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가자, 진짜 세계로
***
“이대로 그냥 떠나는 거야?”
“그렇지. 왜?”
“······아, 아냐.”
도로시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표정이었다.
입은 툭 튀어나온 데다, 눈알이 연신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어째 마음속에 담아둔 말이 잔뜩 있는데, 눈치가 보여 말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힘을 되찾은 이후로 말투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굉장히 당차게 바뀐 것 같더니만······ 그것도 완벽히는 아닌 듯했다.
그즈음,
“마법구두는 왼편 가장 끝 방에 있다.”
갈림길에서 멈춰선 얼음여왕이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 따로 이상한 마법 같은 거 걸려 있는 건 아니지?”
“그것까진 모른다. 어차피 다 하늘마녀가 관리하고 있던 것이니. 내가 아는 건 그것의 위치뿐이야.”
흐음.
얼음여왕의 표정을 보니 거짓은 아닌 듯했다.
“근데 그거 혹시 사이즈가 어떻게 되지? 그러니까 발 크기 말이야.”
“······.”
“아니, 발이 안 들어갈 수도 있잖아. 마녀 전용이면 좀 작지 않을까 싶어서.”
“흥, 소년으로 다시 변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 변신? 근데 내 변신은 사용제한조건이 있어서 말이야. 보름에 걸쳐 한 시간 밖에 못 변하거든. 근데 그때 마물의 초원에서 시간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잘 알지 않나?”
그러자,
“······치잇.”
얼음여왕이 나를 보며 이를 꽉 물었다.
그녀의 두 눈엔 어느새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흐음.
생각보다 뒤끝이 긴 여자였다. 어차피 결과엔 변함이 없는데, 그거 좀 속았다고 뭘.
실은, 약간의 속임수를 좀 썼던 것이다.
잠시 후 결판이 날 것 같다며 10분 타이머를 걸었던 것.
이어, 미소년으로 변해 하늘마녀의 최후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던 것.
사실 다 뻥이었다.
대충 전투가 흘러가는 걸 지켜보니, 솔직히 지지부진 가겠다 싶었던 것이다. 당장 ‘킹’이 적의 마물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나, 녀석 하나만으로 다 밀어버리기엔 적의 수가 많았고, 또 그리 만만치도 않았으니.
더군다나 믿고 있던 코코아는 그간 꽤 열심히 싸웠는지, 장비의 에너지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신수들과 치누아비, 하카가 힘을 내주고 있긴 하나, 그리 좋은 흐름은 아니었다. 아직 최종 보스라고 볼 수 있는 세 탑의 여왕들은 참전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그리고 또 하나.
그때까지도 몸의 화상이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자꾸만 기운이 빠진다고나 할까.
폼을 잡고 서 있는 것조차 부담이 될 정도였으니.
다시 생각해도 미친 짓이긴 했다. 하늘마녀의 마법을 보호 장갑 하나만 믿고 깡으로 받아 내다니······.
어쨌거나 당장의 전황이 유리해 보인다고는 하나, 이대로라면 그리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시간은 시간대로 끌리고, 혹여 하늘마녀와 도로시의 싸움이 길어지기라도 한다면 퇴각을 해야 할지도 모를 판이었다.
그래서 그냥, 슬쩍 한 번 질러봤던 것이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뭐······ 말고.
그즈음 나는 가만히 얼음여왕을 돌아보았다.
아니, 본인도 자신이 없어 내 제안을 덥석 물었던 게 아닌가. 실제로 기다렸다는 듯, 퇴각명령을 내린 것도 본인이었고. 좀 더 지켜보자는 두 여왕들의 만류마저 무릅쓰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쪽은 나를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되는 거라고.
하여,
“아니, 좋게 좋게 끝났는데 또 왜 이래? 표정 풀지?”
그러곤 나는 옆에 있던 도로시를 슬쩍 가리켰다.
지금 여기 안 보이냐고. 하늘마녀마저 무참히 깨버린 슈퍼괴물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걷고 있는 게.
이에,
“······그냥 그래도 되지 않나 싶어 말했던 것뿐이야. 별 뜻은 없었다.”
얼음여왕이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확실히 무섭긴 했던 모양이다.
물론, 말마따나 미소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긴 했다.
하늘마녀에게서 저주를 일시적으로 해제할 수 있는 약초를 일정량 얻긴 했으니.
하지만 고작해야 발 크기를 줄이기 위해 그걸 쓰기는 아까우니까.
그때였다.
