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선택
***
“허······.”
영상이 조작된 것도 아니고, 흔적이 조작된 것도 아니었다.
코미어는 눈앞에 펼쳐진 지하 실험실 풍경에 그만 말문을 잃고야 말았다.
콧속을 뚫고 들어오는 듯한 비릿한 내음.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투명하고 묽은 점액질들.
짙은 독성으로 돌바닥까지 녹여버린 독액들.
군데군데 흩어져 있던 팔인지 다리인지 모를 조각난 살점들.
널브러진 채 부식되어 가고 있던 시험관 용기들······.
물론 끔찍하기로만 따지자면 당장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상 위가 수배는 더 참혹하겠으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쪽은 단연 이 공간이었다.
이곳엔 ‘그’와 ‘그 빌어먹을 자식’의 흔적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두 가지는 서로 공존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자세히 볼 필요도 없었다.
박살난 시험관 용기에 새겨져 있는 건 ‘기계의 왕’의 표식이었다.
더군다나 단순한 판매용 제품에 붙어 있는 인증기호가 아닌, 특수제작 제품에 따로 붙는 기호였다.
즉, 이 회사는 기계의 왕에게서 직접적인 투자 혹은 후원을 받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다음으로 바닥에 흥건한 이 액체들.
시험관 용액으로 추정되는 이것들은 다름 아닌, 체이드혼의 시그니처로 유명한 액체금속이었다.
이는 아주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녀석으로, 자체적으로 ‘호환’이란 이능이 구현될 수 있는 대단히 쓸모가 많은 금속이었다. 이능을 추가적으로 쌓아가는 데 있어 ‘호환’만한 게 없기에, 모두가 원하는 금속으로 이름이 높으나, 다룰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어 이능이 발현된 상태의 녀석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였다.
자신이 알기로, 이 녀석에게서 ‘호환’을 구현해낼 수 있는 이는 단 둘밖에 없었다.
체이드혼, 그리고 바로 자신.
고로 기계공학계에 새로운 신성이 등장한 게 아니라면, 이 액체금속은 체이드혼의 작품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었다.
“허······.”
코미어는 가만 멈춰선 채 나직이 호흡을 골랐다.
뭐랄까, 충격이었다.
당혹스러움을 넘어 위화감이 일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은······ 물론 영상으로 먼저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보면서도 믿기가 힘든 것이었으니.
코미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주걱턱 그 녀석은 확실히 알고서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이다. 이곳에서 자신이 엄청난 충격을 먹게 되리란 걸 누구보다 똑똑히 잘 알고서.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하나의 사실이 전제되어야 했다.
이미 주걱턱은 자신과 체이드혼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것.
그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비밀을 말이다.
······.
그즈음, 주걱턱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슬그머니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제까지 네가 믿고 있던 많은 것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야.
기계의 왕에게 죽임을 당한 줄 알았던 체이드 혼이 어쩌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와 기계의 왕이 어쩌면, 서로 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둘이 짜고 자신을 속이기 위한 연기를 했다는 것.
이제껏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 되냐고.”
그 모든 가정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뒤엉키는 바람에, 코미어는 아주 오랫동안 혼란에 잠긴 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우끼끼-!
여기?
저기 있네.
우끼, 이 자식아!
귓가로 웬 소음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음?”
고개를 들어보니,
“우끼······ 끼끼! 거기서 뭐하냐고!”
원숭이 녀석이 자신을 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우끼!”
“······뭐야.”
녀석은 혼자가 아니었다.
모두와 함께였다.
“싸우느라 온 줄도 몰랐어. 갑작스레 나타난 오공 녀석을 보고서야 함께 왔겠거니······ 했지.”
코미어는 그즈음 자신 앞으로 다가온 더벅머리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키메라의 피로 물든 레오의 몸에서 비릿한 내음이 순간적으로 훅 치고 올라왔다.
“웁······.”
“미안, 막 전투가 끝나서.”
녀석은 그러곤 다가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안하다는 말과는 대조적인 행동이었다.
“늦었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좀 하려고.”
“무엇을?”
“이 녀석 말이야.”
레오는 그러고 옆에 있던 원숭이를 가리켰다.
