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루덴코프 모험단의 2인자
***
모험의 탑 68층.
중립지대 – 권좌의 홀.
거인들이 뛰놀 수 있을 만큼 넓디넓은 메인 홀.
근 몇 년간 적막하기만 했던 공간이 이른 아침부터, 홀 관리자들의 거센 고성에 의해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얼마 뒤면 도착시간이라고!”
“의자, 의자부터 가져와!”
“빌어먹을! 서둘러!”
달에 한 번 꼴로 먼지 제거만 이뤄지던 이곳이 마치 새 단장을 하듯, 정리되고 꾸며지고 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예정에 없던 방문객들을 급히 맞이해야 했기 때문에.
준비시간이 부족하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방문요청이랍시고 의사를 통보해온 이가 다름 아닌, 저 ‘채무불이행자’였으니.
심지어 동석자로 적힌 다른 이름들 또한 그에 못지않은 것이었고.
하여,
“이크! 얌마, 조심해!”
“잠깐, 뭣들 하는 거야! 카펫부터!”
“이런 멍청이들이! 카펫부터 깔아야 한다고!”
“의자 치워!”
이렇듯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면에 깔린 레드카펫은 총 넷.
이는 곧, 마련되어야 하는 자리가 총 네 개라는 뜻이었다.
넷. 한둘도 아닌 넷.
권좌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다 까다롭기 그지없다.
의자의 색상, 높이, 향, 장식 하나하나까지 다 맞춰 준비해야 했고, 그마저도 그 가공할 만한 힘과 성격 때문에 늘 부서지기 십상이라, 똑같은 것을 여러 개 가져다 놔야 했다.
또한 본인의 것이 다른 이의 것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굉장한 문제가 발생하기에, 의자 하나에만 홀 관리자들 전원이 달라붙어 죽을힘을 다해 꾸미는 게 보통이었다.
헌데 이걸 갑작스레 넷이나 준비해야 하다니.
심지어 그 중엔,
“빌어먹을······ 그냥 바닥에 앉으면 안 되나?”
대전의 1/3가량을 홀로 차지하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황금의자도 존재했다.
홀의 관리자들 중 가장 힘이 세다는 이들 스무 명이 달라붙어도, 한 번에 몇 발자국 옮기기가 힘들었다.
하여,
“에잇! 거인왕의 의자는 그냥 북쪽에다 둬!”
홀의 지배인은 결단을 내렸다.
“예? 하, 하지만 거긴 회동 주최자의 자리······.”
“당장 급한데 그런 게 어디 있어! 연단을 그 반대편에 설치하면 되잖아!”
물론, 문제를 삼으려면 얼마든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유일하게 상석이라고 불릴 만한 북쪽자리는 주최자의 것으로 공인된 지 오래였으니.
다만, 지배인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회동의 주최자가 바로 그 ‘채무불이행자’라는 것.
참석률부터 현저히 낮은 그가 과연 자리 배치에 불만을 품을까?
아니, 북쪽자리가 상석이라는 걸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심지어 회동 주최자로서는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는 그가?
게다가 다른 참석자들이 모두 ‘빚쟁이’인 상황에서, 그가 상석을 고집할까?
답을 알 순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서두르라고!”
잠시 후.
“후······.”
간신히 시간 내에 세팅을 마무리 한 뒤, 지배인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 배치만 제외한다면, 지적될 만한 사항은 딱히 없을 듯했다.
그리고 그즈음에야,
‘그러고 보니 무슨 일이지?’
여유가 생긴 지배인은 문득, 이번 회동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천 년이 넘도록 ‘탑의 주인’들의 회동 장소를 제공해왔던 이곳이지만, 이토록 급작스럽게, 그것도 무려 넷이나 함께 모이는 자리가 만들어진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니, 애당초 저들이 회동을 가졌던 것 자체가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다.
자신의 기억으론, 8, 9년 전 있었던 ‘대마녀’와 ‘옛 용’ 두 존재의 만남이 가장 최근의 일이었으니.
더군다나 이번 회동의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저 ‘채무불이행자’에 의해 주최되었다는 것이다. 생전 이 같은 모임과는 거리가 먼 존재이지 않는가.
‘무슨 큰 일이 있나?’
지배인은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물론, 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는 건 어불성설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세계가 얽힌 곳이니 만큼, 매순간 새로운 사건사고들이 발생하고 있을 테니.
다만 이곳 권좌의 홀이라는 곳이 탑 내에서 영향력이 높은 존재들의 회동을 주관하는 장소다 보니, 다른 이들에 비해 들어오는 소식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여 웬만한 일은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없었다.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이에,
‘흠, 요새 너무 귀를 닫고 살았나?’
