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또 다른 칠왕의 영역으로
***
“크흐흐, 어디보자······.”
정면엔 세 명의 남자가 온몸이 결박된 채,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루덴코프는 그런 그들을 보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 들인 비용과 수고가 어마어마했다.
무려 수백 년 만에, 등에 땀이 날 정도로 머리를 굴리고 힘을 썼으니.
루덴코프는 먼저 첫 번째 남자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손으로 축 처진 남자의 턱을 잡곤, 치켜 올렸다.
이어,
“두, 두목······.”
흉측한 몰골의 녀석이 겁쟁이처럼 울며, 냄새나는 입을 벌렸다.
“제, 제발 살려 주십······.”
“내가 왜 네 두목이야. 너는 그 빌어먹을 주걱턱 자식을 따르는 놈이잖아.”
“아닙, 아닙니다······.”
“아니긴. 어쨌거나 상관없어. 계속 녀석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으라고. 그게 얼마나 오래 가는지 보게.”
그러곤 루덴코프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려 할 때였다.
“제, 제발 자비를······ 하, 한 번만 용서해주신다면 시키는 건 뭐, 뭐든 하겠습니다······ 제, 제발 두목······.”
녀석이 또 한 번 냄새나는 주둥이를 나불거렸다.
“······.”
루덴코프는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제껏 저와 같은 얼굴에 몇 번을 당해왔던가.
그즈음, 이제는 다 사라 없어진 줄만 알았던 괘씸함이 재차 도지기 시작했다.
이어,
“건방지게······ 어? 이 루덴코프님을 속이려 들다니······ 그러고도 어? 살겠다고? 네가 엉? 제정신이냐? 엉? 엉!?”
분노가 치솟았다.
그 순간,
착-.
“휴······.”
루덴코프는 들어 올렸던 팔을 간신히 붙잡았다.
하마터면 또 죽일 뻔했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일단은 참아야 했다.
그래야 이제까지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에이씨.”
그러고 뿌듯한 마음으로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린 루덴코프는 이어 나직이 투덜거렸다.
녀석의 목은 어느새 날아가 버린 뒤였다.
막는 게 약간 늦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자극을······ 어? 사람 자극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있었으면 어? 엉!? 아무 일 없이 그냥······ 휴.”
루덴코프는 이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은 건 이제 두 놈뿐이었다.
지금부터는 절대적으로 화를 참아야 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여태 들였던 노력이 죄다 물거품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니.
기절시킨 채 작업에 들어갈 있으면 좋겠으나, 이는 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다. 몇 차례의 실험 결과, 정신을 잃은 상태에선 ‘주인교체’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혀를 뽑으면 괜찮긴 할 텐데······ 그러면 또 내가 정보를 들을 때 불편해질 테니······.”
그냥 최대한 귀와 입을 닫은 채, 후딱 끝내버리는 게 최선일 듯했다.
하여,
“너 말하지 마. 비명도 내지 마. 살려달라고도 하지 마. 입 조금이라도 뻥긋하면 머리를 터트려 버릴 거니까.”
끄덕끄덕.
한 차례의 경고만 날려준 뒤, 얼른 작업에 착수했다.
일단 주걱턱 녀석의 글씨가 적힌 부분을 찾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어디보자······.”
이제까지 살펴본 결과, 웬만해선 몸 아래쪽 부위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눈에 잘 띄지 않으려 했던 것 같은데, 아주 지독한 놈이었다.
운 좋으면 엉덩이 위쪽, 나쁘면······.
“이, 이······ 빌어먹을, 빌어먹을! 취향 한 번 더럽기 짝이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불행히도, 엉덩이 골 부근에 선명히 ‘22층-13’이라 적힌 문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루덴코프는 침을 한 번 퉤 뱉은 다음, 그 부분을 두 손으로 집었다.
그러곤,
“네 놈, 신음 따위 내기만 해봐라. 냄새나는 이빨을 죄다 뽑아버릴 테다!”
전전대 모험왕 녀석의 능력, ‘암화(暗火)’를 끌어올렸다.
미들랜드의 심해 어딘가, 흑어들의 서식지에서 발화했다는 이 검은 불꽃은 한 가지 묘한 작용을 했다.
바로, 한시적으로 대상에게 적용되어 있는 모든 종류의 힘과 법칙을 무효화 시키는 것.
이걸로 이 글씨 부위를 조금만 태워버리면······
“크, 크윽······ 크으······.”
“분명히 입 열지 말라고 했다.”
“읍······ 크읍.”
