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이게 되네?
***
노스랜드.
기계문명도시.
B지구 14구역
현 위치로부터 두 블록만 옆으로 이동하더라도, 자율비행 전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휴머노이드들을 볼 수 있을 만큼 발전된 첨단기계도시의 중심부.
그곳 초거대 빌딩들의 틈새, ‘첨단’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어느 더럽고 비좁은 골목에서 웬 음성들이 두런두런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직 멀었어?”
“글쎄, 이 근처인 건 확실한데······.”
레오의 물음에 타냐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근처라는 말만 수십 번째인데.”
“아니, 대체 어디냐고!”
“제, 제가 유령이라도 풀어 볼까요?”
“아냐, 차라리 내가 확률로 길을 짚어보는 게 더 낫겠어요.”
다들 한 마디씩을 더했다.
이 음울한 네온으로 뒤덮인 회색도시에 들어온 것도 어언 세 시간 째.
레오 일행은 여전히 ‘목적지’의 입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타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처음 도시에 들어설 때만 해도, 이처럼 헤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외려 이제 다왔다는 생각에, 도시 구경하기 바빴지.
헌팅턴 도적단에 있을 무렵 세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긴 했지만, 노스랜드는 처음이었다. 이쪽 지역은 따로 담당하는 녀석들이 별도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곳이 노스랜드······.”
처음 본 노스랜드는 한 마디로 말해, 괴이했다.
지브란테에 출현했던 거인 도깨비들보다도 두, 세 배는 더 큰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휘황찬란한 형광 불빛들이 마치 늦은 밤 강가를 떠도는 반딧불이들 마냥 도시를 빛내고 있었다.
도시 전체에 걸쳐져 있는 요상한 음영 때문인지, 이게 어두운 건지 밝은 건지도, 또 시끌벅적한 건지 적막한 건지도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거리를 채운 수많은 ‘이기(異機)’들.
웨스트랜드의 북부도시 지브란테에서 본 것들은 새발의 피였다.
그건 그저 대충 흉내만 낸 장난감들에 불과하다 생각될 정도였다.
공중을 점거한 비행 전동차,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로봇들, 기계인지 인간인지 분간되지 않는 기묘한 휴머노이드들······.
심지어는 공기마저 무거운 듯한 느낌이었다.
무겁고 퀘퀘하며, 숨 쉴 때마다 쇠의 비릿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여하튼 도시 전체가 낯설음으로 덮여 있는 듯했다.
하여, 조금쯤 구경하는 마음으로 슬렁슬렁 다니고 있었는데······.
생각이 바뀐 건, 도시로 들어온 지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부터였다.
왜······ 없지?
분명 길눈의 인도에 따라 목표지점 부근까지 왔는데, 정작 입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구경한다고 괜히 주위로 눈이 돌아간 것도 아니었다. 그즈음엔 이미 기가 다 빨려 피로감이 들 정도였으니까.
“이제 어디로 가야 돼?”
“이 원숭이······ 골골대기 시작하는데?”
“혹시 길이 보이지 않나요?”
타냐는 순순히 인정했다.
부근까지는 온 것 같은데, 희한하게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그럼 다 같이 찾아보지 뭐.”
하여, 일행 전체가 달라붙어 수색에 나선지 어언 두 시간 째.
그나마 눈에 띈 단서들을 쫓아 간신히 조금 더 범위를 좁히긴 했으나, 여전히 입구는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타냐는 다시금 한 차례 골목을 쓸어봤다.
이 부근인 건 확실했다.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골목 전체가 빛나고 있었으니까.
‘대체 어디에······.’
그즈음,
“이봐, 서둘러야 될 것 같은데. 이 녀석, 지금 점점 더 호흡이 옅어져 가고 있다고.”
키리코는 자기의 등 뒤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말 그대로였다.
거기, 호흡기를 단 원숭이 한 마리가 철제 바구니 안에서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빌어먹을.
별 수 없을 듯했다. 최후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줘봐.”
“엉? 뭐를.”
“네가 매고 있는 거, 그 원숭이.”
이어 키리코에게서 철제 바구니 채로 넘겨받은 타냐는 곧장 자신의 고유능력을 발동시켰다.
[대도의 안목]특정 조건 하, ‘목표 대상에 관한 상세정보를 볼 수 있는 능력.’
