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아무깨비
***
닷새 후.
웨스트랜드 북부도시 지브란테.
공장지대 정반대에 위치한 다소 작은 규모의 지브란테 항구.
그곳 매표소 옆 벤치에 홀로 앉은 채, 나는 가만 홀로그램 창을 바라봤다.
창 안엔 조금 전 도착한 하나의 메시지가 띄워져 있었다.
-결과를 확인하시려면 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래는 라미레스 쟁탈전 이후 곧장 실시되었어야 하나, 어째선지 밀리고 밀리다 이번 노스랜드 편이 딱 끝나자마자 진행된 제2회 인기투표였다.
독자들의 거듭된 요구에 더는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인지, 혹은 이제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늦게나마 시작된 인기투표는 장장 닷새에 걸쳐 진행되었고, 지금 막 그 결과가 도착한 것이었다.
“인기투표라······.”
이미 한 번 겪었던 것이라 그런지, 솔직히 첫 번째 투표 때만큼 긴장되지는 않았다. 딱히 보상이 기대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약간 두근거리기는 했다. 성적표 자체는 궁금했으니까.
이어, 나는 화면을 터치해 결과를 확인했다.
“······호오.”
보자마자, 무척이나 희한한 감정이 들었다.
놀람, 기쁨, 안도, 아쉬움, 의문 등등이 복합적으로 섞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1위 – 키리코(적색 키메라)
2위 – 히로(주걱턱)
3위 – 레오
4위 – 코코아(코코아톰)
5위 – 시아나
6위 – 그로니얀
7위 – 도로시
8위 – 코미어
9위 – 치누아비
10위 – 오공(원숭이)
이어 보상까지.
[캐릭터의 격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캐릭터의 격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캐릭터의 격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캐릭터의 격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캐릭터의 격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2등이라.
물론 이 등수 또한 감지덕지였다.
솔직히 5위권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라미레스 쟁탈전 이후 오랫동안 챕터에 등장하지 않은 데다, 이번 노스랜드에서도 그리 자주 얼굴을 내비친 게 아니었으니.
심지어 코미어와 함께 중심이 되어야 할 에피소드에서조차 웬만한 사건은 다 재끼고, 외려 별도의 사건을 일으켜 다른 이들에게 메인시점을 넘겨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물약을 마시고 괴수가 된 키리코나, 동료애와 결단력 등을 여실히 드러낸 레오, 새로운 능력을 개발한다거나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다른 이들에 비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아마 레오와 협력하여 괴수 키리코에게 중화제를 투여한 장면에서 점수를 좀 딴 듯싶었는데······ 솔직히 한 거에 비해 과분한 등수긴 했다.
약간 떨어져 가는 인기 빨을 마지막으로 불태운 느낌이랄까.
다만,
‘라미레스 쟁탈전 끝나고 바로 했으면 내가 1등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약간 아쉬움이 남긴 했다.
참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나는 이를 보며 씩 미소 짓다가도, 이내 다시 얼굴을 굳혔다.
이제부턴 정말로 위기였다. 어쩌면 2등은커녕, 순위권 안에도 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으나, 들어오는 정보는 전무했다.
이제껏 세웠던 계획에 진척이 없어 불안함이 든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신기루를 쫓는 드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내가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건 지지난밤, 시아나의 도움으로 이뤄진 오공과의 짤막한 교신이 내게 그리 희망찬 소식을 가져다주지 않았을 때부터였다.
지지직-.
-우끼! 거기 코미어야?
-미안, 코미어는 아냐. 주걱턱이다.
-주걱턱······? 코미어라고 들었는데?
-그게······ 그 녀석 지금 급히 볼 일이 생겨서. 어차피 대화 내용은 내가 전달해주면 되니까.
-흠······.
다행히 오공은 별 말 없이 넘어가는 듯했다.
물론,
-끼끼! 쳇, 차라리 잘됐지! 그깟 돌팔이 녀석의 목소리 따위 꿈에서도 듣기 싫었으니까!
어째 통신기기 너머로 진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듯하긴 했지만.
-근데 무슨 일이지? 이 못생긴 녀석아?
-······그 혹시 전달받지 않았나? 우리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어떤?
-네 고향 말이야. 요수계(妖獸界). 그곳에 대한 정보.
그러자,
-아하······ 그래, 맞아. 실은 나도 물어보고 싶었지. 너희들, 그건 어떻게 알았지?
갑작스레 녀석이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 어쩌다 들었어.
-어쩌다?
-그게······ 지나다니는 도깨비에게.
