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혼란을 가져다 줄 존재
***
세 시간 전.
미들랜드 중앙산맥.
어느 깊은 산 속.
“근데 여기······ 마녀들만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에스트리아가 정면의 하얀 울타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울타리 한쪽 편엔 웬 자그마한 팻말이 하나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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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마녀만 출입 가능
-마녀가 아닌 자, 침입을 시도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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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마도?”
“근데 들어가겠다는 건가요?”
“응.”
“어떻게요?”
“그냥. 걸어서?”
“······마녀만 출입가능 하다는데요? 그게 가능한가요?”
“음, 그럴걸? 아마?”
내 대답에 에스트리아는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왜?”
“······아니에요.”
그러곤 이내 입을 다물었는데, 이는 의문이 사라져서라기보다는 그 의문을 말로 표현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인 듯했다.
대충 이렇게 묻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니, 그럼 지금 당신이 마녀라는 소리예요?
물론 그렇지 않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마녀가 아니다.
일단 남자고, 평범한 인간이며, 파이어 볼이나 매직 미사일 따위를 적에게 날리지도 않는다.
또한 힘이 강해진다고 해서, 외모가 아름다워지지도 않는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굳이 외형의 변화를 위해 별도의 지출계획을 짜고 있지도 않았겠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마도 내가 별다른 제지 없이 저 울타리를 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유야 간단하다. 성별이 아닌 별도의 관점에서 봤을 때, 나는 마녀를 타 종족과 구분 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체내에 ‘마나’와 ‘마력서클’이 존재한다는 것.
내겐 루덴코프에게서 카밀라의 힘을 빌려올 당시 생성된 서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한 미약하게나마, 그곳에 소량의 마나가 맴돌고 있기도 했다.
나는 저 울타리가 나의 성별이나 외형에 딱히 관심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심장 부근에 서클이 몇 개나 감겨 있는지에 대해선 몰라도.
하여,
“뭐, 확인해보면 되겠지.”
자신감 있게 울타리를 향해 걸어갔던 것이다.
내가 만약 접근불가인원이라면, 아마도 강력한 마법적 제지가 있을 것이다.
접촉과 동시에 벼락이 떨어진다거나, 아니면 뭐······ 따로 저주가 내린다거나.
그러나 다행히도,
끼이익-.
울타리의 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밀렸다.
즉,
“봤지?”
나는 정식으로 마녀로 인정받았다는 얘기였다.
이 울타리한테.
“······.”
이에 에스테리아는 한동안 나를 말없이 바라보더니,
“혹시······.”
이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저, 저도 함께 들어갈 수 있을까요?”
나는 녀석을 가만 쳐다봤다.
아주 들어가고 싶어 죽겠단 표정이었다.
짐짓 점잖은 체 하던 것도 버리곤, 냅다 호기심을 드러내는 꼴이라니.
나는 피식 웃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나 이 녀석은 용보다는 인간 쪽에 어울렸다.
“흐음······ 글쎄?”
울타리가 과연 동행의 존재를 허용할까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건 나 또한 확신할 수 없었다.
문구에 적힌 대로라면 안 되는 게 맞겠으나, 실제로 이 세계의 설정이 그리 빡빡한 편은 아니니.
원작에서 마녀들이 남자노예들을 데리고 들락날락 거린다거나, 외부인을 본인들의 탑으로 초청하는 걸 봤을 땐······ 어쩌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해보면 알겠지?”
이어,
“어엇······?”
나는 에스테리아를 품속으로 끌어당긴 뒤, 울타리 너머로 한 발을 넘겼다.
그러자,
······.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동행자 또한 허용이 되는 모양이었다.
“되네.”
“······와아!”
“잘됐네. 두고 가야 했다면 급히 은신처라도 만들어야 했으니. 일단 서두르자.”
“네······ 넵!”
그러곤 나는 에스테리아를 번쩍 들어 올린 뒤, 안으로 진입했다.
