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지나갑니다
***
확인하길 잘했다.
-현재 메인 캐릭터는 ‘그로니얀’입니다.
나는 약간은 심각해진 눈으로 홀로그램 창을 바라봤다.
혹시라도 도로시에게 메인시점이 가진 않을까 싶어 수시로 확인하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느닷없는 이름을 보게 될 줄이야.
도로시도, 코미어도 아닌 그로니얀이라니.
‘그로니얀이라······ 그로니얀.’
솔직히 예상치 못한 이름이었다.
있으리란 건 알았지만, 메인시점까지 받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경계가 되는 상황이기도 했고.
나는 얼른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
한 시간 전쯤 확인했을 때만 해도 메인은 레오였으니, 이 녀석으로 바뀐 건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바로 직전에 바뀌게 된 것일 수도 있고.
최대로 따져봐야 고작 한 시간.
‘······아니지, 무려 한 시간씩이나 되는 거지.’
그로니얀이라는 녀석이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고작’이라는 표현은 실례였다.
어쨌거나 상황 정리가 조금 필요했다.
일단 이를 통해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사실은, 작가가 에피소드를 교차로 내보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로니얀이 레오에게 따로 볼 일이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즉, 레오와 마도공학 녀석들이 싸우는 걸 잠시 보여주다, 다시 우리 쪽 내용을 보여주다, 마지막 즈음에 어떻게 잘 엮어서 두 이야기를 동시에 마무리 짓는 것.
약간 이런 식의 흐름을 계획 중인 게 아닐까.
챕터의 이름대로, 아주 그냥 혼돈의 카오스로 만들어 보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아마 최종 빌런인 ‘기계의 왕’을 쓰러뜨리는 쪽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게 되지 않을까.
‘죄다 섞인 채 마무리라······.’
하지만 뭐, 사실 그 상황이 크게 염려되진 않았다. 이제 웬만해선 코미어를 뺏길만한 상황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이는 레오 쪽이 기계의 왕을 처치한다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스포트라이트와는 별개로, 이미 그전의 서사는 내가 다 차지한 상황이지 않겠는가. 녀석들에게 코미어를 합류시킬 만한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번 노스랜드 에피소드의 최종 보상은 이미 내가 꿀꺽한 뒤라는 것.
작가로선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레오 일행이 코미어를 동료로 들이는 전개는 이미 사라진 다음이었다.
만에 하나, 내가 누군가에게 처치당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오우······ 생각해보니 갑자기 아찔해지네.’
때마침, 홀로그램 속의 이름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현재 메인 캐릭터는 ‘그로니얀’입니다.
그로니얀.
메인 캐릭터로 등장할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막상 이 녀석이 뭘 할 지를 예측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녀석이 할 일이야 뭐가 있겠는가.
복수.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나.
이 녀석과의 대결은 이미 전부터 각오해뒀던 일이기에, 딱히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문제는,
‘잠깐······ 지금 바로 오나? 설마 오는 중인가?’
타이밍이 그리 좋지는 않다는 것.
일단, 아직 ‘부하’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현재 등급 : 조연
-현재 수치 : 832
-경험치 : 82%
-다음 등급까지 남은 수치 : ?
-선행 플롯 무시 가능 횟수 : 4회
※ 특이사항
-‘시간의 부하’ 페널티 적용 중.
-1298→832
-적용기간 2주 (남은기간 0일)
오늘이 딱 마지막 날이었던 것이다.
페널티를 안고 그 그로니얀과 싸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뭘 해보기도 전에 한 방에 터지게 될지도.
물론 풀리기까지 얼마 남지 않긴 했다. 페널티에 걸렸던 것도 아마 딱 이맘때쯤 이었던 것 같으니까.
타이밍이 맞을지는 의문이긴 했지만.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녀석의 습격으로 인해 자칫 잘못하다간 코미어의 서사 자체가 뒤엉킨다거나, 최악의 경우······ 이를 독점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
기계의 왕에겐 부하가 굉장히 많다.
