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달리기 경주
***
과연 이 녀석이 뭘 하자고 할까.
처음 치누아비가 내기를 제안해왔을 당시, 당혹스러움에 이어 내가 느낀 감정은 다름 아닌 기대감이었다.
이 녀석이 대체 어떤 종목을 들고 나올까.
사실 이즈음 나는 내 ‘승부사적 기질’에 꽤나 자신이 붙은 상태였다.
몇 차례 연속적으로 닥쳐온 위기들을 극복해내면서 뭐랄까······ 일종의 ‘뭐든 할 수 있다’ 뽕이 차올라 있었다고나 할까.
치누아비가 대전 상대로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나는 그 누구에게도, 또 어떠한 승부에서도 질 자신이 없었다.
이미 경지에 이르렀으니.
“흠흠······ 흠.”
하지만 물론, 치누아비가 결코 쉬운 상대라고 볼 순 없었다.
무력으로 붙는다면 녀석은 당연히 내 상대가 되지 않겠으나, 녀석의 전문분야에서 붙는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고전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위협이 될 만한 종목이라면······ 도깨비씨름 정도?
아직 내겐 이렇다 할 ‘정신방벽’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에, 까딱 잘못하면 치누아비의 고유능력에 현혹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녀석의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이는 현재 맞붙을 수 있는 종목이 아니었다. 도깨비씨름은 도깨비가 세 명은 되어야 진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심판을 봐야 되니까.
하여, 대충 수수께끼나 숨바꼭질 따위를 제시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미로 찾기?”
이를 딱 듣자마자,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요 녀석······ 진짜 나 한 번 이겨볼 생각인가?’
실제로 탄성이 나올 뻔 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정말 해볼 만한 승부처럼 느껴졌으니까.
딱 봐도 고심한 기색이 역력했기에, 제안을 물리거나 퇴짜 놓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분명 해야 하는 이유까지 다 준비해왔을 게 뻔하니까.
하여, 나는 종목에 대해 이렇다 할 말을 꺼내는 대신 당장 이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 구상에 들어갔다.
당장 떠오르는 게 두어 가지 있긴 했다.
일단 시아나의 [공평을 싫어하는 확률조정자]를 흉내 내는 것.
이건 뭐 생각할 것도 없었다. 쓰는 순간 승리였다. 무슨 확률을 더 조정할 것도 없이, 그냥 요정에게 길 안내만 받아도 되니까.
그래서인지, 이에 대해선 치누아비가 처음부터 선을 긋고 나왔다.
그 능력은 쓰지 말라고.
나도 오케이 했다. 굳이 뭐, 재미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으니까.
다음으로 떠올린 건 얀의 [유령살수와 함께 춤을].
이를 활용해서도 굉장히 쉽게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어쩌면 앞서의 확률조정자보다도 더.
그냥 미리 여기에다 유령하나를 빼놓은 뒤, 경기가 시작함과 동시에 나와 유령의 위치를 바꾸기만 하면 된다.
언제 몰래 빼놓느냐가 관건이 되는 것 정도?
다만 이 또한 치누아비가 미리 생각을 해뒀던 건지,
“능력의 발동은 경기의 시작과 동시에 하는 걸로 하시지요.”
못을 박아두는 바람에 쓰지 못하게 됐다.
미리 빼두는 방식이 아니라면, 이 능력은 사실 크게 효용성이 없다. 유령이라고 숲의 함정과 수수께끼를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이쯤 되니, 약간 문제가 생기긴 했다.
사실 이 외에 쓸 만한 능력들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애당초 해독의 영역에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공평을 싫어하는 확률조정자]외엔 없었는데, 이는 초장부터 금지였으니.
아마 치누아비 또한 여기까지 다 내다보곤 종목을 선정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한 번 이겨보려고.
뭐, 노력은 가상했다. 어느 정도 전략이 적중하기도 했고.
실제로 나는 출발지점에 다다를 때까지, 마땅한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별 수 없나?”
녀석이 하나 모르는 게 있었다. 라미레스 쟁탈전 당시 내가 쓸 수 있는 능력의 목록이라고 나온 건 그저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는 걸.
나는 현 상황에 아주 적합한 능력을 하나 알고 있었다.
이윽고,
-그럼 준비!
-출발!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은막을 뒤집어 쓴 치누아비를 뒤로한 채 나는 우리가 나왔던 방향 그대로 들어갔다.
물론 그 길이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이유야 별 게 없었다. 그냥 제일 가까웠기 때문에.
애당초 어디로 들어가든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이어, 나는 하나의 고유능력을 흉내 냈다.
