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미들랜드
***
닷새 후.
나는 스스로도 본인의 잘못을 직감하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던 레오 녀석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어 최대한 두 눈으로 모멸감을 드러낸 후,
“쯧, 아직도 버릇을 못 버렸군.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나직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자,
“······또 뭐!”
이젠 아예 막나가기로 작정한 듯, 녀석이 대들었다.
“흥, 여전히 관성적으로 몸에서만 힘을 뿜어내려고 하고 있어. 내가 누누이 말했을 텐데. 전기는 어디에나 있는 것. 네 녀석은 그 모두를 마치 네 것인 양 상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 그건 나도 알······.”
“알긴 개뿔. 네 몸을 동력원으로 삼아 나오는 번개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가뜩이나 허약한 녀석이 운용법조차 형편없다니. 그딴 식으로 하다간 너보다 내재된 힘이 우월한 녀석은 영영 이겨내질 못할 거다. 특히나 우리 모험단의 도로시 같은 경우, 생성할 수 있는 마나 자체가 무한이야. 네가 과연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그러자,
“······치잇.”
레오가 결국 고개를 떨어뜨리곤 저자세가 되었다.
나는 이를 만족스런 눈길로 쳐다봤다.
훗, 건방진 녀석 같으니라고.
“똑바로 좀 하라고, 이 멍청한 녀석아.”
“······알았다고.”
실은 이 녀석과의 일대일 교습에 들어간 이후, 나는 스스로도 좀 ‘심한가?’ 생각될 정도로 컨셉에 몰입해 있는 상태였다.
뭐랄까, 무척이나 차갑고 냉소적이며 서늘한 눈빛으로 주인공을 무한정 갈구는······ 슈퍼 엘리트 동급생 컨셉이랄까.
그래야 나도 그렇고, 레오도 그렇고 좀 더 훈련에 집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효과는 상당했다.
레오 쪽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주 몰입이 잘 된 상태였다.
실제로 외형 또한 미소년의 상태를 유지 중이었고.
“물론, 네 본연의 힘을 올리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게 맞다. 네 고유능력에 깃든 왕의 힘은 격이 미치지 못하는 모든 능력을 무효화 시키는 작용을 하니까. 실제로 양학용으로 따졌을 때 네 능력만한 게 없지. 이제 그 권능을 그걸 전기가 통하는 모든 영역에다 흩뿌린다고 생각을 해보라고. 그야말로 신의 영역, 뇌신의 탄생인 거다.”
나는 그러고 은연중 녀석의 완성형 모습을 언급했다.
이렇게 말로만 툭 던져놓더라도 실제로 효과가 있다. 적어도 방향성은 잡을 수 있으니까.
이를 통해 녀석은 나와의 훈련이 종료되더라도,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서 훈련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전혀 이를 의식하지 못한 듯 꺼벙한 표정으로,
“······양학?”
그러고만 있었지만.
“양민학살이라고······ 아, 됐고, 어쨌거나 알아들었냐? 힘의 성장과 운용, 둘 다를 병행해서 발전시키지 못하면 넌 미들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잡아먹히고 말 거다. 아니지, 미들랜드는 구경조차 못하겠네. 여기 이 방에서조차 나가지 못할 테······.”
바로 그때였다.
삐–.
-아아, 선내에 있는 전 인원. 조종석으로.
-아아, 선내에 있는 전 인원. 조종석으로.
갑작스레 대련장 내부에 설치되어 있던 스피커에서 선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흐음.
그즈음 나는 레오를 슬쩍 쳐다본 뒤,
“알지? 넌 예외야. 훈련이나 하고 있으라고.”
“······칫, 알고 있다고!”
“분해할 시간 있으면 죽어라 연습해. 아니면 그냥 죽든가.”
대련장을 나섰다.
⁝
조종석으로 가보니, 레오를 제외한 모두가 모여 있었다.
“왔군. 다른 쪽 소년단장은?”
“그 녀석은 지금 볼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이지?”
그때,
“저기 봐!”
코코아가 정면의 유리창 너머를 가리켰다.
“······저건?”
현재 배의 위치는 깜깜한 심해 속 어딘가.
그러나 정면 라이트에 비친 무언가는 비단 이제까지의 익숙했던 심해의 ‘어둠’이 아니었다.
거기 있는 건, 마치 블랙홀처럼 생긴 검정의 소용돌이였다.