물론 강력한 녀석들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지만, 소모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녀석은 무한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복제’가 가능한 기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작에서 레오 일행 또한 끝도 없는 싸움에 시달려야 했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부하들을 상대해가며 ‘코미어의 과거풀기’를 진행해야 했으니까.
하여, 내가 본래 계획해둔 작전은 쓸모없는 소모전을 거칠 게 아니라, 곧바로 녀석들의 본거지로 진격해 가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미 내가 정보를 풀어 체이드혼과 기계의 왕의 관계를 정립시킨 다음이니, 굳이 체이드혼의 진의를 알기 위해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는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곧장 쳐들어간 뒤, 코미어로 하여금 물어보게만 하면 될 일이었던 것이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 봐요.
그렇게 기계의 왕과 체이드혼을 직접 대면해 풀어야 할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처리한 다음, 이제 각자 상대에 맞춰 찢어지려고 했던 것이다.
코미어는 체이드혼, 코코아는 기계의 왕, 그리고 나는 그로니얀에게로.
헌데 문제는 지금, 그로니얀이 혼자 따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짐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 셋이 같이 있는 상황이었다면, 결코 그로니얀에게 시점이 가지 않았을 테니.
혼자 떨어져 나온 녀석이 개별적으로 습격을 감행해온다?
이를 그대로 받아주다간, 레오 일행이 벌였던 소모전을 똑같이 이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녀석을 단숨에 처치하지 못하는 한, 계속해서 지원 병력이 오며 시간이 끌릴 테니까.
그렇다고 내가 녀석을 맡고, 코미어와 코코아만 따로 저들의 본거지로 보낸다?
그때부터는 위험성이 수십 배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전개가 변동될지 모르니까.
혹, 갑작스레 레오 일행이 방향을 틀어 난입해올지도 모를 일이고.
내가 코미어와 함께 ‘숨겨진 뒷이야기’를 듣지 않는 한, 아직 완전히 서사를 차지한 것이 아니다. 그 상황을 레오 일행에게 빼앗기게 된다면, 다시금 코미어의 합류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 수밖에 없나.’
나는 결단을 내렸다.
위험부담이 있긴 하지만, 그게 최선일 듯했으니.
이어,
“집합!”
그즈음 한창 지하층들을 돌며 장갑기병을 시범 운용 중이던 코미어와 코코아를 불렀다.
“빨리 와! 시간 없어!”
곧이어,
팟-.
저 위쪽 지하 4층 언저리에 불빛이 번쩍 하더니,
피슉-.
순식간에 장갑기병이 눈앞에 나타났다.
과연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의 속도였다.
다만 장갑기병 자체가 빠르게 내려온 것과는 달리, 둘은 세상 한가롭다는 듯 시시덕거리며 로봇에서 하차했다.
“이야, 나쁘지 않은 걸?”
코미어가 만족스런 웃음을 내비치며 코코아를 칭찬했다.
“이 녀석, 장갑기병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해.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라고. 네가 어째서 이 녀석에게 이걸 주겠다고 한지 이해가 될 정도야.”
이에 코코아 또한 기분이 좋았는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례했다.
“나도 얘가 좋아. 고마워.”
“아냐, 감사인사는 주걱턱에게 하라고. 저 녀석이 자기 걸 네게 양보한 거니까.”
그러자 코코아는 내 쪽을 힐끔 한 번 쳐다보더니,
“주걱턱에겐 충분히 고마워하고 있으니까 상관없어. 고마워 코미어.”
황당한 소릴 내뱉곤 곧장 다시 고개를 돌렸다.
“······.”
“아참, 이렇게 운용이 끝나면 곧장 장갑은 닫아주는 게 좋아. 루카스는 내부온도에 민감해서 외부와의 차단이 중요······.”
그때였다.
“루카스 아냐.”
“응?”
“루카스 아니라고.”
코미어는 이에 잠시간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하, 이제 소유자가 바뀌었으니까? 그렇지, 직접 정하는 게 맞지.”
이내 다시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새로운 이름이 뭔데?”
이어 코코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터미네이터.”
얼토당토 않는 이름을 꺼냈다.
순간,
“하, 뭐라는 거야.”