“치료해 줬잖아.”
“아······ 그야 뭐. 내기였으니.”
그러자,
“암, 그렇지.”
뒤에 있던 빨강머리가 역시나 한 마디 했다.
“졌으니 잔말 말고 따라야지.”
“······.”
재수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나저나 여기서 뭐하고 있었던 거야?”
“아······ 그냥 알아볼 게 좀 있어서.”
이에 레오가 씩 웃으며 물었다.
“그게 뭔데? 말해 봐, 도와줄게. 이젠 우리 차례니까.”
“보답은 무슨.”
“괜찮으니 말해 봐.”
그렇게 녀석의 눈과 마주한 바로 그 순간,
······.
코미어는 어째선지 침묵하게 되었다.
단순한 질문이었다. 딱히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헌데 희한하게도, 갑작스레 기이한 직감이 드는 것이었다.
이건 쉬이 대답해선 안 되는 물음이라고.
지금이야말로 앞으로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지도 모를 중대한 순간이라고.
‘이게 무슨······.’
당황스러웠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심지어는, 마치 머릿속에서 무언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선택하라고, 어느 쪽인지.
직감이 제시한 건 두 갈래 길이었다.
그리고 코미어는 무엇과 무엇이 그 갈림길에 놓여 있는지를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주걱턱과 레오.
‘둘 중 하나라······.’
이상하게 그리 쉽지가 않았다.
분명히 좀 더 오래전부터 알았고, 설계능력에 보다 도움을 주는 건 당연지사 주걱턱 쪽이었다. 다만, 녀석의 적인지 아군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모호한 스탠스와 유독 비밀이 많은 모습에 약간 께름칙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반면 레오는 이상하게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 있었다. 기분파에다, 막무가내인 면도 없잖아 있었으나, 어쩐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나 할까.
그렇게 때 아닌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야, 임마! 도와준다니까? 뭘 꾸물대고 있어?”
귓가로 재수 없는 음성이 쏙 들려왔다.
코미어는 고개를 들어 그 음성의 주인을 확인했다.
허리에 리볼버를 찬 빨강머리가 건방지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하!
녀석을 보니 쉽게 답이 내려졌다.
둘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주변을 고려하면 되는 거였다.
코미어는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도움은 괜찮아, 따로 파트너가 있어서 말이지.”
“······그래? 하지만······.”
“원숭이에 대한 건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차피 내기의 결과를 따른 것뿐이니까. 좋은 일 했다고 치지 뭐. 그럼 앞으로 잘들 지내시고······ 나는 이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아참, 원숭이 너 아직 완치된 거 아니니까 요양 잘 하고. 그리고 빨강머리 너.”
“응?”
“다신 보지 말자.”
이어 코미어는 서둘러 지하를 벗어났다.
*
뭐지?
코미어는 슬쩍 걸음을 늦춘 뒤, 몸을 숨겼다.
위치신호를 확인하고 찾아간 곳엔 주걱턱뿐 아니라, 세 사람이 더 있었다.
왠지 모를 음험함을 풀풀 풍기는 중년의 사내 셋.
그들을 보고 주춤거렸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 낯선 3인방의 손에 각기 지팡이가 하나씩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마도공학자?’
근래 그들 주위를 기웃거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경계가 풀어진 건 아니었다.
애당초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으니.
코미어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저들과 주걱턱은 대체 무슨 사이일까?
더군다나 어디 어중간한 녀석들도 아닌 듯했다. 지팡이의 장식이 제법 화려한 걸로 볼 때, 최소 다섯 간부의 마탑에 소속된 이들이 아닐까.
잠시 후,
“······조심하라고!”
주걱턱이 손짓하자 그들이 떠나갔다.
그들의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촉박해 보였다.
‘슬슬 가면 되려나?’
이어 코미어가 재차 그에게 다가가려 할 때였다.
갑작스레,
‘허······.’
멀찍이서 웬 여인이 주걱턱의 곁으로 다가가는 게 보였다.
어마어마한 미인이었다. 이제껏 저와 같은 미녀는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둘은 잠시간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이내 주걱턱이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좀 전의 그 마도공학자 녀석들이 사라진 방향과 같았다.