지배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난날을 반성하고 있을 때였다.
“이봐, 그거 들었어?”
그즈음 귓가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흘러 들어왔다.
돌아보니, 작업을 다 마친 관리인 몇몇이 모여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인 거야?”
“그것도 모르고 일한 거야? 채무불이행자가 회동을 개최한 거잖아.”
“참나,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갑자기 뭐 때문에 모임이 열렸냐 이 말이지.”
“그걸 아는 사람이 여기 어디 있을까. 근데 이건 내가 예약담당 쪽에서 들은 건데······ 이번에 예약하겠다고 연락을 취해온 이가 바로······ 그 녀석이라고 하더라고.”
“그 녀석?”
“왜 있잖아. 그······ 주걱턱.”
주걱턱?
지배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를 말하는 거지?
“주걱턱이라면······ 설마 그 주걱턱?”
“뭐야, 누구를 말하는 거야?”
“너 몰라? 그 녀석 말이야, 주걱턱. 루덴코프 모험단의 2인자.”
응? 루덴코프 모험단의 2인자?
놀랍고도 당혹스러운 내용이었다. 그런 존재가 있었다고?
이에 궁금증이 생긴 지배인은 그쪽을 향해 한 발 다가갔다.
“아직 여기까진 소문이 덜 돌기는 했는데······ 아래층 여기저기에선 지금 꽤 난리가 났다나봐. 새롭게 루덴코프 모험단의 2인자로 올라온 그 녀석 때문에.”
그의 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았다.
본래 루덴코프 모험단은 악명이 자자하긴 했으나, 그리 넓은 영역에서 활동하는 녀석들은 아니었다. 제대로 관리하는 층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세력 확장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어, 영향력을 행세하는 층이 몇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자기들 동네에서나 활개 치는 악당무리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이는 수장인 루덴코프가 한 곳에 붙어 전체 세력을 불리기보다는 소규모 인원으로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기 때문인데, 근 몇 개월 사이 그 경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공격적으로 세를 불리고, 층을 점령하고, 약탈을 일삼기 시작했다고.
바로 저 ‘주걱턱’이라는 녀석의 등장과 함께 말이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세력은 죄다 삼켜버리고, 방해가 되는 녀석들은 풀 한포기 남기지 않고 없애버렸다고 하더군. 무자비하게도 말이야.”
“나도 그건 들었어. 죄다 산채로 태워버렸다고 하던데······ 그게 간편하다면서.”
“자, 잠깐······ 그거 혹시 22층 얘기인가? 세계 자체가 완전히 불타버렸다는?”
“불태운 것뿐이겠어? 묻거나, 태우거나, 머리통을 쥐어 터뜨렸다고 하더라고. 심지어 참신한 처형식을 제시한 녀석에겐 보상을 내렸다는 말도 있고.”
“그, 그게 사실이라면······ 굉장히 잔혹한 녀석이군.”
“끔찍한 녀석이지. 벌써부터 악명이 자자해. 인간학살자 주걱턱, 도살꾼 주걱턱······ 두목인 채무불이행자의 악명을 넘어설 정도라니까?”
주걱턱이라······.
물론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었다.
녀석 또한 채무불이행자가 내세운 인형일지도 모르고.
다만, 그렇다고 전혀 의미가 없는 소문은 아니었다.
저 말들 중 절반 정도만 사실이라 해도, 이번 회동에 이토록 참석자가 많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테니.
바로 그때였다.
뿌우-.
댕. 댕. 댕.
“대마녀께서 입장하십니다!”
마침내 첫 번째 권좌의 주인이 도착했다.
대마녀 카밀라.
칠왕이라 불리는 세계의 주인 중 하나이자, 무려 40개가 넘는 층을 지배하고 있는 마녀들의 우두머리.
곧이어, 눈부시게 빛나는 외모의 미녀가 세 명의 또 다른 미녀들과 함께 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서늘한 눈빛으로 잠시간 대전을 둘러본 그녀는,
“······미흡하군.”
한 차례 지적 후, 동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이에,
“······헙!”
당황한 지배인이 허겁지겁 그녀에게 달려갔다.
“죄, 죄송합니다. 부, 불편하신 점을 말씀해주시면 금방 다시 준비를······.”
“됐다. 다른 놈들이 곧 올 터이니. 이번만 넘어가도록 하지.”
“예······ 예?”
“귀가 멀었더냐?”
“······아, 아닙니다.”
희한한 일이었다.
유독 까탈스러운 그녀가 세팅의 미흡함을 느꼈음에도 별 말 없이 넘어가다니.
이는 못 본 사이 그녀의 이해심이 증가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 그 같은 자질구레한 교체작업으로 인해, 이번 회동이 지체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겠지.