여기서의 상세정보는 대상의 외형 및 특이사항, 능력, 심지어는 그 ‘내력’에까지 이른다.
이어,
“······뭐?”
“어엇!?”
“뭐, 뭐하는 거야!”
푸시식-.
원숭이의 입에 달려 있는 호흡기를 떼었다.
“미안, 좀만 참아줘.”
타냐는 오공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은 뒤, [대도의 안목]으로 호흡기를 살폈다.
이 능력으로 대상의 세세한 내력까지 알아내려면,
1. 한 번 접촉했던 대상일 것
2. 현재 시야에 대상이 들어올 것
3. 단일 개체일 것
4. 대상의 격이 탐색 가능한 수준일 것
위 네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했으나, 원숭이가 호흡기를 착용중일 땐 세 번째, ‘단일 개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단일 개체라는 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닌, 주변에 끼치는 영향력까지 포함되는 개념이었다.
즉 원숭이가 호흡기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이상, 단일 개체로 인식이 되지 않는다는 것.
하여, 이제까지는 철제 바구니만 가지고서 추적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건 호흡기 쪽이었다. 철제바구니도 이 부근에서 만들어진 것이긴 하나, 쇠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제외하곤 별 특징이 없는 반면, 호흡기 쪽엔 기력을 넣어주는 생소한 이능이 하나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장비들을 전해준 이도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호흡기에 이능을 불어넣은 이를 찾아가라고. 그에게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
“어디 보자······.”
다른 건 딱히 알 필요가 없었다.
호흡기 제작자와 그 제작 장소만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이윽고,
‘어라, 이 녀석······?’
호흡기에 대한 정보를 받아 본 타냐의 눈이 일순 커졌다.
어째 제작자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얼른, 얼른 해!”
“뭐 보이는 게 있어?”
“어디로 가야 돼?”
타냐는 한 차례 고개를 갸웃거린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아는 녀석인데?”
“응?”
“누구?”
“물론 깊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얼굴 정도는 알고 있다고나 할까? 코미어라는 녀석인데······.”
이름을 말했으나 다들 모르는 눈치였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실은 타냐 역시도 조금 전에야 이름을 알게 된 것이었으니.
“지브란테에서 다들 본 적 있을 거야. 그······ 주걱턱이 탔던 괴물 로봇을 이끌고 뜬금없이 나타났던 녀석. 라미레스를 훔쳐 달아났던 인간 있잖아.”
그러자,
“아······.”
“그 녀석이······.”
“이, 이거 위험한 일이었나요?”
“역시 평범한 사람이 만든 건 아닌 줄 알았지만······.”
모두의 입에서 한 마디씩이 흘러나왔다.
특히 레오와 키리코는 어째 똥이라도 마려운 듯한 표정이었다.
좀 더 할 말이 있으나, 머뭇머뭇 거리기만 하는 느낌이랄까.
그 이유에 대해선 짐작이 갔다.
녀석이 갑작스레 라미레스를 버리듯 던져두고 사라지기 전까지, 둘은 바로 곁에서 그를 쫓은 당사자들이다. 아마 그 당시 똑똑히 체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 괴물로봇의 심상찮은 무력을.
하지만 물론,
“그럼 단서는 나온 거야? 이제 길이 보여?”
“얼른 가자고.”
그도 얼마 가지는 않았다.
어느새 두 눈이 전의로 가득한 상태로 레오와 키리코가 재촉해왔다.
‘역시······.’
함께 다닌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미 타냐는 저 둘이 누군가에게 겁먹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어,
슥-.
타냐가 한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있던 장소로부터 조금 떨어진 골목의 한 벽면, 거기 웬 자그마한 샛문이 빛나고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그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곧이어, 그 빛나는 문을 향해 타냐가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럼 갈까?”
*
“이거······ 맞지?”
“흐음, 맞는 것 같은데.”
“제법 오래된 거라······.”
타냐는 본인들을 ‘공방’의 기술자라 소개한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들은 철제바구니를 둘러싼 채, 한참을 그러고 흥미롭다는 듯 오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녀석이 달고 있던 호흡기를.
오공이 정신을 잃은 상태라 다행이었다. 만약 저 난폭한 원숭이가 자신이 구경거리가 된 걸 알았다면, 결코 가만있을 리가 없으니.
