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정답을 향하여
***
바실리 루덴코프는 굉장히 의심이 많은 녀석이다.
작가가 원작에서 녀석의 이와 같은 성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게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다.
-채무불이행자는 마치 용만큼이나 남을 믿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의심병 환자라 봐도 무방하다.
이 때문에 나는 녀석과 녀석의 부하들을 내 뜻대로 활용하기 위하여, 아주 일찍부터 나만이 알고 있던 귀중한 정보들을, 물론 약간의 편집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한 가득 녀석에게 제공해야만 했다.
가령, 녀석이 오래 전 옛 용과 맺은 맹약에 관한 세부내용이라거나, 그것을 늦게나마 ‘약속이행’으로 바꿀 수 있는 방편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에스트리아에 관한 사항들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루덴코프로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때 내가 전달한 정보의 대부분이 실은 ‘아주 먼 과거의 것’이거나, 혹은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관한 것’이었으니. 그리고 본인이 수천 년을 탑에서 지내오면서 쌓아온 지식보다도 귀중한 것들이었으니.
당연하게도, 이와 같은 정보들은 이제 갓 미들랜드로 건너온 햇병아리가 가지고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에 처음엔 시큰둥하게 반응했던 녀석이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를 공식적으로 루덴코프 모험단의 2인자로 올려놓았던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뭐든 해보라고.
물론 뭐,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막 루덴코프 모험단의 2인자로 올라서고, 녀석이 내가 말한 모든 정보들을 완연한 사실로 받아들일 때쯤,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바로, 녀석이 나의 정체를 진지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
“너······ 정체가 뭐지?”
사실 어찌 보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반응이긴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놀라움을 인정하는 순간, 그 궁금증이 나 자체에게로 그대로 옮겨가는 것.
정보에 대한 놀라움도 놀라움이겠지만, 애당초 녀석이 나를 콕 집어 힘을 빌리겠다(?)고 한 것도 나의 범상치 않은 과거의 힘 때문이 아니었던가. 미들랜드에서 갓 넘어온 녀석이 지니고 있다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강한 것이었으니.
고로, 내 정체에 관하여 궁금증을 가진다는 건 굉장히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것.
다만 그럼에도, 녀석의 반응이 특히 재미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루덴코프 본인이 칠왕이라는 점 때문에.
본인은 수천 년 간이나 이 모험의 탑 내에서 절대의 존재로 군림해온 칠왕 중 하나이다.
헌데, 그러한 자신조차도 그 능력의 원천과 한계를 알 수 없는 신출내기 모험가가 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대체 저 주걱턱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때부터 저 의심병 환자의 스펙타클한 스케일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녀석은 나를 단순히 단편적인 미래를 아는 예언가 정도로 여기지 않았다.
외려 녀석은 내가 미래의 일을 일부 알고 있다는 걸, 내가 가진 가장 최하의 능력 정도로 생각했다. 그게 조금 부정확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 대신, 녀석이 내 정체로 의심했던 예시는 다음과 같다.
첫 한 달 무렵엔 요 정도로.
-시간 여행자.
-기억을 잃은 심해의 주인.
-모험의 탑 최상층부 설계자.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녀석의 스케일이 점차 말도 안 되게 커지더니,
-과거 모험왕들 중 하나의 재림.
-미래의 모험왕 혹은 그에 준하는 자.
나를 냅다 올려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본인이 칠왕급의 존재라 그런지, 녀석에겐 상대를 특정 하는 데 한계가 없었다.
심지어 거듭된 의심이 쌓이고 싸이더니, 종래엔······.
-신.
그러고선 내게 한다는 말이,
“저······ 당신에 제게 온 게 혹 시험의 일종이라면······ 그 어떠한 과제든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대신에 그 대가로 제게 죽음을 내려주실 수 있으신지······.”
머릿속 망상수치를 의심케 하는 충격적인 헛소리였다.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황당함에, 나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게 될 정도였으니.
“아니, 아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신이라니······ 갑자기 존대하지 마, 진짜 이상하니까.”
“······만약 이 또한 시험의 일부라면······.”
“하, 아니라고 진짜. 정말 완전히 맛탱이가 가 버린 거야? 적당히 좀 하라고, 나는 그냥 일개 모험가일 뿐이니까.”
