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격변의 조짐
***
“······호오.”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곤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어째서 지금 저 요정이 똥 씹은 듯한 표정으로 이곳에 나타난 걸까.
이윽고,
“아하.”
나는 쉬이 그 답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일단 저 요정이 이곳, 요정의 숲에 있는 이유.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아나에게 불려간 것이 아니라면, 요정이야 이곳에 있을 수밖에.
외려 내가 딱히 저 녀석의 부재를 의식해본 적이 없다는 게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다음으로, 여태 저 녀석만 우두머리가 따로 구류······ 혹은 그저 격리해 놓고 있었던 것.
이 또한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문제의 원인이 된 이를 잡으러 외부세력이 들이닥쳤는데, 대놓고 내보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째서 저 요정이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나.
놀랍게도, 나는 이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었다.
문제가 된 사안은 바로 요정들끼리의 ‘영역침범’이다.
직접 들어보니, 뭐 복잡한 사항과 규칙들이 얽혀 있는 듯 했지만 핵심은 간단했다.
저 녀석이 정령의 힘을 빼앗아 썼다는 것.
그러자 곧바로 머릿속에 상황이 딱 그려졌던 것이다.
시아나가 ‘대적’을 위해 새로이 개발한 운용방식이 바로 이 같은 상황의 원인이 된 게 아닐까.
이를 깨닫고 보니 굉장히 웃긴 일이었다.
이렇게 정령들이 찾아온 것도, 또 사과를 요구하며 두 종족이 한바탕 대치한 것도.
사실 이건 엄밀히 말해, 소원요정 쪽의 잘못이라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소원요정이야 자기 일을 한 것 아닌가.
죄가 있다면, 계약자가 원하는 바를 이뤄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죄?
그럼 잘못한 쪽은 시아나인가?
그것도 아니다. 강해지려고,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써 능력을 개발한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굳이 죄인을 찾자면······ 설정을 이렇게 짠 작가 정도?
뭐 어쨌거나.
“오케이, 이리로.”
나는 요정을 가까이로 불렀다. 일단 풀 건 풀어야 했으니.
사실 잘 됐다고 생각한 것도 없잖아 있었다. 녀석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과정에서, 현재 레오 일행의 근황을 들을 수도 있을 테니.
정령 쪽 우두머리와 소원요정 쪽 우두머리도 함께 불렀다.
“아, 혹시 피해를 입은 정령도 있으면 함께 데려오고.”
그러곤 3자 대면을 위해 피해자도 불렀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 녀석은 이미 깊은 좌절감에 빠져 정령의 숲 밖으로도 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
우두머리 정령이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참나, 오버하긴.
“알았으니까, 일단 이쪽으로 좀 섭시다.”
곧이어 문제의 원인과 양측 우두머리들이 한 자리에 위치했다.
나는 시간 끌지 않고, 곧바로 시아나의 소원요정에게 물었다.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이야?”
녀석은 내 물음에 ‘헹’하고 콧방귀를 뀌었다가도, 자기네 측 우두머리의 신호에 짜증을 내며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전말은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계약자(시아나)가 웬 녀석과 싸우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상대의 능력을 빼앗아 계약자에게 전달하게 되었다고. 근데 그 능력이란 게 바로, 저기 불의 정령의 힘이었다고.
다만,
“뭐? 신수?”
약간 당혹스러운 지점이 하나 있었다.
“상대가 신수였다고?”
“그래, 뭘 자꾸 물어. 귀머거리냐?”
“······.”
시아나와 신수가 붙었다. 붙었다고?
희한한 일이었다.
물론 이즈음 레오 일행이 신수와 맞닥뜨리는 일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때 일어난 일은 부상을 입은 신수를 부축하고 치료해주는 것이었지, ‘붙었다’라는 표현이 나올만한 건 절대 아니었다.
