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플랜 B
***
타락기사의 무력은 그가 처음 등장했던 순간부터 커뮤니티의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누구는 타락기사가 칠왕에 뒤지지 않는다고 했고, 누구는 전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또 일부는 그들을 뛰어넘는다고까지 말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건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그의 힘이 주어진 조건에 따라, 크게 널뛰었기 때문에.
둘째. 실제로 그가 칠왕들과 따로 겨룬 적이 없어, 정확한 비교분석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셋째. 그전까지의 임팩트에 비해, 그의 최후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허무했기 때문에.
실제로 나 역시도 약간은 반반인 입장이었다.
전체적으로 타락기사의 무력이 칠왕에 조금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럼에도 상황에 따라선 되레 그들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솔직히 말해, ‘설정 오류’라고까지 생각될 정도였으니.
다만,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들 모두가 입을 모아 동의하는 말이 있긴 했다.
바로 이것.
-눈 돌아간 타락기사는 웬만하면 다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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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초장부터 화가 나 있냐고!’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옛 용과 만나기도 전에, 아니 동료들을 만나러 온 이곳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게.
나는 눈앞에서 사라진 녀석의 검 끝을 의식하자마자,
“······빌어먹을!”
쾅-!
루덴코프에게서 빌려온 힘의 일부를 끌어올려 대응했다.
공격을 제대로 확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코앞까지 다가온 검에 맞서, 내가 곧바로 뿜어낼 수 있는 힘을 급히 방출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제법. 한 수는 있군요.”
이는 녀석을 한 발자국 물러나게 한 것에 그쳤다.
“후······.”
대체 뭐냐고 저 녀석.
타락기사가 검을 빼들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것이 그의 말마따나, ‘시험의 일부’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아마 내 동료들과 꽤나 친분을 다진 다음일 테니, 나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을 테고, 그것이 저와 같은 행동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일 거라고.
물론 이는 그의 성격을 생각해봤을 때 그리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뭐······ 때때로 본인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충동적인 일을 저지르는 녀석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 제대로 한 번 가볼까요?”
스윽-.
척-.
저건······ 저건 아니었다.
나는 입술을 악문 채, 녀석을 쳐다봤다.
마치 서광이 내려오듯, 천천히 호를 그리며 내게 겨눠진 검에 실린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거력이었다.
온전한 내 능력만으론 감히 대적할 수 없는 힘.
물론 저것 또한 타락기사의 전력이라고 볼 순 없겠으나, 그조차도 내겐 힘겨운 것이었다.
현재의 내 힘은 고작해야 킹스로드를 건널 즈음의 레오보다도 못한 정도였으니.
저것에 대항하려면 루덴코프에게서 빌려온 힘을, 그것도 가장 강력한 종류의 것을 사용해야 하나, 이는 내게도 막심한 부담이었다.
녀석에게서 빌려온 힘은 이를 사용할 때마다, 횟수에 따라 ‘이자’를 추가로 내야했기 때문이다.
‘······어쩐다.’
루덴코프에게서 힘을 빌리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나의 수명을 대가로 내놓아야 했다.
녀석과의 거래는 대단히 불공정한 것이었기에, 사실 정상인의 사고라면 감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 번 칠왕의 힘을 빌리는 것에 녀석이 내걸었던 값이, 무려 20년에 달하는 수명이었으니.
그것도 반쪽자리에 불과한 것들을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를 감행했던 건, 그 외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빼앗겼던 힘을 되찾고, 저 강대한 칠왕들을 반목시키기 위한 사건을 획책할 방법이.
그리고 또 하나.
어차피 내겐 ‘남은 수명’이라는 게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모험왕이 탄생하는 순간까지의 여정이지, 그 이후야 글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이미 지나칠 정도로 많이 사용하기도 한데다, 실제로 최근 들어 루덴코프가 내게 힘을 빌려주는 걸 꺼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녀석이 나의 ‘죽음’을 의식했을 정도라면, 실제로 이미 긴급한 상황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그러나,
“이번 공격을 막아낸다면······ 당신을 인정하도록 하죠.”
“······해보던가.”
암만 내 사정이 딱하다한들, 저 녀석이 멈춰줄 것 같진 않았으니.
