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3
13화 골담 카지노
***
일주일 후.
[모험왕 연재가 재개되었습니다]
[챕터6 – 카지노의 잡부가 되다!]
[진행 중인 챕터의 권역에 속해 있습니다]
[주걱턱은 이번 챕터의 캐릭터 평가 대상입니다]
홀로그램 창에 전송된 메시지를 확인한 후, 나는 슬슬 시간이 됐음을 느꼈다.
“꼬맹아, 이제까지 모은 거 다 꺼내봐.”
“다?”
“그래, 일주일간 모은 거 전부.”
“꽤 될 텐데? 잠시만.”
코코아가 가죽주머니의 입구를 벌린 채 아래로 탈탈 털자,
좌르르-.
엄청난 수의 약병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살살! 깨지겠다.”
“턱은 산만한 게 호들갑은.”
“······됐고, 종류별로 정리해봐.”
분류하고 보니, 다음과 같았다.
[얍, 보여라! 투시 물약] – 12개
[힝, 속았지! 속임수 물약] – 10개
[잡았다, 요 녀석! 거짓말 간파 물약] – 11개
[나는야 찍기의 신! 50% 확률 물약] – 8개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행운 물약] – 7개
[네게만 들려주는, 속삭임 물약] – 1개
“구하는데 얼마나 들었어?”
“1억 3000만 골드.”
“세네.”
“속삭임 물약이 좀 비쌌어.”
“중간에 삥땅친 거는?”
“없어. 내가 주걱턱인 줄 알아?”
“거기 거짓말 간파 물약 하나 줘봐.”
“심부름 값으로 300만 골드 따로 떼긴 했어. 수수료 차원에서.”
“······.”
이래서 저 녀석을 보내기 싫었던 건데.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저 꼬맹이가 가서 투시물약을 사는 것과 내가 가서 투시물약을 사는 건, 아무래도 좀 목적성이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테니. 경찰이 출동하는 것만큼은 예방하고 싶었다.
“이제 우리 남은 돈은?”
“많아.”
“정확한 금액으로.”
“한 3억 골드 정도?”
“네 맘대로 가죽주머니 보관료 제외하지 말고.”
“그럼 4억.”
“흐음······.”
은행 두 곳을 더 털었는데 겨우 4억. 솔직히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하다는 얼굴이네. 돈 귀신.”
“너도 어른 돼봐. 늘 부족한 게 돈이라고.”
사실 정확히 따지자면 4억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금과 귀금속이 남아 있었으니. 모두 현금화 시킬 수만 있다면 저것의 몇 배는 될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선 경매장엘 가거나 장물아비를 찾아야 하는데, 당장엔 그럴 시간이 없었다.
물론 그 정도만 있어도 어지간한 특수물약 정돈 물처럼 사 마실 수 있다. 이제 웬만해선 돈 걱정 할 일은 없다는 것.
문제는 이번 챕터에서 활약하기 위해 필요한 게 ‘웬만한 돈’ 정도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가능하려나.’
나는 계획을 점검할 겸, ‘지금부터 발생할 일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떠올려봤다.
골담시티. 일명, ‘유흥의 도시’라 불리는 곳.
도시 중앙에 들어선 카지노 불빛이 태양마냥 밤을 밝히는 이곳에서 [챕터6 – 카지노 잡부가 되다!]와 [챕터7 – 골담시티의 여왕]이 연달아 진행된다.
챕터의 진행양상은 간단하다.
이전 챕터에서 레오와 키리코는 별 생각 없이 길을 나선 까닭에, 여정 첫날부터 길을 잃고 헤맨다. 마을로 가려 했으나 산이 나오고, 마을인 줄 알았는데 바다에 도착하는 상황. 결국 식량이 떨어져 지독한 굶주림을 겪게 된다.
며칠을 고생하다 어찌저찌 골담시티에 도착한 둘은 우선 식당부터 찾아 들어가지만, 돈이 없어 곧장 쫓겨나고 만다. 알고 보니 길을 헤매던 도중 돈 주머니를 잃어버렸던 것.
때마침 죽을상을 짓던 그들에게 누군가가 무료배급소가 있으니 가보라는 말을 건넨다. 그곳이 어디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길, 도시 중심부에 있는 ‘골담 카지노’라고.
카지노에 들어선 둘은 수많은 테이블에 깔린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에 놀란다.
이는 물론 초대된 귀빈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이를 무료배급이라 착각한 둘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무작정 음식을 흡입해버리고 만다.
이를 계기로 점차 엮여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도시의 실질적 지배자이자, 카지노의 주인인 ‘골담시티의 여왕’과의 관계가.
이 골담시티 편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에피소드로 손꼽는 것이었다.
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사건의 구성이 훌륭하고, 새로이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개성이 넘치며, 무엇보다 전개가 새롭기 때문에.
대부분의 소년만화에서는 주인공의 괴력을 보여주는데 초반부를 할애하는 경향이 짙다. 흥미를 돋우고, 주의를 집중시키며,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데 그만한 것이 없으니까.
