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체력전
***
“잘 지냈니? 도롱아?”
대전의 입구에 그러고 가만 선 채, 턱주가리 인간이 인사를 건네 왔다.
녀석은 마치 놀러왔다는 듯 평온한 태도였다.
“아니지, 도롱이가 아닌가? 요롱이였나? 안녕, 요롱롱아?”
안색에도, 목소리에도 공포는 깃들어 있지 않았다.
이에 뱀은 다소 의아함을 느꼈다.
어째서 제 발로 찾아왔지?
어째서 겁을 집어먹지 않았지?
분명 지난번에 한 번 겪어보지 않았던가,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을.
혹, 한 번 도망을 쳐봤다는 것에서 온 자신감인가?
순수하게 의문이 들어 물었다.
-어찌 그리 웃는 것이냐.
그건 결코 먹잇감에 알맞은 태도가 아니지 않느냐.
그러자,
“집에 갈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네.”
인간의 입에서 희한한 소리가 나왔다.
-집?
“나 밖에서 온 거 몰라?”
-그 말은······ 지금 밖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냐?
“그렇지.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거든. 이제 슬슬 돌아가려고.”
······.
물론 저 녀석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은 그토록 오랜 기간 살아온 자신에게도, 그 인상이 똑똑히 기억될 만큼의 존재였다.
저토록 ‘맛있어 보이는 녀석’은 실로 오래간만이었으니.
실제로 온전히 맛보겠단 욕심에 도망의 빌미를 제공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는 상처를 내지 않고 통으로 집어삼키려다 그만, 자신이 먼저 지쳐 숨을 돌리는 상황까지 가고 말았으니.
결국 다른 녀석을 삼켜 원기회복까지 해야 했었고.
그토록 오래 시간을 끌었음에도, 맛보지 못한 건 저 녀석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정말 나를 뚫고 갈 수 있다는 소리더냐.
그렇다한들, 저와 같은 태도는 분명 의심스런 것이었다.
뱀은 녀석이 숨기고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럼 증명해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가까이 오거라.
그러자,
“그러고선 그 커다란 입으로 날름 날 삼키려고?”
녀석이 경계의 말을 내뱉었다.
헌데 그러면서도,
“무서워서 어디 접근하겠어?”
여유 만만한 태도로 한 발 앞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정녕 기이한 일이었다.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아니, 살아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지. 네 녀석이 난데없는 기술을 쓰며 도망치려 할 즈음, 반사적으로 그만 독액을 쏴버리고 말았으니. 헌데 이렇게나 멀쩡해진 모습으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날 줄은 몰랐······.
그러고 녀석을 찬찬히 살피던 뱀은 순간,
-호오······.
굉장히 놀라고 말았다.
전에 봤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자세히 살펴본 녀석은 전에 비해 훨씬 더 진한 풍미를 풍기고 있었다.
-네 녀석······ 멀쩡해진 정도가 아니구나. 전에 비해 열 배는 더 강해졌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오, 그게 한 눈에 보여? 나이를 허투루 먹은 건 아니구나?”
솔직히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고유능력 [장생]을 개화한 직후, 셀 수도 없는 세월을 살아왔으나 이 인간과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일단 힘. 이제껏 이토록 강력한 힘을 지닌 녀석이 있었나 싶었다.
적어도 최근 천 년 이래론 이와 비슷한 존재를 본 기억이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건, 그 성장속도였다.
눈 깜짝할 시간 만에 이 정도까지 강해질 수가 있다니.
심지어 이전에도 그리 약하지 않았던 녀석이 말이다.
정말로 그 자신감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자신을 물러서게 만들겠다는.
-실로 대단하구나.
그즈음 뱀이 느낀 감정은 다름 아닌, 환희였다.
여태 본적이 없을 정도로 귀한 향을 풍기는 먹이가 눈앞에 있었으니.
아주 오랜만에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꿀꺽-.
군침이 돌아 참기가 힘들었다.
