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거인들의 대지로
***
“······하늘을 떠받치는 자들의 대지요?”
치누아비는 그러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눈에 봐도 썩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어쩌면 제일 먼저 처내야 하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었는지도.
또한,
“어째서 그곳을······ 아니, 것보다 문제를 먼저 알고 계셨습니까?”
내가 특정 선택지를 곧바로 지정하니 의문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와 같은 경우는 분명 미리부터 문제를 알고 있었다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찍은 것, 둘 중 하나일 테니.
“아니? 그냥 거기가 제일 재미있을 것 같아서. 모험 냄새 나지 않아? 하늘을 떠받치는 자들이라는데. 와, 기대 돼.”
“······.”
치누아비의 황당하다는 반응에도, 나는 어떠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그때였다,
띠링-.
[경고!] [개연성을 위반하려는 의도가 포착되었습니다] [선행 플롯에 의해 행위가 금지됩니다] [누적 페널티로 3분간 움직임이 제한됩니다] [작가호감도가 30 하락합니다.] [캐릭터의 격이 소폭 하락합니다] [제재를 무시하시겠습니까?]-남은 기회 : 7번
‘오호······.’
나는 간만에 뜬 선행플롯 제지 화면을 빤히 들여다봤다.
대체 얼마만이지?
나는 그즈음 드는 요상한 기분에 당황했다.
뭐랄까······ 페널티로 인해 몸이 압박되기 시작했음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외려 안심이 되고 포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전엔 이 같은 상황에 전전긍긍하기만 했었는데.
나는 웃으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어,
스르륵-.
온 몸을 조여오던 압박감이 스리슬쩍 사라졌다.
아직도 내게 이런 걸 들이밀 생각을 하다니. 당장 쟁여둔 거부권과 격에 의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만 합쳐도 열 개가 넘었다.
‘될 리가 있겠냐고.’
도리어 자신감이 오를 정도였다. 내 현재의 노선을 작가가 거부한다는 것에서, 나는 지금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으니.
사실 원작에서 채택된 답은 두 번째 선택지, ‘다섯 말썽쟁이들이 모여 사는 동굴’이다.
다섯 말썽쟁이가 의미하는 바는 다른 게 아니다. 바로 다섯 신을 모시는 도깨비들.
즉, 이 선택지는 도깨비들과 얽힌 서사를 추적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시아나는 여섯 개의 선택지에서 이걸 답으로 채택하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는 무척이나 간단한 이유에서였는데, 사실 누가 보더라도 ‘다섯 말썽쟁이들’이 다른 선택지 속 대상들에 비해 덜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도깨비가 마녀나, 거인, 심해 같은 것보다야 쉽지 않겠는가.
다만 이를 택하려면 다른 것들과는 달리 특수한 조건 하나를 만족시켜야 했는데, 바로 실제 도깨비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곳에 도착한 뒤에 알게 되는 조건이긴 하지만.
레오가 치누아비를 찾아간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도깨비 쪽 문제를 해독하기 위하여.
사실 원작에선 치누아비가 처음부터 ‘엄마 찾기’에 합류한 것이 아니다. 실제론 도깨비가 필요해진 즈음에 레오가 녀석을 끌어들인 것이지.
어쨌거나,
‘흐음, 그쪽으론 가지 말라 이거지?’
선행플롯의 제지를 눈앞에서 확인하니, 작가가 치누아비를 원래대로 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는 분명 우리가 원작대로 도깨비 쪽으로 가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거기에 뭔가를 마련해뒀을 것이고.
마침,
“흐음, 꼭 그곳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헌데 형님께서도 하늘을 떠받치는 자들이 누군지 아실 텐데요······ 그 포악한 자들은 엮여 봐야 하등 도움 될 일이 없는 법인데······.”
치누아비가 다시금 내 의사를 확인해왔다.
이젠 얼굴에서 확실히 드러나 보였다. 전혀 내켜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치누아비가 도깨비 쪽을 가겠다고 말한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거인 쪽이 아니라는 것쯤은 분명했다.
다만,
“응. 거기 맞아.”
여길 양보할 수는 없었다.
원작 그대로의 길을 걷는 건, 설사 작가가 별다른 짓을 하지 않았다하더라도, 내겐 그리 유익한 길이 아니니까.
그런데,
“재미, 모험······ 정말 그게 다인가요?”
치누아비가 또 한 번 의문을 제기해왔다.
“다라니?”
“뭔가······ 이해가 잘 안 되는 느낌이라.”
“······.”
사실 치누아비가 이렇게까지 내 의견을 걸고넘어진 적은 처음이었다.
웬만해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말을 따라줬던 녀석인데.
물론, 그럴 법도 했다.
해독가로서의 능력이 출중하면 출중할수록, 비효율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답에 깐깐하게 반응하는 법이니.