나도 모르게 헛바람이 나왔다.
“뭐, 왜?”
“바꿔. 별로야.”
“왜, 내 맘이지.”
“안 된다고. 별로라고. 바꾸라고.”
“······쳇.”
이어 녀석이 새로 꺼낸 이름은,
“그럼······ 건담.”
만만찮게 황당한 것이었다.
“장난 하냐?”
“아, 왜 또!”
“바꿔. 다른 거.”
결국 몇 차례의 실랑이 끝에, 이능장갑기병의 공식명칭은 ‘코코아톰’이 되었다. 그것도 아톰이라고 하려는 걸 간신히 바꾼 것이었다.
“너는 이제부터 코코아톰이란다. 착하지? 귀여운 우리 아톰······.”
“······.”
잠시간 멍해진 정신을 수습한 후,
“됐고, 집중.”
나는 둘의 주의를 모았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당장?
“어디로?”
나는 이에 대답하는 대신, 곧장 코코아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길 알아놓으라고 한 건? 준비됐어?”
그러자 코코아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통통 두드렸다.
“여기 있어.”
실은 이곳에 오기 전, 코코아더러 기계의 왕과 체이드혼에게 가는 길을 좀 찾아두라 말했었던 것이다. 대충 봐두기만 하라고.
“오케이, 그럼······.”
바로 그때였다.
쾅!
콰쾅!
급작스레 온 사방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위쪽에선 굉음이 들려왔다.
“이런······ 도착했나 보네.”
“왔다고? 누구?”
코코아가 별 생각 없이 물은 것에 반해, 코미어의 기색은 약간 어두워졌다.
“여기에 올 사람이라면······ 역시 기계의 왕 쪽 녀석들이려나?”
“맞아. 그리고 아마 아는 얼굴일거야.”
“아는 얼굴?”
“있어, 무시무시한 녀석. 보면 알아.”
나는 둘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을 당장 해결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코아, 루카······ 아니 코코아톰에 대해 설명은 다 들은 거지?”
“응.”
“바로 써야겠는데 괜찮겠어?”
“방금까지도 운용하다 왔는데 뭐. 간단하지.”
“오케이. 그럼······ 지금 특수물약 가지고 있지? 어떤 거 가지고 있어?”
실은 길을 알아보라는 것 외에 한 가지 더 부탁한 게 있었다. 여기 [바이오위저드 코퍼레이션]의 외부물약창고에서 ‘리무브’를 좀 챙겨놔 달라고. 내가 미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해주는 중화제. 그걸 좀 확보해 놓으라고 말이다.
당연하게도, 코코아의 성격상 그것만 챙겼을 리가 없었다.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탐욕스런 녀석인데.
그리고 역시나,
“다.”
“다? 전부?”
“응. 확실히 산지라 그런지 좋은 게 많더라고.”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근데 왜? 달라고?”
“아니, 내게 줄 필요는 없어. 지금 당장 코코아톰을 움직여야 한다니까?”
그러자,
“아하! 내가 먹는 거구나.”
코코아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 아니, 이 이능장갑기병 코코아톰은 ‘호환’이나 ‘성장’, ‘생명연동’등 수많은 이능을 갖춘 어마어마한 병기지만, 기본적으로 이 녀석을 극강의 괴물로 만들어주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증폭.’
소유자의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것.
“능력의 종류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걸로.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빠르게라······ 어차피 내장된 부스터가 있으니, 속도 자체엔 문제가 없을 거야.”
“그래도 혹시 몰라. 이제 곧 나타날 녀석이 그리 느리지는 않을 테니까.”
“음······ 그럼 나 잡아봐라 뿅! 신속물약으로 마실까?”
“그것도 괜찮······.”
그때였다.
우르르-.
철판으로 덮어둔 입구가 순식간에 날아가면서, 위쪽에서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왔다! 얼른 타!”
나는 일단 코코아부터 코코아톰 속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슈우욱-.
쿠궁!
‘무언가’가 저 먼 지상에서 쿵-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덩치가 몹시 큰 인간같이 생겼으나, 인간이 아니었다.
