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시간이 없다
***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고 있던 마도공학 간부들을 호출하는 것이었다.
멋쩍은 듯 뒤통수만 긁적거리고 있던 녀석들은 나의 부름에,
“응?”
“우리?”
별 생각 없이 어기적어기적 내게 걸어왔다.
나는 다짜고짜 물었다.
“더 할 거야?”
“뭐?”
“어떤······?”
녀석들은 별 생각이 없다는 듯, 멍하니 되물었다.
“하······.”
나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들이랑 계속 해볼 생각이냐고. 그러니까 저 괴물이랑.”
“그건······.”
“그런 건 아니지만······.”
녀석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우물쭈물 거렸다.
물론 나는 이 녀석들이 정말로 더 습격을 이어갈 생각이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선뜻 후퇴를 결정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다만, 그것도 상황을 보고 재야지.
“미안한데, 더는 도로시의 지원 따윈 기대하지 말라고. 니들 보호하겠답시고 저 녀석이 얼마나 힘을 쓴 지 알아?”
이 말은 확실히 피부에 와 닿았던 모양이다.
순식간에 안색이 창백해진 녀석들이,
······.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곧바로 지무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지무스.”
“으, 응?”
“네가 원인이잖아. 그렇지?”
“그, 그건······.”
“지금 죽다 살아난 거라고. 알지?”
지무스는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계속 할 거냐고.”
“하, 하지만 저 더벅머리 꼬맹이가 우리를 모욕······.”
“황당하네. 마도공학 전체가 아니라, 네가 당한 것뿐이지. 그리고······.”
나는 잠시간 뜸을 들인 뒤,
“지금 저 빨강 괴수가 행동을 멈췄어.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조용히 목소리를 깔았다.
“그, 글쎄······?”
“이제 니들은 완전히 죽었다는 거지. 저 괴물이 정신을 차리고, 이제야 정확히 피아를 식별하게 됐으니까.”
“······.”
“모르겠어? 어떤 놈부터 짓밟고, 뭉개고, 불태워버려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거야. 기존엔 본인의 동료까지 공격하려 했던 녀석이.”
곧이어,
“······사, 살려줘.”
녀석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드디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한테 말할 건 아니지. 그나마 지금이 기회야. 아직은 그래도 혼미함이 남은 듯 보이니까. 당장 여기서 사라지라고. 뒤처리는 어떻게든 해볼 테니.”
나는 그러곤 내 뒤에서 그로니얀과 대치중인 도로시를 가리켰다.
“나와 도로시가.”
“고, 고마워.”
“아, 그리고······.”
나는 이어 황급히 뒤돌아 가려던 녀석에게 마지막 말을 덧붙여줬다.
“건드려선 안 되는 대상을 건드리지 마. 여기 있는 모험단 중 감히 네 녀석들이 싸움을 걸만한 이들은 없으니까.”
“······.”
이윽고, 마도공학자 녀석들이 쏜살 같이 현장을 빠져나갔다.
‘오케이, 일단 하나.’
역시나 어렵지 않았다.
녀석들을 빼게 만드는 데엔 오히려 키리코의 괴수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외려 녀석이 없었다면, 도로시만 믿고 생떼를 부리려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음으로 곧장 레오 일행에게 다가갔다.
원인이 된 녀석들을 치우면 이후는 보다 수월해지는 법.
나는 먼저 레오에게 가서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괜찮았다. 나쁘지 않던데?”
레오는 다소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당연한 걸.”
“아, 그리고 너희들도.”
······.
레오의 나머지 동료들은 내가 이렇게 말한 게 의외였던 모양이다.
다들 어색하다는 듯, 뒤통수만 긁적거렸다.
인정과 칭찬.
이것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관계를 확장시킴과 동시에,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라이벌만큼 유연함이 필요한 관계가 또 없다. 기묘한 끈끈함을 바탕으로 언제든 적으로도, 또 동료로도 전환될 수 있는 유동적인 관계랄까.
특히나 이를 의도적으로 유지하려는 내 입장에선, 이렇게 세심하게 관리를 해줄 필요가 있었다.
이어, 나는 살짝 긴장한 채 바로 옆에 있던 ‘녀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살벌하네.’
짐작하건대, 현재 생성되어 있는 녀석들 중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닌 캐릭터.