뱀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날름거렸다.
-그래······ 확실히 강해졌어.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구나. 이리 오거라.
그러나 그런 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이 실실거리며 다시금 한 발 물러났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1년 전······ 아니, 정확히는 400일쯤 전인가? 그때는 내가 좀 피곤한 상태였다고. 실력발휘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랬느냐. 그럼 이제는 준비가 다 되었고?
“글쎄······ 아마도?”
-그런데 어찌 뒤로 물러나느냐. 이리로 오거라······ 집에 가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고 한 번 더 녀석을 불렀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미시여!
귓가로 웬 전성이 들려왔다.
급보용으로 쓰는 박쥐들 중 하나였다.
순간, 뱀은 급격히 짜증이 치솟음을 느꼈다.
분명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일렀거늘.
-무슨 일이냐! 내 분명 누구도 다가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죄, 죄송합니다! 허나 꼭 보고를 드려야할 것 같아서······.
-말하거라.
-최상급요괴들이 대거 살해당했습니다.
-뭐?
황당한 소리였다.
-갑자기 그게 무슨······ 어쩌다? 누구에게?
-저기 저 턱주가리 요괴입니다!
-허······ 몇이나?
-아직 모두의 소재가 파악된 것은 아니나, 전원이 살해당했을 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몇몇 요괴들은 몸통의 일부가 통째로 뜯겨 나간 채로······.
-되었다!
뱀은 그즈음 박쥐의 보고를 중단시켰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인간이 최상급요괴들을 죄다 없애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게 뭔 상관이란 말인가.
본인이 직접 여기 찾아왔는데.
최상급요괴야 언제든 다시 뽑으면 그만이다.
그것들과 눈앞의 이 인간은 질적으로 완전히 달랐다.
지금은 이 ‘극상의 먹이’에만 집중해야 할 때였다.
뱀은 호되게 내질렀다.
-내 꼬리 쪽의 이상이나 치료 하거라! 아까부터 근질거려 참기가 힘들 정도이니. 완벽히 처리하기 전까지는 누구 하나 얼씬도 하지 말고!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이어 박쥐가 사라지자마자, 뱀은 다시금 턱주가리 인간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고맙게도, 녀석은 그제까지도 얌전히 거기 머물러 있었다.
-왜 거기 가만히 서 있느냐, 이리 오래도? 이 어미에게 와.
“어미? 이거 황당한 녀석이네. 나는 밖에서 왔다니까? 게다가 그런 말을 하려거든······ 입가에 질질 흐르는 침은 좀 숨기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곤 녀석이 난데없이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실은 여기 오기 전까지 고민을 많이 했었지. 네게 어떻게 타격을 줘야 할지 감이 잘 안 왔거든. 뭐랄까······ 사이즈가 전혀 맞질 않으니까. 괜히 전처럼 시행착오만 엄청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녀석은 이어 대전의 입구 즈음까지 물러난 후, 제자리에 멈췄다.
그러곤,
“그런데 생각해보니 간단하더라고. 그냥 그만한 크기의 몽둥이를 준비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갑작스레 입구 밖으로 모습을 감췄다.
-음?
당황스러웠다.
실컷 덤벼들 것처럼 말을 하더니?
-이 녀석아, 이리 오라니까 어디를 그렇게······.
그때였다.
스윽-.
녀석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헌데 녀석의 손엔 뭔가 희한한 것이 들려 있었다.
검정의 기다란 뿔이었는데, 녀석은 이를 입구 밖에서부터 질질 끌고 오는 중이었다.
“이거 뭔지 알지?”
-이 녀석?
“몰라? 네 먹거리 대상에 올라와 있던 녀석 아냐?”
이에 다시금 살펴보니,
-허······.
녀석이 쥐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최상급요괴 중 하나로 뽑아놨던 장수풍뎅이 요괴의 뿔이었다.