그러자 여인이 주걱턱을 슬쩍 한 번 돌아보곤,
“멍청이 주걱턱!”
대뜸 소리를 지른 뒤, 그쪽을 향해 사라졌다.
따로 지팡이를 들고 있진 않았지만 그녀도 마도공학 쪽의 인물인 듯했다. 혹은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 주걱턱이 보낸 이라거나.
‘어디에서도 저만한 미녀가 있단 소문은 듣지 못했는데······.’
코미어는 주걱턱을 힐끔 쳐다봤다.
건방진 녀석.
어쨌거나 이제는 자신의 차례가 된 듯했다.
코미어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주위를 살핀 후,
“흠흠······.”
녀석 앞으로 걸어 나갔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게 있어서 말이야.”
이에,
“조금 늦은 것 같은데?”
자신을 본 주걱턱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어쩐지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안도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야······ 워낙에 충격적인 현장이라 말이지.”
주걱턱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수밖에.”
“근데 먼저 한 가지만 묻고 싶은데.”
“뭐지?”
“혹시 나랑 체이드혼의 관계도 알고 있었나?”
그러자,
“그럼 몰랐겠어?”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씩 웃었다.
역시나.
짐작은 했지만, 막상 들으니 당황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설마 그에게서 들었나?”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게 무슨 말이지?”
“진실을 아는 방법이 꼭 누군가에게 직접 전해 듣는 것만 있는 건 아니지. 만약 그의 행동을 유추해 알게 되었다면······ 그가 알려주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유추라.”
모호한 답변이었다.
물론,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즈음,
짝-.
주걱턱이 박수를 치며 주의를 모았다.
“어쨌거나 나를 찾아온 건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겠지? 그리고······ 나를 온전히 믿어야 한다는 것 또한 숙지하고 온 것일 테고.”
“뭐, 일단은?”
“그럼 바로 출발하자고. 이미 꽤나 시간이 지체된 상태니까.”
“······지금 바로?”
그러곤 대뜸 채비를 갖추는 것이었다.
“어디······ 어디로?”
“어디긴 어디야.”
이에 주걱턱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일단 체이드혼부터 찾아 나서야지. 뭐야, 대충 짐작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그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
“······.”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확신은 못했지만.
또 모든 것의 시작이 그인 만큼, 아마 그 흔적부터 뒤쫓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고.
다만, 이렇게 곧장 움직일 줄 몰랐을 뿐이다. 좀 더 여러 의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다음 행동할 줄 알았지.
이에 대해 물으니,
“제자리에서 풀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아.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것 또한 완벽한 진실이 아냐. 나 역시도 여러 근거들을 통해 추정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 그러니 지금부터 하나하나 추적해나가며 풀어야 한다는 거지.”
주걱턱은 간단히 대답했다.
“잠깐, 그럼 출발하기 전에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뭐지?”
코미어는 한 차례 길게 호흡한 뒤, 이내 입을 열었다.
“만약 이 일이 모두 끝나게 되면······ 그땐 내가 네 모든 비밀을 속 시원히 알 수 있게 되는 건가?”
“······.”
주걱턱은 이에 잠시간 침묵했다.
코미어는 내심 약간 긴장이 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자신이 ‘선택’을 하고 이곳에 왔다는 걸 알지 못한다.
즉, 이 질문이 자신에게 있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모른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글쎄?”
녀석이 답변했다.
“아마 그러긴 힘들지 않을까.”
“······역시 그런가.”
그때였다.
“다만······.”
녀석이 남은 말이 있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이어진 주걱턱의 대답은 다소 의외이면서도, 생뚱맞은 것이었다.
“네가 더 이상 내 정체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 순 있을지도?”
“응?”
“다들 그러더라고.”
“다들······?”
녀석은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됐고, 일단 출발하자고.”
*
띠링-.
[챕터34 ‘만들어진 괴물’이 종료되었습니다]됐다.
나는 홀로그램 창에 뜬 메시지를 보곤 씩 미소 지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챕터가 끝났기에, 다행히 ‘거부권’을 쓸 필요는 없을 듯했다.
