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2
12화 코코아
***
희한한 이름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기묘한 모험을 앞둔 이들을 위한 카페테리아」
물론 만화 전체로 봤을 땐 딱히 이상할 게 없다. 이외에도 ‘거인의 발 냄새를 쫓다 지쳐 만든 주점’이라든지, ‘목 떨어진 시체와의 하룻밤’과 같은 별 희한한 이름의 가게들도 많았으니.
다만, 문명이 꽤나 발달된 이 도시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작명이긴 했다. 이곳은 그리 모험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지역이 아니었으니까.
하여, 약간의 의문을 품은 채 진입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구성된 공간이기에 저러한 이름이 붙었고, 또 술집도 아닌 카페가 조직의 근거지가 될 수 있었을까 하고.
계단을 내려가며 슬쩍 둘러보니, 어느 정도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일단 생각이상으로 넓고, 또 복잡한 공간이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수많은 방들이 쫙 깔려 있고, 그 사이로 길들이 미로마냥 나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게 아니라 정면으로 들어갔다면 십중팔구 길을 잃었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기묘했다.
카페테리아란 단어는 이 공간의 정체성과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이곳은 뭐랄까······ 소음이 삭제된 홍등가를 연상케 했다.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방에서 흘러나오는 색색의 빛들이 꽤나 몽롱한 느낌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인의 흔적이 있지는 않았다.
‘비슷한 장소를 본 것도 같은데······.’
낯익은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뚜렷이 기억나는 게 없었다.
하지만 뭐, 눈에 익은 장소가 아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곳 또한 실제론 그려진 적 없는, 대충 짜깁기 된 장소일 뿐일 테니.
그나저나,
‘······방이 너무 많아.’
시작부터 난관이 예상되었다.
입구에서 소란을 피움으로써 다수의 조직원을 밖으로 이끌어내긴 했지만, 그 녀석들이 전부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분명 곳곳에 인원들이 흩어져 있을 텐데, 이렇게 방이 많아선 그들이 머무는 장소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꼬맹이의 위치. 녀석이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녀석을 찾는답시고 이 많은 방문을 일일이 열어보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어쩐다.’
그때였다.
“······잖아!”
어디선가 성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응? 잠깐······.’
앙칼진 목소리였다.
또 걸걸한 남성의 것이라기엔 퍽 앳된 음성이었다.
“······가겠어!”
심지어 자세히 들어보니, 익숙하기까지 한 목소리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씩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꼬맹이다.
나는 홀린 듯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잠시 후,
“헛소리!”
나는 목표물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약 10m앞 정면에 있는, 호화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진 붉은색 방. 거기 녀석이 있었다.
나는 곧장 방 바로 앞까지 다가간 뒤,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안에 있는 꼬맹이와 그 대화상대를 제외하면,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더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한 놈만 때려눕히면 곧바로 고대하던 꼬맹이와의 독대가 가능하단 얘기였으니.
다만, 나는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투명화 능력의 한계.
-한계 : 자신 이외의 사람은 투명화 시킬 수 없다.
설사 내가 꼬맹이를 들어 품속에 감춘다 하더라도, 녀석의 몸은 투명해지지 않는다. 그저 공중에 떠 있는 것으로 보일뿐. 꼬맹이를 몰래 납치해 가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흐음.
나는 일단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까지 소요된 시간은 대략 8분. 아직 20여분가량 여유가 있었다.
‘일단 생각 좀 하자.’
그러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무렵, 저들의 대화가 귓속으로 자연스레 흘러들었다.
꼬맹이의 대화상대는 웬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남자였다.
“내 빚은 다 갚았어.”
“훗, 그게 얼마나 되는 줄 알고.”
“나는 자유야.”
“안타깝지만. 빚을 청산하기 전까지 너는 조직을 벗어날 수 없다.”
‘빚, 자유······.’
대화에 신경을 쏟을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심상찮은 내용에 나도 모르게 귀가 기울여졌다.
“그러니까 다 갚았다고.”
“한참 남았다.”
“어째서? 다른 이들의 빚은 분명······.”
“너는 그들과 같지 않으니까.”
“······그런 소린 없었어.”
“있다.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지 않았나보군.”
“······.”
대화를 들으며 나는 차오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뭐지? 이 무척이나 클리셰적인 사연은?’
