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타이밍
***
“우끼끼!”
그제까지 잘 참는다 싶더니, 또 다시 흥분한 듯 녀석이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어허, 가만히 좀 있지? 금방 끝내준다니까.”
“끼끼! 우끼······ 끼!”
“쓰읍, 또 시작이네······”
코미어는 원숭이의 팔을 잡고 있던 손가락에 가만 힘을 주었다.
그러곤 곧장 반대편 손으로 옆에 있던 거대한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주사기 안에 든 건 ‘수리’ 이능이 들은 액체형 나노 봇이었다.
‘과연 잘 되려나······.’
이 수리로봇을 생명체의 몸에다 직접 주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매번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데에만 썼었던 것이다.
‘수리’라는 개념이 ‘원상복구’ 내지는 ‘회복’과 같은 개념으로 통용될 수 있다는 것.
생명체의 몸 역시도 기계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
회로와 자재가 다른 것일 뿐, ‘생’과 ‘무생’에 어떠한 물질적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는 마도공학자들에게서 배운 인식이었다.
생명을 특별한 무언가로 여기지 않는 것.
처음엔 그들의 인식에 황당해 하던 코미어였지만, 그들이 ‘마나’를 다룰 줄 안다는 걸 안 이후론 깔끔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야말로 생명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없이는 해석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으니.
기계공학이 그간 이를 다루지 못했던 이유도 어쩌면 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생명에 대한 과도할 정도의 경외심이, 오히려 그것에 대한 무지를 낳고 말았을지도.
하여, 이를 깨달은 이후로는 일부로라도 더 ‘마도공학적 마인드’를 함양하려 노력할 정도였다.
하지만 물론,
“후······.”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코미어는 자꾸만 거부감이 드는 의식을 다잡으며, 주사기를 꽉 쥐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곧장 사람에게 실시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동물을 대상으로 먼저 시험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겐 행운일지도.
그렇게 편히 마음먹은 코미어와 달리,
“우끼······! 끼끼!! 끼!”
“어허, 좀만 참으래도?”
“우끼끼! 끼끼끽!”
이 원숭이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녀석은 도통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우끼, 끼······ 끼이 빌어먹을 인간! 하지 말라고! 끼끽······ 그 송곳 좀 저리 치워!”
인간의 언어로 빽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허, 목청하곤······.”
안타깝게도, 그제까지 자신이 원숭이의 언어로 ‘그만하라’고 외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던 모양이다.
아마 이젠 인간의 언어로 또 한참을 떠들어댈 것이다. 그전에 끝냈어야 하는데.
“놔! 놓으라고! 끼끽!”
“저항해봤자 너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지성도 있는 것이 그 정도쯤은 이제 알아차릴 때도 되지 않았나?”
“아니, 너 떨고 있잖아! 방금 손이 떨렸다고! 그 떨리는 손으로 그 뭣 같은 바늘을 내게 갖다 박으려는 거냐! 우끼!”
이에 코미어는 코웃음을 쳤다.
“내 손이 떨렸다고? 치료가 늦어지니 눈에도 문제가 생겼나 보군. 마음이 잠시 흔들린 적은 있으나, 손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물론, 주사기의 무게가 무게인지라 미세한 낙차가 있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뭐······ 그걸 손의 문제라고 볼 순 없으니.
“그걸 내 몸에 박았다간 가뜩이나 연약한 내 피부가 모조리 찢겨지고 말 거라고!”
“허······ 웃기지도 않는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 원숭이는 ‘견고’가 둘러진 기계라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피부가죽이 질겼던 것이다.
하여, 굳이 이 진동드릴 기능이 있는 주사기를 준비한 것이 아니었던가.
위이잉-.
“됐고, 딱 대.”
“비, 빌어먹을!”
바로 그때였다.
끼이익-.
문이 열림과 동시에,
“왜 이리 시끄러워?”
대단히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녀석이었다.
빨강머리 건달, 키리코.
“······치료 중이었다.”
녀석은 내가 들고 있던 거대한 주사기를 힐끔 보고는,
“치료 맞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빨강머리! 이 녀석이 내 팔을 해체하려고 하고 있어! 저 거대한 회전송곳으로 나를 박살내려 하고 있다고! 빨리 이 녀석 좀 치워!”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 이해는 한다만······ 네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이토록 기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된 건 모두 내 덕이라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근 3일간 네 치료를 위해 급히 제작해 가동시킨 장비만 다섯 개가 넘는다. 기력회복장치와 외상치유장치, 그리고 이 완전회복을 도울 소생장치까지.”
