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이제 곧 모인다
***
“이제······ 다 끝이 났군요.”
드라카는 은은한 빛이 깃든 더벅머리 소년을 보며 잔잔히 웃었다.
이로써 마지막 맹약훈련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
총 백 회에 달하는 맹약.
단 한 번 약간의 시간오차를 낸 것을 제외하고, 소년은 그 모든 맹약을 성공적으로 이행했다.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백 회를 모두 채운 이는 소년이 처음이었다.
드라카는 소년을 보며 감명을 받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를 ‘믿을 수 있겠다’고 까지 생각했을 정도이니.
지금 이 순간, 소년에겐 용의 힘이 건네졌다.
그는 이제 어떠한 칠왕을 상대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때와 조건에 따라 압도할 수 있을지도.
이윽고,
“수고했어, 드라카.”
천천히 눈을 뜬 소년이 씩 웃으며 인사했다.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소년은 힘에 취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본인의 힘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나 그에겐 자질이 있었다.
왕의 자질이.
드라카는 그런 소년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명심하십시오, 레오. 맹약은 개인의 감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쌓아올리는 힘이 아닙니다. 그저 철저한 계약의 이행으로 벼리는 것이지. 본인에게 거는 제약이든 남과의 약속이든······ 그것에 걸린 제약이 크면 클수록 얻을 수 있는 힘은 강해지나,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의 부작용 또한 커집니다.”
“알아.”
“그러니 늘 신중해야 합니다. 남에게 하는 언행은 물론이거니와, 본인 스스로 다짐할 때도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하십시오. 본인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와도 신뢰를 빌미로 약속을 하지 말 것이며, 그 모든 것에 앞서 누구도 믿지 않겠다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용들이 맹약을 다루는 방식이니.”
“그래, 그래 알았어. 그 정도야 뭐.”
“그럼 저와 약속하시겠습니까? 늘 신중할 것이며, 이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그럼, 문제없지! 약속할게!”
“······.”
드라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군.
“제가 분명 약속하지 말라고······ 휴, 아닙니다.”
드라카는 재차 충고를 날리려다, 이내 피식 웃으며 관뒀다.
어차피 이 이상은 자신의 손을 떠난 것이다.
걱정도, 바람도 의미가 없다.
저들 모험가는 늘 제멋대로 걸음을 내딛는 자들이니.
“이제 그럼 모든 과정이 끝났으니, 서둘러······.”
그때였다.
“드라카.”
갑작스레 레오에게서 전에 듣지 못한, 잔잔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슬쩍 쳐다보니, 소년은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근데 항상 묻고 싶은 게 있었어.”
“······무엇이지요?”
“왜 나를 도와주는 거야? 드라카는 칠왕이잖아. 어떻게 보면······ 내 적인 거 아냐? 음,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경쟁상대인 건 분명한 거고.”
“······.”
드라카는 잠시간 침묵했다.
소년은 모를 것이다. 아니, 모를 수밖에 없다.
저와 같은 질문이 실은, 누군가에겐 실로 잔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경쟁상대라는 의미는······.”
“당연히 모험왕을 노린다는 면에서지. 심지어 드라카는 칠왕 중 하나이기도 하잖아? 모험왕과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 어째서 나를 돕는 지가 무척 궁금하단 말이야.”
“······그랬군요. 그럴 수 있지요.”
드라카는 그렇게 대답하곤, 소년을 말없이 바라봤다.
모험의 탑에 있는 이들이 모두 저와 같이 모험왕을 꿈꿔야 하는 것일까.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마땅한 이유가 될 순 없는 걸까.
모험의 탑에 있는 이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모험왕을 노리는 것은 아니다.
개중엔 스스로의 역량을 깨닫고 포기하는 자가 구 할이고, 남은 이들 중에서도 타의에 의해 포기를 강요당하는 이가 또한 구 할이며, 거기서도 단 일 푼의 존재들만이 도전을 계속하는 게 바로 모험왕이란 자리다.
그들 또한 얼마가지 않아 스러지게 마련이지만.
또한 애당초 이곳에서 태어난 자들은 그와는 전혀 별개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본의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철저한 약자로 그렇게 평생을 말이다.
모험왕을 꿈꿀 수 있는 이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그것 역시도 일종의 재능이고 자질인 것이니.
그 자질을 타고 나지 못한 이들은 감히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한다. 본인이 모험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다만,
“그냥······ 이쪽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저 소년이, 본인이 왕이 될 수 있다고 진실로 믿는 존재가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재미?”