“이해라······.”
하지만 글쎄, 이걸 어떻게 답해야 할까.
치누아비에겐 ‘재미’라고 했지만, 사실 이와 같은 결정의 근거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외려 그보다는······ 생존.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 이 같은 방향을 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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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야기의 시간대를 원작 만화책에 대입해 본다면, 아마 45~50권 즈음이 될 것이다. 에피소드가 짬뽕되거나 건너뛴 것들이 많아 명확히 구분할 순 없지만, 대략적으론 그 정도가 맞다.
즉, 완결이 머지않았다는 것.
물론 아직 한참 먼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대충만 헤아려도 아직 10권이 넘는 분량이 남은 것이니까.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도 않다.
이건 소년만화의 특징 중 하나 때문인데,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거물’들의 전투 한 번 한 번이 분량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기 때문이다.
실제로 레오와 어느 한 칠왕과의 대전은 무려 반 권이 넘는 분량을 차지하기까지 했으니.
당연지사, 남은 에피소드도 그리 많다고 볼 수 없었다.
작가가 별도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더 추가할 순 있겠지만, 아마 자질구레한 것들뿐이지 않을까.
지금에 와서 대형 에피소드를 추가적으로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일 테니.
그리고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었다.
완결을 의식하는 순간, 작가는 오롯이 ‘자신이 미리 짜둔 결말’을 향해 이야기를 전개하려 할 수밖에 없다.
바로 레오의 모험왕 만들기.
그것이 본인이 첫 연재를 시작했을 당시부터 줄곧, 달려온 목표지점이기도 하니까.
현재 수많은 에피소드들의 전개가 뒤죽박죽이 되고, 레오가 수련에만 몰두하게 되고 하는 것들이 모두 다 그 일환인 것이다.
사실 작가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준비해둔 이야기와 소재들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하더라도, 작품을 시작할 당시부터 그려놓은 결말을 내려면 지금부터라도 이를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야 할 테니.
그리고 그 작업엔 아마도 ‘나에 대한 처분’ 역시 들어가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제까지는 작품의 재미가 살고, 독자들의 반응도 좋으니, 작가 또한 나를 대충 내버려두는 경향이 있었다. 이건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그게 끝까지 지속되리라 생각할 순 없었다. 만약 나의 행동이 본인이 생각해둔 ‘결말’에까지 지장을 줄 위험이 있다면, 작가가 나를 용납할 리가 없으니.
어쩌면······ 이미 계획에 들어갔는지도.
대개 완결을 앞두고서 수많은 소년만화의 핵심조연들이 희생되지 않는가. 이때 작가들은 독자들의 선호도와 약간의 개연성을 무시하면서까지 과감한 전개를 펼치곤 한다. 그것이 결말에 필요하다 생각하며.
솔직히 말하자면, 근래 나는 그 희생양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레오를 모험왕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제물이 될 거라고.
직감적으로 말이다.
하여, 지금 ‘혼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승산이 없었다. 예정된 전개를 비틀고, 작가조차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혼란을.
현재 목표를 에스트리아의 ‘엄마 찾기’에만 치중한다면, 당연지사 치누아비의 결정을 따르는 게 백번 옳다.
그쪽이 훨씬 더 쉽고, 빠르며, 안전할 테니까.
다만, 나의 진짜 목적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이 ‘엄마 찾기’는 내 쪽에서 메인시점을 유지한 채, 모험의 탑 전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시기였다.
다시 말해 ‘독자들의 눈’이란 보호장치를 두른 채, 작가의 섣부른 개입 없이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었다.
지금 사활을 걸어야 했다.
이 시기에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나는 최종장에 이르지 못한 채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르니.
물론 이 같은 생각을 치누아비에게 일일이 설명할 순 없었다.
하여,
“그런 게 필요해? 뭐? 이해?”
나는 간단하게만 말했다.
“치누아비······ 못 보는 사이에 좀 변했다?”
“······예?”
“재미, 모험. 그거면 된 거 아냐? 너 지금 설마 효율 따지냐? 그냥 쉽고, 빠르게 문제를 풀고 싶은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너 장난꾸러기 도깨비 맞아?”
그 순간,
“······”
치누아비의 입이 가만 얼어붙었다.
“설마 저기 말썽쟁이들의 동굴로 가려고 했던 건 아니지? 매일 같이 보던 도깨비들을 여기서까지 또 보려고? 모험의 탑에 있는 도깨비들은 뭐, 뿔이 한 다섯 개 달렸나?”
“······.”
성공인가?
치누아비는 제법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될 듯했다.
“그래, 뭐······ 나랑 떨어져 있는 동안 많이 힘들었겠지. 고생했겠지. 미안, 내가 너무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네. 고향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런 거라면 진즉에 말을······.”
