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들
***
띠링-.
[모험왕 연재가 재개되었습니다] [챕터35 – 혼돈의 노스랜드] [진행 중인 챕터의 권역에 속해 있습니다] [히로는 이번 챕터의 캐릭터 평가 대상입니다]지하에 들어온 지 사흘 째.
마침내 챕터가 시작되었다.
나는 먼저 챕터의 메인시점부터 확인했다. 혹시라도 코미어가 메인시점을 받았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챕터의 메인 캐릭터는 ‘레오’입니다.
흐음.
‘레오라······.’
나나 코미어가 아닌 레오에게로 시점이 갔다는 것.
일단 이는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이미 레오를 향한 마도공학계의 습격이 시작된 이상, 계속해서 시간을 끌 순 없다고 판단되었기에.
챕터공개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필요한 상황설명이 늘어나고 개연성이 박살 날 테니까.
둘째,
지금 막 레오 일행에게 ‘도저히 공개하지 않고선 배길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첫 번째 경우라면 별 상관이 없겠으나, 두 번째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로시.’
이는 나의 최종보험이자, 동시에 시한폭탄이기도 한 녀석이 결국 참지 못하고 움직였다는 걸 뜻했으니까.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움직이라곤 했지만, 솔직히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
‘한 번은 참았으려나······.’
물론, 설사 정말로 도로시가 움직인 게 맞다하더라도 당장 무슨 사달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도로시는 바보가 아니고, 레오 일행 또한 바보가 아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충돌한다면, 양측 다 무사하지 못하리란 것쯤은 대충 눈빛만 봐도 알지 않을까.
당장 사생결단의 상황을 염려할 필욘 없을 것이다. 외려 적당한 충돌은 시간을 끄는데 제법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뭐, 그렇다한들 서두르긴 해야겠지만.’
그보다도, 레오를 메인시점으로 챕터가 열렸다는 것 그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하나의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으니까.
바로, 작가가 에피소드 간 ‘순서역전’을 감행했다는 것.
본래 마지막 순서인 ‘레오와 마도공학 간부들의 대결’이 ‘코미어의 과거풀기’보다 먼저 시작된 셈이었으니.
이게 특히나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로 인해, 각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가령, 본래 이 노스랜드 에피소드의 최고 반전은 ‘기계의 왕’이 ‘마도의 왕’이 되어 재차 나타나는 부분이다. 아마 작가로서도 가장 공들인 전개이지 않을까.
헌데 만약 우리 쪽에서 ‘기계의 왕’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레오 일행이 마도공학 간부들을 죄다 끝장낸다면?
황당하게도, ‘기계의 왕’보다 ‘마도의 왕’이 먼저 등장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선행플롯이라고 있는 게 죄다 꼬이고 난리가 날 수 있다는 것.
아마 이 때문에 작가 역시도 내심 고민이 많지 않았을까.
레오를 향한 마도공학의 공격은 시작된 지 오래인데, 나와 붙어먹은 코미어 녀석은 지하에 틀어박힌 채 움직일 생각조차 않고 있으니.
이미 챕터의 이름부터가 ‘혼돈의 노스랜드’이지 않나.
본인의 심정을 십분 반영한 작명이 아니었을까.
챕터를 열기까지, 그리고 연 지금까지도 고민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게 됐을 때,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었다.
‘정 수습이 안 되겠다 싶으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려고 할 텐데······.’
흐음.
어쨌거나 이에 대한 경계는 놓지 않은 채, 최대한 비슷한 흐름으로 맞춰나가야 할 듯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코미어!”
일단 서둘러야 한다는 것.
“어느 정도나 됐어?”
녀석은 가만 제자리에 선 채 루카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째 신차의 최종출고를 검토 중인 딜러 느낌이 났다.
“뭐해? 끝난 거야?
“거의.”
“어? 진짜로?”
나는 약간 놀란 채,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벌써 끝났다고?
내가 각성을 끝내고 눈을 뜬 녀석에게 가장 먼저 주문한 건, 체이드혼이 만든 키메라의 핵심을 루카스에게 적용해 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핵심이 무엇인지는 따로 말하지 않았다. 그걸 파악하는 것 또한 설계자의 능력 중 하나니까.
그리고 뭐······ 사실 잘 모르기도 했고.
그렇게 각성을 끝낸 직후부터 사흘간 내내, 코미어는 온갖 작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조각난 키메라들의 살점과 피, 조직액 따위를 모아 연구하고, 바닥에 흩뿌려져 있던 액체금속을 다시금 모아 살피고, 실제로 루카스를 구성하고 있던 여러 장치 및 부품들과 결합시킨 뒤 경과를 지켜보고.
