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요천사자
***
옛 모험왕이 요천세계를 세울 당시 이에 힘을 보탰던 인간 쪽의 왕. 그것이 바로 바야르 칸이라는 것.
이는 사실 굉장히 빈약한 근거를 토대로 내가 세운 가설일 뿐이었다.
예전에 한 번,
“아니, 정말이라고! 내가 그때 모험왕 녀석과 힘을 겨룬 적이 있다니까?”
그에게서 이와 같은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세상을 깨끗하게 정리하고자 한다며 먼저 협력을 제안해온 모험왕에게, 감히 그럴 자격이 되느냐며 도발까지 했었다고.
심지어 그때 본인이 우위를 보였다는 말에 내가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있다.
아니 모험왕이란 이가 어떠한 존재인데, 미들랜드도 아닌 이스트랜드의 일개 왕이 힘으로 그를 압도했다는 게 말이나 되냐며.
물론, 그렇다고 면전에 대놓고 비웃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바야르 칸이 당대의 모험왕과 인연이 있긴 했다 정도는 인정해주고, ‘그럼 혹시?’ 하는 생각에 한 번 질러봤던 것이다.
대개 이처럼 숨겨진 설정의 경우, 새로운 인물과 배경을 생산해 풀어나가는 것보다도, 기존에 만들어둔 인물과 배경, 설정들을 엮어 반전을 주는 식의 작업을 주로 하니까.
또한 그게 아니라하더라도, 요괴들에겐 바야르 칸의 증표가 현 황제의 것보다 좀 더 먹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편에 둔 채였다.
바야르 칸이 지배할 당시의 두골제국의 영토는 현재와 비할 바 없이 넓어, 거의 이스트랜드 전역에 달할 정도였다고 하니, 요괴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자연히 더 크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헌데,
-호오, 네 놈이 그 사실을 안다는 게 희한하구나. 기록 따윈 남기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시간도 오래 지났고.
곧이어 나타난 바야르 칸이 실제로 이를 인정할 줄은 정말로 몰랐다.
본인이 맞다고, 자신이 바로 옛 모험왕과 함께 요천세계를 만든 당사자라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기쁨을 감췄다.
“······그냥 뭐. 어쩌다 주워들었습니다.”
-흐음, 하긴 당시에 지켜보던 눈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으니.
그는 그러곤,
-그런데 요천세계는 왜 방문하려고 하는 게냐? 설마 그 위험한 곳을 관광하겠단 소리는 아니겠지?
어째선지 힘이 가득 들어간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뭔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할 기회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건 뭐······ 가서 말해주도록 하죠.”
나는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딱히 목적을 숨겨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하면 궁금증이 인 이 늙은 유령이 그곳까지 직접 안내를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이는,
-하핫, 좋다! 내 직접 따라가 눈으로 보기로 하지. 그러고 보니 오랜만이로군······ 놈들, 한 번쯤 정리를 해야 하긴 할 텐데.
몹시도 정확한 판단이었다.
바야르 칸은 아주 흔쾌히 이에 동의한 뒤, 곧바로 내게 옮겨 붙었다.
스윽-.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나도 가!”
조금 전, 어디 좀 갔다 오겠다던 왕녀가 어느새 떠날 채비까지 갖추곤 부리나케 달려왔다.
어쩐지 신나 보이는 기색이었다.
이를 본 바야르 칸이 못마땅하다는 듯,
-허어, 어딜 말이더냐?
그녀를 제지하고 나섰다.
“어디긴, 당신들이 가는 곳이지!”
-허허, 그게 어딘 줄 알고.
“어디든!”
그러자,
-아서라······ 죽고 싶은 게냐?
그가 갑작스레 서릿발 같은 음성으로 냉담히 말했다.
어찌나 냉기가 풀풀 날리던지, 심지어 나조차 약간 당황했을 정도였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네 년의 사지는 곧장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기고 말 것이다.
“뭐······ 뭐?”
-우리가 지금 놀러가는 게 아니라는 거다.
무척이나 공격적인 태도였다. 그가 왕녀에게 저토록 냉담한 모습을 보이는 건, 정말이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왕녀 또한 그런 그의 모습에 당황한 듯 잠시간 주춤거렸으나,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잠깐 머뭇거린다 싶더니,
“미안한데, 나도 강하다고.”