이제 이 녀석은 주걱턱 모르게, 아주 잠시나마 놈의 주박에서 풀려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가 핵심이었다.
루덴코프는 검은 불꽃이 사그라지기 전에, 허리춤에 꽂아둔 붓을 꺼내들었다.
서기관의 붓.
15층 모험가협회 본부에 있던 피르미노인지 피노키온지 하는 녀석에게서 ‘빌려온’ 것이었다.
지금껏 글씨가 적힌 시체들에게서 기억을 파내고, 마녀들의 수정구를 훔쳐 능력의 주인을 찾고, 더러운 모험가 놈들의 골을 부수고, 이 서기관이란 녀석을 덮치는 데까지 걸린 시간만 2주였다.
그만한 비용을 들였으니, 딱히 돌려주지 않아도 큰 상관은 없으리라.
“가만히 좀 있으라고, 엉? 그냥 몸에 한 줄 새기는 거에 불과하니까. 경험 있잖아?”
루덴코프는 그러곤 붓을 암화가 지나간 자리에다 갖다 댔다.
“······크읍!”
이제 여기다 새로 글씨를 쓰면······.
22층-루덴코프
주걱턱 몰래, 이 녀석을 충실한 개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 멍청한 녀석은 본인의 개가 주인을 갈아 치웠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이어,
“으······ 크으으.”
루덴코프는 정신을 잃을 듯 말 듯,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한 남자를 가만 쳐다봤다.
“어이.”
“크으······.”
“어이, 정신 차려봐. 어이.”
“으······ 예······ 예.”
“내가 누구?”
“루덴코프······ 두목.”
“내가 두목 맞아? 그 빌어먹을 주걱턱이 아니라?”
“크······ 예, 맞습니다.”
눈을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의 그 빌어먹을 놈들처럼, 부지런히 눈알을 굴리지 않는 걸로 봐선.
물론 좀 더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그래? 그럼 이제 다 털어놔봐.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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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하, 도깨비 은막으로······ 층 전체를 덮었다?”
루덴코프는 그제야 어느 정도 사건의 전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간들을 빼돌리고, 세계 자체를 숨겨놓다니. 그것도 제 손으로 완전히 망가뜨려 놓은 곳에다가.
“악취미군······ 빌어먹을 놈 같으니.”
일단 그 용인 꼬맹이의 친구들을 살려놓았다는 건, 본래부터 주걱턱에겐 그들을 적대할 생각이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이유야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드라카의 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둘째, 그 인간들 자체에게 쓸모가 있어서.
아마 첫 번째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긴, 애당초 친구를 몰살시킨 녀석과 붙어먹는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
그리 간단한 것조차 놓치고 있었다니.
하지만 어차피 이젠 별 상관이 없었다. 필요한 정보는 이미 다 나왔으니까.
20층이든 34층이든······ 하나하나 찾아가 그 도깨비들의 투명 천막을 걷어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거기 있는 쥐새끼들을 하나하나 잡아 족치다 보면, 금방 녀석의 행선지와 목적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곧 사지를 찢어주마······.’
바로 그때였다.
“두, 두목!”
부하 하나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지?
루덴코프는 의아한 마음으로 녀석을 돌아봤다.
분명 내가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
순간,
“······주걱턱?”
스쳐지나가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혹시라도 녀석의 정보가 들어오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건 간에 보고하러 오라고 했던 것.
“예, 주걱턱 녀석의 소식이 들려와서.”
“······.”
뭐지 갑자기?
이제 막 역공을 취할 방법을 찾아낸 다음이었다.
여태 꽁꽁 숨어 있다가, 지금 이 순간 소식이 들려온다고?
루덴코프는 조금쯤 당혹스런 심정으로 물었다.
“뭔데. 말해봐.”
“그, 그게······ 거인들이랑 함께 있답니다.”
“뭐?”
“거, 거인들과 함께 탑을······ 활보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자세히, 또박또박.”
이어 부하가 가져온 소식은 실로 황당한 것이었다.
주걱턱이 나타났다.
수백이 넘는 거인들을 이끌고.
숨을 생각도 없이, 탑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온갖 문제란 문제는 다 일으키면서.
심지어 그 뒤엔 거인왕까지 뒤따르고 있을 정도라고.
“······뭐?”
“모험의 탑 전체를 지배하겠다고, 불만 있음 찾아오라고 해, 했답니다······.”
그 순간,
파직-.
황당함과 분노를 참지 못한 루덴코프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엉덩이에다 본인의 이름까지 새겨 넣은 남자의 머리통을 부수고 말았다.