심지어는 페인트를 새로 칠하기까지.
“······페인트? 이건······ 왜?”
“빨강은 너무 튀니까. 경박하기만 하고 뭔가 묵직한 맛이 없다고나 할까? 내가 그래서 전에 라미레스를 들고 오래 도망 다니지 못했던 거야. 창피해서. 역시나 검정이 함께 들어가야 맛이지. 아아, 물론 이것 또한 체이드혼의 가르침이었어. 핵심 중 핵심이지.”
“······.”
어쨌거나 녀석의 작업효율은 놀라웠다.
조사, 연구, 실험, 이능구현, 테스트, 적용, 수정 등등.
쉬지도 않고 수많은 작업들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마치 키메라에 대한 파악은 오래 전에 끝났다는 듯,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다 알고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이게 각성을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본인의 원래 능력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에 놀라운 멀티태스킹 능력이었다.
그렇게 놀라운 속도와 방식으로 작업하던 녀석이 한 30분쯤 전부터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그냥 물어만 본 것이었는데······ 정말로 작업종료가 임박한 상태였다니.
솔직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이게 정말이라면, 이 녀석은 각성한지 불과 3일 만에 마도공학의 정수를 깨닫고, 실제로 구현하기까지 했다는 뜻이니까.
그즈음,
“물론 아직 한 단계가 남긴 했지만······ 이 정도면 얼추 끝난 거라고 봐야지.”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충 딱 맞춰 끝낸 셈 아닌가? 보아하니, 조급함이 얼굴에 슬슬 올라오는 것 같던데.”
확실히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다.
“그럼 이제 루카스는 준비가 끝난 상태라는 거야?”
“일단은? 너도 보면 대충은 감이 오지 않나?”
역시나 이 녀석은 나를 굉장한 전문가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내가 네게 몇몇 지식을 일러준 건 사실이지만, 뭐 알다시피 나는 이론과 개념에만 빠삭한 거라서. 그냥 보면 잘 모르거든.”
“흐음, 그래?”
그러곤 녀석은 루카스 쪽으로 다가간 뒤, 장갑의 겉면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도공학에 대해 눈을 뜨게 되면서, 꼭 한번쯤 다뤄보고 싶은 것 두 가지가 있었지.”
“두 가지?”
“하나는 마나인데, 그건 결국 집어넣지 못했어. 애초에 다루는 방법 자체를 모르겠더라고. 이쪽 전문가를 만나 제대로 된 조언을 듣든 해야지.”
뭐, 그럴 법했다.
기본적으로 마나란 것은 다룰 수 있는 이가 이미 설정에서부터 제한되어 있는 소재였으니. 제아무리 각성을 했다 할지라도 곧바로 마나까지 다룰 줄 알게 되면······ 그게 마녀지 뭐.
“전문가는 걱정하지 마. 조만간 일대일로 과외까지 시켜줄 테니까.”
“호오, 아는 이가 있나 보군. 하지만 괜히 어설픈 마도공학자 녀석을 댔다간 되레······.”
“괜찮아, 그런 거 아니니까.”
나는 이 녀석이 도로시를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가 궁금했다.
마도공학 베이스가 아니긴 해도, 마나란 것에 대해선 충분히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선생님, 선생님 하고 따라다니려나? 얘도 약간은 스승 콤플렉스가 있는 녀석이니······.’
그때였다.
“그래도 다른 하나는 넣었어.”
“다른 하나?”
나의 물음에, 녀석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성장 매커니즘.”
“뭐?”
“이제 이 녀석은 자신의 생명을 연동시킨 탑승자와 함께 학습하고, 또 성장할 수 있다. 단순히 반복학습을 통한 강화 개념 따위가 아냐. 탑승자의 힘과 생명력이 마치 성장호르몬처럼 작용해, 이 녀석의 성능 자체를 성장시키게 되는 거지.”
“허······.”
황당한 기능이었다.
“차후 탑승자와 영혼으로 묶이는 것과 마나를 주입하는 것 또한 진행될 수 있을 거야. 그 또한 성장의 일환으로 추가될 수 있는 개념이니까. 고로, 이 녀석은 끝도 없이 강해질 수 있다. 이 녀석의 주인으로 등록될 탑승자와 함께 말이야. 그야말로 최종병기인 셈거지.”
“이야······.”
나는 자연스레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녀석이 만든 건 그야말로 마도공학과 기계공학의 정수가 합쳐진 신물(神物)과도 같았다.