모를 리가 있겠는가, 향은 좋으나 다소 딱딱한 감이 있어 먹기를 차일피일 미뤘던 녀석이었는데.
“단단하니 이 녀석 외피가 몽둥이로 쓰기 딱 좋겠더라고. 끝이 가늘어지는 부분이 있어 잡기에도 편하고. 근데 잠깐만, 일단 이걸 좀 자연스럽게 쓰려면······.”
순간,
콰쾅!
대전의 기둥 중 하나가 박살이 났다.
녀석이 그 기다랗고 단단한 뿔을 냅다 횡으로 휘둘렀던 것이다.
“공간을 좀 넓혀야겠지?”
-허······.
뱀은 황당함에 말문을 잃고야 말았다.
하는 짓도 하는 짓이지만, 녀석의 힘 자체가 놀라우리만치 강했다.
저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왔다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괴력
이었다.
쾅!
콰콰쾅!
다만, 그러고 놀라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뱀은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뭐하는 짓이냐!
“아, 미안. 아끼는 집이었나?”
무려 수천 년에 걸쳐 지은 궁이었다. 짓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었으나, 그 안에 새겨 넣은 그간의 역사가 문제였다.
무려 만년에 가까운 자신의 기록이었으니.
녀석에 의해 파괴되는 꼴은 결코 두고 볼 수 없었다.
뱀은 곧장 녀석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얼어라!
푸시시-.
그러나,
“뭐야, 전에도 안 먹혔던 걸 쓰고 있어.”
공기마저 얼려버릴 냉기를 뿜어냈음에도 녀석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확실히 강해진 모습이었다. 녀석을 상처 없이 잡으려는 건 욕심인 듯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왜 이렇게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
콰콰쾅!
대전의 기둥들은 여지없이 부서져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자칫,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젠 별 수 없었다.
대전을 보호하려면 일단 녀석의 공격범위를 축소시켜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끙······ 또 쓰게 만드는군.
뱀은 이어,
웩!
하나의 알을 토해냈다.
녀석의 세 배 정도 되는 크기의 알은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양 팔과 양 다리를 가진 도마뱀으로 부화했다.
뱀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연달아 다섯 개의 알을 더 토해냈다.
알에서 나온 사아(蛇兒)들이 순식간에 도마뱀으로 자라났다.
피와 살로 만든 녀석들이다 보니, 이들을 만드는 건 자신에게도 다소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허나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는 법이니.
물론 이 정도로는 저 강해진 녀석을 잡기에 충분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힘을 빼는데 치중한다면, 녀석을 몰아세우는 게 그리 어렵진 않으리라.
그리고 녀석의 힘이 다 빠지는 순간,
-전에 한 번 상대해봐서 알겠지? 이 녀석들이 그때처럼 살살할 거라곤 생각하지 말거라.
“아하, 요 녀석들? 오랜만이네.”
녀석은 이 어미의 입속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저 턱주가리 인간을 붙잡아라!
*
됐다.
뱀이 알을 토해낸 순간, 나는 1단계의 성공을 직감했다.
생각보다도 훨씬 더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대전을 부수는 게 이토록 효과적이었을 줄이야.
실은 저 도마뱀들을 이끌어 내기 위해 준비한 게 제법 있었던 것이다.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장수풍뎅이의 뿔과 장갑, 뱀의 각종 공격들을 흘려낼 최상급요괴들의 가죽 몇 종, 그리고 위장효과가 있는 비늘까지.
심지어 전과 같이 일부러 도망을 다닐 요량으로 루트까지 짜둔 참이었다. 그래야 저 녀석들이 다시 한 번 추격자로 등장하게 될 줄 알고.
그런데 이토록 금방 녀석들을 대령할 줄이야.
더 없이 좋은 시작이었다.
“후······.”
그즈음 나는 쥐고 있던 장수풍뎅이의 뿔을 내려놓은 다음, 눈앞의 거대한 도마뱀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난번에 이 녀석들을 봤을 땐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뱀의 독액을 맞곤 굉장히 위태로웠던 상황인데다, 이미 힘이 다 빠져 떨치기가 힘들었으니.
