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선별시험(2)
***
주걱턱 모험단이 ‘증명의 길’ 제1로 1층의 깃발을 차지했단 소문은 협곡 내부에서 눈치를 살피던 모험단들 사이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도화선이라도 된 듯, 이때를 기점으로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1로만은 피해야 한다며, 제2로와 제3로로 방향을 튼 이들.
오히려 경쟁자가 줄어들 것이라며 제1로의 상층부를 기웃거리는 이들.
어느 길이든 상층부 연합을 형성하기 위해 협력자를 찾아나서는 이들.
애매한 중간층에 자리를 잡곤 함정을 파기 시작한 이들까지.
그러나 그 중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인 건, 다름 아닌 레오 모험단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제2로 1층의 깃발을 차지하며 두 번째 길의 시작을 알렸다.
어딜 가나 화제의 중심인 주걱턱 모험단.
그로니얀이라는 희대의 강자까지 포섭한 듯 보이는 레오 모험단.
이 두 모험단은 이미 킹스로드 선별시험의 경험이 있는, 잔뼈 굵은 몇몇 S급 모험단들마저도 한 수 접어주는 이들이었다.
고로, 이 두 모험단의 길이 나뉜 시점에서 어찌 보면 남은 모험단들의 선택은 다소 쉬워진 경향이 있었다.
제3로로 향하는 것.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제3로의 상층부를 노려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수의 모험단들은 명확한 방향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어수선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뭇 이들이 쉽사리 제3로로 발길을 돌리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또 하나의 거대한 이름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유일한 1인 모험단인 ‘회색사자 모험단’의 단장이자,
언제부턴가 공공연히 ‘가장 강한 무력의 소유자’라 평가받아온 모험가.
칼 자이드.
그가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칼 자이드 또한 주걱턱 모험단의 소식에 관해 그 누구 못지않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중이긴 했다.
“후······.”
칼 자이드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주걱턱 모험단의 출정.
이는 기다렸던 소식이었다.
또한 짐작하고 있던 바이기도 했고.
녀석이 아니라면 그 누가 제1로의 시작을 열겠는가.
외려 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칼 자이드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젠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 제3로의 1층으로 가 새로운 길을 여는 것.
둘. 제1로의 20층으로 가 주걱턱을 기다리는 것.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골라야 건 당연지사 첫 번째 선택지였다.
주걱턱이나 레오 녀석에 비해 선택이 늦었다는 비난이 있을 순 있겠지만, 그야 어차피 지나가는 평에 불과하다. 외려 그들보다 먼저 협곡의 끝에 도달한다면, 더욱 높은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고. 어차피 두 녀석들 외엔 딱히 위협적인 모험단은 눈에 띄지 않았으니,
또한 자신이나 주걱턱은 서로 뛰어난 모험가들이다. 킹스로드를 넘기 전, 굳이 둘 중 하나가 승부를 내고 떨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함께 넘어가 좀 더 커다란 물에서 자웅을 겨루는 편이 낫지.
만약 녀석들이 자신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고민의 여지도 없이 제3로로 방향을 틀지 않았을까.
그리고 칼 자이드 스스로도, 그 편이 더 끌리기도 하고.
다만,
‘끌린다라······.’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간단하고, 합리적이고, 가능성이 높고······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심 더 끌린다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어째서 자신은 지금 당장 주걱턱과 승부를 내려 하지 않는가.
어째서 회피하려 하는가.
실은······ 녀석을 두려워하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퍼-엉.
정면에 놓여 있던 바위가 저 멀리 날아갔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손이 나가고 말았다.
“······후.”
본래는 이렇지 않았다. 이렇게······ 피하려 하지 않았다.
이전엔 늘 하루빨리 치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만나는 즉시 없애버리겠다고.
그리고 그냥 신경이 좀 쓰일 뿐이었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유일한 녀석이지 않는가. 공식적인 첫 패배를 안겼던 녀석이기도 하고.
단순히 짜증을 유발하는 대상······ 고작해야 그 정도?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것이 조금씩 바뀌었다.
단순히 신경이 쓰이는 녀석에서, 경계가 되는 녀석으로.
유일하게 자신의 대적자가 될 수 있는 존재로.
물론 녀석이 자신의 약점을 안다는 사실이 그 바탕이 된 건 맞다. 약점을 노출시킨 채 전투에 응한다는 건, 그렇지 않을 때와 비교했을 때 부담의 정도가 하늘과 땅 차이니.
하지만 어느 즈음엔 ‘과연 그게 전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점을 아는 녀석이라서? 정말로 그것 때문에 그리 경계가 되었다고?
심지어 이젠 경계하는 걸 떠나, 피하려하기까지 하다니.
그즈음,
“빌어먹을······.”
칼 자이드는 품속에서 라미레스를 꺼내 바라봤다.
언제부턴가 마음이 뒤숭숭해질 때면, 마치 습관처럼 이 거울을 보게 되었다.