이내 뻣뻣이 고개를 들었다.
이어 왕녀의 몸에선 마치 투기(鬪氣)가 형상화된 듯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는데, 놀라운 것은 그녀의 말마따나 그것이 그리 만만찮아 보였다는 것이다.
고유능력인 갑주화를 발동하지 않고서도 이 정도라는 건······ 짧은 시간 적잖은 성취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쯧쯧, 분수도 모르고 교만함으로 뇌를 가득 채운 골빈 년 같으니라고. 그깟 몸뚱아리 좀 단단해졌다고 세상이 다 네 발 아래에 놓인 것 같더냐. 그곳은 왕의 자격을 갖춘 이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바야르 칸은 택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뭐, 왕? 그럼 더 잘 됐지! 나야말로 이 두골제국의 차기 칸이라고”
-허······ 내가 말한 건 이깟 나약해 빠진 나라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녀석 따위가 아니다. 세계를 제패할 웅심과 그에 걸맞은 힘을 가진 이를 말하는 것이지. 그리고 말마따나, 네 년은 아직 이 허약한 나라의 왕조차 아니지 않느냐. 차기 칸? 지나가는 개가 웃겠군.
그러자 왕녀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주걱턱은?”
-뭐?
“아니, 주걱턱은 뭔데 암말 안 하냐고. 자격도 없는 놈이 어딜 가냐고 욕해야 되는 거 아냐?”
-음······ 그야 이 녀석은······.
그러곤 바야르 칸이 덧붙인 말은, 물론 급조된 핑계라는 건 잘 알지만, 그럼에도 나를 약간이나마 들뜨게 하는 것이었다.
-모험왕이 될 녀석이 아니더냐.
······.
-됐고, 주걱턱 녀석아 뭘 그리 꾸물거리고 있는 게야! 급하다고 하지 않았더냐! 방향은 남쪽이다!
“자, 잠깐! 기, 기다려······.”
-네 년이 계속 고집을 피울 시, 현 칸에게 말해 예법교육을 두 시간씩 추가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도 매일매일!
“이, 이익······!”
그렇게 우리는 억울해 죽으려 드는 왕녀를 뒤로한 채, 곧장 요수계를 향해 떠났다.
*
사흘 뒤.
이스트랜드 남부, 어느 깊은 숲속.
-여기가 입구다.
뭔가 요사스런 기운이 느껴지는 숲이라는 생각이 들 즈음, 아니나 다를까 바야르 칸이 멈춰 섰다.
이어,
“호오······.”
나는 새삼 감탄어린 눈으로 돌아봤다.
물론 짙은 운무로 가득 찬 정면의 나무숲을 쳐다본 건 아니었다.
내 시선이 이동한 곳은, 지난 사흘간 나를 태운 채 쉬지 않고 이곳까지 달려와 준 검정의 흑마 쪽이었다.
이곳은 이스트랜드 남부 항구도시인 난마보다도 훨씬 더 아래쪽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즉, 제아무리 빠르고 체력 좋은 명마라 할지라도 최소 열흘에서 보름은 달렸어야 할 거리였다는 것이다.
헌데 불과 사흘 만에 주파해 냈다는 것.
심지어 이 속도는 맨몸의 네로와 구구에게조차 비견될 정도였다.
실제로 녀석들은 최대한 감추려 하곤 있었지만, 꽤나 지친 기색이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말에도 가만 호흡만 고르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놀랍네요.”
-뭐야, 고작 이 정도의 요기에 놀랐다는 거냐? 아직 진짜 요수계 안으론 들어가지도 않았거늘.
“아뇨, 정말로 해냈다는 게. 금방 도착할 거라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었군요.”
-음? 아······ 뭘 이런 걸 가지고.
이어,
히이잉-.
흑마가 겸연쩍다는 듯 말발굽을 땅에다 긁었다.
놀라우면서도 기묘한 일이었다.
인간의 유령이 말에게 빙의하다니.
바야르 칸은 최대한 서둘러야한다는 내 말에, 사흘이면 충분하다며 직접 저 흑마에게 빙의한 후,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던 것이다.
사실 그만큼 걸렸던 것도 그 이상 속도를 내면 말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말이 아닌 신수였다면, 어쩌면 더욱 빨리 도착했을지도.