상처를 입은 신수가 처음 녀석들을 보고 으르렁거리긴 하지만, 그걸 붙었다고 표현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더욱이 내가 기억하기로, 일행의 접근에 거칠게 반응하려던 녀석을 제압한 건 레오였고, 그에 걸린 시간은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헌데 시아나와 붙었다라니······.
흐음.
‘다른 녀석이겠지?’
나는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뭐 원작에서도 일행이 겪은 일들 모든 게 다 나온 건 아니었을 테니. 신수 한 둘쯤 더 만났다고 해서, 그리 의아해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확인 해볼 필요는 있었다. 심지어 쓰는 수법도 ‘불’이었다고 하니까.
그래서 그냥 슬쩍 물어만 봤던 것이다.
“혹시 그 신수······ 원숭이야?”
헌데,
“응? 어떻게 알았지? 아······ 맞아, 넌 예지 능력이 있다고 했지. 시아나에게 들었어.”
놀랍게도 녀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로?”
“알고 물은 거 아냐?”
“······.”
설마 했는데, 그 녀석이 맞는 듯했다.
레오 모험단의 마스코트가 되는 신수.
놀랍게도, 이름이 ‘오공’인 불원숭이.
솔직히 좀 당혹스러웠다.
딱히 등장한 캐릭터가 바뀐 건 아니었지만, ‘굳이 건드릴 이유가 있었나?’ 싶은 부분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희한하네.’
물론 뭐, 지금 이걸 따지고 있을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당장은 보다 시급한 일이 있었으니.
이제 가장 중요한 사안에 대해 논의해야 할 차례였다.
그래서 이제 이 녀석을 어떻게 할 거냐.
나는 정령들의 우두머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녀석 이거 어떻게 하고 싶어?”
그러자 그가 주저하며 눈을 굴렸다.
“그건······.”
준비해온 답변이 있으나, 중재자인 내 눈치를 좀 보는 듯했다.
“그냥 빨리 말해.”
“너, 넘겨받고 싶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 그럴 순 없지! 소원요정이 어찌 정령에게 간단 말이야!”
소원요정 쪽 우두머리가 고함쳤다.
나는 둘을 진정시켰다.
“근데 가능은 한 거야? 정령 쪽으로 보내는 거.”
“못갈 게 뭐 있소.”
“아니 예를 들어, 가는 도중에 계약자에 의해 소환이 되면? 능력 활용이 끝나는 즉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요정의 숲으로. 그럼 어차피 못 가는 거 아닌가?”
“요정이든 정령이든 지정송환 장소를 교체할 수 있소. 그걸 정령들이 머무는 곳으로 돌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지.”
“그래? 갈 수는 있다?”
“그렇소.”
이에,
“아, 아니! 안 보낼 거라니까?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하려고!”
소원요정 쪽 우두머리가 다시금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다. 참으로 일원을 아끼는 마음씨가 대단한 족장이었다.
“이, 이 경우 없는 요정이 큰 소리는! 사과는 시켜야 될 거 아냐!”
사과라······.
그렇군, 그냥 그뿐인 건가.
그 무렵, 나는 대충 이들의 성정과 이 논의의 끝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단한 복수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크게 해코지할 느낌도 아니다.
결국 의미 없는 대화만이 반복되다 흐지부지 되겠지.
그럴 거면 그냥, 이쯤에서 빨리 화해시키고 끝내는 게 나을 듯했다.
“오케이, 거기까지. 근데 데려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얼마나 잡아놓겠다고.”
그러자,
“하, 하지만······.”
“그렇지! 내 말이 그 말이라고.”
한 명은 울상을, 또 한 명은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다만 희한하게도, 정작 당사자에겐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녀석은 그저 이 모든 게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무심히 이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뭐 어차피 요정끼린 공격도 금지인데다, 피를 볼 것도 아니잖아? 대충 이 자리에서 마무리 하지?”
“하,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트라우마 있는 녀석에게 가해자 얼굴 들이밀어 좋을 게 뭐가 있어. 대신해서 사과만 똑바로 받고, 후속처리만 잘해주면 되지. 안 그래?”
