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이제 살았다
***
“후······.”
도로시는 길게 참았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러곤 속으로 다섯을 셌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이어,
“흐-읍······!”
이를 악문 채, 오른쪽 다리를 들어 왼쪽 다리 옆으로 옮겼다.
고작해야 자세 하나만을 바꿨을 뿐인데도,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식은땀이 흘렀다.
“으으······.”
너무, 너무 아팠다.
마치 몸 전체가 얇디얇은 유리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바람이 불면 몸 전체가 시리고, 조금이라도 딱딱한 것에 부딪치면 그 즉시 뼈가 박살난 듯 고통스러웠다.
금방이라도 몸이 와장창 깨져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같은 통증보다도 더욱 무서웠던 건, 바로 변색되어 가는 몸이었다.
어느새 왼쪽 다리는 완전히 탈색되어 마치 하얀 물감을 뒤집어 쓴 것처럼 변해 있었다. 물기가 마른 낙엽 마냥 푸석거리는 그것은, 이미 한줌의 생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심지어 통증을 포함한 모든 감각이 사라진 다음이었기에,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신체의 상실.
도로시를 두렵게 하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결국 내부의 힘을 감당치 못한 몸이 끝내 깨져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
순간,
짝-.
도로시는 두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친 뒤, 다시금 심호흡을 반복했다.
“아냐, 정신 차리자.”
아직 절망에 빠지기엔 일렀다.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다시 한 번 몸을 강화시킬 방법을 강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그즈음 도로시는 슬쩍 위쪽을 바라봤다.
굶주림과 갈증이 오래도록 지속되다 보니, 제대로 된 사고 판단이 되지 않았다.
고통과 좌절감만이 늘어날 뿐.
일단은 갈증부터 해결해야 했다.
물을 마시려면 이 좁디좁은 바위틈을 올라가야 했으나, 지금 몸 상태로 걸어 움직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여,
“어쩔 수 없지······ 플라이.”
도로시는 마법을 써 몸을 띄웠다.
이어,
두둥실-.
몸이 빠르게 절벽 위로 솟았다.
사실 마법을 쓸 때는 고통도, 힘겨움도 없다. 신속하고 간단히, 굶주림을 피하고 갈증을 채울 수 있다. 이렇듯 무지막지한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 몸을 움직이고, 힘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로시는 매순간 마법을 쓰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자제하려 했던 건, 통증을 넘어선 공포 때문이었다.
언제고 심장의 마나를 버티지 못 한 몸이 깨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그 근원에 가까운 두려움 때문에.
“후······.”
절벽 위로 올라서기 전, 도로시는 한 차례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적’들은 없었다.
푸른색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 메마른 바위투성이 협곡엔 물을 마실 수 있는 지점이 딱 두 군데 있었다.
이미 적들에게 빼앗긴 아래 골짜기 쪽 시내, 그리고 여기 절벽 정상부에 고여 있는 자그마한 웅덩이.
도로시는 웅덩이 쪽으로 날아간 뒤, 조심스레 웅덩이의 물을 입가로 끌어당겼다.
스르륵-.
수분이 바싹 마른 입술에 닿자마자, 쾌감이 용솟음쳤다.
당장이라도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다만,
꼴깍-.
도로시는 한 모금으로 만족했다.
빗물만으로 채워진 웅덩이는 고작해야 소량의 물만이 고여 있을 뿐이었다.
최대한 아껴 마셔야 했다. 얼마나 더 버텨야 할지 모르니.
“후······.”
목을 축였다 말하기에도 부족한 양이었지만, 그래도 물을 마시니 아주 조금은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도로시는 날짜를 헤아려봤다.
모험의 탑 1층을 떠나온 지 어언 2개월 째였다.
마녀들의 영역까지 들어온 것까진 좋았으나, 곧바로 ‘먹이’로 낙인 찍혀선 쫓기기 시작한 게······ 이제 한 달하고도 보름 정도.
그리고 이곳, 바위투성이 협곡에 틀어박힌 게 딱 한 달가량.
“······.”
성장해 돌아오겠단 호기어린 발언과 함께 떠나왔으나, 두 달이란 기간 동안 얻은 거라곤 쇠약함과 좌절뿐이었다.
또한 몸의 ‘유리화’만 가속되었을 뿐, 마법과 관련한 어떠한 능력도 발전시키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했어야 했던 걸까.
······힘들어.
첫 목표 자체는 굉장히 단순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강대한 마나를 견디지 못한 육체가 망가져가니,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한 번 찾아보자. 마녀들의 세계에서.
이는 마법공주님도 동의했을 만큼, 충분히 그럴듯한 의견이었다.