곧이어,
“맞아, 이건 코미어가 여기 공방에서 만든 거야.”
구경을 다 마쳤는지, 그들 중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그의 대답은 기다리던 바로 그것이었다.
“꽤 오래 지나긴 했지만······ 그 녀석 특유의 기법이 들어가 있더군. 뭐 부품도 우리 쪽 물품이 맞고.”
헌데,
“역시. 그럼······.”
“아, 잠깐, 잠깐만. 그전에 물어볼 게 있는데.”
이어지는 말이 희한했다.
“이걸 어디서 얻었지?”
“건네준 이가 누구야?”
“얼굴은 기억나?”
검증이 끝난 뒤 돌아온 건,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닌 또 다른 질문들이었다.
“······.”
타냐는 별 수 없이, 시간 단축을 위해 생략했었던 그간의 자초지종을 하나하나 다 설명해야 했다.
어쩌다 저 상처 입은 원숭이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길길이 날뛰는 녀석을 어찌어찌 제압은 했지만 녀석의 상처가 위중해 그냥 넘길 수 없었다고.
하여 치료 할 방법을 물색하고 있던 차에, 마침 지나가던 골동품 장수가 난데없이 이 호흡기를 건네 간신히 상태의 악화를 막을 수 있었다고.
그런데 그가 이것만으론 부족하니, 상태를 호전시키려면 이곳을 찾아 가라는 조언을 해줬다고.
그러곤 그의 인상착의까지 다 설명해줬다.
그런데,
“흐음.”
“모르겠는데?”
“일단 현재의 공방 인원은 아닌 게 확실해.”
“어디 쪽 녀석이지?”
“사실 뭐 코미어의 물건은 예전에 왕이 한 번 죄다 털어간 적이 있으니······ 밖으로 샌 것만 해도 부지기수겠지.”
돌아오는 대답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저나 미안한데······ 그 녀석은 여기 없어.”
“뭐, 코미어가 없다고?”
한참을 저들끼리 모여 쑥덕거리더니, 한다는 소리가 이게 다였다.
“아니,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이에 레오와 키리코가 성이나 외쳤다.
“미안, 우리도 오랜만에 보는 물건에 조금 흥분해서······ 그래도 아주 잘못 찾아온 건 아냐. 녀석도 몇 년 전까지는 여기 있었으니까.”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 픽 웃음이 나왔다.
“참나, 지금 있느냐가 중요하지 예전은 무슨.”
“그럼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그것도 사실······.”
“하······.”
그때였다.
“됐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투덜거리던 레오와 키리코를 비집고 나선 시아나가 한 마디 했다.
“그럼 그쪽들은 어때요, 혹시 오공을 고쳐줄 수 있나요?”
맞는 말이었다.
사실 핵심은 코미어가 아니었다. 오공이 이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지.
다만,
“우리는 못해. 분야가 완전히 다르거든. 설계도가 있으면 또 모르겠지만······ 사실 있어도 자신할 수 없는 게 사실이야. 모르는 분야는 함부로 손대기 힘들거든, 우린 그 녀석과 같은 천재가 아니니까. 솔직히 녀석이 수년 전에 장난삼아 만든 저런 호흡기조차도······ 못 만들지, 일반적인 기술자라면.”
“······.”
이에 대해서도 썩 좋은 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순간,
“아니, 코미어도 없고! 이 녀석들은 못한다고 그러고! 대체 어쩌자고 이리로 온 거야!”
레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답답함이 터져 나온 모양이었다.
“당신들······ 정말 모르는 거예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적이 아니에요. 그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어요. 만약 그의 위치를 숨기는 거라면······.”
그러나 시아나의 물음에도, 그들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곤,
“사실 이런 말하기엔 뭣하지만 아마 이곳 노스랜드에서 녀석을 찾을 순 없을 거야.”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뭐?”
“왜, 왜죠?”
“그 녀석 도망 다니는 중이거든.”
이어진 그의 설명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코미어는 과거 이 기계문명을 한층 꽃피울 것으로 기대되던 인재였으나,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현재 노스랜드의 반을 지배하고 있는 ‘기계의 왕’에게 밉보이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쫓기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고.