-테르미스 고것이 제 말만 내줬더라도 이미 요수계 안이었을 거다. 좀생이 같은 것. 그깟 말 하나 내주지 않다니.
“그렇게 매몰차게 쫓아냈는데 말을 주겠습니까.”
-흥······.
사실 ‘녀석’을 타지 못한 건 나 또한 약간 아쉽게 느껴지긴 했다. 시간의 단축도 단축이지만, 예전 난마시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꼭 한 번쯤 타보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나 전사의 길 1차 시험을 치룰 당시엔, 그 마음이 극에 달했었다. 겁먹은 말을 어깨에 진 채 나아가야만 했던 나에 비해, 왕녀는 녀석을 타고 편히 이동했었으니.
게다가 녀석은 고유능력만 없다뿐이지, 육체적 능력은 거의 신수나 다름없는 말이지 않는가. 바야르 칸의 힘이 더해진다면, 빠르긴 엄청나게 빨랐을 것이다.
물론 뭐,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나는 얼른 이에 대한 생각을 지운 후, 곧장 안개로 가득 찬 숲 안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딱히 기분 나쁜 느낌을 준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특이점은 보이지 않군요.”
말 그대로였다.
안개가 짙다는 걸 제외하곤, 숲은 특이할 게 없었다. 요수계의 시작점이라고는 하나, 어떠한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애당초 요괴라 불릴 만한 녀석들이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으니.
다만,
“킁킁······ 냄새가 달라.”
“공기도 무거워. 날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야.”
네로와 구구 두 녀석은 나보다는 좀 더 이 숲의 불길함에 대해 느껴지는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바야르 칸 또한,
-훗, 좀 더 들어가면 느낌이 올 게다. 그나저나 이곳도 참 오랜만이로군.
본인이 찾아온 길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근데 조금 이상하군요.”
-뭐가 말이냐.
“우리 지금 요천세계로 가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알아서 찾아가는 겁니까? 손님인데?”
그러자,
-뭐, 뭐? 하, 푸하핫!
바야르 칸이 대뜸 껄껄거리며 웃는 것이었다.
-흥, 어떤 요괴가 우릴 손님 취급한단 말이냐. 맛 좋은 먹잇감 정도로 인식할 뿐이지.
“······먹잇감?”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는 아무깨비에게 들은 것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제가 듣기론 요천사자라는 관리자들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그들에게 증표를 보이면 안내를 해줄 거라고······.”
-허, 그런 것까지 알고 있었다고?
이번엔 바야르칸이 다소 놀랐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물론 본래는 여기 가장자리에까지 지키고 선 녀석들이 있었지. 하지만 지금에야 있을 턱이 있나.
“왜 그렇습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여태 흐른 세월이 얼마인데. 그동안 관리인의 자격으로 이곳을 방문한 인간이 몇이나 될까. 적어도 나는 내 증표를 다른 이에게 내어준 적이 없다. 후대의 칸들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찾는 이가 없는데 유지가 될 턱이 없지. 애당초 요괴들의 관리는 의무도 뭣도 아니야, 그저 모험왕의 부탁이었을 뿐이지. 아무런 이득도, 재미도 없는 행위에 나서는 인간이 얼마나 되겠느냐. 아마 요천사자 그 녀석들도 죄다 없어졌거나, 중앙부근에나 몇 남아 있는 정도일 거다.
“흐음······.”
분명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 증표를 내어준 적 없다는 말도 거짓이 아닐 것이고.
하지만,
“헌데 제게 이 정보를 넘긴 이는 이곳에 방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감님과 비교했을 때 말이죠. 영감님보다는 그쪽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아무깨비는 이 늙은 유령보다 후에 이곳을 다녀온 존재라는 것.
그 순간,
-그 녀석, 인간이 아니었구나?
바야르 칸이 놀라운 말을 꺼냈다.
나는 당황하고야 말았다.
“어찌 아셨습니까?”
-종족마다 아는 길이 다르거든. 관리인들마다 요괴를 억제하는 방식을 달리 해야 억제력이 높아진다고 믿었던 까닭이지. 물론 그 녀석의 생각이었다, 모험왕 말이야.
바야르 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호오······ 그렇군요.”
