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
권좌의 홀 입장 30분 전.
나는 지난 챕터들의 독자 코멘트를 확인해가며, 마지막으로 계획을 점검했다.
이미 현재의 전개가 원작과는 굉장히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기에, 어느 것 하나도 확신할 수 있는 사안이 없었다.
과연 등장해줘야 할 캐릭터가 제때 나와 줄지, 기존의 전개 양상을 그대로 따라갈지, 현재 캐릭터들의 무력수준이 어느 정도로 발달했는지 등등.
하여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다면, 완전히 헛물을 켜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츠나츠나 – 와! 새로운 칠왕!
불생 – ‘옛 용’이 수식어면 그리 센 느낌은 아닌 듯.
디니디 – 칠왕은 무조건 강함. 근데 무력 특화가 아닌 느낌은 ㅇㅈ
민si – 슬슬 하나씩 나오나 보네요!
캬오캬오 – 이제 성장도 할 만큼 했으니, 본격 탑 정복인가!?
움직이는탑 – 혹시 옛 용 vs 뇌신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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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가 드라카를 만난 게 59챕터이고, 현재 진행 중인 챕터가 61이니······ 이미 자질구레한 것들은 다 검증이 끝난 상태일 것이다.
레오의 무력이나 정의감, 혹은 신뢰할 수 있는 녀석인지에 대한 것들 등등.
즉, 지금쯤이면 분명 드라카가 레오에게 에스테리아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거라는 것.
부탁이니, 녀석을 자기 앞으로 좀 데려와 달라고.
약간 이른 타이밍일 순 있겠지만, 늦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차피 정확한 타이밍은 잴 수도 없는 것이고, 또······ 이미 너무도 오래 기다린 상태였으니까.
실제로 독자 코멘트에서 나에 대한 얘기는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래도 40대 후반 즈음 챕터까지는,
오래남기 – 그런데 주걱턱은 안 나옴?
夢行者 – 주걱턱 진짜 죽었나요?
종종 이와 같은 댓글들이 있었으나, 이젠 그조차도 없었다.
이는 레오의 성장에 불이 붙으면서, 이야기의 축이 레오 모험단 쪽으로 완전히 옮겨갔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경향을 처음 알아차렸을 땐, 솔직히 조금 당혹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본래 레오의 성장은 훨씬 더 긴 시간에 걸쳐, 차근차근 진행이 됐어야 했으니.
헌데 작가가 작심이라도 한 듯, 루덴코프와의 만남 이후 완전히 방향을 틀어 버렸던 것이다.
무려 지난 스무 개 가량의 챕터 중, 열 개가 넘는 챕터가 모두 레오의 성장에 관한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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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나의 행보에 독자들이 열광했던 것이, 아무래도 ‘먼치킨적 요소’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렇듯 레오에게 우선적으로 힘을 몰아주기로 한 걸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될 경우 전개는 계속해서 뒤틀릴 수밖에 없다.
앞으로 등장하게 될 관문의 난도와 해결법도 수정되어야 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적의 무력에도 조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의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
그렇다고 별다른 내용 수정 없이, 긴장감을 유지하겠답시고 무력수준에 맞는 에피소드를 곧장 활용한다면······ 이야기의 흐름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솔직히 이 모든 걸 감당할 자신이 있는 건지, 내가 되레 걱정이 될 정도였다.
‘······자칫 조기완결이 날지도 모르겠는데?’
작가가 겁을 먹어도 단단히 먹은 모양이었다.
여태 안심하지 못하고, 이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는 걸 보면.
하지만 물론, 그렇다한들 당장 레오가 칠왕을 씹어 먹을 정도의 무력을 갖췄다고 볼 순 없었다.
그들의 무력은 보통의 방법으론 결코 넘어설 수 없다. 그만한 강함은 운이나 뼈를 깎는 노력 따위론 얻을 수 없고, 따로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한 법이니.
원작에서도 그랬듯이, 레오가 최종적으로 칠왕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기 위해선 ‘수수께끼 시간장수 코코로코’의 공간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혹은, 죽음에 가까운 위기를 겪든가.
그와 같은 내용이 독자 코멘트에서 발견되지 않았으니, 아직 그에 미치진 못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물론 이제 슬슬 칠왕과 엮이기 시작한 이상, 그조차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로선 조급함이 들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챕터의 내용도 내용인데다, 당장 캐릭터의 격이 떨어지는 게 확실히 수치상으로 드러나 보일 정도였으니.
