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6
16화 변화
***
이후로는 원작과 딱히 달라진 것 없이 챕터가 진행되었다.
레오는 어느새 응원단으로 변한 구경꾼들의 환호를 발판 삼아 황금테이블로 향했고, 그곳에서 여왕과의 최종결전을 치렀다.
그리고,
-네! 마침내 길고 길었던 승부가 끝이 났습니다. 길었다는 표현은 사실 죽음의 레이스 전체를 두고 한 말이었고요, 최종결전은 보시다시피 역시나 싱겁게 끝이 나버렸네요. 무려 3대0. 단 한 판도 이기지 못했죠? 승자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여왕님이십니다!
졌다.
레오가 자신 있어 하는 종목으로만, 어떠한 불공정한 규칙 없이, 순수 실력으로 붙었음에도 게임조차 되지 않았다.
뭐,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설정 상, 이 세계에서 갬블로 골담시티의 여왕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까. 그녀의 고유능력 [공평을 싫어하는 확률 조정자]가 결코 그녀의 패배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평을 싫어하는 확률 조정자]
-능력의 소유자가 승부에 임할 때, 조정자가 슬그머니 자리한다.
-불가사의한 존재인 조정자는 자신의 친구를 위해 확률을 임의로 조정한다.
-확률의 조정범위는 1~99%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대가는 소유자의 우정이다.
가히 경악스런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매력적이기도.
그녀의 능력은 그제까지 ‘전투에 도움 되는 능력’정도로 막연히 개념화 되던 고유능력의 지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으로, 이 능력의 등장과 함께 만화가 고유의 개성을 갖추기 시작했단 전문가 비평까지 돌 정도였다.
게다가 이 능력에 대해선 여기 구경꾼들만큼이나 당시 독자들 또한 열광할 정도여서, 무려 ‘가장 가지고 싶은 고유능력 앙케트’에서 당당히 3위란 성적을 거두기까지 했었다.
-정숙, 정숙! 다들 잠시만 조용히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즈음 사회자가 환호하던 관중을 조용히 시켰다.
이제 ‘죽음의 레이스’의 최종 결산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럼 이어 여왕님께서 친히 요구를 발표하시겠습니다!
최종전을 앞두고 두 사람은 게임 내에서 벌어들인 돈과는 별개로, ‘죽음의 레이스’의 최종 보상에 대해 협의했었다. 바로 ‘목숨을 빼앗는 것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요구’를 패배자가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 게임의 재미를 더하자며 여왕이 따로 제시한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다들 긴장한 기색으로 여왕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왕이 저 소년에게 무엇을 요구할지에 대해 제멋대로들 상상하고 있는 듯했다.
종신토록 노예가 되어 자신을 받들라고 할까?
시비가 걸렸던 vip에게 찾아가 개처럼 빌라고 시킬까?
이를 보고 있으려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물론, 여왕의 요구는 이들 전부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그건 그야말로 이 골담시티 전체를 발칵 뒤집어엎는 일이니까.
다만, 그게 이들이 원하는 방향의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이윽고, 여왕이 승자를 위해 마련된 단상 위로 올라섰다.
온몸이 황금마냥 빛나는 그녀는 높다란 자리가 그토록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모두의 이목이 자신을 향해 집중된 걸 확인한 뒤, 여왕은 간결하고도 고요히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
“레오, 그대의 모험에 나를 함께 데려가 주겠어요?”
이어 카지노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
여왕 시아나가 레오의 일행에 합류한다는 것. 이는 단순히 동료 하나가 늘었다 정도로 요약할 사안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모험왕 최초의 ‘거대 에피소드’가 바야흐로 궤도에 올라선 것이라 보는 게 맞았다.
다음 챕터에서 밝혀지겠지만, 시아나는 거대 마피아 연합의 일원이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협력자 정도가 아니라, 연합 수뇌부 중 하나로 이곳 골담 마피아의 수장이다.
물론, 이는 그녀가 원해 자발적으로 획득한 지위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부하로 존재하는 마피아들 대부분은 그녀의 감시자이자 적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마피아 조직원들은 카지노의 소속의 직원들이고 여왕은 이 카지노의 소유주다. 하지만 마피아들은 여왕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왕은 마피아들의 보스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마피아와 그녀의 이상스런 관계는 3년 전, 그녀가 카지노의 ‘전 주인’을 밀어내고 새로이 여왕의 자리에 등극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엘 비에고.