-어쨌거나 요천사자들이 나와서 맞이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전혀 신경 쓸 것 없다. 어차피 녀석들은 부르면 올 테니까.
“오, 그들을 호출하는 방법이 따로 있습니까?”
-흐흐, 그야 간단하지.
그러곤 그가 말의 몸에서 스르르 새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히이잉-!
이지를 되찾은 말이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았다. 녀석으로선 이곳의 요기가 감당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옛 기억을 떠올리곤, 녀석을 친절히 들어 올린 뒤(?) 숲 바깥으로 던져주었다.
그러자,
-바보 같은 녀석, 던지는 방향이 반대이지 않느냐.
“예?”
-저 숲 안쪽으로 던져야 녀석들이 튀어나오지.
바야르 칸이 황당한 소리를 했다.
“······방법이란 게 우리의 발이 되어준 저 고마운 녀석을 요괴들의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것이었습니까?”
-크하하핫! 저 허약한 말은 몸뚱아리를 제공한 걸 제외하곤 한 게 없다. 이곳까지 오게 만든 건 오롯이 나의 힘이라고! 게다가 주인인 우리를 위해 끝까지 한 몸 바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거 아니겠느냐?
“허······.”
어이가 없었다.
아니, 말을 제 몸처럼 아끼는 게 두골제국의 정신 아니었나? 분명 전사의 길 1차 관문이 이를 시험하는 것이었던 것 같은데······.
말을 어깨에 들쳐 메고 그 먼 거리를 달리기까지 했던 나로선, 이 옛 칸이라는 작자의(그것도 가장 추앙받는 두 명 중 하나인) 황당한 사상을 쉬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물론 뭐, 말 대신 다른 걸 던져도 상관은 없겠지.
그러곤 바야르 칸은 스스로 불투명한 유령체로 형상화한 다음, 주위에 있던 큼지막한 바위 하나를 들어올렸다.
이어,
-자, 녀석들을 불러보자꾸나!
이를 냅다 숲 안쪽으로 집어던졌다.
콰지지직-!
바위에 맞은 나무들이 대거 쓰러지며 굉음이 났다.
-화하하핫, 이리 오너라! 요천사자들아, 인간의 왕이 행차하셨다!
허······.
나는 이를 보며 어째 허탈함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바야르 칸이 말한 방법은 정말이지 별 게 아니었다.
그냥 난동을 피우는 거였다. 그럼 알아서들 나올 거라고.
“······.”
-어어, 안 나오지?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주걱턱 녀석아 보고만 있을 게냐?
“······어, 예.”
나는 별 수 없이 그의 깡패 짓에 동참했다.
잠시 후.
“주걱턱······ 이거 괜찮은 거야?”
“더 늘었다. 이번엔 늑대무리야.”
상황엔 자그마한 변화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번뜩거리는 눈들이 안개 너머에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요괴들이었다.
멧돼지, 늑대, 뱀, 원숭이 등등······ 동물의 모습을 한 요괴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구구와 네로가 내게 한 질문을 그대로 전달해줬다.
“오라는 녀석들은 안 오고, 심통난 여기 주민들만 모여들었는데요? 이거 괜찮은 겁니까?”
-더 좋지! 몇 놈 죽어라 패버리면 더 빨리 올 테니!
“······.”
요괴도 신수의 일종이다 보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들의 눈이 빨갛게 빛난다는 것이었다.
-흐흐, 거기 고양이와 비둘기야 조심하거라, 저 녀석들은 우리보다도 너희를 더 노릴 테니.
이어 바야르칸은 저 빨간 눈이 의미하는 옛 요괴들의 특징 하나를 말했는데, 그건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대개 동족살해를 한 녀석들이 빨간 눈을 띄는 경향이 있지. 과거 신수라 불리던 녀석들이 요괴취급을 받고 모험왕에게 잡혀 격리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 놈들은 동족을 잡아먹었거든. 물론, 이 녀석들은 후대에 번식된 녀석들이라 해당사항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만······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
어쩐지 구구와 네로를 보는 눈빛들이 심상찮다고 했다.
이를 들은 구구와 네로 또한 긴장한 듯 털을 쭈뼛 세웠다.
바로 그때였다.
끼이익-!
끼잇!
꾸이익-!