-현재 등급 : 주조연
-현재 수치 : 1817
-경험치 : 82%
-다음 등급까지 남은 수치 : ?
-선행 플롯 무시 가능 횟수 : 5회
6개월 전까지만 해도 2500언저리였다.
파워밸런스 조정을 거쳐, 격이 급감한 뒤에도 말이다.
물론 현재는 여러 요인들이 겹쳐, 캐릭터의 격 자체가 내 능력 전반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볼 순 없었다. 실제로 상천세계에 들어간 직후부터, 이미 나는 격이 보장해주는 능력이란 걸 훌쩍 뛰어넘은 상태였으니.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수치가 독자들과의 거리를 나타내는 지표로선 여전히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격의 수치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내가 지워진다는 것과 일맥상통했으니.
게다가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요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챕터 내에서 ‘주걱턱 모험단’의 존재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렸다는 것.
당황스럽게도, 작가의 저격 대상이 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다른 동료들 또한 챕터에 일절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독자들이 애타게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실로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나야 뒷내용을 당장 드러낼 필요가 없는 형태로 끝을 맺었다보니, 독자들의 아쉬움이야 어떻든 등장시기를 마음껏 늦출 수 있겠지만, 내 동료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당장의 생존방향이 어떤 것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정도는 보여주고 끝내는 게 맞았다. 그게 훨씬 더 완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개이기 때문이다.
헌데 이렇게 가타부타 말도 없이 끊어버린다는 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이로 인해 욕도 굉장히 많이 얻어먹었을 텐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작가의 경계 대상에 그들 또한 올라갔다는 소리였다.
단순히 내 동료로서가 아니라, 그들 하나하나가 주인공 일행을 위협하는 존재감을 가진 캐릭터로서.
‘치졸하긴······.’
당연한 말이지만, 현재 그들에 대한 코멘트 역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무래도 보이지 않으면 잊히는 법이니.
무슨 ‘주걱턱 모험단 말려 죽이기’도 아니고.
그래도 한 가지, 그나마 나를 안심하게 만드는 사실이 하나 있긴 했다.
여태 ‘타락기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
본래 타락기사는 레오 일행이 미들랜드로 넘어온 뒤, 꽤나 초기에 만나는 캐릭터다.
애당초 그가 머무는 곳이 ‘모험의 탑 1층’이지 않은가.
물론 이곳이 1층부터 순서대로 올라가는 구조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는 탑의 시작점에 있는 인물이었다. 기본적으로 가장 먼저 만나게끔 설계가 된 캐릭터라는 것.
즉,
– 탑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 탑의 강자들이 얼마만한 무력을 지녔는지를 한 눈에 보여주며,
– 어떤 마음가짐으로 탑을 올라야 하는지 일러주기 위해,
준비된 캐릭터가 바로 타락기사였다.
헌데 아직 챕터 제목에서도, 독자 코멘트 내에서도 그의 존재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상황이었다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레오 일행이 그와 접촉하지 않았다는 것.
초기에 만나도록 설계된 캐릭터를 만나지 않았다?
이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작가가 비추고 싶어 하지 않는 캐릭터들이 현재 그와 함께 있기 때문에.
바로 내 동료들 말이다.
“······크흠.”
녀석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슬그머니 아려왔다.
처음 이와 같은 생각에 도달했을 때, 당장이라도 1층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이 간절했었다.
근황을 묻고, 잘했다 다독여주고, 앞으로의 희망찬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다만 그럼에도 꾹 참고 기다렸던 건, 필요한 무대와 등장인물들이 모두 모이기 전까진 무턱대고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혹, 지난 6개월이란 시간과 그 기간 동안 뿌려뒀던 숱한 씨앗들이 허사가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이제 조만간이니.’
이제 그도 얼마 남지 않았다.
6개월이라지만, 지난 상천세계의 600일 못지않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이제 곧 추수의 때가 온다.
그러고 굳게 마음을 다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때마침,
끼이익-.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들어온 이는 루덴코프였다.
“어이, 준비됐냐?”
“······시간이 됐나보군.”
“크하하핫, 태연한 척 하더니 꽤나 겁이 났나보지? 이거, 이거 얼굴이 쓸데없이 비장한 걸?”
“점심에 뭐 먹을지를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야. 매번 느끼지만, 이게 쉽지가 않더라고.”
“······킬킬. 말은 잘하는군.”
루덴코프는 그러곤 슬쩍 나를 살피는가 싶더니,
“네놈, 정말 이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냐?”
