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녀석들을 찾아서
***
“저기······ 우리 출발 안 하나요?”
검은 산맥을 빠져나온 지도 어언 30분 째.
결국 에스트리아의 입에서 한 소리가 나왔다.
“대체 뭐하는 거예요?”
“기다려봐.”
“그거 보면 답이 나오나요? 길눈이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어허, 기다려보래도.”
“······그냥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재차 땅바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세 군데의 지명이 적혀 있었다.
– 7층. 금지된 신전
– 1층. 코코아
– 18층. 무덤
녀석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물론 한가롭게 고민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으나, 그런 만큼 더욱 신중히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자칫 잘못된 길로 가게 되면, 그만큼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았으니.
‘처음 찍은 게 답이라고 하던데······ 역시 그냥 원래대로 가야 하나?’
나는 그러곤 세 번째 지명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18층. 무덤.
본래 이곳을 가려고 했던 이유는 원작에서의 전개 때문이었다.
원작에선 이즈음 처음으로, 레오와 치누아비가 만난다.
레오가 에스트리아를 만나 ‘엄마 찾기’를 시작하게 되면서, 탑의 전 층을 아우를 수 있는 도깨비 해독가를 필요로 하게 되고, 그때 만나게 되는 녀석이 바로 치누아비인 것이다.
“······.”
사실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황당한 일이긴 했다.
거의 극 초반부부터 나와 함께 다녔던 치누아비가 실은,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라는 게.
작가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아니 생각이 있기는 했던 걸까.
무턱대고 캐릭터부터 찍어내고 보다니.
가만 보면, 이런 어이없는 부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캐릭터만 대충 싸질러놓을 줄 알지 활용도가 극악인데다, 이야기 구성과 주인공 동선을 맞추지 못하는 바람에 소재 날려먹는 것만도 한 트럭이야, 심지어 미리 짜놓은 플롯마저 죄다 갈아엎기 일쑤이니.
물론, 마지막 건 내 지분이 좀 크긴 했지만.
‘진짜 만화가 잘 된 게 신기하다니까.’
그즈음엔, 어째선지 커뮤니티 생각이 간절했다.
나의 이 답답함을 풀어놓고, 같은 생각을 가진 녀석들과 함께 씹고 뜯고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였다.
“이제 그만하고 출발하죠? 그냥 제가 정하는 게 빠를 것 같아요.”
귓가로 에스트리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차, 또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아, 1분만 더.”
이거 한 번 작가를 욕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문제였다. 이거 빨리 완결을 보든가 해야지.
나는 얼른 정신을 다잡았다.
어쨌거나 원작만 생각한다면 거기 18층에 있는 게 맞을 것이다.
레오가 저 무덤 안에 갇혀 있는 녀석을 구해주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니까.
사실 검은 산맥에서 출발할 당시만 하더라도, 곧바로 이리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곳은 고민의 대상도 아니었다.
뭐, 당연한 거니까. 이건 정해져 있는 전개였으니까.
헌데 막 산맥을 빠져나오려던 중 문득,
“어? 잠깐······.”
웬 의문 하나가 번쩍 머리를 스쳤던 것이다.
-과연 현재 치누아비에게 부여된 역할이 원작에서와 같을까?
이즈음 첫 등장한 원작에서의 치누아비는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신규캐릭터다.
모험의 탑에서 뛰어나다고 소문난 해독가 도깨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
하지만 현재 치누아비에겐 그보다 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수식어가 붙어 있는 상태였다.
바로, 주걱턱 모험단의 해독가.
이미 전혀 다른 캐릭터이지 않는가.
헌데 작가가 치누아비에게 본래의 역할을 그대로 배정했을까?
그랬다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전개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리고 또 하나.
원작에서의 치누아비는 본래 레오를 위해 준비된 녀석이다. ‘엄마 찾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된 안배.
하지만 지금 ‘엄마 찾기’를 수행하고 있는 이는 레오가 아닌 나다.
-과연 작가가 나를 위해 그와 같은 안배를 유지해 놓았을까?
물론 이건 반반이긴 했다.
설사 내가 밉다하더라도, 이 에스트리아의 ‘엄마 찾기’가 실패해선 안 되니까.