골담 카지노의 전 주인이자 마피아 연합의 주요간부 중 하나로, 시아나에게 카지노를 빼앗긴 당사자이다. 또한 ‘죽음의 레이스’의 최초 기획자이자, 그로 인해 카지노에서 쫓겨난 얼간이기도 하고.
사실 시아나는 레오 이전에 처음으로 ‘죽음의 레이스’의 최종단계에 진출한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무후무한 승리자이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이를 통해 번 돈으로 카지노를 통으로 사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잔고처리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시 주인이었던 엘 비에고와 카지노 소속 마피아들의 대한 처분이었다. 시아나는 그저 엘 비에고만 쫓아낸 뒤 마피아들을 그대로 뒀는데, 이게 그녀의 실수였다. 그들은 진심으로 시아나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았고, 엘 비에고의 손발이 되어 카지노의 운영을 방해하거나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본인의 실수를 자각한 시아나는 깔끔히 털고 카지노를 떠나려 했으나, 이조차 쉽지 않았다. 어느새 카지노를 너머 도시의 상징이 된 그녀를 엘 비에고가 놓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휘하의 마피아들을 통해 카지노를 벗어나겠다 말하는 그녀를 협박했다. 만약 그녀가 카지노를 벗어날 시, 마피아 연합의 전 인원들이 쫓을 거라고.
여왕에게 카지노는 황금으로 된 감옥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 마피아 연합 중엔 버진시티의 마피아들과 내가 키리코를 만나기 위해 잠시 이름을 팔았던 ‘붉은 전갈’ 또한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이들의 뒷배가 바로 그 ‘검은 그림자’이다.
한 마디로 레오 일행이 앞으로의 챕터에서 이 마피아들, 그리고 검은 그림자 녀석들과 본격적으로 엮이게 된다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행복 끝, 고생 시작이랄까.
그것도 모르고 저렇듯 헤헤거리고 있는 꼴이라니. 적어도 여왕이 뭣 때문에 본인을 따라나서겠다고 했는지는 물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그저 좋다고 여왕의 곁에 선 레오의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봤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번쩍 쳐든 레오가 잠시간 두리번거리더니,
“앗! 너!”
하고 소리치며 내게로 걸어오는 게 아닌가.
그러곤,
“고마웠어.”
날 보며 씩 웃었다.
“어? 어어······.”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녀석이 다가올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는 만화책엔 없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레오는 바로 가지도 않고 내게 질문까지 해왔다.
“어째서 날 도왔지?”
“······.”
당장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네가 이겨야 내가 사니까? 그게 원작의 스토리 흐름이니까?
잠시 고민해봤으나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하여,
“비밀. 당장은 말 못해.”
저 비밀스런 실눈 캐릭터 ‘하카’ 녀석이 자주 쓰는 기술을 써먹었다. 대충 뭐가 있는 척 말끝 흐리기.
아마 먹히긴 할 것이다. 이 녀석은 그렇게까지 집요히 파고드는 성격이 아니니까. 만약 그랬다면, 하카가 그토록 오랜 기간 ‘회수되지 못한 떡밥’으로 남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흠, 그래? 어쨌거나 고마워. 네 도움은 잊지 않을게.”
레오는 그러고 쿨하게 떠났다.
‘이거 잘 된 건가?’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생각보다 밋밋한 반응에 약간 아쉬움도 들었다.
이대로 보내면 안됐었나? 일단 생색부터 내고 봤어야 했나?
“······에이, 몰라.”
어쨌거나 레오에게 나라는 캐릭터를 확실히 각인시켰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듯했다.
잠시 후,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는 오늘부로 이곳 카지노의 여왕직을 관두고, 평범한 시아나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안녕히.”
시아나가 허리 굽혀 모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내가 기억하는 챕터7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곧이어,
띠링-
챕터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챕터7 – ‘골담시티의 여왕’이 종료되었습니다]
[주걱턱의 캐릭터 평가가 갱신되었습니다]
[이름이 ‘수수께끼 주걱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특징에 ‘비밀스러움’이 추가되었습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이 잇따랐습니다]
[인지도가 1,459 증가했습니다]
[작가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작가 호감도가 100증가 했습니다]
[재등장 가능성이 40%로 올랐습니다]
[상태]
-이름 : 수수께끼 주걱턱
-특징 : 힘이 약간 세다, 허세가 있다. 말이 많다, 비밀스러움.
-인지도 : 1,500
-작가 호감도 : 101
-재등장 가능성 : 40%
“······와우.”
