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종착역을 향하여
***
“이, 이제 어떻게 하죠?”
······.
그제까지의 침묵을 깨고, 분위기를 한 번 쇄신해보려던 얀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더욱더 일행을 적막 속으로 밀어 넣었다.
별다른 대안 제시 없이 부정적 현실을 상기시키는 것은, 그렇게나 모두를 힘 빠지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결국 잠시 뒤,
“어쨌거나 당장 쫓아오지는 않잖아? 역시나 그때 그 여자에게 문제가 생긴 게 맞나봐. 이유는 모르겠지만.”
짓눌러오는 침묵을 견디다 못한 타냐가 본인의 바람을 담은 낙관적인 전망을 슬그머니 입에 올렸다.
“저, 정비에 들어간 게 아닐까요? 그들도 꽤나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니까요.”
“그럴지도.”
아주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그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레오와 자신이 꽤나 흥분한 채 전투에 임했던 건 사실이니. 죽은 이까진 없다하더라도, 꽤나 많은 수의 인원이 전투불능 상태가 된 건 분명했다.
만약 그녀가 단순히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났던 거라면, 현재 추격이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전열을 가다듬는데 시간을 쓰고 있을지도.
하지만 물론, 이는 그리 설득력 있는 추측이 아니었다.
고작해야 그 형편없는 녀석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섰다고 보기엔, 그 여자의 무력이 너무나도 강대했으니.
차라리 그냥 답답해서 나섰다고 보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애당초,
“근데 다른 놈들이 정비를 하든, 뭘 하든 뭔 상관이야.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건 그 여자 하나뿐인데. 그 여자가 정비에 들어갔어? 우리가 그 여자에게 타격을 입혔냐?”
이건 본질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소리였다.
“그, 그건······ 아니지만······.”
“그리고, 그래서 뭘 어쩌자고? 현재 당장 그 여자가 추격해 오진 않고 있다. 우리에게 잠시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뭐.”
“그, 그냥 이대로 물러나는 것도······.”
키리코는 얀의 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애초에 싸움을 걸어온 것부터가 그 녀석들이었어. 우리가 물러난다고 하면 그냥 보내줄 것 같아?”
이엔 가만있던 레오 또한 동의를 표했다.
“키리코의 말이 맞아. 그리고 설사 보내준다고 해도, 그냥 모른 척 떠날 생각은 없어. 이렇게 적을 남겨두고 가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니까.”
그것도 당장 감당이 불가능 하다고 생각되는 적을.
키리코는 레오의 말에서 생략된 부분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차피 헤쳐 나가야 돼.”
“어쩌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지도 몰라. 그 여자가 현실을 깨닫게 해준 거니까.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괴물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걸으려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
키리코는 모두의 침묵이 동의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물론, 이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똑똑히 새겨야 하는 내용이었다.
이 세상엔 무수히 많은 괴물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만한 괴물이 되지 못한다면, 결국 잡아먹힐 뿐이라는 것.
“괴물이라······.”
그즈음 키리코는 주머니에 있던 ‘약병’을 가만 움켜쥐었다.
어쩌면 곧,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바로 그때였다.
“저기다!”
“저기 있습니다!”
“잡아!”
멀찍이서 웬 고함들이 들려온다 싶더니,
펑!
펑!
하늘 위로 불꽃들이 치솟았다.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이 재차 추격을 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더 늘었어.”
“새로운 얼굴들이 많네요.”
“정비를 위해 추격을 멈춘 게 아니었어. 그저 지원군을 기다렸던 것뿐이지.”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인원은 더욱 늘어나 있었다.
은연중 적진의 대장격인 인물이 나왔으니 그 이상의 충원이 있진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오산이었다.
심지어 그 중엔,
“오랜만이군, 더벅머리 애송이.”
지브란테에서 레오와 붙었던 녀석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녀석 또한 결코 만만찮은 무력을 지닌 녀석이었다.
“······지무스.”
아무렴 레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질 정도였으니.
“설욕의 시간이군. 분명히 후회할 거라고 말했을 텐데. 기회가 생겼을 때 나를 끝장내는 좋을 거라고.”
