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선별시험(1)
***
어드벤티움.
지하수로 중심부.
수십 개의 거대 지하수로가 한데 모이는 곳.
모험가 자격시험 당시 기초 자질 테스트 ‘인성’ 부문이 치러졌던 시험장으로, 무려 바이킹을 띄워 인질 전원을 구출해냈던 추억의 장소.
바로 그곳에, 그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중앙의 수조를 중심으로 빙 둘러 서 있었다.
물론, 모인 면면들의 수준은 그때와 비교하면 가히 하늘과 땅 차이이긴 했지만.
그즈음 주걱턱, 아니 그로 둔갑한 치누아비는 꽤나 긴장해 있던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모처럼 추억을 곱씹으며 들어온 곳에서 하필 처음 마주친 상대가,
“······역시 네놈들도 왔군.”
다름 아닌, 칼 자이드였던 것이다.
‘으힉······.’
치누아비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숱한 모험가들 중에서도, 경계대상 1호가 바로 저 인간이었다.
사우스랜드에서 정령들을 얻은 직후, 이젠 무력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저 인간과는 부닥치고 싶지 않았다.
저자야말로 현 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모험가로 인정받는 이가 아니던가.
더욱이 주걱턱 형님께 언뜻 듣기로, 그는 ‘끊임없이 강해지는 능력’을 보유한 능력자였다. 아마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강해져 있을 게 분명했다.
“후······ 조심.”
일단 치누아비는 일행들에게 먼저 주의를 줬다.
선별시험장이니만큼 섣부른 행동을 하진 않겠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저 인간은 주걱턱 형님과도 꽤 질긴 악연이 있지 않나. 심지어 바로 이곳, 모험가 자격시험에서가 바로 그 시작이었고.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헌데,
스윽-.
‘응?’
칼 자이드는 자신을 힐끔 쳐다보곤, 그저 말없이 지나쳐갔다.
뭐지?
치누아비가 의아한 마음에 그를 쳐다봤음에도,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적어도 한 마디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물론 뭐, 나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치네요? 왜일까요?”
이어 뒤돌아 코코아와 도로시 양에게 말을 걸려 할 때였다.
“쉿, 앞에 봐.”
“예?”
느닷없이 코코아가 주의를 줬다.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저, 저자는······.”
칼 자이드에 버금갈 정도로 무시무시한 인간이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치누아비는 머릿속을 뒤적여, 그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그로니얀.
지난 날, 지브란테에서 주걱턱 형님과 필사의 대결을 펼쳤던 존재.
몇 번 보지 않았음에도 강렬히 인상이 박혀 있던 인물이었다.
심지어 당장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전에 봤던 것보다도 훨씬 더 과격해져 있었다.
몸의 절반가량이 기계로 대체되어 있는 몰골이라니.
“허······.”
그러나 놀라고만 있을 때는 아니었다.
저자에게 있어 주걱턱 형님은, 그러니까 자신이 둔갑한 이 얼굴의 주인은 원수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가 의식하기 전에 얼른 자리를 피해야······.
그러나,
“호오······ 반가운 얼굴이 있었군.”
이미 늦은 모양이었다.
그로니얀이 자신을 보곤 곧장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의 두 눈이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이런······.’
아무래도 피할 순 없을 듯했다.
치누아비는 몹시도 긴장된 기색으로 그를 기다렸다.
이윽고,
휙-.
녀석이 자신을 지나쳐갔다.
응?
당혹스러웠다.
“······?”
그는 단지 자신을 한 차례 힐끔 쳐다봤을 뿐이다.
대신 그의 걸음이 멎은 곳은,
“보름 정도 된 것 같군. 나를 기억하나?”
도로시 양 앞이었다.
“······반 깡통.”
“반······ 좋아, 뭐라 부르든 상관은 없겠지. 어쨌거나 그땐 경황이 없어 제대로 겨뤄보지 못한 것 같은데······ 어때, 지금이라면?”
“나머지 반쪽도 깡통으로 채우고 싶지 않다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뭐, 뭐라? 크하하, 크하하하!”
치누아비는 당혹스러움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자신을 무시하곤 곧바로 도로시 양에게 갈 줄이야.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원수와도 같은 이 몸을 무시한단 말인가.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건,
‘부, 붙어볼 만한 건가?’