그러자,
“그래, 그건 그 녀석 말이 맞아. 너 3일 전엔 제대로 정신도 못 차렸다고.”
키리코 또한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코미어는 이에 전혀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는데, 이는 저 건방진 빨강머리가 뒤이어 같잖은 소리를 덧붙일 걸 똑똑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녀석도 꼴에 자존심이 있으면 아마 약속을 지키긴 할 거야. 네가 다 낫기 전까지는 네 옆에 붙어 있기로 했거든. 빨리 떠나고 싶어서라도 최선을 다하긴 하겠지. 안 그래?”
그러곤 녀석이 씩 웃으며, 나직이 한 단어를 덧붙였다.
패배자.
“······.”
“뭐, 허튼 짓은 하지 않겠지.”
“······흥, 나를 뭐로 보고.”
“그래, 잘 좀 해보라고. 그리고 원숭이. 잠자코 말 들어. 내가 다른 팔 한 쪽도 드릴로 뚫어버리기 전에.”
“이, 이런 빌어먹을! 이 따위 놈들한테 잡혀오게 되다니!”
그즈음엔 길길이 날뛰는 원숭이의 모습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
그만큼 열이 받았으니까.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코미어는 가만 입을 다문 채, 주사기 바늘만 돌렸다.
위이잉-.
*
이틀 전.
본래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눈 저 건방진 빨강머리를 손봐줄 생각이었다. 전투장비는 항시 착용 중인 상태였으니까.
양팔에 장착된 에너지 포는 언제든 발동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키리코! 뭐 하는 거야! 총 내려!”
저 더벅머리 소년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에게 이유 모를 섬뜩함을 심어준 녀석.
희한하게도 ‘그 주걱턱’과 엇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녀석.
이 빨강머리를 처리한다하더라도 끝이 아닐 게 분명했다. 무리의 대장인 듯 보이는 저 소년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하여, 일단은 한 발 물러서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 지금이라도 꺼지면 이 무례 정도는 용서해 주도록 하지.”
“그렇겐 못하겠는데. 좋은 말로 할 때 이 원숭이, 치료하는 게 좋을 걸?”
“나는 수의사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우리 쪽 길잡이가 길을 안내했어. 그 끝엔 네가 있었고. 그럼 네가 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말이 안 통하는군.”
그때였다.
“그럼 내기라도 하는 게 어때요?”
그제까지 조용히 있던 차분한 인상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기면, 치료에 협조해 주는 걸로.”
“내가 이기면?”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여자는 진심이라는 듯 고요히 눈을 빛냈다.
“당신이 귀찮게 굴지 않을 거라는 건 알겠어. 근데······ 과연 이 녀석도 마찬가지일까?”
그러고 슬쩍 빨강머리를 쳐다보자,
“하, 내기고 뭐고 간에 그냥 이 자식 기절 시켜서 데려가면 안 돼? 귀찮게 뭘 내기씩이나······ 몇 대 패주면 알아서 말 들을 것 같구먼.”
녀석이 또 다시 주제를 모르고 지껄여댔다.
“······그냥 넘어가 주려고 했더니.”
결국,
“키리코! 그만해.”
보다 못한 더벅머리 소년이 중재에 나섰다.
“코미어. 미안, 사과할게.”
소년은 그러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
이 일행도 저 경우 없는 빨강머리만 제외하면, 그나마 다 정상이긴 한 듯했다.
“너희도 모험단인 것 같은데, 쳐낼 녀석은 빨리빨리 쳐내는 게 좋을 듯싶군. 괜히 희한한 놈 하나 때문에 멀쩡한 모험단이 단숨에 와해되는 경우를 여럿 봤으니까. 저 빨강머리는 두고두고 독이 될 거다.”
그러고 돌아서려 할 즈음이었다.
바로 그때.
“고맙지만······.”
소년이 담담한 기색으로 시선을 보내왔다.
“내 동료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
그 순간,
움찔-.
코미어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리고 말았다. 일순간 소년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거셌던 것이다.
‘······역시나.’
생각보다 더 만만찮은 녀석인 듯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키리코와 같은 의견이긴 해. 네가 치료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거든.”
“그냥은 못 보내준다?”
“정 가겠다면 막진 않을게. 하지만······ 그래도 내기 정도는 해줬으면 좋겠어.”
소년은 단호하면서도 강건한 기세로 그렇게 말했다.
