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요천세계
***
방랑자 아무깨비.
나는 항구 앞 어느 카페테라스에 편히 앉은 채, 망고주스를 야무지게 흡입하고 있는 이 풍채 좋은 도깨비를 말없이 바라봤다.
목이 어지간히도 말랐던 모양이다. 아니면 평소 망고주스에 환장한 녀석이었다거나.
아무깨비는 나의 눈길에 괜스레 무안함을 느꼈던지,
“오랜 항해에 지쳐서 말이오. 흐하핫.”
머리를 긁적거리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편하게 먹어.”
“허허, 고맙소이다.”
후르릅-.
솔직히 말해 처음 이 녀석을 봤을 때부터 줄곧, 나는 의심의 시선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 도깨비야말로 아주 우연히, 그것도 무척이나 필요한 순간에, 마치 거짓말처럼 나타난 이가 아니던가.
설마하니 이 도깨비가 작가가 보낸 또 한 명의 자객이라면?
혹은 내게 거짓 정보를 흘리기 위해 파견된 밀정 같은 녀석이라면?
그만큼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
하카와 치누아비가 전부터 이 녀석을 알고 있다는 설정은, 사실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녀석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이와 관련하여 작가가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 역시도 내 몸에 새로운 배경이 덧씌워질 때마다 배경과 엮인 캐릭터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기는 걸 목격한 적이 있었다. 마치 일정량의 새로운 정보가 그들의 머릿속에 강제적으로 주입되었다고나 할까.
가령 ‘붉은 전갈의 2인자’라는 배경을 덧씌웠을 때, 그리고 ‘카포네’의 역할을 맡았을 때가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놀랍게도, 마피아 조직원들은 나를 기존에 알고 있던 인물인 양 자연스럽게 대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치누아비와 하카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물론 이 녀석이 오래 전부터 생성되어 있던 캐릭터라면 이 같은 문제는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미 생성된 캐릭터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못하니까.
그러나 이 녀석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 캐릭터라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도 있었다.
“주걱턱 양반은 안 드시오?”
“나는 괜찮아. 배불러.”
“허허, 망고 나무 채로 뜯어먹을 것 같이 생긴 양반이······ 그럼 무안하지라도 않게 고개 좀 돌려주시겠소?”
“······까탈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녀석을 일단 믿어보기로 결정했는데, 그 이유엔 몇 가지가 있었다.
첫째. 일단 내가 무얼 노리고 있는지 작가 또한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는 것.
오공과 대화를 나누는 걸 봤을 테니, 내가 요괴들의 소굴에 관심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작가가 아무리 전지전능하다 할지라도 내 속마음까진 꿰뚫어보지 못할 테니까.
더군다나 시기적으로 따졌을 때, 내가 오공과 대화를 나눴던 것보다 치누아비와 하카가 이 녀석을 배 안에서 만난 게 더 이르기도 했고.
고로, 작가가 보낸 인물이라는 건 아무래도 억측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코코아가 본 길에 이 녀석이 있었다는 것.
사실 이게 굉장히 주효했다.
오히려 나는 치누아비나 하카의 소개보다도, 코코아의 눈을 더 믿었다.
뭐······ 눈 하난 좋은 녀석이니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내가 지금 뭘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
하여,
“슬슬 다 먹은 것 같은데? 얘기 좀 할까?”
시간 끌지 않고 당장 녀석에게 독대를 요청했던 것이다.
아무깨비는 빙긋이 웃으며, 잘 먹었다는 듯 배를 통통 두드렸다.
“허허, 물론 망고주스 값은 해야 하지 않겠소. 단 둘이서 보자고 한 이유는······ 아무래도 그 요괴들에 관한 것 때문이신가?”
“맞아.”
나는 내 목적에 대한 건 제쳐두고, 일단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말만 전했다.
“인간이 요괴에게 관심을 가진다라······.”
“정확히는, 그들이 사는 장소지.”
“흐음······ 계속하시오.”
이어 오공 녀석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서도 상세히 덧붙였는데, 이는 사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고, 내가 요괴에 관하여 완전히 무지하지는 않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혹시라도 이 녀석이 내게 장난질이라도 칠까 봐서.
아무렴 이 녀석 또한 도깨비이지 않은가. 장난과 거짓말에 능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스스로를 방랑자라 칭하는 녀석들 자체가 좀······ 허풍이 센 경향이 존재하기도 했고.
도깨비들과의 대화는 항상 긴장을 늦춰선 안 되는 법이니.
“호오, 요수계 출신의 원숭이라······ 그것 참 흥미로운 얘기로고.”