녀석들을 닮은 그림자만 봐도 흠칫, 흠칫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뭐랄까······ 그저 귀여운 아기 도마뱀에 지나지 않았다.
“요 녀석들. 응애, 해봐.”
이에,
후룩-.
후룩-.
녀석들이 마치 내게 응답이라도 하듯, 위협적인 소리를 내뱉으며 한 발 한 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괜찮겠어?”
나 또한 물러남 없이 녀석들과 마주했다.
곧이어,
캬아악!
캬악!
길게 발톱을 세운 녀석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나는 내게로 달려드는 도마뱀들에게 곧바로 반격하는 대신, 일단은 회피하며 녀석들의 수준을 살피는데 집중했다. 어느 정도로 맞받아쳐야 적당할지를 재야했기 때문이다.
푸슉-.
푸슉-.
앞에서 셋.
뒤에서 둘.
측면에서 하나.
이어 머리와 가슴으로 동시에 날아든 발톱을 슬쩍 옆으로 이동해 피한 뒤, 뒤로 거리를 벌렸다.
공격들이 꽤나 빨랐다.
놀랍게도, 육체의 빠르기로만 따진다면 이 녀석들 모두가 최상급요괴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외에 따로 고유한 능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전에 비해 더 강한 녀석들을 토해낸 모양이었다.
다만,
“이게 다라면 조금 아쉬운데? 역시 본체와 직접 상대하는 편이 낫겠어.”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나는 호기롭게 외치며, 옆에 놔뒀던 장수풍뎅이의 뿔을 다시금 집어 들었다.
그러자,
-흥, 확실히 여유가 좀 있긴 한가 보구나. 그럼 좀 더 긴장감 있게 해볼까?
약간 당황했는지, 뱀이 연이어 알 네 개를 더 토해냈다.
‘좋아.’
총 열 마리. 이 정도면 딱 괜찮을 듯했다.
적당히 없애고, 적당히 보충시키며, 계속해서 소모전을 벌일 수 있을 정도의 양.
도마뱀의 수를 더 늘릴 수만 있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즈음엔 이 녀석이 다른 방법을 들고 나올 지도 모르니.
도마뱀들을 계속해서 뽑아내는 게 중요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 녀석들이 다름 아닌, 저 거대한 뱀의 피와 살로 된 존재이기 때문에.
즉, 이들 자체가 뱀의 일부라는 뜻이었다. 아주, 아주 작긴 하지만.
그러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 작은 녀석들을 토해내고, 또 토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저 커다란 뱀에게도 유의미한 영향이 가게 될 것이다.
‘얼마나 걸리려나.’
물론, 이게 대단히 무식한 방법이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무려 만년을 살아온 뱀과 ‘체력전’을 펼치려 하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내가 찾은 가장 효율적이고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기도 했다.
그즈음,
콰직!
“어라? 열 마리인 줄 알았는데······ 하나가 없네?”
나는 때마침 손에 걸린 도마뱀 한 마리의 머리통을 부쉈다.
확실히 죽인다면 뱀에게 재흡수 되지 않을 것이다.
이어,
웩!
-여기 있지 않느냐. 방심하다간 금방 같은 꼴이 날 것이다.
분노한 뱀이 또 하나의 알을 내뱉었다.
“뭐야, 나 상처 없이 삼키려고 하던 거 아니었어? 이렇게 계속 도마뱀 뽑아도 되는 거야?”
-팔다리 하나 떨어뜨리는 것 정도로는 맛이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건방진 네 놈에게 약간의 교육 정도는 필요할 듯 싶으니.
“그래? 그럼 어디······ 해보던가.”
나는 그러고 씩 웃은 채, 다시금 도마뱀들과의 전투를 시작했다.