마녀들의 주인인 대마녀나 그 아래의 ‘네 마녀’만 하더라도, 무한에 못지않은 강대한 마나를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그들이 육체를 보존하는 방법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그 당시엔,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일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데모라’에서 온 존재.
다시 말해, 고향 후배였으니까. 심지어 데모라엔 저들의 동상까지 존재하지 않는가.
따뜻한 환영의 인사를 받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배척하진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데, 데모라에서 왔다니까!?”
“호호호, 그게 어디니 꼬마야?”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일단 이리로 좀 오겠니?”
첫 발부터 꼬이고 말았다.
모험의 탑의 마녀들은 본인들의 고향이 어딘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자신을 그저 ‘먹잇감’으로만 취급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싱싱한 암탉 정도로.
도로시는 마녀들의 영역에 들어간 첫 날부터 쫓기게 되었다.
대화 시도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죄다 귓구멍이 먹었나 싶을 정도로, 제 말만 해댔으니.
마법을 통한 위협은 그나마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으나, 부작용이 컸다. 계속해서 더 잔혹하고 위험한 마녀들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사실 저들과 적대하고, 쫓기는 것까진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크게 봤을 땐 모두 주걱턱 모험단의 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문제는 그러고 마녀들과 대치하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마법활용의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몸의 부담이 커져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나저나 이 년이······ 지금 우리 마법을 따라 흉내 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마녀들의 눈치가 굉장히 빨랐다는 것.
그들은 본인들의 마법을 쉬이 내보이려 하지 않았다.
외려 자신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닫자마자, 가까이 접근하지 않은 채 몰이에만 집중했다. 마치 늑대들이 사냥감을 몰듯이.
이는 본인의 힘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저 ‘네 마녀’ 중 하나인 벨루카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도로시로선 암담해질 수밖에 없었다. 교류할 수 없다면 베끼기라도 하자는, 본래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게 되어버렸으니.
이에 도로시는 점점 더 궁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몸은 악화되어 가기만 가고, 바랐던 마법기술은 습득하지도 못하고.
물론, 그 와중에도 할 수 있는 모든 걸 시도하기는 했다.
심지어 저 마녀들이 행하는 ‘마녀 잡아먹기’까지도 했을 정도이니.
마녀 잡아먹기.
이는 마녀가 다른 마녀의 힘을 흡수하여, 마나와 미모를 빼앗는 행위였다.
처음에 이 광경을 보곤 도로시는 깜짝 놀랐었다.
단순히 동료라 부르던 이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것이 하늘마녀님만의 능력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능력은 엄밀히 말해, 마법이 아닌 고유능력의 일종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전수되거나 공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헌데 놀랍게도, 이곳의 마녀들은 모두 저와 같은 방식으로 본인들의 힘을 성장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하여 도로시 또한 내키진 않지만 시도를 해봤던 것인데······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
분명 그것이 눈대중만으론 배울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고등마법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마녀들이 너나할 것 없이 쓰지도 못했겠지.
짐작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저들과 다르기 때문에.
마나를 모으는 방식도, 그것이 쌓이는 장소도.
“후······.”
그즈음 도로시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를 간절히 바랐다.
그건 강력한 힘도, 곁에 있어줄 동료도, 육체를 강화할 신묘한 마법도 아니었다.
바로 선생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적절히 일러줄 수 있는 ‘스승’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이는 코코아 공주님도, 주걱턱도 아니었다.
또한 데모라에서 다녔던 초급마법학교의 선생님들도 아니었다.
지난 날 천공의 섬에서 자신에게 ‘진짜 마녀’가 무엇인지를 보여 달라고 말해준 이였다.
하늘마녀.
그녀가 곁에 있었더라면······ 자신은 성장할 수 있었을까.
······.
“아냐.”
도로시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설사 그녀가 있었다하더라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물론 다른 마녀들과는 달랐지만, 자신과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스스로 풀어내야 하는 문제였다.
지금 스승으로 삼아야 하는 건 또 다른 마녀가 아니었다.
전투.
그리고 전투를 통한 경험.
거기서 습득한 지식만이 어떻게든 지금의 난관을 뚫게 하고,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힘내자······.’
바로 그때였다.
“오호호, 꼬마숙녀님 오늘은 어디에 숨었니?”
“언니들 왔단다, 놀자!”
영원히 듣지 않기를 바랐던, 저주스런 음성들이 멀찍이서 또 다시 들려왔다.
‘······정신 나간 마녀들 같으니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짜증스런 목소리는 벨루카의 것 하나뿐이었으나, 최근에 하나의 목소리가 더 추가되었다.
키르케.
벨루카 하나만으로도 감당이 힘들었는데, 그에 못지않은 미치광이가 하나 더 추가되다니.
