.
곧이어,
“뭐야!? 이 쭈글탱이 할망구는?”
“죄, 죄송, 죄송합니다!”
다소 일방향적인 통성명이 이뤄졌다.
“너 뭐냐니까?”
“저, 저는 도, 도로시예요. 초급 마법학교 졸업반인······ 근데 누, 누구신지?”
“아니, 나를 몰라? 나는 마법공주야.”
“마, 마법공주!”
그즈음,
“아, 미안. 소개가 늦었네.”
나는 나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러고 보니 도로시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
“마녀?”
코코아에 이어 치누아비와 구구, 네로 또한 도로시를 보고 놀라하는 기색이었다.
물론, 대뜸 소리를 치거나 하진 않았지만.
나는 도로시더러 잠시 기다리라 말한 후, 녀석들을 데리고 다시금 밖으로 나왔다.
“쟤 이름은 도로시야.”
“도로시? 이름 한 번 구리네.”
“마녀가 왜 이곳에······?”
“······잠깐, 형님 설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 동료가 될 녀석이야.”
“뭐? 저 할망구가? 정말?”
이에 놀란 건 비단 코코아만이 아니었다.
다들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아마도 도로시의 외모가 내가 찾으라고 했던 것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잠재력이 개방되지 못한 상태야. 그것만 발현되고 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거야.”
“흐음······.”
“다만, 아직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거의 없어. 자심감도 많이 부족하고. 교육이 좀 필요할 듯한데······.”
이어, 나는 코코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혹, 공주님께서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응? 뭘?”
“뭐긴요, 정신머리 교육이지.”
“내가? 싫어.”
“재미있을 겁니다.”
“전혀.”
별 수 없었다. 공수표라도 날리는 수밖에.
“다음에 코미어 만나면 로봇 주라고 할 게요.”
“······로봇? 정말?”
이어,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
마법공주가 씩 웃었다.
*
다음 날.
마녀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당장이라도 세 개의 탑에서 연합군이라도 조직해 색출작업이라도 나설 줄 알았더니.
내가 아는 ‘폭급한 성정’은 아직 마녀의 성격으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인 듯했다.
“흐음······.”
하지만 물론, 이 같은 상황에 마음놓고 있을 순 없었다.
지금의 한적한 고요가 실은 폭풍을 암시하는 전조일지도 모르니.
이어, 나는 다시금 고민에 잠겼다.
지금부터 뭘 해야 할까.
결국 뽑아낸 최종안은 두 가지였다.
첫째, 데모라의 모든 마녀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길이었다.
게다가 코코아에게 생각지도 못한 강력한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승산이 아예 없지도 않았다.
한 번 붙어볼 만하지 않을까.
다만, 이를 위해 뭔가를 더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미 얼음여왕과 적대하게 된 이상, 가만히만 있어도 곧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으니.
고로, 일단 보류.
둘째, 하늘마녀가 있는 천공의 섬으로 잠입하는 것.
여기선 세부단계가 조금 있었다.
1. 먼저 그곳에서 ‘갈망의 거울’을 찾아 도로시의 욕망을 들춰낸다.
2. 다음으로 하늘마녀에게 접촉한다.
3. 그녀에게 도로시의 힘과 외무를 빼앗아갔냐고 물어본다.
4. 만약 그렇다고 할 경우, 쓰러뜨린다.
······.
돌겠네.
솔직히 스스로 떠올리고도, 어설프다 못해 황당함까지 드는 안이었다.
뭐 ‘대충 그렇다 치고, 일단 해보자’ 하는 식이랄까.
허나 문제는, 당장 이보다 더 나은 걸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야 간단했다. 정보의 부재.
도로시를 각성시키기 위해, 이 세계에 작가가 준비해둔 설정과 떡밥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각성하는 방법에 대한 것부터가 오리무중이었다.
이게 그냥 하늘마녀를 상대해 쓰러뜨리기만 하면 되는 건지,
아니면 도로시가 하늘마녀의 힘과 외모를 도리어 빼앗아 와야 하는 건지,도로시의 힘이 봉인된 마도구가 천공의 섬 어딘가에 있다는 설정인지,
혹, 지금 도로시 몸 자체에 걸린 봉인을 풀어야 한다는 설정인지 등등.