하여,
우우웅-.
이를 악물곤, 나 또한 급히 전력을 짜낼 수밖에 없었다.
이어 대마녀의 웅혼한 마나가 심장을 순환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바로 그때,
“멈춰!”
누군가의 음성이 마치 구원처럼 들려왔다.
굉장히 낯익으면서도 앳된 목소리였다.
“······코코아?”
그리고 그와 동시에,
“뭐하는 짓이야, 루카스!”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코코아가 나와 루카스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곤 루카스를 매섭게 쏘아봤는데, 그런 코코아의 얼굴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칼 안 집어넣어!?”
뭐랄까······ 굉장히 험악했다.
솔직히 좀 당황했을 정도로.
‘저런 표정도 다 지을 줄 아네······.’
허나 더욱 놀라운 건,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냥······ 한 번 시험해 본 것일 뿐이야.”
황당하게도, 타락기사가 벼락처럼 검을 거둬들였던 것이다.
허······.
나는 진정 당황하고야 말았다.
녀석이 밖으로 분출되기까지 한 감정을 스스로 추슬렀다고?
그것도 누군가의 부탁······ 아니 ‘명령’에 의해?
이런 일은 흔치 않았다.
아니, 원작에서도 본 일이 없었다.
‘설마······.’
나는 그제야 현 상황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타락기사가 이처럼 내게 감정적으로 달려들었는지, 또한 어째서 그가 마치 코코아의 말에 ‘복종’하는 듯 보이는 건지.
타락기사는 마치 ‘성녀’를 대하듯 코코아를 대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를 따르는 녀석을 보며, 화가 날 수밖에.
허나,
“······말이 돼?”
이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코코아에게 혼나고 있는 루카스의 모습을 쳐다봤다.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꾸중을 듣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반항심 따윈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저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구몬 학습지를 버리다 걸린 초등학생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을 뿐이지.
“······흐음.”
나는 관자놀이를 긁적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타락기사가 다른 여인에게서 성녀의 자취를 좇곤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작에서도 그는 이와 같은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그때의 대상은 시아나였고.
헌데 시아나에게도 저렇듯 복종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아무렴, 그녀에게서 성녀가 겹쳐 보인다며 되레 화까지 냈던 녀석인데.
게다가 코코아는 실제로 성녀와 전혀 닮은 면이 없었다.
실루엣 정도만 나오긴 했으나, 성녀는 코코아가 아닌 시아나를 훨씬 더 닮아 있었다. 저리 짜리몽땅한 꼬맹이가 아닌, 대단히 성숙한 여성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여, 솔직히 나는 이에 대한 걸 코코아에게 기대한 적이 없었다.
그나마도 생각이 미쳤던 건, 외려 도로시 쪽이었지.
하여간에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진짜로 상처를 입힐 마음은 없었습니다.”
녀석이 다가와 공손히 인사했다.
그러곤 슬쩍 고개를 쳐들었는데, 가증스럽게도 한 번만 넘어가달라는 표정이었다.
개뿔은. 공격 하나하나에 살기가 그득 했거늘.
내가 알던 그 타락기사가 맞나 싶었다.
다만,
“뭐, 딱히 큰 일이 일어난 건 아니니까.”
“죄송합니다. 큰 실례를 범할 뻔했군요.”
“······그 정돈 아냐.”
넘어가주기로 했다.
어쨌거나 좋은 기회였으니.
“그럼 이제 좀 차분히 대화를 나눠도 되는 건가?”
“······그러시죠.”
오히려 잘 된 부분도 있었다. 녀석의 딱딱한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으니. 어쩌면 훨씬 더 원활한 질의응답이 가능해질지도.
그즈음,
“고맙다.”
나는 슬쩍 코코아에게 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코코아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러곤,
“한 번 더 그러면 말해. 머리통을 후려쳐 줄 테니까.”
“······그, 그래.”
“근처에 있을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다시금 둘만 남게 되었다.
······.
약간의 뻘쭘함을 뒤로한 채,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돼서 약간 그렇긴 한데······ 일단 고맙다는 말부터 할게. 분명 코코아······ 아니, 저 녀석들 모두에게 크나큰 버팀목이 되어준 것 같으니까. 코코아만 두고 다른 녀석들이 이곳저곳을 마음껏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마 그쪽 덕분인 것 같고.”
