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전력으로 살아남아라
***
상천세계 일지를 땅 속 깊숙이 묻은 뒤, 나는 은밀히 숲을 벗어났다.
결심을 굳혔으니 이제 남은 일은 계획해둔 바를 빠르게 실행하는 것뿐이다.
다음으로 내가 향한 장소는 ‘뱀의 궁’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외려 그와는 정반대 쪽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의 ‘꼬리’가 있는 지역이었다.
‘얼마쯤 걸리려나.’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나는 힘껏 발을 굴렀다.
전력을 다해 힘을 쓰는 건 근 1년 전 뱀에게 당한 이후 처음이었다.
곧이어,
슝-.
마치 활이 쏘아지듯, 몸이 앞으로 날아갔다.
그저 발로 땅을 박차기만 할 뿐인데도,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이 가능했다.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 나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들이 가만 제자리에 머무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나쁘지 않네.’
정확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현재 내 신체는 아마 현존하는 모든 캐릭터들을 통틀어 최상일 것이다.
현 시점의 칼 자이드를 넘은지는 이미 오래이며, 시간적으로 따져봤을 때 어쩌면 원작 내 그의 마지막 모습 때와도 엇비슷한 수준일지 모른다. 신체능력만으론 그 칠왕들보다도 앞선다는.
실제로 녀석의 고유능력인 [멈추지 않는 성장]의 진화까지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이는 원작에서조차 등장하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이게 진화인지, 그저 또 다른 응용의 일종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뱀’에게 대항하기엔 한참 역부족인 게 사실이었다.
고로, 일단 최대한 균형을 맞춰보는 수밖에.
잠시 후,
“······여긴가?”
나는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푸름도, 녹색도 아닌 온통 검정으로 뒤덮인 공간이었다.
최상급요괴 독두꺼비 요마의 늪.
뱀에게 당한 직후, 지난 1년간 내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던 건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을까’나 혹은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가 아니었다. 그건 애초에 실현 가능한 명제가 아니었으니.
물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혹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상정한 기한 내에선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생명체를 처치하는 게 아닌, 이 세계 자체를 부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여 그간 내가 오롯이 궁구했던 바는, ‘어떻게 하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어떻게든 탈출만.
사실 이전에도 비슷한 마음을 먹긴 했었다. 굳이 적을 쓰러뜨릴 필요는 없고 나가기만 하면 땡이라는 것. 하지만 이는 일단 부딪쳐보고 안되겠다 싶을 때 빼자는 마인드에 가까웠다.
그런 식으론 필패다. 승산이 없다.
이 세계를 벗어나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그조차도 조금의 실수나 방심이라도 발생한다면, 확률이 우수수 떨어질 것이고.
어쨌거나 사소한 한 가지 한 가지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늪이 바로, 탈출을 향한 내 전력투구의 시작점이었다.
나는 늪이 보이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늪지대의 왕은 이곳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산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철퍽-.
철퍽-.
늪의 끈적임은 전혀 방해요소가 아니었다.
또한 그곳에 있던 늪의 요괴들이나 수많은 독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에 영향을 받기엔, 내 신체가 그리 녹록치 않았으니.
곧이어,
“요, 요마님!”
“요마님!”
“치, 침입입니다!”
마침 내 일을 줄여주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녀석의 부하들이 내 등장을 요마에게 알리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으, 으잉!?”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작달만한 독두꺼비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요마였다.
요마.
이 녀석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최상급요괴 중 하나이며, 체내에 지독한 독을 보유하고 있고, 거처 밖을 나오기를 싫어하며, ‘뱀’을 제외한 가장 오래된 요괴라는 것 정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정보 속엔 이미 아주 귀한 게 포함되어 있었으니.
나를 본 녀석이 놀라 소리쳤다.
“너, 너는······ 턱주가리 요괴?”
“응? 나를 아나?”
“머, 멍청한! 너를 모르는 녀석이 어디 있다고!”
“이야, 그래? 내가 그렇게 유명했다고?”
“유명하지! 자요로 선정되고도 어머니께 반기를 든 멍청한 녀석! 죽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용케 살아 있었구나!”
“아하······ 그렇게 소문이 났구나.”