심지어 원작의 그것마저 뛰어넘을 정도로.
“그럼 이제 슬슬 해봐.”
“응?”
“사용자 등록 말이야. 이제 이건 네 것이니까, 주걱턱.”
그러곤 녀석이 나를 슥 쳐다보며 웃는 것이었다.
이에,
“이야······.”
나 또한 마주보며 씩 웃어주었다.
그러곤,
“근데······ 아닌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응?”
“이거 내가 탈 거 아니라고.”
“······뭐?”
“나 이거 탈 생각 없는데?”
그러자 코미어의 얼굴이 잠시간 멍해지는가 싶더니,
“그게 지금 무슨······ 그래?”
이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아니, 근데······ 나는 네가 타는 줄 알고······”
“뭐야, 내 전용으로 만들었다는 거야? 이거 나 말고는 못 타냐?”
“아니 뭐······ 딱히 그렇지는 않지만. 당연히 네가 탈 것이라고······ 아니, 그럴 거면 차라리 미리 말을 하던가. 그럼 애초부터 내가 등록을 마치고 진행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작업도 더 빨라졌을 거고 보다 다양한······.”
“잠깐, 잠깐. 근데 너도 아냐.”
“······뭐?”
“네가 탈 것도 아니라고. 이거 탈 녀석은 따로 있어.”
물론, 이 녀석이 허락해 줘야 하는 것이긴 하겠지만.
하지만 나는 아마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게 주려고 만든 것 아닌가. 이 녀석도 자기가 탈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그즈음,
“······누구?”
코미어가 조금쯤 멍해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적임자가 있어, 기계와 마법, 둘 다에 정통한 녀석이지.”
사실 이에 대한 건 꽤나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이었다.
-과연 내가 이능장갑기병을 타는 게 맞는 걸까?
이유인즉슨, 이걸 타는 것 자체가 뭐랄까······ 강력한 ‘대적자로서의 증명’에 위배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결국엔 도구의 힘을 빌린 셈이니까.
이 세계의 시스템 자체가 그랬다.
본신의 힘 이외의 것을 사용하는 녀석은 결국 괴물의 반열에 이르지 못한다. 저걸 타야만 다른 이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결국 그 본신의 힘은 그보다 못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꼴이었으니.
즉, 강함의 한계치가 생기고 만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작에서도 레오 또한 킹스로드 초반부까지는 좀 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타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에게 넘겨주었지.
강함을 증명해야 하는 녀석은 도구의 힘을 빌어선 안 된다는 것. 그게 최후의 최후까지 남기 위한 대적자들의 필요조건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괜찮다. 아마 킹스로드까지도 괜찮긴 하겠지.
하지만 결국엔 넘겨주긴 해야 한다는 것.
어차피 그럴 거라면······ 그냥 처음부터 다른 녀석에게 주는 게 맞지 않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적임자? 누군데 그게?”
“있어.”
게다가 딱 상황도 맞았다.
이 ‘코미어 과거풀기’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빌런은 총 셋이다.
물론 겔롭과 같은 중간간부들이 있기야 하지만, 보스급이라 칭할 수 있는 녀석들은 이 셋이 다였다.
체이드혼, 기계의 왕, 그리고 그로니얀까지.
코미어가 체이드혼을 맡고, 내가 그로니얀을 맡는다고 치면, 기계의 왕을 맡아야 하는 녀석이 또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아니, 그게 누구냐니까?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내 이능장갑기병을 넘겨주라고?”
“참나, 내가 모르는 이한테 넘기라고 하겠냐? 당연히 너도 아는 녀석이야.”
“내가 아는 이라고?”
“노스랜드 출신으로 몸엔 늘 기계식 전투 장비를 차고 다니면서도, 마녀들의 도시에 사는 뭇 마녀들에게서 무려 마법공주란 타이틀로 불린 녀석이지. 심지어 지금도 어느 무시무시한 마녀 하나를 추종자로 두고 있기까지 하고.”
이에,
“마, 마녀라고? 허······ 설마 그게 실존했다는······ 아니 그보다, 그런 녀석이 네 일행에 있다고? 게다가 내가 알고 있다고?”
코미어가 당황해 입을 쩍 벌렸다.
어디서부터 놀라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씩 웃어주었다.
“마침 오고 있는 중이야.”
*
꿀꺽-.
키리코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발바닥 아래의 땅거죽이 통째로 뒤집혀 올라오고 있었다.
레오의 번개는 그 치솟은 땅에 뒤덮여 사라진지 오래였다.
“제, 제가 킹을 소환해 막아볼게요!”