“······.”
헌데 그걸로 또 끝이 아니었다.
지무스의 곁엔 그와 비슷한 격의 인물로 보이는 이가 네 명이나 더 있었다.
다른 자잘한 조무래기들은 제외한다 치더라도, 다섯의 강자들이 추가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즈음,
“······도망쳐야겠죠?”
시아나가 속삭이듯 말했다.
“어, 어디로 가야?”
“내가 길을 볼 게!”
쯧.
키리코는 혀를 찼다.
“······다들 정신 차려. 물러날 곳은 없어.”
역시나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는 레오뿐인 듯했다.
키리코는 가만 레오의 옆모습을 돌아봤다.
녀석의 결의에 찬 두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매번 위기의 순간 때마다 강해지는 녀석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힘들 듯했다. 저기 앞에 나와 있는 다섯 강자들을 어찌어찌 처리한다하더라도, 결국엔 그 뒤의 ‘그 여자’에게 정리되고 말 테니까.
모험단을 결성한 직후, 맞게 된 최대의 위기였다.
‘······발악이든 뭐든 해보는 수밖에.’
키리코는 다시 한 번 주머니 속의 ‘약병’을 꽉 쥐었다.
이걸 가지게 된 건, 실로 우연이었다.
*
그 당시 ‘녀석’을 보며 든 생각은 그리 대수로운 게 아니었다.
끈질기다? 혹은······ 처절하다?
레오의 고유능력 앞에 본인의 공격들이 모조리 파훼되어가면서도, 그렇게나 처절하게 저항하던 그 모습에······ 그래, 일말의 동정심 정도는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추락한 녀석에게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다가가게 되었던 것이.
최후의 순간을 지켜보겠단 마음도 아니었다.
그저, 그저 그냥 한 번 다가갔던 것뿐이다.
자신이 다가갔을 때, 녀석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그만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거기······ 잠깐.”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우연찮게도.
“······살아있군. 아직.”
“빨강머리······ 아, 나를 이 꼴로 만든 모험단의 단원 중 하나군요. 크윽······.”
“······.”
어쩐지 보기가 힘들었다.
“가겠다. 운이 좋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를······ 쿨럭, 바보로 아는 겁니까?”
녀석은 이미 죽음을 직감한 듯 보였다.
“당신들······ 쿨럭, 강하더군요. 뭘 어떻게 하든······ 이길 수 없었겠죠.”
“상성이 좋지 않았어. 그리고 태생이 다른 건 어쩔 수 없으니. 저 녀석은 괴물로 태어났고, 너는······ 그러지 못했을 뿐이니까.”
“웃긴 일이네요. 어느 누가 보더라도······ 현재 괴물에 가까운 모습을 한 건 나인데. 쿨럭······.”
녀석의 몸은 거의 인간으로 돌아온 상태였지만, 군데군데 아직 ‘괴수였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
그 순간 어째서 그런 걸 물었던 걸까.
동정심 때문이었을까.
키리코는 그때의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남기고 싶은 말은?”
이에 녀석이 낄낄대며 웃었다.
“킥, 모든 모험가는······ 쿨럭, 내 적입니다. 적에게 유언을 부탁하는 인간도 있나요?”
“······괜한 물음이었나 보네.”
“하핫······ 큭······ 근데 또 죽을 때가 되니 달라지긴 하는군요.”
“······.”
“남길 말은 딱히 없고······ 쿨럭, 그냥 제가 만든 게 하나 있거든요. 결실이라 해야 할지. 쿨럭, 의미를 남기겠단 마음도······ 뭣도 아닙니다. 그냥······ 아까워서요. 이거 만드느라 고생을 얼마나 했는데, 킥킥······.”
“······.”
녀석은 그러고 힘겹게 품속에 있던 약병을 꺼내 내밀었다.
“운 좋네요······ 이거 상품화 했다면······ 쿨럭, 꽤나 비싸게 팔렸을 겁니다.”
“······얼마나?”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쿨럭······ 가치가 조금은 달라지겠죠? 하지만 적어도 대륙 하나의 값은 충분히 할 겁니다. 쿨럭, 저 같이······ 평범한 인간만 아니라면 말이죠.”