울타리 너머엔 웬 오두막 하나가 휑한 벌판에 우두커니 세워져 있었다.
마치 데모라에 들어갈 때를 연상시키는 광경이었다.
오두막도 과자로 된 건 아니었으나, 모양 자체가 그때 봤던 것과 매우 흡사했다.
‘거인도 있나?’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봤으나, 딱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물론 뭐, 있어도 별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미 마녀로 인정받은 데다, 또 뭣하면······ 힘으로 패주면 되니까.
이어,
끼이익-.
우린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엔 아니나 다를까, 옷장이 존재했다.
“참나······ 소재 재활용 하난 끝내준다니까?”
“네?”
“아냐, 들어가자.”
“······어디를요?”
나는 의아한 얼굴로 묻는 에스테리아에게 씩 웃으며 옷장을 가리켰다.
“마녀 나오는 동화 같은 거 읽어본 적 없어?”
그러곤 그것의 문짝을 휙 열었다.
“그게 무슨······ 어······ 어엇!?”
거기, 새로운 세계가 들어 있었다.
⁞
도로시의 위치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에스테리아를 ‘웬 노예 하나를 끌고 다니는 허약한 마녀’ 정도로 착각하곤, 낄낄거리며 우릴 습격해온 마녀를 간단히 제압한 후,
“사, 살려주십시오! 제, 제가 눈이 어두워 괴물을······ 아, 아니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큰 실수를······.”
“됐고, 묻는 말에 대답해. 대답이 만족스러우면 살려줄게.”
“앗, 정말이신가요?”
“그럼.”
“넵! 뭐든지!”
물어보니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외부에서 침입해 온 마녀 하나 있지? 분명 난리가 났을 텐데. 이곳으로 넘어온 건······ 약 한 달 전쯤.”
물론 들어온 시기에 대한 건 어림짐작이었다.
코코아에게 듣기로 두 달 전에 길을 나섰다고 했으니, 아마 그쯤 되지 않았을까 하고.
그리고 다행히도,
“한 달 전쯤에 난리 난······ 아, 알 것 같습니다. 벨루카 님이 먹이로 지정하신 그······?”
들어맞은 듯했다.
“벨루카? 설마 네 마녀 중 하나인 벨루카? 빨강머리?”
“예, 맞습니다.”
“흐음······ 서둘러야겠네. 지금 어디에 있지?”
“저도 잘은 모르지만······ 68층? 벨루카 님이 지배하는 층에 있다고 언뜻 들은 것 같습니다.”
“68층? 그곳엔 어떻게 가지?”
“이곳 중앙도시로 가시면 각 층으로 이어진 포탈이 있습니다. 거기서 이동하시면 됩니다.”
“오케이, 알았어.”
나는 그러곤 마녀의 머리를 내려쳐 기절시킨 후, 곧장 도시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마녀들의 습격이 서너 차례 더 반복됐지만, 그때마다 머리통을 후려쳐 기절시킨 후 도시 이곳저곳에다 내던져버리니, 이내 온 도시가 잠잠해졌다. 다들 눈치는 빠른 듯했다.
이어 포탈을 타고 68층으로 이동하니, 그 다음부터는 물을 것도 없었다.
도착과 동시에, 어느 한 장소가 퍼뜩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도시에서 멀찍이 떨어진, 어느 높다란 산의 정상 부근에 수많은 마녀들이 밀집해 있었다.
저기가 틀림없었다.
“에스트리아, 꽉 잡아.”
“네, 네!”
그렇게 전력을 다해 달려가길 10분여,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 잠시만 숨어 있어.”
“저, 저기 있는 게 설마······ 카, 카밀······.”
“맞아, 그러니까 절대 나오지 마. 위험하다 싶으면 크게 소리치고.”
그러고 나는 에스트리아를 뒤로한 채,
“······스톱, 거기까지. 더 가기만 해봐, 다리를 뽑아버릴 테니까.”