은근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제 곧 만날 녀석들······ 나처럼 자비로운 놈들이 아니라고. 수틀리면 언제 어떻게 공격이 들어올지 몰라. 까딱하면······ 알지?”
녀석은 그러곤 손날로 목을 두어 번 긁는 시늉을 했다. 목인지 턱살인지 구분하기는 힘들었지만.
“너한테 꿔준 거 돌려받기 전까진 죽어도 안 죽을 테니 걱정 말라고.”
“하, 웃긴 녀석이군. 얼굴만 웃긴 줄 알았더니.”
“물론, 네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냐. 그러니······ 약간의 대비책이 필요하긴 하겠지.”
이에,
“허······ 또 내놔라?”
루덴코프가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뭘 말하는지 곧바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잠깐 빌려주는 거면서 생색내지마.”
루덴코프의 이 능력은 나로서도 처음 안 것이었다.
캐릭터 설정에 본래 들어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원작에서 나온 적은 없었다.
놀랍게도, 루덴코프는 내게 본인의 힘 중 일부를 빌려줄 수 있었다.
내 수명을 대가로.
심지어 나는 담보로 맡기는 형태도 아니었다. 그냥 주는 거였지.
게다가 대여기간이 끝나도록 돌려주지 못할 경우, 수명의 삭감이 실시간 복리로 진행되었다.
그야말로 고리대금업의 끝판왕이라고나 할까.
“이거 내 손해야. 네놈이 언제 죽을지를 모르니, 수명도 찔끔찔끔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그럼 공짜로 주던가.”
“그야······ 그럴 순 없지. 크흐흐······.”
녀석은 짤막히 웃은 뒤, 은근한 음성으로 재차 물었다.
“누구의 힘이 필요한데?”
“카밀라.”
그러자,
“······뭐? 설마 대마녀?”
“그럼 카밀라란 이름을 가진 녀석이 또 있나?”
루덴코프가 간만에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허······ 내가 그걸 가지고 있는 건 어떻게 알고. 그 마녀의 힘은 무려 수백 년 전에 빼앗았던 것인데.”
“그냥 뭐, 다 가져왔겠지 싶었던 것뿐이야.”
“그렇다한들······ 상대가 칠왕인데?”
“참나, 너는 칠왕 아니냐?”
“······.”
곧이어, 녀석은 알겠다는 듯 짧게 끄덕거렸다.
“다른 건?”
“다른 녀석들 건 필요 없어. 어차피 나서지 않을 테니까. 물론 카밀라 또한 나서지 않겠지만, 그 밑의 쫄다구들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거든.”
“역시나 너······ 칠왕에 대해 모르는 게 없군.”
순간 루덴코프의 눈이 반짝 빛났다.
또 한 번 궁금해졌던 모양이다. 내가 어떻게 아는 것인지.
“궁금해? 내 걸 돌려주면 비밀을 가르쳐주도록 하지.”
“크흐흐흐······ 호기심은 많을수록 즐거운 법이지. 숨길 수 있을 데까지 숨겨보라고. 나는 이미 충분히 즐기고 있으니.”
“······.”
웃기는 녀석이었다. 말은 그리 하면서도, 정작 두 눈은 내게 고정된 채 움직이지를 않고 있었으니.
“그럼 슬슬 가자고. 그나저나 오래간만이군. 네 녀석 때문에 회의장엘 다 오게 되다니. 크흐흐흐, 기묘해, 기묘해, 기묘하단 말이지.”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회의는 내가 주관한다. 혹시라도 카밀라 쪽 이외의 녀석들이 나를 공격하려고 하면······ 네가 막아. 나를 죽게 두면 네 죽음도 없어.”
“크하하핫, 협박조차도 기묘하군. 그래, 알았다고.”
이어, 우리는 권좌의 홀을 향해 출발했다.
*
나의 ‘방해하면 없애버리겠다’는 위협적인 선언 이후,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대마녀 카밀라였다.
놀랍게도 그녀의 어투는 차분했다.
“칠왕끼리의 전면전이라······ 허나 ‘균형을 맞추는 자’는 어떻게 할 거지?”
“뭐?”
“그가 나선다면, 어차피 누구하나 끝장이 나진 않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공연히 힘만 낭비하는 꼴 아닌가?”
“균형을 맞추는 자······ 아아, 그렇군.”
그러고 보니 깜빡 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을.
균형을 맞추는 자.