도깨비의 존재를 조심스레 언급한 건, 이 녀석들과 그들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설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나,
-끼끼끼!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전에도 느꼈지, 네 녀석한테서 그 빌어먹을 녀석들의 냄새가 난다는 걸! 제길, 이 연결도 당장 끊고 싶은데······.
녀석이 노발대발 화를 냈다.
그나마도 나와 계속 통신을 이어가는 건, 코미어와의 연도 연이지만, 시아나의 모종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아냐, 아냐. 진정하라고.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그냥 어쩌다 스치듯 만났을 뿐이야.
그렇게 나는 억지로 녀석을 달래가며, 가장 간단한 것부터 어렵사리 물어보기 시작했다.
요수계란 어떠한 곳이냐, 어디에 위치해 있냐,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냐 등등.
다만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딱히 유의미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녀석이 기이할 정도로 꾹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녀석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건, 고작해야 이 세 마디 말이 전부였다.
어느 것 하나도 발설할 수 없다.
요괴들이 사는 곳에 함부로 발을 들이려 하면 안 된다.
허락되지 않은 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
이에,
-혹, 말 못할 비밀이라도 숨기고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노스랜드에 오기 전에 깊은 상처를 입었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곳 요수계에서 입었던 상처인가? 거기 네 적이 있나보지? 아니면 무슨 금제(禁制)에라도 걸린 거야? 나한테만 털어놔봐. 내가 어떻게든 풀어줄 테니까.
녀석이 가진 떡밥으로 살살 꼬셔도 봤지만, 이 또한 통하지 않았다.
-우끼! 꺼져, 이 빌어먹을 인간아! 관심도 갖지 말라고!
허······.
솔직히 이 정도의 거부반응은 정말이지 의외였다.
이에 대해선 분명 조금이라도 털어놓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도 오공이 레오 일행을 만나기 전, 어째서 상처를 입은 상태였는지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즉, 이는 ‘회수되지 못한 떡밥’ 중 하나라는 것.
하지만 내용이 다 풀리지 않았다고 해서 이 떡밥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외려, 캐릭터 본인에겐 그것보다 중요한 사안이 없을 수도 있다. 이는 작가가 해당 캐릭터를 구상하는 도중, 주요 비밀이랍시고 넣어놓은 아주 특별한 설정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로, 해당 캐릭터에겐 이를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
헌데 그럼에도 녀석은 내 유혹에 전혀 넘어오지 않았다.
이는 확실히 기이할 정도의 경계였다.
결국 내가 장시간 녀석을 붙잡고서 전력을 다해 끌어낸 정보라곤, 고작해야 이게 전부였다.
-요수계라고 현실과 시간이 다른 건 아니다.
-시간이 달리 흐르는 장소는 요수계 속에 있는 또 다른 세계다.
-그곳에 들어간 적은 있지만, 그 방법을 말할 순 없다.
“후······.”
그즈음 회상을 마친 나는 눈앞에 펼쳐진 너른 바다를 응시했다.
갑갑했다.
가슴이 뻥 뚫리길 바라며 눈길을 돌린 것이지만, 흔들리는 물결 마냥 마음이 어지러워질 뿐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조급함은 더해지고······.
뭐랄까, 갈피를 잃은 느낌이랄까.
그때였다.
“여기 있었네.”
털썩-.
누군가가 벤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코코아였다.
“고민 있어?”
“······고민은 무슨.”
“얼굴이 이상한데.”
“그야 원래 이상한 거고.”
“흠, 그건 그래.”
코코아는 그러곤 나를 따라 말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그래도 그 얼빵한 소년일 때보다는 낫지만.”
간만에 휴식이라 도로시와 함께 놀러 다닐 줄 알았더니······.
녀석은 어째 무료하다는 표정이었다.
“도로시는?”
“코미어랑 있어.”
“코미어? 아······ 마나 과외?”
“찰거머리 같은 녀석이야. 도로시가 족쇄마법까지 걸어버리려고 했다니까? 쉬지도 않고 쫓아다닌다고.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정말로 해버렸을 걸?”
“코미어야 뭐······ 연구 욕심이 많은 녀석이니.”
도로시를 처음 보곤 놀라 마지않던 녀석의 얼굴이 아직도 훤했다. 기계공학자 출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코미어는 마녀란 존재에 열광했던 것이다.
여태 마나에 대해 가르쳐 달라며 도로시를 쫓아다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 마녀의 방식을 그대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 무렵,
“근데 언제쯤 도착한다고 했지?”
코코아가 시간을 확인하며 물었다.
“빠르면 오늘이나 내일. 늦으면······ 글쎄?”
실은 얼마 전, 뒷세계 조직원을 통해 하카 쪽에서 연락이 왔었던 것이다. 아마 이즈음 배를 타고 지브란테에 도착하게 될 것 같다고.