참나, 막지 않겠다는 녀석이 눈을 저렇게 뜨나?
코미어는 씁쓸하게 웃었다. 선택권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에 대적하려면, 그것이 있어야 했다. 창고 안에 고이 잠들어 있는 그 ‘괴물’이.
그즈음,
“그래, 힘으로 정하자고. 레오, 물러서.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네가 나를 이기면 놔주지. 하지만 내가 이기면 넌 이 녀석이 완쾌될 때까지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거야.”
빨강머리가 재차 나섰다.
코미어는 녀석을 잠시간 노려보다,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저 건방진 녀석을 손봐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당장은 한 발 물러나는 수밖에.
“······싸우진 않겠다.”
“뭐야, 바로 패배선언이야?”
“힘을 겨루자고 하지 않았나? 힘만 겨루면 되는 걸 굳이 피까지 볼 이유는 없지. 그리고 나는 전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흥, 핑계는.”
“따라와. 힘 자랑 하기에 좋은 장소가 있으니까.”
코미어는 그러곤 자신의 거처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일단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으니.
30분 후.
장비 창고가 있는 곳으로 레오 일행을 데리고 간 코미어는 이어, 창고에서 넓적한 철판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일반적인 출입문 두 개를 옆으로 합쳐놓은 듯한 크기의 철판 위엔 자그마한 전광판이 하나 부착되어 있었다.
이 철판은 무기의 파괴력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둔 것으로, 무려 ‘견고’와 ‘흡수’ 두 가지의 이능이 들어가 있는 녀석이었다.
일명, 파괴력 측정기.
일정 수치 이하의 모든 힘을 흡수해버리는 녀석이었다.
“룰은 간단해. 이 철판을 가격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 그때의 에너지 수치가 여기 이 스코어판에 뜰 거다. 점수가 높은 사람이 이기는 거야.”
“무슨 수작질을 부린 건 아니겠지?”
“내가 넌 줄 아냐. 보면 알아. 내가 먼저 하도록 하지.”
그러곤 코미어는 철판을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둔 뒤, 돌아와 자세를 잡았다.
‘괴물’을 쓰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대충할 생각도 없었다. 원숭이를 치료하는데 시간을 빼앗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또한,
‘저 건방진 놈의 놀란 표정 정도는 봐야 하니까······.’
질 수 없는 이유도 있었고.
코미어는 양 팔에 장착된 에너지 포의 출력 값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이어,
“이걸로 내기하게 된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바로 철판이 아닌 네 몸이 이 공격을 대신 받아야 했을 테니까.”
지이잉-.
퍼-엉!
측정기를 향해 에너지 포를 쐈다.
쾅!
푸스스-.
에너지 포를 맞은 철판은 맞은 자리가 움푹 파여 들어갔다가, 이내 원상 복구되었다.
전광판에 뜬 점수는 10,325,080.
‘적당하네.’
나쁘지 않은 점수였다.
이어,
“뭐야, 자신만만해 하더니. 저깟 철판 하나도 박살내지 못하고.”
빨강머리가 멍청한 소릴 하며 앞으로 나섰다.
녀석이 꺼내든 건, 낡은 구식 리볼버 두 자루였다.
코미어로선 코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말했듯이, 그냥 철판이 아니다. 과연 네가 백만이라도 넘길 수 있을······.”
순간,
휘리릭-.
철컥-.
타탕-!
녀석이 별다른 준비도 없이 곧바로 탄환을 갈겼다.
그리고 벌어진 일은,
투캉!
쾅!
콰콰쾅!
······.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철판이 으스러지고 관통된 채, 저 멀리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스코어는 뜨지 않았다.
대신 전광판엔 오류코드 ‘ERROR’만이 표시되었을 뿐이다.
“이걸로 끝? 아니면 혹시 이거 연습게임이었냐? 너무 시시한데?”
“······.”
코미어는 경악하고야 말았다.
착각이었다.
경계해야 할 건 저 더벅머리 소년만이 아니었다.
이 빨강머리 또한······ 어마어마한 괴물이었다.
코미어는 입술을 앙 다문 채, 말없이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이런, 또 그때의 기억이······.’
코미어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만 보면, 그때의 당황스런 결과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이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에휴, 이거나 마저 끝내자.’
이어, 코미어가 다시금 치료 작업(?)에 열중하려 할 때였다.
“코미어! 그럼 갔다 올게!”
“······응?”
빨강머리 뒤쪽에서 레오의 소리가 들려왔다.
“치료 잘하고 있어!”
