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갈 길이 멀다
***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샘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뿔테 두꺼비를 보며, 바야르 칸은 조금 전 주걱턱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들어갈 생각입니다.”
-응? 어딜?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당연히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이죠.”
-뭐? 네놈, 설마······.
“본래부터 상천세계가 목적이었습니다. 장애물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해서 머뭇거릴 순 없죠.”
-허······.
물론 담대한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곳까지도 서슴없이 들어간다고 할 줄은 몰랐다.
멍청한 녀석은 아니니 따로 생각해둔 바야 있겠지만······.
-진심이더냐? 만년이란 시간은 결코 보통의 생명체가 견뎌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저 안에 들은 건 이제 더 이상 뱀 따위가 아냐. 그건 우리가 정의할 수 없는 또 다른 무언가다. 이를 단순한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간······.
“걱정 마시죠. 다 생각이 있으니까.”
-허······.
“대략 이틀 정도 있다가 나올 생각입니다.”
-이틀? 이틀이라면······.
“이백 일입니다. 그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아서요.”
-허어······.
이백 일을 어떻게 버틸까에 대해선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어찌어찌 뱀의 눈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 정도 기간을 생존하는 것쯤이야 이 녀석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
다만 진정 궁금했던 건, 이백 일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어떻게 저 상천세계를 빠져나온다는 것인지.
아직 들어가지도 않은 녀석이 어찌 나오는 방법을 강구했단 말인가.
물론, 하나의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간단한 방법이 있긴 했다.
바로 출구에 똬리를 틀었다는, 저 만년 묵은 뱀을 처리하고 당당히 그리로 걸어 나오는 것.
허나,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애당초 요괴라는 건, 신수의 일종이기도 하다. 다른 요괴를 잡아먹어서 힘을 키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오래 사는 것’ 또한 강력함의 근거가 된다.
그만큼 자연의 정기를 빨아먹었다는 뜻이니까. 자연의 신수라는 게 다 그러한 법 아니던가.
웬만한 신수들도 500년 이상을 묵었다고 한다면, 해당 지역의 주인으로 쳐주는 법이다. 그만한 능력이 생기고, 그만한 힘이 생기기 때문에.
하물며 만년은······.
다만,
-믿을 순 없다만, 일단은 알겠다.
바야르 칸은 굳이 그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진 않았다.
어차피 녀석은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예 입을 다물지도 모르고.
즉, 의문만 계속해서 더 늘어나게 될 거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그냥 받아들이는 게 속 편하지.
그즈음 주걱턱이 씩 웃으며 한 가지 말을 꺼냈다.
“제가 없는 동안 부탁드릴 게 좀 있습니다.”
-부탁? 뭐냐?
“별 건 아닙니다. 바로······.”
⁞
두꺼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걸 보니, 정말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즈음 바야르 칸은 육체의 일부를 형상화한 뒤, 녀석에게 다가갔다.
두꺼비는 자신을 보고 흠칫 놀라더니,
“저, 저, 그게 시, 실수가 있었던······.”
그러곤 겁에 질린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역시나 요괴답지 않게, 상황에 대한 책임감이 뚜렷한 녀석이었다.
-됐다. 걱정할 것 없다.
“······예?”
-그 녀석에 대해선 신경 쓸 것 없다는 소리다. 내 알아서 할 터이니.
두꺼비는 잠시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지만······.”
-기다리면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자신 또한 주걱턱이 어떠한 결과를 내놓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걱정만 해서 무엇 하랴. 생각 없이 일을 벌일 녀석은 아니니.
그저 제자리에서 각자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바야르 칸은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지금 이곳의 문제가 상천세계 뿐이라고만 하는 건 아니겠지?
“······예?”
-이곳에 들어오면서부터 느꼈지. 이 요수계 자체가 전에 비해 상당히 넓어졌더군. 마치 확장이라도 하려는 듯 말이지. 헌데 그건······ 모험왕이 중히 금지시켰던 사안이지 않느냐. 정해진 영역을 벗어나지 말 것.
그러자,
“그, 그건······ 오해이십니다.”
두꺼비 녀석 또한 반쯤 나가 있던 정신을 되찾곤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었다.
-비단 영역의 문제만이 아니야. 내가 더욱 의아했던 건, 여기 있는 요괴들의 불안정성이다. 날뛰는 녀석들이 무척이나 많던데? 특히나 우리를 환영해준 고 녀석들······ 정상이 아니었단 말이지. 흡사······ 동족이라도 잡아먹은 것 마냥.