이들에게 ‘자요’가 되는 건 무궁한 명예이고 축복과 같다.
아무렴, 본인들의 창조주와 맞닥뜨리는 일이니.
그렇기에 녀석에게 잡아먹히리란 생각 따윈 꿈에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너도 유명하잖아.”
“응?”
“그리 오래 살고도 자요에 한 번도 선정되지 못한 녀석으로.”
그러자,
“이, 이놈이······!”
요마가 분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심히 콤플렉스였던 모양이다.
‘멍청하긴, 그게 제 생명줄인 것도 모르고.’
이 녀석이 최상급요괴로 있으면서도 그토록 오래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었다.
바로, 자요로 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즉, 뱀에게 있어 그리 먹음직스러운 녀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그 이유가 이 녀석이 가진 독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나저나······ 여긴 웬일이지? 설마 내게 볼 일이 있나?”
“어, 맞아.”
그것이 바로 내가 녀석을 찾아온 이유였다.
“아주 많지.”
이어 나는 곧장 녀석에게 달려들어선, 그 작달만한 몸을 낚아챘다.
“이, 이 녀석! 뭐, 뭐하는 짓······.”
그러곤 녀석의 입을 꽉 눌러 틀어막았다.
“꽥꽥대는 건 질색이라.”
그 순간 녀석의 몸에서 웬 연기 같은 게 뭉게뭉게 피어나왔다.
독무(毒霧)인 듯했는데, 흠뻑 들이마셨음에도 별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칼 자이드의 고유능력이 성장시키는 것에는 놀랍게도 이 같은 독, 마법, 심지어는 정신공격에 대한 저항력까지 모조리 포함되어 있었다.
즉,
“너 뭐 했니?”
아무런 타격도 없다는 말씀.
나를 본 요마의 눈에 불신의 감정이 어렸다.
곧이어,
스륵-.
녀석이 조용해졌다.
숨이 막혀 기절했거나, 아니면 아파서 기절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일단 한 놈.”
첫 스타트는 좋았다.
이제 곧 내가 나타났단 소문이 이 세계에 돌기 시작할 것이다. 그 전에 일을 다 끝내야 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두 번째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슝-.
“요, 요마님!”
“요마······.”
내 등 뒤로, 요마의 부하들의 고함이 여운처럼 흩어졌다.
*
20분 뒤.
“어디 보자······.”
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비늘과 살이 구분되는 지점을 찾았다.
워낙에 거대한 나머지, 한눈에 잘 구별되지가 않았다.
나는 별 수 없이 멀찍이 뒤로 물러나 해당지점을 확인하곤, 다시금 가까이 다가와 짚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기를 몇 분여,
“아, 여기다.”
마침내 ‘꼬리’ 부근의 비늘과 살의 경계선을 명확히 짚어낼 수 있었다.
이 부분을 찾은 이유는 한 가지 작업을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그즈음 품에 넣어뒀던 두 가지를 꺼냈다.
하나는 기절시켜놓은 요마.
또 하나는 조금 전 잡은, 최상급요괴 중 하나인 ‘검은 일각수’에게서 뽑아온 뿔.
이 둘을 가지고 하려는 행위는 다음과 같았다.
1. 세포조직을 괴사시키고 치유를 막는 힘이 깃든 검은 일각수의 뿔을 꼬리 끝부분에 박아 자그마한 상처를 낸 다음,
2. 벌어진 상처 부위에다 독두꺼비 요마를 넣고 봉합한다.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물론, 뱀의 전력을 대거 약화시키기 위함은 아니었다.
이걸론 택도 없다. 1년 전 내 전력을 다한 공격에도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던 녀석이 아니던가.
다만, 화를 돋우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이 녀석의 꼬리는 뱀 스스로가 밝히길, 신체 중 가장 민감한 곳이자 관리하기 까다로운 부위였으니.
인간으로 치자면, 발톱 아래 살점에 자그마한 상처를 내고 염증을 만드는 느낌이랄까.
요마의 독이 뱀에게 얼마나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약간의 신경질 정도는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산채로 집어넣는 게 아니던가.
이 녀석도 요괴라면, 짐작건대 이 ‘어미’의 살을 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계에 있는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향기를 풍기는 게 바로 이 뱀의 살일 테니.