이번 에피소드는 이 모험왕이란 이야기를 ‘최종장’으로 인도하는, 일종의 징검다리 격 내용이다.
이를 대신할 전개가 있을 리가 없었다.
세부내용이야 약간씩 달라질 순 있겠지만 결코 그 흐름, 내지는 결말이 바뀔 순 없다는 것.
고로, 내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건 작가로서도 쉬이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흐음.
역시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다른 두 가지 선택지로 눈을 돌렸다.
첫 번째, 7층 금지된 신전.
여긴 가장 확률이 낮았다.
1층을 떠나올 당시 하카로부터 녀석들이 여기서 허덕이고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여태 그곳에 있을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1층.
녀석들이 코코아의 곁으로 복귀했을 경우.
1층으로 가는 것 또한 염두에 둬야 할 선택이긴 하나, 문제가 좀 있었다.
일단 거리가 꽤 멀다는 것.
1층은 다른 층을 경유해 가는 방법도 없다. 입구가 하나라 무조건 성녀의 무덤을 찾아 들어가야만 한다.
하여, 가는 데까지 제법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만약 그곳에 없을 경우, 낭비되는 시간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고.
그나마 코코아에게서 귀띔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선뜻 택하기가 어려웠다.
‘애매하네. 1층 아니면 18층으로 가야 할 것 같긴 한데······.’
그때였다.
“보아하니 주걱턱 씨는 길을 모르는 것뿐만 아니라, 결정장애까지 있는 것 같네요. 그냥 제가 정해드리도록 할게요.”
에스트리아가 불쑥 다가와선,
“사람이 모르면 물어볼 생각을 해야지 말이야, 아무데나 찍어서 가려고 할 게 아니라.”
땅에다 새로운 지명 하나를 적었다.
-38층. 모험가 인력시장
“그 도깨비님, 그간 자금조달을 위해 자유 해독가로 활동했다면서요? 그럼 당연히 이곳, 인력시장을 통했겠죠? 그럼 여기에 정보가 남아있지 않을까요? 7층이든, 18층이든······ 뭐 어디로 갔든지 간에 이곳에서 의뢰를 받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를 본 순간,
“······에스트리아.”
나는 나도 모르게 멍하니 녀석의 이름을 읊조렸다.
“왜요, 여기도 싫어요? 여긴 어느 층에서나 금방 갈 수 있는 곳이라 잠깐 들르는 것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텐데? 그냥 아무 마을에 가서 인력시장으로 가는 길만 물으면, 자동적으로 층이 열리는······.”
“너 짱.”
“······예?”
“가자.”
나는 그러곤 에스트리아를 두 손으로 공손히 들어 올린 뒤, 곧장 내달리기 시작했다.
*
한 시간 후.
38층. 모험가 인력시장.
모험의 탑은 각 층마다 하나의 세상이 들어 있는 구조라, 실제로 다른 층과 전혀 교류가 없는 층들도 많이 존재한다.
그 하나하나가 평생을 돌아도 다 둘러보지 못할 정도의 세계이니.
특히나 무려 열여섯 개의 대륙이 들어 있는 ‘판게아’라는 이름의 80층이나, 층수는 나오지 않았으나 따로 ‘지하의 심연’라 불리는 층은 무려 ‘전대의 모험왕조차 탐험을 포기했을 정도로 광활한 지대’라는 설정이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하나의 세계가 온전히 담을 수 없는 힘을 가진 이들, 예컨대 전대의 모험왕들이나 칠왕들이 수천 년에 걸쳐 여러 층들을 점령하고, 모험가들의 활동영역을 넓혀 그나마 이 정도이지, 여전히 수많은 층들이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는 게 기본설정이다.
헌데 개중 몇몇 특수한 층들의 경우, 이와는 정반대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모험가들뿐만이 아니라, 온갖 종족들이 득시글대는 층이 존재한다는 것.
이 같은 층에는 대표적으로 세 곳이 있는데, 모험가협회 본부가 있는 15층과 ‘대격투장’이 존재하는 49층, 그리고 여기 ‘모험가 인력시장’이 있는 38층이 바로 그곳이다.
“치누아비라······.”
나는 그러고 중얼거리며, 열심히 아래위로 장부를 훑는 인력 중개업자를 말없이 쳐다봤다.