“······빌어먹을 자식이 사람 헷갈리게 하고 있어.”
어쨌거나 이는 나 또한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무엇이 됐건 간에, 루덴코프가 나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
물론 녀석의 입장에선 그럴 법도 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골머리를 앓아왔던 ‘죽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마침내 나타났던 것이니까.
내가 아주 빛나 보일 수도 있었겠지.
이후 나는 내 정체에 대해 어떠한 확언도 해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머릿속에서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탑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녀석에게 하나의 생각을 마치 보험처럼 심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탑의 최상층부로의 길이 열리기 전에 내가 최후를 맞이한다면, 혹은 누군가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된다면, 그 길은 영영 묻히게 될 거라고.
내가 바로 탑의 정상으로 너를 이끌 인도자라고.
그리고 바로 이것이,
“루덴코프······ 지금 뭐하는 짓이지?”
“허튼 짓 하지 말아요. 녀석은 감히 우리와 나란히 설 자격이 없는······.”
“닥쳐, 이 잡것들 같으니라고. 저 녀석은 탑의 정상으로 가는 유일한 열쇠다. 방해는 용납하지 않아. 그리고 녀석을 죽이고픈 마음은 내가 제일이야. 때가 되면······ 내 손으로 머리를 터트릴 테니, 그만들 꺼지라고.”
저 최악의 악당이 내 앞을 대신 막아선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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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선 채, 세 칠왕의 대화를 지켜봤다.
“어엉? 아직도 못 알아 처먹었단 말이야? 엉? 나는 지금 역겨움 수치가 최대로 치솟은 상태라고. 화풀이 대상으로 니들의 골통을 택할지도 몰라.”
“루덴코프, 무척이나 광오한 태도로군요. 우리가 당신을 공격하지 않는 건 당신이 무서워서가 아니에요. 균형을 맞추는 자의 등장을 경계하고 있을 뿐이지.”
“그래? 잘됐네, 그럼 그냥 해봐. 어? 저 주걱턱 녀석에게 네 부하들을 붙이고, 너희 둘은 나와 해보잔 말이야. 어? 엉? 그럼 어차피 균형은 유지되는 거 아닌가? 엉? 엉!?”
“······건방지군, 루덴코프. 정말 자신이 있단 소리인가?”
“허허, 덩치만 큰 꼬맹이가 나서긴. 너 혼나볼래? 엉? 애초에 나는 이 칠왕이라는 칭호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죄다 약골들뿐인데, 어딜 같이 묶는 거야. 엉? 엉!?”
······.
이만하면 됐다.
등장까지는 좋았는데, 진행이 별로였다.
하여,
“잠깐 실례.”
나는 녀석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엉?”
“······?”
그러곤 앞에 있던 루덴코프를 지나친 채, 다시금 대마녀 앞에 섰다.
이어,
“뭐 굳이 꺼질 거야 있나. 안 그래? 이렇게 모인 것도 인연인데.”
칠왕 셋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뭐?”
셋은 아직 내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지 말고, 이참에 다 같이 한 번 움직여 보자고.”
“그게······ 무슨 뜻이지?”
“거인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둘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나? 지금 내가 뭘 하려는지?”
무려 칠왕 셋이 한 자리에 모였다.
나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지금 내가 탑의 최상층부로 가는 입구를 열려고 하는 중이거든? 딱히 방해받지만 않는다면 금방 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옆에서 구경하는 건? 전투도 좋고, 서열정리도 좋은데······ 일단 입구는 열고서 하자고, 열고서. 딱히 손해 보는 제안도 아닐 텐데.”
이어,
······.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과연 대마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에 대해 별 확신이 없었다.
운용하는 병력도 가장 많고, 관리하는 층도 많은 이 활달하기 짝이 없는 칠왕이 실은, 꽤나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볼 수 있는 영역이 넓다보니, 굳이 선뜻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
헌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일단 본인 자체가 적극적으로 내게 암수를 펼치려 한 데다, 루덴코프의 이상행동(?)까지 곁들여지지 않았는가.
이미 엮일 대로 엮였다는 것.
분명, 그녀 역시도 이제 가만 제자리에서 지켜보고만 있진 못할 것이다.
그즈음,
“치누아비!”
나는 침묵에 잠식당한 그들을 두곤 곧장 치누아비를 불렀다.
