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저마다의 길
***
이건······ 위험하군.
하카는 아무런 말없이 걷기만 하는 코코아를 보며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가만 뒀다간 망가지고 말지도.
“······.”
별 수 없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언젠가부터 하카는 자신에게 무언가 특별한 눈이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소위, 길눈이라 불리는 그것.
전에 주걱턱 씨가 흘리듯 말하는 걸 듣긴 했으나, 딱히 의식하진 않았었다.
길잡인 것 같다느니, 확실히 길눈이 있다느니.
아니, 어쩌면 일부로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는 늘, 해독가의 재능이 있길 바라왔었으니. 도깨비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하지만 주걱턱 씨의 지시를 받아 뒷세계의 조직들을 통합하고 아우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솔직히 깨닫고는 있었다.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유야 간단했다. 그 일들이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가 웬만하면 다 보였으니까.
사우스랜드에서 떠날 시기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렸을 때도, 또 A급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 방향을 선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다 보였다. 어느 때 떠나야 하고, 어디로 가야할지가.
하여, 지금 이 순간 코코아의 발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또한······ 쉬이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도저히 안 되겠군.’
굳이 길눈이 발달되지 않았어도 알아차릴 수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현재 그녀는 마치 걷는 것만이 필생의 목적이라는 듯 걷고 있었다.
마치 멈춰서는 순간 모든 게 끝장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그렇게 필사적으로 걷고 있었다.
그 마음이야 모를 수가 없다. 만약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게 된다면······ 아마도 그 순간, 뒤돌아 그에게 달려갈까 싶어서였겠지.
하카는 그즈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급하지 않게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처리하는 것.
먼저,
“······코코아.”
하카는 코코아부터 불렀다.
그녀의 걸음을 제지하는 게 첫 번째다.
그러나 코코아는 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걸어갔다.
하여,
“코코아.”
“······응?”
“잠시만, 잠시만 좀 멈춰주시겠습니까?”
하카는 직접 앞질러 가 코코아의 앞을 막아섰다.
“어······ 안 돼. 우리 가야 돼.”
그녀의 초점을 잃은 두 눈은 불안에 젖어 있었다.
목소리는 떨렸고, 또한 공허했다.
“괜찮습니다, 잠깐만 멈춰 보시죠.”
“어······ 아냐, 가야 돼.”
“어디를요.”
“주걱턱이 말한······ 모험가의 탑······ 타락한 남자······.”
“그게 어딘지는 알고요?”
“그건······ 그냥 일단 움직이면서······.”
그즈음 하카는 두 손으로 가만 코코아의 어깨를 꼭 쥐었다.
“혼자 갈 거예요?”
“응? 어······ 아니, 왜······.”
“코코아, 뒤를 한 번 돌아 봐요. 주걱턱 씨는 없지만······ 당신이 이끌어야 할 또 다른 동료들이 있습니다.”
“······.”
곧이어,
스르르-.
코코아가 마침내 걸음을 멈추곤,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리고 거기엔,
“······내가 이끌어야 하는 동료들.”
코코아만큼이나 굳은 표정의 그들이 있었다.
주걱턱 씨와 함께 해온, 또 다른 동료들이.
이어 하카는 다시금 코코아의 어깨를 쥐고, 조심스레 그녀의 몸을 앞으로 돌렸다.
이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까지 보여줄 순 없으니까.
코코아의 두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
그러고 보니, 이렇게나 어린 소녀였지.
잠깐 동안 주걱턱 씨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을 대신하라니.
그런 막중한 책무를 어떻게 이 어린 소녀에게 맡긴단 말인가.
하카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코코아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
하카는 다음으로 모두의 주의를 끌었다.
“자, 여러분.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모두들 주목해주세요.”
그러곤,
짝짝-
침울한 기색의 그들에게 박수를 쳤다.
그렇게 하나둘 시선이 모여들 무렵,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주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우리 배부터 좀 채울까요?”
곧이어 모두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스쳐갈 즈음,
“치누아비님?”
“······네? 네?”
“저기 구구와 네로와 함께 주위 먹을 만한 것들이 있는지 좀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정령들을 활용해서요.”
“아······ 네, 네.”
하카는 한 명, 한 명 역할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로시님?”
“······응?”
“치누아비님을 따라가 혹, 위험한 짐승이라도 나오면 힘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위 불길한 마나의 흐름도 탐지해주시고요.”
“아, 응.”
“그리고 코미어님?”
“응? 아, 어······.”
“잠시만 좀 이리로.”
그러곤 하카는 멍하니 옆에 서 있던 코코아에게 속삭였다.
“코코아, 그거 챙겼죠? 아까 다 봤습니다.”
