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최종 정리의 장
***
모험가협회 회장.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녀석이 있었지.
나는 협회원을 따라가던 도중, 머릿속 한 편에 저장되어 있던 한 인물을 떠올렸다.
회장이라는 직함이 주는 묵직함과는 달리, 사실 그리 대단한 인상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이 캐릭터의 역할 자체가 일종의 ‘떠벌이’였으니.
즉,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일종의 ‘스피드웨건’이라는 것이다.
킹스로드 너머에 있는 저 미들랜드라는 것, 그리고 모험의 탑이라는 것은 이제까지의 이야기에서 표현된 세계와는 꽤나 결을 달리하는 구석이 있다.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 그곳을 부유하는 힘의 유형, 그리고 그 강대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
하여 이를 이해시키기 위한 간략한 설명이 전달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을 위해 등장한 게 바로 이 캐릭터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나 대뜸 튀어나올 줄은 몰랐지만.
내가 곧장 이 녀석을 떠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원작에서의 등장 타이밍과 달랐기 때문이다.
기억하기로, 녀석은 선별시험이 모두 끝나고도 며칠 뒤에나 나타났던 걸로 알고 있다. 그것도 여기가 아닌 어드벤티움에서.
축하연 자리에서 등장해야 할 캐릭터가 선별시험장 내에 와 있다?
심지어 시험이 끝나자마자 모험단의 단장들을 호출하고?
“흐음.”
이유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전체적인 일정 자체를 타이트하게 잡은 모양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킹스로드를 건너게 하려고.
‘뭐, 별 상관은 없지만.’
그즈음,
“들어가시죠.”
나를 안내하던 협회원이 멈춰 섰다.
정면에 ‘모험가협회 선별시험 운영본부’라 적힌 팻말과 함께, 수백 명이 들어가도 남을 듯한 커다란 막사가 보였다.
이어 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 왔구먼! 어서 오게!”
웬 걸걸한 음성이 나를 반겨주었다.
“어드벤이라고 하네. 모험가협회 회장직을 맞고 있지.”
이어 한 큼지막한 체구의 남자가 손을 뻗으며 다가왔다. 무테의 동그란 안경을 쓰고 기다란 수염을 양 갈래로 땋은, 요상한 외형의 근육질 중년인. 원작에서 본 바로 그 아저씨였다.
“아, 예. 반갑습니다.”
“늦었구먼!”
“······바로 온 건데요?”
“허허, 여기 레오 군은 무려 한 시간 전에 와 있었다네.”
그러곤 옆에 있던 레오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레오는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
황당했다.
그야 저 녀석은 그때 싸움이 끝났을 테니까.
“자네가 오기 전까지 레오 단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지. 자네 이야길 참 많이 하더군. 보기 좋은 현상이지, 나란히 선별자격을 쟁취한 라이벌 격인 모험단이 상대를 높이 사고 있다는 것.”
“오······ 그랬냐?”
그러고 묻자,
“주걱턱, 너 제3로까지 먹어버렸다며? 역시 굉장하다니까?”
레오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얼굴엔 약간의 승부욕까지 띤 채였다.
“뭐, 그냥. 시간이 남길래.”
“이 자식······! 그럼 제2로로 와서 나랑 승부를 할 것이지 왜 하필······.”
그때였다.
“자자, 둘의 대화는 나중에 이어 하도록 하고. 어쨌거나 모험가가 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햇병아리들이 킹스로드를 건너게 될 줄이야······ 심지어 두 모험단 다 간신히 시험자격만 갖춘 A급 모험단이라지? 이런 적은 정말이지 처음 보는구먼, 허허허.”
회장이 레오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정말 처음이야. 그래서 말인데······.”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빛났다.
“내가 따로 시험을 좀 해봐도 되겠는가?”
그리고 그 빛나는 두 눈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나였다.
“실시간 영상으로 회색사자와 겨루는 것을 봤네. 강하더군. 근데 강해도 너무 강해. 도통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아······ 봤습니까? 근데 따로 또 테스트를 해봐야겠다는 소리가 나오나요? 그걸 보고도? 진심으로?”
“허허, 자신만만하군. 좋아, 그럼 여기에 조건을 내걸어도 괜찮겠지? 자네가 만약 내 시험을 통과한다면 내 자네 모험단의 여정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네. 다만 통과하지 못할 시엔······ 그 자격을 거둬들이지. 어때, 하겠나?”
약간 장난 식으로 받은 거였는데, 희한하게도 죽자고 나왔다.
이에 나는 회장을 슬쩍 쳐다봤다.
“그건······ 근데 그런 식으로 해도 됩니까? 자격박탈이라는 건······ 처음 듣는 소린데.”