괴수 키리코.
녀석의 코끼리만한 크기의 샛노란 두 눈동자 또한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두어 차례 헛기침을 한 후,
“흠흠, 이쯤 했으면 하는데······ 어때, 키리코?”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러자,
-방금 네가 쓴 게······ 다른 이들의 공격성을 일순간 낮춘 건가?
녀석은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다른 걸 물었다.
호오.
“······맞아.”
녀석은 정확히는 몰라도, ‘소원’의 작용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던 모양이다.
확실히 이 세계에선 강하면 강할수록, 알고 느끼는 ‘힘’의 종류가 늘어나는 경향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때, 키리코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당장 싸울 생각이 사라진 건 사실이야. 다만 내가 이렇게 변한 김에, 미래의 위협을 제거하겠다고 한다면 어떡할 거지? 물론 우리를 먼저 공격하고 지금 헐레벌떡 도망치는 저 지팡이 든 녀석들을 말하는 건 아냐. 바로······ 네 동료처럼 보이는 저 여자를 말하는 거지.
그러곤 슬쩍 옆으로 고개를 트는 것이었다.
녀석의 시선이 머문 곳에 있는 건, 다름 아닌 도로시였다.
“허······.”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키리코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위협이 될 만한 적을 제거하려고 한다고?
저 오늘만 사는 키리코가?
그 순간엔 녀석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기보다는, 정말로 순수하게 궁금증이 들었다.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든 걸까 하고.
바로 그때였다.
“키리코!”
바로 옆에서 노기 어린 고함소리가 들렸다.
레오였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레오는 진심으로 화가 난 듯 보였다.
“주걱턱은, 주걱턱은 너를 되돌려 놓은······!”
이에,
-아, 아니······ 그냥 한 번 해본 말이었어.
키리코 또한 꽤나 당황한 듯, 황급히 좀 전의 말을 부인했다.
-참나, 무슨 말을 못하겠네. 진짜 장난이었다고.
그러곤 나를 보며 변명하듯, 이유를 덧붙였다.
-네 녀석만 뭐랄까······ 반응이 다르니까. 표정이 바뀌는 걸 한 번 보고 싶었거든.
“내가 반응이 다르다고?”
-글쎄, 딱히 놀란 것 같지도 않고······ 뭣보다 겁먹은 기색이 없다고 해야 하나?
놀라긴 놀랐다. 뭐, 그리 겁을 먹진 않았지만.
-그래서 그냥 한 번 골려줘 볼까 했던 것뿐이라고. 진짜 별 뜻 없었어. 저 여자에게도 뭐······ 원한 따윈 없으니까.
그러곤 녀석은 그제까지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레오의 두 눈에 찔끔했던지, 억지로나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 그리고 음······ 고맙다. 나를 멈춰줘서.
“킥······.”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질 뻔했으나, 나는 꾹 참곤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어차피 넌 멈췄을 거야. 그리고 광분한 너를 막아선 건 내가 아냐. 너네 모험단 단장이지. 내게 딱히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뭐, 여하튼······.
그즈음 키리코의 색이 슬슬 옅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는 중화제가 효력이 강했는지, 원작에 비해 굉장히 빨리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를 보니, 희한하게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리코가 괴수로 변하는 건 단 한 번 뿐이다. 딱히 물약을 복제해놓은 게 아니라면, 이제 저 모습이 되는 건 이번으로 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다 아쉬웠다.
무려 저만한 외형을 갖춘 괴수가 출현했는데······ 딱히 별 것 안하고 그냥 조금은 밋밋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원작에서는 거인도 씹었는데.
물론, 키리코 개인으로선 지금의 변신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게 아니다. ‘괴수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테니.
정확히는, 단 한 번이라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힘’을 느껴 봤다는 것.
이 같은 경험을 지닌 녀석들의 성장은 정말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니까.
어쨌거나,
“그래, 그럼. 우리의 충돌은······ 일단 여기서 끝내는 걸로.”
이만하면 됐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문제가 될 녀석의 차례였다.
나는 슬쩍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그로니얀.
“도로시, 일로와.”
나는 우선 대치중인 도로시부터 물렸다.
녀석의 반응은 일견 잠잠해 보였지만, 내심 무척이나 혼란을 겪고 있을 게 분명했다.