아무깨비는 본인부터가 떠돌이라 그런지, 내가 그곳을 가려하는 이유에 대해선 딱히 궁금해 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좀 더 관심을 보인 건 오공의 반응 쪽이었다.
“녀석이 죽어라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랬소?”
“맞아. 엄청나게 감추려 들더라고.”
“흐음, 고 요망한 것들의 마음을 내 어찌 알겠냐만은······ 대충 짐작 가는 바가 있긴 하구료.”
“어······ 정말로?”
놀라운 말이었다.
“아마 고 녀석 역시 요천세계에 잡혀 있다가 몰래 탈출한 놈이 아닐까 싶소만······.”
“······요천 뭐?”
“요천세계. 그것이 궁금하다 하지 않았소?”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글쎄, 나는 그게 뭔지 잘······ 아, 혹시 그럼 그게 요수계의 정식명칭인가?”
그러자 아무깨비가 씩 웃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소. 요수계는 요괴들의 서식지 전체를 통칭하는 것이고, 요천세계는 죄를 지은 요괴들이 들어가는 일종의 감옥과도 같은 공간이오.”
“아······.”
요천세계.
그것이 바로 요괴들이 ‘시간축이 비틀린 공간’을 지칭하는 말인 모양이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녀석이 몰래 도망을 친 것이니, 어찌 쉬이 입을 열 수 있겠소. 혹여 요천사자들이 잡으러 올지도 모르니.”
“요천사자?”
“요천세계를 지키고 있는 간수를 지칭하는 것이오. 물론, 그들 또한 요괴이지.”
“오······ 간수도 있었구나.”
요괴감옥과 간수.
꽤나 흥미가 돋는 소재였다. 이에 대해 듣자마자, 곧장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정도로.
그리고 한편으론,
‘쯧, 열심히 설정만 짜면 뭐하나······ 보여주질 못하는데.’
작가에 대한 안타까움(?)마저 들었다.
데모라도 그렇고, 요정의 숲도 그렇고, 이번에 요괴도 그렇고······.
이어,
“좀 더 자세히 들려주겠어?”
나는 원작엔 털끝만큼도 내비치지 못한, 이 안타까운 작품외적설정에 대하여 부연설명을 요청했다.
“뭐 어려울 게 있겠소.”
그리고 아무깨비는 이를 흔쾌히 들어주었다.
요천세계는 죄질이 나쁜 흉악한 요괴들을 잡아 가두는 곳으로,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상천세계, 중천세계, 하천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상천세계엔 방이 하나.
중천세계엔 방이 열.
하천세계엔 방이 백 개가 있다.
하천세계에서 상천세계로 갈수록, 시간축의 흐름이 거세진다.
이는 죗값을 치르는 데 필요한 인고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이고, 상천세계에 가둬진 녀석이야말로 가장 죄질이 나쁘고 강력한 요괴라는 뜻이다.
“아마 그 원숭이는 하천세계의 방 중 한 곳에 있다가 탈출한 게 아닐까 싶소이다. 그쪽엔 그나마도 탈옥을 감행하는 요괴들이 몇 있다고 들었던 것 같으니.”
“아······ 그 공간이란 게 되게 많은 거구나.”
이 요천세계란 곳은 놀랍게도, 데모라나 모험의 탑 내부에 있는 공간보다도 훨씬 더 세분화된 개념이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먼저 짜인 설정이나, 써먹지 못한 게 억울해 차후 모험의 탑에서 재활용한 게 아니었을까.
뭐 어쨌거나,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그럼 그 요천세계란 곳은 어디에 있고, 또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지?”
“도깨비소굴에 갔다 왔다고 하니 설명이 쉬울 듯하오. 일단 요수계 자체는 그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 이스트랜드 남쪽 끝에 있소.”
“이스트랜드의 남쪽이라······.”
이는 사실 어느 정도 짐작하던 바였다.
일단 요괴란 것이 도깨비들에 의해 처음 언급되기도 했고, 또 녀석들 자체가 크게 보면 신수의 일종이기도 하니, 아마 이스트랜드나 사우스랜드 사이 어느 즈음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수계에 들어간 뒤엔, 요괴들의 안내를 받아 방문해야 하오.”
“응? 치누아비가 몰래 들어가야 한다고······”
그러자 아무깨비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오래 전 내가 떨었던 허풍을 녀석이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오.”
“아······ 그럼 아니야?”
“그곳은 엄연히 관리자에 의해 관리되는 공간이오. 잡혀 들어가든, 혹은 견학을 위해 들어가든, 정해진 절차가 있는 법이지.”
“오호라······.”
