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모험의 탑 1층
***
마치 사람의 키만큼 자라난 무성한 잡초들이, 버려져 있던 시간을 짐작케 하는 곳.
어느 을씨년스러운 공동묘지 한복판에서,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후······.”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나는 슬쩍 시간을 확인해봤다.
오후 2시.
내가 이곳에 왔던 게 막 정오가 되었을 즈음이니, 이미 이곳에서 대기한지도 어언 두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었다.
헌데 여태 감감무소식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거냐.’
짐작하건대 시스템 상에 무슨 문제가 생겼거나, 혹은 작가 측에서 뭔가 모종의 수라도 쓴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으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홀로그램 창을 열어봤다.
떠올라 있는 메시지는 두 시간 전과 동일했다.
마치 오류가 난 듯 멈춰버린 상태였다.
어쩐지 이렇듯 전개가 휙휙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제한조건이나 예외적 상황 따위가 기입되어 있지 않더라니.
결국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씁······ 돈 먹었네.”
억울한 것도 억울한 거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아쉬움이 더 컸다.
곧 있을 재회의 순간이야말로, 바야흐로 주걱턱 모험단의 재출격을 알리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만큼은 독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기대감을 높이고 싶었는데······ 별 수 없을 듯했다.
언제까지고 기약 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아쉽지만, 계획이 틀어졌음을 인정하고 행동해야 할 때였다.
나는 이어 눈앞에 있는 낡은 비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이젠 글씨마저 모두 닳아 지워진, 아주 오래된 묘비였다.
그나마 형벌처럼 기록된 단 한 줄의 글귀만이, 아스라이 남아 여기 누운 이의 옛 흔적을 기억하고 있었다.
-죄인이 영원히 받들겠나이다.
묘비의 주인은 과거 성녀(聖女)라 불렸던 여자.
타락기사 루카스가 충성의 서약을 맹세했던 이로, 한 때 미들랜드에 내린 하나의 축복이라 불린 존재였다.
또한 타락기사로 하여금, 무려 수천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죄의 진창에 가두도록 만든 당사자이기도 했고.
내가 그녀의 무덤 앞에 서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이 바로, 모험의 탑 1층의 입구였기 때문에.
이어,
“어디보자······ 이게 요렇게 미는 거였나?”
나는 그녀의 묘비에다 슬쩍 손을 갖다 댔다.
그러곤,
“읏차!”
힘주어 밀었다.
그러자,
철커덩.
드르륵-.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빳빳이 버티던 비석이 자연스레 땅 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땅이 양 옆으로 갈라지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 하나가 나타났다.
“휘유······.”
낯설지 않은 모습의 지하계단을 보자, 왠지 기분이 묘했다.
원작에선 가장 먼저 등장하는 1층의 입구를 이제야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으니.
나는 계단으로 내려가기 전, 다시금 찬찬히 입구를 훑어봤다.
확실히 웃기긴 했다.
‘탑’이라 불릴 만한 것이라곤, 기껏해야 자그마한 돌들이 층층이 쌓인 비석탑이 전부인 공동묘지. 그곳의 어느 한 묘비 아래에 숨겨져 있던 지하계단이 바로 모험의 탑 1층 입구라니.
처음에 이를 딱 봤을 때, 나는 무척이나 황당해 했었다.
이건 뭐, 말이 안 되니까.
일단 탑도 아니고, 1층도 아니고······ 그냥 전체적으로 이상하니까.
실제로 모험의 탑은 물리적인 ‘높이’에 따라 층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탑의 외형을 띄고 있지도 않으며, 그 구조 또한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게, 탑에서의 층의 개념은 일종의 ‘관계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마치 복잡한 주말 아침 드라마의 인물 관계도와 흡사한 느낌이랄까.
모든 층과 층은 인물, 보물, 역사, 종족 따위를 근거로 하는 인과로 엮여 있고, 하나의 층에 숨겨져 있는 보물 내지는 기록들이 또 다른 층에 입장하기 위한 열쇠가 되곤 한다.