저 그로니얀이 적수로서 그녀를 인정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주걱턱 형님이 도로시 양을 ‘대적자’로서 영입했다는 것 정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저 그로니얀과 맞붙을 정도였다니.
그즈음 치누아비는 자신이 아직 도로시 양의 무력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껏 그녀의 힘을 제대로 본 적은 단 한 번, A급 모험의뢰를 만들려고 정부의 건물을 무너뜨릴 때뿐이었으니.
손짓 몇 번 만으로 건물을 무너뜨린 것. 물론 그것 역시도 충분히 놀랍긴 했지만. 그렇다고 감히 저 그로니얀에 비할 바는 아니었는데.
그건 고작해야 몸 풀기 수준밖에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형님이 괜히 데려온 건 아닐 테니.’
어쨌거나 마냥 놀라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일단은 말려야 했다. 도로시 양의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선별시험 전에 소란을 일으켜선 곤란했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을 중재하기 위해 소리를 내려 할 참이었다.
바로 그때,
“아, 아버지! 그, 그만하세요!”
멀찍이서 누군가가 소리를 치며 달려왔다.
응?
‘저 소년······.’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분명 레오 모험단에 소속된, 얀이라는 녀석이었다.
소년은 곧장 그로니얀에게 다가가선, 다소 주저하는 목소리로 그를 말렸다.
“뭐냐?”
“그, 그게······.”
“썩 꺼지거라. 끼어들 생각하지 말고.”
“하, 하지만······ 아직 시험이 시작하기도 전에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키면······.”
“그게 뭐? 내가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키든 뭐든, 그게 너랑 당최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러자,
“그, 그럼······ 저, 저희 모험단과의 혀, 협력도 없어지는 거예요!”
소년이 대뜸 그러고 소리쳤다.
나름 용기를 쥐어 짜낸 듯한 모습이었다.
다만,
“허어······ 얀, 설마 네놈이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게냐?”
그 기세는 단숨에 죽고 말았다.
그로니얀이 눈 한 번 번뜩이자, 금세 소년이 눈을 내리 깔았던 것이다.
“그, 그게 아니라······.”
그때,
“그로니얀, 얀의 말이 맞아. 당신이 문제를 일으키면 우리의 협력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었다. 레오 모험단.
그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잊었어? 우리의 협력이 없으면, 당신은 저 주걱턱 모험단을 당해내지 못해. 잘 알 텐데.”
“흥, 건방진 번개 꼬맹이 같으니라고. 그거야 해보면 알 일 아니더냐.”
“좋아, 그럼 말리지 않을게. 다만, 그 이후에 우리의 협력은 기대하지 말도록 해. 당연지사, 킹스로드 선별시험에서의 협조도 없을 것이고.”
“허, 빌어먹을 꼬맹이가······.”
그로니얀은 그러곤 이를 갈며 레오를 쳐다보더니, 이내 말없이 스르륵 물러났다. 도로시 양에게 불같은 시선을 한 차례 쏘아 보낸 다음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안녕?”
레오가 말을 걸어왔다.
드디어!
치누아비는 마침내 무시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뻤다.
형님으로 둔갑했을 때 여태 이랬던 적이 없었거늘······.
“흠흠······.”
치누아비는 이어 흥분을 가라앉힌 채, 인사에 응했다.
“그래, 안녕하······.”
“너는 도깨비지? 주걱턱은?”
“응?”
“또 어디 갔어?”
“······.”
치누아비는 또 한 번 당황하고야 말았다.
“그, 그게 무슨······.”
“설마 안 온 거야? 참나, 역시 대책이 없다니까? 이런 날에도 안 나타나고?”
긴가민가해 하는 기색 따윈 없었다.
레오란 소년은 이미 자신이 주걱턱 형님이 아니란 걸 똑똑히 알고 있었다.
이에,
“대, 대체 어떻게 알았지요?”
치누아비는 자기도 모르게 놀라 물었다.
그러자 레오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별 거 아냐. 어느 즈음부터 개개인이 내뿜는 기파를 느낄 수 있게 됐거든. 너랑 주걱턱은 그게 많이 다르니까. 아, 그래도 여기서 네 변신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몇 되지 않을 거야. 나도 얼마 안 됐어.”
“······.”
때마침, 치누아비의 머릿속에 옛 어르신들이 말씀이 스쳐지나갔다.