태곳적 어둠을 간직한 채,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검은 입.
4개 대륙의 정중앙 부근, 심해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이 세계의 무엇과도 같지 않은 이질적인 것’.
때마침 선장이 ‘그것’의 정체에 대해 말해줬다.
“저기가 바로 킹스로드의 시작점이다. 수없이 많은 모험가들을 빨아들인, 지옥의 입구라고도 볼 수 있지.”
“저기가 입구······.”
실제로 보니, 만화책에서 볼 때와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그것은 정말이지 마귀의 입 마냥 검고, 짙었으며, 또한 불길했다.
“킹스로드는 사람이 개척한 길이 아니다. 원래 있던 걸 누군가가 발견한 것이지. 그리고 엄밀히 따졌을 때, 발견한 이 또한 한 둘이 아니었을 거야. 태곳적부터 있었을지도 모를 저것은 이미 수없이 많은 것들을 삼켰겠지. 물고기나 침몰선들, 그리고 수많은 모험가들을. 다만, 저곳으로 들어갔던 이들 중 처음으로 생환한 이가 나타나 이것의 존재를 퍼트렸기에, 이제 저 구멍과 구멍 너머의 세계가 퍼질 수 있었던 것이지. 그 첫 번째 생환자. 그가 바로 초대 모험왕이다.”
“초대 모험왕이라······.”
꽤나 묵직함을 주는 단어였다.
선장은 두어 차례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이어갔다.
“예정보다 하루나 일찍 도착했다. 이 배를 집어던진 그 유령? 유령인지 뭔지의 그 어마어마했던 힘이 컸어. 축하한다, 최고기록이야. 이미 통과수속은 다 밟았고,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곤 그는 나를 쳐다봤다.
“여기까지 와서 할 질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묻도록 하지. 후회는 없나? 이젠 되돌릴 수 없어.”
“······말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도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후회할 리가.
“좋다. 킹스로드를 건너는 것 자체는 얼마 걸리지 않아. 대략 30분 전후면 통과가 완료될 거다. 그 다음엔 바로 미들랜드지. 그럼 이제 그 레온지 뭔지 하는 꼬맹이 단장이나 데려오라고. 이제부터 펼쳐질 눈앞에 펼쳐질 광경은, 생에 몇 번 보지 못할 굉장한 것이거든.”
“응? 아······.”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 킹스로드를 건널 때의 장면이 꽤나 인상 깊긴 했었다.
하긴, 이것까지 못 보게 하는 건······ 그건 좀 선 넘는 느낌이긴 하지.
하여 나는 재빨리 대련장으로 달려가 문을 연 뒤,
“응?”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든 레오에게 소리쳤다.
“운 좋네. 이번 딱 한 번 만이다, 튀어 나와.”
*
부우웅-.
곧 진입할 거라는 말과는 달리,
“응?”
선장은 대뜸 배의 엔진을 꺼버렸다.
“어째서?”
“전력 낭비다. 어차피 저 안에선 어떠한 힘도 작용되지 않아. 알아서 빨아들일 거다.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하면 돼. 거봐, 움직이잖아.”
말 그대로였다.
그제까지 심해 밑바닥에 가만 멈춰있던 배가 서서히 앞으로 당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당기고 있던 건, 바닥에 난 검은 구멍이었다.
그즈음,
“어? 다들 안전벨트······.”
나도 모르게, 무심결에 말이 나왔다.
“응?”
“아, 그게 아니라······”
“소년의 모습으로 바뀌더니 겁까지 늘어난 모양이군. 하하, 이건 중력이 작용하는 게 아냐. 편안할 거다. 놀랄 정도로 편안할 거야.”
“아니, 딱히 겁이 나는 건 아니······.”
그때였다.
스르르-.
우주선을 닮은 거대한 배가 그야말로 ‘스르르’ 미끄러지듯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이어 전면의 유리창 너머로 보인 광경은,
“······와아.”
“아름다워······.”
“이, 이게······ 다 뭐지?”
무척이나 경이로운 것이었다.
우주······ 아니, 바다.
아니, 그것 이상의 형언하기 힘든 어떠한 것.
검정의 기분 나쁜 소용돌이는 어디가고, 어느새 눈앞엔 우주바다가 한데 펼쳐져 있었다.