그리고 요마가 꼬리 내부에서 식욕을 폭발시키는 순간, 뱀으로선 짜증이 나지 않고 배길 수가 없을 것이다.
“잘 부탁한다.”
나는 기절해 있던 요마의 머리를 가만 쓰다듬었다.
내가 녀석의 신경을 분산시키고, 화를 돋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의 주위에 있는 모든 부하요괴들을 쫓아내기 위하여.
뱀은 늘 수많은 요괴들을 곁에 두고 있었는데, 다들 웬만해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뱀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 주위의 있는 모든 것들을 먹거나, 파괴시킬 때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러니 그 상황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즈음,
푹-.
나는 일각수의 뿔을 표시해둔 부위에다 빠르게 찔러 넣었다.
뿔의 힘인지, 아니면 내 힘이 강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상처를 내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이어, 묘한 형광 빛을 띤 액체가 스르르 흘러나왔다.
뱀의 피였다.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연 뒤, 곧바로 그 안에다 뿔과 함께 요마를 집어넣었다.
손가락으로 요마의 머리를 튕겨 한 차례 더, 골을 흔들어 준 다음이었다.
“나 너무 싫어하지 말라고. 그래도 일어난 다음엔 주위가 온통 진수성찬일 테니까.”
그러곤 나직이 속삭여준 뒤, 살포시 뒤쪽으로 물러났다.
곧이어,
스르르-.
꼬리 쪽 상처가 알아서 재생되더니, 이내 말끔히 봉합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였다.
나중에 뱀의 명령을 받고 이를 제거하러 온 요괴들이 꽤나 골치 좀 썩지 않을까.
이것으로 계획의 일 단계는 모두 끝이 났다.
탈출을 위한 씨앗 정도는 뿌려뒀다고나 할까.
이제는 조금 더 적극적인 행동에 돌입해야 할 때였다.
바로,
“어디 보자······ 여기서 제일 가까운 게 돼지였던가, 여우였던가······.”
남아 있는 최상급요괴 열일곱 마리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것.
나는 잠시간 기억을 되뇌어 본 뒤, 이어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는 딱히 세세한 작업 따윈 필요 없었다. 그저 가까이에 있는 녀석부터 순차적으로 제거해 나가기만 하면 됐으니.
다만 필요한 건 속도 뿐.
슝-!
내가 뱀을 만나러가기 전, 이 최상급요괴들부터 처리하려는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이 녀석들이 내 계획에 방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첫째로, 이 녀석들이 가진 무기나 신체부위 중에서 나름 쓸 만한 것들이 좀 있었기 때문에.
요마의 독이 그러하고, 검은 일각수의 뿔이 그러했다.
또한 기본적으로 최상급요괴라 함은 저 뱀이 무려 주식으로 삼을 정도로, 몸에 든 것(?)들이 많은 녀석들이다. 영양이든, 능력이든. 뱀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은 당연히 내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직 정확한 용처는 떠올리지 못했지만, 나머지 녀석들 또한 내 계획의 일부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뱀의 화를 돋아 주위의 요괴들을 물리려 하는 이유와 같았다.
사실 이게 핵심이었다.
바로, 주위 요괴들이 뱀의 ‘영양 간식’이 되는 걸 방비하기 위해서.
이는 1년 전 전투 때 뼈저리게 느꼈던 사항이었다.
가뜩이나 공격이 통하지 않아 절망감에 들던 상황에, 녀석이 난데없이 주위에 있던 요괴들을 흡입하듯 먹어버렸던 것이다.
그러곤 한다는 말이,
-오랜만에 힘을 썼더니 출출해서 말이야.
나를 더욱 좌절감에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최상급요괴들은 언제고 달려와 뱀의 피로회복제가 되기 딱 좋은 녀석들이다. 다들 궁과의 직통 라인이 있어 금방이라도 달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하여, 나는 애당초 이 녀석들부터 싹 제거해두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여긴가?”
나는 세 번째 최상급요괴의 거처에 당도했다.
‘돈치’란 이름의 거대 돼지 요괴.
원숭이 골 요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와 함께 했던 원숭이들이 굉장히 싫어하던 녀석이었다.
그 외엔 뚜렷한 정보가 없었다.