*
죽기 직전, 본래의 상태로 돌아온 녀석은 완전히 평범한 인간이었다. 오히려 그보다도 못한, 굉장히 노쇠한 인간.
그런 녀석이 이 약을 들이키곤, 무려 레오를 압박할 정도의 무력을 발휘했다. 심지어 극히 불리한 상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강자가 이걸 마셨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
키리코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얻게 될 능력도, 또한 부작용도.
다만, 이것 외엔 딱히 걸어볼 만한 게 없다는 것만은 명백했다.
“다들 물러 서 있어.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이어 의문에 찬 동료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꿀꺽-.
키리코가 약병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이윽고,
고오오오-.
노스랜드 위저드시티 한복판에, 거대한 적색의 괴수 한 마리가 출현했다.
*
왕의 공방.
[주먹이 운다]체이드혼 vs 코미어 편.
“이유? 물론, 다 네 녀석이 원인이지.”
체이드혼의 말에 코미어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나? 나 때문이라고?”
“몰라서 묻느냐. 네 놈은 내 지식을 너무 많이 빨아먹었다. 이 대왕모기 같은 녀석아. 그게 이유다.”
“허······.”
코미어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황당한 소리냐고.
“내가 무슨 노인네 지식을 빨아먹었다는······ 그리고 그건 스승과 제자 사이엔 당연한 거 아닌가?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사이인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 당신 말은 내가 당신 곁을 떠나게 만들기 위해서 본인의 죽음을 위장한 거다? 아니, 그게 지금 말이나 되는 소리야? 드디어 완전히 노망이 난 거야?”
“왜 말이 안 돼! 내가 그렇게라도 안 하면, 네가 내 곁을 떠났을 것 같으냐? 호시탐탐 내 연구 자료를 빼먹으려 내 주위를 맴돌던 녀석이.”
“허, 그게 무슨······ 왜 갑자기 그런······.”
코미어로선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이유로 느껴졌을 테니.
“게다가 내가 마도공학으로 눈을 돌렸다는 게 밝혀지면, 네 놈 또한 따라왔을 게 뻔한 거 아니더냐! 그 꼴은 볼 수가 없지. 또 잘난 척 하며 내게 이래라 저래 할 게 뻔하고!”
“허······.”
체이드혼은 다소 유아적인 사고 경향이 존재하는 아주아주 특이한 성격의 캐릭터로, 제자인 코미어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동시에, 무척이나 그를 시기 질투하는······ 하여간에 괴팍한 녀석이었다.
체이드혼의 말마따나, 그가 본인의 죽음을 위장했던 것엔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꼴도 보기 싫어진 이 천재 제자를 자신의 곁에서, 또 이 노스랜드 바닥에서 완전히 쫓아버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에서부터, 굳이 그와 같은 방법을 택한 이유, 그렇게까지 하게 된 과정 등등······ 그 중 어느 것 하나도 이치에 닿는 게 없다. 과대망상과 자기혐오, 제자를 향한 동경과 결코 극복할 수 없던 질투심이 바탕이 되어 나타난 결과였으니.
고로 현 시점에서 코미어가 그나마 납득할 수 있을만한 사실은, 체이드혼 쪽보다는 기계의 왕의 동기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그는 체이드혼과는 달리, 아주 심플한 이유에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장차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수도 있는 코미어에 대한 위기의식과, 본인을 도와주면 뭐든 하겠다는 체이드혼의 약속이 바로 그가 움직인 이유였다.
실제로 그 결과, 그는 체이드혼을 무상으로 부려먹음으로써 기계공학을 넘어 마도공학에까지 그 영향력을 뻗치게 될 정도였으니.
뭐 어쨌거나,
‘슬슬 움직여볼까.’
이만하면 될 듯싶었다. 물론 저들 사이엔 나눠야 할 대화가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지만, 그걸 다 듣고 있을 시간은 없었으니.
대충 구색은 맞췄다. 이 이상 함께 있는 건 시간낭비였다.
게다가 그로니얀과의 대면은 독자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했으니.