“뭐지? 어디 가는 건가?”
“뭐야, 키리코 말 안했어?”
“아니, 치료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길래······.”
레오는 그런 빨강머리를 쳐다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 잠시 밖에 좀 다녀올게.”
“밖?”
그러고 묻자 입가를 씰룩거리며 웃더니,
“지금 우리 앞으로 협회에서 의뢰가 들어왔거든. 특정하여 지목된 걸 보니 우리도 꽤 이름값이 붙은 모양이야.”
신나서 얘기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곧장 임무 수행에 들어가게 될지도 몰라. 그동안 오공이 치료 잘 좀 부탁할게.”
그러곤 정말로 훌쩍 그냥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절로 황당함이 들 지경이었다. 자신이 그냥 떠나버리면 어쩌려고.
‘······희한한 녀석.’
이 또한 묘하게 주걱턱 녀석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어째 제멋대로인 듯 보이면서도,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이어,
“뭐······ 약속은 했으니.”
코미어는 묘한 기대감에 사로잡힌 채, 말없이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원숭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 그럼 우리는 계속할까?”
“······너, 넌 안 가냐?”
“내가 어디가. 네가 여기 있는데.”
“비, 빌어먹을!”
그러곤,
위이잉-.
곧장 치료를 재개했다.
*
노스랜드
마도공학도시, [위저드 시티]
나는 눈앞의 거대한 돌탑을 슬쩍 올려다봤다.
주변에 있는 여러 마탑들 중에서도, 데모라에서 본 세 여왕들의 마탑과 가장 흡사하게 생긴 것이었다.
가장 크고, 또한 부식이 심하게 된 탑.
하지만 그 내부는 겉과는 달리, 최첨단 공학기술이 스며들어 있는 마도공학의 총체.
현 마도공학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섯 간부 중 하나, 마도병기 지무스의 탑이었다.
“오늘도 안 들어가?”
“아직.”
“지루한데······.”
“기다려.”
사실 이 마도공학 녀석들을 건드리는 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건드린다는 표현조차도 과했다. 딱히 전투를 할 것도 아니고, 녀석들 몰래 일을 꾸밀 것도 아니며, 심지어는 적대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내가 이들에게 할 일은 별 게 아니었다.
그저 ‘레오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을 알려주는 것.
그냥 그게 다였다. 그럼 복수심에 불탄 지무스가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할 테니.
다만, 중요한 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언제 어느 때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가.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여기 이 녀석들이 코미어와 악연으로 엮인 ‘기계공학 쪽 빌런들’과 동시간대에, 아니 좀 더 빨리 움직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계획은 세 번째 에피소드인 ‘레오와 마도공학자들의 대결’을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 사이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일명, ‘에피소드 겹치기’라고나 할까.
코미어의 서사를 선점하기 위한 방법이야 어려울 게 없다. 레오를 바쁘게 만들면 된다. 녀석이 하나씩 하나씩 에피소드를 해결하게 둘 게 아니라, 일을 한꺼번에 몰아서 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레오가 마도공학 녀석들을 상대하는 와중에, 내가 대신 코미어의 과거풀기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
그리고 때마침,
띠링-.
[모험왕 연재가 재개되었습니다] [챕터32 – 바이오위저드 코퍼레이션] [진행 중인 챕터의 권역에 속해 있습니다] [히로는 이번 챕터의 캐릭터 평가 대상입니다]그 ‘타이밍’이 왔다.
나는 호흡을 정돈했다. 간단하긴 하지만, 약간 조심하긴 해야 했다.
어쨌거나 다섯 간부 중 하나를 건드리는 일이 아닌가.
또한 지무스 녀석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시간 됐다. 슬슬 가자.”
“뭐야? 진짜? 기다렸다고!”
“좋아, 저 탑을 무너뜨리면 되는 거지?”
“······잠자코 있어. 아, 코코아 너 내가 줬던 지팡이 아직 가지고 있냐?”
“어떤 거?”
“데모라에 가기 전에 너한테 쥐어줬던 거. 세 자루.”
“아마도?”
“그거 웬만하면 꺼내들지 마. 괜히 분위기 이상해질 수 있으니까. 여기 있는 애들 꺼 빼앗아 온 거였거든.”
순간,
“흐음.”
어째선지 코코아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대답.”
“생각해볼게.”
“······.”
뭐, 안하겠지.
“그럼······ 들어가자.”
그렇게 우리는 지무스의 거처를 향해 조용히 잠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