뭐, 없어도 별 상관은 없겠지만.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놀라 소리를 질렀다.
“터, 턱주가리 요괴!? 죽은 줄 알았는데?”
이제는 꽤나 익숙한 반응이었다.
“어, 그래 안녕.”
나는 녀석에게 안부 인사를 건넨 뒤, 곧장 용건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바쁘니까 얼른 내놔.”
“······무엇을?”
이어,
“뭐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네 머리.”
*
열두 번째 최상급요괴를 처리한 뒤, 그 다음 녀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어느 한 숲을 지나고 있을 무렵,
“······어?”
어쩐지 익숙한 외형의 요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한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 아래에 있던 요괴들에게 채찍질을 당하며 열매를 따고 있는 녀석들.
꽤나 먼 거리였고, 수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들이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했던 그 원숭이들.
‘왜 여기에······.’
녀석들의 거처는 이곳이 아니었다.
훨씬 더 풍요롭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더욱이 다른 요괴들에게 맞아가며 일을 한다는 건······.
그 순간,
“······아.”
나는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 때문이었다.
대장이 ‘어미’를 배반해 버렸는데, 그 밑의 녀석들이 무사할 수 있을 리가. 죄다 먹히지 않고 있는 것만도 기적이겠지.
그즈음,
“······.”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져 있었다.
마음은 바쁜데,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후······ 책임은 져야겠지.”
나는 방향을 틀어, 곧장 녀석들에게로 달려갔다.
이어,
“이 자식들이 어디서 농땡이를! 앞으로 10분 안에 여기 있는 걸 모두 따지 못하면 오늘 저 녀석은 네 놈들의 골로 대신할 것이······ 엥?”
그 앞까지 다가간 나는, 녀석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고 있던 덩치 큰 개구리의 팔을 곧바로 잘라버렸다.
툭-.
“······뭐?”
그것이 녀석의 유언이었다.
다음으로,
툭-.
녀석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때마침,
“터, 턱주가리 두목!”
“두목!”
나를 알아본 녀석들이 소리치며 나무에서 내려왔다.
“잘 지냈냐?”
“어, 어떻게 여기를······.”
“사, 살아 있었던 거야?”
나는 녀석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녀석들 또한 분명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 없는 녀석들의 안부를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여,
“미안. 어쩌다 보니 일이 생겨서. 지금 바빠서 바로 가봐야 돼. 일단 이거 받아라.”
대가라곤 할 수 없지만, 가지고 있던 것 중 몇 가지를 내밀었다.
이제까지 잡아온 최상급요괴들의 심장 몇 종과 내단을 모아 응축해둔 작은 환이었다.
이 녀석들도 요괴다. 이걸 섭취한다면, 분명 단시간 내 굉장한 힘을 획득할 수 것이다.
“이, 이게 뭐?”
“바로 가는 거야?”
“기, 기다려! 무슨 말이라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으로선 뭔 말을 하든, 기약 없는 약속에 불과할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저,
“살아남아라.”
한 마디만을 건넬 수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는 내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살아남아라. 전력으로.
나는 그러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남은 요괴는 여섯.
뱀까지 단 여섯 걸음이었다.
*
태초의 궁.
“어, 어머니! 보,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뱀은 갑작스레 들려온 음성에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아무도 근처에 오지 말라 이렀거늘.
내려다보니, 웬 녀석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연신 뒤를 돌아보며 달려오는 꼴이 여간 짜증스러운 게 아니었다.
저 녀석, 먹어야겠다.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치, 침입자가······.”
녀석이 황당한 소리를 내뱉음과 동시에,
저벅저벅-.
희한한 것이 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호오.
뱀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제 발로 다시 돌아오다니.
녀석이었다. 얼마 전 도망쳤던 먹이.
아주 오래 전, 자신이 이곳에 갇히기 전에 먹었던 맛 좋은 먹이.
인간.
뱀은 활짝 웃었다.
-웬일로 꼬리가 욱신거린다 했더니······ 이런 별미가 찾아온다는 신호였을 줄이야.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군.
“동감이야.”
이어, 그 괴상한 턱을 가진 인간 녀석이 건방진 소리를 내뱉었다.
“누구 운이 좋은지는 한 번 대봐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