지배인은 이미 대전 내에 심상찮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음을 감지했다.
어쩌면 오늘, 무언가 엄청난 사건이 벌어질지도.
곧이어,
“검은 용의 수호자께서 입장하십니다!”
“거인왕께서 입장하십니다!”
두 존재가 동시에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온 건 둘 뿐이었으나, 마치 대전의 반이 찬 듯한 광경이었다.
검은 용의 수호자, 잇신.
거인왕, 자움달.
평범한 인간의 열 배가 넘는 덩치의 잇신과 그의 백배는 될 듯한 자움달.
그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두 칠왕은 본인들에게 배정된 자리로 가 말없이 앉았다.
이어 당혹스럽게도,
삐그덕-.
콰당!
“히, 히익······!”
“죄, 죄송합니다! 요, 용서를······!”
“뭣들 해! 어서 교체하지 않고!”
거인왕이 거대한 황금의자에 착석하자마자, 의자의 한쪽 발이 우지끈 부서졌다.
헌데,
“······음, 됐다.”
거인왕은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걸터앉았다.
지배인은 졸도할 듯한 두려움과 함께, 동시에 의아함을 느꼈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잠시 후,
“채무불이행자께서 입장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회동의 주최자가 대전 안에 들어섰다.
놀랍게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곁엔 누군가가 서 있었는데, 그가 바로 소문의 ‘주걱턱’인 듯했다. 턱이 머리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긴 것만 봐도 능히 그 성향이 짐작이 됐다.
‘······굉장한 악당이 분명하군.’
심지어 루덴코프를 다소 심심하게 보이게 만들 정도였으니.
그러고 첫인상을 바탕으로, 그에 대해 판단해보고 있을 때였다.
순간,
저벅저벅-.
이제까지의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은 그저 애교로 느껴질 만큼,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말없이 하나 남은 자리로 가 앉은 루덴코프와는 달리, 주걱턱이 홀로 대뜸 연단 위로 올라섰던 것이다.
그러곤,
“시간 아까우니 곧바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
난데없이 그러고 말을 내뱉었다.
본인이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
혼돈.
그즈음 장내의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한 모든 단어들 중, 그나마 가장 사실에 가까운 건 바로 그것이었다.
장내는 혼돈에 휩싸였다.
다음 중 어떠한 것이 더 경악스러운 일이었는지는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녀석이 홀로 연단에 섰다는 것?
주인인 루덴코프를 제치고 먼저 발언을 했다는 것?
본인이 마치 회동의 주최자인 양, 회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한 것?
심지어, 칠왕들에게 반말로?
대체 이게 무슨 경우야.
지배인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이게 지금 현실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곧이어,
“······건방진.”
대마녀의 뒤에 있던 세 마녀들 중 하나가 서슬 퍼런 눈을 한 채,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지금 네 놈이 무슨 짓을 한 지는 아느냐?”
그러나,
“······.”
주걱턱은 이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킥······.”
그저 한 차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던지,
“놈······ 죽음으로 대가를 치를 지어다.”
그녀가 녀석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곤 웬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구체를 날렸다.
그것은 그리 크지도, 빠르지도 않았지만, 심상찮은 힘을 품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것을 중심으로 공기가 일그러지는 게 한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심지어 그것은 점점 커지기까지 해, 금방이라도 주걱턱을 한 입에 삼킬 듯 보일 정도였다.
이어,
‘위, 위험!’
구체가 주걱턱에게 막 닿으려 할 때였다.
난데없이,
펑-.
구체가 터져버렸다.
순식간이었다.
그 강대한 힘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에,
“뭐······ 뭐!? 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당황한 마녀가 믿지 못하겠다는 소리쳤으나, 주걱턱은 그저 따분하다는 듯 귀만 긁적거릴 뿐이었다.
“갑자기 풍선을 날리고 지랄이야······ 귀 아프게.”
“뭐, 뭣이!?”
이어 마녀가 재차 지팡이를 쳐들었다.
거기엔 좀 전과 비슷한 형태의 붉은 색 구체가 생성되어 있었다.
직전의 것에 비해, 훨씬 더 불길함이 느껴지는 구체였다.
“놈, 이번엔 정말로 죽여주······.”
그때였다.
“그만.”
대마녀의 입이 열렸다.
“들어와.”
“대, 대마녀님! 하지만······.”
“네가 이길 수 있는 힘이 아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모두를 경악으로 물들게 하는 것이었다.
“저 녀석이 쓰는 건······ 과거 루덴코프에게 빼앗기고 돌려받지 못한 나의 힘이니.”
······.
장내엔 또 다시 고요한 혼돈에 빠지고 말았다.