모든 문제들이 완벽했다면, 해독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속임수에 허점이 없었다면, 도깨비들은 이미 세상의 주인이었을 것이다.
도깨비들의 장난은 언젠가는 모두 간파당하고 만다.
‘칫······.’
강자들의 눈은 속이기 힘들다더니.
말마따나 아직 자신의 둔갑술을 간파한 이가 많지는 않은 듯했지만, 그걸로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후······.”
그러고 시무룩해진 치누아비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을 무렵,
-안녕하십니까, 모험가님들!
웬 낭창한 음성이 지하수로 전체에 울려 퍼졌다.
-모험가협회입니다. 잠시만 이쪽을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저기다!”
“수조 위야!”
“저기 있다!”
주위 여러 모험가들이 중앙 수조를 가리켰다.
거기 물로 가득 찬 수조 위에, 언제 나타났는지 웬 자그마한 나룻배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위에, 웬 정장을 입은 남성이 손에 마이크를 쥔 채 서 있었다.
그가 이번 자격심사의 안내를 맡은 사회자인 듯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걸 확인한 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래는 이곳에서 몇 차례의 기본 자격심사를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계획이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어쩌다 일정을 급히 앞당기게 된 관계로, 번거로운 절차는 모두 건너뛰기로 결정된 바, 모험가님들의 기본 자격심사는 일전의 서류제출을 통해 모두 통과되었다고 알려드립니다!
응? 모두 통과?
치누아비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다소 허탈한 감이 없잖아 있는 게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자잘한 절차는 사라졌다는 것이니.
다만, 모두가 다 긍정적인 반응을 내보인 건 아니었다.
“뭐, 뭣!?”
“뭔 소리야!?”
“그럼 대체 여긴 왜 모인 거야?”
-좋은 질문이십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을 이곳까지 불러 모은 이유! 이는 3일 뒤 치러질, 진짜 선별시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킹스로드를 건널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곤 그는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뒤,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치러야 할 단 하나의 시험! 그 이름하야, 비자이트 협곡 오르기!
사회자의 비장한 한 마디에도, 딱히 별 호응이 일지는 않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협곡 오르기? 말만 들어선, 그리 확 와 닿지 않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킹스로드를 건너려는 모험가들은 모두 미들랜드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모험의 탑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 시험은 바로 그 모험의 탑의 구조를 흉내 내 만든 것으로, 모험가님들께 아주 좋은 공부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호오.
이는 꽤 흥미로운 얘기였다. 모험의 탑을 흉내 냈다니.
그렇게 느낀 게 자신만은 아니었는지, 그즈음부터 주위의 웅성거림이 늘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비자이트 협곡엔 세 개의 오르막길이 있습니다. 협곡의 끝으로 이어진, 아주 위험하고도 긴 길이죠. 이름하야, 증명의 길. 이번에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모험단이 총 셋이라는 건 모두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각각의 길을 차지할 세 개의 모험단. 그들이 곧 킹스로드를 건너게 될 모험단입니다. 간단하죠?
말마따나 간단한 방식이었다.
세 개의 길, 세 개의 모험단.
물론, 아직 설명이 좀 부족한 것 같긴 하지만.
-세부적인 규칙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각 길들은 각각 스무 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층부터 20층까지죠. 이건 저희 측에서 임의로 나눈 것입니다. 그리고 각 층에는 깃발이 하나씩 꽂혀 있습니다. 해당 층의 점령자를 표시하는 것이죠. 길을 걷는다는 것엔 그 층을 점령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선별자격을 얻기 위해선 길 위에 놓인 스무 개의 깃발을 모두 수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점령자와 깃발.
간단한 표시였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규칙을 말씀드려야겠네요. 자, 모험단 여러분은 어느 층에서 길을 걷기 시작하셔도 상관없습니다. 1층에서 시작하셔도 되고, 2층, 3층······ 혹은 19층, 20층에서 시작하셔도 됩니다.
“뭐!?”
“그게 무슨?”
“그럼 아래의 깃발들은?”
-간단합니다. 기다렸다가 아래층에서 올라온 이의 것을 빼앗는 것이죠.
그러자,
“그게 무슨!”
“그럼 모두가 다 20층에서만 시작하려고 하겠지!”
“누가 1층에서 시작하려고 하겠냐고!”
황당해 하는 소리들이 빗발쳤다.
그러나 이어진 사회자의 말이 가관이었다.