-어떠한 법칙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단, 물리법칙은 제외.
사실 아주 그리 대단한 종류의 능력은 아니었다.
신체능력이 증가하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작용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니.
이 능력의 쓰임이라야 별 게 없었다. 그저 외부의 출입을 막아놓은 결계나 함정 따위에 마음껏 ‘난입’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이건 굉장히 ‘흔하기’까지 했다. 고유능력이라곤 하나, 실제로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훼방꾼 도깨비들이 보통 하나씩 들고 있는 게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이 모험왕 내에서 가장 ‘흔한 능력’이랄까.
‘이걸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이야······.’
본래 나는 이 능력을 쓸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 이유야 간단한데, 애초에 나는 이 능력을 ‘도주용’으로 쓰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제어불가 훼방꾼이 나타났다]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 능력의 효용성은 난입할 때보다는 도주할 때 가장 극대화된다.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만 믿고 어딜 난입했다간, 그 다음이 없기 때문이다.
훼방꾼 도깨비들이 뭔가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뒤는 생각도 안하고 대뜸 뛰어들기만 하니, 그냥 얻어터지다 사라지는 수밖에.
즉, 이 능력은 어떠한 종류의 제약이나 법칙에 의해 옥죄어지게 되었을 때, 이를 풀고 도망쳐 나오는 식으로 사용하는 게 베스트라는 것이다.
헌데 이걸 이리도 일찍, 그것도 해독의 영역에서 쓰게 될 줄이야.
‘이런 경우가 다 있네.’
게다가 마침 득이 되는 사안이 하나 더 있었다.
지금 내가 이 능력을 활용하면,
스스슷-.
“후······ 역시나.”
나는 그 무렵, 전신을 채워오는 충만감에 몸을 떨었다.
이렇듯 ‘시간축이 비틀린 공간’에 대한 페널티인 ‘부하’조차 사라지게 된다는 것.
잃었던 힘을 되찾았을 뿐인데도, 왠지 전보다 두, 세 배는 강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오케이.”
그 다음부턴 딱히 어려울 게 없었다.
대충 커다란 나무 하나 뽑아들곤 앞을 가로막는 풀과 나무들을 싸그리 밀어버리니, 어느새 목적지였다.
이어 모습을 드러낸 나를 보곤 정령들은 피를 토하듯 한숨을 내쉬었고, 소원요정들은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심지어 또다시 주걱턱이 되었다며 울상을 짓던 내 요정조차도,
“주걱턱! 잘했어! 대체 어떻게 한 거야!?”
탄성을 지르며 내게 날아올 정도였다.
이후 얼마를 기다렸을까.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2, 30분 정도?
“이, 이게 어떻게······?”
솔직히 그렇게까지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역시나 해독가로서의 역량이 대단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치누아비는 그만한 능력의 보유자답게, 본인의 패배에 심히도 충격을 먹은 듯했다.
······.
‘약간 미안해질 정도인데.’
표정이 무슨 나라를 잃은 사람의 그것과도 같았다.
너무 놀렸나?
나는 한참을 그러고 멍하니 입을 다물고 있던 녀석의 정신상태가 염려되기 시작했다.
하여간에 저 종족은 이게 문제였다. 내기라면 뭐든 목숨 걸고 달려드니 원.
하여, 대충 위로의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갑작스레,
“······입니다.”
“응?”
녀석이 황당한 소리를 내뱉었다.
“1:0입니다.”
*
본래부터 3판 2선을 생각했다던 녀석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미리 짜둔 것 마냥 곧바로 다음 경기를 속행하려고 하는 모습이, 실제로 이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 보였기 때문이다.
설마하니 질 걸 가정했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심지어 녀석의 당면 과제는,
“어서 경기를 제안하시지요. 늦어질 경우, 아무 종목이나 해도 상관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내가 ‘다른 능력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되기 전에 경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흐음······.”
사실 뭐 이대로 승부에 응해주지 않는다거나, 시간을 끌어 녀석을 골려줄 수도 있었다. 다음 대결에 대한 건 미리 합의된 내용이 아니었으니.
다만 녀석의 활활 불타는 눈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적어도 두어 달 가량은 말도 없이 삐져 있을 것 같아서.
‘어우······.’
상상만으로도 피곤했다.
그리고 뭐, 어떻게 해도 내가 이길 테니까.
사실 경기종목을 내가 정하는 것이니만큼, 지기도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대충 신체능력을 겨루는 식으로 가면, 조금 치사하긴 해도 확실히 승부가 날 테니.
‘대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간단하게 달리기 정도만 하면 괜찮지 않나?’