“일종의······ 킹메이커라고나 할까요?”
드라카는 말이 나온 김에, 조만간 이 소년이 받게 될 시선의 무게에 대해 조금이나마 일러주기로 했다.
“저는 5000년을 넘게 이 모험의 탑에 존재해 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수많은 모험왕들을 지켜봐왔죠. 그리고 또한······ 만들어 왔습니다.”
“······응? 만들어 왔다고?”
“일종의 제 취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특정한 때가 되면, 왕의 자질을 갖춘 자들 중 하나를 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선별합니다. 그러곤 그와의 연결고리를 형성하지요. 맹약을 맺을 때도 있고, 따로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할 때도 있으며, 당신과 마찬가지로 훈련을 시킨다거나 도움을 베풀 때도 있지요. 그를 모험왕으로 만들기 위하여.”
소년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야 당연할 것이다. 그로선 공감하기 힘든 종류의 일일 테니.
“제게 인간 아내가 있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해보신 적 없으십니까? 또한 그 사이에 혼혈의 딸을 하나 두고 있다는 걸?”
“음······ 있어. 신기하다고 생각했어.”
“제 아내의 존재가 바로 전대 모험왕과의 연결고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혹시 오해할까봐 말씀드리자면, 제가 먼저 이를 요구하진 않았습니다. 그가 한사코 본인의 딸을 저와 맺어주겠다 한 것이었죠. 그는 그걸 굉장히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하더군요. 물론, 아리엔이 조른 것도 없잖아 있었겠지만······.”
“아리엔?”
“아, 제 아내의 이름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그가 모험왕이 된다면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 결과······.”
“결혼을 하게 된 거구나?”
“······그렇지요.”
드라카는 그 당시가 생각나 잠시 멋쩍게 웃었다.
전대의 모험왕은 참으로 별난 인간이었다.
그는 어쩌면······ 오롯이 그것이 궁금해 모험왕의 자리에 오른 것일지도 모른다. 칠왕 중 하나인 옛 용이, 그토록 오랜 세월을 살아온 용이 정말로 인간 아내를 맞이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서.
그에게 모험왕이란 자리는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어쨌거나 당신은 이번 시기의 제가 미는 모험왕 후보가 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약간 고민이 되었던 적도 있긴 하지만.”
이건 진심이었다.
만약 레오를 알기 전 그를 먼저 보았더라면······ 그의 접촉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자신의 선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 주걱턱이란 자는······ 이제껏 봤던 모든 이들과 또 다른 면을 가진 존재였으니.
“응, 드라카가 날 선택했다는 건 알아. 근데 그러니까 내 말은, 대체 왜 직접 도전하는 것보다 나를······.”
“그게 왜 재미있는지 알지 못하겠단 얼굴이시군요. 모험왕 후보를 미는 것보다야 모험왕 자체가 되는 게 더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이시지요?”
“응, 맞아.”
“그야······ 개인이 추구하는 즐거움은 모두가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하긴.”
소년은 그러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그럼 직접 모험왕이 되는 것엔 그냥 완전히 관심이 없는 거야?”
이어 또 한 번 물음을 던졌다.
이는 이전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물음이었다.
한순간 드라카를 움찔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
어째선지 대답이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의식도 못하는 사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아주 약간의 떨림이 있었던 모양이다.
“글쎄요······.”
아주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드라카는 옅은 미소를 내비쳤다.
“제 마음이 곧 행동으로 나오고 있는 것 아닐까요? 어찌됐든, 이번엔 당신을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 말은 진심이 아닐지도 모른다.
드라카는 스스로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나, 용은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설사 그 자신이라 할지라도.
“말이 길어졌군요. 갈 길이 바쁩니다. 알고 계시지요?”
“응? 아, 그렇지.”
이어,
“고마웠어, 드라카.”
“별말씀을.”
드라카는 그렇게 멀어져가는 소년을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럼······ 가십시오, 레오. 모험왕이란 왕좌를 차지하러.”
*
모험의 탑 80층, 판게아.
세 번째 대륙. 어딘가.
이상하다.
확실히 이상하다.
나는 현재 내 온 정신을 휘감고 있던 위화감에 대해 파악하려 애썼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내가 가장 먼저 이상함을 느꼈던 건, 얼마 전 도깨비들의 ‘말썽쟁이 동굴’을 빠져나오던 중, 갑작스레 뜬 홀로그램 메시지를 봤을 때였다.