즉, 모험의 탑을 오르는 방법은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간 엮여 있는 인과의 사슬을 풀어내거나 조합하여, 또 다른 층의 위치를 알아내는 방식인 것이다.
물론 간단하게는, 그냥 해당 층의 입구를 찾아 들어갈 수도 있다.
원작에서 여러 번 강조되는 ‘미들랜드 어디엔가 숨겨져 있는 모험의 탑’이란 문구는 사실 틀린 말에 가깝다.
정확히는 ‘미들랜드 어디에나 숨겨져 있는 모험의 탑’인 셈이니.
고로, 모험의 탑이란 건 한 지점에 우뚝 솟아 있는 수직의 건물이라기보다는, 외려 미들랜드 곳곳에 퍼져 있는 숨겨진 공간들의 집합체를 이르는 말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이 ‘세계들의 조합’이 뭉뚱그려 모험의 탑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 층들엔 분명히 정해진 순서가 있으며, 그것이 최종적으로는 수직의 구조를 띄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완벽한 설명이라 보긴 어렵지만.
어쨌거나,
“슬슬 들어가 볼까?”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그때였다.
팟-.
갑작스레 홀로그램이 밝게 빛났다.
“······응?”
나는 의식도 못한 채, 자연스레 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속을 까맣게 태우던 두 문구는 어느새 지워져 있었다.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마.
띠링-.
[모험왕 연재가 재개되었습니다] [챕터62 – 돌아온 주걱턱] [진행 중인 챕터의 권역에 속해 있습니다] [히로는 이번 챕터의 캐릭터 평가 대상입니다]“······와, 와우.”
나는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여태 기다리고 기다리던 창이었다.
새로운 챕터의 시작 화면.
무슨 거짓말 같았다. 다 포기하고 움직이려던 순간, 느닷없이 챕터가 시작되다니.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었다.
-곧바로 사용을 원하시면 터치해 주세요.
“그래, 이거지!”
무려 25만 포인트나 주고 산 메인시점 예약권이 아니었던가.
격의 수치가 감소하는 걸 매번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아끼고 또 아꼈던 녀석이었다.
물론, 잠시나마 ‘갑자기 왜?’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이내,
“에이, 몰라.”
나는 지체하지 않고 홀로그램을 터치했다.
이어,
마침내 바라던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다.
“오케이!”
약간 지체되긴 했지만, 더없이 좋은 진행이었다.
곧이어 나는 망설임 없이 곧장 지하계단을 내려갔다.
어두컴컴한 계단의 끝.
거기 있는 건 웬 나무로 된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얕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한 차례 숨을 길게 들이마신 후,
끼이익-.
문을 활짝 열었다.
곧이어,
“······와우.”
완전히 달라진 세상이 나를 맞이했다.
선선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볕.
마치 어느 시골 농가에 온 듯, 사방에 깔린 황금색 벼들이 한가로이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한가로운 전원의 풍경.
원작에서 본, 모험의 탑 1층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즈음 나는 주변을 슬쩍 두리번거렸다.
모험의 탑 1층은 그리 널찍한 세계가 아니다.
여느 튜토리얼이 그렇듯이, 굉장히 자그마한 공간에 교관 하나가 덜렁 서 있을 뿐이다.
그러니 구태여,
“······저기 있네.”
길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뜰 필요는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 타락기사가 기거하는 예배당이 보였다.
아마 녀석들도 그곳에 다 있을 것이다.
그 무렵,
두근-.
갑작스레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살짝 긴장이 되었다. 이제 곧 만난다고 생각해서일까.
흠흠.
나는 애써 차분함을 유지한 채 예배당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주걱턱 씨?”
더없이 놀란 표정의, 한 실눈의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씩 웃으며 녀석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하카.”
“······.”
“왜, 좀 잘 생겨졌어?”
“······.”
꽤나 놀란 듯 두어 차례 눈을 껌벅껌벅 감았다 뜬 하카는 이어,
“······킥.”
그러곤 말없이 얼마간 킥킥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어쩐지······ 흥분해 있더라니.”