그냥 해도 이길 텐데, 현재는 심지어 ‘부하’에서 해방되기까지 한 상태였으니.
‘달리기, 달리기라······.’
뭐, 나쁘지 않을 듯했다.
게다가 달리기하면 둘만의 추억도 있지 않는가. 놀이공원에서 내 모습으로 둔갑한 치누아비와 번갈아 달리며 레오를 골려먹던 게,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치누아비에게 제안했다.
“그래, 그럼 뭐······ 달리기 어때?”
“달리기 말씀이십니까?”
“어, 괜찮지 않아?”
나는 녀석이 우리의 옛 추억을 상기해주길 바랐다. 이 승부의 열기도 약간은 환기시킬 겸.
다만,
“그럼 출발 지점과 끝 지점은?”
치누아비는 그런 건 모르겠고, 어떻게든 이 패배를 설욕하겠단 생각만이 그득한 모습이었다.
어허, 마음만 앞선다고 승부가 되나.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숲 안쪽을 코스로 잡아봐야 게임이 안 될 거 아냐. 나한테 너무 유리한 거니까.”
“뭐······ 그렇지요. 종목은 결정하셨으니, 세부 규칙과 달릴 장소에 대해서는 함께 논의를 하셔야지요.”
“논의는 무슨. 그냥 숲 외곽이나 한 바퀴 빙 도는 걸로 하지 뭐.”
이엔 치누아비 또한 이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출발하시지요.”
그로부터 20분 뒤.
우리는 다시금 미로 찾기의 시작지점이었던 숲의 초입으로 돌아갔다.
치누아비는 내 고유능력이 끝나는 시각이 마음에 걸렸던지, 가는 내내 몇 번이나 내게 빨리 가자며 재촉했다.
이에 아직 [통제 불가 훼방꾼이 나타났다!]를 사용 중이라 말해도,
“제가 형님을 어떻게 믿습니까? 도깨비들끼리는 수십 년 우정을 쌓아온 사이라할지라도, 내기 앞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족속입니다.”
그러고 답답한 소리를 해대는 것이었다.
하여, 굳이 또 요정들이 안내하는 길에서 벗어나 숲을 이리저리 활보하는 모습까지 보여줘야 했다.
“이제 만족하냐? 다른 능력 안 써주겠다고.”
“딱히······ 쓰지 말란 소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형님이 조건에 걸려 다른 능력을 흉내 내지 못하는 건······ 뭐, 저로서도 조금 맥이 빠지는 일이지요.”
“······하, 참나.”
하여간에 웃기는 녀석이었다.
이걸 뭐 승부욕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곧이어, 우리는 숲의 초입에 도달했다.
게임의 룰은 간단했다.
숲의 외곽을 먼저 두 바퀴 도는 사람이 이기는 것.
“준비는 되셨습니까?”
출발선 앞에서 치누아비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나야 뭐······ 아니, 근데 정말 괜찮겠어? 달리기로 마지막 승부를 내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마지막이 아닐 테니까요.”
솔직히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저 자신감의 근거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별도의 고유능력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내 다리 힘이 약해지는 건 아닌데.
“그러고 보니 그때 생각이 나네요.”
“응?”
“그 레오라는 소년을 골려주기 위해 함께 달렸던 때 있지 않습니까.”
“이야, 기억하고 있었네?”
의외였다.
“그럼요, 어찌 잊겠습니까. 당시 제 정체를 깨닫곤 그 소년이 지었던 표정이 여태 새록새록 한데.”
그러곤,
“오늘 또 한 번 보겠네요. 그 황당해 마지않는 표정을.”
나를 보며 씩 웃는 것이었다.
“허······?”
요놈이?
그때였다.
삑-!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나는 곧바로 출발하기보다는 치누아비가 뭘 할 생각인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궁금하기도 했고, 어차피 조금 늦게 달린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진 않을 테니까.
바로 그 순간,
쿠구궁-.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응?”
뭔가가 땅 속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뭐야, 믿고 있는 게 그거였어?”
녀석의 자신감의 근거.
이는 다름 아닌, 토룡이었다.
이어, 치누아비는 머리를 쏙 내밀은 토룡 위에 올라섰다.
“출발 안 하십니까? 후회하실 텐데요?”
“어, 뭐······ 굳이?”
나는 이의를 제기할까 하다가도,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저걸 타고 가는 게 달리기라고 보기엔 뭐 했지만······ 토룡이 그리 빠른 건 아니었으니까.