곧이어,
“혀, 형님······ 괜찮은 건가요?”
허공에서 녀석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괜찮아. 일단 타미의 흔적부터 찾아봐.”
“헌데 이 상태에서 과연 가능할지······ 구역 전체를 뒤져야 할 것 같은데, 그러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또······ 위험하기도 하고.”
“걱정 마. 괜찮을 테니까. 그보다 이만하면 필요한 인원들도 얼추 다 모은 듯싶으니······ 이제는 속도를 좀 내야겠지?”
“······그 말씀은?”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곧장 정답을 향해 가보자고.”
그리고 반나절이 지났을 무렵.
우리는 거인왕에 이어, 루덴코프와 대마녀라는 동행을 추가한 채, ‘말썽쟁이 동굴’로 향했다.
*
“······후.”
그로니얀은 아주 작게, 숨을 길게 내뱉었다.
위험했지만 잘 참았다.
저 루덴코프의 얼굴을 본 순간, 예전의 기억이 스치며 미칠 듯 가슴이 끓어올랐던 것이다.
녀석이야 말로 이 ‘능력’을 각성하게 된 원인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그러나 다행히 주걱턱의 표정을 보곤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기이하게도 루덴코프를 본 녀석의 얼굴이 한 결 밝아졌었던 것이다.
만약 그 반대였다면, 아마 능력의 발동을 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저 루덴코프란 녀석을 부숴버리고 싶단 욕망은 정말이지······ 참기 힘든 것이었으니까.
‘······쉽지 않군.’
그로니얀은 다시금 스스로를 억눌렀다.
[상황역전]이 만들어낼 수 있는 반전은 단 한 번뿐이다.
중요한 건 최후의, 최후의 순간까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
서로에게 남은 패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더는 해볼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사용했다간, 외려 스스로의 파멸만을 가져오게 될 뿐이니.
어쨌거나 참았으면 되었다.
루덴코프 녀석을 계속해서 봐야 한다는 게 고통이긴 하지만, 점점 무뎌질 것이다.
아직은 능력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억누르고, 또 억누를 때다.
조용히, 기척을 숨기고 따라 가자.
언젠가······ 부조리한 반전이 필요할 때가 올 테니.
그로니얀은 천천히 숨을 고른 뒤, 다시금 침묵한 채 대마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
일주일 뒤.
모험의 탑 80층, 판게아.
비밀의 숲.
시아나는 얀을 꼭 닮은, 눈앞의 허여멀건 유령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문득,
“혹시 얀이 오고 있나요?”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나 유령은 언제나처럼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대답을 대신한 건 타냐였다.
“걱정 마. 곧 올 테니까.”
“우끼!”
그러나 시아나는 그게 쉽지 않았다.
길잡이들이야 앞날을 읽고 기다리는데 능숙할지 몰라도, 자신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마음을 차분히 먹으려 해도 솔직히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당장 눈앞에 목표물을 둔 상태였으니.
시아나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숲 한 가운데, 주변 환경과는 굉장히 이질적진 웬 거대한 저택 하나가 자리해 있었다.
바로 그들의 목표, 전대 모험왕의 딸 아리엔이 칩거하고 있는 저택이었다.
그때였다.
뿅-.
눈앞에 있던 유령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그 자리에서 얀이 번쩍 솟았다.
볼 때마다 신기한 얀의 이동술이었다.
물론,
“얀, 어떻게 됐죠?”
이에 놀라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시아나는 얀이 호흡을 가다듬기도 전에, 얼른 물었다.
“화, 확인했어요.”
“그래? 수고했어. 그들의 경로는?”
안심시키려 할 땐 언제고, 타냐 또한 곧바로 질문을 던져왔다.
실은 비슷한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알려진 바로는 먼저 거인들에게로 갔고, 다음으로 늪지대, 이어 마녀들의 영역으로 가 대마녀를 만났다고 해요. 그러곤 모두가 함께 이동을 시작했다고.”
“거, 거인에······ 마녀들까지?”
실로 경악스런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그 모두를 움직일 수 있었을까.
“그럼 현재 그들의 위치는?”
“그것까진 알 수 없었어요. 다만······.”
“다만?”
“42층에 갔다는 소문이 있긴 했어요.”
“42층? 42층이면······.”