“어차피 마법구두는 그저 하늘마녀가 만들어둔 형상일 뿐이다. 이동을 원하는 이의 바람에 따라 필요한 형상으로 바뀔 거다. 다 같이 넘어가려면······ 마차 같은 게 나을지도 모르지.”
“뭐야, 그런 거였어?”
“그렇다.”
“허, 참나.”
웃기는 마녀였다. 그럼 그렇다고 진즉에 말할 것이지. 변신이니 뭐니 할 게 아니라.
물론 뭐, 이를 따지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래, 그럼 우리는 이만.”
그러고 막 마법구두가 있다는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갑작스레,
“잠깐!”
누군가가 버럭 고함을 쳤다.
도로시였다.
“같이 가면 안 돼?”
“엉? 뭘?”
“주걱턱! 당신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어!”
“······뭔 소리야? 누구?”
“안 되겠어······ 같이 가야겠어!”
난데없는 상황이었다. 도로시가 떼를 쓰다니.
더군다나 이 녀석은 외톨이라 딱히 친분이 있는 이도 없을 텐데.
당혹스러웠다.
‘나랑 인연이 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 사람이 어디······.’
아니지, 가만.
순간, 나는 놀라 도로시를 쳐다봤다.
“너 설마······.”
도로시가 알고, 나와 인연이 있으며, 힘을 되찾고 기고만장해진 도로시가 그럼에도 주저주저하며 꺼낼 수밖에 없는 사람?
떠오르는 건 단 한 명뿐이었다.
하늘마녀.
“어차피 우리가 데려가도 아무 말 못할 거야.”
“허······.”
물론 맞는 말이긴 했다.
얘가 그러겠다고 하면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현 시점에서 도로시를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이 세계에 존재하기는 할까.
솔직히 나도 자신이 없었다.
무한의 마녀라지 않는가, 한계 없이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고.
도로시가 가진 힘의 실체를 알게 된 직후, 내가 느낀 감정은 바로 ‘경악’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이 세계의 파워밸런스를 심각하게 붕괴시킬 만한 힘이었으니.
실제로 ‘아, 이래서 원작에서 도로시 파트가 삭제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솔직히 지금 작가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다.
그는 과연 도로시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실제로 약간 두렵기도 했고.
뭐 어쨌거나,
“그래도 안 돼. 그건······ 많은 부분을 뒤틀리게 할 거야. 이곳 데모라도 그렇고, 바깥세상도 그렇고.”
암만 저 괴물의 반협박성 부탁이라 할지라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순 없었다.
하늘마녀까지 데려가는 건······ 아무래도 좀 아니니까.
그러나 나의 명백한 거부에도, 도로시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무조건 함께 가겠다고.
당혹스러웠다.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아는 거야? 하늘마녀는 네 힘을 빼앗았던 당사자라고, 네게 고통과 외로움을 심어준 직접적인 원인. 어째서 갑자기 그녀를······.”
“살려두라고 한 건 주걱턱이었잖아! 하지만 이곳에 두고 간다는 건······ 그건······.”
나는 그러곤 느닷없이 울먹거리는 도로시를 당혹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허······.”
물론, 천공의 섬에 오르기 전 내가 먼저 요청을 한 건 맞았다.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는 제압하는 쪽으로 해보라고.
솔직히 나로선 내 외형에 관한 것도 챙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라미레스 쟁탈전 이후 얼마간 보이지 않다가, 대뜸 미소년이 되어 아무렇지 않게 활동한다면 그게 독자들 보기에 어떻겠냐고. 외모를 변경한다 하더라도 순차적으로, 심적 저항감이 없는 상태에서 자연스레 넘어가야지.
하여, 무리한 요구일 순 있겠지만 일단 말은 해놨었던 것이다.
근데 그게 이렇게까지 친해지라는 건 아니었는데······.
그즈음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얼음여왕 쪽을 슬그머니 돌아봤다.
“······.”
얼음여왕의 얼굴은 어느새 흙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실 지금 별 충돌 없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도, 하늘마녀를 그대로 넘긴다는 조건 하에 이뤄진 일이었다.
그리고 얼음여왕과는 실제로 얘기가 잘 성사된 상태였다.
하늘마녀를 살려두되, 금제하여 관리하는 식으로.
저쪽에서도 곧바로 하늘마녀가 죽는 건 원치 않아 했던 것이다.
하늘마녀가 죽을 경우, 지금껏 그녀에게 힘과 외모를 빼앗겨 있던 많은 마녀들이 일시에 이를 되찾는 결과가 나타난다.