······.
약점만이 문제였다면, 만약 그랬다면······ 현재 거울에 비친 모습이 약간은 달랐을 것이다.
아마 자신의 아킬레스 건만 덩그러니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장 라미레스에 비쳐지는 건,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거기엔 주걱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피 흘리는 아킬레스 건을 부여잡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칼 자이드는 이것이 과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주걱턱에게 처음으로 패배했던 그때 그 순간의 광경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지.
칼 자이드가 자신에게 독이 될지도 모르는 라미레스를 여태 폐기하지 않고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이 거울 속의 주걱턱이 사라지는 걸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자신의 성장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언젠가 이 거울 속의 주걱턱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래, 그리 쉽게는 안 지워진다 이거지.”
이젠 인정해야 될 때가 온 듯했다.
이대로라면, 주걱턱은 결코 거울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계속 회피하기만 한다면, 영영 자신의 숨기고 싶은 두려움과 약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부딪치지 않으면 깰 수 없다.
그즈음 칼 자이드는 과감히 첫 번째 선택지를 지웠다.
이건 회피하는 것이다. 나아가고자 하는 이의 올바른 방향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와장창-.
칼 자이드는 들고 있던 라미레스를 단숨에 깨부쉈다.
“나는 녀석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이 거울이 잘못된 것이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물건은 부숴 없앨 수밖에.
그리고 이젠 그것을 증명해야 될 때였다.
이윽고, 칼 자이드의 걸음이 제1로를 향했다.
*
증명의 길 제1로, 12층.
모험가 두타치는 가만히 숨죽인 채,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땅이 울리는 진동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그들의 위치는 현재 11층. 그간의 속도를 따져봤을 때 여기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아마도······ 10분 이내.
“후······.”
갑작스레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이게 과연 먹힐까?
“······먹혀. 무조건.”
물론 먹힐 것이다. 먹힐 수밖에 없다.
이미 머릿속으로 수없이 되풀이해 보지 않았던가.
최악의 경우, 그들과 함께 동반탈락하게 되긴 하겠지만······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그 전에 멈출 것이다.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하지만 그럼에도 긴장은 잘 풀리지 않았다.
모험가 생활 10년 동안, 여태 그만한 이름값은 상대해 본 적이 없었으니.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하여 두타치는 안정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이 계획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에 대해 되뇌었다.
첫째, 지형.
12층은 다른 어느 층보다도 굉장히 공간이 협소한 지형이었다.
모험단 전체가 자유로이 행동하기는커녕, 둘 이상도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 외길의 형태였으니.
단체전이 아닌, 각 모험단 내 대적자들 간의 일대일을 의도하여 설정된 구역인 듯했는데, 바로 이 점이 두타치에겐 둘도 없는 행운이었다.
지형 자체가 굉장히 불안정하다는 것.
이는 곧, 제아무리 강한 녀석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층의 손상은 곧 길의 폐쇄다. 자칫 길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그 즉시 제1로는 막히게 된다. 그것이 이 선별시험의 규칙이었다.
두타치가 노린 게 바로 이것이었다.
이 ‘층’ 자체를 볼모로 잡는 것.
현재 두타치가 있는 곳은 13층의 경계와 맞닿아 있는 절벽의 한복판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엔 12층의 점령자를 의미하는 깃발을 꼭 들려 있었다.
평생 쓸모없는 능력이라 욕을 했던 자신의 고유능력, [땅 깊숙이 파기]가 마침내 빛을 발한 상황이랄까.
자신을 힘으로 끌어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14층을 침범하거나, 아예 층 자체가 붕괴되고 말 테니까.
두타치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계속해서 뻐길 생각이었다.
지금 아래층에서 올라오고 있는 저들이 자신을 일원으로 받아주겠다고 응낙할 때까지.
이를 위해 따로 [언약의 무게]라 불리는 고대 아티팩트까지 준비해두지 않았던가. 약속을 받아내기만 하면 된다. 놈들은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무르지 못할 테니.
둘째, 시간.
녀석들의 입장에선 고작해야 이런 저층에서 시간이 끌리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이제 고작 첫날 저녁에 불과했다.
즉 3일의 유예기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빨리 길이 시작되었다는 것.
자신과 같이 첫날부터 곧장 전략적으로 움직인 극소수를 제외하면, 현재는 다들 갈팡질팡 마음만 급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나 17층 위쪽, 상층부는 아직 주인이 거의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저들의 입장에서 이때를 놓칠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빨리 층을 돌파해야, 혼란을 틈타 무혈입성이 가능할 테니.
저들이 이렇듯 빠르게 올라오는 것 또한 다 이를 노린 게 틀림없었다.
고로,
“······완벽해.”
두터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초반에 이토록 완벽한 지형을 갖춘 층을 발견했던 것이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한 층, 한 층이 모두 ‘제각각의 세계’와 같다는 모험의 탑을 흉내 냈다는 게, 그저 말뿐이 아니었다니.