둘의 대화를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꼬맹이는 조직에 빚을 졌고, 이를 갚기 위해 몇 년 동안이나 그들의 하수인으로서 일했다. 그동안 많은 돈을 벌어들여 이제 다 갚은 줄 알았으나, 현재 조직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중이다. 녀석을 놓아주지 않기 위해.
‘저 꼬맹이······ 진짜 뭐지?’
물론 정확한 사연까진 알 수 없었다. 앞뒤 잘라먹은 상태에서 대화의 일부만으로 대강 추측한 것에 불과하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클리셰다. 그것도 몹시 비중 있는 역할의 캐릭터나 가지고 있는 그것이다.
이 같은 사연을 가진 이들은 대개 핵심 조연으로까지 부상한다. 주인공을 만나 구함을 받은 뒤, 조직이 녀석을 놓아주지 않으려 한 이유인 그 ‘비범한 능력’을 주인공의 동료가 되어 원껏 발휘하는 것. 그게 클리셰의 완성이다.
다만 문제는,
‘암만 떠올려 봐도 본 기억이 없어······.’
이 녀석이 등장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녀석은 특수한 능력과 개성적인 외모, 특이한 행동, 심지어 사연까지 갖췄으면서 등장하지 못했다.
어째서일까.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한 가지였다.
저 꼬맹이는 등장인물로 기획됐으나, 출연이 무산된 비운의 캐릭터라는 것.
머릿속이 대단히 복잡해졌다.
저 녀석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지 않을까.
‘회수하지 못한 떡밥’만큼이나, ‘등장시키지 못한 캐릭터’ 또한 작가에게 있어 진한 아쉬움의 대상일 것이다.
만약 내가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기도?’
물론 당장은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할 형편인데, 다른 캐릭터를 어찌 무대에 세운단 말인가.
하지만 분명한 건, 생각해볼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꼬맹이를 데리고 가야할 이유 하나가 더 늘어난 셈이었다.
나는 다시금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까지 경과된 시간은 15분.
마침 꼬맹이가 이 조직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리 어려울 건 없을 듯했다.
꼬맹이와 대화 중인 남자를 먼저 때려눕히고, 꼬맹이에게 도와주겠다고 말한 다음, 대충 설득한 뒤, 돈 자루를 가지고 함께 튀면 된다.
‘오케이, 쉽네.’
그러고 내가 막 방문을 열어젖히려 할 때였다.
“어이, 밖에 잠깐 기다리라고.”
느닷없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까지의 나긋나긋함은 온데간데없이, 메마른 듯 거칠어진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당황했다.
물론 그 달라진 음성의 질감 때문은 아니었다. 당연지사 그 내용 때문이었다.
기다리라고?
나는 서둘러 주변을 훑어봤다. 보이는 이는 없었다. 나뿐이었다.
‘······에이, 설마.’
나는 숨조차 참은 채 상황을 살폈다.
말도 안 된다. 설마 발각 당했을 리가.
그러나 심장의 두근거림이 미처 다 가라앉기 전, 또 한 번 음성이 날아들었다.
“대화 중이잖아. 그래, 그렇게 잠시 기다리라고. 곧 나가서 없애줄 테니까. 쥐새끼 녀석.”
“밖? 누가 있어?”
······이런.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저 녀석이 지칭하는 대상은 바로 나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돈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당장 도망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하여 곧장 뒤로 내달리려 할 때였다.
갑작스레 방 안쪽에서부터 수십 개의 날붙이가 문을 부수며 내게 날아들었다.
“이크!”
그중 포크 하나가 뺨을 스치며 지나갔다.
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곧바로 미간이 꿰뚫릴 뻔했다.
“그렇다고 도망치라고 말하진 않았는데.”
“······.”
곧이어 한 남자가 뚜벅뚜벅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민대머리에 붉은색 망토.
그의 외형을 본 순간, 잠깐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야······ 투명화? 참나, 별 지랄을 다 하는구먼. 좋은 말로 할 때 얼굴 좀 보자고. 갈기갈기 찢긴 채로 세상에 드러나기 싫으면.”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화에서.
50권 언저리, 모험왕의 자리를 놓고 열 개의 모험단이 서로 격돌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름하야, 크노크산 왕위 쟁탈전. 그때 본 녀석이 틀림없었다.
정확히 어디 소속의 누구인지까진 모르겠으나, 하나 확실한 게 있었다.
그 열 개의 모험단에 소속된 녀석들 중 약한 놈은 없다는 것.