잠시만 기다리라더니, 벌써 10분 째였다.
심지어 미간을 찌푸리기까지.
왠지 느낌이 싸했다.
잠시 후,
“흠, 아무리 찾아도 그런 이름은 없는데?”
“······.”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았다.
어째 훑어보는 시간이 길다 싶더라니.
“없다고?”
“전혀.”
“해독가 쪽으로 찾은 거 맞아? 해독가.”
“미안한데, 해독가는 물론이고 길잡이나 대적자 쪽에도 없어.”
“······.”
나는 이어 구구와 네로의 이름으로도 찾아볼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없어.”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인력시장에서 본명을 숨기는 건 흔한 일이야. 다른 정보는?”
“다른 정보라······.”
치누아비야 둔갑이 가능한 도깨비다보니 외형을 말하는 게 의미가 없었다.
나는 구구와 네로의 생김새를 전달했으나, 이 또한 별 소득이 없었다.
“하얀 비둘기와 검은 고양이? 글쎄, 딱히 그에 대한 정보는 없군. 그리고 애당초 그렇게 정체를 특정할 수 있는 녀석들은 이곳에 존재하질 않아. 여기 있는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적이 많을 수밖에 없거든. 어딜 가나 보물은 하나지만 모험단의 수는 여럿이지. 개중에서 승리하고 보물을 차지했다는 건, 결국 다른 이들을 물 맥였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니까. 여기 있는 녀석들 중 태반이 다른 녀석들에게 당한 경험이 있을 걸? 그런데 어디 겁나서 본 얼굴로 돌아다니겠어? 뒤에서 칼 맞을 게 뻔한데?”
확실히 일리가 있는 설명이었다.
“······그렇군.”
“이봐, 그것보다······ 충고 하나 할까?”
“응? 뭐지?”
“당장 두건이라도 써. 뭐라도 걸쳐서 얼굴을 가리라고.”
나는 의아한 마음에 되물었다.
“왜?”
“너······ 그 놈을 꽤나 닮았어. 알지? 그 루덴코프 모험단의 2인자였던 녀석 말이야, 도살자 주걱턱. 지금 채무불이행자가 그 녀석에게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걸었거든. 주걱턱을 잡아두고 있는 이에겐 하나의 층을 통째로 주겠다고.”
“······그래?”
“보아하니, 네 쪽이 덩치도 더 있고 피부색도 다르니 눈썰미 좋은 녀석들이야 헷갈리지 않겠지만······ 파리가 꼬일지도 몰라. 지금도 봐, 요상한 녀석들이 내 가게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고. 저것들이 다 돈이 되는 손님이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네 쪽을 노리고 있는 파리들인 것 같아서 말이지.”
돌아보니, 정말이었다.
딱 봐도 수상쩍어 보이는 녀석들이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물론, 위협이 될 만한 녀석은 없었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꽤나 값비싼 충고였다.
나는 얼른 미소년으로 모습을 변경했다.
“오······ 도깨비였나 보군.”
“맞아, 방금 전 외형이 일을 구하기 쉬울 것 같아서 둔갑하고 있었지. 어쨌거나 고마워.”
“별말씀을.”
“그럼 아까 하던 얘긴데, 혹시······ 각 사건 별로 고용된 모험가들의 신상을 확인할 수 있을까?”
“뭐?”
“내가 꼭 찾아야 하는 녀석들이 있는데, 네 말마따나 본명을 숨긴 것 같아서 말이지. 녀석들이 어떤 사건을 맡았는지는 알고 있거든.”
“그야 별 문제가 없지. 돈만 낸다면 말이야.”
“돈은 충분해. 충고를 해준 값까지 더해서 쳐주지.”
돈이 많다는 건 사실이었다. 실은 루덴코프 밑에 있을 때 엄청나게 해먹었던 것이다.
습격하는 곳마다 벌벌 떨며 가진 걸 모두 내놓는데······ 솔직히 빼돌리는 것조차 일일 정도로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더욱이 루덴코프 녀석이 물욕이 전혀 없었기에, 딱히 눈치를 보지도 않았고.
따로 묻어둔 것들만 찾아도, 하나의 층을 살 수 있을 정도가 아닐까.