“······.”
녀석은 나의 고맙다는 표현에 꽤나 당황한 듯한 눈치였다.
설마 욕이라도 할 줄 알았던 걸까.
나를 정말 나쁜 놈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건······ 아닙니다. 별말씀을.”
“그럼 몇 가지 물어도 될까?”
“말씀해 보시죠.”
“음, 근데 여기가 왜 1층이지?”
“······예?”
내 질문이 다소 의외였는지, 루카스가 영롱히 빛나는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아마 코코아나 다른 동료들에 대한 얘기를 물어볼 줄 알았던 게 아닐까.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왜 1층인지.”
물론, 모르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사실 이건 현재 나를 지켜보고 있는 독자들을 위한 내용이었다.
레오 일행이 아직 이곳에 들리지 않았다는 건, 실은 초반부에 나왔어야 할 내용이 여태 풀리지 않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아마 좀 궁금해 하고 있지 않았을까?
또 구태의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본래 타락기사의 에피소드에선 ‘탑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와 자세’, ‘추구해야 하는 가치’, ‘필요한 덕목’ 등등이 소개된다. 그게 1층의 역할이니까.
나는 이걸 상기시키는 게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소년만화다. 그에 걸맞은 가치는 언제나 작품 속에 녹아 있어야 하고, 이걸 추구하는 캐릭터에게 이야기는 ‘힘’과 ‘분량’을 제공한다.
우정, 용기, 희망, 도전 등등.
내 생각에, 이런 건 짚을 수 있을 때 짚어둬야 한다.
특히나 혼란에 혼란이 거듭되고, 힘의 논리를 들이미는 강자들이 넘쳐날 시기엔 더더욱 그렇다.
그래야만 힘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그 외의 다른 가치를 지닌 존재가 부상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주인공 격의 인물들이 칠왕과 같은 강자를 제치는 방식이자, 그들의 조력을 이끌어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건······ 글쎄요, 이걸 묻는 이는 굉장히 오랜만이군요.”
그러곤 타락기사는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곳은 오랜 옛날, 그제까지 다툼이 끊이지 않던 미들랜드 내에서 처음으로 연결과 화합이 선포된 장소입니다. 바로 초대 성녀님에 의해서죠. 사실 그전까진 층의 개념도 딱히 세워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영역 단위로 묶이고 있었지.”
“연결과 화합이라······.”
“맞습니다. 이곳의 세계들은 모두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허나, 당시 세계를 차지하고 있던 이들은 그저 자신의 땅을 소유하려고만 했죠.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려면, 이전의 다른 세계들이 디딤돌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걸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오직 성녀님만이 이를 깨달았던 것이죠. 하여, 성녀님이 그때부터 도입한 게 바로 층의 개념입니다.”
타락기사는 이를 설명하면서 왠지 모르게 신이 난 듯 보였다.
역시나 주어진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때, 캐릭터는 좀 더 힘을 내는 게 아닐까.
“성녀님은 언제든 본인이 거주하는 세계를 지나쳐가라고 말했습니다. 그에 더해, 다른 모든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겠다고 천명하셨죠. 하여, 그때부터 이곳이 1층이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세계의 시작점이 된 것이죠. 물론, 굳이 이곳을 거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곳을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죠.”
“흠, 감동적인 얘기네.”
물론, 다 아는 얘기라 감흥은 전혀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물음을 이어갔다.
“사실 이건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여기에 오면서 당신에 관한 얘기를 꽤나 들었거든? 아주 오랫동안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제법 이름을 떨쳤던 이가 말이야. 혹시 왜 그런 건지 이유를 물어도 될까? 이곳에서 그 성녀란 분을 오랫동안 기리고 있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그 순간,
“그건······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루카스의 얼굴은 묘하게 구겨졌다.
누가 봐도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이건 당장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원작에서도 이건 꽤나 친밀감이 쌓인 이후에나 나오는 얘기이니.