한 사람 한 사람이 이깟 도시쯤 반나절 만에 괴멸시킬 수 있을 정도라는 것.
그것이 설사 말단 쫄따구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어? 안 드러내? 나 거짓말 아닌데?”
이어 녀석이 순간적으로 무형의 힘을 발산시켰다.
팟-.
“커-헉.”
나는 내가 무엇에 당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녀석이 뚜벅뚜벅 앞으로 다가왔다.
“뭐, 보나마나 못생긴 얼굴일 텐데 확인해서 뭐해. 그렇지? 그냥 가는 게 너도 나도 깔끔하고 좋겠지?”
나는 절로 몸이 떨려오는 걸 느꼈다.
다리며, 팔이며 쉬지 않고 후들거리는 바람에 몸조차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후······.”
딱히 죽음을 직감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건 ‘격’의 차이를 체감한 캐릭터가 자연스레 취하게 되는 행동이었다.
이를테면 엑스트라 악당들이 주인공의 고유능력을 본 순간, 너나할 것 없이 벌벌 떨며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그냥 내가 겁에 질린 것일지도.’
나는 그 이상 생각하는 걸 멈추곤, 곧장 투명화를 풀었다.
뭐,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그러자 남자가 낄낄거리며 나를 손가락질했다.
“이것 봐, 못생겼네. 그냥 투명하게 있지 그랬어.”
“······이대로 죽기엔 억울해서 한 마디 하려고.”
“한 마디?”
그때였다.
“······어? 주걱턱?”
꼬맹이가 날 알아보곤 놀라 입을 벌렸다.
“호오, 아는 사이?”
남자가 흥미롭다는 듯 콧소리를 냈다.
다행이었다. 시간을 좀 벌 수 있을 듯했다.
“말했잖아, 억울하다고. 내가 여길 왜 몰래 들어왔겠어?”
내 말에 남자가 잠깐 침묵하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 모르겠는데?”
그러자,
“멍청한 은행털이범이야. 불쌍한 주걱턱이지.”
꼬맹이가 대신 답했다.
좀 전에 들은 안타까운 사연을 단번에 잊게 만들 정도의 싸가지였다.
“아하, 저 애가 목적이었나 보군.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저 녀석한테 직접 가서 말해도 될까? 내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고, 또 지금 얼마나 억울한 심정인지?”
“굳이?”
“자기 때문에 돈도 날리고 이제 목숨까지 날리게 생겼으니까. 직접 쏴 붙이고 싶어서.”
남자는 피식 웃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불가. 저래 보여도 우리 조직의 보물이거든. 해코지 당하게 둘 수야 있나.”
그때,
“괜찮아, 오라고 해. 저깟 주걱턱 따위 별 것 아니니까.”
꼬맹이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남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하긴. 그래, 한 번 토로해보던가. 그렇다고 딱히 분이 풀릴 것 같진 않지만 말이야.”
곧이어 남자가 힘의 발산을 풀었는지, 몸의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나는 나를 보며 낄낄거리는 남자를 지나, 터벅터벅 꼬맹이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 본 녀석은 다소 의외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긴장과 초조, 당혹스러움이 한데 버무려진 얼굴. 그리고 그 사이 번진 눈물 한 방울.
녀석은 내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꼬맹아.”
“······어쩌자고 여길 왔어. 어떻게 여길······.”
“돈은 어떻게 빼돌렸냐?”
“뭐?”
“너 그 가죽주머니 성능 좋더라. 돈 아직도 거기 들어 있냐?”
“······바보 주걱턱. 그게 지금 중요해?”
“중요해. 나보다도 너한테 더. 있어, 없어. 빨리 얘기해.”
꼬맹이는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그즈음,
“이봐, 이봐! 어차피 그 돈 죽을 땐 못 챙겨 가. 그만 잊고, 여긴 어떻게 찾았는지부터 말해보라고.”
남자가 소리치듯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를 무시한 채 꼬맹이에게 재차 물었다.
“오케이, 너 구해주면 그거 나 줄래? 이번엔 사기 치지 말고.”
“······뭐?”
“아니, 야! 지금 뭔 소리를······.”
남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꼬맹이에게 얼른 손을 내밀었다.
“약속한 거다. 알아들었으면 내 손 잡아.”
“그게 무슨······.”
꼬맹이는 의아해하면서도 내게로 손을 뻗었다.