대뜸 황당한 소리를 내뱉었다.
“엉?”
“아뇨, 갑자기 아까 전의 상황이 생각이 나서요.”
하카는 그러곤 작게 미소 지은 뒤, 어느새 차분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주걱턱 씨와 나누고 싶은 대화는 정말로 많습니다만······ 순서는 지켜야겠지요. 저기 예배당 뒤쪽에 임시 단장님이 계십니다. 아, 혼자 있는 건 아니고 이 층의 주인과 함께 계신데······ 물론 주걱턱 씨야 다 알고 오신 거겠죠?”
“그야······ 그렇지.”
“가보세요. 무척이나······ 기다렸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하카가 안내해준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거기, 녀석이 있었다.
······.
흠흠.
어째 기분이 좀 이상했다. 왠지 뻘쭘한 것 같기도 하고.
“크흠.”
나는 한 차례 헛기침을 한 뒤, 가져온 샴페인을 한 손에 들었다.
그러곤,
“여, 오랜만?”
나직이 녀석을 불렀다.
설마 저 녀석······ 너무 늦었다고 화를 내진 않겠지?
곧이어,
‘근데······ 무슨 표정이 저러냐.’
녀석이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하여간에 희한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코코아가 내게 인사했다.
“안녕, 주걱턱.”
*
“······그렇구나, 지금은 둘뿐이라고.”
다른 녀석들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어쩌면······ 더없이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움직이고, 또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을 테니.
“지금 가장 빨리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코미어겠지만 확신할 순 없어. 전엔 한 달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거든. 또 치누아비 쪽도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고. 그리고 도로시는······.”
“도로시는 왜?”
“지금 대마녀의 영역 안에 있어. 소식이 끊긴 채로.”
“······.”
코코아는 그 이유에 대해선 딱히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어째서 도로시가 그와 같은 선택을 했는지 쉬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모험단의 대적자로서, 아무래도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마녀인 그녀가 보다 발전하려면, 결국 그 끝에 다다른 존재와 만나야겠단 생각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다만,
‘약간······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그리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여차하면, 일정을 수정해서라도 대마녀의 영역에 들어가야 할지도.
어쨌거나 근황을 모두 전해 듣곤, 놀라움과 동시에 대견함이 들었다.
역시나 이 녀석들도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그럼 샴페인은 일단 좀 넣어둘게. 아직은 터뜨릴 때가 아닌 것 같네.”
그러자,
“줘 봐. 넣어두고 있게.”
코코아가 손을 내밀었다.
“······.”
문득, 울컥 할 뻔했다.
그러고 보니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늘 의식도 하지 못한 채, 들고 있던 걸 녀석에게 넘겨주곤 했었는데.
나는 후딱 감정을 추스른 채, 코코아에게 샴페인을 건넸다.
이어,
“그보다······ 이제 주걱턱 얘기를 해줘. 그동안 어떻게 지냈던 거야?”
코코아가 나에 대해 물어왔다.
줄곧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눈에 힘이 들어가 있는 걸 보면.
또한 동시에, 하카 역시도 참지 못하고 대답을 재촉했다.
“이제 괜찮으신 겁니까? 빼앗겼던 힘은요?”
그러나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외려 잠시간 침묵하다,
“미안, 자세히는 말 못해. 아직 묶여 있는 몸이라.”
그러곤 아주 간단하게만 일러줬다.
힘은 아직 돌려받지 못했고, 여전히 루덴코프에게 가 빼앗겨 있는 상태라고.
다만 현재 어느 정도의 역할수행이 가능한 또 다른 힘을 가지고 있긴 하다고. 부작용이 심하긴 하지만.
그리고 본래의 힘을 돌려받기 위해 지난 몇 개월 간 많은 일들을 해왔고, 이제 곧 그 결실을 맺으려 한다······ 정도로만.
“그렇군요.”
“······아직이라니.”
물론, 자세히 말을 못한다는 건 거짓이었다.
딱히 그에 대한 제한사항은 없었으니.