하늘마녀에 의해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되어 현재의 위치가 허락된 탑의 여왕들로선, 그 같은 결과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혹, 힘을 되찾은 누군가에 의해 현재의 지위가 흔들릴 수도 있을 테니.
하여,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아주 아름다운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도로시가 태클을 걸어온 것이었다.
이러면 이제 상황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마법감옥에 끌려간 하늘마녀를 데려오려면 또다시 이 녀석들과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거고, 그럼 또 시간이 끌리게 될 수밖에 없을 거고, 이는 곧······.
‘어우······ 그건 많이 곤란한데.’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하여, 다시 한 번 도로시를 설득하기 위해 말을 준비할 때였다.
갑작스레,
“그만해 도로시.”
“······?”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앳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엔 힘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 하지만······.”
그 한 마디에 도로시의 생떼가 멈췄다.
그러고 보니 딱 한 명 있었다.
지금의 도로시를 통제할 수 있는 이가.
“자꾸 애처럼 굴 거야?”
“고, 공주님······.”
“하늘마녀는 죗값을 치러야 돼. 너도 그건 동의할 거 아냐.”
“그, 그렇긴 하지만······.”
“그녀가 너더러 구해달라고 했니? 함께 가자고?”
“아, 아뇨 그건······.”
“그런데 왜 그래. 힘을 찾게 되었다고 모두와의 약속을 저버릴 셈이야? 질서를 어긋나게 할 셈이야?”
“······죄, 죄송해요.”
놀라운 일이었다.
저 도로시가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감격에 찬 눈으로 코코아를 쳐다봤다.
“어차피 저들도 그녀를 죽이진 못해. 모험을 다 끝낸 뒤에 돌아와도 늦지 않아. 그땐 하늘마녀 또한 충분히 죄의 대가를 치른 상태일 거고.”
“······네.”
“도로시, 이곳 데모라에 네가 남겨둬야 할 미련 따윈 없어. 돌아보지 마. 너는 지금 마법공주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거니까.”
“······네!”
이어 내 전유물과도 같은 대사가 코코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디서 보고 배운 건 있어 가지고.
“가자, 진짜 세계로.”
*
쿵-.
다시 오두막이었다.
돌아보니, 딱히 달라진 건 없는 듯 했다.
다만,
“응? 몸이 조금 이상한데?”
“저도 좀······ 무거운 것 같습니다.”
“마법의 작용일까요?”
“이런 마법은······ 들어본 적 없는데.”
역시나.
우리 몸의 상태는 꽤나 달라져 있었다.
일단 좀 무거웠다. 물 먹은 솜이라도 된 양 축 늘어지는 느낌이랄까.
본인이 가진 힘에 따라 느껴지는 바가 다르겠지만, 아마 모두들 일정 이상의 ‘부하’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후. 괜찮으니, 진정들 하고 적응부터 좀 해.”
본래 이 데모라와 같은 ‘시간축이 비틀린 공간’이 처음 원작에서 나타나는 때는 미들랜드로 넘어간 이후이다.
하여, 혹 아직 설정이 적용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으나 오산이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이 모험왕 세계엔 이 ‘시간축이 비틀린 공간’과 관련하여, 작가가 설정해둔 특이한 밸런스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이 ‘공간’의 이용자는 반드시 일정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한때 ‘작가 한 마디’ 페이지에서 작가가 직접 밝힌 적이 있다.
모 만화에서 주인공이 ‘현실의 하루가 내부에선 1년이 되는 공간’에서 수련하여 파워업 하는 내용이 있는데, 자신은 이를 굉장히 불편하게 봤다고. 그것이 몹시도 주인공 편의적인, 불공정한 설정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시간이 다른 세계’라는 소재 자체는 굉장히 흥미로우나, 이를 좀 더 균형감 있게 활용하려면 보다 커다란 페널티가 존재해야 할 것 같다고.
실제로 이 같은 생각이 그대로 적용이 된 게 바로 이 밸런스 원칙이었다.
원칙의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시간축이 비틀린 공간’의 이용자는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부하가 걸린다.
-해당 공간의 설정과 들어가 있던 시간에 비례하여, 그 강도와 적용기간이 달라진다.
다만, 이에 대한 정확한 수치까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데모라에서의 열흘이 현실의 하루이고······ 우리가 있었던 시간이 엿새하고도 반나절 정도인가? 분명 페널티 계산공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잠시 생각하던 나는,
‘아, 반영되어 있으려나?’
혹시나 싶어 상태창을 뒤적거려봤다.