눈앞에 있는,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무력의 괴물의 존재도 그렇고, 또 본인의 이유 없이 가라앉은 흥분 역시도 해석할 방법이 없을 테니.
그리고 하나 더.
“아, 아버지?”
“······.”
“아, 아버지 몸이······.”
나는 아주 적절히 튀어나온 얀의 음성에 씩 미소 지었다.
실은 저게 꼭 필요했던 것이다.
얀이 본인의 존재를 인지시키는 한 마디 말이.
됐다. 지금이 적기였다.
나는 그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로니얀에게 단 한 마디만을 던졌다.
“아직도 나랑 싸우고 싶냐?”
“······.”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애매하기도 하고, 솔직히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나를 없애버리겠다고 나서는 게, 과연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일단 아무래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괴물 한 마리가 바로 옆에 떡 버티고 있지 않는가.
감히 설치기 힘든, 분노가 자연히 조절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오케이, 여기까지.’
그즈음 나는 녀석에게 당장 대답을 강요하는 대신, 훗날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뭐, 원한다면 나중에 제대로 붙어주지. 네가 나를 쫓아올 용기가 있다면 말이야.”
“······.”
“그리고 다음엔 친구들을 좀 만들어 데려오라고. 딱 보면 느껴지지 않아? 이 세상엔 네 녀석 혼자선 감히 어찌할 수 없는, 그런 괴물들이 존재한다고.”
이엔,
“······건방진 녀석이.”
녀석 또한 참을 수 없었는지, 나직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침묵.
아마 이것이 녀석의 답일 것이다. 일단은 지켜보겠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딱 내가 바라던 결과였다.
감정과 여운은 남겨둔 채, 상황을 마무리하는 것.
“어쨌거나······ 일단은 안 덤빈다는 거지?”
나는 그러곤 곧장 돌아섰다.
여기서 뭘 더 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내가 무슨 짓을 한다하더라도, 지금 당장 그로니얀을 레오 일행에 붙일 순 없다. 그건 당장의 전개상, 캐릭터 특성상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나는 그저 서로의 존재만 확인시켜줬을 뿐이다.
또 작가에게 이 두 측이 연결될 수도 있다는 인사이트를 제공해줬을 뿐이고.
일종의 길을 제시했다고나 할까.
물론, 이를 작가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따로 준비해둔 게 있다면 그를 시행하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마 받아들이지 않을까. 굳이 귀찮게 머리 쓰기 싫다면 말이다.
나는 이어 메인 시점을 확인했다.
-현재 메인 케릭터는 ‘레오’입니다.
‘역시나.’
지금은 저기 코미어 쪽도 클라이맥스에 다다랐을 것이나, 작가의 선택은 이곳이었다.
하긴. 선행플롯이 뭐건 간에, 키리코의 괴수화를 놓칠 순 없었을 테니.
어쨌거나 조금이라도 코코아와 코미어가 더 주목받게 하려면, 빨리 이곳을 벗어나 메인시점이 넘어가도록 해야 할 듯했다.
“가자, 도로시. 코코아가 기다려.”
“고, 공주님이?”
이어 우리는 그로니얀과 레오 일행을 내버려둔 채,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슬슬 에피소드의 끝을 볼 시간이었다.
*
우리가 도착했을 즈음엔 상황은 거의 종료되기 직전이었다.
마침,
쿵-.
코코아톰의 대검에 가슴팍이 썰린 왕의 최종병기가 천천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대충 거기 모인 녀석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다지 막상막하의 싸움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체이드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이를 지켜보고 있었고, 기계의 왕 또한 허탈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물러나 있었다.
심지어 1대 1의 싸움도 아니었던 듯, 주위엔 여기저기 사이보그의 잔해들이 널려 있는 상태였다. 겔롭처럼 보이는 사이보그의 머리 또한 거기 포함되어 있었다.
그즈음,
“어떻게 됐어?”
나는 편안한 표정으로 이를 구경하고 있던 코미어에게 슬쩍 다가갔다.
“응? 아······ 뭐야, 그러고 보니 어디 갔다 온 거야?”
정신이 없어 모를 줄 알았는데, 코미어는 나와 그로니얀이 사라졌었다는 사실 또한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냥 어디 좀.”