“······.”
곧이어, 녀석이 마치 자백하듯 읊조렸다.
“그게······ 이제 요수사자도 저를 포함해 총 여섯 밖엔 남지 않았습니다. 간혹 일선에서 물러나신 옛 요괴들께서 도움을 주시곤 하나, 요천세계의 형을 집행하는 것만도 힘이 드는 실정입니다. 도무지 요수계 전반의 관한 것까지는······.”
이에,
-크하핫, 누가 질책을 하겠다고 했느냐.
바야르 칸이 호탕하게 웃었다.
“······예?”
-아무렴 쉽지 않았겠지. 본능을 억제하며 사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만도 무척이나 고된 것이니. 그동안 수고했다. 가서 좀 쉬거라. 어디 물놀이라도 좀 다녀오고.
“그게······ 예?”
-내가 네 일을 좀 덜어주겠다 이 말씀이지. 명색이 관리자가 아니더냐.
이어 바야르 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서 있던 두꺼비에게서 등을 돌린 뒤,
-어이, 거기 새 새끼! 고양이 새끼! 이리 오거라!
주걱턱이 데려온 두 짐승을 불렀다.
녀석들은 주걱턱이 사라진 샘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는데,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듯 열심히 그 흔적을 찾아보는 듯했다.
-어서 오래도!
건방진 두 녀석은 처음엔 자신의 호출을 거부했으나, 주걱턱의 전언이 있다는 말에 금방 쭐래쭐래 다가왔다.
녀석이 남기고 간 부탁은 말마따나,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외려, 바라던 바였다. 자신이 녀석을 따라 나선 이유에 아주 부합하는 것이었으니.
“요수계를 정리하고, 함께 데리고 온 두 녀석 좀 키워주십시오.”
실은 오래 전부터 좀이 쑤시던 상태였다.
테르미스가 황실의 일로 바빠지다 보니, 당최 어디 들어가 난장을 피울 곳이 없었던 것.
결국 말 따위에나 들어가 놀게 된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도무지 할 게 없으니 뭐.
그러다 마침, 주걱턱 녀석이 딱 찾아왔던 것이다.
심지어 목적지가 요수계란다. 한 때 모험왕과 함께 세상천지에 흩어져 있던 요괴들을 잡아다 넣었던 추억(?)이 살아 있는 그곳.
바야르 칸으로선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오겠다는 테르미스를 냉담히 밀어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녀석이 오면 자신의 놀잇감이 줄어들 테니까.
-흠흠, 지금부터 주걱턱 녀석이 남기고 간 말을 전하도록 하마.
바야르 칸은 두 녀석의 귀가 쫑긋 세워진 걸 확인한 후, 말을 이어갔다.
-곧 돌아올 테니 어르신 말씀 잘 듣고, 그리고 여기······ 청소 좀 해놓아라.
이에,
“엥? 청소?”
“여길 청소하라고? 무엇을 말이지?”
두 녀석의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곳의 청소거리가 따로 있겠느냐. 천지분간도 못하는 요괴 녀석들이지.
그러곤 바야르 칸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지금부터 요괴사냥에 나설 것이다.
*
······.
나는 잠시간 숨을 멈춘 채, 주위를 살폈다.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그 시선’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당장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재차 따라붙을지 모르니까.
10초, 30분, 1분······.
그러고 잠시간 기다린 결과,
“······혹시나 했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 나는 하나의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에게 나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참나, 어이가 없네.
⁞
상천세계에 떨어지기 전, 내가 뇌리에 박아뒀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처음 난입하게 되는 그 순간, 바로 그때만 조심하자.
이유야 간단했다. 뿔테 두꺼비의 말대로 입구가 요괴의 감시를 받고 있는 상태라면, 들아가면서부터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를 간만에 준 ‘먹이’라고 생각하고 쫓아온다면······ 무척이나 피곤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하여 나는 입구를 연 그 즉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세계 안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요괴에게 나를 확인하고 추적할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하여.
“흐업······!”
당황스럽게도 입구는 하늘 한 가운데 뻥 뚫려 있었다.
심지어 구름 한복판이었다.
이를 깨닫기 무섭게, 내 몸이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거 너무 눈에 띄는 거 아닌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나는 급히 주위를 경계했다.
혹, 무언가 나를 겨냥해 날아오는 게 없나 하고.
내가 입구를 열고 이쪽 세계로 뛰어들기까지 1초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이곳에선 무려 1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 구역을 감시하는 녀석이 있었다면, 나를 포착했을지도 모른다.