“자격 증명만 된다면, 외려 요수계에 들어갈 때보다도 더욱 쉽게 방문할 수 있을 것이오. 적어도 형식상으론, 그곳은 요괴들에 의해서만 관리되는 공간이 아니니.”
이어진 아무깨비의 설명은 꽤나 놀라운 것이었다.
요천세계는 요괴들의 터전 안에 있지만, 정작 요괴들이 스스로 만든 게 아니라는 것.
이는 옛 모험왕이 세계에 해악을 끼치던 말썽쟁이 요괴들을 가두기 위해 만든 곳으로, 당시 여러 종족대표의 의견을 모아 위치를 정하고, 관리방식과 규정을 정한 공동감시구역이라고.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건, 요수계보다도 요천세계가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본래는 요괴들의 터전 또한 그곳이 아니었다고 들었소. 아니, 애당초 요괴들은 공동터전이랄 게 없는 녀석들이었지. 하나같이 요물인 녀석들은 하나같이 다 괴팍하기 짝이 없는 자연의 신수들이었으니. 내가 알기로는, 사우스랜드에 널리 퍼져 살던 녀석들을 옛 모험왕이 한데 모아, 요천세계 근처로 이주시켜 만든 게 지금의 요수계라고 전해지고 있소. 녀석들 스스로가 악질인 동류를 경계하고, 또 감시하며 살게끔 말이지.”
“허······.”
듣기만 해도 굉장히 과격한 방식이었다.
아무리 자기가 힘이 세다고 해도, 그렇지 강제 이주라니.
옛 모험왕이라는 녀석······ 깡패 기질이 다분한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그 자격증명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공식적으로 입장 허가를 받기 위해선 일단 하나의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이의 표식이 있어야 하오. 관리자 명목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니. 나는 당시 노형의 것을 준비했었소.”
“아하, 그럼 뭐 어렵지 않겠네. 내가 지금 인간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은 도깨비이기도 하거든.”
이에 아무깨비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허허, 원 농담도······.”
“아냐, 진짜야.”
“흐음, 재미있는 처사로고, 그 광경을 보고 싶긴 하나, 아쉽게도 노형의 것은 안 될 것이오.”
“왜지?”
“사실 도깨비들과 요괴들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지라······ 나 또한 멋모르고 이를 제시했다가 큰 코 다칠 뻔 했었소. 실은 요수계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와야 했으니. 고로, 추천 드리지 않는다 이 말이오.”
“아······ 그래?”
하지만 뭐, 딱히 상관이 없긴 했다.
“도깨비는 안 되더라도······ 그럼 인간의 표식은 되지?”
*
그날 저녁.
나는 모두를 숙소 로비로 호출했다.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간만에 모두가 모인 회동이었다.
하여 조금쯤 편안한 스탠스로 대화를 진행해 나가려던 내 계획은 사우스랜드 쪽에 남았던 녀석들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그만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뭐!? 없었다고?”
네로는 무심히 끄덕였다.
“그래.”
“소식은? 그것도 모르고?”
“전혀.”
“너 그쪽에서 꽤 높은 위치 아니었어?”
“······딱히.”
네로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이어 하카에게로 시선을 돌렸으나, 녀석 또한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허······.”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사우스랜드 에피소드의 중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 동물농장 자체가 사라지고 없었다니.
이는 분명 작가의 농간이었다.
암만 레오 모험단이 사우스랜드를 가지 않기로 했기로서니, 핵심소재 자체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다니.
“허······.”
기가 막혀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아니, 농간이라고 까진 할 수 없으려나.’
나는 침음을 삼킨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주인공도 없는데 핵심소재를 가만 놔둔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아니, 주인공이 없는데 ‘핵심소재’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그제야 사우스랜드에서 노스랜드로의 챕터전환이 그토록 빠를 수 있었던 게 이해가 됐다. 단순히 인기 캐릭터들의 부재 때문이 아니었다. 애당초 사우스랜드에서 보여지고 있던 게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내가 사우스랜드를 떠나며 요구했던 목표들이 모두 달성되지 못했다는 뜻과 같았다.
구구의 최종 진화도 그렇고, 하카의 사우스랜드 내 모든 조직의 통일도 그렇고.
또한,
“혹시 용에 대한 정보는?”
“전혀. 아는 이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겠지.”
귀중한 정보를 얻어낼 창구가 남아있을 리도 만무했고.
몸통이 사라져버렸으니 뭐. 뭣하나 제대로 진행될 턱이 있나.
‘참나, 이럴 거면 그냥 다 데려왔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어쩐지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들이 거기 남았던 까닭에, 돌아오는 길에 저 방랑자 도깨비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위안 삼아야 할 듯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럼 둘이 나랑 같이 가는 걸로.”
