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혼돈의 끝
***
고오오오-.
어디선가 난데없이 나타난 그것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그것이 한 차례 내뱉은 숨결에 온 초목이 증발해버렸다.
단 한 걸음 내딛은 발에 수십 개의 탑과 건물이 무너졌다.
며칠 전 도시 상공에 나타났던 괴수와 엇비슷한 생김새였으나, 그 크기와 존재감이 완전히 달랐다.
그것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숨을 죽였을 정도이니.
그리고 이는 도로시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미들랜드에 존재한다는 ‘검은 용’이 과연 저러할까.
데모라에 있는 거인과 용이 합쳐진다 한들, 저만한 존재감을 뿜어내진 못할 듯했다.
“크, 크아악!”
“도, 도망쳐!”
“괴물이다!”
혹, 저 녀석 때문에 한 말이었을까.
도로시는 눈앞의 거대한 적색 괴수를 보며 지난 날, 주걱턱이 자신을 보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절대 함부로 나서지 마. 마도공학 간부들이 힘도 못 쓰고 쓰러진다 싶을 때가 아니면, 그냥 지켜만 봐. 네 힘은 아직 세상에 드러나선 안 돼. 자칫, 쓸데없이 위험한 걸 불러올 수도 있으니까.
쓸데없이 위험한 것.
딱 정확한 지칭이었다.
저렇게까지 위험한 존재는 이 세계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책임져야 돼.’
물론 저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도로시는 저 녀석을 이곳으로 부른 이가 바로 자신이라는 걸 확신했다.
단순히 주걱턱의 말 때문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저걸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오직 자신뿐이라는 게 그 증거였다.
솔직히······ 제압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오오오-.
녀석은 아직 뚜렷이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지를 잃은 듯한 눈과, 의미를 알 수 없는 포효.
틀림없었다. 녀석이 혼란을 겪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도로시는 즉시, 심장 옆에 있는 ‘또 다른 심장’을 일깨웠다.
두근-.
어느새 호두만한 크기로 자란 그것이 고요히, 그러나 분명한 기세로 주위의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일단은 최대한 모아서 큰 걸로 한 방······ 에이씨!’
하필 그즈음, 마도공학자들 한 무리가 괴수의 발치 앞에서 얼어붙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위급상황이었다. 저대로 가만 놔두면 밟혀 죽든, 숨결에 타 죽든, 하여간에 금방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것이다.
도로시는 마나 모으기를 중단하곤, 대뜸 생각나는 마법부터 갈겼다.
“여기다!”
라이트닝 애로우!
아이스 스톰!
파이어 블래스트!
물론 대단한 위력이 실린 건 아니었다.
마나를 얼마 모으지 않은 상태에서, 이펙트만 화려한 것 위주로 날렸으니.
헌데,
“어······?”
푸스스-.
그렇다한들, 저렇게 피부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소멸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 마법저항?”
사실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마법저항력이 높은 것인지, 아니면 해제마법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피부가 말도 안 되게 질긴 건지.
쏘아 보낸 마법들은 녀석에게 아무런 대미지도 입히지 못한 듯 보였으나, 적어도 한 가지 목적만은 달성해냈다.
고어어어-.
괴수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던 것이다.
다행히 괴수의 발치에 있던 무리는 구해냈으나, 썩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빨리 녀석에게 적으로 규정당한 듯했기 때문이다.
녀석이 샛노란 눈이 자신의 전신을 훑기 시작했다.
“후······.”
물론 피할 생각은 없었다.
도로시는 다시금 서둘러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녀석의 공격을 막아내려면 웬만한 마법으로는 불가능했다. 마법저항이 높은 듯했으니, 곧장 마법으로 타격하는 것보다는 자연물을 활용해 물리적 타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그때였다.
“응?”
괴수의 정면에 웬 빛으로 된 원형의 고리가 생겨났다.
지름이 사람만한 그 원형 고리는 하나, 둘 수가 늘어나더니, 이내 여섯 개가 되어 하나의 커다란 원을 형성했다.
이어,
팟-.
팟-.
팟-.
⁝
여섯 개의 고리가 동시에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웁!”
여섯 고리에서 뿜어져 나온 ‘서로 다른 유형의 에너지’들이 마치 ‘탄환’처럼 퍼부어졌다.
마나, 독, 화염······.
에너지의 유형을 미처 다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도로시는 심장을 쥐어짜 황급히 마나를 뿜어냈다.
펑펑펑-!
펑!
펑!
괴수가 쏘아낸 여섯 종류의 무더기 탄환들이 도로시의 마나실드에 막히면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크으.”