그리고 이내,
-현재 등급 : 조연
-현재 수치 : 764
-경험치 : 82%
-다음 등급까지 남은 수치 : ?
-선행 플롯 무시 가능 횟수 : 3회
※특이사항
-‘시간의 부하’ 페널티 적용 중.
-1146→764
-적용기간 2주
마침 페널티가 반영되어 있는 창을 찾을 수 있었다.
‘호오······.’
격이 3분의 2정도로 줄어들어 있었고, 지속기간은 2주였다.
이 정도면 그리 불합리한 수준은 아니었다.
원작에서 본, 모험의 탑 내부에 있는 ‘시간축이 비틀린 공간’은 모 만화에서와 같이 ‘1일=365일’이 적용되는 곳이었는데, 이때 걸리는 ‘부하’는 그야말로 무지막지했으니.
다만, 아직 좋아하기엔 일렀다.
이 ‘공간 이용자’가 치러야 할 대가에 ‘부하’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엔 ‘공간 제작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 또 따로 존재했다.
이는 ‘세계의 차원’에서 주어지는 페널티라기보다는, 인물 간의 거래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외려 이게 훨씬 더 무서운 페널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제작자가 요구하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
실제로 모험의 탑에 입성한 뒤, 레오가 성장을 위해 그 같은 공간에 입성하게 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때 레오가 대가로 지불한 게 바로 ‘기억의 일부’였다.
나는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상태창을 뒤적거려 봤으나, 이와 관련된 내용이 표기된 창은 없었다.
‘혹, 캐릭터가 없어서 그런 건가?’
내가 알기로, 데모라라는 세계를 만든 이는 데모라 본인이었다.
원작에서 따로 나오는 인물도 아니고, 다른 설정에 엮인 캐릭터도 아니니, 어쩌면 이대로 넘어갈 수도 있으리라.
‘그럼 다행이긴 한데······.’
다만 안심할 순 없었다. 이 ‘시간과 공간’에 관한 원칙은 작가가 유독 주의 깊게 생각하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어쨌거나,
“본래 현실과 시간이 다른 세계에 들어갔다 나오면 다 이렇게 되는 거야. 허둥대지 마.”
“오······ 정말?”
“어떻게 알았어?”
“마법의 일종인가? 근데 나는 배운 적이······.”
“됐고, 호흡부터. 슬슬 나가자고.”
일단은 여길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때마침,
쿵-.
녀석들이 오두막 바깥에 모습을 드러냈다.
헨젤과 그레텔.
“못······ 나간다!”
“한 발자국이라도 나오면······ 먹어······ 버린다!”
이전이었다면 귀찮음을 느껴야 할 대상들이었지만 지금은 문제가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러곤,
“도로시, 부탁해.”
도로시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응? 나?”
“마법을 쓰면 대충 알아서 비키지 않을까? 이들은 마녀가 아닌 이들의 통행을 막는 거니까.”
“그래? 잠시만.”
이어,
화르르-.
앞으로 나선 도로시의 손길에서 어마어마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당황스러울 정도의 화력이었다. ‘부하’가 걸린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보여만 주라니까. 통째로 태워버리라는 게 아니라.”
거인들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인지,
“마, 마녀······.”
“그, 그냥 가도 된다!”
후다닥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두 거인을 쫓아낸 뒤,
“일단······ 도시로 좀 이동하자.”
우린 오두막을 떠났다.
*
사우스랜드 국립공원 외곽.
소도시 자브.
“고로, 앞으로 2주간 자유시간이다.”
나는 일행에게 휴식을 선언했다.
지금은 좀 약해진 상태이니 괜한 소란 피우지 말고, 편히 시간 보내라고.
마침 2주면 딱 적당했다.
그즈음엔 레오 일행이 이곳 사우스랜드로 넘어올 테니, 그에 맞춰서 에피소드를 준비하면 될 터였다.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쓰되, 해야 할 건 빼먹지 마. 개인정비도 하고, 필요하면 돈도 좀 구해두고. 혹시 별 일이 생기면, 데모라에서와 마찬가지야. 눈치 보지 말고 곧장 신호해.”
잠시 후, 코코아와 도로시가 먼저 떠났다.
코코아에게 부여된 별도의 임무는 도로시에 대한 교육이었다. 아무래도 바깥세상에 대해 무지할 것이기에, 함께 다니며 이것저것을 알려주라고 했던 것이다.
물론 약간 불안하긴 했다.