“후후, 맞네. 이건 내가 즉석에서 생각해낸 제안이니까.”
정말이었다. 처음 듣는다는 거.
회장의 별도 테스트라는 건, 원작에서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으니.
나는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이유가 뭘까.
회장이 왜 이런 짓을. 그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정말로 내가 무슨 속임수라도 쓴 줄 알고?
“물론, 응하지 않아도 되네. 자신 없으면 포기해도 돼. 불이익은 없을 걸세. 고작 이 정도에 겁을 냈다고 해서······ 실격처리 하는 건 너무 억울한 일 아니겠는가?”
“······.”
그래, 그래도 뭐.
“마음대로 해보시죠, 그럼.”
딱히 상관은 없으니.
일단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좋아, 사실 자네의 힘에 의문을 품은 이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네. 그래서 이렇게······.”
펄럭-.
막사 안으로 대뜸 수십에 달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뭐하는 이들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같이 흉흉한 기세를 뿜고 있는 게, 마치 내게 원수라도 진 이들 같았다.
“궁금해 하는 모험가들을 다 모았지.”
회장은 그러곤 덩치에 맞지 않게 교묘히 웃었다.
“모두 협회 내의 S급 모험가들이지. 아직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지 않아 미들랜드 행을 택하지 않았지만, 다들 충분히 킹스로드를 건널 만한 실력이 있는 이들이라네. 어떠한가, 이들과의 전투로 실력을 한 번 증명해보는 건?”
“······여기서 이들을 다?”
“왜, 자신 없는가?”
“그건 아니지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어려울 건 없다.
어려울 건 없는데······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말마따나, 협회원을 동원한다는 건 제 살을 깎아먹는다는 게 아닌가. 굳이 이렇게까지 내 힘을 확인하려는 이유가 뭔지······ 정말 내 실력에 의문이 들어서인가?
‘다 보고도 못 믿는다고? 상대가 그 칼 자이드였는데?’
설사 속임수를 썼다 하더라도, 그 또한 실력의 일종이 아니던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의아해하고 있을 무렵,
아······!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당황해 하고 있는 레오 녀석을 보곤,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녀석 때문이구나.
눈앞의 회장도, 작가도, 또한 독자들도 다 알고 있다. 현재의 내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아직 이를 모르는 건 단 한 명 뿐이었다.
바로 저 녀석, 레오.
작가는 레오에게 내 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여, 일종의 ‘경각심’ 내지는 ‘위기의식’을 불어넣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녀석의 각성을 위한 개연성을 쌓기 위하여.
‘참······ 열심히 꾸며댄다고 해야 하나?’
물론, 나는 이 같은 작업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레오는 지금 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 하는 게 맞다.
사실 작가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내가 먼저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주인공이 탄탄하지 않으면, 그 이야기는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
그래야 그 라이벌인 내가 살아나는 것이기도 하고.
하여,
“근데 고작 이 정도로 시험이 될지가 의문입니다만······ 그리고 상대는 당신도 포함인가?”
흔쾌히 나서주기로 했다.
나는 곧바로 고유능력 [통제 불가 훼방꾼이 나타났다!]를 발동시켰다.
우우웅-.
그 즉시 공기가 떨려옴과 동시에, 날뛰는 기압을 견디지 못하고 막사 안의 기물들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어, 이 거대한 힘을 직접 눈앞에서 목격한 이들이 당황해 주춤거릴 즈음,
타다다다닥-.
타다다다닥-.
타다다다닥-.
정확히 수초 만에, 나는 막사 안에 들어온 모험가들 전원을 눕혔다.
단 한 대씩, 총 35대.
다만, 회장은 남겨 놓은 채였다.
이에 회장과 레오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
이윽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듯 회장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가, 강하군······ 속임수 따위가 아니었어. 그, 그 힘은 대체······.”
“됐고, 그럼 테스트는 끝난 겁니까? 당신이 직접 안 해봐도 되겠어요?”
그러자 회장은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찮네. 어쨌거나 자네는 더 이상 테스트를 할 의미가 없을 듯싶군. 그럼 이제 이쪽으로······.”
그러곤 멍하니 있는 레오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레오 또한 굉장한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입을 떡 벌린 채, 당최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
하여,
“됐습니다, 그따위 허접한 짓으로 시간낭비하지 마시죠.”
나는 얼른 회장을 제지했다.
“이 녀석도 고작해야 이 정도 모험가들에 당할 만큼 시시한 놈은 아니니까. 개나 소나 선별자격을 취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회장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요? 여기 누운 녀석들로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아니, 당신도 안 될 것 같은데?”