재빨리 이동해, 도로시에게 다가가는 카밀라를 막아섰던 것이다.
⁞
나는 옆으로 엎어진 도로시를 가만 바라봤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가 싶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하얗게 변색된 녀석의 왼쪽 다리가 계속해서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쯧······.”
저거 무지하게 아팠을 텐데.
원작에서 저와 꼭 같은 현상을 본 적이 있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 ‘커다란 녀석’조차 죽을 듯이 울부짖었을까.
도로시가 그간 얼마만큼의 고통을 겪었을 지가 능히 짐작이 갔다.
“······.”
내 잘못이었다.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어야 했는데.
도로시는 길을 잘못 들었다.
물론 녀석이 최종적으로 상대해야 할 건 저 대마녀가 맞을지도 모르지만, 당장 성장하기 위해 찾아갔어야 하는 장소는 이곳이 아니었다.
녀석은 마녀이나, 가진 힘은 마녀들의 그것과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었으니.
그즈음,
“뭐 하는 짓이지? 갑자기 나타나선 감히 내 행사를 방해하려 들다니······.”
카밀라가 실로 냉담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이를 루덴코프의 의지라고 봐야 하느냐?”
“루덴코프? 아······.”
아직 카밀라의 귀까지 들어가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나나 옛 용이 떠들고 다니지 않는 이상에야, 소문이 퍼지는 데엔 제법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으리라. 저 자존심 강한 루덴코프가 이를 통제하지 않을 리 없으니.
녀석에게 있어 내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은, 결코 알려져선 안 되는 치욕스런 일일 테니까.
이를 이용한다면 굳이 별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듯했다.
“아니, 녀석과는 관계없어. 이건 내 의지다.”
“허······.”
이에 카밀라가 황당하다는 듯 혀를 찼다.
“루덴코프의 명령도 아니다? 감히 네까짓 게 뭐라고······.”
“하지만 그는 내 의지를 존중하지.”
“······뭐?”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으면서 그래. 권좌의 홀에서 칠왕들의 전면전을 예고했던 건 바로 나야. 루덴코프가 아니라.”
“······.”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단 말이야? 설마 그 녀석이 그냥 귀찮아서 그 역할을 내게 넘겼다고 여긴 건 아니겠지?”
카밀라는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뭐야, 저 녀석은 대체 뭐야?”
“대마녀, 아는 녀석이야?”
뒤에 있던 벨루카와 키르케가 외려 큰 소리로 물어왔다.
“저 두 머저리도 곧바로 묻는 걸, 웬일인지 너는 알아차리지 못했나보군. 무엇이 가장 핵심적인 질문인지 말이야.”
나는 그러곤 카밀라를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곧이어,
“······너는 누구지?”
카밀라가 나직한 어투로 내게 물었다.
마침내 나를 제대로 직시하는 느낌이었다.
“흐음, 근데 내가 대답해준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뭣이? 이런 건방진······.”
“뭐, 그래도 물었으니 답은 해주지.”
그러곤 나는 씩 웃은 뒤,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좋은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모험왕이 될 남자다.”
이어,
······.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뭐, 그럴 만 했다. 칠왕을 눈앞에 두고서 대뜸 모험왕이라니. 미친놈처럼 보는 게 당연하지.
하여, 나는 저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얼른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이 모험의 탑에 혼란을 가져다 줄 존재지.”
그러자,
“······뭐? 혼란?”
이번엔 곧장 반응이 있었다.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이라 느껴졌던 걸까.
“지금은 그렇게까지 밖엔 얘기해주지 못하겠군. 다만, 이것만 기억하라고. 이제까지의 모험왕들은 모두 혼란 속에서 탄생했다는 걸. 새로운 질서가 성립되려면 그 전에 먼저 혼란이 있어야 하는 법이거든. 바로 내가 그 혼란을 가져올 존재지.”