별안간 안개 너머의 요괴들이 희한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했고, 혹은 분노해 고함을 치는 것 같기도 했다.
때마침,
“······인간의 왕이라 하셨습니까?”
안개 너머에서 웬 음성이 들려왔다.
이어,
“······와우.”
굉장히 특이한 외형의 존재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뿔테 안경을 쓴 채 직립보행 중인 두꺼비와 중국풍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백색여우.
“증표를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굉장히 특이한 외형의 그들은, 자신들을 일컬어 요천사자라고 했다.
*
“빠르게 맞이하지 못한 점 양해해 주시길. 이쪽 길로 방문자가 온 건 저희가 요천사자가 된 이후 처음인 지라······.”
-직무유기라고, 직무유기. 네 놈들······ 그 녀석이 살아 있었다면 호되게 혼이 났을 게다.
“이해를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애당초 요천사자들의 수도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터라.”
-흥, 핑계하곤.
뿔테 두꺼비는 바야르 칸의 질책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무슨 용무로 방문하신 겁니까?”
-인간의 왕이 이곳에 와 요천사자를 호출한 이유가 별 게 있겠느냐. 잘 하고 있나 어떤가 확인 차 온 것이지.
그러자,
“······인간이 퍽이나.”
그제까지 가만있던 백색여우가 뒤에서 구시렁거렸다.
-뭐라!?
이에 뿔테 두꺼비가 한숨을 내쉬곤, 중재에 들어갔다.
“요즘 요괴들의 말썽이 특히 더 심해졌는지라······ 이해해주시지요. 그럼 먼저 방의 현황부터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곤 바야르 칸이 뭐라 하기도 전에, 잽싸게 말을 이어나갔다.
“현재 운용이 가능한 하천세계는 총 93개이고, 이중 62개의 방이 차 있습니다. 31개가 빈방이긴 하나 아직 내부 청소는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뭐라? 청소가 안 되어있다고? 참나······ 얼마나 썩히고 있던 게냐.
“죄송합니다. 오래 된 건 이곳 시간 기준으로 3년 정도이니······.”
-허허, 30년을 그러고 내버려두고 있다? 썩지도 않는 시체들을? 미치고 팔짝 뛰겠군.
그러자,
“······도와나주고 말하던가.”
또 한 번 백색여우가 다 들리도록 혼잣말했다.
-뭐라!
“자자, 못들은 척 하십시오. 요즘 막나가기로 작정한 듯 보이니. 다음은 중천세계입니다. 운용 가능한 방은 7개이며, 이 중 5개가 차 있습니다. 물론 빈방의 청소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허어······ 심각한 상태로고.
이에 바야르 칸이 혀를 쯧쯧 찼다.
그 무렵, 나는 이상스러움을 느꼈다. 희한하게도, 두꺼비의 말이 그 이상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설명해야 할 하나의 세계가 더 남아 있을 텐데.
하여,
“상천세계는?”
의문이 든 내가 직접 물었다.
그러자 녀석들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눈빛들이 아주 묘했다.
뭐랄까······ 얘는 뭔데 나서지? 하는 느낌이랄까.
-그 녀석이 내 대리자다. 권한은 부여했으니 의심치 말도록.
“······알겠습니다.”
그러곤 두꺼비가 이어 입을 열었는데, 그 내용은 다소 충격적인 것이었다.
“상천세계는 100년 전부터 운용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어째서?”
“그건······ 현재 그곳이 요천사자들의 손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에 두꺼비는 한 차례 머리를 긁적거리곤, 말을 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녀석을 통제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뜻입니다.”
-잠깐······ 100년 전? 근데 그 안에 있는 녀석이 살아 있다고?
“예.”
-허······ 잠깐 상천세계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 곳이었지?
-현실에 비해 100배입니다.
순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
-그럼, 그 안에 있는 녀석이 만 년이나 묵었다는 얘기더냐?
“······예, 그렇습니다.”
-그게······ 말이 되느냐?
“저희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모릅니다만······ 사실입니다. 출구는 통제 당했고, 감히 들어가기도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다시 나오려면······.”
-나오려면?
“······그 녀석에게 허락을 구해야 할 판입니다. 물론, 가능하지 않겠지만.”
상황은 간단했다.
한 번 들어가면, 그 만년 묵은 녀석을 처리해야 나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