“······.”
어차피 이 정도 상황으로도 레오는 충분히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굳이 비교되는 상황을 조성해 녀석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건 내 쪽에서도 사양이었다. 그와 같은 각성엔 굳이 필요도 없는 ‘분노’, 내지는 ‘증오’가 섞일 염려가 있었으니.
이어,
“흐음······ 좋네, 하긴 뭐, 장난 식으로 한 거였으니. 테스트는 통과한 걸로 하지. 그럼 이제······ 본론인 킹스로드 너머의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보도록 할까.”
회장이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이걸 뭐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일단 자네들이 가야 할 미들랜드에 대해 말해주도록 하겠네. 미들랜드라는 건, 물론 우리가 랜드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다른 네 개의 대륙과는 그 성질이 완전히 다른 곳일세. 바다로 가로막힌, 조금 멀리 떨어진 대륙 같은 게 아냐. 그건 일종의 다른 차원의 세계지.”
기본적으로 미들랜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또 하나의 대륙이고, 킹스로드는 그리로 편히 건너가기 위해 조성해 놓은 바닷길이며, 이를 건널 수단은 배다.
하지만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그저 ‘모양만 흉내 낸 것’에 다르지 않다고 했다.
“킹스로드의 입구가 바다, 아니 정확히는 그 속에 있는 건 맞네. 하지만 그 너머가 단순히 바다라고는 할 수 없지. 그건 그야말로 다른 차원으로 가는 통로거든. 물론 지금은 내가 말로 설명한다 해도 쉬이 납득하지 못할 걸세. 아마 직접 보면 알게 되겠지.”
회장은 이어 한층 가라앉은 음성으로, 미들랜드의 ‘위험성’에 대해 말했다.
“그곳엔 거인도 있고, 용도 있으며, 마녀도 존재한다네. 모두 막강한 괴물들이야. 그 녀석들 중 하나라도 이곳에 넘어 온다면······ 과연 얼마만큼의 피해를 낳을지 알 수가 없을 정도지. 하지만 그게 다가 아냐. 그게 다가 아닐세. 그보다 더한 괴물들이 존재하거든.”
그러곤 회장은 한 차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다음, 진중한 음성으로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박또박 내뱉었다.
“왕. 그곳 미들랜드엔 힘의 정점, 세계의 지배자들이 존재한다네. 하나하나가 세계를 멸할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지. 우리는 그들을 ‘칠왕’이라 부른다네.”
이어 회장은 칠왕의 힘의 특징을 아주 간략하게 설명했다.
세계의 법칙을 무시하는 힘.
그것을 가진 일곱 명의 절대자.
우리들 따윈 개미처럼 밟아죽일 수 있는 힘이라고.
“참나, 개미는······.”
“물론, 콧방귀를 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네. 특히나 자네와 같은 힘을 지닌 경우라면 말일세. 하지만 내 말에 과장은 없네. 이 또한 직접 겪어보면 알게 되겠지.”
회장은 그들의 정체를 하나하나 다 밝혀주진 않았다. 그건 여기서 드러낼 정보는 아니니.
독자들이야 아쉬워하겠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이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군. 바로 모험의 탑에 관한 것이네.”
이어 회장은 탑에 대한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수많은 모험가들이 미들랜드로 넘어가는 궁극적인 이유.
한 층, 한 층이 저마다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층마다 꿈도 꿀 수 없는 어마어마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천혜의 금고.
총 몇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무엇이 그것을 수호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모험가들이 그곳에 있는지······ 어느 것 하나 밝혀진 게 없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장소.
다만 딱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곳 정상에 있는, 전대 모험왕의 유산을 차지하는 녀석이 당대의 모험왕이 될 거라는 사실이지.”
탑의 끝에 도달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으로 불릴 것이라는 것.
“하나 당부하자면, 거기서 믿을 녀석은 없다네. 설사 그게 모험가협회라 할지라도 말이지.”
“그들은 당신의 부하가 아닙니까?”
“전혀. 거긴 독자적인 영역이니까. 녀석들 또한 모험가일세. 다만, 그저 협회라는 이름으로 뭉친 또 다른 모험단일 뿐이지. 그들의 목적 또한 탑에 오르는 것이고. 다만, 우리와 전혀 소통하지 않는 건 아닐세. 그들은 이쪽에서 선별한 인원들을 실제 미들랜드로 안내하는 안내자역할을 맡지. 아마 며칠 뒤에 보게 될 걸세.”
거기까지 말하곤, 회장은 정보제공을 멈췄다.
역시나 원작에서처럼 말은 많았지만, 핵심적인 것들은 거의 다 숨겨져 있었다.