동행자를 쉽게 정할 수 있다는 것.
나는 그러곤 네로와 구구를 가리켰다.
“엥?”
“어디를?”
“가보면 알아.”
사우스랜드에서 진화를 하지 못했으니, 요수계라도 데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렴 강력한 신수들이 모인 곳이기도 하니, 진화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나도 갈래!”
코코아가 손을 들며 외쳤다.
“······넌 안 돼.”
사실 코코아는 어디든 데려가고 싶은 녀석이었지만, 그만큼 남는 녀석들에게 필요한 존재이기도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 없을 땐 네가 대장이니까.”
“······쳇, 괜히 이 짐덩어리들 때문에.”
“짐은 무슨. 어쨌거나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나는 이어 모두에게 나의 ‘요수계 행’에 대해 말하곤, 내가 없는 동안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알겠지? 킹스로드를 건널 기본자격을 갖추려면, 일단 모험단 등급 자체가 S가 되거나, A등급 이상의 모험의뢰를 세 번 이상 성공시켜야 돼. 우리가 현재 해결한 건 A등급 하나뿐이니, 적어도 두 개 이상은 더 해야 된다는 거지.”
원작과의 시간 흐름이 너무나도 달라져 확신할 순 없겠지만, 앞으로 한 달 안으로 벌어질 것이다.
킹스로드를 건널 모험단 선별 에피소드가.
그 전에 필요한 자격을 모두 갖춰놔야 했다.
그리고 그 자격엔, 나의 성장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아참, 절대 까먹지 마. 신청기한이 끝나가도록 내가 도착하지 않으면, 치누아비 네가 대신 내 행세를 해야 돼. 나로 변할 수 있는 건 너뿐이니까.”
“그야 문제없지요. 뭐, 정 안되면 저희끼리 선별자격을 따두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든든하네.”
물론, 그게 그리 쉬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모이는 이들이야말로,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모험단들이니.
“형님······ 그럼 곧바로 떠나시는 겁니까?”
치누아비는 나와 만나자마자 곧장 다시 헤어진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 보였다.
물론, 뭐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얼마 안 걸릴 거야. 다들 수고 좀 해달라고.”
그때였다.
“자.”
코코아가 품속에서 기다란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종이의 겉면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전에 노스랜드로 향하는 배 속에서 빌었던 것과 아주 흡사한 소원이었다. 그 도착지점만 달랐지.
“돌아오는 건 준비 못했어. 어디로 올지 몰라서. 안 보이더라고.”
“······그래, 고맙다.”
나는 그러곤 말없이 그걸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럼 수고들 하고 있어.”
곧, 강해져서 돌아올 테니까.
*
이틀 뒤.
이스트랜드, 두골제국 수도 바란토르.
“왕녀님!”
테르미스는 놀람 이전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궁에 들어온 이래, 시종장이 저렇듯 소리를 지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소, 손님이······.”
“누구?”
“그, 그게······ 대장군이······.”
“대장군?”
곧이어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것이었다.
“······뭐!?”
테르미스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대체 뭐냐고 갑자기······!’
손님의 정체를 안 테르미스는 헐레벌떡 응접실로 뛰어나갔다.
가끔 생각이 날 때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리워한 적까진 없었다.
헌데······ 지금 왜 이리도 가슴이 뛰는 걸까.
스스로도 이 흥분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와······ 진짜 있네.”
테르미스는 응접실 한 켠에서 자신을 보며 씩 웃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새하얀 비둘기까지도.
“주걱턱! 구구!”
······.
테르미스는 주걱턱의 말에 약간의 난감함을 표했다.
“왕의 증표? 글쎄, 내가 현재 칸의 자리에 오른 상태였다면 딱히 어려울 게 없겠지만······.”
“이야, 당신이 벌써 칸을 논할 정도가 되었다고?”
“······그냥 하루에 열 번씩 네가 좀 해라라는 말을 듣다보면 자연스레 그렇게 돼.”
“흐음······ 하긴.”
“일단 말은 해볼게. 칸께서 그걸 내주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였다.
“뭔 소리야, 누가 현 칸의 증표가 필요하대?”
난데없이 주걱턱이 코웃음을 쳤다.
“응? 그럼?”
“요괴들이 지금의 황제를 어디 인간대표로 쳐주겠냐?”
“······뭐?”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다.
“나는 진짜 왕의 증표가 필요하다고. 옛 요괴와 모험왕에게 당당히 한 종족의 대표로 인정받았던 이의 것이.”
“······그게 누군데?”
이에, 주걱턱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까부터 찾았는데 안 보이네. 바야르 칸, 그 노인네 어디 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