이제까지 중 최고의 보상이었다. 확실히 메인 흐름에서 활약한 보람이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목표한 시간 내로 [흉내쟁이 곡예사]를 구입할 수 있을 듯했다.
‘이번에 특히 운이 좋긴 했지만······.’
그때, 갑작스레 홀로그램이 푸르게 물들었다.
처음 있는 현상이었다.
이어,
띠링-
웬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최종평가 메시지는 아니었다.
[‘수수께끼 주걱턱’이 모험왕의 공식 등장인물로 등재됩니다]
[캐릭터에 격이 부여되었습니다]
[본 캐릭터는 지금부터 격에 맞는 고유능력을 익힐 수 있습니다]
[작가로부터 배경 스토리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뭐지?’
생소한 내용들이었으나, 내게 좋은 것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것도 이제까지의 보상들과는 차원이 다른 정도의.
공식등장인물 등재에, 격을 부여받았고, 그에 더해 작가의 선물까지.
“아싸, 감사합니다.”
이 중에서도 작가가 보냈다는 선물이 가장 궁금했다. 뭔가 인센티브 느낌이 나서일까.
‘배경? 어디서 확인하지?’
그러고 막 홀로그램 창 이곳저곳을 뒤적거리려 할 때였다.
띠링-.
깜박하고 있던 마지막 메시지가 도착했다.
[작가에 의해 캐릭터 최종평가가 산출되었습니다]
[수수께끼 주걱턱은 다음 챕터의 예비 출연 대상자입니다]
[인지도 상승에 따라 캐릭터 포인트가 4,377p 지급됩니다]
[작가호감도 상승에 따라 캐릭터 포인트가 10,000p 지급됩니다]
[재등장률 상승에 따라 캐릭터 포인트가 400p 지급됩니다]
······대박났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곧장 캐릭터 상점에 들어가 현재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16,896p
“흐흐······.”
어째선지 입가에 군침이 도는 느낌이었다.
슬슬 미뤄왔던 쇼핑을 좀 즐겨봐야 할 듯했다.
*
“후······.”
캐릭터 상점을 둘러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음에 드는 상품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그와는 전혀 별개의 일 때문이었다.
상품 페이지를 편 것 또한 그저 잠시 눈 돌릴 데를 찾고자 함이었을 뿐이다. 사실 상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럴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뭐해?”
“잠시.”
“뭐하냐고.”
“조용. 저기 가서 혼자 좀 놀고 있어.”
“그럼 돈을 줘. 돈을 달라고.”
“하······.”
옆에서 찡얼거리는 꼬맹이까지.
결국 백만 골드 가량을 꺼내 던져주니, 코코아는 언제 짜증을 냈었냐는 듯 낄낄거리며 슬롯머신을 향해 달려갔다.
본래라면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당장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저 꼬맹이까지 신경 쓰기엔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금 눈앞의 메시지에 집중했다.
[선물 받은 배경스토리 목록]
-하나만 선택하십시오.
1. 암살조직 ‘검은 그림자’ 전직 단원
2. 실각한 ‘붉은 전갈’의 2인자.
3. ‘세븐 링’의 소유자
※ 유효기간은 챕터9가 시작되기 전까지입니다.
“후······.”
세 가지의 선택지를 보며 드는 감정은 뭐랄까······ 일종의 난감함에 가까웠다.
비유를 해보자면, 몹시도 부담스러운 지도교수님이 본인이 나를 키워주겠다면서 갑작스레 대학원 진학을 제의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심지어 이미 취업 쪽으로 진로계획을 다 짜놓은 상태인데.
내가 4학년 졸업반쯤 되었으면 대충 ‘교수님, 죄송한데 저는 계획이 다 있어서요.’ 하고 거절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얼마 안가 대학교를 뜨면 그만이니.
문제는, 내가 졸업반이 아닌 이제 갓 입학한 새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건 뭐 거절하기에도 좀 그렇고, 선뜻 받아들일 수도 없고.
물론 작가가 내게 골라보라며 보낸 배경들이 그리 나쁘다고 말할 것들은 아니었다. 현재의 나에 비추어 생각해본다면, 분명 업그레이드되는 게 맞다.
우선 첫 번째 선택지, 검은 그림자의 전직단원.
이건 지난 번 캐릭터 상점에서 확인했던 그것이었다. 무려 1500포인트짜리 배경스토리. 구매혜택도 짱짱하고, 챕터에서 활약할 여지도 충분하다.