별을 뿜는 고래, 별자리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문어, 행성을 순회하는 물고기 떼······.
은하수가 마치 파도가 굽이치듯 흘렀으며, 검정의 바다가 그 모든 빛나는 것들을 아주 멀리, 멀리······ 무한한 공간으로 퍼뜨리고 있었다.
······이것이 킹스로드.
사실 인쇄된 종이로 봤을 땐 다른 멋진 풍경들과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그냥 별과 물고기가 함께 있구나······ 하는 정도?
헌데 실제로 보니 역시나 달랐다. 스케일이 느껴지고 색감이 더해지니, 실로 경탄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신비롭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전엔 데모라의 풍광이 내가 본 경치 중 최고였는데, 이젠 그 순위를 조정해야 할 듯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넋을 놓은 채 구경하고 있을 즈음,
“슬슬 준비들 하지.”
귓가로 선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와, 벌써?’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넋 놓고 30분을 보내긴 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구경거리들도 대충 10분 보면 ‘이제 됐다······’ 하는 느낌이었는데.
게다가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버, 벌써?”
“좀 더 있다가 가자!”
“우리 빨리 도착한 거라며?”
“좀 더 머물다 가요, 선장님!”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넋 놓고 봤던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꽤나 감명 깊게 봤나보군. 하지만 다들 잊었나본데, 현재 이 녀석은 엔진이 꺼진 상태야. 내가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라고.”
이에,
“아······.”
“······그렇지 참.”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건가.”
모두의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그러고 아쉬워할 시간 없어. 앞을 봐. 긴장들 하라고.”
선장의 말에 앞을 보니, 어느새 정면엔 예의 블랙홀이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이제 곧, 미들랜드다.”
······.
선장의 말에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다만 이에 엄숙함을 느끼는 이는 없는 듯했다.
이 터질 듯한 고요는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한 대신, 가슴을 뛰게 만들었으니.
흥분, 설렘, 혼돈, 두려움, 기대······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섞인 무언가가 저 가슴 밑바닥에서 준동하고 있었다.
“물론, 미들랜드에 입성한다고 해서 곧바로 별 일이 나는 건 아냐. 우린 그로부터 하루를 더 항해해 미들랜드 모험가협회 본부가 있는 곳까지 갈 예정이다. 그때까지는 괜찮을 거야. 물론 그 이후엔······ 지옥이 펼쳐지겠지만.”
‘하루라······.’
나는 그즈음 슬쩍 레오 녀석을 돌아봤다.
예정했던 일주일의 훈련기간에서 하루가 부족해지긴 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을 것이다.
이미 차후 녀석이 발전시켜나가야 할 운용법에 대해선 대부분 짚어준 상태였고, 녀석이 최종적으로 갖춰야 할 ‘뇌신’의 형태도 이미 말해주지 않았던가.
물론, 약간 흘려들은 것 같긴 했지만.
그리고 애당초 나의 훈련지도가 사실 그렇게까지 필요한 건 아니었다.
이미 내가 녀석의 곁에서 도움을 줬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녀석의 ‘성장에 대한 개연성’은 확보가 된 것이었으니.
이미 녀석은 강해질 기반을 갖췄다. 이제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절대강자 ‘뇌신’으로의 길을.
‘가만······ 에이, 그럼 이제 이 컨셉질도 끝난 건가?’
순간, 아쉬움이 거세게 밀려들었다.
그동안 재미 좋았는데.
몰아세우고, 구박하고, 손가락질하고······.
그 무렵,
“시간 됐다! 들어간다!”
스르르-.
마침내 배가 킹스로드의 끝, 미들랜드와 연결된 블랙홀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띠링-.
홀로그램으로 메시지가 하나가 전송되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그제까지의 쓸데없는 생각을 단숨에 날려 버리며, 내게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어주었다.
⁝
흐음.
예상하기도 했고, 또 한 번 겪어봤던 것이라 그런지 그렇게까지 쓰라리진 않았다.
게다가,
‘1/3정도가 깎인 거면······ 그리 나쁘지 않은데?’
하락폭이 생각했던 것보다 양호했다. 전과 비슷한 정도?
제2차 격변의 시기다 보니, 1차 때보다도 훨씬 더 급감할 줄 알았는데······.
짐작하건대, 현재 레오의 무력이 조금 부족한 상태인 것이 전체적으로 감안된 게 아니었을까.