그즈음 내 머릿속으로 마치 다짐 같은 예견이 떠올랐다.
이 전투는 아주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아주 지난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종료되는 시점은 아마 다음의 두 조건 중 하나가 충족될 때가 될 것이다.
내가 지쳐 나가떨어지거나.
녀석의 피와 살을 줄이고 또 줄여, 어떻게든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의 녀석의 무게를 떨어뜨리거나.
*
“헉, 헉······.”
꽤나 오랜 시간이었다.
마침내 턱주가리 인간이 무릎을 꿇었다.
녀석에게 죽어간 사아(蛇兒)들이 얼마나 될까.
터지고, 부서지고, 찢기고, 조각난 도마뱀들의 흔적이 온 대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뱀은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죽어간 자신의 ‘피와 살’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끝이다.
녀석은 더 이상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 보였으니.
-지친 모양이구나.
“헉, 헉······.”
사실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실로 오랜 시간이지 않았나. 자신 또한 제법 힘이 빠졌을 정도였다.
뱀은 그즈음 자연스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깐의 허기를 달래줄 만한 녀석이 있나 봤는데 없었다.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이 쫓아 보내긴 했지만 약간 아쉬움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이토록 기력을 소모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
하지만 뭐,
‘상관은 없겠지.’
이제 곧 저 녀석을 먹으면 되니까.
잠깐의 허기는 더 큰 만족감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고 뱀이 녀석을 향해 혀를 날름거렸을 때였다.
느닷없이,
“헉, 헉······ 비밀 하나······ 헉······ 알려줄까?”
녀석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비밀?
“헉, 헉······ 내가 빠른 시간 안에 어떻게······ 헉······ 이렇게까지 강해졌냐고 궁금하다고 했었지?”
-호오, 말해주겠단 거냐?
녀석은 잠시간 호흡을 가다듬곤, 이내 말을 이어갔다.
“별 거 아니니까. 내가 활용한 건 멈추지 않는 성장이란 고유능력인데······ 헉, 헉······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내 모든 능력을 성장시켜 주는 거거든?”
-허, 거참 놀랍구나.
“그렇지. 굉장한 능력이지. 이를 통해 이만큼이나 강해질 수 있었으니까. 근데 문제는, 일정 시간이 지나자 이 성장이 굉장히 더뎌졌다는 거야. 능력 진화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뭐랄까······ 한계가 왔다고나 할까.”
이는 당연한 이치였다.
모든 생물의 성장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후후, 생물의 능력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느냐. 단 하나, 이 몸만은 예외지만.
“물론 계속해서 버티고 있다 보면······ 이보다도 더, 어쩌면 네 녀석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도 있었겠지. 헉, 헉······ 근데 내가 그렇게까지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거든.”
이에 뱀은 코웃음을 쳤다.
-실로 오만한 녀석이로구나. 그래서 숨지 않고 나왔다? 시간을 끌기가 싫어서? 허나 방금 네가 직접 말하지 않았더냐, 더 성장해야 나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지. 인정해, 아직은 부족하다는 거. 헉, 헉······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무턱대고 나온 건 아냐. 나름 꼼수를 찾아냈거든.”
그즈음,
-응?
녀석의 호흡이 놀라우리만치 잦아들기 시작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이 능력의 운용법 중에 특이한 게 하나 있어. 성장담보대출이라고, 미래의 성장을 저당 잡아두곤 치유나 회복력 따위를 빌려 오는 개념이지.”
-성장담······ 뭐라?
“들어 봐. 근데 놀라운 건······ 능력을 진화했더니 글쎄, 그 대출 통장을 여러 개 만들 수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니······ 무슨?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녀석이 갑작스레 멀쩡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힘든 기색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크고 작게 입었던 상처들 또한 말끔히 회복된 모습이었다.
이어,
“그럼 슬슬 2라운드에 들어가 볼까? 참고로 말하자면······.”
녀석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자리했다.
“나는 15라운드까진 준비되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