“사실 우리도 거의 숨어 지내는 형편이야. 녀석의 동료였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런 곳에 짱 박혀 있는 것이기도 하고.”
“허······.”
“그럼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얘기인가요?”
“미안하지만 그런 셈이지.”
“······.”
하지만 타냐로서는 이 상황을 쉬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대도의 안목]을 통해 코미어의 정체를 알게 되고, 또 이곳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전까지 자신을 안내한 건 다름 아닌 길눈이었다.
즉, 자신은 이곳에 원숭이를 살릴 길이 있다는 걸 보고 온 것이었다.
‘아냐, 아직 정보가 다 나오진 않았어.’
뭔가 더 있을 것이다.
하여, 타냐가 무엇에 대해 물어야할 지를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실은······.”
바로 그때, 공방의 인원들 중 하나가 슬쩍 입을 열었다.
“내가 요전에 들은 얘기가 있긴 한데······.”
역시나.
그의 말에 모두가 귀를 쫑긋 기울였다.
“마도(魔道)쪽에 물건을 대는 녀석이 해준 말인데, 몇 주 전부터 웬 희한한 녀석이 그쪽 마탑을 들락날락 거린다는 거야. 특이하게도 기계로 온 몸을 무장한 녀석인데······ 물론 마탑이 그런 녀석을 들이는 것도 이상하지만, 더욱 이상한 건······ 그 장비에서 왠지 모르게 코미어의 냄새가 났다는 거야. 색이나 문양 등등에서.”
그러자 다들 부인하는 분위기였다.
“에이, 말도 안 돼.”
“아무리 갈 곳이 없기로서니 코미어가 거길 가겠어. 마도공학은 아류라며 철저히 무시하던 녀석인데. 차라리 노스랜드를 떴으면 떴지.”
“그 녀석도 코미어의 옛 물건들을 주운 거 아냐?”
“에이, 아니라니까······ 심지어 마탑을 협박하기도 했다고 하더라고. 가르쳐 주지 않으면 무너뜨리겠다고. 그런 미친 짓을 할 인간이 또 있겠냐고······.”
그 순간,
팟-.
조금 전 말을 내뱉었던 이의 입이 한순간 빛났다.
‘······빛?’
평범하던 것이 갑작스레 모습을 달리한다는 것, 이는 길잡이에겐 꽤나 익숙한 현상이었다.
길을 밝히는 새로운 단서가 지금 나왔다는 것.
타냐는 흥분을 감춘 채,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그 마탑이 어디에 있다고?”
*
사우스랜드 앞 바다.
웨스트랜드 중부도시 소노카 행, 아이언 메리 호 내 선실.
나는 내 앞에 앉은 두 명의 여자애들을 보며 말했다.
“자, 주목.”
“주목.”
“주목.”
“좋아,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러곤 품속에서 자그마한 목함 하나를 꺼냈다.
바로 요정의 숲에서 가져온 ‘소원함’이었다.
“요정들이 모아놓은 소원이 들어있는 함이야.”
이에,
“소원이 들어 있는 함?”
“마법무구야?”
둘이 놀라 반응해왔다.
하지만 나는 질문은 무시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부터 소원을 뽑는 방법에 대해 말할 테니 잘 들어. 함을 열고 그 안을 가만 들여다보면, 곧바로 내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 거야.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이제 주위가 온통 이 목함으로 가득 차 있을 거야. 그 목함들이 다 소원이라고 생각하면 돼. 거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소원을 하나 가져와야 하는 거야.”
무덤덤하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는 중이었다.
나 또한 대책 없이 이 ‘최후의 방법’을 쓰게 될 줄은 정말이지 몰랐으니까.
본래는 이렇게 초조한 심정으로 소원함이나 뒤지고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빠르고 쾌적한 항해를 즐길 생각이었지.
이는 아주 단순한 내 착각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바로 도로시.
도로시가 내 생각만큼 힘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건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도로시에게 기대한 힘은, 다름 아닌 ‘대마녀 카밀라’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마나를 무한정 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황당하게도 나는 언제부턴가 도로시를 ‘대마녀 카밀라’와 비슷한 선상에 두고 있었다.
하여, 아무 생각 없이 미들랜드에서 대마녀가 선보인 ‘고래 소환’과 ‘바닷길 열기’를 주문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바보냐? 그걸 내가 어떻게 해?”