-누군가는 하겠죠?
······.
-아참, 제가 제한사항 하나를 빠뜨리고 말았네요. 각 층의 참여자는 단 하나의 모험단으로 제한됩니다. 즉, 모두가 20층에서 시작하는 걸 원하시더라도 그게 가능한 모험단은 고작해야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를 어떻게 정하느냐? 그건······ 그냥 알아서들 정하시면 됩니다. 간단하죠?
알아서 하라는 것.
말마따나, 간단했다.
바로 대적.
싸워서 쟁취하라는 것이었다.
깃발 이전에, 층을.
-정리하자면, 총 20층으로 나뉜 길이 세 곳. 즉, 총 60개의 모험단만이 기본적으로 시험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층부터 차례차례 2층, 3층······ 20층까지 올라가면서 깃발의 소유자가 계속해서 바뀌거나, 혹은 그대로 유지되겠죠. 그리고 한 층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엔 제한을 둘 겁니다. 이는 시험이 쓸데없이 길어질 걸 방비하기 위함이죠. 길을 걷는 이가 해당 층에 도착한 뒤,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총 하루입니다.
그때였다.
“질문 있는데.”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곤 말했다.
“1층에서 시작하는 모험단은 길을 차지하기 위해선 무려 스무 번을 싸워야 해. 하지만 20층에서 시작하는 녀석들은 한 번이면 되지. 19층에서 올라온 모험단만 처치하면 되니까. 내 생각엔 누구도 1층에서 시작하려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사회자는 이에 무척이나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만약 시험이 시작되고 3일이 지나도록 아무도 1층에서 시작을 하지 않는다? 그럼 해당 길 전체를 폐쇄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규칙 끝.
이후로는 한동안 웅성거림이 계속되었다.
전략을 짜고, 계획을 세우고, 연합을 구축하고······ 이것저것 할 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고 막 소음이 커져갈 무렵,
-흠흠.
뭔가 할 말이 남은 듯, 갑작스레 사회자가 다시금 마이크를 쥐었다.
-혹시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모험가님들 계십니까? 어떤 거라도 좋습니다. 연합을 제안한다든가, 혹은 선전포고를 한다든가.
그러곤 대뜸,
-혹시 거기······ 주걱턱 모험단?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근래 가장 유명한 모험단이라고 들었는데······.
이쪽을 지목하는 것이었다.
‘······응?’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걱턱 모험단?”
“저 녀석들이야?”
“얼마 전 노스랜드에서도 한 차례 난동을 피웠다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치누아비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의 기대어린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뭐야, 뭐냐고······.’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되지?
그냥 모른 체 할 순 없었다.
말마따나, 바로 그 주걱턱 모험단이지 않은가.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서 있던.
하지만 어정쩡한 걸 보여줬다간 되레 비웃음만 사게 될 것이다.
이때······ 이때 형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
그렇게 지옥 같은 정적이 몇 초간 흘렀을 때였다.
갑작스레,
“걱정 마. 대장이 나설 것까지야. 이정돈 밑의 단원들이 알아서 하면 되는 거니까.”
가만 이를 지켜보던 코코아가 나섰다.
그녀는 그러곤 무심한 어투로 도로시 양에게 말했다.
“도로시, 보여 줘.”
“네 공주님.”
곧이어 도로시 양이 불쑥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어, 어엇? 아······ 네! 한 분이 날아오시는 군요. 혹시 소속이?
수조 위에 있던 나룻배 위로 안착했다.
이어 그녀가 뺏어들 듯 사회자의 마이크를 잡아챘다.
-나는 주걱턱 모험단의 도로시. 한 마디만 할게. 우리의 길을 막아서지 마. 만약 그럴 경우······.
바로 그때,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허······.”
“저, 저······.”
“마, 말도 안 돼······.”
중앙 수조에 차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허공에 그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히 바다를 연상케 하던 수량(水量)이었다. 배까지 뜨지 않았던가.
믿기지 않는 신기였다.
헌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어 공중에 떠오른 물이,
팟-.
일순간 증발했다.
이윽고, 지하수로 전체를 뒤덮은 수증기가 모험가들에게 흩뿌려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
······.
누구하나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만큼 직전의 광경이 충격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는 치누아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 도로시 양······ 괴물이잖아?’
잠시 후,
-아, 아아······.