바로 그때,
“아뇨? 무슨 말씀을.”
“응?”
“저는 저기 저 바다의 밑바닥, 심해로 가려고 했는데요?”
녀석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거인 정도는 조금 아쉽지 않나 싶어······ 저희가 또 미들랜드로 건너올 당시에 거기 사는 흑어(黑魚)들에게 빚을 진 게 좀 있지 않습니까? 선장의 유해를 찾아 달래주기라도 해야 하니. 게다가 아무도 탐험해 보지 못했다는 ‘지하의 심연’도 그즈음에 있다고 하고. 어떻습니까? 그리로 가보는 건?”
“······.”
이미 녀석의 두 눈은 광기에 젖어 있었다.
자극이 좀 심했던 모양이다.
“음······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거기는 차차 돌기로 하고, 일단 거인 쪽으로······.”
“아니, 왜요? 설마 형님······ 지금 겁먹으신 겁니까? 거인들이야 언제든 봐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대의 모험왕들······ 특히나 활동량이 넘쳐 났다는 전대(前代)와 전전대(前前代), 심지어는 초대 모험왕조차 돌지 못했다던 심해······ 한 번 모험해보고 싶으시지 않으신가요?”
“······.”
나는 이엔 대꾸하지 않은 채, 슬쩍 치누아비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적당히 해, 얌마.”
나직이 속삭여줬다.
······.
곧이어,
“너 이름이 뭐야?”
“제이콥이요.”
나는 두 번째 선택지를 제시한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래, 제이콥. 타미의 행선지를 알려줘서 고마워. 혹시 타미를 만났을 때 전해줬으면 하는 물건이 있니?”
“어······ 그럼 이것을.”
그러자 녀석이 알록달록한 돌덩이 하나를 건넸다.
“어제 산에서 주은 행운의 돌이에요. 타미에게 건네주세요!”
“그럴게. 고맙다.”
아주 귀중한 돌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퀘스트를 완수했다는 증표였으니.
길만 안다고 해서 소용이 없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소년에게서 이 증표를 획득하지 못한다면, 암만 거인의 대지에 간다한들 다음 문제가 시작되지 않을 테니까.
그즈음,
“흠흠, 그나저나 이제 또 문제로군요.”
차분함을 되찾은 치누아비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응? 뭐가.”
“이런 식의 연계 문제들은 대개 시간제한이 걸려 있기 마련입니다. 다음 장소에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해독의 기회조차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 여섯 개의 선택지들의 제한시간이 다 다를 겁니다. 당장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요.”
“······그래서?”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지금 제 해독결과에 길에 대한 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그러나 지금 코코아에게로 가는 게 맞는 건지는 판단하기 어렵네요. 시간이 딱 맞아 떨어질지.”
“아하, 길잡이?”
그제야 나는 치누아비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차렸다.
“괜찮아, 길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예?”
“웬만한 길은 이미 다 찾아뒀거든.”
지난 6개월 간 필요 이상의 침입을 자행했던 것엔 이 이유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모험의 탑 전반의 지도를 제작하기 위하여.
내가 정말 악당이라서 그렇게 미친 척,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닌 게 아니라고.
나는 이어,
“에스트리아! 대충 친구들이랑 작별해.”
“바, 방금 만났는데요?”
“어쩔 수 없어. 얼굴 봤음 됐지 뭐. 구구, 네로, 치누아비! 다들 채비 갖추고.”
모두를 재촉했다.
한시가 바빴다.
“서둘러! 가야할 곳이 아주 많으니까.”
*
모험의 탑 83층.
두 발자국 정원.
그 초라한 이름과는 달리, 실로 광활한 넓이를 자랑하는 어느 초원지대 한복판에 웬 거인 하나가 대(大)자로 드러누워 있었다.
뭇 거인들 중에서도 하나뿐인, ‘왕’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자.
거인왕, 자움달이었다.
자움달이 두 발자국 정원에 누운 채, 한가로이 햇볕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왕!”
듣기 싫은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이크······.”
쿵-.
쿵-.
자움달은 슬쩍 몸을 일으킨 뒤,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쿵쾅대며 걸어오는 한 거인을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저놈 저거······ 조용히 좀 다니라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왜.”
“보고할 게 있다!”
“보고? 네가 왜? 뭔데?”
그러자 난데없이,
“잠깐! 까먹었다!”
녀석이 또 한 번 빽 소리를 질렀다.
“하······.”
자움달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졌다.
“아니, 너 말고 없어? 왜 네가 보고를 하는 건데?”
“없어!”
“······이상하네. 그래, 그럼 해봐. 보고할 건 생각났고?”
“아직!”
“······천천히 해라.”
그러고 자움달은 다시금 드러누운 채 하늘을 바라봤다.