그래도 키르케는 벨루카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끔찍할 정도의 쇳소리가 섞여 있지는 않았으니.
벨루카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20일쯤 전.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이 추악하고 더러운 마귀로 인식되는 데엔, 불과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저 마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한 존재였다.
데모라에서 줄곧 괴롭힘을 당했었음에도, 저만큼이나 자신을 분노케 하는 마녀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무려 20일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실제로 만약 데모라로 돌아가게 된다면, 하늘마녀가 갇혀 있는 감옥보다도 도시의 중앙광장으로 먼저 가야겠단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저년의 동상부터 박살내 버리게.
도로시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가라앉힌 채, 플라이 마법을 시전했다.
이제 또 기나긴 하루의 시작이었다.
일단은 웅덩이 근처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 물마저 마녀들의 손에 빼앗기게 된다면, 앞으로 버티기가 더욱 요원해질 테니.
도로시는 다시금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물론, 이곳에 몸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애써 구한 은신처를 파괴시키고 싶진 않았으니까.
일단 절벽에 몸을 딱 붙인 채로,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해야 했다. 저들이 ‘메마른 황토’라 부르는 지대가 나올 때까지.
그 황토로 뒤덮인 분지지대야말로, 자신이 여태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장소였다.
그곳에선 희한하게도 땅 자체가 마나를 흡수하는 묘한 작용이 일어났는데, 이 때문에 다른 마녀들이 그곳 안으로 들어오는 걸 굉장히 꺼려했다.
즉, 공성장소로 그만큼 안성맞춤인 곳도 없다는 것.
물론 사방이 뚫린 지형이라 경계에 취약하기도 하고, 다른 지대와는 달리 마나의 소모량이 늘어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점점 더 몸에 부담이 쌓이기도 했고.
하지만 별 수 없었다. 그곳에서 버티지 않는다면 마녀들의 공격은 쉼 없이 계속될 테고, 결국 물러날 곳을 잃은 자신은 저들의 한 끼 식사가 되고 말 테니.
그즈음,
“얼른 나오라니까?”
“괜찮아, 안 잡아먹을게! 몸도 고쳐주고, 친구가 되어준다니까?”
마녀들의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
목소리의 음량이 한결 커져 있는 걸로 보아, 꽤나 가까이 다가온 듯했다.
서둘러야 할 듯싶었다.
‘······제발 좀 꺼져.’
도로시는 속으로 한 차례 쏘아붙인 뒤, 조심스레 이동하기 시작했다.
‘메마른 황토’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날아서 대략 10분 정도?
더 빠르게도 갈 수 있겠지만, 속도를 내는 건 조심해야 했다.
들려오는 음성은 두 개가 다였지만, 지금 이 협곡 내 숨어 있는 마녀들의 수는 기백에 달할 테니.
은신과 탐지마법을 유지한 채, 정속도로 나아가야만 했다. 마치 그림자가 이동하듯이.
잠시 후,
‘······다 왔다.’
눈앞에 ‘메마른 황토’의 시작을 알리는 누런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부터가 고비였다. 적들은 자신이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걸 원치 않으니.
도로시는 잠시간 멈춰선 채, 호흡을 골랐다.
일단 최대한의 속도로 지대의 안쪽 끝까지 들어가야 했다. 중간에 걸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어, 도로시가 심장 부근에서 잔뜩 마나를 끌어 모으고 있을 때였다.
“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구나.”
갑작스레 웬 음성이 들려왔다.
바로 등 뒤에서.
그 순간,
철렁-.
도로시는 심장이 땅 밑까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팔뚝엔 소름이 오소소 돋아 있었다.
몸이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뭐, 뭐?
“외려 메마른 황토로 가 몸을 숨긴다라······ 마녀 치고 똑똑한 아이로구나.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어.”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째선지 도로시는 음성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만 같았다.
자신의 탐지마법을 피하고, 한눈에 은신을 꿰뚫어 볼 마녀가 그리 흔하진 않을 테니까.
도로시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
“반갑구나, 아이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단언컨대, 이제까지 본 사람들 중 가장 빛나는 존재였다.
······대마녀 카밀라.
그즈음,
“어디 있니? 우리 숙녀님? 오늘 만큼은 널 먹고 말 거란······ 엥?”
“배고프지 않니? 여기 도시락을 싸왔으니 같이 먹자꾸나. 물론 반찬은 네 손가락······ 엉?”
벨루카와 키르케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카, 카밀라?”
“어, 어째서 여기에······.”
대마녀를 발견한 그들이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 또한 그녀의 등장이 굉장히 의외였던 모양이다.