초급마법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가장 기초마법 중 하나인 실드.
별 것 아닌 단순한 마법이긴 하나, 도로시는 자신의 실드가 ‘깨질 수도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실드라는 것 자체가 기초마법이다 보니, 마나만 있으면 형성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었고, 또한 두께를 늘린다거나 여러 개로 겹칠 수도 있었기에, 이론상 ‘마나만 충분하다면 결코 깨지지 않는 벽’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크, 크윽······ 깨, 깨지겠어.’
그것이 지금 단 한 차례의 공격에 부서지려 하고 있었다.
괴수가 쏘아낸 여섯 개의 공격 중 하나가 유달리 ‘관통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 곳이 뚫리니, 전체 실드의 방어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야 하나?’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자신의 뒤에 있는 것이었다.
위저드 시티.
노스랜드의 찬란한 두 축 중 하나인 마도공학의 대표도시가 바로 등 뒤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막지 않는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도시로 향하게 된다.
때마침,
고오오오-.
괴수가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려는 듯, 숨을 들이마셨다.
‘치잇······.’
이젠 방법이 없었다.
도로시는 얼른 마나실드를 치워버린 뒤, 급히 마나를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이대로 막기만 하는 건 미래가 없다. 차라리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으로 녀석의 공격을 모조리 덮어야 했다.
곧이어,
우우웅-.
도로시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산발하듯 공중으로 흩뿌려졌다.
마나를 모으는 와중에도 도로시는 끊임없이 공격마법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당장 커다란 힘을 낼 수 있는 게 뭘까.
뭘 써야 녀석을 덮어버릴 수 있을까.
‘마나 드레인? 메테오 쇼크?’
다만 딱 떠오르는 게 없었다.
게다가 아직은 고위급 마법을 활용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 제대로 구사할 수 있을지도 솔직히 의문이었다.
‘몰라, 일단은 최대한 끌어 모은 다음에······.’
바로 그때였다.
“아서라······.”
“응?”
갑작스레 귓가에서 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것과 힘 대 힘으로 붙으려 하면 어떡해? 여기 완전히 끝장낼 일 있어? 그리고, 내가 너 함부로 드러나면 안 된다고 했지.”
도로시는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마나의 운용을 멈췄다.
그러곤,
“주, 주걱턱!!”
자신도 외치고도 놀랐을 만큼, 큰 소리로 눈앞의 남자를 불렀다.
도로시는 이어 마음 속 깊이 차오른 감정에, 스스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왜······ 이렇게 안심이 되는 걸까.
‘바, 바보 같이!’
아주 약간이지만, 자신이 겁에 질려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이 덩치만 큰 주걱턱이 얼마나 의지가 되는 이였는지를 알게 된 순간이었고.
“저건 미들랜드의 거인들도 씹어 먹는 녀석이야. 암만 너라도 쉽지 않은 상대지.”
“미, 미들랜드······?”
이어,
“어쨌거나 수고했다. 물러나 있어.”
주걱턱이 앞으로 나섰다.
이때 또 한 번 도로시는 스스로에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의 발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뒤로 물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냥 그래도 되는 느낌이었다.
“조, 조심해 주걱턱······.”
“아, 그보다 뒤에서 나 쫓아오는 녀석이나 좀 막아줘.”
“뒤?”
“험악하게 생긴 덩치 하나 있어. 몸의 반이 로봇인 녀석. 사이보그. 좀 세니까 조심하고.”
“아······ 응!”
“그럼, 간다.”
이어, 주걱턱이 괴수를 향해 솟구쳤다.
*
이와 같은 구상을 떠올렸던 건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다.
아직 노스랜드로 출발하기도 전, 사우스랜드 내 숙소에서 ‘다음 챕터에 관한 정보’를 훑으며 생각했던 것이니.
-작가가 코미어를 레오 일행에게 붙이려 한다.
-이를 순순히 뺏길 순 없다.
-어떻게든 코미어의 서사를 독점해 내 동료로 끌어들여 봐야겠다.
-그런데 만약 그게 정말 성공한다면?
-그럼 그 다음은?
이때부터 나는 이 마지막 물음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즉, 레오 일행이 코미어를 동료로 들이지 못했을 때 과연 어떠한 일이 발생할까.
사실 답 자체는 아주 간단했다.
작가가 코미어를 대신할 새로운 동료를 만들어낼 거라는 것.
뭐, 당연한 일이었다. 앞으로의 내용 전개를 위해서도 새로운 동료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으니.
문제는, 어떠한 캐릭터가 새로 만들어질 거냐는 것이었다.