맑은 해가 뜬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왠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날이었다.
이윽고,
“기억났다!”
녀석이 재차 소리를 질렀다.
“그래? 뭔데.”
“권좌의 홀!”
“뭐?”
“회의! 권좌의 홀!”
“권좌의 홀? 또?”
“맞아!”
“이번엔 누구?”
“마녀들! 대마녀!”
“······또?”
이에 자움달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여자는 정말이지 피곤한 성격이었다.
뭐가 그리 걱정이 많고, 할 말이 많은 건지.
그렇다고 또 안 가면 안 간다고 계속해서 뭐라고 하고.
“이유는?”
“몰라!”
“그렇겠지. 됐다, 가라. 다신 네가 보고하러 오지 말고.”
“좋아! 간다! 흐흐, 바보 왕!”
녀석은 그러곤 왔을 때만큼이나 소란스럽게 사라졌다.
웬 뜬금없는 알쏭달쏭한 미소를 남긴 채.
“······뭐냐 저 흉측한 웃음은.”
물론 아무 의미 없을 것이다.
하여간에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쿵쿵-.
마침내 제대로 된 녀석이 왔다.
“왕,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그거 아냐? 아까 바하롬 녀석이 보고하겠답시고 다녀갔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야 있나. 저걸 누가 통제한다고.”
“저희가 손님을 맞고 있는 사이에······ 내용 중 몇 가지를 엿들으신 모양이십니다.”
“하······.”
하필이면 돌대가리가 호기심까지 많아가지곤.
저거 언제 또 크게 사고치기 전에, 교육을 좀 시켜야 할 듯했다.
“그나저나 카밀라 측에서 사람을 보내왔다면서.”
“예, 대마녀께서 회동을 주최하셨습니다.”
“내용은?”
“서신에 별다른 건 적혀 있지 않았고······ 다섯 단어만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뭔데?”
“긴급. 주걱턱. 혼란. 최상층. 협력. 이 다섯 가지입니다.”
딱히 어려울 것 없는 메시지였다.
하나만 빼고.
“주걱턱? 누구지?”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채무불이행자와 관련이 된 이름이라고 하던데요.”
그 순간,
“······아! 그 녀석이군.”
한 얼굴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저번 회동 때 본 그 녀석인 듯했다. 루덴코프를 대신해 발언을 했던 녀석.
“그러고 보니 그때도 최상층이니 뭐니 했던 것 같은데······ 정말 그 녀석이 뭔가 할 거라는 건가?”
대마녀의 호들갑을 다 믿을 건 아니지만, 언뜻 이번엔 좀 다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저기 실은······.”
“뭐, 왜?”
“그 녀석이 지금 여기 와 있습니다.”
“뭐? 누구?”
“주걱턱 말입니다.”
약간 의아한 말이었다.
“······어디?”
“그게 확실치는 않지만······ 증명의 기둥 앞으로 갔다고 합니다. 본인이 직접 이를 알렸다고 하더군요. 사방에 소리를 지르며 이동했다고.”
“엉? 거길 왜?”
“그야······ 이유가 달리 있겠습니까? 들려고 간 거겠죠.”
“들어? 뭘?”
“기둥들 말입니다.”
그 순간,
“그게 정말이야!?”
자움달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레 흥미가 팍 솟았다.
“뭐야, 그 녀석 힘 세!? 덩치도 엄청 작던데?”
물론 덩치로 힘을 판별할 건 아니었다. 실제로 잇신 녀석은 자신보다 수십 배나 작지만, 힘 자체는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때 본 그 녀석이 그렇게 세보이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둥을 들어 올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게 이목을 끌어모은 걸 보면요.”
“하나라도 들지 못하면 온몸이 찢겨 나갈 텐데······ 오호라, 그 자식이······.”
자움달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거인들 앞에서 힘을 증명하려는 인간이라.
이제까지 그와 같은 녀석들은 몇 없었다.
기껏해야 칠왕이니, 모험왕이니 하는 놈들이 다였지.
‘그러고 보니 그 녀석······ 감히 칠왕들에게 반말을 지껄인 녀석이었지.’
본래는 딱히 상관할 마음이 없었으나, 그 생각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어어, 잠깐!”
가만 잊고 있던 사실이 퍼뜩 생각이 났다.
“바하롬이 어느 방향으로 사라졌지? 그 녀석 그것도 들은 거 아냐?”
“······어쩌면요?”
“이런!”
갑작스레 마음이 급해졌다. 그 녀석만큼 힘자랑에 민감한 녀석이 또 없으니.
결국,
“나도 간다!”
자움달이 그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머리 숙여!”
두 발의 도움닫기 후 힘차게 날아올랐다.
이어,
부웅-.
그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의 흔적이랍시고 남은 건, 광활한 초원에 새겨진 두 발자국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