지하수로 내의 침묵을 깬 건 한 직업정신이 투철한 남자였다.
이제는 텅 비어 버린 수조 위에서 사회자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다소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해 오늘의 일정이 모두 끝났음을 알렸다.
-그, 그럼 사흘 뒤, 비자이트 협곡에서 뵙겠습니다!
*
사흘 뒤.
비자이트 협곡.
사회자의 신호에 따라 선별시험은 이미 개막이 되었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모험단은 없었다.
특히나 어느 쪽 길이든 1층 주변은 대단히 한산했다.
상황을 살피는 이들 말고는 아예 유동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어쩌지요?”
그리고 별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는 건, 주걱턱 모험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지하수로에서 대단한 신기를 보여준 도로시조차도 선뜻 움직이자 주장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물론, 이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기본적으로 주걱턱 형님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로, 경계되는 모험단들의 움직임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자신들이 움직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길이 안 보여.”
바로 코코아의 제지 때문이었다.
“일단 상층부를 공략하는 게 아닌 것 같긴 한데······ 여기서 더 나아가지도 못하겠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세 갈래 길로 나뉘는 협곡의 입구를 죽어라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자신들이 입구에서 움직이질 않고 있으니 협곡 전체의 교착상태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 모험단들의 움직임이 중단된 채로,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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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변하기 시작한 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이었다.
난데없이,
“왔다!”
코코아가 소리를 질렀다.
“왔다, 왔어!”
그러곤 코코아는 방방 뛰기 시작했는데, 이는 평소의 그녀가 잘 보이지 않던 모습이었다.
그녀가 이토록 기뻐하며 눈을 빛내는 경우는 단 한 가지 때뿐이다.
형님이 왔다.
“어디······.”
바로 그때,
저벅저벅-.
멀찍이서 웬 자그마한 인영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기묘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전신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는데, 마치 체내에서 증기를 뿜어내는 듯 보일 정도였다.
연기에 가려져 얼굴도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다만,
“주걱턱!”
코코아의 저렇듯 발랄해진 음성을 들으니, 딱히 정체는 의심치 않아도 될 듯했다.
치누아비는 그즈음, 증기에 가려져 있던 얼굴을 살포시 드러낸 흑발의 미소년에게 달려갔다.
“형님!”
“여, 잘들 지냈냐?”
“그 연기는 뭐야?”
“어, 달려오느라고. 땀이 좀 났어.”
“땀······? 근데 달려왔다고요? 어디서?”
“이스트랜드.”
“······.”
다소 황당하단 생각이 들 정도의 대답이었지만, 당장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치누아비, 그럼 교대할까?”
“예?”
“얼굴 말이야. 본래 주걱턱 그대로 오려고 했는데, 마침 네가 생각나서 바꾼 거였거든. 주걱턱이 둘일 수는 없으니까.”
“아······ 옙!”
치누아비는 얼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홀가분한 때가 없었다. 마치 어깨에 지고 있던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내려놓는 기분이랄까.
형님은 본래의 주걱턱으로 돌아온 뒤,
“규칙에 대해선 대충은 들었어. 일단 가자.”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 바로요? 어디로?”
“뭐, 제일 가까운 데로 가지 뭐.”
그러곤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이어 도착한 곳은 ‘증명의 길 제1로’였다.
거기엔 상황을 살피러 온 이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서, 설마······ 1층부터 가시는 겁니까?”
그러자,
“치누아비. 주인공이란 건 말이야, 모름지기 그에 맞는 일을 수행해야 할 필요가 있어.”
주걱턱 형님이 자신을 돌아보며 말했다.
“주, 주인공이요?”
“선별시험이잖아? 자격을 취득한 이가 주인공인거지 뭐.”
“아······.”
“그럼 주인공이 할 일이 무엇이냐? 그건 간단해. 나서야 할 때 나서고······.”
이어 그가 거침없이 1층 깃발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주저하지 말아야 할 때, 주저하지 않으며······.”
그러곤 망설임 없이 깃발을 뽑아들었다.
이제까지의 고민과 망설임이 우습게 느껴질 만큼, 시원한 움직임이었다.
“그냥 보여줘야 할 때 보여주면 되는 거야.”
이어 뽑아든 깃발을 장난스럽게 흔들며, 그가 씩 웃었다.
“쉽지? 자, 지금부터 우리는 여기 1층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