‘설마 곧바로 공격해오는 건······.’
바로 그 순간,
······응?
나는 나를 향한 무언가의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
희멀건 구름이 걷히면서, 내 시야에 구름 너머 있던 ‘그것’이 들어왔다.
······.
그즈음 내 가슴 밑바닥에서 처음 보는 유형의 ‘감흥’이 일었다.
지금 내 눈에 비친 것.
나를 향해 있는 무언가의 눈길.
이 두 가지 현상이 합쳐져 자아낸 경악, 공포, 찬탄, 혼란, 외경······ 그 모든 것들이 한데 뒤섞인 것.
뭐랄까······ 그것은 그야말로 미증유의 경악이었다.
“······하, 하하.”
한참을 노력했으나, 끝내 나는 나의 감정을 해석하는 데 실패했다.
나는 그저, 현재의 내 상황만을 간신히 해석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 ‘세계’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잠시 후.
쿵-.
나는 땅에 떨어졌고, 한동안 그 자리에 숨죽인 채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비로소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떨어진 다음부턴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확신하건데, 그 이유는 명백했다.
벌레.
‘녀석’에게 있어, 나는 그저 벌레에 불과했으니까.
벌레 따위에게 누가 관심을 주겠는가.
녀석이 시선을 거둔 이유는 고작해야 그게 다였다.
“······빌어먹을. 벌레 취급이라니.”
그즈음 나는 고개를 들어 ‘녀석’을 바라봤다.
사실 바라본다는 단어는 적절한 게 아니었다. 그 단어엔 ‘방향’이란 게 포함되어 있으니.
놀랍게도, 녀석은 ‘어디에나’ 있었다. 땅을 제외하곤, 시선을 두는 곳 어디에서나 녀석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세계를 칭칭 두르고 있다던 두꺼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 거대한 뱀은 세계 전체를 자신의 몸으로 휘감고 있었다.
하늘인 줄 알았더니 녀석의 비늘이었다.
구름인 줄 알았더니 그저 녀석의 하얀 점에 불과했다.
온 천지사방에 장벽처럼 둘러진 것이 죄다 녀석의 몸통이었다.
“······허.”
그즈음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만화라지만 이건 뭐······ 이게 말이 되나?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여태 만나본, 아니 원작에서 본 모든 괴물을 통틀어 이 녀석이 끝판 왕이었다. 심지어 미들랜드에도 이 같은 괴물은 등장하지 않으니까.
이 녀석은 더 이상 요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이 세계의 주인이었다.
아니, 세계 그 자체였다.
작은 개울에서 태어난 뱀이 만년에 걸쳐 이 세계를 삼키곤, 비로소 그것과 하나가 된 것이었다.
······.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이곳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게 아니다.
만 년. 물론 측정이 불가할 정도의 수치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극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그에 준하는 기간 동안 살아온 생명체들을 알고 있었다.
천 오백년을 살아왔다는 대마녀 카밀라.
무려 오천 년을 넘게 세상을 부유 중이라는 옛 용, 드라카.
그 누구도 그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모른다는, 수수께끼의 시간장수 코코로코.
물론 이들이 현재 존재한다는 것도, 또 이들의 능력을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게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에 대해선 짐작이 가능했다. 만화책으로나마 본 게 있으니까.
그것은 결코 감당 불가능한 힘의 영역이 아니었다. 다소 시간이 걸릴 순 있겠으나, 분명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힘이었다.
과연 만년 묵은 뱀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까?
이에 대해 곰곰이 따져봤을 때, 내 결론은 ‘No’였다. 즉, 이 녀석 역시도 퇴치가 가능할 거란 결론이 섰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곳은 미들랜드나 모험의 탑이 아니다.
이는 곧, 이 녀석의 힘엔 어느 정도 제한선이 걸려 있을 거라는 뜻이었다.
이야기의 구조상, 이 녀석보다는 차후 등장하게 될 미들랜드의 녀석들이 더욱 강해야 하니까.
하여 제아무리 만년을 살아온 요괴라 할지라도, 분명 공략이 가능한 대상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헌데,
‘이건 좀······ 너무하잖아.’
이 정도일 줄이야.
녀석의 존재감은 나의 예측을 적어도 두 단계이상 벗어난 것이었다.
최소 칠왕 급이었으니. 그것도 최상위의.
“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물론, 공략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암만 끝판 왕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이 녀석에게도 힘의 한계는 존재할 테니까.
‘그렇다한들, 고작해야 200일로는 택도 없겠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길고, 고된 싸움이 될 듯했다.