그것이 내가 어제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유였다.
“궁금해, 그 녀석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코코아는 그러곤 물끄러미 바다를 쳐다봤는데, 두 눈이 마치 바닷물에 반사된 햇빛 마냥 반짝거렸다.
별 말 하지 않아 몰랐는데, 내심 많이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궁금하다라······.’
그러다 문득,
“그나저나······ 너 전투는 어땠어?”
나 또한 궁금증이 일어 물었다.
“전투? 어떤?”
“뭐긴 뭐야. 기계의 왕과 싸웠던 거.”
나는 이를 묻고선 스스로 약간 놀랐는데, 어째서 여태 이를 궁금해 하지 않고 있었는지에 되레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그거? 별 거 아니었어.”
코코아는 정말로 별 일 아니었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어째선지 가슴이 살짝 저릿해져 오는 걸 느꼈다.
“······별 거 아니긴.”
엄밀히 말해, 기계의 왕은 사실 별 게 아닐 수가 없는 존재였다.
노스랜드 에피소드의 최종 빌런이자, 무려 ‘왕’이라는 칭호를 달고 있던 녀석이 아니던가.
괴팍하긴 하나, 다소 유약하고 어벙한 느낌이 있는 체이드혼과는 질적으로 다른 캐릭터였다.
녀석이야말로 기계와 마도의 구분 없이, 노스랜드 전반을 지배하고 있던 실질적인 통치자로, 노스랜드 내 모든 기계들의 제어장치를 보유하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노스랜드 전체의 화력을 한데 집중시킬 수 있다는 무지막지한 설정까지 지닌 빌런이었으니.
하여, 원작에서는 코미어에 의해 만들어진 단 한 대의 이능장갑기병이 기계의 왕이 운용하는 노스랜드 내 모든 기계들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연출되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별 게 아니었다니.
“말해 봐, 어땠는데?”
그러고 내가 계속 묻자,
“흐음······ 그렇게 궁금하다면야 뭐.”
무심히 반응하는가 싶더니, 코코아가 이내 신나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녀석이 엄청나게 건방을 떨었다느니, 먼저 내보낸 부하 몇몇이 나가떨어지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덤벼들기 시작했다느니, 무기도 엄청 다양하고 화려해서 사실 싸우면서도 엄청 부럽고 신기했다느니······.
“그러다가 그 녀석이 대뜸 몸을 바꿔야겠다고 하는 거야. 사실 그때 내가 녀석의 팔 한쪽을 떼어낸 상태였거든? 알고 보니 몸 자체가 기계더라고.”
“이야, 그래?”
“그러곤 녀석이 뒤쪽에 있던 무슨 보관함 같은 걸 열었는데, 거기 녀석과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들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 있는 거 있지! 그 중에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몸을 바꿨다며 막 날 공격해오더라고. 물론 그 몸도 부서지기까지 얼마 안 걸리긴 했지만. 여하튼 정신을 막 옮겨 다니는 게 신기했어!”
코코아는 마치 하나의 게임을 플레이한 것처럼 즐거워하며 말했지만, 듣다보니 점점 뭐랄까······ 이 얘기를 지금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질 만큼,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게 그려졌다.
무려 수십 대가 넘는 사이보그의 에너지포를 정통으로 맞았다든지, 녀석이 몸을 옮겨 타다 못해 심지어는 코코아톰에게까지 해킹 시도를 해왔다든지, 최종병기라며 등장한 녀석이 무려 코코아톰의 외형과 기능을 70%이상 카피해낸 형상복제로봇이었다든지.
그즈음,
“······잘했네.”
나는 간신히 이 한 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또다시 가슴 저 아래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특하네.’
사실 처음에 나는 기계의 왕이 만만찮은 면이 있긴 해도, 공략하기가 그리 어려운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이유야 간단한데, 이번에 코미어가 만든 코코아톰이 원작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성능을 가진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계의 왕은 그에 비해, 조금 더 일찍 우리를 맞닥뜨리게 된 상황이었고.
고로, 원작에서도 처치한 녀석을 이번에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원작에서 기계의 왕을 무찌른 건, 다름 아닌 레오였다.
무려 레오씩이나 되는 녀석이 이능장갑기병에 탑승한 상태로 녀석을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힘겹게.
다시 말해, 지금 이 녀석은 원작에서 ‘주인공’이 한 일을 해낸 것이었다.
묵묵히, 정말로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설사 이능장갑기병의 기능이 원작에 비해 뛰어났다고는 해도,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녀석이 언급한 것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나는 그제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녀석에게,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해주는 다른 동료들에게 좀 더 감사해야 했다.
“코코아.”
“응?”