“······으, 응? 뭐?”
“그거 있잖아요, 우리가 타고 온 거.”
“아······.”
그제야 코코아는 알겠다는 듯, 천천히 가죽주머니를 뒤적거려 그것을 꺼냈다.
아폴호 스타십 호의 파편.
목숨을 걸고, 심해 밑바닥에서 육지까지 날려준 선장의 유산.
“코미어 씨, 제가 어떤 걸 부탁드릴지 아시겠죠?”
“아하······ 이걸로 쉘터를 만들어라?”
“예. 그리고 최대한 안락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오래 지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가능 하시겠습니까?”
“글쎄······ 아마 가능하긴 할 거야. 훼손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재료가 들어간 녀석이니까.”
이어 코미어가 작업에 착수하는 걸 확인한 뒤, 하카는 마지막 남은 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칼 자이드님?”
다른 이들과는 달리, 회색사자는 시종일관 냉철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던 그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다소 뜬금없는 것이었다.
“빨리 좀 나서주지 그랬어.”
“예?”
“그랬다면 다른 길로 들어설 수 있었을 텐데.”
“······.”
그러고 보니, 칼 자이드 또한 코코아가 어긋난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진즉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는 거의 모든 종류의 능력에 통달해 있다고 했으니.
그럼에도 말없이 따라왔다는 건······.
“······신경을 써 주고 계셨던 거군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여.”
“괜찮아진 것 같으니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가야할 길이 보이셨나 보군요?”
“전혀. 하지만 걷는 수밖에. 매번 눈에 들어오는 쪽으로만 갈 순 없으니까. 때론 개척도 해야 하는 법이거든. 어쩌면······ 그래, 주걱턱 녀석이 그랬던 것처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나 또한.”
칼 자이드는 그러곤 말없이 뒤돌아 사라졌다.
그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두 눈은 결코 두려움의 젖은 이의 그것이 아니었으니.
하카는 그 뒷모습을 잠시간 쳐다보다,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거기, 두 눈가에 눈물자국이 진한 어린 소녀가 있었다.
이를 본 하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림자.”
“응?”
“그게 제 역할입니다.”
이제껏 그림자처럼 살아왔다.
가진 능력도 그렇고, 배경도 그렇고.
그게 편했다. 또한 그 이상을 바란 적도 없고.
하여 주걱턱 씨와 함께 하겠다 결정을 내렸을 때도, 그저 그의 보이지 않는 손과 발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을 뿐이다.
다른 이들에게 시킬 수 없는, 그러나 꼭 해야만 하는 ‘뒤처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헌데 해야 할 역할이 하나 더 있었을 줄이야.
그늘.
자신은 이들의 그늘이 되어주어야 했다.
위협이 닥치면 몸을 숨겨주고, 뜨거운 태양이 뜨면 쉼터가 되어줄 수 있는 그늘.
“코코아가 앞에서 끌면, 그림자인 제가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는 거죠. 그러니 혼자가 아닌 겁니다. 절대로.”
그즈음 코코아의 흔들리던 초점이,
“······응.”
이내 바로잡혔다.
“자, 그럼 이제 앞으로의 계획을 좀 세워 볼까요? 모험단 임시 단장님?”
“······응. 좋아. 부단장.”
“제가 부단장인가요?”
“응. 내가 임명했으니까.”
“흐음······ 좋네요, 감투라니. 좋습니다, 그럼 주걱턱 씨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 한 번 잘 살아남아 보자고요.”
그러곤 하카는 아직 임무를 부여하지 않은, 주걱턱 모험단의 마지막 인물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너는 그림자.
모두가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그늘이 되어라.
*
“역시······ 역시 그렇게 돌아섰으면 안 됐어!”
“그만해 레오. 이미 지난 일이야.”
“맞아요, 진정해요. 지금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책을 세워야 할······.”
“하지만!”
그러고 소리친 레오는 잠시간 침묵한 뒤,
“하지만······ 다들 말을 안 할 뿐이잖아. 지금쯤 그 녀석은······.”
힘겹게 몇 마디를 더 내뱉곤 이내 다시 말끝을 흐렸다.
······.
얀은 극도로 침울해진 분위기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다행히 앞장 선 타냐가 묵묵히 길을 인도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자신이었다면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머릿속이 어찌나 혼란스러웠던지, 당장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으니까.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렇게······ 그렇게 떠나오는 게 아니었어······.”
언제까지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지 모른다는 것.
레오는 이미 번민과 후회에 휩싸인 듯 보였고, 다들 만류하면서도 내심 그에 동조하고 있었다. 마치 모두가 죄인이 된 느낌이랄까.
‘······휴.’
얀은 머리가 지끈지끈해져 오는 걸 느꼈다.