띠링-.
[메인시점 적용이 끝났습니다] [메인시점이 ‘히로’에서 ‘오공’으로 변경됩니다]“오공?”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갑자기 오공이 왜?
나는 급히 기억을 뒤져봤으나,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오공이 메인시점을 가져갈 만한 사건이 있다고? 그것도 ‘엄마 찾기’가 한창인 이 시기에?
오공이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캐릭터인 건 맞다. 일단 신수이기도 한데다, 녀석의 엉뚱하고도 괴팍한 성격이 출연횟수에 상관없이, 늘 녀석을 인기투표 상위권에 올려놓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내용전개에 녀석이 핵심 등장인물로 활약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초반부라면 또 모를까, ‘엄마 찾기’는 이야기를 최종장으로 인도하는 메인 에피소드이지 않나. 오공은 이를 위한 캐릭터로선 다소 부적합했다.
‘······뭐지? 그냥 시선 돌리기인가?’
그렇다고 보기엔 내가 딱히 뭔가를 보여주고 있던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주위에 워낙 긴장감을 조성하는 녀석들이 많아, 매순간이 일촉즉발의 상황처럼 보이는 것이었을 뿐이지.
아니면······ 설마하니 작가의 아쉬움 때문에?
이대로 혹, 묻힌 에피소드를 영영 보여주지 못할까봐 굳이 별 상관도 없는 사건을 중간에 억지로 끼워 넣었다?
‘아냐, 그건 더 말이 안 돼.’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독자들에게 있는 욕, 없는 욕 죄다 얻어먹고 멘탈이 갈려나갈 게 분명했다.
이즈음부터 나는 어렴풋이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뭔가 수상쩍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할 말이 있는데.”
두 번째로 내게 위화감을 주는 일이 일어났다.
“······뭐야 왜? 또 한 판 해보자고?”
“······.”
느닷없이 칼 자이드가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전까지 녀석은 나와의 결전이 흐지부지 된 이후, 내게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내게 한 차례 감전당한 게 충격이었는지, 아니면 대마녀의 명령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일부러 피하는 느낌까지 줄 정도였던 것이다.
헌데,
“이 길 맞나?”
갑자기 이러고 대뜸 말을 걸어올 줄이야.
“······뭐?”
“뭔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아서.”
“······.”
실로 기묘한 상황이었다.
저 녀석이 갑자기 길을 지적해 올 줄이야.
게다가 한 치의 의심도 해본 적 없는 길이었다.
미리 봐둔 것이기도 한 데다, 애당초 나는 원작에서 봤던 그대로를 따라가고 있던 것이니까.
다만 문제는,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이 말을 한 게 다른 누구도 아닌, 칼 자이드라는 것.
현 시점에서 그 누구보다도 길눈이 발달된 게 저 녀석 아니던가. 당장 길잡이, 해독가, 대적자로서의 모든 능력이 지극히 높은 수치로 올라가 있는 상태일 테니.
“이곳 판게아로 들어설 때부터 뭔가 길이 흔들리는 듯한 조짐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확실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
“딱히 뭔가를 노리고 말하는 건 아니다. 알아서 판단하도록.”
“······그래, 참고하도록 하지.”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딱 한 시간쯤 뒤.
결정적으로 내 위화감을 폭발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현재 챕터의 메인캐릭터는 ‘아리엔’ 입니다.
⁝
그리고 현재.
긴 시간의 고민 끝에 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지금 오공을 필두로, 레오 모험단 쪽 녀석들이 나보다 먼저 아리엔에게 접촉했다.
물론 이는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개입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갑작스레 그들이 아리엔과 접촉할 이유가 없으니까.
또한, 그게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들이 아리엔을 찾는 데 쓴 방법까진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작가가 작심하고 전개에 개입한 것이라면,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가령, 타냐가 아직 전대 모험왕의 함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면······ 그 속에 아리엔의 저택으로 가는 지도를 넣어둘 수도 있는 것이니까.
물론, 그럼에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지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바로 에스트리아의 부재.
그녀가 내 곁에 있는 한, 사실 그와 같은 행위는 가능한 게 아니었다.
아리엔을 어떻게 찾을 순 있어도, 에스트리아가 없다면 그녀를 움직일 수 없다. 그것이 이 ‘엄마 찾기’란 문제의 성립요건이자, 해독 방법이니까.