전신의 절반이, 특히나 가슴부근이 완벽히 쇠로 채워진 ‘무언가’를 어찌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녀석에게선 희한한 비릿함이 풍겨왔는데, 그것이 쇠의 그것인지 아니면 피의 그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나는 내 앞에 선, 흉흉히 눈을 빛내고 있는 사이보그를 바라봤다.
그로니얀.
살기에 젖은 강철짐승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크하하, 네 놈······ 오랜만에 보는군.”
“여. 근데 누구시더라?”
나는 일단 약을 좀 올렸다. 흥분한 녀석이 내 행동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그로니얀이다. 이 씹어 먹을 주걱턱 녀석. 네 놈에게 가슴의 반이 날아갔었지.”
“아, 그때 그 약골? 네가 몇 방에 갔더라? 한 방? 두 방?”
“킬킬······ 피가 끓는군. 좋다, 이번엔 내가 널 찢어주마.”
그러곤 녀석이 그 육중한 발을 움직여 한 발 한 발 다가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때마침,
위이잉-.
코코아가 신호를 보내왔다.
준비가 끝났다는 표시였다.
“근데······ 이거 어쩌지?”
나 또한 손을 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내가 선약이 좀 있어서.”
“허, 도망치겠다고?”
“아니 뭐······ 따라오든가 그럼.”
“······뭐라?”
그러곤 나는 온 몸에 힘을 팍 줬다.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여.
곧이어,
“그럼, 먼저 지나갑니······.”
홱-.
코코아톰이 나를 옆구리에 감은 뒤, 그대로 지상으로 뛰어올랐다.
“드으아! 으갸갸갸······!”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대비를 했음에도 한순간, 아득함이 느껴졌을 정도였으니.
눈 한 번 딱 감고 떴더니, 어느새 지상이었다.
아마 그로니얀은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피 튀기는 혈전을 각오하고 있었을 텐데, 난데없이 내가 튀어버렸으니.
물론 작가와 독자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고.
하여,
‘이대로 사라지기엔 조금 아쉬우니까······.’
미친 듯한 속력에 온 몸이 팔랑거리는 와중에도, 나는 기어이 소리쳐 한 마디를 남겼다.
“따, 따라라악······ 오, 올 테면······ 따라와아악······ 봐!”
*
노스랜드 지하전역에 깔린, 그야말로 기계공학의 축복이라 불리는 것.
드레인에이지 시스템.
공업용수를 비롯하여 모든 용수 및 오수를 일괄 처리하는 세계 제일의 하수 처리 시설.
바로 그 복잡하기론 상상을 초월한다는 노스랜드 지하 하수도 어딘가에서, 우리는 걷고 있었다.
“흐음······.”
나는 약간은 긴가민가한 심정으로 홀로그램 창을 지켜봤다.
5분, 10분······.
한참을 기다렸지만, 딱히 별다른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잠잠했다. 선행플롯의 제재는 없었다.
고로,
“······됐다.”
성공이라는 뜻이었다.
조금 전, 그로니얀은 메인시점을 달고 온 상태였다.
즉, 그때 나는 선행플롯의 제재영역 한 가운데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게 제재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건,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첫째, 내가 도망치는 것이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행위였기 때문에.
둘째, 제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첫째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으니, 답은 둘째였다.
내 행동을 선행플롯을 통해 제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때 내 몸은 내가 아닌, 다른 이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으니까.
내가 나를 들고 뛰는 코코아톰에게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게 제재를 먹일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물론, 그럼에도 혹시나 싶은 마음이 있긴 했다.
하여 이렇듯 긴가민가해 하며 홀로그램 창을 살폈던 것이고.
어쨌거나 결과는 성공이라는 것.
‘그냥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았냐고.’
이로서 나는 선행플롯의 제재를 피할 꼼수 하나를 찾아낸 셈이었다.