“도깨비들이 모여 있다는 층이에요.”
그 순간,
“도깨비라······ 맞는 것 같네.”
타냐가 굳은 얼굴로 얼굴을 끄덕였다.
그러곤 전대 모험왕의 함에서 꺼낸 편지를 다시금 훑었다.
“거인과 늪지대는 해독을 잘못한 것이라고 치고, 마녀와 도깨비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걸 보면······ 확실한 것 같아.”
“그, 그렇죠?”
“그 말은 곧······.”
“맞아, 현재 우리와 같은 걸 풀고 있는 거야. 녀석들의 목적지는 이곳이 분명해.”
이어,
······.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드러난 시점이었다. 누구하나 쉬이 말을 꺼내기 힘들 수밖에.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괘, 괜찮을까요?”
얀이 약간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모르지.”
“함정일 가능성은요?”
“그럴 수도 있어.”
다음으로,
“그, 그럼······ 주걱턱 씨를 기다리는 건요? 그와 함께하는 건?”
“······.”
가장 어려운 질문이 나왔다.
시아나는 언젠가 이 같은 질문에 직면하리란 걸 일찍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답을 내진 못하고 있었지만.
“생각해볼 여지는 있어. 다만, 지금 내 눈에 주걱턱과 함께 걷는 길이 보이진 않아. 당장 문제의 해독에 그들의 힘이 필요하지 않는 한······ 일단은 배제한 채 생각하는 게 맞아. 아니면 차라리 경쟁상대로 생각하든가.”
시아나는 타냐의 말에 동의했다.
그들과 많은 이들을 겪어오긴 했지만······ 같은 목표를 두고 있는 한, 언젠가는 맞서야 하는 게 바로 그들 주걱턱 모험단이다.
동료라는 생각은 섣불렀다.
얀 또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글쎄.”
타냐는 그렇게 말을 흐리곤, 이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얀, 어차피 지금부터는 토론의 영역이 아니야. 해독의 영역이지.”
물론, 시아나 또한 지금부터는 자신이 대답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미안해요. 여전히 확신은 할 수 없어요.”
여전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었다. 외려 그 반대였다. 처음부터 해답지를 쥔 채로 시작한 문제였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과연 ‘공식문제’가 맞을까 하는 생각에.
“주걱턱은 함 속에 있던 게 모험왕의 편지인지 모르는 눈치였어. 그러니 그의 공작이라 의심하진 않아도 될 것 같아.”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이곳을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손에 해답지가 들린 상태였으니.
진짜 문제는, 실제로 ‘그녀’를 만났을 때다.
“주걱턱 쪽엔 이 편지가 없지만, 에스트리아란 그녀의 딸이 함께 있어요. 아마 그 소녀에 대한 탐문을 시작으로, 아리엔을 찾아 나섰던 거겠죠. 그렇다는 건, 에스트리아란 소녀의 존재 자체가 열쇠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에요.”
“그 말은······ 에스트리아가 없으면 아리엔을 만난다 하더라도 별 소득이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화를 입을지도 모르죠. 침입자로 간주당해서.”
망설일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이 지점이었다.
이게 문제가 아닌 함정이라면······ 분명 화를 입게 될 테니.
“다만······.”
그러고 시아나는 말끝을 흐렸다.
가장 간단한 해독의 원칙.
해답이 존재하는 문제는 함정이 아니다.
“다만?”
“타냐 씨가 들려준 문구 중에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요.”
“어떤?”
시아나는 이를 들려주었다.
-딸아, 너는 네 딸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여행을 떠나게 되겠지만, 슬퍼 말거라. 네가 어디에 있든, 그 아이가 먼저 너를 찾아갈 테니.
“그게 왜? 그냥 평범한 문구 아냐?”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여행을 하게 된다는 것. 그 말이 걸려서요. 아리엔은 실제로 딸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그즈음엔,
“그게 왜······ 잠깐, 설마?”
타냐 또한 알아차린 듯했다.
“글쎄요, 틀릴 수도 있고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한 번 풀이를 시험해 볼 순 있겠죠.”
그러곤 시아나는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
“오공, 피부에 비늘이 돋은 사람으로도 둔갑할 수 있나요?”
원숭이 한 마리가 심심하다는 듯 삐쭉나온 머리털을 하나하나 뽑고 있었다.
“우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