조금 아쉽긴 했다. 본래 이 사연과 함께 엮이면서 모험의 탑에서의 여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구되어야 하는 가치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가 설파되어야 하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뭐, 말하고 싶지 않다니 어쩔 수 없지.
이건 내 탓이 아니다. 독자들을 위해서 나는 할 만큼 했다.
다음은 내 궁금증을 채울 차례였다.
사실 묻고 싶은 건 많았다.
원작에선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루카스의 과거나, 진짜 능력의 한계는 어느 정도인지, 성녀의 진짜 생김새와 그녀에 대한 감정 등등······.
그리고 또 하나. 어쩌다 코코아를 성녀처럼 대하게 된 건지도.
다만 당장은 그 중 어떠한 것도 제대로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크게 집착하지 않고 딱 하나만 더 물어보기로 했다.
그냥 순수하게 떠오른 의문 하나.
“넌 누구를 향해 기도를 올리지?”
순간,
“······.”
갑작스레 녀석이 움직임을 멈췄다.
당황한 듯 보이기도 했고, 충격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이에 나 또한 당황하게 되었는데, 딱히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물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궁금했던 것일 뿐이다.
녀석이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던 건 성녀인데, 당장 그녀는 없으니까.
죽은 성녀에게 기도를 하는 건지, 아니면 성녀가 믿던 신에게 하는 건지······.
헌데 놀랍게도, 루카스는 그것에 대해 본인 또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잠시 후,
“······다음에 말씀드리도록 하죠. 만약 기회가 된다면.”
녀석은 결국 그렇게만 말했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루카스는 자연스레 입을 닫았고, 나 또한 더 묻지 않은 채 돌아섰다.
그렇게 서로 멀어져갈 무렵,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전했다.
아무래도 이 말만은 해야 될 것 같아서.
“아참, 그리고······ 코코아 좀 더 부탁할게. 혹시 그 녀석 때문에 기분 상하는 일 있더라도 좀 잘 참아주고.”
이에 잠시간 놀란 표정을 짓던 녀석이 이내, 처음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맡겨두시길.”
*
다음 날.
모험의 탑 22층.
“뭐? 벌써?”
나는 오자마자 접하게 된 당황스런 소식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더벅머리에, 몸에 전류? 확실해?”
“아 그렇다니까?”
당혹스러웠다.
레오가 벌써부터 이곳으로 넘어와 에스트리아와 만났다니.
이건 일러도 너무 일렀다.
본래라면 아직 녀석은 드라카와의 ‘맹약 훈련’에 집중하고 있을 때여야 했다.
설마······ 그걸 죄다 생략한 채 곧바로 에스트리아를 만나러 왔다고?
왜?
본래 내 계획은 에스트리아를 납치한 후, 뒤늦게 도착한 레오에게 이 소식을 흘려 녀석을 루덴코프 모험단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하여 녀석이 ‘아직 구출하기에 늦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끔, 납치시기를 조정 중에 있었던 것이고.
이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더니, 늦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
그제야 나는 작가가 내게 챕터를 순순히(?) 내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돌아온 주걱턱’이라는 꽤나 너그러운 명칭까지 하사한 이유도.
지금 작가는 싸움을 붙이려는 거였다. 나와 레오를.
그러곤 아주 볼썽사납게 깔아뭉개려는 것이었다.
나의 이름을 단 챕터 안에서.
“정확히 언제 만났는데?”
“음······ 어제 점심 무렵?”
심지어 하루나 경과했다니.
이쯤 되면······ 레오 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에스트리아의 부탁을 받아 찾고 있을지도.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
“지금 둘의 위치는? 파악해뒀어?”
내가 루덴코프의 부하들을 이용해 감시망을 펼쳐둔 건 현재 22층이 전부였다. 두 사람이 22층에 남아 있다면 아마 소재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고, 이를 벗어났다면 놓쳤을 것이다.
다만 짐작하건대,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을까.
이유야 간단하다. 나와 붙으려면, 22층에 남아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그럼, 당연하지! 부두목 명령인데! 어디 있는지 다 알고 있다고!”
역시나 짐작대로였다.
“후······.”