“안 돼! 그 유령조차 찢겨 나갈 거야!”
“그, 그럼 내가 한 번 힘을 빼앗아 보겠어요!”
“미쳤어? 저게 저 원숭이랑 같은 급인 줄 알아?”
동료들의 외침이 귓속으로 파고드는 와중에도, 키리코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녀석을 향해 쏘아 보낸 탄환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 본 순간, 곧바로 느꼈던 것이다.
저 녀석, 괴물이다. 이제껏 본 적이 없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괴물.
그즈음,
“헛짓거리들 하지 마! 일단은 도망쳐서 힘을 비축해야 돼! 레오와 저 건달 빨강머리의 힘이 떨어진 상태에선 무리라고!”
타냐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지금 내 대도의 안목에 아무것도 안 보여. 이력은 물론이고, 이름도 뭣도, 신체 특징조차 하나도 보이는 게 없다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그 주걱턱조차도 조금은 보였었는데!”
그녀 또한 눈앞의 저것이 얼마만한 괴물인지 똑똑히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하, 하하······ 어이가 없군.”
녀석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곤 생각했다.
검정 로브를 둘러쓰고 있던 것도, 검정의 지팡이를 들고 있던 것도 다른 녀석들과 같았지만, 묘하게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 도로시님?”
“여긴 어떻게······”
“위, 위험합니다!”
다른 녀석들의 반응이 희한했으니까.
다만,
‘신분이 좀 높은 녀석인가?’
처음엔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을 뿐이다. 이제야 좀 제대로 된 녀석이 나왔구나 하는 정도로만.
그 생각이 바뀐 건, 그로부터 몇 초 뒤의 일이었다.
콰콰광-!
휘이잉-.
펑! 펑! 펑!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고, 폭풍우가 일었으며, 지옥과도 같은 불덩이들이 단번에 수백 개가 날아들었다.
“무, 무슨······.”
다른 녀석들과는 공격의 유형도, 방식도, 형태도, 무엇보다······ 힘의 크기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그야말로 규격 외의 힘.
녀석은 ‘재앙’에 가까웠다.
콰과광-!
“피해!”
“도망쳐!”
“다들 흩어져!”
그 무렵, 어째선지 키리코의 머릿속에 이제껏 자신이 만나왔던 녀석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이제까지 중 가장 강자라고 생각되는 건 역시나 그 녀석이었다.
주걱턱.
사실 제대로 붙어본 적은 없지만, 아직 대적하기엔 조금쯤 벅차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실제로 여러 번 압도당한 적이 있었으니.
특히나 그 로봇을 탑승했던 때의 녀석은······ 이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고.
그리고 그 다음이 이제 칼 자이드와 그로니얀 라인이랄까.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검정 로브의 괴물은······ 그 모두를 압도하는 것이었다. 저 주걱턱조차도 말이다.
심지어 녀석은 아직 ‘전력’을 다하고 있지도 않았다. 땅을 뒤집어엎는 와중에도, 한편으론 쓰러진 마도공학자 녀석들을 공중으로 나르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으니.
절로 두려움이 일 정도였다.
물론 현재 몸 상태가 형편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 괴물들과의 싸움이 끝나고서도 무려 3일간이나 계속해서 전투를 해오던 상태였으니.
하지만······ 과연 레오와 자신의 몸이 정상이었다 한들 녀석의 상대가 되었을까.
‘······버티기라도 한다면 다행이겠지.’
때마침,
“키리코, 일단 빼자.”
레오 또한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좋은 생각이야. 다만······.”
저 괴물이 순순히 보내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우르르-.
쾅! 쾅!
녀석이 만들어낸 벼락 섞인 회오리바람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접근해왔다.
“빌어먹을!”
레오는 뒤로 물러나는 대신, 번개를 일으켜 맞불을 놓았다.
그에 최선의 수였다기보다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지직-!
번개 자체로는 레오의 승이었다. 금방 적의 벼락이 사그라졌던 것이다.
다만,
“뒤쪽에! 피해!”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회오리만을 진격시키곤 재차 후속타를 준비했다.
다음은 화염이었다. 녀석의 주위로 사람만한 크기의 불덩어리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공기가 달궈지며, 피부가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피하기엔 늦어.’
키리코는 물러나는 대신, 녀석을 향해 총을 겨눴다.
불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타격하는 건 폭발의 부담이 컸기에, 대신 녀석을 견제하며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화르르-.
“······으, 응?”
황당하게도, 허공에 띄워둔 불덩어리 하나에 녀석의 로브 자락이 닿아 불이 붙었다.