물론, 이를 확실히 알아내기 위한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간단하다. 그냥 기다리는 것.
3개월 뒤, 도로시의 졸업식이 열릴 때까지 계속 그냥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된다. 그즈음엔 작가가 뿌려둔 설정들이 하나씩 하나씩 드러날 테니까.
다만,
‘그건 말이 안 되지.’
이곳에서 3개월을 가만 죽치고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도로시가 각성하려면 굉장히 까다로운 전제조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 모든 행위를 도로시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년만화에서 요구되는 각성의 필수조건이었으니.
즉, 하늘마녀를 쓰러뜨리는 것도 도로시가 해야 되고,
하늘마녀의 힘을 도로 빼앗아야 한다면, 그것도 도로시가 해야 될 일이며,
또 도로시의 힘이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다면, 이를 찾아 푸는 것 역시도 도로시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 조롱과 비난에 길들여져 있는 정신을 타파하고, 주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해 따로 코코아에게 교육까지 부탁한 것이었다.
복수심이나 저항정신 따위의 정신적 각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실제 각성이 이뤄지지 않는 게 소년만화에서의 성장 패턴이니.
물론, 마음이 단단해진다고 해서 각성이 곧장 성공하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어쨌거나,
‘어떡한다······ 따로 여기저기 잠입이라도 해서 정보를 캐야 하나?’
그러고 계속 고민만 하고 있을 때였다.
“형님.”
갑작스레 등 뒤에서 은근한 음성이 들려왔다.
치누아비였다.
희한하게도 옆에는 네로가 함께 있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응? 뭔데?”
“저······ 도로시라는 저 분 있잖습니까.”
“어. 왜?”
“그······ 맞나요?”
“뭐가?”
“형님이 말씀하신······ 우리의 동료로서 적합한 마녀 말입니다.”
표정을 보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왜?”
“제 생각엔 다른 더 적합한 인물이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
물론 이와 같은 말이 나올 거라곤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솔직히 의문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으리라.
“음······ 물론 지금 보기에 도로시가 부적합해 보일 순 있어. 아직 마법도 못쓰는데다, 심히 유약한 성정이니. 하지만 두고 볼 필요는 있어. 분명 잠재력 하나만큼은 어마어마할 거거든.”
헌데,
“당장 보이는 것도 보이는 것이지만······ 실은 그것보다는 좀 더 다른 이유가 있어서요.”
치누아비가 꺼낸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무슨 이유?”
“여기 네로에게 들었는데. 혹시 이 세계가 동화에 기반한 것이란 걸 알고 계시는지요?”
“동화? 마녀의 옷장?”
“예, 아시는군요.”
“근데 그게 왜? 동화 말고도 여긴 다른 것들 많이 섞여 있어.”
“그것까진 저는 잘 모르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뭔데?”
“이곳이 동화 속 기반의 세계라면 그······ 원작동화의 주인공을 한 번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아마도 우리가 찾는 마녀의 이상향에 가장 근접한 이가 아닐까······.”
순간,
아!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동화! 동화와 연동된 세계!
그걸 왜 깜빡하고 있었지?
이어, 나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치누아비를 바라봤다.
“근데 동화 속 주인공이 누군데?”
이엔,
“······지금은 하늘마녀라고 불리는 마녀다.”
옆에 있던 네로가 대답했다.
“천공의 섬의 지배자?”
“그렇지.”
역시 그랬군. 그럴 수밖에 없지.
이제야 흐릿했던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좋아, 도움이 됐어.”
내 말에 치누아비의 안색 또한 환히 밝아졌다.
“그럼 이제 저 도로시라는 분은 보내고, 대신 하늘마녀란 분을······.”
“아니, 도로시는 맞아. 그건 변함이 없어.”
“예?”
치누아비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물론, 아직은 알 수가 없겠지.
“네로, 동화 내용은 다 기억하고 있어?”
나는 기대감에 차 물었으나, 네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 나는 그 중 일부만 훑어봤을 뿐이다. 기억나는 건 단편적인 내용과 그림들 정도지.”
“그래?”
그렇다는 건, 일단 그 ‘동화책’부터 먼저 입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짐작하건대, 내게 필요한 ‘답’이 거기 나와 있을 테니.