바로 그때였다.
“허, 한심한 놈이로고······.”
갑작스레 누군가가 탄식과 함께 입을 열었다.
돌아보니,
“······아버지?”
말을 꺼낸 이는 다름 아닌, 아버지 그로니얀이었다.
그는 그러곤 성큼성큼 레오에게로 다가가더니,
찰싹-.
느닷없이 레오의 뺨을 후려쳤다.
이에,
“어, 어······?”
“뭐, 뭐야!?”
“뭐하는 짓이야!”
함께 있던 이들이 모두 놀라 소리쳤다.
“뭐······ 뭐?”
레오 또한 당황하여 그를 돌아봤다.
“언젠가 주걱턱 녀석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 네놈을 하나뿐인 맞수로 표현하더구나. 허, 참으로 웃기지도 않는 일이지.”
“······뭐?”
“지금 네까짓 게 돌아가 뭘 할 수 있단 말이지? 주걱턱을 구하겠답시고 그 괴물에게 싸움이라도 걸려고? 여기 있는 이들을 죄다 죽음으로 몰아넣겠다는 게냐? 아니면, 빌기라도 하려고? 주걱턱을 제발 살려달라고?”
“그, 그건······.”
“네 놈보다 수백 배는 강한 주걱턱 녀석이 자처해서 남았다. 그 녀석이 도망을 치지 못해서 남았겠느냐? 아니면, 그 녀석이 겁쟁이에 바보라서 전투 한 번 해보지도 않고 저항하기를 포기했다는 거냐?”
이에,
“······.”
레오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네놈에게 중요한 건 뭐지? 그 하찮은 정의감? 미안함? 미처 해소시키지 못한 감정? 너는 네놈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한 주위의 다른 녀석들은 보이지도 않는 게냐?”
그 순간,
움찔-.
고개 숙인 레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건······ 아냐.”
“이딴 놈을 모험단의 단장이랍시고 따르고 있는 녀석들이 불쌍하구나. 나는 가겠다.”
이어 몸을 홱 돌리곤, 곧장 떠나려는 것이었다.
“아, 아버지!”
얀은 급한 마음에 그를 불러 세웠다.
“어, 어디······ 어디를······.”
“왜, 너도 함께 가겠느냐? 잘 생각했다. 저 아둔한 녀석 따위와 함께 있다간 얼마 가지 않아 목숨을 잃고 말 테니.”
“아,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리고 레오는 멍청하지 않아요. 지금은 그저 미안함이 큰 탓에······.”
그때였다.
“아냐, 얀. 그로니얀의 말이 맞아. 나는 멍청한 게 맞고, 지금까지 모두를 위험에 내몰려고 하고 있었어.”
레오가 그러고 중얼거리더니,
빡-!
갑작스레 앞에 있던 바위에다 머리를 쳐 박았다.
“모두들 미안.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봐. 이제 그 녀석 얘기는 하지 않을게.”
레오는 흐르는 피를 닦지도 않은 채, 그러고 씩 웃었다.
“레오······.”
“아냐, 다들 말을 안했을 뿐이지······.”
“너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그만.”
레오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맞아,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생존에 집중해야 돼. 우리가 약하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그리고 똑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고.”
그러곤 홀로 다짐하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녀석은 죽지 않을 거야. 그렇게 믿어야 해. 그리고 우리가 녀석을 구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기르게 되면······ 그땐······ 그땐 꼭 녀석을 구하러 가자.”
······.
잠시 후,
“그로니얀, 정말 갈 셈이야?”
레오는 조금쯤 맑아진 눈으로 그렇게 물었다.
얀은 아버지가 ‘아니’라고 대답하길 바랐지만,
“물론.”
아쉽게도 그의 대답은 정반대였다.
“고마워. 원래부터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지? 그냥 갔어도 됐었을 텐데······.”
“······.”
“덕분에 정신 차렸어. 고마워.”
“고마워 할 것 없다. 정신을 차렸으면 되었다.”
그러곤 아버지는 이내 걸음을 뗐다. 이어 무정히도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지기 시작했다.
얀은 아버지를 잡을 수 없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으니.
그때였다.
저만치 가다 돌연 멈춰선 그가,
“······다들 죽지 말거라.”
중얼거리듯 말했다.
“고마운 건 외려 내 쪽이다. 친구하나 없던 얀을 보듬어 준 녀석들이 아니더냐. 또 내가 이곳에 넘어 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도 했고. 언젠가······ 꼭 보답하마.”
······.
“가겠다.”
그는 그러곤 곧장 떠나버렸다.
그렇게, 정말로 가버렸다.
“······아버지.”
