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작별인사
***
웨스트랜드.
모험가의 도시 어드벤티움.
주걱턱 형님이 떠난 지 정확히 일주일 째.
마침내 도착한 옛 고대문명의 중심지이자, 모험가들의 성지라 불리는 어드벤티움을 돌아보며 치누아비는 감격에 잠겼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물론, 감격의 이유가 단순히 옛 추억을 몽글몽글 상기시키는 장소에 도착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죽어라 움직여, 끝내 제시간 안에 목표장소에 도착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다.
“휘유, 아슬아슬했네요. 얼마나 남았지요?”
“넉넉했어.”
“······넉넉이요?”
“한 시간이나 남았는걸?”
그러곤 코코아가 노스랜드산 손목시계를 흔들어 보였다.
“······.”
한 시간이면 넉넉했다 말하기엔 그리 여유로운 시간은 아니지 않나?
그것도 이틀 밤낮을 쉬지 않고 이동해 간신히 도착한 것인데?
심지어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한 하카 씨는 아직 합류하지도 못한 상태였고.
다만,
“아하······ 그랬군요! 시간까지 다 계산된 거였다니, 역시 코코아입니다!”
치누아비는 딱히 그에 반론을 제기하진 않았다.
코코아의 저 자신만만한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싶은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을 뿐더러, 어쩌면 정말로 계산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길잡이의 눈은 찰나의 시간조차 포착한다고 들었으니.
또한 실제로 ‘킹스로드를 건널 모험단 선발시험에 응모하라’는 주걱턱 형님의 말을 이행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다 그녀 덕이었다. 코코아가 아니었다면 애당초 참가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을 테니.
즉, 감히 코코아의 말에 토를 달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엿새 전, 일행은 난데없는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보름에서 한 달 사이에 선발전이 개최될 거라는 주걱턱 형님의 말과는 달리, 황당하게도 그가 떠난 지 단 하루 만에 모집공고가 돌았던 것이다.
세계의 왕을 꿈꾸는 모험가들이여.
준비되었는가.
여기 약속의 시간이 도래했다.
모험의 꿈을 불사르려는 자, 두려움을 잊은 자, 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자.
그리하여 모든 걸 얻을, 모험의 탑에 오르려는 자.
도전하라.
여기 킹스로드를 건널 심판의 배가 출항준비를 끝마쳤으니.
-자격을 갖춘 자, 18일 정오까지 어드벤티움으로.
의뢰를 받고자 가까운 모험가협회의 지부를 방문한 게 아니었다면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선발시험에 참가하기 위해선 A급 모험의뢰를 기한 내 두 개를 완수해야 했다.
임무를 완수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울 게 없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기한은 고작해야 엿새 후.
엿새 안에 A급 의뢰 두 개를 완수한 후, 어드벤티움으로 가 참가신청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운이 좋게도, 마침 지부 내에 A급 모험의뢰가 하나 남아있었다. 다행히 이를 수주 받곤 하카 씨가 아무깨비 님과(어째선지 그는 도와주겠다며 함께 움직여줬다) 급히 출발하긴 했지만, 문제는 나머지 하나였다.
시간은 촉박한데, 모험의뢰 자체가 없었던 것.
남아 있는 거라곤 대다수가 C, D급에 간혹 B급이 섞여 있는 정도.
짐작하건대, 킹스로드 모집공고의 여파가 큰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야 이렇듯 높은 등급의 의뢰가 남아나지 않을 리가 없으니.
웬만하면 주변 도시들이 모두 다 같은 의뢰를 공유하기 때문에 다른 지부를 찾아간다한들, 없는 의뢰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모험의뢰를 찾아 대륙의 남부나 북부까지 이동하는 것도 마땅찮은 상황이었고.
이에 방도가 없어 전전긍긍해 하고 있을 바로 그때,
“별 수 없네. 만들자.”
코코아가 나섰던 것이다.
그녀가 내린 용단은 실로 명쾌하면서도 간단했다.
당장 수행할 모험의뢰가 없으면, 직접 만든다.
모험의뢰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첫째로, 각 대륙별 정부에서 대륙 곳곳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험가협회에 의뢰를 맡기는 것. 그것이 약식 검토 후, 곧장 모험의뢰가 되는 것이다.
둘째. 모험가 협회가 자체적으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에 한하여, 정식 검토 후 모험의뢰로 지정하는 것.
이 중 ‘만들어낼 수 있는 의뢰’는 첫 번째 것이었다.
두 번째 것은 아무래도 모험가 협회가 자체적으로 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진행한 후 검토까지 해야 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웨스트랜드 정부가 느끼기에 ‘A급 의뢰’라고 생각될 만한 사건을 일으킨 뒤, 이에 대한 수행의뢰를 직접 받아내겠다는 소리였다.