이 안은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조, 좋소.”
“오케이, 그럼 정령들 다 불러. 사과는 모두가 함께 받는 걸로. 그래야 마음이 좀 달래질 거 아냐. 이 녀석들도 압박감을 좀 받을 것이고.”
그때였다.
“흥, 내가 사과 할 거라고 생각하냐?”
갑작스레 시아나의 요정이 입을 열었다. 무지하게 냉담한 투였다.
물론 뭐, 예상하던 바였다.
못마땅한 표정에서부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사실 이 녀석 스스로도 억울한 감정이 좀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만.
“시아나가 퍽이나 좋아 하겠네.”
“뭐?”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지금 너 때문에 이 사달이 일어난 거 안 보여? 종족 전체가 죄다 몰려와선 항의하러 왔는데, 그까짓 사과 한 번 못하겠다고?”
뭐, 하기 싫다고 해서, 다 안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시아나는 여왕의 품격을 지닌 여자야. 잘못을 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본인에 의해 일어난 일에 대해선 책임을 질 줄 알지. 오래전부터 그녀를 봐온 너라면 잘 알 텐데?”
“네, 네가 뭘 안다고······.”
“앞으로 이 같은 일은 계속해서 일어날 거다. 특히나 너로 인해서. 시아나가 새로운 운용방식을 개발했으니 어쩔 수 없겠지. 너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배째라고 나올 거냐?”
“그, 그건······.”
“어차피 그럴 거라면, 차라리 지금 깔끔하게 처리를 하라고. 미안하다고, 양해 바란다고. 힘닿는 데까지 보상은 하겠다고. 그게 더 예의 있는 행동이야, 네 계약자라면 아마 그렇게 했을 거다.”
“······.”
뭐,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소년만화 캐릭터들이야 다 거기서 거기다. 특히나 요정들은 설정 자체가 ‘착한’ 녀석들이었으니.
이윽고,
“미안······ 사과할게.”
몰려든 정령들을 보며, 녀석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렇지.
잠시 후,
“고, 고맙네······.”
소원요정 쪽 우두머리가 내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어.”
“그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 그렇지.”
그는 그러고 맞장구를 친 후,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그런데 혹 실례가 안 된다면······.”
“응?”
“혹시 저들에게 터전의 복구를 좀······.”
“아하, 물론이지. 전달해 줄게.”
그러자 그가 환해진 얼굴로 내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 고맙네······ 그럼 이제 다 끝난 건가?”
“응? 끝?”
이에, 나는 그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뭐가 끝이야.”
“응?”
“이제부터 시작이지.”
“······.”
모르는 척 하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거야.
나는 그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정산할 거 해야지?”
*
나와 치누아비는 서로를 마주보며 씩 웃었다.
“자, 이제 진짜 승부다. 알지? 여기서 이긴 사람이 최종승자인거.”
“물론 알고 있습니다. 결국 돌아, 돌아 본래의 내기까지 온 것이군요.”
본래의 내기라 함은 다른 게 아니었다.
누가 더 가치 있는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각 우두머리들과의 아주 화기애애한 대담 끝에,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뭐든, 원하는 것을 내어주겠단 약속.
그것도 각자 하나씩.
치누아비는 정령에게서, 나는 소원요정에게서 보물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기한은 얼마 못 줘. 지금 바깥소식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니까. 반나절이야. 그 안에 가장 귀한 걸 가져와야 돼.”
“충분합니다. 사실······ 대충 찜해둔 게 있거든요.”
“벌써? 뭔데?”
“후훗, 그건 나중에 가서 확인하시지요. 만약 제가 그걸 가져올 수 있다면 말입니다.”
호오.
꽤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었다.
“흐음······ 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해. 이런 기회가 다시없을 수도 있으니까.”
“옙,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갔다 와.”