좀생이 같기는.
“대략 이 정도일세. 질문은 사양하겠네. 모험가는 입으로 묻는 이들이 아니지 않는가. 걸음으로 알아가는 자들이지.”
“말은 잘하시네요.”
“허허, 고맙네. 어쨌거나 자네들은 이제 S급 모험가가 되었다네. 사실 킹스로드를 건널 이들에게 이 같은 등급이 딱히 의미가 있겠느냐 만은······ 그래도 어감이 좋지 않는가, 안 그런가?”
“별로······.”
“그럼 대충 내가 할 말은 끝난 듯하고······ 이쯤에서 인사를 해야겠구먼. 아참, 알고는 있겠지?”
그러곤 그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이 규정을 강조하게 될 줄은 정말이지 몰랐네만······ 공교롭게도 두 모험단 다 기준인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모험단의 구성원은 최소 7명이 되어야 하네. 이는 전대의 모험왕께서 확립해두신 기준이라, 우리로선 거역하기가 쉽지 않거든. 본래는 길잡이 둘, 해독가 둘, 대적자 셋의 구성을 맞추길 추천하네만······ 일단 머릿수만이라도 채워주길 바란다네. 물론 동료라는 게 그렇게 쉽게 추가하고 버릴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즈음,
“7명······.”
여태 가만 듣고만 있던 레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녀석 또한 아직 일곱을 채우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럼 출항은 열흘 후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동안 떠날 준비를 모두 끝마치도록 하시게.”
이어, 회장은 모험가협회의 시그니처 문구를 건네며 해산을 명했다.
“부디, 그대들 두 모험단의 손에 가장 귀중한 보물이 쥐어질 수 있기를.”
*
열흘.
이는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 ‘얻을 수 있는 것’, ‘놓친 떡밥’, ‘풀어내지 못한 사연’ 등등을 가능한 선에서 모두 처리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빨리 풀어보라고!”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요?”
“뭐냐고, 대체 그 힘은!”
동료들과 ‘토킹 타임’을 가지는 것이었다.
당장 한시가 급하다 했으나······ 하도 졸라대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두골제국의 수도로 찾아가 왕녀를 만나고 바야르 칸과 함께 요수계로 갔던 일, 그리고 그곳에서 상천세계에 들어갔던 일, 무려 600일이 넘도록 갇혀 있었던 일 등등을 얘기해줬다. 그리고 현재 구구와 네로는 바야르 칸과 함께 그쪽에 남겨둔 상태이며, 곧 합류할 거라는 것까지도.
녀석들의 반응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일했다.
다들 입을 쫙 벌리곤, 그저 두 눈만 껌뻑껌뻑하며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곧장 달려온 거야. 테르미스에게 선별전에 대한 소식을 좀 모아두고 있으라고 했었거든. 그래서 바로 왔지. 게다가 여긴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라.”
실제로 ‘아는 길’이라 훨씬 더 빨리 도착한 측면이 있었다.
[비자이트 협곡을 한 차례 다녀왔던 사나이].오래 전 샀던 내 배경 중 하나였다.
당시엔 이 배경 속에 들은 ‘민첩’ 특성이 탐이 나 샀던 건데, 이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그래서인지 놀랍게도, 웨스트랜드로 건너오자마자 가야할 길이 길눈에 의해 훤히 들어왔었던 것이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건너온 거야? 이스트대륙에서? 배로도 보름이나 걸리는 거리잖아.”
코코아가 질문한 것은, 실제로 나 또한 스스로에게 물었던 것이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가장 빠르게 웨스트랜드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답은 굉장히 심플한 것이었다.
“그냥······ 달리고, 헤엄치고 했지. 그래서 땀 좀 흘렸고.”
“······뭐? 달려?”
“물속에서도 달려지긴 하더라고.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리고 힘껏 박수를 치면 바다가 쫙 좌우로 갈라지거든? 그때 휙 달리는 거야.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어.”
이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 아! 그, 그래서 그때 몸의 열기가 나셨던······.”
“그렇지. 확실히 운동을 하니까 덥긴 덥더라고.”
또 한 번 이들의 입이 벌어졌다.
“그럼 됐지? 그럼 나 볼일 좀 보고 올 테니까, 다들 떠날 준비 잘들 하고 있어. 열흘 금방 간다.”
⁞
다음으로 내가 한 것은 팅커벨을 부르는 것이었다.
뾰로롱-.
나는 녀석이 나타나자마자 곧바로 용건부터 꺼냈다.
“너 떠날 준비해.”
“응?”
“출발은 앞으로 열흘 뒤야.”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아마 시아나의 요정도 함께 갈 거야.”