“허, 그걸 지금 말이라고······”
“굳이 하나만 강조하자면, 루덴코프는 내 말을 믿었고 또 내 말을 따랐어. 너와 마찬가지로 칠왕 중 하나인 그가 말이야. 그런 그가 내게 동조한 이유가 뭘까에 대해······ 한 번 심사숙고해 보라고.”
그러곤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싸울 생각이 없다는 의사표시였다.
물론 겁을 먹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루덴코프 때와는 달리, 상대할 방법은 충분했으니.
단순한 이유였다. 무대와 관객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새로운 챕터가 열리긴 했으나, 메인 캐릭터는 레오였다. 제목은 ‘맹약 훈련’이었고.
즉, 한동안은 내게 메인시점이 오지 않을 거라는 것.
아마도 ‘엄마 찾기’가 궤도에 올라설 즈음에야 내게로 다시 오게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런 변변찮은 곳에서, 보는 이 하나 없이 칠왕과 대적한다는 건······ 그리 썩 생산성 있는 행위가 아니었다.
‘저 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해준다면 좋으련만.’
다만 카밀라는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루덴코프, 루덴코프······ 그래, 인정하도록 하지. 자꾸만 그 이름이 내 발목을 잡는다는 걸. 실제로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보기도 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좋아, 네 건방에 대해 일부는 인정해주도록 하마. 다만 하나는 말해주고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녀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바라던 내용이었다.
다행히 충돌은 없을 듯했다.
“뭐지?”
“거기 네 발치에 잠든 어린 마녀 말이다. 아니, 마녀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대체 그 녀석은 대체 뭐지?”
“······.”
도로시의 정체라.
사실 이는 나 또한 아는 바가 없었다. 작가가 처음 이 녀석을 만들 때 과연 무엇을 노리고 있었는지, 어떠한 역할을 배정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다만,
“그야······ 스스로 짐작해 보라고.”
본래 이 녀석이 맡은 역할이 그리 작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뭐?”
“네가 대마녀의 탑에서 직접 나오게 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누가 불러서 나온 게 아닌 이상엔 말이지. 희한하게 신경이 쓰이고, 괜히 궁금증이 생기고······ 그랬던 거 아냐? 그런 것엔 모름지기 다 이유가 있는 법이거든.”
그리고,
“······그 꼬맹이가 나를 상대할 대적자라고?”
이 생각은 카밀라의 반응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말이야.”
“그럼 그 아이 또한 루덴코프······ 아니, 네가 계획한 혼란의 일부인가?”
“맞아.”
곧이어 카밀라가 다시금 침묵하기 시작했다.
아마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상념들로 가득할 것이다.
예고된 혼란, 루덴코프의 기행, 정체 모를 어린 마녀······.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곤 만족스레 웃었다.
이만하면 된 듯 싶었다. 슬슬 물러나도 되지 않을까.
그러고 내가 슬쩍, 몸을 빼려할 때였다.
별안간,
“데려가겠다고!? 안 돼! 그년은 내 먹이야!”
끔찍할 정도의 쇳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나는 버럭 소리를 내지른 빨강머리 마녀를 응시했다.
분명 아름다운 외모였으나, 어째선지 얼굴 곳곳에 추악함이 그득해 보였다.
“······먹이라. 그렇지, 내가 착각한 게 아니었어.”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게 아니었다. 저 마녀들은 ‘잡아먹기’가 가능했다.
일전에 나는 하늘마녀의 과거가 적힌 동화책 ‘마녀의 옷장’을 읽으며, 혼동을 겪은 적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본래 마녀들은 다른 마녀들의 힘을 섭취함으로써 그 미모와 힘을 불렸다.
그게 저들의 기본적인 성장방식이었다.
헌데 동화 속 내용엔 그것이 하늘마녀만의 능력으로만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법이 아닌 고유능력의 일종으로.