이 때문에 나는 처음엔 이 생각을 완강히 부인했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에스트리아도 없는데 아리엔과 접촉해서 뭘 하냐고.
그러다 문득,
‘가만······.’
묘한 방법이 하나 떠올랐던 것이다.
만약, 오공을 에스트리아로 둔갑시킨다면?
“······대박이네.”
이는 분명 대단히 센스 넘치는 방안이었다.
일단 아리엔은 인간이고, 오공의 둔갑을 꿰뚫어 볼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에스트리아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설정이 아니던가.
놀랍게도, 아리엔을 속인다는 것에 개연성의 문제가 없었다는 것.
어쩌면 그게 오공이 메인캐릭터가 된 연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론, 과연 그게 지속 가능한 해답일까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존재했다.
애당초 이는 작가 본인이 공식적으로 준비해둔 문제풀이가 아니다.
당연지사, 특정 상황이 닥쳤을 시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를 테면, 실제 에스트리아와의 삼자대면이라던가.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레오 모험단 녀석들이 져야한다는 것.
‘분명 개연성 상 대가가 따를 텐데······ 주인공네라 그런 것도 없으려나?’
작가가 이와 같이 전개를 이끌려는 이유에 대해선 대충 짐작이 가능했다.
바로 이 에피소드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하여.
다시 말해, 최상층부로 가는 길을 레오 쪽에서 직접 열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메인 에피소드를 내가 오롯이 독점하게 될 경우, 본인이 원하는 결말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이로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아마 레오의 맹약훈련도 이즈음 다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곧 합류하겠지.
“흐음······.”
어쨌거나 상황이 이와 같다면, 계획을 다시 짜야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별 게 없긴 했다. 기껏해야 두 가지 정도?
하나. 녀석들을 추적해 따라잡는 것.
둘. 녀석들이 갈만한 곳에 미리 가 대기하는 것.
첫 번째가 쉽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으나, 곰곰이 따져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일단 타냐와 얀 같은 녀석들은 흔적을 지우는 데 매우 능하다. 그것이 길잡이의 특성과 관련이 깊은 역량이기도 한데다, 기본적으로 도둑에다, 암살교육을 받았던 녀석들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애당초 내겐 녀석들이 갈만한 곳으로 짐작되는 장소가 몇 군데 있었다.
굉장히 넓고, 하늘이 뻥 뚫려 있는 곳.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모여들 수 있는 곳.
애당초 ‘최상층’이 출현할만한 장소라는 게 미리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길을 열든, 레오 쪽이 열든 ‘최상층의 정체’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현재 에피소드가 제멋대로 섞이는 바람에, 설정은 존재하나 챕터에 등장하지 못한 장소가 여럿 있었다.
내 생각에, 아마 그 중 한 곳을 골라 가지 않을까.
이유야 별 게 없었다. 작가가 그 장소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짠 설정인데 그걸 다 버리겠는가. 심지어 내 쪽엔 인원도 많이 늘어나 있었고.
원작과 동일한 장소는 왠지 아닐 것 같았다. 거긴 그냥 공터나 다름없는 곳이었으니.
하여, 대표로 떠오르는 장소는 세 곳이었다.
-49층 대격투장
-검은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인, 크누크산.
-판게아의 ‘거인에게 한 번 들렸었던 대륙.’
아마 이 중 한 곳이지 않을까.
솔직히 어느 곳이든 이상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모두 기존의 에피소드가 제대로 전개되지 않은 곳인데다, 지형적으로도 적합했으니.
다만 차이점이라면······ 저 중 한 곳에, 이미 핵심인물 여럿이 기거하고 있다는 것 정도?
‘아무렴, 사람 있는 데로 가지 않을까?’
그러고 좀 더 고민해보니, 왠지 거기가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뭐, 틀리면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이어,
“길이 변경되었다. 돌아간다!”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방향을 틀었다.
“뭐?”
“지금 무슨······.”
이어 쏟아지는 시선들에 대해,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약간의 으스스한 말을 곁들인 채.
“혼란이 그 출현 장소를 검은 용들의 소굴로 지정했다. 아무래도 칠왕 셋 정도론 좀 부족했던 모양이야.”
······.
조금 이르긴 하지만, 우리 무한의 마녀님의 안부를 살피러 갈 시간이었다.
가는 김에, 민머리 총잡이도 좀 보고.
코코아에겐 따로 말하지 않았지만······ 녀석이야 뭐, 알아서 잘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이제 곧······.
대혼란을 위한 모든 주역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