당연하게도 실패.
물론 잠재력은 그만큼 될지 모르지만, 사실 지금의 도로시가 그만한 힘을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마법을 쓸 수 있게 된지가 이제 고작 일주일이 지났을 정도인데 뭘.
심지어 ‘부하’가 풀린 것도 아니었다. 이것이 풀리려면 아직도 일주일이나 남은 상태였다.
즉,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이미 후회해도 늦은 뒤였다. 생각 없이 배에 오른 다음이었으니.
웨스트랜드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5일.
너무 늦었다. 절대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는 시간이었다.
하여, 배를 탄지 한 시간 만에 꺼내든 것이 바로 이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최후의 수단이라지만, 실제 행하는 방법이야 별 게 아니었다.
지금부터 어떻게든 이 소원함에서 ‘노스랜드로 보내주세요’란 소원을 찾아내는 것.
문제는, 이게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일단 이 소원함에서 원하는 소원을 찾는 방법은 팅커벨도 몰랐다.
내가 며칠 전 계속 시도를 해봤지만, 유의미한 방법은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냥 무작위로 골라질 뿐이었지.
게다가 하루에 뽑을 수 있는 소원에는 제한이 있었다. 최대 세 개.
그리고 하루에 세 개를 다 뽑으면, 다음 3일간은 뽑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신중하게 뽑아야 한다는······.
“이, 이씨! 야, 하나만 뽑아야 돼! 그 이상 뽑으면 큰일 나!”
나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함을 열고 눈을 갖다 댄 코코아에게 급히 소리쳤다.
이윽고,
“헹······ 이게 뭐야?”
코코아가 고개를 들었다.
녀석의 손엔 하나의 기다란 끈이 쥐어져 있었는데, 거기 적힌 건 다음과 같았다.
빵이었다.
일단 빵 하나에 소원 하나를 날렸다.
“······그래 나중에 배고플 때 맛있게 먹고. 그러니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들이대면 이런 빵쪼가리나······ 아씨, 넌 또 뭐야!”
그 순간, 어느새 도로시가 목함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코코아랑 같이 다니더니 완전히 코코아2가 된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번엔 조금 기대를 하긴 했는데, 혹······ 마녀라 뭔가 다를 게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 잘 한 번 날아보고.”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어느새 하나밖에 남질 않았다.
“하······.”
내 잘못이었다. 아무 대비 없이 이 녀석들에게 다짜고짜 공개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나는 이제야 들을 자세가 된 듯, 나를 가만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을 향해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코코아, 혹시 주머니에 행운물약 있냐?”
“행운물약? 왜?”
“그냥 그거 먹고 뽑으면 더 잘 될까 싶어서.”
물론, 이 또한 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없어도 주머니에서 뽑을 수야 있겠지만······ 고작해야 행운에 기대려 하다니 쯧쯧. 못난 주걱턱 같으니. 확실한 방법을 찾을 생각을 해야지.”
“······.”
맞는 말이긴 했다. 그조차 요행인 건 마찬가지이니. 게다가 사실 성공할 것 같지도 않았다. 실제로 이틀 전, 팅커벨을 소환한 후 확률적으로 뽑기를 시도했었음에도 원하는 소원을 뽑기에 실패했었던 것이다.
그럼 어쩐다.
그러고 다시금 무의미한 고민에 빠져들려 할 때였다.
“흐응, 내 가죽주머니랑 비슷한 개념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순간, 코코아의 나직한 중얼거림이 내 귓속으로 들려왔다.
그리고 이는,
······잠깐만.
벼락처럼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설마 이게 될까?
“코코아, 네 가죽주머니 좀 줘봐.”
“응? 왜?”
“잔말 말고.”
이어,
“어······ 그거 괜찮은 거야?”
“몰라. 한 번 해보게.”
코코아가 내민 가죽주머니에다 대뜸 소원함을 던져넣었다.
입구는 열어둔 채였다.
“이제 꺼내봐.”
“뭐야, 소원함을?”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소원.”
“······아하. 기다려봐.”
코코아는 내 말뜻을 알아차린 듯했다.
잠시 후,
척-.
한참을 뒤적거리던 코코아가 이내, 주머니에서 기다란 끈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거기 적힌 문구는,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