고로, 지금 체이드혼과 코미어의 대화가 한창일 때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
그즈음,
‘녀석은 어떠려나?’
나는 그로니얀 쪽을 슬쩍 돌아봤다.
녀석은 나를 노려보며 계속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는데, 마치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을 보는 것만 같았다.
기계의 왕에 의해 통제되고는 있었지만, 슬슬 그것도 한계가 온 모양이었다.
얼른 데리고 나가야할 듯했다.
나는 코코아에게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당부한 뒤,
“코미어를 지켜. 이곳에서의 최종 결전은 너와 저 기계의 왕이라는 녀석이 내게 될 거야. 별 거 아닌 녀석이지만, 한 수는 있어. 조심하고.”
“응.”
이어 그로니얀에게 은밀히 시선을 보냈다.
따라 나와.
*
“건방진······.”
그로니얀은 왕의 공방에서 벗어나자마자,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곱씹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대상은 내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네 녀석 때문에 쓸어버려야 할 놈들이 늘었구나.”
본인의 몸이 뜻대로 제어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굉장한 불쾌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들이 몸에 한 가득 고철을 박아준 덕에 본인이 살아났다는 건 생각지도 못하고.
나는 다만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다.
“미안한데, 아마 그럴 기회는 없을 거야. 저 녀석들······ 오늘 우리에게 정리 당할 거거든.”
“호오······ 네게 그럴 기회가 있다고 보느냐.”
그러곤 그로니얀이 나를 보며 흉악하게 웃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홀로그램 창을 확인했다.
-현재 등급 : 주조연
-현재 수치 : 1298
-경험치 : 82%
-다음 등급까지 남은 수치 : ?
-선행 플롯 무시 가능 횟수 : 4회
격의 수치가 껑충 뛰어올라 있었고, 특이사항 또한 사라져 있었다. 또한 온몸엔 힘이 넘실거렸다.
마침내 ‘부하’가 풀렸다.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일단 확인을 좀 해볼까?’
과연 내가 이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었다.
나는 먼저 자세부터 잡았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았으니.
이에 그로니얀 또한 기다렸다는 듯,
“크크, 좋구나!”
곧바로 공격 자세를 취했다.
이어,
쾅-!
전투가 시작되었다.
나는 온힘을 다해 주먹과 발을 휘둘렀고, 녀석은 딱히 이를 막으려 들지도 않았다.
깡!
캉!
“······아오.”
처음에 나는 딱히 고유능력을 활용하지 않은 채, 순수 육체의 힘만으로 녀석과 대적해볼 생각이었다. 여러모로 확인이 필요하다 생각했으니.
그러나,
부웅-!
“이크!”
“허허, 어딜 가느냐! 이 쥐새끼 같은!”
그 생각은 얼마가지 못했다.
실제로는 10초 만에 바뀌었다. 도저히 뭘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후······ 역시.”
녀석은 괴물이었다. 심지어 지브란테에 있을 때보다도 훨씬 더 강력해진 듯했다.
몸에 달린 기계장비를 활용한 게 아니었음에도, 단순 몸놀림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나 또한 그때에 비해 강해진 상태이긴 했으나, 녀석에겐 전혀 비할 바가 못 됐다.
하여,
파지직-.
나는 곧바로 레오의 [재앙을 멸하는 번개]를 일으켰다.
몸을 지키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그나마 기계류의 오작동을 유발할 수 있는 게 이와 같은 전기류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레오의 능력을 적을 섬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용으로 쓴다는 것부터가 조금 걸리긴 했지만······ 뭐 별 수 없었으니.
그로부터 일진일퇴의 공방은 5분가량 계속되었다.
공방이라곤 하나, 주고받는 식은 아니었다.
나는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결국,
퍼-엉!
“크으······.”
녀석이 가볍게 날린 발차기에 가슴팍을 맞고 날아가고 말았다.
울컥-.
입에선 피가 토해졌고, 마치 가슴뼈가 함몰이라도 된 듯 욱신거렸다.
“크으······.”
그때였다.
내게 다가오던 그로니얀이 뚱한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네 놈, 이제 그만하거라.”