이어, 나는 중개업자에게 몇 가지 의뢰에 대해 일러주었다.
코코아와 이야기를 나누다 들은 치누아비가 해결했다는 의뢰들이었다.
11층. 철의 미로 돌파하기.
23층. 파고의 장난감 공장 폭파사건 범인 찾기.
7층. 금지된 신전의 입구 뚫기.
곧이어,
“자, 여기.”
중개업자가 의뢰에 고용된 이들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 녀석들인가 보네.”
나는 하나의 이름을 특정할 수 있었다.
-해독가 치구네.
찾은 뒤 보니, 황당하리만치 간단했다.
치누아비와 구구, 네로.
셋 이름의 첫 글자를 합쳐놓은 거였다.
“아하, 찾는 게 이 녀석들이었군. 요즘 꽤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트리오지.”
“호오, 그래? 알고 있단 말이야?”
“물론. 직접 연결시켜 준적도 있으니.”
그러곤 갑자기,
“도깨비 세 명이서 구성된 녀석들인데, 평판도 나쁘지 않아.”
황당한 소리를 내뱉는 것이었다.
“뭐?”
나는 귀를 의심했다.
“도깨비 셋?”
“그래, 도깨비 셋.”
“······.”
황당한 소리였다.
웬 도깨비 셋?
그러거나 말거나,
“도깨비들이 그렇게 셋씩이나 뭉쳐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말이야. 다들 서로를 못 견뎌하니까.”
중개업자는 씩 웃으며, 그들에 대한 기억을 늘어놓았다.
나는 믿기지가 않아 재차 물었다.
“직접 본 적이 있다고? 녀석들을? 근데 도깨비가 셋이었다고?”
“그럼.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이쪽 방면으론 꽤나 알아주는 업자거든. 이름 난 녀석들 중에 나를 통하지 않는 이가 없지.”
“허······.”
뭐가 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아참, 그 녀석들 지금 아마 의뢰를 받고 활동 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 여기 있군. 이건 서비스니까 돈은 필요 없어.”
중개업자가 하나의 사건이 적힌 메모지를 내밀어 보여줬다.
-18층. 잃어버린 군주의 지하무덤
“······고마워.”
18층이면 의심의 여지가 없긴 했다.
치구네라······.
뭐가 됐든,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이어 중개업소를 나온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에스트리아에게 다가갔다.
“알아냈나요?”
“대충은.”
“대충? 확실한 건 아니고요?”
“가봐야 알 것 같아. 어쨌거나 처음 가려고 했던 곳이 맞긴 했어.”
“그래, 그럴 것 같더라니. 본래 첫 선택이 대부분 올바른 선택이라고들······.”
“됐고, 가자고.”
이어, 우리는 곧장 그곳을 벗어났다.
*
모험의 탑 18층.
잃어버린 군주의 지하무덤.
“이제 그만 포기하자. 배고파 죽겠어. 나가고 싶다고!”
“멍청한 비둘기 같으니라고. 지금껏 저 도깨비가 하고 있던 게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 지금이라도 그냥 뒤돌아 나가면 될 거 아냐? 들어왔던 길로.”
“이래서 새대가리, 새대가리라고 하는 거군. 이미 길은 없어진지 오래다. 계속해서 같은 지점만 돌고 있을 뿐이라고. 여긴 그냥 기둥들이 많이 세워져 있는 공터에 불과해.”
네로의 지적은 정확했다.
들어온 지 정확히 사흘 째 되는 날부터, 어찌된 일인지 길이 사라져버렸다.
뭘 잘못 건드린 것도 아니고, 문제풀이에 오류가 있던 것도 아니다. 놓친 단서도 없다.
즉, 출구가 나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새로운 문제라도.
이렇듯 아무것도 없는 맨 철벽이 아니라.
“후······.”
치누아비는 그러고 한 차례 한숨을 내쉰 뒤,
“잠시, 잠시만 조용히······ 생각을 좀 해야겠습니다.”
다시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에 이르러 귀결되는 결론은 하나였다.
함정.
누군가가 자신들을 함정에 빠뜨렸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
사실 의심스런 지점들을 짚자면 끝도 없었다.