선장은 다시금 까맣게 물든 유리창 너머를 보곤 말했다.
“그럼 다시 볼 일들 보라고. 도착할 때쯤 되면 알려줄 테······.”
바로 그때였다.
쿵.
“······응?”
갑작스런 굉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선체가 약간 흔들렸다.
“뭐지?”
“방금 흔들리지 않았어?”
“그런가?”
그러나 선체는 이내 잠잠해졌고, 딱히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여, 다들 별 생각 없이 흩어지려 할 때였다.
갑작스레,
쿵.
한 번 더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번엔 좀 전에 비해, 보다 분명하게 느껴졌다.
소리도, 또한 충격도.
그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밖에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배를 박았다.
그즈음엔 나뿐만 아니라 다들 이 기현상을 의식했는지, 움직임을 멈춘 채 귀만 쫑긋하고 있었다.
이어,
쿵-.
쿵-.
예의 충격이 반복되었다.
바로 그때,
“······헙!”
갑작스레 놀라 소리를 지른 선장이 조종석 한 편으로 달려갔다.
이어 그는 조종석 부근에서 뭔가를 만져보더니,
“······빌어먹을.”
이내 일그러진 얼굴로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왜, 무슨 일이야?”
나는 약간 당황한 채 물었다.
문제가 생기리란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미들랜드로 넘어오자마자 발생하는 건 아니었다.
원작에서 일어난 사건은 모험가협회 본부에 막 도착할 즈음, 갑작스레 다가온 거인에게 습격을 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검은 바다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원작엔 없던 일이었다.
이어, 나는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어째선지 불길함이 감돌고 있었다.
때마침,
“흑어(黑魚)다.”
선장이 불길함의 정체에 대해 말해줬다.
“흑어?”
그는 이엔 대답하지 않고 잠시간 침묵하다,
“사실 너희들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다.”
이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실제로 킹스로드를 건널 자격을 받고 배에 올라탄 이들 중 20%는 미들랜드의 땅을 밟기도 전에 죽는다. 미들랜드의 기운에 잡아먹힌 탓인지, 불운이 연달아 겹쳐들거든. 거인이 덮치든, 날아든 날짐승에게 공격을 당하든······ 심지어 발을 헛디뎌 죽는 녀석도 있었어. 그토록 강한 무력을 지닌 녀석들이 그렇게나 어이없게 죽곤 하지.”
와중에도,
쿵-. 쿵-. 쿵-.
쿵-. 쿵-. 쿵-.
선체는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점점 더 심하게.
“하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운이 나쁜 1%는 정말 시작과 동시에 죽는 녀석들이다. 흔히들 저주받은 신참이라고 부르지.”
“저주?”
“극히 드문 확률도, 킹스로드가 배를 ‘다른 곳’으로 뱉어낼 때가 있다. 본래의 도착예정지가 아닌, 머나먼 미들랜드의 심해 어느 깊숙한 곳으로.”
“······.”
그쯤 되니, 선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지금인 것 같다.”
그의 이마엔 어느새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쿵-.
쿵-.
쿵-.
배가 몹시도 흔들렸다.
심지어는,
와그작-.
분명 ‘견고’ 특성이 주입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저기서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황당하게도, 무언가에 의해 배가 ‘씹히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다. 나도 이 같은 경우는 처음이야.”
이에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어떻게······ 방법은?”
“전투를 준비해야 되나요?”
“상관없어. 뭔지는 몰라도 처리하면 죄다 그만이지.”
그러나 선장은 이에 고개를 저었다.
“흑어들은 공허의 유산이다. 죽이거나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존재가 아냐. 미들랜드의 암흑과도 같은 녀석들이지. 칠왕조차도 피하는 마물이다. 전투는 자살행위다.”
그러고 선장은 잠시간 침묵하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최악만 면하는 수준일 뿐이야. 차악이지.”
무언가 결단을 내린 듯, 두 눈을 빛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래도 운이 좋다면 이곳을 벗어날 순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다음이 없다. 알아서 살아남아야 돼. 그러니······ 부디 남은 운이라도 좋기를 빌라고. 저주받은 신참들.”
그러곤 그는 곧장 조종석으로 달려간 뒤, 무언가를 조작했다.
이어,
“모두 갑판 쪽으로 이동해! 그리고 떨어지지 않도록 난간이라도 꼭 붙잡아. 곧 발사할 테니까.”