칠왕 중 하나로, 말 그대로 힘의 균형을 수호하는 녀석이다.
약간은 광증(狂症)이라 생각될 정도로.
다만, 내가 이 녀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애당초 원작에서도 녀석은 거의 출현하질 않으니까.
이 캐릭터는 사실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무려 칠왕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녀석은 작가가 설정상의 미흡함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편의적 설정의 캐릭터’로, 칠왕들의 전쟁억제가 그 존재 목적이 되는 녀석이었다.
다시 말해, 레오가 등장하기 전 저 흉포한 칠왕들이 어째서 그간 잠잠하게 지내왔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라고나 할까.
그즈음,
“그까짓 녀석은 신경 쓸 것 없어. 애당초 그딴 놈이 칠왕의 자리에 있다는 것조차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니까.”
루덴코프가 갑작스레 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균형을 맞추는 자에 의해 여러 번 방해를 받았다는 설정이었지.
“하지만 그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건 모두가 동의하는 일 아닌가? 그는 유일하게, 칠왕 모두를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이에 거인왕이 반박했다.
“바보 같으니. 반대로 일개 모험가 하나도 압도하지 못하는 게 그 녀석이야. 균형? 어설프기 짝이 없는 능력이지. 혼자선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놈이 칠왕은 무슨. 차라리 그 멍청한 기사놈 쪽이 칠왕이란 이름엔 더 어울리겠어.”
호오.
나 또한 루덴코프의 그 말엔 꽤나 놀랐다.
모험의 탑에서 기사라고 칭해지는 건 단 한사람뿐이었으니.
“타락기사? 훗, 아직도 살아 있단 말이야? 그 바보 같은 인간이?”
“그를 모욕하지 마라 루덴코프, 그리고 카밀라. 그의 정신은 물론 위선적이나, 적어도 그가 걸어온 삶 자체는 그 누구에게도 폄하될 만한 것이 아니니. 그의 의지야말로 모험의 탑 내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다.”
“하, 끼리끼리 논다더니. 이래서 별 쓸데없는 것에 매여 사는 것들과는 대화가 안 된다니까?”
검은 용의 수호자 잇신은 타락기사를 존중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카밀라의 말마따나, 어쩌면 삶의 형태가 비슷해서일지도.
그즈음,
“조용, 조용.”
나는 그만하라 말하며, 모두의 주의를 끌었다.
“균형을 맞추는 자는 문제될 게 없어.”
“어째서?”
간단한 문제였다.
그의 역할은, 적어도 설정상으로는, 레오가 등장하기 전까지 칠왕들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헌데 이제 레오가 등장하지 않았는가.
“균형은 깨지지 않을 테니까.”
“······뭐? 하지만······.”
“설마 옛 용과 싸우는 척만 하겠다는 건가?”
이에,
“후······ 그럴 거면 여기 니들 모아놓고 이런 소릴 했을까?”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만간 그 어떤 것이 균형인지 모를 만큼의 혼돈이 찾아올 거다. 그는 감히 섣불리 나서지 못할 거야. 한쪽의 균형을 맞추려다, 자칫 전체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을 테니.”
그러자 다들 부연설명이 필요한 듯, 말없이 눈만 반짝거렸다.
이에 나는 한 차례 길게 숨을 들이마신 뒤, 또박또박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앞으로 세 달 이내, 모험의 탑 꼭대기로 가는 길이 열릴 거다. 그게 뭘 뜻하는 건지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 순간,
“······뭐, 뭐!?”
“그게 무슨······.”
“마, 말도 안 돼!”
칠왕 셋의 입에서 동시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어,
쿠구구궁-.
한순간 휘몰아친 기의 풍압이 대전을 들썩였다.
“아,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건 비밀이야. 또한 증명할 생각도 없고. 믿든, 믿지 않든 그건 너희의 자유야. 다만, 어째서 루덴코프가 내 말을 순순히 듣고 있는지에 대해선 한번쯤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걸?”
이어 다급히 모여든 시선에, 루덴코프는 다시금 어깨만을 으쓱했다. 만면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동봉한 채로.
“나는 분명히 말했어, 3개월 이내라고. 다들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거야. 그토록 고대하던, 모험왕 선별시기가 마침내 돌아왔으니까. 그럼 오늘의 전달사항 끝.”
······.
이윽고,
“아참, 그나저나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장내가 폭풍 같은 적막에 잠겼을 무렵, 나는 한 마디를 더 꺼냈다.