괜히 이상한 물이 들까봐. 지금도 약간 위태로운데.
그래도 뭐······ 어쩔 수 없긴 했다. 애당초 통제가 가능한 게 코코아뿐이었으니.
다음으로 하카가, 이어 구구가 떠났다.
하카는 이곳의 ‘조직’들에 대해 별도로 알아볼 게 있다고 했고, 구구는 그냥 좀 돌아보고 싶다며 훌쩍 날아가 버렸다. 확실히 신수들에게 이곳 사우스랜드는 생명력이 넘실거리는 땅이라는 표현대로, 곳곳이 별천지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네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알아, 네 집이 여기인 거.”
“소식이 없으면 먼저 가도 좋다.”
“그러지.”
사실 의미 없는 문답이었다.
어차피 다음 에피소드가 발생할 장소가 바로 녀석의 집이니까.
본인은 아직 모르겠지만.
그렇게 네로까지 떠나보낸 후,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이를 불렀다.
“치누아비, 넌 나랑 가자.”
“예? 아, 옙. 딱히 계획이 있으신지요?”
“있지.”
“어떤?”
“돈 좀 벌자.”
“아하!”
“도시 규모는 작지만 동물 시합 같은 건 아마 많을 거야. 전에 해봐서 알지? 이거 내기다. 누가 더 많이 벌어오느냐 하는 거야.”
“후훗, 설욕의 기회를 주시는 겁니까? 밤마다 분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지요.”
“미안, 너 잠은 이제 다 잤네.”
그러곤 나는 하늘마녀에게서 얻어온 약초를 입에다 조금 털어 넣었다.
오랜만에 소환하는 거다 보니, 나름의 성의표시는 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뾰로롱-.
다음으로, 나는 고유능력 [공평을 싫어하는 확률조정자]를 발동시켰다.
이어,
스스슷-.
“······.”
녀석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어? 주걱턱이 아니네?”
녀석의 턱이 들어가 있었다.
턱뿐이 아니라, 그냥 얼굴 자체가 달라진 상태였다.
뭐랄까, 이제야 드디어 요정 같이 보인다고나 할까.
내게 귀속된 존재라서인지, 녀석 또한 내 외모를 따라가는 모양이었다.
때마침,
“와줬구나······.”
녀석이 입을 열었다.
“응?”
“와줬어······.”
근데 약간 반응이 이상했다.
필요할 때만 찾니, 어쩌니 하면서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게다가 말의 내용도 뭔가 좀 희한했다.
‘와줬구나’가 아니라 ‘불러줬구나’ 되어야 하지 않나?
그때였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어?”
“······엉?”
“여기까지 직접 찾아와주다니······ 감동이야.”
녀석이 또 한 번 영문 모를 소릴 꺼냈다.
“······.”
당황스러웠다.
“너 여기 사니?”
“응, 근처야. 요정의 숲.”
“허······.”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요정의 숲? 이건 또 뭐야.
완전히 생소한 배경이었다. 설정 자체를 모르는 건 또 처음이었다.
뭐 사우스랜드 자체가 생명력이 가득한 대지라는 설정이라,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작가는 왜 이렇게 만들기만 하고 안 쓴 설정이 많은 거야······.’
솔직히 좀 황당할 지경이었다.
약간 쓸데없는 데 힘을 많이 주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갈 거지?”
“어? 그게······.”
물론, 궁금하긴 했다. 요정이라니······ 흥미가 갈 수밖에 없지 않나.
또 마침 시간이 남긴 했고.
“흐음, 근데 거기 돈 되는 것들······ 아니, 반짝이는 것들 좀 있냐?”
그러자,
“많아!”
녀석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실히 기대가 되기는 했다.
요정들이 사는 곳, 뭔가 있어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지 않는가.
물론, 그 전에 체크해야 하는 게 하나 있었다.
“숲이라고?”
“응.”
“근데 혹시 거기 막, 다른 세계야? 시간이 빠르다거나 느린······ 어떤 그런?”
“응? 무슨 말이야? 숲이라니까?”
“······아냐, 아니다.”
오케이.
나는 그즈음 멀찍이 떨어진 채, 내기시작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던 치누아비를 불렀다.
“갈 데 생겼다.”
그러자,
“······돈 벌기 내기는요?”
치누아비가 대단히 상심한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지간히도 복수의 기회를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에,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내기는 계속될 테니까. 대신 세부사항이 바뀌었지.”
나는 한 차례 씩 웃어줬다.
“단순한 돈 벌기가 아니라, 요정들의 보물찾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