“어째서기는. 돼지 같은 네 년이 거짓보고를 올리고서 여기서 허튼 짓을 하고 있으니 아니 올 수 있겠느냐.”
“······.”
그러나 우물쭈물 하던 것도 잠시,
“대, 대마녀라도 양보 못해! 그년은 내 꺼야!”
벨루카가 대뜸 그러고 소리쳤다.
이어 키르케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외쳤다.
“내, 내 지분도 있어! 벨루카 저 년이 반을 약속하고 나를 불렀······.”
그러나 둘의 말은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네 년들은 그게 문제야. 너무나도 아둔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다는 것. 선도 모르고 주제도 모르지. 네 년들의 주인이 누군지 잊었더냐.”
그 순간,
스스슷-.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러곤 마치 공간 전체가 잠이 들 듯, 침묵이 내려앉았다.
대마녀가 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한 차례 마력을 방출한 것.
그러곤 두 마녀를 잠시간 쏘아본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다만 도로시는 자신이 꿈에서나 바라던, ‘저 둘이 동시에 입을 닥치게 되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좋아할 수 없었다.
그 일을 행한 당사자가 곧이어 몹시도 야릇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봤기 때문이다.
지난 한 달 반가량의 경험으로 추정해보건대, 저건 분명······ 굶주린 마녀들의 표정과 꼭 같은 것이었다.
“그나저나······ 보면 볼수록 놀랍구나. 탈색되어 하얗게 변색된 몸에, 심장 부근에서 느껴지는 저 광활한 마나라니······ 마나의 양만 따지자면 내게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야. 아니 어쩌면 그조차도 넘을지도. 네가 정녕 마녀란 말이더냐?”
순간, 대마녀의 얼굴이 마치 마귀의 그것처럼 변했다.
식탐에 물든 마녀의 전형적인 얼굴이었다.
이어,
“내 너의 정체를······ 먹어 확인해 봐도 되겠느냐?”
대마녀가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도로시는 안간힘을 다해 그녀에게서 떨어지려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몸이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마법에 의해선지, 혹은 두려움 때문인지 몸이 묶여버린 듯했다.
‘······빌어먹을.’
도로시는 이를 악물었다.
이젠 이판사판이었다. 온몸이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힘을 다 끌어올려 저항하는 수밖에.
그러곤 말없이 최후의 반격을 준비하려 할 때였다.
바로 그 순간,
“스톱. 거기까지. 더 가기만 해봐, 다리를 뽑아버릴 테니까.”
어디선가 굉장히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코 들릴 리 없는, 그런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음성이었다.
“······.”
도로시는 대마녀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심장이 거세게 뛰는 걸 느꼈다.
다만 그때와는 기분이 정반대였다.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 어떻게?”
“여긴 마녀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인데?”
놀란 벨루카와 키르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저 녀석, 그러고 보니 그때 그 놈이군. 권좌의 홀에서 루덴코프와 함께 왔던 녀석. 덩치가 좀 커지긴 한 것 같다만.”
대마녀의 음성도 들려왔다.
그녀는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하고 있었으나, 그 속의 떨림을 모두 감추진 못했다. 그녀의 어조에서 당혹스러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녀석은 루덴코프에게 빌려 나의 힘을 썼던 녀석이다. 문을 통과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겠지.”
그즈음,
팟-.
몸을 구속하고 있던 무형의 압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마녀가 자신이 아닌, 새로 나타난 이에게로 관심을 돌렸기 때문인 듯했다.
이에 도로시는 곧장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봤다.
거기, 느닷없이 나타난 ‘그’가 자신에게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괜찮냐?”
“······여, 여긴 어떻게?”
“아, 별 거 아냐. 몇 명 잡아다 물어보니까 다 여기 있다고 하더라고. 겪어봐서 알 것 아냐, 얘들은 다 지 살기 바쁜 종족이거든. 묻기만 하면 다 술술 불어.”
“······.”
그걸 물은 게 아니었다.
어떻게 마녀들의 영역에 들어왔는지, 루덴코프에게선 벗어난 건지, 힘은 찾은 건지, 지금 그 모습은 어떻게 된 건지······.
다만, 당장은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저 별 것 아니라는 말투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고생 좀 했나보네.”
“······.”
“걱정 마. 이제 내가 왔으니까.”
“······응.”
도로시는 그러곤 고개를 숙였다.
눈앞에 있는 이는 칠왕이었다. 바로 그 대마녀였다.
갑작스레 주걱턱이 왔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 그럼 여기 앉아 있어도 돼?”
“마음대로. 아니면 뭐, 누워 있던가.”
“······응.”
도로시는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마음 속 깊은 평온을 느꼈다.
이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