그리고 실제로도, 데모라의 마녀들은 그와 같은 방법을 행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설정이 바뀌었나 했는데······.
‘흐음.’
그즈음엔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작가는 이들 또한 ‘진짜 마녀’라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늘마녀와 이들의 공통점은 ‘동족의 힘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늘마녀가 ‘가짜 마녀’로 취급된 이유 중 하나이지 않는가.
이로 짐작하건대, 본디 이 마녀들에게 예정된 결말 또한 ‘진짜 마녀’에 의해 처단되는 게 아니었을까.
바로 도로시에 의해.
“벨루카 맞지? 생긴 것만 봐도 남 괴롭히는데 진심일 관상이네. 너는 내가 당장이라도 없애버리고 싶지만······ 도로시의 몫으로 남겨두도록 하지.”
“뭐, 뭣? 네놈, 지금 말 다했······.”
“여기 있는 다른 모든 가짜 마녀들도 마찬가지야. 물론, 대장인 너를 필두로 해서.”
그러곤 나는 카밀라를 가리켰다.
이에,
“감히······ 그냥 넘어가주려고 해도 자꾸만 긁는구나.”
대마녀는 또 한 번 심기가 어지러워졌던 모양이다.
“지금 루덴코프에게서 힘을 빌렸다고 기고만장해 하는 것 같은데······ 네 녀석, 그게 얼마나 갈 줄 아느냐. 설마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녀석의 힘을 빌리는 데엔 수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더욱더 많은 대가를 요구하지. 보아하니, 권좌의 홀에서 봤을 때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빌린 듯한데······ 어리석은 녀석 같으니라고.”
“내가? 힘을 빌렸다고?”
“왜, 아니란 말이더냐?”
“그땐 맞지만, 지금은 아냐. 이거 내 힘이거든.”
“하, 웃기는 군······.”
그러고 비웃는 카밀라를 보자, 어째 심술궂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가져다줄 혼란이라면······ 먼저 맛보기라도 좀 선사해줄까.
“저기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남의 힘을 멋대로 빼앗을 수 있는 게 너희나 루덴코프만의 특기는 아냐.”
“뭐?”
“내가 너희를 가짜마녀로 부른 이유가 뭔지 말해줄까? 남의 힘을 훔쳐 제 것으로 삼는 거······ 그건 마녀의 고유한 방식이 아니거든. 외려, 부조리한 존재들의 공통된 성장방식이지. 즉, 너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뭣이?”
“뭣하면 나도 좀 보여줄까? 잘 보라고, 내가 루덴코프의 힘을 빌린 것인지······ 혹은 먹어치운 것인지.”
나는 그러곤 하나의 고유능력을 흉내 냈다.
사실 이건 전부터 내가 써보려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한 능력이었다.
이걸 사용하려면 기존의 흉내 조건들 이외에도 한 가지 전제조건을 갖춰야 했는데, 이를 내가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심장의 서클이 새겨져 있어야 한다는 것.
이는 마녀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엔 불가능한 일이었다.
헌데 아주 우연찮게도, 최근에 내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루덴코프에게서 카밀라의 힘을 빌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조건이 갖춰지게 되었던 것이다.
즉,
“자, 이렇게 손을 뻗으면······.”
나는 하늘마녀의 고유능력 [강탈]을 흉내 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어, 내가 한 것이라곤 별 게 없었다.
그저 내 앞으로 튀어나온 벨루카를 향해 손을 내뻗었을 뿐이다.
그러자,
스스슷-.
녀석의 마나 중 일부가 내게로 빨려 들어왔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와 같은 방법으로는 제대로 마나를 흡수할 수 없다.
본래는 대상을 완전히 제압한 후, 마나를 모조리 긁어 와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흡수가 가능하니.
하지만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당장 그와 같은 일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이미 저들은 충분할 정도의 혼란을 맛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내 마나가 빠져 나갔어······.”