나는 다만 우리의 대화를 독자들이 모두 듣고 있는 상황에서, 내 계획의 전부를 곧장 노출시킬 생각이 없었을 뿐이다.
또 굳이 이들이 알아서 좋을 것 없는 내용들이 다수 껴 있기도 했고.
그때였다.
“그럼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코코아가 가장 핵심적인 걸 물어왔다.
“······.”
이번에도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이번엔 못했다. 저들의 실망한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안, 오래는 못 있어.”
그렇다고 거짓을 말할 순 없으니.
이윽고, 나는 천천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금방 다시 돌아가야 돼.”
고개는 돌린 채였다. 녀석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서.
헌데,
“아니, 그거야 당연한 걸.”
“본인이 직접 말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직 그자에게 매여 있다고.”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응?”
“말해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하실 말씀이 있어서 들른 거 아니십니까?”
“······와우.”
실로 감격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과는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했었지.
그 순간, 지난 6개월간의 고통스런 나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저 멍청하고, 아둔하기 짝이 없는 루덴코프 휘하의 바보들은 당최 대화란 게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알아듣지 못하거나, 까먹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
나는 약간 목소리를 죽인 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얘기했다.
“얼마 후, 나는 옛 용이란 녀석을 상대하게 될 거야. 녀석과 루덴코프가 오래 전에 맺은 맹약을 어떻게든 뒤집어야만, 빼앗긴 내 힘을 돌려받을 수 있거든.”
이에,
“옛 용이라면······ 설마?”
“치, 칠왕 중 하나인 존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둘이 놀라 소리쳤다.
“맞아.”
나는 그러곤,
“잠시 이리로 와.”
둘을 가까이로 끌어당긴 후, 귀에다 대고 속닥거렸다.
이는 물론, 상세한 내용은 숨김으로써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잠시 후,
“······알겠지? 그때 거기서 모이는 거야.”
들리듯 말 듯 마지막 말을 전하며,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럼 곧바로 떠나시는 겁니까?”
“그래야지. 딱히 여유가 있지는 않아서.”
그즈음 코코아의 얼굴엔 약간의 그늘이 져 있었다.
“······어차피 금방 만날 건데 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역시나 아쉽긴 했던 모양이다.
물론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막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을 무렵이었다.
갑작스레,
“잠깐······ 시간을 좀 내줄 수 있겠습니까?”
그제까지 예배당 한 쪽 면에 기댄 채, 우리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금발의 남자가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들려 그를 바라봤다.
“······.”
물론 기다리고 있던 바였다.
타락기사 루카스.
모험왕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
이곳 모험의 탑1층으로 오는 게 기다려졌던 이유는, 단순히 동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저 타락기사 역시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시간이라······.”
늘 한 번쯤 대화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팬심도 팬심이지만, 묻고 싶은 것도 많았고, 또 확인해야 할 것도 있었으니.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를 그의 스산한 눈빛이 약간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뭐 별일이야 있을라고.
“좋아, 가자고.”
*
당혹스러웠다.
챙-.
녀석이 다짜고짜 검을 빼들었다.
“먼저 확인부터 해야겠습니다.”
“저기······ 코코아한테 내 얘기 못 들었어? 나는 그 애가 속한 모험단의 단장······.”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귀가 아닌, 검으로 확인을 해야 할 차례겠죠.”
“······.”
그러고 보니 그랬지.
반론은 허용치 않는 독선주의자.
제멋대로 생각하고, 뒤 없이 행동하곤, 나중 가서 후회하는 녀석.
다른 이의 사정 따윈 일절 생각하지 않고, 혼자만의 감정에 취해 사는 공감불능 히키코모리.
이 녀석은 기본적으로 ‘악인’이었다.
“코코아를 슬프게 하지 않으려면······ 죽지 말아야 할 겁니다.”
어이가 없었다.
“그건······ 네가 멈추면 되잖아!”
“시끄럽군요. 그대가 혼란만 일으킬 존재인지, 혹은 평온을 가져다줄 수 있는 존재인지는······ 스스로 증명하십시오.”
“허, 허허······.”
그렇게 별안간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