“저도 형님의 보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어 사라져가는 치누아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조금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미 진즉부터 구석구석을 훑어보고 있었으나, 딱히 가치 있어 보이는 게 없었던 것이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온통 나무에, 수풀에, 무지막지한 곤충들뿐이었지.
길눈으로 찾겠답시고, 죽어라 눈을 부릅떠 봐도 특별한 건 눈에 띄지 않았다.
‘······별 수 없나.’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이제 고작 통성명한 사이에 이런 요구를 한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뭐 달리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팅커벨!”
이윽고,
“자, 털어놔봐.”
“응? 무엇을?”
“몰라서 물어?”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희가 가진 것 중 제일 귀한 게 뭐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조금쯤 악질 깡패 같은 느낌이 있긴 했지만, 뭐 이해해 주리라 믿었다.
우리 이제 친해졌으니까.
그러나,
“귀한 거?”
애석하게도 녀석의 답은 내가 원하던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건 없는데? 딱히 인간들이 탐낼만한 건 가지고 있지 않아. 우린 그런 걸 모으는데 취미가 없어.”
“······없다고?”
“응.”
“아니 뭐······ 그냥 쉽게 생각하면 돼. 아무거나 반짝 반짝 빛나는 거. 아니면 요정의 힘이 담긴 술이라든가 뭐······ 묘약이라든가.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 같은 거······ 없어?”
“응.”
당혹스러웠다.
“요정인데?”
“요정이 그런 걸 왜 가지고 있어. 어디서 이상한 말을 주워듣고 온 거니?”
“······아니 그럼, 이 주위에 뭔가 반짝 반짝거리는 광물이라든지 뭐······ 좀 느낌 있는 돌멩이 같은 건? 혹시 마석이라고 알아? 그런 특별한 힘이 실린 자연물은?”
“없어.”
“왜 그리 단호하지?”
“뭐?”
“······아니다.”
그러고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실망스러웠다. 황당하기도 하고.
아니, 명색이 요정이면······ 그래도 뭐를 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혹시나 싶어 정령들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럼 정령들은? 거기도 너네처럼 물욕이 없나?”
“물욕? 그런 느낌은 아닌데······ 뭐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정령들이 인간도 아니고, 그런 걸 탐낼 리가 없잖아.”
“하······.”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기도 한데······.
뭔가 완전히 핀트를 잘못 잡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다, 저쪽은 그래도 네가 말하는 특별한 자연물 같은 거는 많이 가지고 있겠네. 모은다거나 하진 않아도, 적어도 어디 있는지 정돈 알 테니까.”
“······.”
완전히 똥 밟았다.
차라리 정령 쪽으로 붙었어야 했는데.
아니 내기야 뭐 그렇다 치더라도, 요정들에게서 얻어낼 보물이 없다는 게 뭔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그러고 내가 축 처진 채, 멍하니 앞을 보고 있을 때였다.
“음, 근데 실은······.”
팅커벨이 갑작스레 묘한 말을 꺼냈다.
“소원함이라는 게 있어.”
“응? 소원함?”
귀가 번쩍 뜨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봐, 뭐 있네!
“그게 뭔데?”
이어 팅커벨이 들려준 얘기는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계약자를 잃은 요정들이 생전에 그가 원했던, 그러나 이루어지지는 않은 소원들을 뒤이어 이룩한 뒤, 이를 담아놓는 함이 있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이룩한 소원을 담아뒀다고?”
“응, 거기를 뒤진다면······ 잘하면 원하는 것 하나 정돈 가져갈 수 있을지도?”
“아니, 이룩한 소원이 담겨져 있다라는 게······ 거기 어떤 것들이 있는데?”
“뭐, 무기도 있고, 보물도 있을 거고······.”
이어진 녀석의 예시는, 정말이지 나를 경악케 만드는 것이었다.