“이게 무슨······.”
“저, 정말이란 말이더냐? 루덴코프의 힘을 빌린 게 아니라······ 빼, 빼앗았다고?”
나는 그런 마녀들을 보며 씩 웃어주었다.
“내 힘은 맛보기에 불과해. 그럼 기대하고 있으라고, 앞으로 일어날 더욱 거대한 혼란들을.”
*
“······여긴?”
도로시는 살포시 눈을 떴다.
둘러보니, 웬 널찍한 마차 안이었다.
그리고 눈앞엔 처음 보는 여자애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뜨셨군요!”
“······누구?”
“저는 에스트리아라고 합니다.”
그러곤 소녀가 다소곳이 인사했다.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3일 간을 내리 주무셨습니다.”
“3, 3일이나?”
그러곤 몸을 일으키려던 도로시는,
“크윽······.”
온몸의 통증을 느끼곤 재차 누웠다.
도저히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누워 계세요. 주걱턱 씨가 그러더군요, 고통이 상당하실 거라고.”
“아······ 그럼 실례 좀 할게. 근데 혹시 그는 어디 있는지 아니?”
그러나 이내, 도로시는 자신의 질문이 꽤나 아둔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마차가 저절로 움직이지는 않을 게 아닌가.
그리고 역시나,
“마차를 몰고 있어요.”
소녀가 이를 친절히 확인해주었다.
“그, 그렇구나······ 근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가보면 안다고만 말해서요, 다만······.”
“다만?”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건 확실해요. 근 하루 동안 누구도 만나지 못했거든요.”
“아······.”
어쩌면 마녀들의 눈을 피하려 이동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모르나, 대화로 잘 마무리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으니.
“그나저나······ 너는 누구니? 주걱턱이랑은 무슨 관계야?”
“음······ 글쎄요, 어디서부터 설명을 드려야 할지······.”
“괜찮아, 천천히 얘기해줘.”
그러고 도로시가 한참을 에스트리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끼익-.
마차가 멈춰 섰다.
곧이어,
덜컹-.
마차의 문이 열렸다.
“어? 깼냐?”
“주, 주걱턱!”
“다행이네. 잠들어 있을 때 도착해서. 마차가 많이 흔들렸을 텐데.”
“도착했다고? 여기가 어딘데?”
“직접 봐.”
이에 마차 밖으로 나와 보니, 웬 거대한 산맥이 눈앞에 떡 하니 펼쳐져 있었다.
저 먼 지평선까지 산봉우리들이 끝도 없이 솟아나 있었다.
“······여기가 어디?”
“네가 본래 찾아왔어야 하는 장소. 미안, 내가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응? 뭐를?”
돌아보니, 어째선지 주걱턱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걱정 마. 여긴 그리 위험하지 않을 테니까. 물론······ 죽을 만큼 힘든 건 매한가지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무슨.”
도로시는 당최 주걱턱이 하는 소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과외 선생님 구해다 주는 거. 하지만······ 결국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 하는 건 너 스스로에게 달려 있어. 할 수 있지? 물론,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순간, 도로시는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되뇌었다.
지금······ 선생님을 구해줬다고?
“그래도 아주 고역은 아닐 거야. 그래도 동기가 한 명 있을 거거든.”
“동기? 누구?”
“너도 아는 녀석이야. 빨강머리. 아니지, 지금은······.”
그러곤 ‘푸흡’ 하고 웃는 게 아닌가.
“곧 나타날 거야.”
이윽고,
슥-.
멀찍이 떨어진 허공에서 웬 대머리 남자가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네가 모셔야 할 스승의 이름은 잇신. 검은 용의 수호자라 불리는 녀석이지. 그리고 저기 있는 대머리가 바로 네 동기야. 좀 더 정확히는, 사형쯤 될까?”
그러고 돌아본 그곳에,
“······주걱턱?”
민머리 키리코가 경악어린 눈으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