놀랍게도, 코코아는 이 복잡하고도 황당한 일을 아주 간단히 실행시켰다.
“부숴.”
첫 번째로, 한밤 중 몰래 정부기관의 건물 서너 개를 무너뜨린다.
특히나 당장 복구하지 않으면 행정마비를 일으키게 될 주요 건물들 위주로.
도로시 양은 단지 몇 번의 손짓만으로 이를 완수했다.
다음으로,
“우리 지나가던 모험가인데, 요기 무너진 건물들 수리해줄 수 있어.”
“오오······ 정말이십니까?”
“근데 바로는 안 되고, 절차가 좀 필요해.”
“절차라면······?”
“이걸 모험가협회에다 의뢰하는 형식으로 맡겨줬으면 해. 그래야 우리 실적이 되거든. 서둘러줘. 우리도 바로 수리에 들어갈 테니까. 코미어, 시작해줘.”
위이잉-.
“빠, 빠르시군요.”
“아참, 필요등급은 A야. 이게 중요해. 등급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이 건물 모가지도 같이 떨어지는 거야. 그 정돈 맞춰줄 수 있지?”
“······.”
곧바로 협상까지.
물론 이 같은 행위는 차후 국제평의회에 의해 적발되어 문제가 될 소지가 있긴 하다.
모험가협회 쪽에야 정부의 의뢰가 돈이 되니 딱히 사건의 원인까지 조사하진 않지만, 국제평의회는 다르다. 그들은 모험가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행한 수많은 파괴행위들과 불법적인 일들에 관하여, 정부를 대신하여 정식으로 협회에 문제제기를 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다만,
“들키면 뭐 어때. 그땐 이미 킹스로드를 건너 가 있을 텐데.”
설사 그게 문제가 된다하더라도 그즈음엔 이미 선별시험은 모두 끝난 뒤일 거라는 것.
그렇게 서둘러 의뢰 착수절차만 끝마친 뒤, 코미어 씨만 두고 곧장 움직이기 시작한 게 바로 이틀 전이었다.
실제로 하카 씨나 코미어 씨가 아직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경우, 여전히 자격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들이 성공했으리라 굳게 믿긴 했지만,
때마침,
“공주님!”
그들의 수행결과를 알아보러 간 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어,
“됐어요! 여기!”
도로시 양이 내민 건 석 장의 모험의뢰 완료증서였다.
-A급 모험의뢰 완료증서 [이스트랜드 마이닌 왕국 제2왕녀 보호 및 동행]
-A급 모험의뢰 완료증서 [꼭두각시 암살단 조사업무]
-A급 모험의뢰 완료증서 [자메르시티 시청사 보수작업]
성공이었다.
이제 자격심사만 받으면 된다.
“좋아요, 그럼 신청하러 가봅시다!”
그러고 앞장서 가려 할 때였다.
그즈음,
“그러고 갈 거야?”
코코아가 슬쩍 자신을 쳐다봤다.
“예?”
“그 얼굴로 갈 거냐고.”
“······아.”
중요한 걸 빼먹을 뻔했다.
치누아비는 곧바로 본연의 얼굴 대신, 이번 선별시험 폭풍의 핵이 될 인물의 얼굴로 모습을 바꿨다.
18일 정오까지 한 시간 전.
모험의 도시, 어드벤티움에 주걱턱 등장.
*
21일 아침.
두골제국, 수도 바란토르.
“어······ 벌써? 금방 왔네?”
테르미스 왕녀는 꽤나 의아한 기색이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금방이라니······ 600일이 넘게 흘렀구먼.
하지만 뭐, 그녀의 입장에선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올 법했다.
일단 나부터가 꽤나 비장한 얼굴로 찾아왔던 데다가, 바야르 칸 또한 그토록 역정을 내며 그녀의 동행을 막지 않았던가.
헌데 열흘도 채 되지 않아 돌아왔으니.
“그냥, 뭐. 어쩌다 보니?”
“흐음······ 그런데 혼자야?”
테르미스는 주위를 둘러보다 다시금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아, 바야르 칸과 구구는 거기 남은 일이 있어서.”
“남은 일?”
“내가 볼 일을 끝마칠 때까지, 아주 놀고먹고만 있었더라고. 내가 걱정이 됐다는 핑계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물론 실제로 막 출구를 빠져나온 뒤, 마주친 녀석들의 표정은······ 꽤나 가관이긴 했다.
경악, 충격, 혼란, 기쁨, 안도······ 그 모든 것의 총체랄까.