그즈음,
“근데······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옆에서 약간은 근심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사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코미어의 입장에서만 보면, 그냥 적을 처리하고 가는 게 훨씬 더 뒤탈이 없는 길이었을 테니까. 괜히 본진으로 직행해 상대해야 할 적을 늘리는 것보다야, 하나하나 처리해 가는 게 더욱 낫다고 생각할 수밖에. 더군다나 대상이 저 괴물 그로니얀이 아닌가. 외려 좋은 기회를 날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이유를 다 설명할 수도 없지 않은가.
하여,
“뭘 그렇게 걱정해? 지금 네가 뭘 만들었는지 잊었어?”
설명하는 대신 그냥 뽕만 채워줬다.
“그래, 게다가 지금 그걸 누가 조종하고 있는지도 잊었느냔 말이야.”
코코아도 한술 거들었다.
그리고 이는,
“으음······ 그건 그렇지.”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사실 내 말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갈 게 있냐는 말이었어. 그냥 뚫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
“······.”
그건 좀 오버고.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기계의 왕에게로 가는 비밀통로 안이었다.
사실 비밀통로라기보다는 그저 무작정 땅을 파고 하수도까지 들어간 뒤, 대충 방향에 맞춰 이동하는 느낌이긴 했지만.
“길은 맞는 거지?”
“그럼. 다 왔어. 바로 앞이야, 바로 앞.”
코코아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큰소리쳤다.
사실 안 그래도 잘 보고 잘 찾는 녀석 아닌가. 그런 코코아가 코코아톰에 의해 길눈이 증폭된 상태에서 확인까지 끝마친 길이었다. 길을 보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했으리라.
이윽고,
“여기야.”
웬 희한한 곳에서 코코아가 멈춰 섰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바로 머리 위를 가리켰다.
“여기?”
“응.”
딱히 특별함이 느껴지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냥 하수도의 어느 중간 지점이었다.
“코코아톰 꺼낼 게. 물러나 있어.”
“꺼낼 수 있나? 낄 것 같은데?”
“음······ 그러려나?”
어느 즈음부터 하수도가 계속해서 좁았졌던 탓에, 코코아톰은 일단 주머니에 넣어둔 상태였다.
“내가 하지 뭐. 이 위를 뚫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러곤 코미어가 두 팔에 장착하고 있던 에너지포의 출력값을 최대로 맞췄다.
“혹시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괜찮을 거야.”
곧이어,
지이잉-.
펑!
코미어가 최대 출력값의 에너지포로 천정을 날려버렸다.
우려했던 게 무색하리만치 쉽게도 뚫렸다.
이어 그 위로 올라가자, 웬 이름 모를 수많은 기계들로 가득 찬 널찍한 공동이 나왔다.
어째 눈에 익은 장소였다.
‘아······여기였어?’
어렴풋 기억이 났다. 원작에서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왕의 공방.
그리고 바로 거기,
“응?”
“음?”
뭔지 모를 대형 기계 앞에 놀랍게도, 녀석들이 있었다.
기계의 왕과 체이드혼.
“······코미어?”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고, 또 간단한 만남이었다.
“노, 노인네 정말로······”
코미어는 녀석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뭔가 북받쳐 오르는 듯했다.
다만,
“코미어. 잠깐, 잠깐만. 진정해. 흥분하지 마. 심호흡하고.”
아직은 일렀다.
나는 애써 녀석을 진정시킨 후, 얼른 홀로그램 창을 켰다.
이어,
-현재 메인 캐릭터는 ‘그로니얀’입니다.
-현재 메인 캐릭터는 ‘그로니얀’입니다.
-현재 메인 캐릭터는 ‘그로니얀’입니다.
-현재 메인 캐릭터는 ‘그로니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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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검색을 반복했다.
그렇게 한 20초가량이 지났을까.
마침내,
-현재 메인 캐릭터는 ‘코미어’입니다.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변했다!’
나는 코미어의 등을 탁 치며, 고갯짓했다.
이제 참지 않아도 된다고. 지르라고.
그리고 때마침,
쾅!
“네 이놈 주걱턱!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
나를 뒤쫓아, 그로니얀 또한 공동 안에 도착했다.
이제 필요한 인물들은 다 모인 셈이었다.
오케이.
나는 씩 웃으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자, 그럼 이제 주먹이 운다 한 번 시작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