“행위나 능력이 담겨 있기도 해. 죽기 전에 하늘을 날아보는 게 소원이었던 이를 위해, 공중부양 능력을 넣어두는 걸 본 적이 있거든. 아니면 소문이나 소식 따위도······.”
“허······.”
그즈음엔 딱 알 수 있었다.
그거다. 내가 찾던 것.
“그 소원함이라는 건 어디 있는데?”
“그건······ 안 돼, 알려주면.”
“어허, 지금 다 말했으면서 뭘 또 빼. 그리고 나는 은인이라고, 은인. 나한테 말하는 거는 괜찮아.”
“······그런가?”
“그럼, 그럼.”
혹여나 딴 말이 나올까 싶어,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어,
“아, 그리고······.”
덧붙여 물었다.
“함이라면······ 그거 좀 크기가 작나?”
“응? 크기?”
“그러니까······ 통째로 들고 갈 수 있는 거냐고.”
곧이어, 내 입가에 어린 탐욕을 본 팅커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이틀 뒤.
사우스랜드 소도시 자브 내 숙소.
나는 홀로그램 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독자코멘트를 보며 이렇게까지 기묘함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시아나의 소원요정과 대화를 나누며 생긴 석연찮음을 풀기 위해 본 것이었지만, 외려 이는 내게 혼란을 가중시켰을 뿐이다.
물론,
‘확실하진 않아.’
독자코멘트를 본다고 해서 현재의 상황을 완벽히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짐작만이 가능할 뿐.
하지만 그렇다한들, 이건 분명히 이상했다.
akdtm12 – 원숭이 이름이 오공ㅋㅋㅋ 근데 이제 어디로 가려나?
jh7free – 노스랜드로 갈 듯? 치료방법도 더 많고, 사우스랜드는 너무 머니까.
코멘트에 따르면, 본래 사우스랜드로 와야 할 녀석들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놀랍게도, 원작에서 저들이 사우스랜드로 가게 된 경위와 꼭 같았다.
신수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psi00 – 괜히 선택지가 제시될 이유가 없음. 아마 사이보그로 만들 듯.
본래는 사우스랜드로 와 신수를 치료하고, 진화까지 시켜야 할 레오 일행이 대뜸 노스랜드로 발길을 돌리려 한다는 것. 이를 위해 원작에선 등장하지도 않았던 ‘신수의 사이보그화’까지 제시된 상황.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이는 작가의 의도라고 밖엔 볼 수 없었다.
이제껏 여러 번 전개를 비틀어도 보고, 또 비틀린 것에 적응도 해봤지만, 이 정도의 ‘격변’이 일어나려 한 적은 처음이었다.
엄밀히 말해, 사우스랜드는 네 개의 대륙 중에서 가장 중요도가 떨어지는 곳이다.
즉, 이번에 신수와 엮여서 등장하지 않는다면, 영영 작중에 등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말이 돼?’
하나의 대륙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에피소드를 통으로 날린다고?
어째서?
이유가 뭘까, 이유가.
잠시 후.
무려 삼십 분가량을 이에 대해 고민한 끝에, 나는 하나의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도로시.
내가 도로시를 얻었기 때문에 작가의 경계심이 극도로 올라간 것이다.
도로시의 그 가공할 무력도 무력이지만, 그와 더불어 ‘레오 모험단으로 내정해뒀던 캐릭터’를 내가 먹으려 한다는 의심이 새록새록 들었을 테니까.
그리고 자칫, 이게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테니까.
그래서 지금 급히 방향을 튼 게 아닐까.
내가 미리 ‘녀석’에게 작업을 쳐둔 걸 작가 또한 이미 알고 있었으니.
즉, 작가는 지금 레오 모험단에게 허겁지겁 새 동료를 안겨주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본인 자체의 무력도 무력이지만, 모험단 전체의 무력을 삽시간에 대폭 증가시킬 수 있는 ‘설계자’를.
그즈음 내 입에서 하나의 이름이 한숨처럼 새어나왔다.
“······코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