“발사?”
“엔진을 폭파시키고, 그에 대한 추진력으로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다. 목적지는 가장 가까이 있는 육지.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나도 몰라.”
모두를 갑판 쪽으로 이동시켰다.
쿵-.
쿵쿵-.
쿵쿵쿵쿵쿵-.
“이거······ 서둘러야겠는데?”
나는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십분 동의했다.
특수합금으로 덮인 선체의 천장과 외벽은 이미 보기 흉할 정도로 찌그러진 상태였다.
곧 물과 함께 ‘녀석들’이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준비해! 10초 뒤 폭발한다. 꽉 잡아!”
조종석 부근에서 선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어,
– 10, 9, 8, 7······ 2, 1!
쾅!
엔진이 폭파되면서, 몸이 급격히 뒤로 쏠렸다.
배가 분리되어 날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들 꽉 잡아!”
나는 얼른 난간을 잡곤,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그곳에 선장은 없었다.
······.
사실 진즉에 알고 있었다.
이 일엔 그의 희생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한편으론, 이를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선장은 원작에서도 죽는 역할이었으니까.
나는 이미 그의 최후를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최악이네······.’
가슴 깊숙이 저며 오는 이 씁쓸함은 당최 진정이 되질 않았다.
“주걱턱······.”
“선장이······.”
“······됐어, 더 말하지 마. 일단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 돼.”
그렇게 우리는 선장의 희생을 뒤로한 채, 저 멀리 어딘가로 날아갔다.
*
얼마나 지났을까.
쾅-.
육지로 짐작되는 곳에 우리가 처박힌 건, 그로부터 몇 분가량이 지난 다음이었다.
“뭣들 하고 있어! 선장의 말을 그새 잊은 거야?”
나는 침울함에 휩싸여 있던 녀석들을 재촉해 밖으로 내몰았다.
그의 말이 맞다. 현재 우리는 다음이 없다.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언제 어떤 위험을 맞닥뜨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는 원작에선 존재하지 않던 전개였으니.
곧이어,
“······응?”
“숲?”
“여기······ 위험하지 않은 것 같은데?”
먼저 밖으로 나간 녀석들의 입에서 긍정적인 반응들이 들려왔다.
“오······.”
정말이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그냥 숲이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숲.
위협이 될만한 생물도 없었고, 딱히 불길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운이 좋았던 건가?’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괜찮은······ 건가?”
“선장 그 녀석······.”
“조용, 경계를 늦추지 마. 혹시라도 수상한 녀석들이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바로 그때였다.
“오잉? 뭐냐 너희들?”
마침 어디선가 갑작스런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멀찍이 떨어진 곳에 웬 사람들 무리가 커다란 바위 곁에 걸터앉아 있었다.
웃통을 벗은 채, 더위를 식히고 있는 남자들이었는데······ 하나 같이 건들건들한 모습들이 어째 삼류 악당들을 떠올리게 했다.
미들랜드에······ 삼류 악당?
뭔가 낯설지만은 않은 느낌이었다.
뭐였더라? 이 녀석들······ 어디서 봤더라?
그때,
“뭐야 니들? 왜 저쪽에서 날아온······ 아하, 혹시 운이 더럽게도 없는 신참들인가? 저주받은 녀석들?”
또 한 번 녀석들이 킬킬거리며 물었다.
나는 일행들에게 조용히 하라 신호를 보낸 뒤, 앞으로 나섰다.
숲은 불길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녀석들은 이상하게 불길했다. 그것도 더없이.
이윽고,
“어이, 근데······ 죄다 벙어리들인가? 엉? 입 없어?”
그 중 한 녀석이 실제로 일어나 어기적어기적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얼굴을 확인한 순간,
······!!!?
나는 놀라 숨이 멎을 뻔 했다.
아는 얼굴이었다.
결코 지금 마주쳐선 안 되는 얼굴이기도 하고.
“엉!? 얌마, 무시해? 무시하지? 엉? 대답 안 해!? 어? 어!? 엉!?”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
붕어 마냥 툭 튀어나온 두 눈.
살이 뒤룩뒤룩 쪄,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배.
실로 더러운 인상의, 마치 나만큼이나 전형적인 삼류 악당의 모습을 한 남자.
그 이름은 채무불이행자 루덴코프.
칠왕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