“그 놈······ 지금 어디 있어.”
*
모험의 탑, 62층.
녹색 늪.
“형님, 이제 어디로 가실 계획이십니까?”
“······.”
나는 그에 대답하는 대신, 뒤의 거인 무리를 가만 응시했다.
“크하하, 이것들 좀 먹어봐. 제법 맛이 난다고!”
“어디? 이리로 던져줘!”
“나도!”
녀석들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낄낄거리며 늪지대의 악어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타미의 흔적은?”
“다 찾았습니다. 딱히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도깨비들이라도 찾아가볼까 하는 내용의 낙서가 있더군요.”
“······.”
거인들과 함께 다닌 지도 어언 일주일 째.
상황은 내 예상과는 많이도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일단 생각만큼 효과가 나고 있지 않았다.
나의 본래 의도는 혼란을 일으키는 것.
하지만 거인들의 합류는 외려, 탑의 질서를 가져오고 있었다.
늪지대의 악어들이건, 바람둥지의 괴조들이건······ 어딜 가더라도, 녀석들의 기세에 짓눌려선 아무런 대항도 해오지 않았으니.
심지어 거인들 자체도 짜증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이제는 내게 힘의 증명을 계속하라니, 왕과 힘을 겨루라니 하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되레, 나를 따라 이곳저곳을 따라다니는 걸 즐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본인들의 힘으로 무언가에 개입하고, 상관하고, 침범하는 것에 맛이라도 들린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중심엔 바로 저 녀석, 바하롬이란 거인이 있었다.
녀석은 그 어떤 거인들보다 가까이에서 나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마치 본인이 우리의 호위무사라도 된 듯 마주치는 녀석들을 죄다 짓뭉개기 일쑤였다.
게다가 그러곤 매번 그 흉악한 얼굴을 들이밀며 씩 웃어 보이는데······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레이트 킹에게 호되게 당한 뒤로, 어째 내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떡한다.’
어쨌거나 치누아비의 누차 말했던 대로, 새로이 방향설정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다시금 곰곰이 다음 행선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대로 순례하듯 탑을 도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괜히 칠왕들의 경계심만 자극할 뿐이지.
“흐음.”
일단은 ‘엄마 찾기’의 속도를 좀 올려야 할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남은 장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먼저 검은 산맥.
그곳은 애당초 갈 생각이 없었다.
이미 혼란의 주체가 될 녀석들이 둘씩이나 수련에 매진하고 있지 않는가.
시기가 되면, 알아서 합류할 인원들이었다.
괜히 초장부터 판을 흐릴 이유는 없었다.
다음으로 심해.
이곳은 솔직히 말해, 여전히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일단 정보가 없었다. 원작에서조차 전혀 나오지 않는 지역이었으니.
더욱이 여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딱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잠시 보류.
이어 말썽쟁이 도깨비 동굴.
이곳은 애당초 제일 마지막에 가려고 했던 곳이다.
물론 속도를 당기려면 당장 이곳으로 향하는 게 맞으나······ 그러기엔 당장의 소득이 조금 아쉬웠다.
여기도 보류.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별 수 없지. 조금 이르긴 하지만.”
나는 한 곳을 딱 짚었다.
이에, 치누아비가 약간은 긴장된 기색을 취했다.
“괜찮을까요? 그곳은 꽤 저항이 거셀 텐데. 그리고 거인들과 마녀들의 관계는 썩 좋지 않다는 평이 많던데요.”
“안 괜찮아도 상관없어. 아니, 그래야 더 좋지. 솔직히 좀······ 활활 맞붙어줬으면 좋겠는데.”
“······예?”
마녀들의 세계.
조금 이르긴 하지만, 곧장 또 다른 칠왕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할 듯했다.
*
모험의 탑 77층.
대마녀의 탑, 제1수정구 실.
“······치잇.”
수정구를 살피던 카밀라는 이내, 거칠게 몸을 돌렸다.
주걱턱 녀석이 마침내 행선지를 정한 듯 보였다.
가는 길의 방향으로 짐작건대······ 목적지는 바로 이곳, 대마녀의 탑이었다.
그리고 이는 곧,
“어린 녀석이 기고만장해 가지곤······.”
자신을 치겠다는 뜻이었다.
카밀라는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물론 자신이 없지는 않았다.
거인왕이 붙었든, 뭐가 됐든 간에······ 자신이 꿀릴 이유는 없었으니.
다만, 솔직히 조금 긴장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혼란이 밀려오는 와중에, 세력을 불리지 못하고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었으니.