토룡은 아무리 빠르게 움직일 때도 말 한 마리보다 조금 못한 속도가 최고였다. 그조차 오래 지속하진 못했고.
‘그래, 그나마 저거라도 있어야지. 아니면······ 몸통으로 내 진로라도 막으려고 하는 건가?’
뭐 그렇다한들, 크게 문제가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막으면 뭐, 부수고 지나가면 되지.
그러고 대충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쿠구구궁-.
“응?”
웬 효과음(?)과 함께, 토룡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
일단 덩치가 세 배 가까이로 불어났다.
이어,
“뭐, 뭐야!?”
토룡의 머리에 대단히 큰 뿔이 양 갈래로 돋아났다. 또한 날갯죽지와 꼬리지느러미가 생겨났으며, 앞다리와 뒷다리까지 생겨났다.
이건 마치,
“······용?”
전설상의 용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뭔가······ 황당하니 말도 잘 나오질 않았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원래도 가능했던 건가?
그러고 멍하니 새로 태어난 토룡을 쳐다보고 있을 무렵,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치누아비를 태운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마치,
슈웅-.
번개와도 같았다.
“······미친.”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무슨 대왕지렁이의 속도가 KTX보다 빠르냐고.
기존의 열 배 가까이는 되는 것 같았다. 그 커다란 덩치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였으니.
뭔가 수를 내야 했다.
이건 달려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은 움직여야······ 뭔가 활용할 수 있을 만한 지형을 찾아야 돼.’
아니면 숨어 있다 저 토룡을 작살내기라도 해야 했다.
그러고 막 발을 움직이려하는데,
“이건 또 뭔······.”
웬걸, 발이 아래로 폭 빠져 있었다. 어느새 바닥이 마치 늪 마냥 진창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내가 있던 지점만이 아니었다.
앞에 보이는 모든 바닥이 다 진창이었다.
“······허.”
그제야 나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를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령.
이 빌어먹을 정령들이 대놓고 치누아비를 도운 것이었다.
토룡을 저런 식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줄 수 있었는지는 또 몰랐지만.
“하······”
근데 이건 너무 양아치 짓 아닌가?
이럴 거면, 나도 1회전 때 내 요정 불렀지.
이건 따지고 넘어가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바바바밧-.
용으로 업그레이드 된 토룡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접근해왔다.
벌써 한 바퀴 째였다.
“응? 여태 거기 계셨습니까?”
“······뭐 할 말 없냐?”
“예? 어떤? 아, 기권하시겠습니까?”
“······.”
나는 한 차례 호흡을 정돈한 뒤,
“너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니냐?”
녀석에게 따졌다.
“비겁하게 정령이 도와주는 게 어디 있어!?”
그러자,
“형님도 그럼 도와 달라 하시지요?”
녀석이 말도 안 되는 소릴 아주 뻔뻔하고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 것이었다.
황당함에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아!’
나는 이 녀석 또한 도깨비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악의 넘치는 장난꾸러기.
“아니······ 야! 그리고 애초에 이거 달리기라며!”
“예, 무슨 문제라도?”
“네가 지금 달리고 있냐? 그건······ 탄 거 잖아!”
그러자,
“예? 제가요?”
치누아비가 슬쩍 자신의 용을 가리켰다.
“땅.”
“뭐?”
“땅이잖아요, 지금 제가 서 있는 곳.”
“······용이잖아.”
“예, 흙으로 된 용. 땅. 지룡.”
“······?”
“이게 요렇게 내려가면?”
이어 용이 스르르 땅 가까이로 붙었다.
“딱 그냥 땅.”
“······.”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래 그게 흙이라고 쳐. 땅이라고 쳐. 그건 탄 거잖아, 달리기가 아니라.”
“예? 지금 저 다리 움직이고 있는데요?”
“······.”
녀석이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었다. 용 위에서.
“어? 근데 앞으로 나아가네? 어? 달리기네?”
······.
이윽고,
“오케이, 일대일. 마지막 판 가.”
나는 인정했다.
방심했다. 너무 봐줬다.
이제 제대로 한다.
“아, 그럼 정말로 기권하시겠다는?”
“뭐, 보나마나 온갖 함정은 다 파놨겠지. 불 피워 놓고, 침수시켜놓고······.”
“이야, 정말 예지능력이 있으시군요?”
치누아비는 정말이지 기쁘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럼 제가 두 번째 판은 이긴 걸로 하고······ 혹, 다음 판도 바로 하실 생각이신······.”
“뭐라는 거야, 이 양아치 도깨비가.”
나는 진흙탕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선언하듯 말했다.
“한 시간 후에 해. 너 진짜 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