뭐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즈음 대마녀가 녀석을 향해 물었다.
“놀라운 일이군. 어떻게 그 힘을 네가 쓸 수 있는 거지?”
그러자,
“그렇지. 이제야 대화가 좀 되겠군.”
주걱턱이 이번엔 순순히 입을 열었다.
황당하게도, 대마녀가 물으니 그제야 대답을 한다는 기색이었다.
“별 거 아냐. 내가 전에 빌려준 게 있어서, 나도 몇 가지 좀 잠시 빌린 것뿐이니. 아, 그러고 보니 이게 네 힘이었던가?”
허······.
이젠 놀라기도 힘들었다.
감히 저 대마녀에게 ‘너’라니.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군. 자신의 것도 아닌 힘을 남에게 재차 빌려주다니.”
대마녀는 그러곤 루덴코프를 노려봤는데,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즈음,
“궁금한 게 있으면 조금 있다가 한꺼번에 물어보라고. 일단은 내가 먼저 말을 좀 해야겠으니까. 자, 다들 반가워. 나는 루덴코프 모험단의 주걱턱이다. 루덴코프 대신에 내가 말을 하게 된 까닭은······ 저 비곗덩어리보다 내가 좀 더 말을 잘하기 때문이야. 이해해 달라고.”
주걱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는 물론,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
“이번 회의를 주최하게 된 까닭은······ 아니, 회의라기보다는 사실 전달사항에 가깝긴 하지만. 어쨌거나 모두에게 중요한 사안이 될 수 있어 급히 소집하게 되었다. 다들 이곳까지 오며 대략적인 내용에 대해선 들어 알 테니, 핵심만 다시 전달하도록 하지.”
이어 주걱턱의 입에서 나온 내용은, 이제 더는 놀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지배인을 다시 한 번 충격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칠왕 중 하나인 옛 용 드라카가 최근, 인간과 결합해 자식을 봤다는 사실은 다들 들어 알고 있을 거야. 드라카의 자식으로 추정되는 용인(龍人)의 이름은 에스트리아. 아주, 아주 건방지기 짝이 없는 녀석이지. 무려 오천 년 만에 본 늦둥이라 그런지, 자식 교육이 형편 없더라고. 그 용인이 지금 우리의 지배 중인 층에 들어와 깽판을 치고 있는데······ 더는 두고 볼 수가 없겠더라고. 하여, 교육을 좀 해줄 생각이다. 물론 이로 인해 그 도마뱀과 충돌하게 될 수도 있겠지. 아니, 아마 십중팔구 그렇게 될 거야. 고로, 얼마 뒤 칠왕끼리의 전면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즈음,
“······맙소사.”
지배인의 온몸이 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저 녀석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칠왕끼리의 전면전? 그건 ‘세상의 멸망’을 달리 표현한 것과 같았다.
허나 이토록 놀라운 얘기를 들었음에도, 칠왕들의 표정엔 한 점 변화가 없었다.
녀석의 말마따나, 이미 들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그건 알고 있다. 그러니 말하라고, 네놈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대체 뭘 꾸미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를 말이야.”
대마녀가 녀석을 노려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이 정도까지 말했는데도 모르겠다고? 참나, 죄다 멍청이들도 아니고. 그야 간단하지. 너희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뿐이야.”
주걱턱이 씩 웃으며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어진 녀석의 말에, 지배인은 그만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야 말았다.
“우리의 전쟁에 그 누구도 끼어들지 마라. 뒈지기 싫으면.”
······.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전조도 없이, 그야말로 난데없이······ 세상이 멸망하려 하고 있었다.
지배인은 그즈음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앞의 악당을 쳐다봤다.
칠왕 모두에게 싸움을 거는 미친 자.
저 녀석은 갑작스레 출현한 잔혹한 악당 따위가 아니었다.
탑 전체를 멸망시키러 온 재앙이었다.
*
모험의 탑 22층.
불타버린 대지 어느 한복판.
왜소한 체형의 한 아이가 까맣게 타버린 땅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찾았다.”
소년은 가만 멈춰 섰다.
딱히 아이를 부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장은 슬픔에 젖은 듯한 그 등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아이가 뒤돌아섰다.
아이의 얼굴은 비늘로 덮여 있었다.
“······누구신지요?”
점잖았으나, 분명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두 눈으로는 쉬지 않고 자신과 그 주위를 훑고 있었으니.
이에,
“에스트리아, 맞지?”
더벅머리 소년이 아이를 향해 씩 웃어주었다.
약간이라도 녀석의 경계심이 풀어지길 기대하며.
“내 이름은 레오. 드라카의 부탁을 받고 데리러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