카밀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나란히 선 수정구 세 개를 번갈아 쳐다봤다.
문제는 비단 저 주걱턱 녀석만이 아니었다.
주걱턱이 거인들과 붙어먹었다면, 옛 용 또한 괴물 하나를 열심히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 전부터 수정구 속에 간간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번개소년’은 이젠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다.
옛 용이 선택한 것,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성장속도.
이 정도면 모르는 게 이상하리라.
왕의 자질.
그 소년은 왕의 자질을 타고난 게 틀림없었다.
어쩌면 주걱턱 녀석에게 버금갈 정도로 위험한 세력이 바로 이쪽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세력, 검은 용의 수호자.
그곳 역시 심상찮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단 주걱턱의 동료로 보이던 그 용의 심장을 가진 마녀가 거기 합류한 상태였다.
경계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같은 존재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
뿐만 아니라, 잇신의 곁엔 괴물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겉보기엔 인간의 외형을 지녔으나, 속엔 붉은 용을 숨기고 있는 대머리.
왕의 자질을 의심케 할 정도로, 그 성장속도가 눈부신 존재.
‘절대 만만치 않아······.’
카밀라는 현 상황을 차분히 진단했다.
칠왕들이 하나씩 하나씩 세를 불려가는 형국이었다.
그나마 루덴코프 정도만이 홀로 다니고 있지만······ 그 녀석 또한 예외로 쳐야했다. 녀석은 어떻게든 주걱턱을 잡아먹을 생각으로 움직이는 중이었으니.
“······후.”
격변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모두들 알아차린 것이다.
주걱턱 녀석의 말마따나, 혼란이 밀려들고 있다는 걸.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카밀라 또한 이번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언제까지 칠왕이란 허울뿐인 지위나 유지하며 늙어갈 순 없지 않은가.
칠왕의 이름은 이미 고착화되었고, 모험의 탑은 눌러앉아 있는 이에겐 결코 등반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가올 혼란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탑의 정상에 오르려면, 그 폭풍에 몸을 실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필요한 건 단 하나, 힘.
무엇보다도 힘이 필요했다.
“······별 수 없나?”
카밀라는 질겅이던 입술을 꾹 다문 채, 슬쩍 수정구실 바깥을 노려봤다.
물론, ‘녀석’이야 다 알고 왔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걸 제공할 준비까지 모두 마친 상태일 것이다.
늘 그래왔으니.
카밀라는 잠시간 침묵하다,
“좋아, 한번만 더 거래를 받아주지.”
끝내 결정을 내렸다.
거래의 합리성을 따지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건 자신의 불찰이다. 대가는 감수하는 수밖에.
카밀라는 곧장 바깥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윽고,
끼이익-.
수정구 실의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에 시계모양의 장식을 단 늙은 난쟁이였다.
“요호호,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마녀.”
“······코코로코.”
“찾으실 줄 알고 대기하고 있었지요.”
“좋아, 긴 말은 필요 없겠지. 쓸 만한 녀석 있어?”
“그야, 물론입니다. 심지어 둘이나 있지요.”
그 순간,
“······둘?”
카밀라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둘. 이건 행운이었다.
하나와 둘의 차이는 1과 100의 차이와도 같다.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무궁무진하게 늘어날 테니.
지불해야 할 대가가 크긴 하겠지만, 분명 비약적인 전력 상승을 꾀할 수 있으리라.
“공간에 들어간 지는?”
“무려 3일 째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둘 다요. 정신력이 대단한 자들이지요.”
“뭐? 3일?”
이엔 카밀라조차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3일이면······ 정신이 온전할지가 의문인데······.”
“강인한 자들입니다. 분명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럼 내가 둘 다 받을 수도 있나?”
“물론이지요. 제게 있어 대마녀님보다 소중한 고객은 없으니까요. 대가만 충족시켜주신다면야······.”
“······좋아. 한 번 보고 싶은데?”
“세계의 문을 열어드리지요. 적색 수정구를 쓰셔야 할 겁니다. 기감이 좋은 녀석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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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웠다. 더없이.
어떤 대가를 주더라도 데려와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제약에 묶이지 않는 상태에선, 두 녀석 모두 자신조차 승부를 장담할 없는 강자들이었으니.
“이름은?”
“마음에 드셨나봅니다.”
“빨리 보고 싶은데.”
이에, 코코로코가 씩 웃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칼 자이드와 그로니얀이라는 녀석입니다. 오늘 밤 안에 대령하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