“이제 다 끝났어. 네 병기······ 실전은 처음이지만, 역시 황당하리만치 강하더군.물론 파일럿의 능력이 출중한 것도 있긴 했지만.”
“내 병기?”
“저 녀석, 코코아톰.”
“······.”
희한한 녀석이었다. 본인이 개발해 놓고선 내 병기라니.
“네가 만든 거잖아. 강한 건 당연한 거 아냐?”
“글쎄······ 고작해야 망치 좀 두드렸다고 해서 그걸 내가 만들었다고 할 순 없지. 네가 핵심사항들에 대해 일러주지 않았다면, 10년은 더 걸렸을 테니까. 그리고 저 늙은이를 따라잡는 것 또한 좀 더 오래 걸렸을 거고.”
“흐음······.”
하긴 뭐. 현재의 코코아톰은 본래 원작에 나왔던 이능장갑기병에 비해 훨씬 더 발전된 형태였으니. 코미어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이어, 나는 코미어와 함께 전투의 끝을 지켜봤다.
이후로는 원작대로였다.
마지막을 예감한 기계의 왕이 직접 최종병기의 조종석으로 들어가 자폭스위치를 눌렀고,
퍼-엉!
이어 폭발은 코코아톰의 손에 의해 아주 간단히 진화되었으나, 기계의 왕의 흔적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연기처럼 홀연히 그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원작의 내용 그대로였다.
본래대로라면 녀석은 차후 마도공학자들의 배후로서 재등장한다. 지금 최종병기라 나온 5m크기의 사이보그와는 또 다른, 키메라 형태의 탑승형 로봇을 타고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엔 조금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냥 그대로 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이는,
띠링-.
[챕터35 ‘혼돈의 노스랜드’가 종료되었습니다]잠시 후, 결과로서 증명되었다.
역시나 그렇게 그냥 끝이 맺어진 것이었다.
“······끝이라.”
내 입장에선 거짓말처럼 잘 마무리 된 에피소드였다.
바라던 가장 이상적인 결과가 나왔다고나 할까.
코미어를 동료로 삼게 되었을 뿐 아니라, 코코아톰을 성공리에 개발하기도 했고, 또 그로니얀이라는 대안을 비교적 깔끔하게 제시하기도 했으니까.
다만,
“이대론······ 곤란해.”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끝난 노스랜드 에피소드를 돌아보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심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
숙소 안에서 나는 챕터의 결과를 찬찬히 훑어봤다.
[작가에 의해 캐릭터 최종평가가 산출되었습니다] [히로는 다음 챕터의 예비출연 대상입니다] [인지도 상승에 따라 캐릭터 포인트가 300,000p 지급됩니다] [재등장률 상승에 따라 캐릭터 포인트가 150p 지급됩니다] [캐릭터 격의 수치가 210 올랐습니다] [캐릭터 격]-현재 등급 : 주조연
-현재 수치 : 1508
-경험치 : 14%
-다음 등급까지 남은 수치 : ?
-선행 플롯 무시 가능 횟수 : 4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이번엔 출연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보상이 적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레오와 협력을 시도하고, 괴수화된 키리코에게 중화제를 먹였던 장면이 나름 임펙트 있게 작용한 듯했다.
“격이 1500이라······.”
나는 가만 주먹을 쥐었다 폈다.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좀 더 강해졌다.
다만,
“후······.”
이 정도론 부족했다. 턱없이.
“······너무 약해.”
이번 에피소드를 진행하며 돌아본 결과, 나는 하나의 중대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시간이 없다는 것.
현재의 이야기와 원작의 가장 다른 점은 시간대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원작에 비해 너무 빨랐다.
일단 사우스랜드 편을 건너 뛴 게 컸다. 근 두 달가량을 앞당긴 것이었으니.
게다가 이번 노스랜드 에피소드에서도 수많은 내용을 겹쳐 진행하거나 건너뛰지 않았던가.
이들만 합쳐도 족히 석 달은 당긴 셈이었다.
헌데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이후에 있을 이스트랜드 에피소드는 진행이 될지 안 될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도깨비들의 존재가 진즉에 소개된 마당에, 노형에게서 얻은 전대 모험왕의 유물이 내 손안에 있는 이상······ 애당초 이스트대륙의 에피소드는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이 또한 생략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그럼 그 다음은?