하긴 뭐,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틀······ 아니 정확히는, 200일 만에 오겠다고 한 인간이 무려 600일이 넘어서야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덕분에 바쁜 와중에도, 녀석들을 앉혀놓고 꼬박 반나절 동안이나 상천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털어놓아야 했다.
뱀의 정체와 녀석이 구축해둔 시스템, 죽을 뻔 했던 위기와 나의 성장의 관하여, 그리고 마지막 열흘간의 사투까지.
그 와중에,
-뭐!? 그래서 네놈이 그 뱀을 들었다고!? 믿을 수 없다!
“아니, 내가 아니라 내가 소환한 유령이 들었다니까요? 영감도 본 적 있지 않나? 그때 몽이라는 녀석과 싸울 때 소환했던······.”
-이 자식이! 네가 됐건, 그놈이 됐건! 어쨌거나 들었다는 거잖아! 나와도 한 번 힘을 겨뤄보자!
“······.”
본의 아닌 힘자랑까지.
-크아아아악!
바야르 칸은 내게 내동댕이 처진 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별 힘도 쓰지 않고 한 손만으로 그를 집어던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 이미 나는 페널티가 적용되어 있던 상태였다.
상천세계에서 벗어난 직후, 내게 적용된 ‘시간의 부하’는 무려 100배.
쉽게 말해, 모든 능력들이 1/100로 감소된 셈이었다. 그것도 무려 600일 동안이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상화 된 바야르 칸은 아주 쉽게 제압이 가능했다.
설사 백분의 일로 줄었다 할지라도, 이곳에 들어가기 전의 나보다는 훨씬 강해진 상태였으니.
-세, 세졌구나.
“조금요?”
-흐, 흥! 그래도 내 본신의 힘만은 못하지만!
“아무렴요.”
어쨌거나 이야기를 마친 후,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유롭게 수다를 떨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따라 일어나려는 그들에게 한 마디 했다.
“요수계는 다 정리됐어?”
-응? 그야······.
“뭐, 몇 놈들 제외하고는······.”
“이 주위에서만 노닥거렸다면서 뭘. 게다가 지금 구구와 네로, 둘 다 이전과 별 차이가 없어. 확실히 더 성장하고 와.”
“뭐? 하, 하지만!”
“적어도 한 단계는 더 진화해야 돼. 그렇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모험에 방해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
“······.”
이어, 나는 바야르 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영감님, 부탁드립니다.”
-아니 뭐······ 그 정도야 뭐······.
“얼추 정리가 끝나면 곧장 웨스트랜드로 넘어와. 늦어도 보름 이내로. 아니, 열흘 안으로.”
그러곤 곧바로 수도를 향해 ‘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테르미스는 나 혼자만 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던 모양이다.
“거기······ 남겨놨다고? 근데 그곳 위치가 엄청 아래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 목적지가?”
“요수계? 그렇지, 남만 항구보다도 훨씬 더 아래에 있으니.”
그러자 왕녀가 놀란 황당하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 그런데 하루 만에 왔다고?”
“응? 아······ 달리기가 좀 빨라졌거든.”
“······.”
“그건 그렇고, 알아봐 달라고 한 건?”
나는 가기 전에 부탁해 뒀던 정보에 대해 물었다.
선별시험에 관한 정보를 구할 수 있으면 구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응? 아······.”
이에 왕녀가 품속에서 주섬주섬 서신 몇 개를 꺼냈다.
“여기······ 모집장소는 어드벤티움이라는 곳이네. 사흘 전에 열렸고.”
“어드벤티움? 거기 말고, 진짜 시험장소. 거기는 기껏해야 소집지에 불과하니까.”
물론 원작에서도 이 선별시험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만, 나는 그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단순한 이유였다. 원작에서 장소나 지역 명에 대한 명확한 언급 없이, 곧바로 시험이 시작되는 것으로 장면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직접 그 장소를 보면 거기가 거기인 줄 알겠지만, 구체적인 지명은 모른다고나 할까.
그리고 또 하나.
혹, 그 대상지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여러 차례 전개가 바뀌는 과정에서 등장하지 못한 장소도 여럿 되지 않는가. 등장시키지 못해 아쉬웠던 장소들에 한해, 작가가 입맛에 맞춰 넣어뒀을지 누가 알겠는가.
하여, 정보의 수집을 요청했던 것이다.
다만,
“그건 아직. 계속 소식이 들어오고는 있는데, 그에 대한 건 없네.”
아쉽게도 소득은 없는 듯했다.
“그래? 흠······ 어디가 됐든 웨스트랜드 어디겠지.”
하지만 뭐, 그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
그즈음 나는 테르미스를 응시했다.