“그는 괜찮을 거야. 강한 인간이니까. 그리고······ 그의 길은 어둡지 않아.”
마침 곁으로 다가온 타냐가 위로하듯 말해줬다.
“물론, 우리의 길도.”
그즈음, 한결 밝아진 음성으로 레오가 입을 열었다.
“우리도 가자. 멈춰있을 시간이 없어. 이제······ 진짜 시작이니까.”
*
“음?”
“······음?”
“호오.”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었다.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네놈도 따로 나왔나 보군.”
“······애초에 소속된 적도 없었다. 그저 임시 동행이었을 뿐.”
“훗, 그렇다고 보기엔 썩 어울렸던 것 같던데.”
“그쪽이야말로 그곳에 아들이 있지 않았나? 어째서 홀로 떨어져 나온 거지?”
“그야······ 너와 같은 이유겠지. 길이 달라서다.”
“······그런가.”
칼 자이드는 이어 그로니얀을 힐끔 쳐다봤다.
“뭔가 달라졌군. 희한하게도 좀 더······ 강해졌어. 아니, 제법.”
“호오, 그게 보인단 말인가?”
그러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생전 처음 느껴본 무력감이었다. 나도 모르게 새삼 치밀어 올랐던 모양이야. 그 녀석에 대한 분노와 나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주걱턱 녀석에게 느낀 미안함이라는 게. 그때 마침 뭔가가 끓어오르더군.”
“······설마.”
놀라운 일이었다.
그로니얀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유능력을 획득한 모양이었다.
칼 자이드는 어느 쪽이 더 놀라운 건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미들랜드로 넘어오고 나서야 고유능력을 각성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껏 그게 없었음에도 그만한 강함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인지.
“······괴물이었군.”
“아니, 아직이야. 너도 느끼지 않았나? 우린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해. 아니, 고작해야 지렁이나 될까. 아까 그 대머리 뚱땡이······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죽었다 깨어나더라도 당해낼 수 없다. 여긴 그와 같은 진짜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세계니까.”
칼 자이드는 이에 동의했다.
그래서 자신 또한 서둘러 나오지 않았던가. 어떻게든 이 세계에 걸맞은 강함을 지니기 위해서.
“그렇군. 그래서 어디로 갈 생각이지?”
“그렇지 않아도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잘 됐군, 길눈이 좋은 녀석을 만나게 되었으니.”
“······뭐?”
난데없는 소리였다.
“설마 지금······.”
“흐흐, 같이 좀 다니자고. 호기롭게 나오긴 했지만 말이야, 사람이 늙으면 약간 적적해지는 법이거든······.”
“······.”
그렇게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
“하나만 말해두지.”
“뭐?”
“네놈······ 조심해야 할 거다.”
“······누굴.”
“내 부하들은 나만큼 점잖지 않거든. 네놈 같은 외모라면······ 흐흐, 밤중에 꽤나 손님들이 들이닥칠지도? 크흐흐흐······.”
“······뭐?”
나는 이에 의아해 하다,
“아하.”
녀석을 마주보며 씩 웃어주었다.
“아, 내가 말 안했던가?”
“엉?”
“나도 이쪽 과야.”
그러곤 익숙한 외형으로 돌아갔다.
이에 놀란 루덴코프가 그 붕어 같은 눈을 부릅떴다.
“호오, 과연······ 크하하핫, 더럽게 못생겼구나! 이 대왕 주걱턱 같으니라고!”
“너만 할까, 비곗덩어리가.”
“크하하하, 아직 입이 살았구나.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잊지 말아야 할 텐데 엉? 네놈은 노예 신분이라는 걸.”
그러곤 녀석이 내 손목과 발목에 달린 족쇄를 툭툭 쳤다.
“······이까짓 것.”
물론 당장은 풀 수 없었다.
이는 루덴코프의 권능이 들어간 물건이었으니.
‘좀만 기다려라. 다 깨부숴버리고 말 테니까.’
이어, 나는 루덴코프를 따라 녀석의 근거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엔,
“크하하! 술 가져와!”
“멍청한 놈! 네까짓 놈한테 줄 술이 어디 있다고!”
“뭐, 이 자식이? 죽고 싶어!?”
“킬킬, 덤벼보든가!”
루덴코프와 흡사하게 생긴 녀석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장난스럽게 오가는 말들 중에도 살의와 악의가 가득한 인간들.
정신병자와 도살자, 살인마들이 가득한 무법집단.
루덴코프 모험단.
앞으로 함께 지내야 할 짐승들이었다.
그즈음,
‘그래, 지금부터 여기에 적응해야 한단 말이지.’
나는 약간은 긴장된 기색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디, 한 번 해보자고.
“신참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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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개월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