“그러니까 어딜······.”
킹스로드 너머는 이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곳이다. 이제까진 설정상의 허점을 이용해 요정들의 귀환과 소환이 마음대로 가능했지만, 킹스로드를 넘는 순간 아마 그것의 허용이 금지될 것이다.
즉, 이 녀석의 힘을 활용하려면 함께 데려가야 한다는 것.
“근데······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만약 네가 가지 않겠다고 하면 가지 않아도 돼.”
“······.”
나는 지금부터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과 그곳의 특징에 대해 모두 말해줬다.
어마어마하게 짝이 없는, 위험한 곳이라고.
더 이상 요정 동료들과 친구들은 보기 힘들 거라고.
그리고 선택은 네 몫이라고.
잠시 후,
“······열흘?”
“어.”
“······칫, 빨리도 말해주네. 일단 알았어.”
잠시 고민하던 팅커벨이 그러고 대답했다.
고맙게도, 내 생각보다도 빠른 결정이었다.
녀석은 그러곤 요정의 숲으로 귀환했다. 열흘 뒤에 불러달라는 말만 남긴 채.
⁞
이틀 뒤. 나는 타냐를 찾아갔다.
“아무래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나는 그러곤 도깨비들의 우두머리, 노형에게서 건네받은 전대 모험왕의 함을 전해줬다.
“이건······.”
“나도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이것이 너희 모험단을 모험의 탑으로 안내할 거다.”
이에 타냐가 놀라 물었다.
“근데 왜 이걸 내게······ 그냥 내용물이 뭔지만 알아봐 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라미레스 대신이라고 생각해.”
“······.”
저 함은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것이다. 저기에서 녀석들이 뭘 꺼낼지는 모른다.
나는 원작을 봤지만, 그럼에도 꺼내는 물건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물건을 꺼내는 사람조차 달라질지도.
저 함에 들어 있는 건, 무엇이 됐든 그 순간 레오 모험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원작에선 저기서 나온 게 모험의 탑으로 가는 지도였지만, 나는 이번엔 그게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개가 달라졌고, 모험단의 구성원이 달라졌으니까.
시기에 따라 생존을 위한 회피무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힘을 상승시키는 영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저 함을 통해 나 또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뭐, 이 정도 선물은 줄 수 있는 것이니. 또 괜히 이걸 안 줬다간, 작가가 내게 어떤 불이익을 줄지 모를 일이고.
그리고,
“이걸로 만약 구원을 받게 된다면······ 그땐 내게 빚 하나 진 거야.”
만약을 위해 보험을 들어놓기도 좋으니까.
타냐는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만 볼뿐이었다.
⁞
5일 뒤 코미어가, 6일 뒤 하카가 돌아왔다.
킹스로드를 넘어 미들랜드로 향할 거라는 얘기에도, 모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어쩌면 다들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그나저나 아무깨비는?”
“스승님께선 저희의 앞길에 어마어마한 혼돈과 절망이 깔려있다면서 작별을 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실은 진즉에 예감하고 있었죠.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미들랜드로 향하게 되겠구나 하고.”
“그래? 아쉽네, 감사인사도 못 전했는데.”
“다 아실 겁니다.”
하카는 그러고 씩 웃으며 덧붙였다.
“감사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으로 인해 주걱틱 씨가 겪게 될 일을 점쳐 보곤······ 과연 본인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모르겠다고 밤마다 되뇌셨거든요. 덧붙여 미안하다고까지.”
“······.”
“아무래도 저희······ 꽤나 고생하게 될지도?”
⁞
그리고 출발을 이틀 앞둔, 8일 차.
나는 아직 오지 않은 구구와 네로를 기다리며,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마지막 일을 처리하기 위해 나섰다.
‘녀석’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녀석 또한 전부터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있는 이유야 쉬이 짐작이 가능했다.
대체 어디로 가야 그 ‘시간축이 비틀린 공간’이 존재하는지 묻고 싶을 테니까.
어떻게 해야 나만큼 강해질 수 있는지 알고 싶을 테니까.
다만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는지, 줄곧 주위를 맴돌고만 있을 뿐이었지.
나는 녀석이 내게 제법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 모험에 있어서나, 내 캐릭터 적인 면을 부각시키는데 있어서나.
무려, 나를 라이벌로 삼은 녀석이 아니던가.
하여,
“여······.”
나는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눈이 동그래진 칼 자이드를 보며, 제안했던 것이다.
“시간 괜찮으면 나랑 어디 좀 갈까? 7명을 모아 오라는데······ 마침 한 자리가 남거든.”
“뭐······ 뭣?”
칼 자이드의 눈이 이내 경악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