중개업자의 보증이 있었다고는 하나, 애당초 정체모를 수상한 자의 개인의뢰로 시작된 일이 아니던가.
치누아비는 닷새 전의 일을 곰곰이 되짚어봤다.
‘금지된 신전’의 입구를 해독하곤 의뢰보수를 받은 직후였다.
누군가가 접근해왔다. 일 하나만 해줄 수 있겠냐고.
이미 1층을 떠나온 지 꽤 되었던 터라 거절하려 했지만, 그가 계약금이랍시고 내놓은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계획했던 것보다 신전의 해독에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정해진 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욕심이 생길 수밖에.
하루 이틀만 더 고생하자는 생각에 이를 수락했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갇히고 말았다.
‘그렇다는 건······ 신전 때부터인가?’
사실 그때부터 뭔가 해독을 방해받는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딱 정체를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살짝 훼방을 놓는 식이랄까.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함정이 설계되고 있던 게.
‘누구지?’
치누아비는 그즈음 떠오르는 얼굴들을 하나하나 나열해봤다.
거짓말쟁이 도깨비 조합 녀석들?
일을 빼앗긴 해독가들?
지난 번 철의 미로 때, 보물을 놓친 모험단 녀석들인가?
아니면······ 그냥 지나가던 훼방꾼 도깨비가 심심해서?
“······아냐.”
치누아비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 녀석들이 이렇게 번잡스럽게 일을 꾸밀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그냥 뒤따라 다니며 공격을 했으면 했지.
이어 잠시간 더 생각해봤으나, 딱히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결국,
‘됐어, 그만. 중요한 것도 아닌데.’
치누아비는 이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지금 이 시점에서 원흉을 찾으려 애쓰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에 대한 건 이곳을 빠져나간 뒤 생각해도 늦지 않으리라.
치누아비는 이어, 이곳의 구조를 떠올렸다.
단순한 미로였다. 길의 끝에 보물이 놓여 있는.
장애물의 종류는 다양하긴 했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시체와 유령들이 약간 무섭게 생기긴 했지만.
관문의 난도도 적당했다. 너무 쉽지도 않고, 아주 까다롭지도 않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적정 수준의 보물찾기였다.
헌데,
‘······모르겠어.’
답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이건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이게 답이야.’
당황스러웠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모든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 현재의 상태가 곧, 최종답안인 상황이었다.
“······.”
치누아비는 그즈음 맥이 탁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잘못 들어왔네.”
그러고 보니, 예전 도깨비 어르신들께 이 같은 경우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무덤과 얽힌 문제를 풀 땐 늘 조심해야 한다고. 본디 출구를 만들어놓는 무덤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이제 어떡한다······.’
남은 문제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방법 자체는 간단해진다. 애당초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냥 이곳의 벽이나 천장을 힘으로 뚫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을 거라는 것.
이곳 군주의 무덤은 기본적으로 모든 뼈대가 강철로 된 공간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그것이 완전히 밀봉된 상태였고.
두께를 알 수 없는, 철벽으로 된 직육면체 안에 갇힌 상황이라고나 할까.
“후······.”
상성이 좋지 않았다.
단순히 땅속에 파묻힌 거라거나, 자연물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별 문제가 없겠으나······ 정령들도 이 같은 상황에선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니.
별 수 없이 네로의 발톱과 구구의 부리에 기대를 걸어야 할 듯했다.
이어, 치누아비가 이 같은 사실을 둘에게 알리려 할 때였다.
갑작스레,
쿵-!
쿵-!
웬 굉음과 함께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그러곤,
끼이익-.
난데없이 천장이······ 천장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뭐······?”
“뭐, 뭐야!?”
“물러서!”
치누아비는 눈앞에서 벌어진 황당한 상황에 두 눈을 비볐다.
뭔가 엄청나게 거대하고 투명한 손이 이 거대한 강철 상자를 ‘잡아 뜯고’, ‘구기고’, 또한 ‘찢고’ 있었다.
이윽고,
“확실히 도깨비들은 이런 단순한 몸 쓰는 거에 약하다니까?”
찢겨나간 천장에서 새하얀 빛 무리가 들어옴과 동시에, 웬 음성이 나직이 들려왔다.
무척이나 낯익은, 또한 그리웠던 목소리였다.
“······혀,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