대충 짐작은 가능했다.
실제로 예시가 있지 않은가. 작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원작엔 없던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켰던 경우가.
바로 그로니얀.
그즈음 캐릭터들의 파워밸런스도 무시해, 캐릭터의 목적성도 마음대로야, 딱히 기존 서사에 구애받지도 않아······ 말 그대로 개연성 제로의 ‘먼치킨 캐릭터’를 제멋대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내게 있어 그다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그 존재 자체가 내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보가 전혀 없는 캐릭터이니.
또한 그 캐릭터로 인해 라이벌인 레오 모험단의 무력이 말도 안 되게 급증할 게 뻔했다. 나의 동료로 도로시가 들어간 다음이지 않는가. 작가로선 거칠 게 없을 것이다. 이 또한 부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새로운 먼치킨이 내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다.
이는 아주 간단한 이치였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건 작가에게도 굉장한 부담이 되는 일이다.
더군다나 주인공의 동료가 될 캐릭터가 아닌가. 등장 에피소드도 새로 짜야 되고, 떡밥도 미리 뿌려둬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작가의 분노가 유발되지 않을 걸 바라는 것은······ 무척 기대하기 힘든 희망이리라.
고로, 녀석이 나에 대한 증오를 품고 태어난다는 건 거의 필연에 가깝다는 애기였다.
하여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가 내놓은 답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럴 거면 그냥, 레오 일행에게 그로니얀을 던져주자.
괜히 내게 위협이 되는 캐릭터를 둘로 늘리기보다는, 차라리 그로니얀을 저쪽에 합류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를 이끌어보자고.
이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실제로 녀석이 레오의 동료가 되기에 퍽 이상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스랜드 이후의 서사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은 캐릭터.
-현재 이 세계 내에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무력.
-얀이라는 기존 동료와의 관계성까지 보유.
그리고 또 하나.
작가가 적극적으로 코미어를 레오의 동료로 넣으려고 한 것은, 물론 녀석의 비범한 설계능력이 주된 이유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기계 및 로봇’과 관련된 캐릭터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혔던 내용으로, 어렸을 때부터 로봇과 관련한 캐릭터를 좋아해 꼭 그와 관련한 캐릭터를 동료로 집어넣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노스랜드 편을 연재할 땐 특히 더 배경에 힘쓰며 작업을 했었다고.
어쨌거나 그로니얀은 이 점에 있어서도 안성맞춤인 캐릭터였다. 물론 본인이 뭔가를 만들거나 하지는 못하지만, 일단 사이보그긴 하니까.
즉, 종합적으로 판단컨대 현존하는 모든 캐릭터 중에서, 그로니얀이야말로 그나마 코미어를 대체하기에 가장 적합한 녀석이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이는 작가에게도 그리 나쁜 안이 아니었다. 새로운 캐릭터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그로니얀 자체에 대한 처사에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 아니던가.
그로니얀은 애당초 ‘미래’가 없는 캐릭터다. 나를 확실히 제거하거나, 혹은 내게 확실히 제거되지 않는 이상엔, 결국 ‘회수되지 못한 떡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로, 윈-윈이라는 것.
나는 내 나름대로 이것이 괜찮은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 또한 내 의도를 깨닫게 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받아들이게 될 거라고.
하여, 일단 모두가 모여 있는 곳까지만 오면 대충 길이 생길 줄 알았던 것이다.
당장은 그로니얀이 나를 죽이겠답시고 날뛰고 있지만, 녀석을 자제시키는 거야 따로 생각해둔 방도가 있었으니.
헌데,
“암만 봐도······ 황당하네.”
현장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변수가 하나 생겨나 있었다.
나는 눈앞의 괴수를 똑바로 응시했다.
괴수 키리코.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미들랜드로 넘어간 뒤에야 등장할 녀석이 대뜸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보아하니 도로시에게 대항하기 위해 변신한 듯 보였는데, 참 그냥······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생각 없이 도로시를 붙여놓은 업보려니 할 수밖에.
일단은 그로니얀이고 뭐고, 이 녀석부터 어떻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최소한 정신은 차리도록 만들어야 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주인공 격 인물들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연재가 조기 종료될 판이었으니.
“후······.”
도로시에게 잘난 척하며 물러나 있으라곤 했지만, 내게 이 괴수를 막을만한 완벽한 방법 따위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애당초 그로니얀에게 쫓겨 오지도 않았겠지.
다만, 그래도 비벼볼 건덕지는 있었다.