“동화책······ 지금 여기엔 없겠지?”
“아마도. 그건 이 세계 바깥의 물건이니.”
“지금 그걸 구하러 가시겠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럼 이 세계를 나가겠다는······?”
“쉽진 않을 거다. 동화 속에서도 단절된 외부 세계로 들락날락 거리는 걸 대단히 기묘한 일로 묘사하고 있었으니. 별도의 조건과 마법도구가 필요할지도 몰라.”
“흐음.”
굳이 네로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게 어려울 거라는 것쯤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라도, 나갈 때는 그게 아니라는 것.
세상사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격언이 아니던가.
다만,
“글쎄,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내겐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
코코아와 도로시는 어느덧 꽤나 가까워진 모습이었다.
“도로시, 얼음여왕과 나. 둘 중 누가 더 높지?”
“······공주님이십니다.”
“대지여왕과 비교해선?”
“그 또한 공주님이십니다.”
“그럼 하늘마녀는?”
“그, 그건······.”
“쯧쯧, 아직도 멀었구나? 아직도 서열이 헷갈리면 어떡해. 이 마녀들의 세계에선 나 마법공주 코코아 블란쳇이 서열 1위야. 그리고 그 다음은 다 동등하고. 알겠니?”
“하, 하지만······.”
“됐고, 너는 나를 제외하곤 누구에게도 존칭을 써선 안 돼. 명심하라고.”
“······네.”
“알아들었으면, 저기 저 주걱턱 보이지? 얼른 이곳으로 오라고 호통을 쳐봐.”
그러고 코코아가 나를 가리키자,
“주, 주걱턱! 어, 얼른 오지 못해!?”
잠시간 머뭇거리던 도로시가 내게 호통을 쳤다.
호오.
단기간에 꽤나 발전한 모습이었다.
나는 얼른 그들에게 다가갔다.
“예, 여기 왔습니다.”
“잘했어. 이렇게 오잖아?”
“그, 그러네요!”
약간 방향이 엇나간 듯 보이기도 했지만, 당장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먼저 처리할 일이 있었으니.
“그나저나 공주님,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지?”
“저희를 위해 한 번만 능력을 발휘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능력? 어떤 거?”
“그 주머니에서······ 뭐 하나만 꺼내주시면 됩니다.”
나는 코코아의 가죽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어떤 건데?”
코코아의 얼굴에 약간이나마 경계의 빛이 깃들었다.
“별 거 아닙니다. 동화책입니다.”
“흐음, 비싼 건가? 그러면 좀 그런데······.”
뭐, 당연한 일이었다. 가지고 있지도 않은 걸 주머니에서 빼내려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으니.
그리고 내가 알기로, 지금 코코아의 주머니 속엔 지브란테에서 챙겨온 엄청난 양의 밀수품들이 들어 있었다.
“에이, 기껏해야 동화책일 뿐인데요.”
“그런가? 근데 그건 주걱턱이 해도 되잖아.”
그건 사실이었다. 나 또한 코코아의 능력을 흉내 낼 수 있었으니까.
다만, 나는 지금 가진 게 없었다.
“저는 대가로 넣을 만한 게 없는지라······ 지원만 해주신다면 꺼내는 건 제가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음······ 그럴 것까진 없겠지. 좋아, 내 넓은 아량으로 들어주도록 하마.”
그러나 잠시 후,
“이거······ 얼마라고?”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코코아가 물었다.
흐음. 역시나.
다른 세계의 물건을 가져오려다보니, 필요한 대가가 엄청난 모양이었다.
“얼마 안합니다. 종이책이에요, 종이책. 계속 트라이, 트라이.”
“주걱턱 너······.”
“아, 나중에 로봇 드린다고 했잖아요. 쭉쭉 꺼내보세요, 쭉쭉. 쉬지 말고.”
“······.”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코코아가 주머니에서 웬 낡은 책 한권을 꺼냈다.
“이거 맞아?”
코코아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이에 대답하는 대신 네로를 쳐다봤다.
이어,
“맞아.”
네로가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근데 나 이제 거지 됐어.”
그러고 코코아가 내민 책 표지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마녀의 옷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