두 번째 선택지, 실각한 붉은 전갈의 2인자.
이 또한 첫 번째 선택지와 여러모로 비슷했다. 그저 활동무대가 ‘검은 그림자’ 쪽이 아닌, 마피아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뿐.
그리고 세 번째 선택지, ‘세븐 링’의 소유자.
이건 앞선 둘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좋은 것이었다. 보자마자, 작가가 이걸 선택하라고 내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일곱 반지는 마피아 연합의 일곱 간부를 상징하는 물품이다. 즉, ‘세븐 링’의 소유자라 함은 마피아 연합의 총 보스를 지칭한다.
솔직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작가는 내게 ‘마피아’에서 ‘검은 그림자’까지 이어지는, 이 거대 에피소드의 ‘중간보스’ 역할을 내게 일임하려는 것이었다.
“분명······ 나쁘지 않긴 한데.”
중간보스라곤 하나, 한두 챕터의 메인이 되는 캐릭터였다. 거대 에피소드의 징검다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
간단히 말해, 이제까지의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비중 있는 캐릭터라고나 할까.
다만, 여기엔 문제가 몇 가지 있었다.
첫째, 어쨌거나 빌런인 이상 주인공에게 깨질 수밖에 없다는 점.
이는 곧, 에피소드가 끝난 이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행여나 다음을 기약하지 못할 시, 그대로 삭제되고 말 테니.
둘째, 갑작스레 신분이 강제되는 것이라 여러모로 제약사항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
자연스레 엮이게 되는 인물도 많아지고, 내 마음껏 사건에서 배제되지도 못할 것이다. 또 그만큼 선행플롯의 영향 또한 많이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장애요소였다.
그리고 셋째. 워낙에 괜찮은 배경이다 보니, 여기에 고유능력까지 탑재되어 있다는 점.
[구속하는 일곱 반지]
정신지배 쪽 능력으로, 반지 착용자들을 반지의 실소유주에게 복종하게 만드는 능력.
이 고유능력을 각성하게 되면, 처음 목표로 한 [흉내쟁이 곡예사]는 물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답답하네.”
또한 전체적으로 작가가 선물해준 배경들을 쭉 훑어보면, 그 의도가 물씬 느껴졌다.
작가는 지금 나라는 캐릭터를 본인이 짜둔 플롯 안으로 병합시키려 하고 있었다. 특히나 다가오는 챕터에 맞춰 어떻게든 짜 맞추려고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 생각이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정에도 없던 캐릭터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 설치는 게, 물론 이번 전개에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마냥 좋게 볼 순 없었을 테니.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작가의 통제 하에 놓인다는 건, 살아남기 위한 길을 스스로 개척하기 힘들어진다는 말과 동일했으니까.
‘쉽지 않네.’
이제와 보니, 작가의 관심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흐음.
결국 나는 결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아직 유효기간이 남긴 했으니 일단 좀 더 고민해보는 걸로.
그즈음,
“주걱턱!”
멀리서 꼬맹이가 돌아오는 게 보였다.
놀랍게도 웃음을 머금은 채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설마······ 돈 땄냐?”
“아니.”
“그럼 그렇지. 근데 왜 웃어?”
“실은 엄청 짜증났었어. 자꾸 안 돼서.”
“그랬겠지.”
“그래서 훔쳤어.”
“······뭘.”
“슬롯머신. 보여줄까?”
그러곤 가죽주머니를 뒤적거리려는 것이었다.
“······.”
어이가 없었다. 게임이 안 된다고 게임기를 훔쳐? 그것도 그 커다란 걸?
그리고 훔칠 거면 돈을 훔치던가 해야지.
정말이지 예측 불허한 꼬맹이였다. 저러니 결국 등장인물로 쓰이지도 못한 거겠지.
그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순간,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어어, 잠깐.”
“응?”
“아니, 너 말고.”
방법이 있었다. 작가가 선물한 배경을 거절하지 않으면서, 그가 짜둔 플롯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
떠올리고 나니 무척 간단했다.
작가가 배정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 알 수 없는, 혹은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편이 더욱 개연성에 적합한, 그런 ‘예측 불허’한 캐릭터가 되면 된다.
다시 말해 작가가 제시한 배경만으로는 온전히 풀어낼 수 없는, 수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캐릭터가 되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이야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때마침 내 시선이 자연스레 캐릭터 상점으로 향했다.
배경 떡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