사실 내가 굳이 이곳까지 하루를 꼬박 달려온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테르미스에게 부탁한 정보를 듣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건 그저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내가 온 이유. 그건 바로 테르미스 본인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할 말이 있는데.”
“응? 어떤?”
“······.”
글쎄, 이를 뭐라고 말해야 할까.
예상대로 ‘선별시험’ 에피소드가 수개월 일찍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는 작가가 용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사우스랜드 에피소드도, 이스트랜드 에피소드도 배제한 채, 그대로 전개를 이어나가겠다고.
선별시험 다음은 곧바로 킹스로드를 건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미들랜드로 넘어간 다음엔, 곧바로 모험의 탑까지 다이렉트로 이어진다.
그 사이에 이스트랜드는 등장하지 않는다.
즉, 그녀를 위해 준비된 이야기들이 모두 사라질 거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는 곧,
“별 건 아니고······.”
“별 게 아닌데 이렇게 뜸을 들여?”
이제 다시는 이 녀석과 볼 일이 없을 거라는 뜻이었다.
아마도 영영.
“······.”
나는 쉬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작별.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와의 첫 작별이었다.
게다가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마음조차 가지지 못한 채 작별한다는 건······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
내 계속된 침묵에, 테르미스 또한 어떠한 ‘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난데없이,
“나도 같이 가!”
그러고 소리를 질렀다.
“어딜.”
“같이 가자고.”
“참나, 어딘 줄 알고.”
“어디긴 어디야, 여기 나와 있네.”
그녀가 서신 한 복판에 있던 문구를 가리켰다.
-킹스로드 모험단 선별시험.
“킹스로드.”
“네가 어떻게 가.”
“왜 못가.”
“넌 네 할 일이 있어.”
“그야 잠시 맡겨놓고 가면······.”
하지만 이내 테르미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 또한 그것이 말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였다.
“······보호해.”
“뭘?”
“네 임무를 다해, 주걱턱! 너는 분명히 나를 보호하기로 맹세했었어!”
“아······.”
그건 맞는 말이었다.
다만,
“미안한데, 그렇겐 안 되겠는데.”
“어째서!”
“나는 모험왕이 될 거니까. 자그마치 세계의 왕이라고, 어떠한 규율이나 제재에 속박되는 존재가 아냐. 완전한 자유인, 그게 바로 모험왕이지. 그런데 그런 시시콜콜한 약속 따위에 얽매이겠어?”
“하······.”
테르미스는 이에 황당하다는 듯 나를 쏘아보다,
“아직 아니잖아!”
대단히 논리적인 반박을 펼쳤다.
“그렇긴 한데······ 뭐 될 거니까.”
“······.”
물론 이 같은 언쟁이 그리 의미가 없다는 것쯤은 그녀도, 또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을 뿐이지.
이윽고, ‘보호해’ 대신 그녀가 택한 단어는 대단히 간단한 것이었다.
“돌아와.”
“뭐?”
“모험의 왕인지 뭔지가 된 다음 다시 돌아오라고. 그럼 되잖아.”
“참나, 그게 쉽나.”
“될 거라며. 된 이상엔 상관없는 거 아냐?”
“······.”
글쎄, 그러려나.
그것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과연 내게 그 ‘결말 이후의 세계’가 열려 있을까.
솔직히 자신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끝’이 명확한 존재였으니.
때마침,
‘······끝이라.’
내 머릿속에 어렴풋이 뭔가가 떠올랐다.
라미레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거나, 숨기고 싶어 하는 걸 비쳐주는 거울.
지난 날, 지브란테에서 그 거울을 통해 봤던 것이 불현듯 생각이 났던 것이다.
무(無)
아무것도.
거울 속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이를 보고도 별 생각이 없었다.
단지 ‘내가 밖에서 온 존재이기 때문인가? 그래서 거울의 효과가 없는 건가?’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을 뿐이지.
지금에서야 느끼는 바이지만, 어쩌면 나는 이 이야기의 끝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독자들이 이를 두려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기묘한 일이었다.
뭐 어쨌거나.
“······그러지 뭐.”
“약속한 거야.”
“그럼.”
돌아오라고 말해주는 동료가 있는데. 이 정도 약속이야 못해줄까.
“물론 모험왕이 되면, 그깟 약속 따위에 얽매이지 않겠지만.”
“······참나.”
“잘 지내고 있으라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러곤 나는 이 이야기가 선사해주지 못한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을 불러주었다.
“······아르테 칸.”
“아르······뭐?”
나는 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별인사는 간단할수록 좋은 법이다.
“간다.”
이어, 나는 웨스트랜드를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