순간, 내 입에서 한숨처럼 하나의 단어가 흘러나왔다.
“······킹스로드.”
곧바로 킹스로드였다.
물론, 그 전에 하나의 거대 에피소드가 남아 있긴 했다.
킹스로드를 건널 자격을 두고, 모험가 협회의 주관 하에 여러 모험단들이 한데 모여 경쟁전을 펼치는 에피소드.
다만 이건 볼륨은 크나, 시간을 길게 잡아먹는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즉, 물리적으로 따졌을 때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킹스로드를 건너 미들랜드로 넘어가기까지가.
그리고 이는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사실이었다.
현재의 나로선 킹스로드 이후를 버텨낼 수 없다는 게 자명했으니.
단언컨대, 넘어가자마자······ 죽는다.
“쓰읍······.”
이번에 표시된 내 격을 보곤 깨달았다. 이렇게는 한계가 있다.
단순히 지금 약한 게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캐릭터의 잠재력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내 캐릭터로서의 격은 현재 ‘주조연급.’
더 올라가봐야 ‘주연’일 텐데, 이는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즉 수치적으로 조금 더 오를 순 있겠으나, 어쨌거나 내 캐릭터로서의 격은 이미 한계지점이라는 것이었다.
격에 비례하여 능력 전반이 오르는 나로선, 다음을 꿈꿀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헌데 이미 나보다 센 녀석들이 벌써 셋이었다.
그로니얀, 도로시, 괴수 키리코.
아니, 어쩌면 코코아톰을 탄 코코아까지도.
그리고 이제 킹스로드 너머에서 마주하게 될 녀석들은 모두 나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킹스로드를 건널 때 또 한 번 파워밸런스의 조정을 받기도 할뿐더러, 그때부터는 그냥 ‘칠왕’들의 영역이라 봐도 무방하니.
즉,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것.
“······쉽지 않네.”
물론, 방법은 있었다.
실제로 이는 오래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방법이고, 이를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했던 적이 있을 정도이니.
바로, 칼 자이드의 고유능력을 흉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것이 단기간에 효과가 나는 방안이 아니라는 것.
칼 자이드의 고유능력의 본질은 ‘누진적 성장’이다. 애당초 충분한 시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큰 효과를 거두기가 어려웠다.
현재 내가 흉내 낼 수 있는 칼 자이드는 한참 과거의 녀석이다.
좀 전에 한 번 시도를 해보니, 황당하게도 내가 이스트랜드에 있었을 즈음의 녀석이 최대였다.
아마 지금의 녀석은 뭐······ 꿈도 꾸지 못할 정도겠지.
어쨌거나 이 방법은 나를 강하게 만드는 건 분명하나, 그것이 충분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여, 나는 용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편법을 동원하는 것으로.
그만큼 대가는 치러야겠지만,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칼 자이드의 능력을 흉내 낸 채로 ‘시간축이 비틀린 공간’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가능한 최대로 성장시간을 늘린다.
물론, 나는 데모라에 다시 갈 생각은 없었다. 고작해야 ‘열 배’로는 부족했다.
내가 염두에 둔 곳은 다른 장소였다.
이곳 역시 데모라와 마찬가지로, 원작엔 등장한 적이 없는 곳이다.
다만 데모라와 다른 점은, 이곳에서 온 캐릭터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뾰로롱-.
결심을 끝낸 나는 곧바로 팅커벨을 호출했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헹’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뭐야, 이젠 영영 잊은 줄 알았더니?”
“미안. 그나저나 부탁할 게 있는데.”
“물론 그러시겠지.”
나는 녀석을 살살 달랜 뒤, 목적을 말했다.
“시아나의 요정이랑 접선 가능하지? 녀석을 통해 시아나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거든. 아무도 모르게.”
“뭔데?”
“지금 거기 오공이라는 원숭이 한 마리가 있거든?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좀 전해줄래? 코미어의 부탁이라고 하면 아마 승낙할 거라고,”
“오공? 원숭이? 어떤 내용인데?”
오공의 고향이자, 요망한 신수들의 소굴.
아마 이 이름이 맞을 것이다.
“요수계(妖獸界)의 위치가 좀 궁금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