“뭐 갖고 싶은 거 있냐?”
“뭐야. 갑자기?”
“그냥 뭐. 이래저래 수고했으니까.”
“······흐음.”
녀석은 그러곤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싶더니, 이내 쿨하게 대답했다.
“이미 줬잖아.”
“뭘?”
“코코아톰.”
“······아.”
그러네. 줬네.
다시 생각해보니, 얘한테는 아주 큰 걸 줬었다.
된 것 같다.
그즈음,
“그나저나 너무 걱정하지 마.”
코코아가 뜬금없는 소릴 내뱉었다.
“뭐?”
“고민.”
“뭐?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내게 고민이 있냐고 먼저 물어왔었지.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없어.”
“없기는.”
코코아는 ‘헹’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어쨌거나 너무 조급해 하지 마. 곧 해결 될 거니까.”
“······무슨 소리야?”
코코아는 이에 대답하는 대신, 저 먼 바다 너머를 가리켰다.
“오고 있어. 주걱턱의 고민을 풀어줄 해결사가.”
“······.”
녀석은 거기까지만 한 뒤 입을 다물었고, 저 먼 지평선만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나절 뒤.
뿌우우-.
여객선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온 부둣가를 채워왔다.
*
길은 때때로, 우연이란 이름으로 이어진다.
코코아가 말한 해결사는 치누아비도, 하카도, 구구나 네로도 아니었다.
나는 나를 향해 꾸벅 허리 굽혀 인사하는, 웬 기묘하게 생긴 뚱땡이 도깨비를 가만히 응시했다.
“안녕하시오! 처음 뵙겠소이다. 방랑자, 아무깨비라고 하오.”
삿갓을 쓴 채, 일본식 유카타와 비슷한 의복을 걸친 녀석은 스스로를 ‘방랑자’라 칭했다.
모험가들 중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이들이 저러고 스스로를 칭한다는 설정이 있긴 했는데, 도깨비가 그러는 건 처음 봤다.
원작에서도, 또 실제 이곳에서도.
하여 처음엔 웬 중2병 걸린 도깨비인가 싶었는데······ 정체를 들으니 솔직히 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바로, 하카의 스승 격인 도깨비였다.
“거참 스승이 아니라는데도 자꾸!”
“스승님은 어릴 적 저를 데려다 다른 어린 도깨비들과 함께 수학하게 해주신 분입니다. 그때는 아무깨비가 아니라 모루가비란 성함을 쓰셨는데······.”
“어허, 과거의 인연은 묻어둔 지 오래일세. 그 이름은 꺼내지 말도록 하게나.”
“······스승.”
나는 녀석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하카의 스승이 실제로 존재했을 줄이야.
사실 저 뚱땡이 도깨비는 ‘회수되지 못한 떡밥’ 수준도 아니었다. 뭐랄까 그냥······ 그냥 큰 의미 없는 설정이랄까?
실제로 등장을 기대한 적도, 기다린 적도 없었다.
그냥 까먹고 있었을 뿐이지.
그래서 그런가, 어떤 캐릭터를 보고 신기함이 드는 건 또 오랜만이었다.
헌데 또 놀랍게도, 이 아무깨비란 녀석은 치누와비와도 인연이 있다고 했다.
“모루가비님은 도깨비소굴에서도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셨지요.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소문이 난 분이셨으니. 저도 어릴 적 많이 쫓아다녔었습니다.”
“허허, 다 옛날 일이지······ 그리고 모루가비가 아니라 아무깨비래도!”
그와는 배 안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했다.
게다가 마침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중이었다기에, 회포도 풀 겸 동행을 제안하게 되었다고.
나는 그즈음, 가슴 한 편이 뛰는 걸 느꼈다.
뭔가 희한한 우연이 겹쳐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게다가 코코아에게 들은 말도 있지 않은가. 해결사가 나타날 것이라는.
하여,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라······ 도깨비면 호기심도 많으니 여기저기 많이 가봤겠네. 혹시 요괴들이 사는 곳도 가봤어?”
그냥 대뜸 한 번 던져봤던 것이다.
그렇게까지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역시 형님! 알고 계셨군요!”
바로 그때 치누아비가 놀라 외쳤다.
“응? 뭐를?”
“이 분이······ 바로 그 분입니다.”
“뭐가? 어떤?”
“도깨비들 중에서도 최초로, 요괴들의 소굴에 다녀온 분이시지요. 물론, 몰래 말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몰래.”
허······.
이게 이렇게 풀린다고?
순간 당황한 내 눈이 자연스레 코코아에게로 향했다.
그런 나와 눈이 마주친 코코아는 씩 웃더니, 이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 도깨비가 길을 뚫어줄 해결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