더 이상 ‘출입통제’는 없었다.
그즈음,
“아, 아니······.”
코미어가 당황해 외쳤다.
“왜 또 이곳으로 온 거야?”
녀석의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제까지 몇 시간 동안이나 죽치고 있던 곳으로 다시금 들어가는 것이었으니.
“쉿.”
나는 별다른 설명 없이 일단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따라와.”
곧장 지하로 내려갔다.
실제로 코미어가 다시금 이곳 지하로 내려가는 건 원작엔 없는 일이다.
이는 곧, 지금 당장 코미어의 시점에서 다음 챕터가 열린다면, 내 계획에 약간의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나는 그게 그렇게 쉬이 열릴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 챕터부터는 곧바로 노스랜드의 두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는 것인데, 이미 코미어와 함께 시점을 나눠가질 레오가 빠지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세 번째 에피소드의 내용이 되었어야 할 일이 난데없이 벌어지기도 시작했을 테고.
아마 지금쯤 작가는 죽어라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전개방향도 방향이지만, 챕터 자체를 누구를 중심으로,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 것부터가 고민이 될 테니.
고로,
“아니 왜 다시 이곳엘······ 여기에 뭔가 더 숨겨진 게 있나? 우리 체이드혼을 찾아 나서는 거 아니었어? 설마······ 그가 여기에?”
이 녀석이 나를 선택해준 이상, 약간의 시간적 여유는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녀석을 힐끔 쳐다봤다.
“체이드혼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아 나서는데?”
“그야······ 만약 정말로 그 할아범이 살아 있다면······ 기계의 왕과 함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말이 되니까.”
호오.
정확한 짐작이었다. 실제로 그러하니.
하지만 나는 당장 그리로 갈 생각이 없었다.
“그 둘이 함께 일한 현장이 있다고 해서 계속해서 함께 있다고 가정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설혹 함께 있다하더라도, 이를 확인하려면 기계의 왕이 머무는 ‘메카닉 시티’의 중심부까지 들어가야 할 텐데······ 들어가는 것도 가는 거지만, 거기서 살아나올 자신은 있고?”
“······.”
“일단 그의 위치를 추정해 보려면······ 시작 지점으로 되돌아가야겠지. 그가 어떤 인간이고, 어째서 이러한 일을 벌였으며,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 방향성에 대해 알아야 할 테니까.”
물론 그냥 하는 소리에 불과했다.
다만,
“······그렇군.”
듣는 이가 저렇듯 고개를 끄덕여준다면야.
사실 이곳에서 내가 하려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이 녀석을 교육시키는 것. 그리하여, 한 차원 높은 설계자로 만드는 것.
굳이 장소를 이곳으로 특정한 이유 또한 간단했다. 교보재가 널려 있으니까.
심지어 이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다 이 녀석의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되고, 당위성이 되며, 가능성까지 열어주는 것들이었다.
저 시험관의 용액이 그러하고, 조각난 키메라의 살점들이 그러하며, 하다못해 이 공간 자체도 그러했다. 이곳이야말로 기계의 왕과 스승인 체이드혼이 힘을 합쳤다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장소 아니던가. 자연스레 정신적으로 자극이 될 수밖에.
또한 이곳이야말로 노스랜드의 정수가 한데 집합된 장소이기도 했다.
기계공학, 마도공학, 특수물약에 이어, 그 파생품인 마도생명체까지 있었으니.
그리고 이제 하나만 더 있으면 되지 않을까.
‘사이보그의 최종진화형태’가 될 바로 그 녀석.
“그럼 시작하기 전에 일단 불러봐.”
“응? 무엇을.”
“이능장갑기병.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지?”
이에 녀석이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내가 볼 때······ 지금으로선 그것이야말로 지금 체이드혼이 연구하는 것과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이거든.”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외려 그가 현재 만들고자 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이었지.
다만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최종적으로는······ 딱히 구분되지도 않을 테니까.
“그게 무슨······.”
이어 당혹스러워 하는 녀석에게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간단해. 체이드혼이 여기서 뭘 하려고 했는지, 또 녀석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직접 체험해 보면서 따라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