‘······미안하지만, 나는 따로 간다.’
지금 몸담고 있는 모험단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차피 녀석들과는 킹스로드 너머를 꿈꿀 수가 없다. 그만한 역량도, 배짱도 안 되는 이들이니.
원하는 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그러고 두터치가 조금쯤 차분해진 마음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톡-.
톡톡-.
“여기?”
“응, 옆에 있어.”
“꺼낼 수 있어?”
“응.”
웬 음성들이 들려왔다.
‘······뭐?’
당혹스러웠다.
기묘한 음성들의 진원지가 다름 아닌, 바로 옆 땅속이었던 것이다.
곧이어,
불쑥-.
어느 기묘한 생김새의 ‘무언가’가 눈앞의 땅을 헤집고 나타났다.
사람을 닮았으나, 당최 정체를 알 수 없는 웬 땅딸막한 난쟁이였다.
두터치는 재빨리 주걱턱 모험단에 저와 같은 생김새를 가진 녀석이 있나 떠올려봤다.
‘······아냐. 없어.’
없다. 없었다.
그럼 이 녀석은 대체 뭐지?
혼란스러웠다.
길을 걷는 모험단이 해당 층에 올라오면, 그 즉시 현재의 점령자를 제외한 모든 외부 인원의 개입은 제한된다.
그렇다는 건, 아직 주걱턱 모험단이 이 층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두터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조금 전 땅의 울림은 분명······.’
바로 그때였다.
“안녕? 두더지야?”
녀석이 자신을 보며 인사했다.
“뭐, 뭐?”
“반가워.”
“넌······ 넌 뭐지?”
“나? 나는 땅의 정령이야.”
“······뭐?”
“너를 데려가려고 왔어.”
다소 늙수그레한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는, 굉장히 천진난만한 말투였다.
“나랑 같이 갈래?”
황당한 제안이었다.
“안 가! 저리 썩 꺼져!”
그러나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씩 미소 지은 채,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미안, 같이 가자. 데려 오래.”
그 순간,
“어? 어, 어어······ 어어!”
눈앞에 자그마한 크기의 땅굴이 생겨났다.
지상으로 쭉 연결된 땅굴이었다.
이어,
쑤욱-.
등 뒤에서 전해진 무지막지한 힘에 의해 두터치의 몸이 쭉 위로 솟았다.
“으, 으아아아!”
*
2시간 뒤.
증명의 길 제1로, 20층.
어느덧 마지막 층이었다.
나는 약간은 희한한 기분에 휩싸인 채, 동료들을 돌아봤다.
코코아, 치누아비, 도로시······.
뭐랄까, 뛰어나도 너무 뛰어났다.
딱히 내가 나설 것도 없었다.
상황에 맞는 필요한 능력들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고, 힘도 넉넉했다.
심지어 도로시는 바로 전 층에서 자신들을 막겠다고 뭉친, 무려 수백 명의 모험가들을 단신으로 쓸어버렸다. 그에 걸린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솔직히 내가 없다하더라도, 레오 모험단을 제외하면 이 녀석들을 당해낼 모험단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기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게만 생각할 수도 없었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과한 힘은 늘 ‘조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니.
‘그래도 뭐······ 약한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때였다.
띠링-.
[작가로부터 챕터 내 메인시점 제안이 왔습니다]-동의 시 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호오······.”
나는 가만 멈춰선 채 홀로그램 창을 바라봤다.
메인시점이라.
굉장히 오래간만이었다. 마치 몇 년이 지난 것만 같은.
‘아, 그건 맞지.’
실제로 그렇긴 했다.
어쨌거나 희한한 기분이었다.
얼마 전 챕터가 새로 열린 걸 봤을 때와도 또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반가움이 주였다면, 지금은 의문이 좀 더 컸으니.
나는 홀로그램 창을 눌러 제안을 수락한 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이것이 내게 왔을까.
단순히 생각해 보자면, 아마 가장 빨리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지사, 이 시점에서 가장 긴박한 장면의 연출이 가능할 테니.
혹은, 독자들의 요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스랜드 에피소드가 끝났을 때부터 지금껏, 레오의 시점에서 소소한 챕터만이 진행됐을 게 아닌가. 어쩌면 나를 등장시키란 요구가 존재했을지도.
그러나,
저벅저벅-.
그즈음 나는 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허······.’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내게 지금 메인 시점이 온 건 눈앞에 보이는 한 사내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 장면은 놓칠 수가 없었을 테니.
“······혀, 형님!”
“주걱턱, 저 녀석······.”
“괜찮아. 이번엔 내가 할게. 녀석도 내게 볼 일이 있는 듯 보이니까.”
뭐, 따로 청산해야 할 것도 있고.
이어, 나는 한발 짝 앞으로 나섰다.
‘어디······ 오랜만에 실력 좀 볼까.’
그렇게 나는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게 다가오는 무심한 표정의 칼 자이드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