헌데 이 골담시티 에피소드는 그 양상이 전혀 달랐다.
이번 챕터에서 레오는 사람을 때려눕히기 위해 능력을 활용하지 않는다. 키리코 또한 마찬가지. 무전취식으로 인해 카지노 경비들에게 둘러싼 둘은 그들과 맞서 싸우지도, 또 도망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음식 값을 노동으로 때우기 위해 카지노 주방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한다.
번개로 스테이크를 굽는 레오와 빨간 장발을 흩날리며 서빙하는 키리코.
이것이 [챕터6-카지노 잡부가 되다]의 주요 골자가 되는 내용이다.
물론, 이 상황이 쭉 지속되지는 않는다. 빈부의 차이가 극심한 곳에서 으레 일어나는 일이 여기에서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요리를 평가하겠답시고 주방으로 찾아온 한 카지노 VIP가 주방 내의 한 여직원을 추행하려든 것. 이에 분노한 레오가 녀석을 날려버리면서, 본격적으로 카지노와의 대립이 진행되는 것이다. [챕터7-골담시티의 여왕]의 시작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이번 골담시티 에피소드에서 나의 존재감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은 기껏해야 두 가지뿐이었다.
첫째. 미리 주방에 잠입해 있다 자연스레 레오와 엮이는 것.
둘째. 레오가 골담시티 여왕과 승부를 벌일 때, 그 곁에서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
보다 쉽고, 위험부담이 적은 쪽은 전자였다. 별다른 자격 조건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변수가 될 만한 상황도 거의 일어나지 않으니까.
게다가 주방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도 길고,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기에도 그리 나쁜 환경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 자체가 사실상 개그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면의 임팩트로 봤을 때, 보다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 수 있는 쪽은 당연지사 후자였다. 애당초 챕터6 자체가 챕터7을 위한 발판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둘 다를 함께 할 순 없었다. 개연성 문제도 있는데다, 무엇보다 시간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며칠 간 고민한 끝에, 나는 두 번째를 택하기로 했다. 한시바삐 취해야 할 목표물이 있는 이상, 리스크가 있다하더라도 보상이 큰 걸 택하는 게 맞다.
후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꽤나 엄격한 수준의 자격요건이 필요했다.
다름 아닌, 카지노의 vip가 되는 것. 그래야만 여왕과 레오와의 대결에서 여왕 측 일원으로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왕과 레오의 대결은 단순한 무력 다툼이 아니다. 그랬다면 내가 이 에피소드에서 신선함을 느끼지도 못했겠지.
대결 종목은 바로 카지노 내의 게임들이다. 일명 ‘죽음의 레이스’라 불리는 것으로, 총 일곱 가지의 게임이 잇따라 진행된다. 도전자가 앞선 여섯 게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면, 최종적으로 여왕과 마지막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다.
내가 노리는 건 저 레이스의 여섯 번째 단계인 ‘1vs5’ 포커게임의 참가자가 되는 것이었다.
굳이 한 종목을 특정한 까닭은 저것이 여왕과의 1:1 대결 전까지 레오가 가장 힘들어한 게임인 동시에, 석연찮은 승리를 거둠으로써 독자들의 지탄을 받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이 게임에서만 레오는 정당한 방식이 아니라, 주방식구들과 키리코의 협력을 받아 승리했다. 변비약이 잔뜩 든 음식을 키리코가 상대들에게 서빙함으로써 줄줄이 기권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작가로선 당시의 냉랭한 반응에 내심 무척이나 당황했을 것이다. 본인 입장에서는 이것이 꽤나 그럴듯한 전개였을 테니까. 레오와 키리코가 처음 주방으로 들어가게 된 것도 후에 이들의 도움을 받기 위한 빌드업이었을 거고.
그가 간과했던 건 독자들의 감정이었다. 독자들은 그리 떳떳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것도 게임과는 전혀 관계없는 방식으로 승리하는 주인공을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내가 노리고 있는 게 바로 이 지점이었다.
내가 만약 그 조력자가 될 수 있다면? 개연성을 챙기는 동시에, 레오에게 탐탁찮은 승리를 안길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계획은 그럴싸해. 가능성 여부가 관건이지.’
어쨌거나 이를 위해선 앞으로 며칠 안에 vip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 여왕의 초대를 받을 수 있을 테니.
지난 일주일 간 준비한 게 바로 이를 위한 것들이었다.
50여개의 특수물약과 현금 4억.
얼추 구색은 갖췄으나, 실탄이 약간 부족한 느낌이랄까?
카지노의 vip기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며칠간 그 누구보다 많이 따고, 그 누구보다 많이 잃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꼬맹아.”
“응?”
“너 도박해본 적 있냐?”
코코아는 내 말 뜻을 금방 알아들었는지, 반색하며 되물었다.
“이제 가는 거야? 카지노?”
“묻는 말에나 대답해. 해본 적 있냐고.”
“물론. 전문분야야.”
“웃기고 있네.”
꼬맹이의 말을 전적으로 믿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약간 기대는 됐다. 이런 무지몽매한 캐릭터들이 또 희한하게 운은 좋기 때문이다. 마치 레오처럼.