그리고 이에 당황한 녀석이 로브를 급히 벗어젖힌 순간,
······.
전장의 시간이 갑작스레 멈췄다.
로브 안쪽에 있던 건, 이 세상의 것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의 얼굴이었다.
무척이나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그 순간엔 어느 누구하나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그만한 미모였다. 모두의 혼을 단번에 빼버릴 만한.
잠시 후,
‘정신 차리자, 정신.’
키리코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것도 ‘마법’이라는 것의 일종인가?
물론 이에 대해 고찰할 시간은 없었다.
키리코는 고개를 돌린 채, 재차 총구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모두 물러나! 일단 내가 남아 막고 있을 테니 얼른 뒤로······.”
그때였다.
“······그럴 필요 없어.”
“뭐?”
“쫓아오지 않을 것 같아.”
“그게 무슨······.”
타냐가 슬쩍 손을 들어 뒤를 가리켰다.
다시금 천천히 돌아보니, 어째 녀석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있었다.
불덩어리들도 어느새 죄다 사라진 상태였다.
“얼굴을 드러낸 뒤로 약간 주춤거리기 시작했어. 당황한 것 같아.”
“뭐지? 약점인가?”
“글쎄······ 하지만 생각은 나중에. 일단 물러나는 게 우선이야.”
“······.”
맞는 말이었다. 당장 상대의 전력은 감히 승기를 따져볼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것이었으니.
기회가 생겼을 때 물러나야 했다.
“······다음엔 지지 않아.”
키리코는 그러고 나직이 중얼거린 뒤, 일행을 따라 조심스레 뒤로 물러났다.
*
삐빅-.
삑. 삑. 삑. 삑.
머릿속으로 지지직거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으음.
머리가 아팠다. 눈이 부셨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린 채, 정면을 쳐다봤다.
웬 고철덩어리 셋이 눈앞에 앉아 있었다.
“제거명령이 떨어졌다.”
“대상은 둘.”
“도망자 코미어, 그리고 주걱턱 모험단의 주걱턱.”
“······.”
“현재 파악되는 위치는 바이오위저드 코퍼레이션 사 지하.”
“무력 수준은 불명.”
“다만, 최고 수준의 위험등급 판정.”
“······.”
그때였다.
“4호, 응답하라.”
“4호.”
“4호.”
“······.”
남자는 대답하는 대신, 기억을 되뇌어봤다.
4호······ 분명 저들이 자신을 칭하는 호칭이었다.
그리고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이렇게 불리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았었다.
이유가 뭘까.
“······4호가 누구더냐.”
이렇게나 기분이 나쁜데.
삐빅-.
삑. 삑. 삑. 빅.
“변화감지.”
“4호의 상태가 이상하다.”
“4호, 신호에 응답하라.”
“4호.”
“4호.”
“4호.”
⁝
그 순간,
“······작작.”
투캉-!
남자의 손이 고철 하나의 목을 움켜쥐었다.
“떠들거라.”
······.
이윽고,
“4호, 어째선지 기억이 돌아왔나 보군. 나는 쓰러진 너를 데려다 치료한 사이보그다.”
마침 낯익은 녀석 하나가 입을 열었다.
저 녀석······ 겔롭이라고 했던가.
“상황은 설명해 주겠다. 협조를 요구하진 않을 테니, 소란은 피우지 말았으면 한다. 현재 너를 제압하기 필요한 비용은 추산이 불가능할 정도. 감당하기에 버거운 상황이다. 현재 우리는 네 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주걱턱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려 한다. 이때 예상치 못한 비용의 발생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방해······.”
“됐다. 설명 따윈 필요 없다. 너희가 나를 주워다가 치료란 명목 하에 너희와 같은 고철로 만들어놨고, 그리고 지금 그 주걱턱 녀석을 잡기 위해 나를 써먹으려 하는 상황이었다는 거 아니더냐.”
“······.”
곧이어, 겔롭이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그렇다.”
“협조해주지. 다만······.”
그즈음 남자가 쥐고 있던 손을 탁 놓았다.
데구르르-.
떨어진 사이보그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삐-. 삐-.
삐—–.
“나를 4호니 뭐니로 부르지 말라고. 내게 명령하지도 말고.”
남자는 이어, 살기 어린 눈을 고요히 주위로 흩뿌렸다.
흡사 먹이를 탐색하고, 피를 갈구하는 짐승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내 이름은 그로니얀이다. 건방진 고철들 같으니라고. 어쨌거나······ 그래, 지금 그 주걱턱 녀석이 어디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