잠시 후,
“그나저나······ 뭐가 있으려나.”
나는 녀석에게서 눈을 뗀 뒤,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당장은 생존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점이었다. 녀석을 쓰러뜨리고 탈출하려면, 일단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할 테니.
“호오······.”
희한했다.
놀랍게도, 눈에 비친 전경은 밖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내가 있었고, 나무가 있었으며, 숲이 있었다. 멀찍이 커다란 산들도 있었다. 물론 그 뒤에 더욱 거대한 비늘도 있었지만.
게다가 곳곳에 생기가 넘쳤다.
이는 분명 의아한 지점이었다.
여기······ 감옥으로 지어진 세계 아닌가?
본래는 굉장히 황량한 장소일 거라 생각했었던 것이다. 심지어 만년 동안 굶주림과 싸워온 뱀이 있는 곳인데······ 이리도 활력이 풍부한 공간일 줄은.
‘이러면 뭐······ 딱히 먹을 건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어쨌거나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곧바로 칼 자이드의 고유능력을 발동시켰다.
-가진 모든 능력이 쉬지 않고 강화 된다.
흉내 시작 지점은 한참 과거의 시점이었다.
아직 라미레스 쟁탈전이 시작하기도 전, 녀석이 본인의 첫 모험임무를 완수할 즈음의 신체.
고로, 갈 길이 멀었다.
“얼마나 걸리려나.”
*
어느새 이틀이 지났다.
바야르 칸은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상천세계의 출구로 이어진 장소를 찾았다.
그간 쉼 없이 요괴들을 잡아 족치는 와중에도, 머릿속 한 쪽 구석에선 늘 주걱턱의 귀환시간을 헤아리고 있었다.
하여 시간이 되자마자, 새와 고양이에겐 말도 없이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었다.
녀석이 과연 나왔을까.
그러나,
-시간이······ 좀 더 필요한가 보군.
거기 주걱턱은 없었다.
바야르 칸은 어째 씁쓸한 마음이 되어 등을 돌렸다.
그리고 하루 뒤.
주걱턱이 상천세계로 넘어간 지 사흘 째.
바야르 칸은 똑같은 시간에 또 한 번 그곳을 방문했으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주걱턱은 없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리고 또 하루.
나흘이 지나도록 주걱턱은 나오지 않았다.
이곳의 시간으로는 나흘이지만, 상천세계에선 400일이었다.
즉, 1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그즈음엔,
“인간의 왕이시여······ 그만 잊으시지요. 그가 어떠한 약속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 떨어진 이상 잊는 게 상책입니다.”
바야르 칸의 행동을 본 두꺼비 요괴가 실례를 무릅쓰겠다며 한 마디 해올 정도였다.
또한,
“이제 그만하고, 우리도 넘어가자고.”
“그래, 이젠 날뛰는 요괴들도 몇몇 놈들을 제외하곤, 거의 다 정리가 된 거 아닌가? 여기서의 볼일은 끝났어. 찾으러 갈 때야.”
새와 고양이 역시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채곤, 틈만 나면 재촉해오기 시작했다.
바야르 칸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다시 이틀이 지났다.
엿새 째.
주걱턱은 여전히 빠져나오지 않고 있었다.
······.
그즈음 바야르 칸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순 없다.
더욱이,
“영감이 여기 있겠다고 해도 나는 가겠어.”
“나 또한 마찬가지. 어차피 여기 있는 녀석들은 시시해진지 오래다.”
어차피 더는 이 독기에 찬 두 녀석을 달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하루다. 하루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소식이 없다면······.
바야르 칸이 스스로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직접 들어가 보는 수밖에.
*
“아참!”
나는 숲속에 들어가려다 말고, 급히 품속을 뒤졌다.
마침 있었다. 수첩과 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있어야 할지 모르는데, 날짜 기록은 필수였다.
자칫 때를 놓칠지도 모르니.
나는 수첩 첫 번째 장에다 ‘1일’이라고 적었다.
“흐음······.”
적고 나니 뭔가 아쉬웠다. 여백이 너무 많다고나 할까.
그런데 뭘 좀 더 쓰자니,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뭐 없으려나. 다짐이나, 특이사항이나······.’
그러다 문득,
“아! 그래, 항상 까먹지 않도록······.”
적절한 게 하나 생각이 났다.
오늘의 수모를 잊지 않고, 저 뱀에게 한 방 먹여줄 날을 기약하며.
상천세계 일지.
[1일차]벌레취급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