내가 믿고 있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 품 속에 들어 있는 ‘리무브’ 세 통과 조금 남은 데모라 산 약초들.
물론 이걸로 키리코의 변신을 풀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저 덩치로 봤을 때, 간에 기별이나 갈까.
하지만 분명, 정신이 돌아오게 하는데 효과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인지능력만 돌아오면 된다. 정신만 차리면, 그때부터는 어렵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어떻게 녀석에게 접근해 이것을 먹이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냥 접근하는 건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하품처럼 내뱉은 숨결에 단번에 녹아내릴지도.
즉, 내가 접근할 때까지 녀석의 주의를 끌어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내가 믿고 있던 나머지 하나였다.
가히 ‘절대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소년만화의 근원과도 같은 힘.
바로 동료애.
때마침,
고오오오-
키리코가 포효했다.
이어 허공에 뜬 여섯 개의 고리에 빛이 맺혔다.
탄환이 준비되었다는 뜻이다.
그 순간, 나는 소리쳤다.
“레오! 지금! 뛰어들어!”
그리고 그와 동시에,
파지직-.
내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레오가 키리코 앞으로 뛰어들었다.
“멈춰! 키리코!!”
조금 전, 나는 도로시보다도 먼저 레오에게 들렸었다.
키리코를 막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도 이 녀석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급하니 잘 들어.”
“주, 주걱턱?”
“지금 키리코의 정신을 되돌릴 수 있는 건 너뿐이야. 알지? 진짜 동료라면 물러서지 말고, 녀석을 되돌려. 물론 나도 돕는다. 녀석에게 중화제를 투입해 정신을 차리게 할 거야. 그때 주의를 끌어줄 이가 필요해.”
“진짜 동료······.”
“내가 신호를 보내면 그때 뛰어 들어가서 녀석의 공격을 막아. 머뭇거리지 마. 기회는 한 번뿐이니까.”
물론, 제대로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소년만화의 공식을 믿고 있었다.
주인공이 동료를 위해 목숨을 걸고 막아섰는데, 이때 문제가 생긴다?
이건 만화 접어야지.
레오는 망설이지 않았고, 본인의 용기와 동료애를 증명했다.
그럼 된 것이다. 분명 키리코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주춤할 것이다. 이건 그렇게 짜인 세계관이니.
곧이어, 키리코가 레오를 앞에 두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혼란이 온 것이다.
고오오오-!
바로 그때, 나는 주의력을 잃은 키리코의 머리 가까이로 빠르게 접근했다.
이어,
“이거나 먹어라!”
리무브와 데모라에서 가져온 약초 한 뭉텅이를 키리코의 입 속에다 냅다 집어던졌다.
톡 쏘는 맛에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번개도 한 움큼 동봉한 채였다.
이게 효과가 있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레오와 다른 동료들의 목소리가 키리코의 흐릿한 정신에 선명히 닿을 수 있도록, 약간의 확성기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 차려, 키리코!”
“멍텅구리 키리코 씨! 정신 차려요! 그딴 모습 하나도 안 멋있다고!”
“키, 키리코 씨 제발 돌아와요!”
“이, 이 멍청한 빨강머리 녀석아! 그런다고 누가 알아나 준대!? 정신 차려!”
고오오오-!!
······.
잠시 후,
-레오?
마침내 녀석이 정신을 차렸다.
적색 괴수의 두 눈동자가 끔벅 끔벅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인간의 형태로 돌아오진 않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후······.”
나는 그즈음 혼돈에 휩싸인 장내를 잠시간 둘러봤다.
울부짖으며 도망치는 마도공학자 무리들, 그 와중에도 레오 일행을 호시탐탐 노리려 하는 간부들, 어떻게든 내게 덤벼들려 하는 그로니얀과 그를 죽어라 막고 있는 도로시, 그리고 키리코와 레오 일행들······.
어찌어찌 과정이 복잡해지긴 했지만, 그것도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었다.
나는 품속에서 알록달록한 끈 하나를 꺼냈다.
코코아에게 부탁해 요정의 소원함에서 꺼낸 것이었다.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저 허구한 날 싸우는 자식들이 걱정 된, 죽음을 앞둔 어느 늙은 어머니가 요정에게 빈 별 것 아닌 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이게 당장의 혼란을 잠재우고, 내가 생각한 이 에피소드의 결말을 이끌어 내는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잠깐이면 된다, 잠깐이면.
“다들······ 진정하고 우리 얘기 좀 나눠보자고.”
그러곤 나는 곧장 소원을 발동시켰다.
[이 녀석들아, 제발 싸우지 말고 서로서로 사이좋게들 지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