“본래 상석은 북쪽 자리가 아니었던가? 이거 관리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나보네. 아니면······ 감히 우리 루덴코프 모험단의 두목을 무시하고 있었다든가.”
그러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남자가 하나 있었다.
“우리 이에 대해서 따로 얘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
새파랗던 지배인의 얼굴이 금세 새까매졌다.
*
20분 후.
권좌의 홀, 내부 스위트룸.
지배인과의 짤막한 대화 후, 나는 칠왕에게나 배정해 준다는 스위트룸을 얻어냈다.
실은 아까의 대기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먼지투성이에, 소파도 딱딱하고.
물론 얼마 있을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다신 올 일이 없는 장소가 아니던가. 즐겨볼 건 다 즐겨봐야지.
게다가 이렇게 축배를 위한 샴페인도 잔뜩 챙길 수 있고.
나는 눈앞에 샴페인 몇 병을 늘어놓은 채,
“후······.”
나직이 숨을 골랐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6개월.
지난 6개월 간, 오늘을 그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기어이 여기까지 오다니······.
그즈음,
끼이익-.
문이 열리며 낯익은 대머리가 들어왔다.
‘참나, 쉴 시간을 안 주네.’
몹시도 비대한 체구의 그는 나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약간 주저하다 말을 꺼냈다.
“언제 출발할 예정이지?”
“곧.”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벌려놓고 날름 튀어버리면······ 알지?”
그 말에 나는 픽 하고 웃었다.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나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거야 몇 개월 전 얘기고. 이렇게 저질러버리고 튀어버리면 나도 좀 곤란하긴 하니까.”
“그야 내 알 바 아니지. 그렇게 나를 옆에 두고 싶었으면, 그동안 좀 잘하지 그랬어?”
그러자 루덴코프가 우습다는 듯,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아니다, 네 놈이 돌아오지 않을 리가 없지. 내가 괜한 말을 꺼냈군.”
“킥, 나를 믿는다고?”
“그럴 리가. 나는 내 안목을 믿을 뿐이지.”
“안목?”
“처음부터 내 눈에 들어온 놈은 흔치 않아. 그리고 그런 놈이 내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 건 더더욱 그렇고. 이제껏 단 두 명뿐이었지. 그래, 그 오랜 세월 속에서 단 둘뿐이었단 말이야. 그러나······ 나를 제 맘대로 움직이려 한 놈은 여태 단 한 명도 없었어. 바로 네놈을 제외한다면 말이지.”
“······.”
그즈음 루덴코프가 두 눈동자를 불길하게 빛내더니, 뜬금없는 소릴 내뱉었다.
“네놈이 되려는 건 모험왕이겠지?”
“······뭐?”
“이를 위해서 내게 빼앗긴 힘을 되찾는 건 필수겠지. 수명의 삭감도 신경 써야 할 것이고. 그래, 돌아오지 않을 리가 없지.”
녀석이 이 같은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
“내가 말했었나? 나는 이미 이전에 두 명의 모험왕을 봤다고. 먼저 두 놈을 보내고 나니까, 이젠 더는 차례를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 이는 아마 다른 칠왕들 또한 마찬가지겠지.”
“······분에 넘치는 욕심을 품고 있었군.”
“나를 진심으로 움직이게 만들었으니, 네놈 또한 진심을 다해야 할 거다.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한다면······ 알아서 상상하라고. 크하하핫, 기다리고 있으마.”
그러곤,
철컥-.
녀석은 곧장 나가버렸다.
황당한 녀석이었다. 설마 그걸 협박이라고 하고 간 건가?
딱히 협박을 해 볼 일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주 어설펐다. 코웃음이 날 정도로.
그래도 뭐, 녀석의 짐작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돌아와야 했다. 이 이야기의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선.
“······슬슬 가볼까.”
잠깐이긴 하나, 마침내 6개월 만의 자유였다.
마치 군대에서 신병위로휴가를 나갈 때의 느낌이랄까.
물론 여유 만만한 휴가가 되진 못할 것이다.
용인(龍人) 에스트리아를 잡는다는 명목상의 임무도 있는데다, 그보다 먼저 꼭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바로, 만천하에 신호탄을 쏴 알리는 것.
이제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않으나, 실은 줄곧 비상할 날만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아직 우린 죽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는 것을.
바야흐로, 주걱턱 모험단이 다시금 뭉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즈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잘들 지내려나.”
6개월 만이었다.
이제 녀석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