“하하, 이것들이 지금 무슨 장난질을······.”
그러고 막 남자가 우리에게 당도했을 즈음, 나는 조금 전 켜둔 홀로그램 창을 터치했다.
이어,
-이동하실 장소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이동이 가능하도록 개방된 권역은 총 다섯 챕터입니다.
아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골담시티로.”
*
꼬맹이의 이름은 코코아였다.
여자애였고, 아홉 살이었으며, 머나먼 북부 노스랜드 출신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뻔뻔한 녀석이었다.
“원래 갚으려고 했었어.”
“퍽이나.”
“보니까 완전 반반으로 나눈 것도 아니던데. 따로 빼돌린 거 있었지?”
“······.”
“쌤쌤.”
“······어이가 없네.”
황당함에 나도 모르게 콧방귀가 나왔다.
“근데······ 너 그때 그 저주물약. 혹시 그것도 가짜였냐?”
“응.”
“······그래, 그랬겠지. 물어본 내가 바보지.”
흐음. 그래도 그건 진짜 같았는데. 연기도 막······ 솟아올랐고.
이어, 나는 내 옆에 꼭 붙어 선 녀석을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녀석을 구함으로써 생각지도 못한 위험요소가 생겨버렸다. 그것도 대단히 위협적인.
물론 민대머리의 존재 하나만으로, 저 조직이 ‘크누크산의 왕위 쟁탈전’에 나오는 그 열 개의 모험단 중 한 곳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보기엔 입구를 지키는 조직원이 너무나도 약했으니.
다만, 그 민대머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게 사실이었다. 녀석이 추격의지를 불태운다면······ 꽤 피곤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또 하나.
“조직명? 나도 몰라.”
“그럼 대장 이름은?”
“몰라. 내가 아는 건 그 녀석뿐이야.”
코코아 또한 조직의 정체를 제대로 모른다는 것. 이는 내가 가진 지식으로도 녀석들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어디서 뭐 하던 놈들인지를 알 수 없으니.
흐음.
뭐, 그렇다고 당장 하늘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쉴 정도는 아니었다. 애당초 챕터에 속해 있는 동안엔 솔직히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만들어둔 ‘선행 플롯’이 제3자의 등장을 최대한 막아줄 테니. 주인공 근처만 맴돌아도 습격의 위험은 상당히 줄어들지 않을까.
그즈음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코코아가 물었다.
“무슨 생각해?”
“몰라도 돼.”
“말해봐. 주걱턱은 바보라 의논 상대가 필요하니까.”
“······.”
어쨌거나 위험요소는 위험요소고, 당연지사 이 녀석과 함께 함으로써 생기는 긍정적인 요소 또한 존재했다.
첫째, 이 녀석을 실제 등장인물로 만들고 작가의 호감도를 살 수 있다는 것.
물론 이건 내 어림짐작일 뿐이다. 이 꼬맹이가 캐릭터로 만들어지지 못한 데엔 어쨌거나 이유가 있다. 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어설피 등장인물로 만들려다간, 자칫 작가의 구상과 충돌하게 될지도 모른다. 되레 작가의 분노를 살지도.
오히려 이보다는 다음의 이유가 내겐 더욱 가치가 있었다.
둘째, 이 녀석이 그냥 그 자체로 굉장히 다재다능하다는 것.
“근데 너 가죽주머니 용량은 어느 정도나 되냐?”
“안 재봐서 몰라.”
“더 들어갈 자리 있어?”
“왜? 건물이라도 집어넣게?”
“······.”
내가 특수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것은 놀랍게도, 이 녀석의 ‘고유능력’이었다.
[무엇이든 넣고 뺄 수 있는 가죽주머니].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려 클리셰적 사연까지 적용된 캐릭터가 아니던가. 실제 작중에 등장하지 못했다곤 하나, 이 꼬맹이의 캐릭터 설정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이뿐만이 아니었다. 꼬맹이 치고 어마어마한 괴력에, 은행 터는 작업도 스스로 다 한 거였단다.
‘흐흐, 꼬맹아. 죽도록 부려 먹어주마.’
코코아는 낄낄거리는 나를 희한하다는 듯 쳐다봤다.
“근데 이제 뭐 할 거야?”
“뭐하긴, 우리 잘하는 거 해야지.”
“우리가 잘하는 거?”
나는 멀리 보이는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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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구하느라 전재산 다썼어.”
이제 다시 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