예정에도 없는 전투를 벌여야 한다니. 그것도 레오 녀석과.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현재 녀석이 어느 정도로 성장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가의 꿍꿍이로 보아,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빌린 힘을 사용하지 않는 한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고, 설사 이를 사용한다하더라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닐까.
그럼 정말 최악의 최악이었다.
수명도 잃고, 계획도 실패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루덴코프에게 돌아가 새로운 방법을 강구할 수도 없었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만다. 어떻게 쌓아온 6개월인데.
지금 옛 용과의 전면전을 펼쳐야만, 그래서 힘을 되찾아야만······ 다음의 안배까지 시간을 맞출 수 있다.
‘미루는 건 안 돼.’
결국, 나는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일단 부딪쳐보는 것으로.
“지금 그 녀석들······ 어디 있다고?”
“흐흐, 가까워. 요리해 버릴까, 그 녀석들?”
“조용히 해.”
별 수 없었다.
정 안 되면······ 플랜 B라도 가동하는 수밖에.
“안내해.”
*
두 시간 후.
“허······.”
딱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무슨······ 괴물을 만들어놨네.
‘이거 개연성 오버 아닌가?’
레오 녀석은 황당하리만치 강해져 있었다.
물론, 내가 그걸 피부로 직접 느낀 건 아니었다.
판단의 근거는 녀석이 숨 쉴 때마다 자연스레 피어나는 스파크의 색이었다.
검정.
검정의 전류는 녀석의 힘이 최종 각성을 거의 앞두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그 힘의 크기는 칠왕의 바로 아래다.
돌겠네.
그때, 레오 옆에 있던 소녀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저, 저자가 바로······ 주걱턱!”
실제론 처음 봤지만, 곧장 알아볼 수 있었다.
얼굴에 비늘이 돋아나 있는 소녀. 에스테리아였다.
“알아, 나도.”
그러곤 레오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정말······ 오랜만이네, 주걱턱.”
“여, 잘 지냈냐?”
“······덕분에.”
레오는 그러곤 내게 시선을 마주해왔는데, 순간적으로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포식자.
녀석이 그와 같이 느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네.’
나는 곧바로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플랜 B.
그 외엔 방법이 없다.
그즈음,
“주걱턱 당신! 도대체 왜 그런 거죠?”
다시 한 번 에스테리아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내게 소리쳤다.
“어째서 가만히 있는 이곳의 사람들을······.”
“오해야.”
“······뭐?”
“오해라고, 내가 한 거 아냐.”
소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가면서 말해줄게.”
“······네?”
그러곤 나는 망설임 없이 두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기다렸어, 가자.”
이엔 레오조차 당황해 되물었다.
“뭐?”
“가자고.”
“어······ 디를?”
“옛 용한테. 네 옆의 그 소녀, 드라카의 딸 아냐?”
······.
본래는 에스테리아를 납치할 생각이었지만, 방향을 틀었다.
납치하는 대신, 내가 납치당하는 걸로.
어차피 옛 용과 루덴코프를 엮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루덴코프는 이미 조급해진 마음을 내게 드러냈다.
도망치지 말라고. 꼭 돌아오라고.
그게 녀석의 실수였다.
나는 마치 스스로를 설득하듯, 되뇌었다.
루덴코프는 나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직접 나를 찾아 옛 용의 둥지로 찾아오게 될 것이다.
“다, 당신을 어떻게 믿고!”
에스테리아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혼란을 겪는 듯했다.
“원한다면······ 제압당할게.”
“뭐?”
“기절시키라고. 그런 다음 구속을 하든, 뭘 하든 해.”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다.
오랜만에 등장한 챕터에서 몇 번이나 체면을 구기는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뭔가 숨기는 체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진짜로 힘에 밀려 두드려 맞는 것보다야.
“레오, 고통 없이 부탁해.”
나는 그러곤 저항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양 팔을 쭉 가로로 펼쳤다.
“뭐?”
“그냥 쓰러뜨려달라고.”
“······진심이야?”
“그래. 버려두고 가지만 마.”
“······.”
곧이어, 레오가 표정을 굳혔다.
일단은 나를 제압하고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후······.”
나는 두어 차례 심호흡을 반복했다.
이어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곳이 옛 용의 거처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파지직-.
장렬히 감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