뜬금없는 소릴 내뱉었다.
“뭐?”
“그만하라고. 재미없으니.”
“뭔 소리야.”
“꺼내란 말이다. 아까 그 녀석. 그······ 나를 한 번 끝장냈었던 그 로봇.”
“······아하.”
코코아톰을 말하는 듯했다.
하긴, 이 녀석은 그게 진짜 내 힘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흠······ 근데 그러면 너무 시시할 것 같아서.”
“훗, 걱정할 거 없다. 이 녀석들이 내게도 뭔가를 달아뒀거든. 재밌는 승부가 될 수 있을 거다. 물론 승자는 내가 되겠지만.”
“이야, 뭔가 숨겨진 게 더 있다고?”
물론, 이는 예상한 바였다. 녀석의 범상치 않은 힘에서도 느꼈지만, 뭔가 조작이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게다가 일단 몸의 반이 철로 되어 있는데 기계류 무기 하나 없을까 싶기도 했고.
어째 ‘주걱턱을 없앤다’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작가가 확실히 서포트한 느낌이랄까.
“후······.”
이제 인정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현재 이 녀석을 이길 수 없다. 심지어 녀석은 아직 전력의 반도 쓰지 않은 듯 보였으니.
녀석의 요구처럼 코코아톰에 탑승하지 않는 한 방법이 없었다.
헌데 지금 그건 나한테 없지 않나. 심지어 내 것도 아니고.
하여,
“오케이, 안 되겠다. 포기.”
“뭐?”
“포기라고, 포기. 강하네. 못 이기겠다.”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순간, 그로니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내 꿍꿍이를 파악하겠단 심산인 듯했다.
“무슨 뜻이지?”
“별 거 아냐.”
그러곤 나는 슬쩍 위를 올려다봤다.
녀석과 힘겨운 공방전을 벌이면서도 굳이 이 자리까지 유인해온 이유가 바로 저것이었다.
구멍.
코코아톰을 타고 이곳 하수도를 뚫고 들어올 당시 생겼던 구멍이었다.
달리 말해, 지상으로 이어진 통로.
이어, 나는 곧바로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현재 메인 캐릭터는 ‘코미어’입니다.
오케이. 보는 독자들은 없었다.
그 순간,
“도망치겠다는 거지.”
“······뭐?”
나는 전력을 다해 지상으로 솟구쳤다.
파지직!
팟!
물론 거꾸러뜨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순 있었을 것이다.
말마따나 이 녀석을 쓰러뜨린 후, 코코아에게 코코아톰을 넘겨주는 방법도 있었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가 구상한 이 노스랜드 에피소드의 진짜 결말을 위해선, 이 녀석의 존재가 필수불가결 했으니.
“다음은······.”
지상으로 나온 나는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부터는 시간싸움이었다. 얼마나 빨리 녀석들을 찾을 수 있느냐는 것.
그로니얀이 정신을 차리고 쫓아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방향을 잡고 달려야 했다.
그때였다.
“어헙······! 저, 저건 대체······.”
나는 나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킨 채, 우뚝 서고야 말았다.
급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두 눈에 도저히 ‘존재를 믿을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거대한 적색의 괴수.
익숙한 외형의 괴수였다. 모를 리가 있는가.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녀석인데.
괴수 키리코.
무려, ‘거인’을 씹어 삼킨 절대의 괴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저 녀석은 미들랜드로 건너간 다음에야 등장하는 녀석이었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나마 떠오르는 이유라면······ 도로시.
도로시가 원인이 되었다는 것 정도밖에 없었다.
그즈음,
“이 녀석이 또 도망을! 가만두지 않겠다!”
대노한 그로니얀이 구멍에서 튀어나왔다.
“칫!”
그와 동시에, 나 또한 급히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지.
차라리 잘됐다. 굳이 눈을 부릅뜨고 길을 찾을 필요도 없었으니.
‘뭐가 됐든, 가서 생각하는 걸로.’
나는 온힘을 다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저 도시 한복판을 점거하고 있는 거대한 적색의 괴수를 향하여.
이 노스랜드 에피소드의 종착역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