“흐흐, 마침 손이 근질근질 거리고 있었다고. 이제 질렸어, 은행 따위 터는 건.”
“그런 말투는 또 어디서 배웠냐. 됐고, 움직일 준비나 해. 아, 근데 바로 카지노로 갈 건 아니야.”
“그럼?”
“너 꼴이 그 모양인데 거기서 받아주겠니?”
코코아는 처음 만났을 때의 복장 그대로였다. 후줄근한 면 티에 다 찢어진 멜빵바지. 당연히 씻는 꼴은 본 적이 없었다. 만화 속이라 생각해서인지 딱히 더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글쎄······ 카지노 측은 아무래도 생각이 다르지 않을까.
물론, 나 또한 녀석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쇼핑부터 가자고. 구색은 갖춰야지.”
“앗! 나 그럼 선글라스.”
“사든가 말든가. 일단 가자고.”
실은 나 또한 이제까지의 반복생활에 질려있던 차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즐길 순간이었다.
긴장해라, 골담 카지노.
한게임 온라인 7포커 및 로우바둑이 전문 핵고인물이 간다.
*
명품 선글라스에 어린이용 파티드레스, 구두, 검정 리본까지.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카지노에 입성한 지 어언 1시간 째.
“히힛, 나 백만 골드만.”
“조용히 해.”
“그럼 50만······ 아니, 30만 골드라도.”
“닥치라고, 이 돈 먹는 하마 같은 녀석아.”
“이번엔 진짜야! 진짜라고! 촉이 왔다니까!?”
코코아는 무려 2000만 골드를 잃었다.
나는 어느새 시뻘개진 눈으로 주구장창 돈을 요구하는 아홉 살짜리 도박 중독자를 노려봤다.
기대와는 달리, 이 녀석은 이쪽으론 전혀 재능이 없었다.
재능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그냥 처참한 수준이었다.
기본자금으로 건넨 천만 골드를 10분 만에 날려놓고선 뻔뻔하게 웃으며 한다는 말이, 배팅금액이 적어서 뭘 할 수 없었다나 뭐라나.
이어서 건넨 500만 골드, 300만 골드, 100만 골드의 수순 또한 마찬가지였다.
10분 만에 펑, 5분 만에 펑. 타짜가 마음먹고 달려들어도 저렇게 빨리 잃지는 않을 것이다.
자리를 옮겨도 안 돼, 게임을 바꿔도 안 돼.
심지어 특수물약을 몇 개나 줬는데도 답이 없었다.
행운물약을 먹고도 슬롯 한 번 못 터뜨리는 건······ 그냥 말 다한 거 아닌가? 이 녀석은 이쪽엔 완전 젬병으로 설정되었다는 뜻이다.
미리 돈을 압수해뒀던 게 신의 한수였다.
“빌어먹을! 돈을 내놔 주걱턱!”
“허허······.”
차라리 이 녀석을 따로 주방으로 흘려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 일행과 안면이라도 좀 트게 하고, 그 과정에서 뭐 요리라도 하나 배웠다면 훨씬 더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그냥 조용히 나 따라다니며 음료나 쪽쪽 빨아. 그럼 가끔 룰렛이라도 한 번 돌리게 해줄 테니까.”
“룰렛? 정말?”
“그래. 대신 입은 좀 다물고.”
“좋아.”
그러고 대충 수습한 뒤, 적당한 판을 물색해 게임을 진행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갑작스레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응?”
“뭔 일이 났나?”
이상스런 분위기를 감지한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주변 곳곳에서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때마침,
“이리로.”
“3번 홀에······.”
그러고 경비원들이 어디론가 일사불란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하.
녀석들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미 저 아래 연회홀에 차려진 음식들을 신나게 먹어 치우고 있는 중이라던가.
그들을 떠올리니, 어째 나도 살짝 텐션이 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슬슬 달려볼까?’
그때였다.
“쫄리면 뒤지시든가.”
“······?”
정면에 웬 뱀 눈깔을 한 녀석이 나를 보며 이죽거리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패를 슬쩍 훑었다.
참나, 뭣도 없으면서 허세는.
녀석의 공개된 패는 하트 2, 5, 7, 10.
같은 문양의 패 5개를 모아 플러시를 완성하려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었다. 이미 빠진 게 몇 개인데.
게다가 나는 진즉에 치고 나가기로 마음먹은 상태가 아니던가. 별 것도 아닌 녀석과 공들여 눈치싸움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물인 척 담아온 [얍, 보여라! 투시 물약]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크······.”
“목이 타나봐?”
“거 말이 많으시네.”
“자꾸 시간 끄는 것 같으니까 그러지. 뭣도 없으면서 안 죽고 말이야. 바쁜 사람 앞에 두고.”
“그 말엔 동의요. 시간 없다는 거.”
이어 눈에 힘을 주니, 녀석이 들고 있는 패가 훤히도 잘 보였다.
클로버2, 다이아3, 스페이드J.
이 새끼 이거 구라 맞네.
“올인.”
지금부터 전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